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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in International Context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2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7권 0호 (2015)

전전-전후 내셔널리즘의 변용 - 리샹란과 최승희의 경우 -

이혜진 ( Lee Hye-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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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식민지 시기[戰前]와 해방 이후[戰後]를 연속적 담론의 영역으로 전제하면서, 최승희와 리샹란을 대상으로 하여 내셔널리즘의 변용과정과 그 양상을 추적해본 것이다. 최승희와 리샹란은 제국 일본의 초국가적 문화예술 네트워크를 형성한 초대형 스타로서 당대 동아시아 대중예술의 지형을 구축해간 인물들이다. 그런 탓에 최승희와 리샹란의 블록버스트급 활약은 당시에는 물론, 현재에도 하나의 신화로 구축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의 신화화 과정에는 식민지와 제국주의, 남북분단, 천황제와 헌법, 전쟁, 국민국가의 불완전성, 강력한 대국의식 등의 문제들, 즉 한국과 일본사회가 해방과 패전의 기점에서 은폐해버린 `오욕의 직시`를 회피하면서 작동된 각각의 내셔널 무의식이 가로놓여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에서 최승희와 리샹란을 조망하는 후대의 시각은 각자가 위치한 정치·역사의 존재방식에 따라 편의적으로 영토화 되어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후대 연구자들의 공동체 내부에서 기인한 무의식이 억압적인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과거 최승희와 리샹란이 초민족적 문화 횡단을 경험했던 규모와 비교할 때 후대 연구자들의 무의식이 기묘하게 축소되어 있다는 점은 문제적이다. 따라서 이 글은 최승희와 리샹란이 각각 해방과 패전 이후 신화화되는 과정 속에서 간과된 복합적 아이덴티티의 균열지점에 집중해봄으로써 현재의 시점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전망에 대해 살펴고자 했다.

기억과 재현으로서의 애도: 『전태일 평전』

박숙자 ( Park Suk-j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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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전태일 평전』을 통해 기억과 재현의 문제를 생각해보았다. 1970년 11월 13일 발생한 전태일의 비극적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냈다. 근로기준법을 불사르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던 그물음은 법 바깥에 놓인 노동자의 삶을 가시화시켜냈고 `인간`이 가치부여의 범주임을 드러냈다. 『전태일 평전』은 전태일의 일기와 수기 등을 기반으로 다시 쓰여진 조영래의 저작이다. 전태일이 남긴 자료에서 주목할 것은 일기, 수기, 편지, 소설 등의 글이 특정 시기에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기`는 시다와 재단사로 일하며 꿈을 키워가던 시기에 주로 쓰여지고 있으며, `수기`는 평화시장 해고된 이후에 새롭게 쓰여지는 반면 `소설`은 생애 마지막 1년 전쯤부터 쓰여진다. 이런 글쓰기 양식의 변화는 글을 통해 투사하고 있던 글쓰기 욕망과 조응한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객관화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전태일은 단 한 편의 글도 완성하지 못한 채 고통의 크기를 죽음으로 드러냈다. 조영래는 이 지점에서 전태일을 어떻게 애도하고 기억할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전태일의 말을 복원하는 과정에 착목한다. 전태일이 그려내고자 했던 총체적인 삶을 완성하는 것, 즉 말의 주인으로 그를 기억하는 일이다. 『전태일 평전』은 `전태일`과 `평전` 서술자의 거리를 지워내는 대신 전태일의 목소리를 주어의 자리로 내세우며 전태일의 삶을 공적 역사에 기입시켜 낸다.
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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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음식문화와 관련된 한국과 일본의 대중서사들을 검토하면서 그 경향과 상호작용에 대해 고찰한 연구이다. 일본 영화 <탐포포>는 웨스턴 무비와 열혈계서사의 혼종, 즉 일본 음식문화의 특징인 `화양절충(和洋折衷)`의 미각을 영화적 미감으로 옮겨낸 작품으로서, 이후 전개될 음식 관련 대중서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함축한다. 유사한 시기에 발표된 일본 만화 『맛의 달인』은 요리에 얽힌 테크네(techne)의 차원을 반복적으로 환기함으로써 기술과 예술의 변증법적 관계를 시사한다. 한편 오기가미 나오코가 발표한 일련의 영화들은 시스템 외부의 잉여적 인물들을 통해 반기술적 유토피아의 상상을 펼쳐 보이는 가운데 음식을 재현하면서 재현의 중심을 요리에서 식사로 이동시킨다. 이와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증명하는 대표적 작품은 만화이자 텔레비전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고독한 미식가>로서, 여기에는 신체를 생체신호의 발신지이자 수신지로서 인식하는 포스트휴먼의 징후가 발견된다. 1998년부터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별 공식개방이 이루어지면서 일본 대중문화의 수용에 있어 `정치`에서 `문화`로, `국가`에서 `취향`으로의 변화가 감지된다. 취향으로서의 일본 대중문화와 일본 대중문화의 취향을 선택하고 발견해내는 가운데 적극적으로 수용된 것이 바로 음식 관련 대중서사이다.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한국 대중서사는 만화 『식객』과 텔레비전 드라마 <대장금>과 같은 작품을 보유하게 되었는데, 이들 작품은 음식 관련 일본 대중서사에 얽혀있던 테크네의 차원에 대한 망각과 함께 전통적 기술인 기능을 강조하는 민속지적 성격을 드러냈다. 더 나아가 텔레비전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또한 일본 대중서사의 폭넓은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탐포포>에서 <고독한 미식가>에 이르는 경향을 고르게 인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최근 한국 대중서사는 식(食)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가운데, 오감의 재편과 이로 인해 탄생한 고감도 인간을 반복적으로 출현시키고 있으며, 이들의 감각은 동아시아적 공통감각으로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왕환일기』의 통신사행문학적 위상 재고

