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국제어문검색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in International Context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2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5권 0호 (2012)
6,600
초록보기
이 논문은 구미호 이야기의 확장과 변모를 통해 인간과 구미호의 관계변화와 공포를 유발하는 자질이 무엇인지를 살펴 본 것이다. 먼저 <변신여우 퇴치 설화>, <여우구슬>, <여우누이>에서는 구미호가 인간 경계 밖의 존재로 `인간으로의 변신`, `여우구슬`, `간을 빼먹는 야성(野性)` 등 공포의 자질을 가진 요괴이자 타자로 재현된다. 그리고 <傳說의 故鄕> <구미호>에서 인간이 되고 싶지만 결국 실패하는 구미호가 등장하여 `구미호의 한(恨)`이라는 방식으로 공포의 자질이 확장 · 변모된다. 2008년 <傳說의 故鄕> <구미호> 에서는 구미호는 우리 내부에서 발현한 존재로 감별과 살해의 대상이다. 구미호에 대한 탐욕은 집단의 가치를 위한 소외된 개인에 대한 폭력으로 주체의 정체성을 위해 타자를 억압하는 것이다. 드라마<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 구미호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타자이며, 주체의 위기 극복을 위한 희생양으로 재현된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구미호는 모성애를 가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표현되었다. 구미호의 모성애와 인간의 탐욕을 대비시켜 인간의 욕망과 타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강조하였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에는 인간과 요괴 구미호의 관계가 전복된다. 자신의 딸을 위해 연이를 살해하는 윤두수와 양부인, 욕망에 물든 인간의 간을 먹으며 불사의 괴물이 된 만신이야말로 진정한 요괴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자를 희생시키려하는 인간의 이기심이야말로 진정한 공포이고, 추악한 욕망은 인간 자신의 한 부분을 이루기 때문에 공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구미호 이야기에서 재현된 인간과 구미호의 관계 변화는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공포의 자질이 등장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인간과 이질적인 타자 구미호에 대한 욕망과 공포라는 이중적인 태도는 오늘날 다문화 사회가 가지는 타자에 대한 공포와 매혹의 메타포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구미호를 단순히 전래되는 이야기 속의 요괴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 혹은 주체에 대한 타자의 은유로 그 의미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확장을 통해 오늘날 한국사회의 주체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성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불안과 균열의 징후를 읽어내는 한 방법일 수 있다.
초록보기
이 연구는 이청준의 소설 「조만득씨」를 원작으로 제작된 연극과 영화에서 스토리를 표현하기 위해 특화된 매체 표현 양식을 해명해보고자 한다. 이청준의 「조만득씨」에서는 직접 화법으로 처리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는 인물인 민 박사와는 달리 윤 간호사의 진술을 자유간접화법으로 처리하여, 텍스트를 읽는 독자들이 윤간호사의 진술에 감정이 입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윤 간호사가 자신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내세우는 민 박사와는 다른, 소수자의 입장임을 나타낸다. 또한 이 소설에서 이장의 이야기가 `액자형 구조`로 나타나는데, 이는 서술자, 이장, 그리고 윤 간호사가 동일한 입장에서 조만득을 옹호하는 듯한 효과를 창출해낸다. 비극적인 문제적 현실보다는 차라리 광기가 행복할 수 있다는 성찰과 그것을 효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소설 텍스트를 지배하는 서술자의 권위를 교란 시키는 다른 등장인물들의 언술이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연극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에서는 전통 문화와 서구 문화의 충돌, 새로운 것과 옛 것의 갈등은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되어, 당대의 혼란스러운 자본주의 문화와 관련시키고 있다. 또한 이 연극은 “극중극” 형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현실에서 정신병 치료에 자주 사용되고 있는 사이코드라마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 서사구조는 연극의 주제가 치료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증거한다. 그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이 연극의 서사 구조는 `현실`을 곱씹어 분석할 것을 관객과 소통하는 서사전략을 사용한다.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에서 카메라의 위치는 두 인물의 사회적인 역할을 외부초점화의 방법으로 객관화하며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두 인물이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 즉 주관적인 시점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는 영화에서 자주 사용된 몽타주 기법과도 연결된다. 몽타주 기법으로 인해 관객들은 조만수의 플롯에 병렬적으로 배치된 수경의 플롯을 이중 플롯 구조로 인식하여, 보다 복합적이고 풍부한 의미효과로 받아들이게 되어 영화의 의미는 한층 깊어지게 된다. 「조만득씨」 ·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 <나는 행복합니다>는 조만득(혹은 조만수)가 지닌 광기의 문제를 중요한 소재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공히 그의 광기가 단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음을 묘사한다. 하지만 각 작품이 주된 표현 방식으로 삼고 있는 자유간접화법 · 액자형 구조, 극중극, 몽타주 기법에 따라 각 작품이 전달하는 이야기 내용과 메시지는 차이를 보인다. <나는 행복합니다>의 또 하나의 주인공인 수경은 「조만득씨」의 윤 간호사와 동일한 기능을 하지만, 영화의 서사 구조는 몽타주 기법을 극중극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의 서사 구조와 유사하다. 요컨대 이청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소설 · 연극 · 영화의 매체 간 서사 재현은 광기를 치료하는 유효한 방식인 이야기 속의 이야기 형태를 활용하여 서사를 구성하여, 각각의 작품을 소비하는 수용자가 기대하는 원작과의 연관성과 서사 전달력 모두를 충족시키기 위한 서사 전략인 것이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판타지성과 하위주체 발화 양상

