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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in International Context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2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2권 0호 (2014)

경자회례사(庚子回禮使)(1420)와 히로시마의 오노미치(尾道)

한태문 ( Han Tai-m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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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420년 일본에 파견된 경자회례사와 히로시마의 오노미치(尾道)에 대해 살핀 것이다. 첫째, 경자회례사의 파견과 『일본행록』의 형성배경을 살폈다. 경자회례사는 己亥東征의 진의 파악과 조선 정세의 탐지를 목적으로 일본 幕府가 國王使를 보내자, 조선 조정이 倭寇禁壓이 목적으로 막부에게는 敵意가 없음을 알림으로써 교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경자회례사의 사행록인 『일본행록』은 일본 외교승 文溪正祐가 조선견문록인 『行錄』을 바치자 이를 본 세종이 사행을 떠나는 정사 송희경에게 사행 견문을 시로 지어 바칠 것을 명하여 이루어졌다. 둘째, 『일본행록』에 반영된 오노미치의 모습을 살폈다. 오노미치는 사행이 왕복 2차례머문 港町으로, 『일본행록』에는 風雨와 해적으로부터의 도피처이자 빼어난 전각과 탑이 즐비한 절의 도시 및 天寧寺 승려들과의 시문교류로 대표되는 문화교류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처럼 경자회례사도 조선후기 통신사와 마찬가지로 노정상의 견문을 바탕으로 사행록인 『일본행록』이 지어지고, 또 시문창화로 대표되는 문화교류도 활발히 전개했음을 오노미치를 통해 살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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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내지시찰을 크게 활용하고자 했다. 시찰을 통해 일본의 근대성을 과시하고 조선병합의 합리성을 체현시키며 조선의 전근대적 면모를 스스로 각성케 하여, 향후 일제 통치의 조력자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러한 일본 시찰의 주요 대상자들 중 하나가 바로 유림들이었다. 이는 이전시대부터 형성된 유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해체되지 않았음을 인지한 일제가 이들을 통해 지역 사회를 새롭게 재편하고 또 이들의 영향력을 활용하여 조선민중의 저항의식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양상으로 전개된 시찰은 전시체제기(1939∼1945)에 이르러 황국신민화와 전쟁동원에 중심을 두는 시찰로 다소간의 변화가 생긴다. 기존의 `내지시찰단`이 `성지참배단`으로 전환되어 구성된 것이다. 이 시기에도 유림은 성지참배단의 주요 대상자로 지목되었는데, 이들은 대개 `신국 일본의 본연을 체험하고 일본의 황도유학을 조선에 이식시키려는 목적`으로 일본행에 올랐다. 이러한 당시 참배단의 성격과 성지참배의 목적, 또 이에 대한 유림계의 대응은 『조선유림성지참배기』(1943)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은 조선유도연합회 소속 전국 대표 유림(17명)의 19일간의 성지참배(1941)에 관한 기행문(일본어)과 한시를 수록하고 있는데 책은 당대 유림의 인적구성과 성격, 또 일제가 그들에게 주입시켜 확산시키고자 했던 황도유학의 일면을 여실히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들의 기행문과 시들은 일본을 배경으로, 일어와 한문으로 작성된 친일 문학의 특수한 일면을 반영하고 있다. 즉 일본을 성지화하고 천황을 절대화하여 조선인의 황국신민 의식을 북돋아 장차 전쟁동원에 활용하려는 일제에 동조한 유림들의 굴절된 내면과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천황제와 결합된 근대 일본 황도유학의 반유가적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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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재일조선인문학`자들이 전후 자신들의 문학적 입지를 형성해 가는 과정 가운데, 김사량문학을 어떤 방식으로 수용했는지를 밝힌 글이다. 지금까지 김사량문학과 일제말 `재경조선인` 및 해방 후 `재일조선인`과의 연관에 관한 연구는 여러 편 나왔다. 하지만, 재일조선인문학이 어떻게 김사량문학을 자신들의 문학적/사상적 준거로써 위치시켰는지에 대한 연구는 단편적으로 언급만 돼온 실정이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재일조선인문학자들이 김사량문학을 수용해 가는 과정을 큰 틀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관점을 통해 해석했다. 첫째, 재일조선인문학이 전후 일본 문단에서 부상해서 하나의 `장르화`되는 과정과 김사량문학 재평가가 긴밀하게 연계돼 있는가. 둘째, 재일조선인문학자들의 언어관은 김사량문학과 어떠한 공약적 혹은 비공약적 접점을 공유하는가. 이러한 두 가지 큰 틀을 통해 1970년대 당시 김사량문학이 한국문학자도 아니고 북한문학자도 아닌, 또한 한국과 북한 그 어느 쪽의 편도 들어줄 수 없는 `고향회복`을 지향하는 `재일조선인문학자들`에 의해 `전면적`으로 수용된 그 당위성을 분석했다.

