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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in International Context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2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1권 0호 (2011)

후각 형용사의 의미론적 연구

전은진 ( Jeon Eun-jin )
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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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우리말의 감각 형용사 중에서 후각을 나타내는 형용사의 의미를 고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이 연구에서는 후각 형용사를 찾아 목록화한 후, 후각 형용사의 의미 체계를 고찰하였다. 더 나아가 후각 형용사의 의미 전이 현상까지 모색해보았다. 후각을 나타내는 형용사는 후각의 분화 상태에 따라 <향내>, <고린내>, <노린내>, <비린내>, <고소한내>, <지린내>, <매운내>로 하위분류할 수 있었다. 후각 형용사는 기본 의미를 가진 단어를 바탕으로 단어의 내부 성분이 교체의 변화를 겪어 어감 차이로 인해 정도성을 나타내거나, 어근이나 접사를 결합시켜 새로운 성분이 단어 형성에 참여하여 단어의 의미나 성격을 변화시킴으로써 의미 체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후각 형용사는 기본 의미에 후각적 자질과 더불어 미각적 자질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미각 형용사로 전이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음식이나 동식물의 냄새`가 `사람의 성품이나 행동`으로 의미 전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시대 백제 지역에 대한 심상지리와 백제 가요

김창원 ( Kim Chang-won )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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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악지」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백제 가요들의 주제와 정서는 지아비를 향한 아내의 변함없는 사랑에 집중되어 있다. 지아비를 향한 아내의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주제와 정서는 신라, 고구려 및 고려 가요와 변별되는 백제 가요가 갖는 중요한 특징이다. 백제 가요와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설화 속 여성 주인공은 옛날 중국의 양자강 남쪽 오초 지역의 비극적 주인공들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고려시대 백제는 하나의 문학적 상징으로 존재하였으며, 그것은 문학에서 중국의 양자강 남쪽과 같이 열과 충의 배경이 되었다. 백제의 이러한 상징성은 고려시대 개경을 중심으로 살았던 지배층이 가지고 있던 임진강, 한강 너머의 지역에 대한 심상지리에 의해 창조되었다. 따라서 백제 가요는 삼국시대 백제 지역에서 생성된 가요로서 이해되는 것보다, 고려시대 개경 귀족이 창조해 낸 백제 가요이자 백제 역사로 이해되어야 온당하다.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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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중 필기문학의 관련 양상을 고찰하는 일환으로,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역옹패설(?翁稗說)』과 구양수(歐陽修, 1007~1072)의 『귀전록(歸田錄)』 을 비교·분석하여 그 내용과 성격 및 영향관계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제현의 『역옹패설』은 고려후기 문인지식인들이 주변 문화를 드러내는 필기의 전통 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그 이전의 시화 위주의 필기류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이런 변화 에는 찬자 이제현의 남다른 관심과 시대적 흐름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연 구에서는 『역옹패설』의 이러한 특징을 규명하는 데 대부분 내재적 발전을 통해 『파한집』 - 『보한집』-『역옹패설』로 이어지는 것으로만 파악해 왔다. 그러나 고려시대 한문학 지 식이 축적되고 정리되는 시기에 이미 중국에서도 지식의 축적과 정리가 이루어졌으며, 그 집적물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고려에 유입되었으므로 외적인 자극에 의한 영향도 간과 할 수 없다. 더욱이 이제현은 26년간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원나라에 다녀왔고, 그 과정 에서 조맹부(趙孟?, 1254~1322)·원명선(元明善, 1269~1322)·장양호(張養浩, 1270~1329)·우집(虞集, 1272~1348) 등 원(元)의 문사(文士)들과 교유하며 학문과 시재(詩才)를 드날리고 다양한 중국 서적을 탐독했다. 그런 그에게 중국 문화의 직·간접적 영향이 있었음은 당연해 보인다. 물론 기존의 연구에서 『역옹패설』과 중국 문학과의 연관성을 언급한 경우도 있으나, 구체적인 비교·분석과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역옹패설』이 독자적으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 필기류가 형성되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이라는 점과 함께, 중국 필기문학의 유입과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그 문학사적 흐름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우리 쪽 자료뿐 아니라 중국의 방대한 필기 자료를 함께 살피면서 검증해야할 사안이며, 본고에서는 그 연구의 일환으로 먼저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 없는 구양수 『귀전록』과의 구체적인 분석과 검토를 통해 『역옹패설』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구양수의 『귀전록』은 송대 역사쇄문류(歷史?文類) 필기의 선두작품으로, 기록된 고사는 115편이며, 북송 초기에 구양수가 교류하였던 인물(人物)과 일문(逸聞)에 대한 기록이어서 생생한 사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역옹패설』은 『귀전록』과 비교했을 때, 몇가지 공통점을 보인다. 먼저 작자가 처한 시대 상황과 편찬 배경 및 동기가 비슷하다. 그리고 두 작품에는 작자가 관직생활을 하는 동안 보고 들은 인물사적(人物事跡)·관직제도(職官制度)·관리생활(官吏生活) 등의 일화(逸話)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야사(野史)적 성격을 띤다. 또한 해학과 풍자를 담아내고 있으며, 기술양상도 비슷하다. 이렇게 본고에서는 『역옹패설』과 『귀전록』의 구체적인 비교 고찰을 통해 『역옹패설』이 다만 내재적 발전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중국 필기문학의 영향을 일정정도 받았으며, 특히 『귀전록』과의 유사성은 주목할 만한 점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는 『귀전록』외에 송대 다양한 필기류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 더욱 분명해질 것이며, 고려시대 필기류의 전개 양상과 조선시대 필기·야담으로 이어지는 서사문학의 흐름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화악 지탁(華嶽知濯)의 간찰에 드러난 성속의 조화와 문장관