고선희 ( Ko Seon-hee )
8,100
초록보기
본고는 텔레비전 역사드라마가 역사 인식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콘텐츠라는 관점에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의 하층민 `채윤`과 `소이`의 재현 양상을 분석한 글이다. 이 드라마는 그간의 역사 기록에서 지워지고 잊혀져온 하위주체가 한글창제와 같은 중요한 역사의 동인이었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종의 목숨을 노려 궁궐에 잠입했던 채윤과 어린 시절의 비극적 사건 이후 실어증을 앓는 나인 소이는, 세종의 한글창제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는 인물들이다. 문자와 언어와 권력과 정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처음엔 매우 달랐으며 따라서 그들은 강하게 부딪힌다. 그러나 논쟁과 대화의 결과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훈민정음 반포를 성공으로 이끌게 된다. 정치와 권력과 소통의 문제는 기존의 역사드라마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져 왔지만, 노비 출신 말단 무관과 무수리가 임금과 사적으로 맞대면하여 언어와 문자, 정치와 책임에 대해 논쟁하기까지 하는 이러한 드라마는 한국 텔레비전 사상 전례를 찾기 어렵다. 본고에서는 탈식민 담론에서의 `하위주체` 개념을 확장 전유하여 말단 무관 `채윤`과 무수리 `소이`를 하위주체로 명명하고, 그들이 당대의 최고 권력자인 세종 `이도`와 관계 맺는 방식과 소통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이들의 관계 맺음과 소통의 양상은 역사와 상식을 뛰어넘은 것으로서 다분히 판타지적이다. 따라서 그러한 판타지성을 구현하는 구체적 양상과 그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채윤과 소이는 임금과 맞대면하여 스스로의 입장과 생각 그리고 욕망을 주체적으로 발화하고 있다. 신분과 지위가 현격히 다른 그들이 집현전 내부의 비밀 공간 `글자방`에서 자주 사적으로 만나 문자와 언어, 권력과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들은 스피박의 저 유명한 물음을 상기시킨다,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 지배 언어를 동원한 재현 체계의 한계로 인해 하위주체의 말하기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보다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피박은 그러한 물음을 통해 강조한 바 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하위주체 채윤과 소이의 재현 양상은 그러므로 보다 주목되는 바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입장과 생각을 당당하게 말함으로써, 그간 역사에서 지워지고 잊혀져온 하위주체의 목소리에 새삼 귀 기울이게 한다. 그들이 임금 세종과 소통하며 맺는 관계의 판타지성은 하위주체의 역사적 존재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선택된 서사전략이었던 것이다. 본질적으로 허구의 서사에 그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위주체 역사의 복원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 쓰기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SNS의 가상공동체와 트위터러쳐 ―이외수 산문집 『절대강자』의 경우