`-오-`의 소멸과 명사구 내포문 구성 변천과의 상관성

최대희 ( Choi Dae-h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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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오-`의 소멸과 명사구 내포문 구성 변천의 상관성을 확인하고, 어떻게 변천하였는지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먼저, `-오-`의 기능과 동명사형 어미의 상관관계를 확인하였는데, 명사화 구성보다는 관형화 구성에서 `-오-`의 소멸이 빨리 진행되고, 관형화 구성에서도 피수식어가 일반명사일 때보다 의존명사 일 때 `-오-`의 소멸이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오-`의 소멸에 따른 명사화 구성의 변천 과정을 확인하였는데, `-기`명사화 구성의 활발한 사용이 `-ㅁ`명사화 구성을 위축시켜 `-오-`의 소멸을 가져왔다고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오-`의 소멸에 따른 관형화 구성의 변천 과정을 확인하였는데, 관형화 구성의 변천은 `-ㄴ, -ㄹ`의 명사적 특성 약화와 의존명사 구문의 명사적 특성 약화가 명사적 성질을 가진 `-오-`를 실현시킬 이유가 없어지면서, 관형화 구성에서 나타나지 않게 되면서 변천의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한역(漢譯) 속담집 『채파유의(采?遺意)』의 특성과 위상

한영규 ( Han Young-gyu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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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최근에 알려진 한역 속담집 『采?遺意』(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를 분석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다산 편찬설을 검토하고, 아울러 이 속담 한역의 특성을 탐색하여 속담집으로서의 위상을 살폈다. 『채파유의』의 편자는 속담의 가치와 그 수집에 큰 의의를 부여하여, 민간의 속담을 수집하고 이를 4언2구의 시 형식으로 바꾸어 종국에는 『시경』의 유지를 계승하겠다는 적극적인 편찬의식을 지녔다. 『채파유의』는 속담집으로서 크게 세 가지 특성을 지녔다. 첫째, 『채파유의』는 조선후기를 통틀어 가장 방대한 규모로 속담의 정수를 채록하여 집대성한 특이한 문헌이다. 둘째, 세태·풍속의 다면성을 적극적으로 채집하여, 당시의 풍속을 생동감 있는 언어로 한역하였다. 셋째, 그 과정에서 官을 비판하는 민의 육성을 포착하여 과감하게 옮겨 놓았다. 그 표현의 적나라함과 과격함은 그 이전의 속담집에서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채파유의』는 당시의 속담을 방대하게 집성하면서도, 교화적 시선의 개입 없이 인정세태의 다기한 면모를 여실히 담아낸 속담집이다. 그 결과 `금강산도 식후경` `개천에서 용 난다`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른다`처럼 가장 한국적 정체성을 지닌 속담이 『채파유의』에 문자로 정착하게 되었다. 또한 이전 속담집에서 볼 수 없었던 비속한 표현도 광범하게 실리게 되었다. 17세기 이후 민요 취향이 대두하고 민간풍속에 관심을 가지는 문인이 여럿 나타났지만, 『채파유의』의 편자 만큼 民의 일상언어에 절대적 의의를 부여하고, 이를 자신의 과업으로 일관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채파유의』의 편자를 다산 정약용으로 보고 이 속담집을 1792년에 편찬한 것으로 비정하였다. 그런 논의의 결과로 『채파유의』는 『이담속찬』의 초고본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담속찬』과 『채파유의』는 그 편찬의 시각이나 내용 면에서 동일한 편자의 책이 되기 어려우므로, 현재의 상태에서 필자 문제는 확정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한다. 편찬 시기는 기존 속담집과의 대비적 고찰을 통해 볼 때, 1852년으로 추론된다.