정은영 ( Jeong Eun-y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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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왕환일기』는 1596년 병신사행의 정사 황신이 저술한 통신사행록이다. 병신사행은 임진왜란의 와중에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로, 표면적으로는 명의 책봉사를 호종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실제적으로는 일본의 현 정세를 파악하여 그들의 재침략 가능성을 탐지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황신은 조선전기 통신사행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행기록을 남겼다. 우선 황신은 일기를 사행록의 서술체재로 선택하여 급변하는 일본의 정세를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일기의 말미에는 문견록의 형식을 수용하여 일본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일본왕환일기』의 이러한 서술방식은 후대 통신사에게 영향을 미쳐, 조선후기에는 일기, 일기와 문견록이 결합한 형태가 통신사행록의 대표적인 체재로 자리잡았다. 한편 『일본왕환일기』는 조선후기 통신사행원들이 일본정보를 판단하는 준거가 되었다. 아울러 일본을 바라보는 황신의 인식과 그에 따른 서술 태도 역시 조선후기 통신사행록에 그대로 수용되었다. 이처럼 황신의 『일본왕환일기』는 조선후기 통신사행록의 형식적ㆍ내용적 전범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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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 연구에서 불교문학을 주제로 한 논의는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세기에 가까운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개별 작품이나 작가를 연구하는 것과 별도로 최근 10년 이상 불교문학 전체를 조망하는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최근 한국 불교학계에서는 지난 40년간의 불교문학연구에 대해 연구사 검토를 진행하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거론한 바 있다(2013.12). 그러나 해당 연구사논문은 불교학계에서 보는 불교문학의 개념과 업적에 대한 평가가 국어국문학계에서 보는 관점과 거리가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개별 장르에 따른 연구사 검토와 연구방향을 제시하는 대목에서 국문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던 내용이 다루어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따라 본고는 지난 10년간(2005~2004) 진행된 불교문학 관련 개별 연구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견해나 쟁점을 위주로 정리하고 그 의의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연구 대상으로는 조선후기 문학에 한정하였는데, 이 시기는 선학들의 불교문학 연구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시기로, 새로운 자료와 연구 주제의 다양한 확장이 가능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부분적으로 학술논문 검색사이트의 도움을 받아 불교문학 관련 연구업적을 조사하였으나, 이 시기에 나온 학위논문, 일반논문, 저서 중에 중요한 업적이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연구사가 가지는 범범한 논의보다는 논자의 입장에서 주목할 만한 견해나 쟁점을 위주로 서술하고 과제를 제시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한다. 이런 방식이 오히려 이 방면 연구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천택 작품의 전승 양상과 수용 방식