김응교 ( Kim Eung-gyo )
6,700
초록보기
우리는 이 글에서 천리안에서 SNS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첫째,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차이, 둘째 트위터러쳐의 개념에 대하여, 셋째 SNS를 대하는 작가의 다섯 가지태도, 넷째 소설가 이외수의 트외터 산문집을 비평하면서 SNS에서 비롯된 문학 생산과정의 변화과정 등을 살펴 보았다. 작가와 독자에게 SNS와 문학, 그리고 트위터러쳐는 분명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인문학 글쓰기 교육을 위해 좋고, 출판유통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있고, 작가와 독자의 무한한 대화를 통한 새로운 창작이 가능하며, 일본의 하이쿠처럼 트위터 형식을 문학에 침투시켜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는 전략적인 접근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SNS라는 새로운 지면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콘텐츠와 지면의 확대이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 독자와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독자들과 댓글 혹은 리트윗 하는 적극적 소통을 통해 새로운 문학적 실험의 장소로 SNS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트위터가 문학 자체라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긴 호흡의 소설을 담기에는 너무 작은 지면이고, 미적 가치를 담기에 그 그릇은 너무 실험적이고 작디 작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 작은 실험성에 기대를 건다. 실험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그 실험은 내일의 고전(古典)을 위한 의미 있는 도전일 수 있다. 누가 이 실험을 고전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에 달려 있다. SNS가 기존의 문학 장르를 어떻게 확장시킬지 혹은 축소시킬지, 새로운 글쓰기는 우리의 사고 형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독자와 작가의 관계가 또 어떻게 변할지, 무엇이 다시 생성될지, 무엇이 소멸될지. 다만 아직은 불안한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6,600
초록보기
본고는 온도감각의 언어적 표현인 `따뜻하다` 및 `뜨겁다`와 이에 상응하는 영어 및 독일어 형용사가 구성하는 <형용사 + 명사> 연어들을 대상으로 삼으며, 여기에 나타나는 비유적 의미 확장 양상을 코퍼스 기반 인지의미론의 관점에서 비교 분석한다. 코퍼스에 의한 정량적 연어 분석을 통해 고빈도 연어군의 언어간 특성을 살펴보고, 분석대상 온감 형용사의 비유적 의미 확장이 적용되고 있는 개념 영역들을 확인한 다음, 온감 연어에서의 비유적 의미 확장 양상을 살펴본다. 온감 영역에서 비온감 영역으로의 의미 확장은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유형은 연어 구성요소간의 은유적 의미 확장으로서, 형용사로 표현되는 온감 영역으로부터 명사로 표현되는 비온감 영역으로 은유적 매핑이 발생하는 것이다. 둘째 유형은 연어 자체의 자구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 사이에 은유적 유연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교적 드물게 관찰되는 유형은 연어 자체의 환유적 의미 확장이다. 특히 복잡한 의미 확장 유형은 연어 내부에서 은유와 환유가 상호작용하는 유형(은환유)이다. 이 유형에서는 `은유 속 환유`로 지칭될 수 있는 것이 대표적으로 관찰된다. 아울러 세 언어의 연어 분석에서 문화간 보편성과 특수성에도 주목한다.

한국어와 중국어의 사과표현 대조 연구

손세모돌 ( Son Se-mo-dol )
10,700
초록보기
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어와 중국어의 사과표현을 대조 분석하는 것이다. 사과는 체면위협과 관련되어 있어 대인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실수나 과오에 대한 실제적인 사과와 의례적 사과로 구분된다. 이 논문에서는 사과화행전략이 아니라 실제적 사과의 명시적 사과표현을 주된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2장에서는 한국어와 중국어 사과표현 방식을 살피고 3장에서는 한국어와 중국어 사과표현의 대응관계를 보기 위하여 한국어 교재와 중국어 교재에 제시된 사과표현과 대응 번역을 검토하였다. 4장에서는 설문조사를 통해 실제생활에서 사용되는 한국어와 중국어사과표현을 검토하고, 한국어와 중국어 사과표현 사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였다. 한국어의 대표적 사과표현은 {미안하다}, {죄송하다}이고 중국어는 對不起, 不好意思, 抱?이다. 한국어는 화·청자 관계에 따라 {죄송하다}와 {미안하다}가 선택 사용되며, 구체적인 어미 형태들이 결정된다. 중국어에서는 對不起와 不好意思가 사과의 정도에 따라 선택된다. 한국어는 어미 변화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므로 한국어와 중국어 사과표현이 일대일로 대응되지는 않지만,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對不起, 不好意思, 抱? 등에 대응될 수 있다. 한국어와 중국어에서 자주 사용하는 사과표현의 공통점은 상위 빈도 1-2위가 미안함을 표시하는 표현이라는 점과 영어의 sorry가 사과표현으로 편입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어에서 3위는 잘못을 인정하는 표현 {잘못하다}이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표현 `안 그러다/안 하다`가 4위인데 비해 중국어는 3, 4위도 모두 유감의 뜻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한국어는 사과표현의 대다수가 단어를 이용해 표현 가능한데 비해 중국어는 사과의 뜻을 표시하는 사과전용표현(對不起, 不好意思, 抱? 등) 이외에는 구절 이상으로 표현된다. 실수 상황에서 한국어는 `아` 등의 감정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의도가 없었음을 표현하는 데 비해 중국어에서는 이런 방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다소 심각한 상황에서 {잘못하다}보다는 {죄송하다}에 부가적인 표현을 덧붙인 사과표현이 일반적인데 비해 중국어는 명시적 사과표현에 부가표현이 첨가된 형식보다 原諒, 錯 등의 사과표현이 증가한다.