아동시화(兒童詩話)의 서사적 존재 양상과 의미

허원기 ( Heo Weon-g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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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아동시화들의 서사적 존재양상과 그 의미를 검토한 것이다. 아동시화는 아동을 창작 주체로 다루고 있는 시화를 말한다. 아동시화는 문헌과 구전으로 전승되면서 적지 않은 사례들을 남기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자료들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아동시화의 서사적 존재양상은 <천재적인 시재를 갖춘 아이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일찍 죽었다>, <천재적인 시재를 지닌 아이가 나중에 영달을 누렸다>, <아이가 시를 짓는데 매우 놀라운 재주를 보였다>, <아이가 시를 지어 다른 사람[어른]을 도왔다>, <천재적인 시재를 갖춘 아이가 요절하지 않았으나 영달을 누리지도 못했다>는 등의 다섯 가지 유형과 기타의 유형으로 나타난다. 이 이야기들은 주로 아동들의 시적 재능을 기본 소재로 다루면서 시참(詩讖)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구비아동시화에서는 아동과 그들의 시에 대한 존재 의의가 보다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아동시화에서는 어린이를 독립적인 창작주체로서 나름의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아동의 시 창작 근거로서 동심의 문제에 대한 인식도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동문학의 독립적인 문학논리를 분명하게 제시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매옹한록』에서 아동문학의 미적 근거로서 `청전한 심기`를 제기했다. 이것은 아동시에 대한 전통적 인식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아동시화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지만 아동의 시에 대한 관심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전통시대 아동시의 서사적 존재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시조에 나타난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형상

김상진 ( Kim Sang-jean )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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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문학의 심리학적 접근으로, 시조를 대상으로 삼아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형상을 고찰함을 목적으로 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란 인간의 내적인격 가운데 하나를 지칭하는 용어로써 아니마는 남성 속에 있는 여성성, 아니무스는 여성 속에 있는 남성성을 일컫는다. 따라서 사대부가 주 작가층이 되는 남성시조와 기녀를 작가로 하는 여성시조로 구분하여 각각의 양상을 살폈다. 또 남성시조의 경우는 조선 전기와 후기의 양상이 달라 전기시조와 후기시조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그 결과 시조에 나타난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형상은 다음과 같다. 먼저 남성시조의 경우, 전기시조에서는 연군의 아니마가, 후기시조에서는 애욕의 아니마가 등장하게 된다. 즉 전기시조에서의 여성성은 군신의 관계에서 신하의 忠心을 노래할 때 주로 나타나게 되는 반면, 후기시조에서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표현할 때 여성성이 표현되었다. 남성시조가 조선 전기와 후기의 양상을 달리하는 것과는 달리, 기녀집단을 작가층으로 삼는 여성시조에 등장하는 아니무스는 전기와 후기의 구분 없이 동일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인간의 심리는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졌다. 외적인격에 해당하는 페르소나와 내적인격인 아니마와 아니무스 또한 인간의 심리 가운데 하나이며 이들은 총체적으로 `자기`라는 한 개인을 지향한다. 따라서 시조에 나타난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표현은 자기를 형상화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에 관심을 둔 본고의 논의는 궁극적으로 문학 작품의 본질에 좀 더 근접하려는 노력이다.