허영진 ( Hur Young-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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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가집사적 맥락에서 김천택 작품의 전승 양상을 종합·분석한 후, 『청구영언(진본)』 소재 각 작품이 후대의 개별 가집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수용되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그동안 김천택은 최초의 가집을 편찬한 인물로서의 역할과 위상이라는 관점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다수의 작품을 창작한 작가로서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그 결과 아직까지도 그의 작품이 가집사적으로 어떻게 전승되었고, 후대의 가집으로 전승된 작품이 어떠한 방식으로 수용되었는가에 대한 연구는 본격화하지 못했다. 이 글에서는 현전 가집 93종을 대상으로 김천택 작품의 전승 양상과 수용 방식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선 김천택 작품으로 알려진 것 가운데에서 2수는 후대인의 추가 수록 작품인데다가 자료적 신뢰성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김천택은 모두 79수의 작품을 남겼다고 파악하였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청구영언(진본)』에서 30수가 최초로 수록된 이후, 해동가요계 가집에서 49수가 추가 수록되었으므로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전승 경로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즉 그의 작품이 『청구영언(진본)』과 『해동가요』라는 양대 가집을 중심으로 전승 경로가 확연히 구분되는 바, 김천택 작품의 해석 기반 역시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층위를 지녔다고 판단하였다. 김천택 작품의 수용 방식에 관해서는 最先本, 즉 『청구영언(진본)』 소재 작품이 후대의 다른 가집으로 수용되는 과정에서 작가, 악곡, 노랫말의 표기 방식면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상이 포착된다는 사실을 밝혀 보았다. 이러한 변화상은 『청구영언(진본)』이 편찬된 직후부터 곧바로 나타나므로 단순히 전승·수용 과정상의 오기나 착오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요컨대 그의 작품은 가집사 전 기간 동안 전승이 이루어졌으나 수용 방식면에서 보편적 인식보다는 개별적 인식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고, 각각의 작품은 개별 가집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되었음을 실증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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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철도가」는 20세기 초에 한국과 일본에서 집중 발표된 철도창가의 일종이다. 이제까지 이 작품에 대해서는 발표 연도나 작가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작품 내에 거론된 철도역의 명칭을 검토한 결과 1921년 하반기에서 1923년 전반기 사이에 창작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앞서 발표된 「경부텰도노래」 및 「만한철도창가」와 비교해 볼 때, 이 작품에 대해 다음 몇 가지 사항을 파악할 수 있었다. 1. 이 작품은 경의선을 타고 서울(경성)에서 의주로 이동하면서 연로상의 특정한 역에서 볼 수 있는 일제강점 이후의 변화를 소개하고, 여기에 틈틈이 조선의 옛 인물과 유적(사적지)을 회상하는 서술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아동들의 지리교육용 노래라는 원래의 목적에 충실한 작품으로, 서술 방법이나 연로 주변의 경관에 대한 인식에서 별 다른 특이점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2. 주변 경관 유적지에 대한 언급은 단순한 볼거리를 제시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 「경부텰도노래」에서처럼, 역사적 인물과 그들의 업적을 되새기고 현실상황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타개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유도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다. 3. 관서 지역에 대한 언급은 곡창 지대, 석탄과 철의 산지, 공업의 발달 등을 소개하는 것에 머물고 있다. 이는 관서 지역을 군수자원 보급처와 대륙 진출통로로 활용하고자 했던 일제의 식민정책에 호응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백석의 시와 산문에 나타난 `아이-시인`의 표상