사서의 평어를 통해 본 향가 소통과 전승의 양상

서철원 ( Seo Cheol-won )
6,300
초록보기
본고는 향가의 소통 및 전승과 관련된 사서의 평어와 전승담의 내용을 통해 당대의 향가 인식과 그 전개 양상을 해명하고자 한다. 유리왕대 「도솔가」 관련 기록의 `민속환강(民俗歡康)`에서 보이듯, 향가를 비롯한 신라 시가는 그 형성기부터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의 소통을 통한 공감의 형성을 중시하였다. 이는 향가를 통한 공감의 형성과 그로 인한 온갖 현실적 효과의 파생을 중심으로 향가 전승담과 향가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토대가 된다. 그러다가 8세기의 `감동천지귀신(感動天地鬼神)` 논의에 이르러 향가에 여러 세상을 `소통`시키고 초월적 존재를 현현(顯現)시키는 힘이 있다는 믿음으로 확장한다. 이 믿음은 신비성과 현실성을 함께 갖춘 주술의 범위를 넘어선, 주체 자신의 일상과 이를 벗어나 존재하는 신비로운 요소 사이의 조화와 어울림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다음 9 · 10세기에 드러난 조화론 지향은 현실 속의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소통`을 매개로 서정주체의 고뇌를 제거하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골계(滑稽)`와 `세인희락지구(世人戱樂之具)`란 그 기능을 지칭한 표현이었다. 말하자면 신라 향가의 소통과 전승에는 특정한 수신자를 향한 소통과 공감을 중시하는 경향과 함께, 불특정 다수 또는 이계의 존재와의 상징적 교감을 추구하는 대칭적인 흐름이 있었다. 이들의 관계는 대칭적이기는 했지만 반드시 대립적인것은 아니었으며, 문면의 서정성과 문맥에서의 구체적 · 상징적 효용성을 겸비했던 향가의 시적 성취는 여기서 유래했다.

