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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in International Context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2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7권 0호 (2018)

조선시대의 심성지식장과 소설문학

허원기 ( Heo Weon-g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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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지식장은 조선시대를 지배했다. 조선시대 심성지식장은 성리학의 심성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심성론에서는 인간을 감성적 존재, 느낌의 존재로 파악한다. 그리고 성리학에서는 인간 감정을 늘 성찰하는 인간, ‘감정 처리와 감정교류의 달인’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심성지식은 고전소설의 형성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면서 새로운 지식장을 형성하였다. 첫째, 심성철학의 논설은 심성도설을 산출했고, 심성도설은 심성우언소설의 출현을 촉발했다. 심성우언소설은 심성지식장이 서사적 활로를 모색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심성우언소설은 마음나라의 흥망성쇠를 중심사건으로 다루고 있다. 둘째, 심성지식은 판소리 서사문법의 탄생에 미학적인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심성론에 바탕을 둔 정리적 합리성은 판소리의 서사미학과 서사문법의 골간이 되었다. 셋째, 심성지식은 가정소설과 대장편가문소설의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새로운 영역을 확장했다. 가정소설과 대장편가문소설은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문제의 실제사례를 설정하고 이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방법을 도출했다. 그런 점에서 감정처세교과서로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조선시대 심성지식장은 철학적 논설, 시각적 도상, 예의규범서, 소설 등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형태의 심성지식들이 지향했던 공동의 목표는 도덕감정공동체의 구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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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2,30년대 상해와 모스크바에서의 장소상실 과정을 바탕으로 좌초된 코즈모폴리턴으로서 여성 사회주의자 주세죽의 삶을 복원해보고자 한 시도이다. 주세죽에게 상해는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박헌영을 만나 혁명과 사랑, 조국과 세계를 함께 꿈꿀 수 있었던 낭만적 해방구로, 식민지 조선 여성 주세죽의 정체성을 코즈모폴리턴 코뮤니스트의 문맥에 재배치시킨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이에 비해 혁명가들의 무덤 조선은 주세죽의 정체성을 박헌영의 하우스/아지트 키퍼로 박제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모스크바행은 주세죽이 혁명주체로서의 개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필연적 여로였다고 할 수 있다. 혁명의 심장 모스크바에서 주세죽은 하우스/아지트의 공인된 주체로서 사회주의의 일상을 향유했다. 그러나 상해와 모스크바가 보여준 환대는 조선에 대한 비극적 인식에서 비롯된 환영 혹은 백일몽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착각과 오인의 결과라 할 수 있다. 1930년대 이루어진 2차 상해행과 모스크바행에서 주세죽은 두 장소의 변질된 정체성에 대한 결핍감과 단절감을 확인한다. 일제에 점령당한 상해의 축소된 국제선 활동과 폐쇄적인 한인 커뮤니티는 주세죽으로 하여금 과거 상해 시절에 대한 향수를 소환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시 돌아온 스탈린 체제 하의 모스크바에서도 주세죽은 달라진 처우와 변화된 공기를 감지하고 망명 혁명가가 아닌 생존을 위한 유랑민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깨닫는다. 1937년 김단야가 밀정 혐의로 사형당한 후 주세죽은 제1급 범죄자의 아내라는 죄목으로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유폐된 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두 번째 모스크바 거주 시기는 국가, 가족, 계급, 공동체 어느 하나의 좌표에도 안착하지 못한 주세죽의 탈구 위치(dislocation)를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코르예바’, ‘한베라’로도 불린 주세죽은 명명의 복수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배타적 근대 권력 구조 안에 포섭되어 접경의 삶과 이산 자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천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주세죽의 비극은 개인의 한계라기보다 생존회로(survival circuit)의 말단에서 다중적인 모순과 억압에 처한 이주 여성의 한계와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주체사상 관점에서 보는 항일혁명 연극문학

남춘애 ( Nam Chun-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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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주체사상 관점에서 보는 북한문학에서의 항일혁명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연극문학에 대해 살펴보았다. ‘주체’라는 용어는 1950년대에 등장하여 1967년을 기점으로 체계화가 이루어지며 19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역사와 문화를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체사상은 천리마운동 속에서 용솟음쳐 나온 영웅을 부각하는 과정에 유일사상으로 일관되어 왔다. 주체사상에 의한 창작의 의거는 주로 수령의 형상을 부각하는 것이다. 북한의 5대가극과 ‘불멸의 총서’는 바로 주체사상의 산물이다. 1967년 6월 28일 4.15문학창작단이 결성되면서 항일혁명 문학의 집체창작은 주체사상의 지도하에 번영기에 들어선다. 그리하여 항일혁명문학은 시기별로 많은 대표작들이 탄생하는데 가장 대표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피바다>이다. 북한 주체사상의 관점에서 북한 항일혁명 시가문학에 대해서는 추후에 살펴보기로 한다.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에 대한 후쿠오카 번(福岡藩)의 대응