이경수 ( Lee Kyung-s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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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아이와 시인을 관련짓는 백석의 시 「촌에서 온 아이」에 주목하여 백석이 생각한 아이와 시인의 관계를 살펴보고 시인의 표상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시를 통해 백석이 생각한 시인관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분석해 보았다. 백석의 시인관(詩人觀)은 아이에 대한 백석의 관점과 분단 이전의 시에서부터 긴밀히 관련되어 있었고, 그러한 백석의 관점이 분단 이후 재북(在北) 시기의 백석에게까지 지속성을 가지고 이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분단 이후 재북 시기의 백석이 아동문학에서 `시`를 강조하고 동화시를 창작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 원인을 분단이전 시와의 내적 연관성 속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그동안 분단 이후 재북 시기의 백석의 변모에 대해서는 북한 사회와 문단의 특수성 속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외적인 영향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판단이 주를 이루었고, 그로 인해 재북 시기에 쓰여진 백석의 동화시와 아동문학 평론에 대해서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촌에서 온 아이」를 실마리로 해서 일제 강점기 말의 백석 시에서부터 아이와 시인을 공동운명체로 보는 백석 특유의 관점이 나타나고 있었고, 몇 편의 시에서 그러한 관점이 지속되었으며, 이후 재북 시기의 아동문학평론과 동화시에서 그러한 관점이 좀 더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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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김지하 문예이론의 완성체인 `흰 그늘`의 미학이 지닌 미학적 요체를 숭고로 파악하여 그 특성을 고찰하고자 함에 있다. 김지하 문예 이론의 결정체인 `흰 그늘`의 미학은 수십 년에 걸친 그의 문학적 여정에 따라 성립된 각각의 시학이 전이, 확장, 습합되면서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크게 구분하여보자면, 민중시학, 생명시학, 율려시학의 셋으로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시학은 각자 분리된 영역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서로 간의 전이와 습합 과정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흰 그늘`의 미학은 민중시학, 생명시학, 율려시학을 아우르는 김지하 문예이론의 사상적, 미학적 종합이자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각각의 시학은 서로 다른 미학적 자질을 지니면서도 서로 상통하는 미적 원리의 교호작용을 통해 `흰 그늘`의 미학이라는 김지하의 독자적인 문예이론으로 수렴된다. `흰 그늘`의 미학적 요체인 지기일원론(至氣一元論)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김지하 문예이론의 숭고 특성은 단순히 미와 대립되는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추를 매개로 하여 미와 추를 동시에 아우르는 고양 차원에서 시 형식과 양식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 또한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 칸트식의 감각과 이성이 달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되, 에너지이되 이성, 정신까지 회통하는 차원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서구의 여러 숭고 논의와 겹치면서도 미학적 독창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기존의 숭고 논의에 있어 보편적 대상이 되고 있는 고통이나 쾌의 문제, 모순과 갈등의 문제도 대립되는 명제들이 전환이나 변증법적 지양으로 합일되기보다는 상보성으로서, 서로 간의 공존차원으로 바라보고 있는 점, 나아가 이것 역시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한다고 보고 있는 점이 지기일원론(至氣一元論)의 미학에 나타난 숭고의 요체이자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부의 산시(山詩) 연구 - 백두대간 시를 중심으로 -

이승규 ( Lee Seung-gy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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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성부의 백두대간 시의 개념을 정립하고 시적 형상화의 원리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성부 시 세계 후반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시에 대한 고찰은 또한 그의 시 세계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백두대간 시를 통해 공간의 도처에 서려 있는 현대사의 상처, 즉 의병, 군인, 빨치산의 쟁투는 물론 민간인 집단 학살의 참상을 드러내는데, 역사의 현장을 포착하여 사건이나 이야기의 장면을 구조화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백두대간에서 처참하게 자행되는 환경 파괴를 비판하고 현대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반성을 행하기도 한다.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시화한다는 것은, 단절된 민족의 분단 상황을 고발하는 동시에 공동체의 회복을 염원하고 지향한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공동체의 전망을 제시하는 시에서는 체험이 내재화되고 신념의 진술이 더욱 관념화하는 양상을 살필 수 있다. 이성부의 백두대간 시는 초기부터 이어오던 현실 비판정신이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연결되는 분기점에 해당하며, 방법적으로는 현장체험의 실제성을 드러내고 기법화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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