이대형 ( Lee Dae-hyung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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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 삼봉(三峯)인 화악 지탁(華嶽知濯, 1750~1839)은 조선후기에 100여 명의 제자를 배출한 승려다. 삼봉은 언어와 문장의 효용성을 높이 평가하며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언어와 문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성속(聖俗)의 조화를 지향하는 태도에서 재래의 `인언견언(因言遣言)`을 재해석하여, 말로써 말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나아가 독서를 해야 이치를 알 수 있으며, 시평(詩評)을 읽어서 건조한 문체를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삼봉은 승려치고는 많은 13편의 간찰을 남겼다. 간찰에 `심계(心契)`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삼봉은 `지심계도(知心契道)`로 정의함으로써 지기(知己)라는 의미를 넘어서 그의 지향처를 지시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간찰의 특성상 그리움을 강조하는 맥락으로 귀결되지만 심계(心契)라는 지향처가 소실되지는 않는다. 그리움의 표현은 애(愛)와 충효에 대한 긍정으로 연결된다. 충효에 대해서는 삼봉뿐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가 본래 긍정하였지만 애(愛)의 긍정은 예외적이다. 그러면서 본래의 지향처를 잃지 않고 세속적 관념과 차별화한다는 점에서 성속의 조화를 지향하는 그의 문장관과 통한다.

한학(漢學)과 한국한문학의 사이, 근대한문학

김진균 ( Kim Jin-kyun )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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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한문을 기반으로 한 구문명 전통은 근대에 청산되었다. 근대문명의 입장에서는 한자·한문의 외래성을 공박하며 한문학 유산을 타자화하여 한학으로 지칭하다가, 해방 이후 민족 고유의 측면에서 조금씩 접근하며 한문학 전통을 국문학 연구 대상으로 포섭하여 한국한문학의 명칭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근대 이후 한자·한문의 전통속에서 창작 향유된 근대한문학은 최근까지도 연구의 대상에 적극적으로 포섭되지 않았던바, 본고는 근대한문학에 접근하는 한 경로를 근대의 질문에 대한 한문학의 대응을 중심으로 파악해본 것이다. 근대한문학에서 한문학의 외래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서양 문명에 대한 등거리의 시선을 확보하고, 민족 고유의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한문학 유산을 활용하려던 시도를 확인함으로써, 근대한문학의 연구 의의를 모색하였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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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이태준이 일제 말기 무렵 발표한 수필집 『무서록』과 작가의 분신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단편소설 「까마귀」, 「장마」, 「석양」, 「토끼 이야기」에 드러난 자기상(像)의 내용을 분석하였다. 이태준은 『무서록』에서 선(禪)과 정(靜)과 교양이 합일되어 드러나는 것/곳으로서 자연/예술/오래된 것을 제시하고 작가로서 자신이 이 합일체를 향유하고 있는 것으로 제시한다. 그 결과 그는 외부의 대상을 비롯하여, 평론가, 독자, 다른 작가에 대해서도 자신의 심미안으로 감별하고 전유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단편 소설들에서는 『무서록』에서 구현된 일종의 총체적 세계와는 정 반대로 `세계로부터의 소외`와 고독 의식에 시달리는 작가의 분신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본고에서는 이런 고독은 근대인의 멜랑콜리적 의식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보고, 이러한 인식이 『무서록』에서 보인 총체적 세계상(그리고 거기에 위치한 작가상)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자기상을 일제 말 전시체제의 `명랑하라`는 구호 아래 세계에 대한 시선이 바뀔 것을 폭력적으로 요구받으면서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중소설에 나타난 주체 변모 양상 - 1930년대와 1970년대를 중심으로 -