『유교(遺敎)』의 서술방식 연구

조수미 ( Cho Su-mi )
6,100
초록보기
유배에 처하게 되면 `정치적 소외`에 따른 정신적 고통 외에도 `사사(賜死)`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유배실기 속에 유언(遺言)의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본고의 논의대상이 되는 「기사유사」, 「임인유교」, 「선고유교」는 모두 유배(流配)와 사사(賜死)의 기록이다.1) 『遺敎』에 합철되어 있는데 차례대로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1626~1689),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1648~1722), 죽취(竹醉) 김제겸(金濟謙)(1680~1772)의 조 · 부 · 손 3대가 유배되었다가 사사될 때까지의 급박한 며칠간의 기록이다.2) 이 『遺敎』를 통해 유배실기가 가지고 있는 유언문학적인 서술 특징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遺敎』의 글들이 일반적인 유언문학(특히 `유교(遺敎)`)과 다른 점은 유언을 남기는 사람과 그것을 서술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서술자는 유배당사자와 혈연적 · 정서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이므로 그러한 관계적 특성에서 기인한 서술자의 욕망이 글 속에 반영되었다. 서술자(와 서술자가 대변하는 후손 및 남겨진 사람들)의 욕망이 개입된 결과 글 속에는 유언의 당사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 외에도, 서술자가 알고자 하는 것, 기억하고자 하는것, 듣고자 하는 것이 적극적으로 포함되었다. 요컨대 『遺敎』의 유언문학적 특징은 유언을 남기고자 하는 자의 목소리에 유언을 듣는 자들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6,500
초록보기
근대의 한시 문학은 현상한시라는 `제도` 속에서 존재했다는 점에서 근대 이전의 한시와는 기본적으로 그 생태적 환경을 달리하고 있었다. 1928년 『동아일보』가 `동아시단`란에서 `정만조(鄭萬朝) 고선(考選)`이라는 이름을 붙여 「설(雪)」이라는 시제를 내걸고 한시를 모집한 이래, 현상한시 제도는 1940년까지 활발하게 운용되었다. 최익한은 1935년출옥 이후, 『조선일보』 출판부의 촉탁직으로 있으면서 국학 분야의 여러 주제에 대해 논설을 발표했다. 최익한은 금후의 한시에 대해 “풍교(風敎)니 예술이니 하기보다 일종의 수양술의 차원에서 지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한시의 역사적 한계성을 분명하게 지적한 다음, 한시가 이 시기에 진귀성을 지니게 되는 상황이 되었고, 또 유적(悠適) 쇄락(灑落)한 미감을 지니기 때문에, 풍교와 예술로서가 아니라 `취미`로서 지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있어, 한시가 풍교 또는 예술을 지향하기보다 그 의의를 취미에 축소시켜야 한다고 한 최익한의 주장은 현상한시의 성향과 관련하여 매우 주목된다. 1939년과 1940년에 행해진 최익한의 고선 활동 속에서 이러한 적극적 의도가 구현되는 양상을 살필 수 있다. 최익한이 보여준 고선자로서의 활동 가운데 주목되는 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2년에 불과한 길지 않은 기간에 고선을 맡았지만 응모자가 보여준 반응이 그 이전에 비해 매우 뜨거웠다는 점이다. 즉 고선자와 응모자 간의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둘째, 시제(詩題)의 제시에서 고선자의 의도가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명징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즉 기준작을 매우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셋째 응모된 한시를 비평할 때, 전반적인 총평과 아울러 자구 수정에 이르는 구체적인 지적 사항을 제시하였다. 즉 고선자의 역량을 비평 속에서 매우 심도있게 발휘하였다. 최익한은 신문에 투고되는 한시를 취미이자 창작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전통 단절론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요컨대 최익한은 조긍섭 · 성순영 유형, 변영만 유형, 정인보 · (홍명희) 유형, 김태준 ·조윤제 유형과 다른 새로운 차원에서 한시를 이해하고 고선 활동을 담당했던 것이다.

국권상실기 재미 한인 시문학 연구

김정훈 ( Kim Jeong-hun ) , 송명희 ( Song Myong-hui )
6,100
초록보기
기존의 국권상실기 재미 한인 시문학(poetry of Korea in America)에 대해서는 주로 『신한민보』에 수록된 작품을 대상으로, 주로 1920년대 이전 작품을 대상으로 연구해 왔다. 본고에서는 1919~1924년을 전후하여 한인의 미국 이주 양상과 주류 계층이 달라진다는 데에 주목하여, 각각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또한 대상 잡지의 범위를 확장하여 『신한민보』와 함께 1920년대 이후에 발간된 잡지인 『우라키(The Rocky)』와 『동광』 등을 함께 살펴보았다. 전기의 재미 시문학은 일반 노동자계층에 의해 주로 창작되며, 고국에 있을 때부터 친숙한 장르였던 민요와 개화가사, 창가, 시조 등을 적극 활용하여 창작되고 있다. 주된 내용은 항일의식의 고취하고, 대중을 계몽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미국의 대중가요 곡조를 빌어 가사를 개사하는 방식의 창작도 시도되는데, 이를 통해 시인들은 점차 자유시형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후기의 재미 시문학은 유학생 및 지식인 중심의 보다 전문화된 시단을 형성하게 된다. 전 시대와 달리 자유시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이민지에서 느끼는 가난의 현실적 고통과 자본주의적 현실의 모순 고발, 식민지인으로서 느끼는 자의식을 토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시기 작품은 가난과 조국 상실이라는 재미 한인이 겪는 이중고를 주로 다루는 가운데, 미국 사회의 소외집단(minority)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 전기와 후기를 불문하고, 국권상실기 재미 한인 시문학의 주요 관심사는 조국의 독립에 대한 간구라 할 수 있다. 다만, 전기에는 항일이나 구국 · 독립 등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거칠게 드러내어 전경화하고 있는 반면, 후기에는 미국내에서 한인들이 처한 고난의 모습과 흑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 등 여타 소외집단에 대한 묘사를 통해 재미 한인이 겪고 있는 가난과 조국 상실로 인한 이중고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여 간접적인 각성과 의식 고취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표현 기법의 원숙함을 볼 수 있다.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