<문무대왕전>의 서술 방식과 시대적 의미

이기대 ( Lee Gi-d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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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전>은 장도빈에 의해 1928년에 창작된 활자본 역사전기류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과 이어서 전개된 나당전쟁을 문무왕의 일대기에 맞추어 서술하고 있다. 특히 고구려, 백제, 신라 사이의 대립과 갈등보다는 신라를 중심으로 당나라와 대적하는 모습이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당시의 민족 구성원들이 나라는 달랐어도 연합하여 당나라와 같은 외적을 우리의 영토에서 몰아내었다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작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서술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우선 문무왕의 일대기를 나열하듯이 서술하기 보다는 나당 전쟁의 과정을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이 신라와 연대하여 당나라에 저항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국을 배반하거나 내분을 일으키는 인물들과 조국에 충성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대비하여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문무대왕전>은 문무왕의 일대기에 대한 역사전기류 작품이지만, 이 작품이 일제강점기에 창작되었다는 점에서 시대적 의미는 컸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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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식민치하의 조선인들을 열광케 했던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과 타고르가 최초로 우리 민족에게 보낸 시라고 알려진 「쫓긴 이의 노래」를 둘러싼 문제점들을 되짚어보고 두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분석해보고자 하는 글이다. 또한 1929년 동아일보에 「동방의 등불」이 게재된 이후, 이 시에 덧붙여 한 편의 시인 것처럼 짜깁기 되었던 「기탄잘리 35」의 번역본들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수용과정 및 짜깁기의 출처에 대해 더 깊이 살펴보고, 나아가 작품 자체의 내용 및 의미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근간으로 세 작품에 대한 작품 외적인 논쟁을 상세히 파헤쳐 검증했고 번역본들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작품 자체에 대한 연구로 방향전환을 시도했다. 그 결과의 하나로서, 2003년 교육부 검정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한 「동방의 등불」짜깁기본의 시작과 출처가 1977년에 출판된 『세계명시선-그 이해와 감상』일 가능성을 밝혀냈다.

조명희 소설의 외래적 원천과 그 변용 : 투르게네프와 고리키를 중심으로

손성준 ( Son Sung-jun )
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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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존의 조명희 연구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측면인 참조 소설의 존재를 제시하고, 그것들이 창작 과정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변주되는지를 밝힌 것이다. 이는 곧 조명희의 의도가 집적되는 지점을 추적하는 작업과 상통한다. 본고의 목적은 조명희 소설 연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고 나아가 1920년대 조선 문인들의 창작방법론을 재고해보는 데 있다. 본고에서 밝힌 조명희 소설의 두 가지 원천은 투르게네프와 고리키다. 조명희의 회고나 번역에서 나타나듯 그의 문학관 형성에 있어서 그들이 갖는 위치는 각별했으며, 조명희는 그들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미덕을 선택적으로 수용했다. 따라서 명백히 다른 성향의 문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소설은 조명희의 주요 참조 대상으로서 공존할 수 있었다. 조명희의 「땅 속으로」와 「한 여름밤」은 각각 고리키의 「마부」와 『밑바닥에서』에서, 「R군에게」와 「낙동강」은 각각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와 『그 전날밤』의 서술방식 및 서사적 구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또한 투르게네프의 소설을 참조한 「파우스트」나 『그 전날밤』의 경우, 공통적으로 고리키의 『어머니』와도 관련성도 확인되는 만큼 전체적으로는 고리키의 지분이 큰 편이다. 이는 고리키의 삶과 문학을 일종의 정신적 푯대로 받아들였던 조명희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참조 소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조명희 소설은 뚜렷한 메시지의 차별화를 보여준다. 그는 다른 소설의 요소를 끌어들이되 그 속에 식민지 현실의 비참함과 그 원인의 해부, 그리고 계급해방의 당위성 등을 채워 넣었다. 이 과정에서 최초에 참조했던 설정들 메시지에 최적화 된 형태로 재편된다. 조명희의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는 이미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되어왔다. 그러나 본고는 조명희가 직접 참조한 소설들을 비교항으로서 함께 고찰했기에, 그의 의식적인 차별화 지점에 대한 중층적 분석을 제시할 수 있었다. 조명희는 소설의 메시지를 통해 프로문학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간다. 하지만 조명희가 창작 과정에서 참조한 프로문학 외부의 다양한 재료들 또한 조명희 소설의 정체성 일부를 구성했다. 조명희 연구에서 화두가 되어온 비(非) 전형적 프로문학 요소, 즉 서정성이나 낭만성 등의 존재는 이상의 견지에서도 고찰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본고의 방법론은 조명희 소설의 연구뿐 아니라 서구문학에 근간한 사숙과 습작이 본격화 된 1920년대 소설 전반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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