오혜진 ( Oh Hey-jine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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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30년대와 1970년대 대중소설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주체로의 위치와 변화상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1930년대 방인근의 「방랑의 가인」과 박계주의 「순애보」는 일제의 억압적 체계 속에 온전한 주체로 서지 못한 남성 주체를 보여준다. 정치, 경제적인 공적 영역이 차단되고, 일제에 의해 `반개`로 규정된 후, 거세된 식민지 남성들은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근대 주체로의 위치를 부여받는다. `의사` 근대 주체화된 이 남성들은 그러나 비겁하거나 무기력함으로 일관한다. 여성들 역시 사랑이나 희생이라는 이상하에 사실상 남성에 종속된 위치로 타자화된다. 특히 그 가정을 해체시키는 신여성, 여학생이나 기생으로 대변되는 이들은 철저하게 희생된다. 1970년대는 훨씬 폭력적이다. 근대국가 건설에의 열망은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남성들에게 큰 고통을 짐지운다. 외부로 발산되지 못한 개인의 욕망과 분노들은 결국 시대의 희생양, 여성에게 집중된다. 「별들의 고향」의 경아는 많은 남성들의 욕망을 실현시키고 결국 그녀 자신의 육체는 소진되고 만다. 남성들은 경아의 육체를 통해 위안을 얻고 자신의 길을 찾아나선다. 「겨울여자」의 이화는 적극적으로 남성들에게 자신의 육체를 제공, 남성들이 근대화의 주역으로 서는데 성모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해방기 희곡의 심상지리 연구

전지니 ( Jun Jee-nee )
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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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치가 시작됐지만 식민 통치의 유산이 지속됐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동시에 자리잡고 있던 시기였다. 해방기에는 정치적으로 첨예한 대립구도가 전개되고, 그 선전효과가 중시되면서 연극이 양적으로 팽창하게 되는데, 본고는 냉전질서가 세계를 재편하고 조선에서도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이 시기에 주목한다. 그리고 당대 희곡의 심상지리를 규명함으로써 그 내적구조를 해명하고자 한다. 2장에서는 정범수, 오영진, 유치진 희곡에 나타난 냉전오리엔탈리즘과 이념대결구도를 분석한다. 또한 3장에서는 이같은 식민주의적 심상지리로부터 거리를 두는, 드물게나마 균형을 견지하고 남북한을 점령한 제국를 비판하는 텍스트들을 읽어 본다. 이상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 독립과 식민지배 사이에 놓여있던 해방기 희곡들의 식민성과 탈식민성을 동시에 짚어내고자 한다. 이처럼 국제정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시기에 극작가들의 지리적 상상력을 읽어냄으로써, 당대 희곡의 의의와 한계를 가감없이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오영수의 「갯마을」에 나타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

오양진 ( O Yang-jin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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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오영수의 「갯마을」에 나타난 자연과 인간의 복잡한 관련성과 특정한 경험에 역사적 지평을 부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영수의 인물들은 자연에게서 주체성을 박탈하는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숭고의 형태로 그 자연이 경외감을 자아내는 시대에 산다. 그리고 그들은 이른바 문명화 과정이 수반하게 되는 자연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관념에서 자만이 아닌 겸손이라는 아주 다른 종류의 자기보존을 체현한다. 오영수의 「갯마을」에 이르러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자연으로부터 주체성을 박탈하고 인간 스스로가 주체성을 행사하는 이른바 근대적인 전회를 이룩한다. 그러나 그 전회는 자연에 대한 세속적인 이해와 곧바로 결합되었던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숭고성으로부터 오는 초월적 차원에 대한 경험을 통해 주체성을 겸손이라는 태도와 결합하는 특별한 단계를 거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갯마을 사람들은 인간이 자연의 숭고함에 비추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겸손의 평화를 굴종이 아닌 자유의 결과로서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것은 오영수의 「갯마을」이 가지는 매력의 핵심이기도 하다.

반공의 규율과 소설의 개작 - 『공복사회』를 중심으로 -

황태묵 ( Hwang Tae-muk )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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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방행정(地方行政)』지에 수록된 이호철의 『너구리와 박주사(朴主事)』와 개작된 『공복사회(公僕社會)』의 변화 양상을 고찰한 논문이다. 기존의 논의들은 지금까지 개작 텍스트만을 대상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문제를 드러내었다. 그러나 두 개의 텍스트는 서사적 표현에서뿐 아니라 체제, 구조, 주제, 작가 의식 등에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너구리와 박주사』는 `공팔 예산` 처리 문제로 불거진 과내의 갈등이 박 주사의 원칙론과 정당성에 수렴되어 해소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말은 현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미래를 낙관적인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몽적 구도의 형식을 보여준다. 연재본은 매체의 검열과 연동된 작가의 자기검열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공복사회」의 결말은 계몽적 도식을 탈피하여 원칙주의자의 좌절과 귀향의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반공주의의 폐해와 근대화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서술이 첨가되고 있다. 개작본은 연재 당시의 정치적 제약을 의식한 자기 검열의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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