치사토구보 ( Kubo Chisa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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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이하 通信使)는 게이초(慶長) 12년(1609)부터 분카(文化) 8년(1811)까지 총 12회 파견되었다. 본래는 「회담겹쇄환사(回答兼刷還使)」로 國書의 응답과 포로 반환 등을 수행하는 성격을 지니다가, 이후에는 ‘우의[信]를 통[通]한다’라는 의미의 통신사가 되었다. 통신사에 관한 연구는 일조(日朝)관계나 대외관 형성, 막번(幕藩)관계 등 각 방면에서 축적되었다. 통신사가 들렀던 각 지역에는 응접에 관한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데, 본고에서는 통신사가 큐슈(九州)의 후쿠오카 번(福岡藩)에 기항(寄港)했을 당시의 사료를 소개하면서 후쿠오카 번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와 후쿠오카 번 통신사는 조선의 한성을 출발하여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對馬島)와 이키(壱岐)를 지나 후쿠오카 번에 도착한다. 통신사가 머무른 지역은 후쿠오카 번 가스야군(糟屋郡)의 아이노시마(藍島)였는데 영민(領民)들이 생활하는 번내(藩內)는 통과하지 않았다. 때문에 통신사 내항을 목격한 영민들은 극히 일부였다. 현재 이와 관련된 자료로는 번정기록(藩政記錄)과 응접에 관계했던 유학자(貝原益軒·龜井南冥 등)가 남긴 것이 있다. 후쿠오카 번의 행정 자료는 많지 않고 통신사에 관한 번정 문서는 福岡縣立圖書館이 소장하고 있는 「쿠로다케(黑田家) 문서」가 유일하다. 그러나 최근 통신사를 접대했던 아이노시마의 쇼야(庄屋) 조사부로(長三郎)라는 인물이 남긴 『官人來朝覺書』가 발견되었다. 2. 쇼토쿠(正德) 元年의 조선통신사와 후쿠오카 번(『官人來朝覺書』) 쇼토쿠(正德) 元年(1711)에 내항하는 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전 년도인 호에이(寶永) 7년(1710) 7월 13일 부두의 축조로 시작되었다. 중급(中級) 이상의 번사(藩士)에게 「波止御奉行·官人木屋奉行·御船奉行·御浦奉行」 등, 통신사 응접을 위한 전문 관직이 부여되었다. 부두 축조 이외에도 통신사의 객사(客舍) 「官人木屋」을 만들었다. 아이노시마는 작은 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평소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신사 내항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동원이 필요했다. 통신사뿐만 아니라 응접준비를 위해 오는 관리나 통신사의 수행단인 후쿠오카 번사·대마도번사의 접대도 부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들은 『官人來朝覺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관리(役人)들의 이름과 동향(動向), 통신사의 동향을 비롯하여 객사의 크기, 증답품 목록, 지출 비용 등 다방면에 걸쳐있다.

표상형식 간 융합교육을 통한 다중 리터러시의 신장

서명희 ( Seo Myeong-h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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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인재를 기르기 위한 융합교육은 주로 교과 간 통합이라는 아이디어에 의해 연구되어 왔다. 교과 간 통합의 경우 각 교과의 교육 내용이 상호 생산적으로 융합되어야 융합교육으로서 의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국어 교과는 도구 교과이기 때문에, 도구로서의 언어의 성격을 부각하는 경우에는 교과의 특성을 충분히 부각시키지 못하고 토론이나 글쓰기 등 교육 방법의 차원에서 결합하는 한계를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이처럼 도구로서의 언어에 주목하고 언어를 중심으로 융합교육을 설계하는 경우, 언어를 도구로 삼아 타 교과의 내용과 결합하는 형태가 아니라 언어가 하나의 표상형식으로서 다른 표상형식과 결합하는 융합교육을 설계하는 것이 대안이 된다. 표상형식 간 융합교육은 다중리터러시를 신장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전인적 발달과 창의성 신장에 크게 기여하며, 언어에 치우쳐 있는 현재의 교과 편성에 대안적이고 미래적인 교육의 내용을 제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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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표는 『제국신문』(1907.5.17.∼1909.2.28.)의 논설란에 나타난 ‘국문’론과 계층성의 관련 및 감성화 전략을 검토하는 데 있다. ‘국문’론은 한글 신문이라는 『제국신문』의 정체성의 문제에서부터 독자층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국문 신문’에 대한 반감과 배제의 작동 방식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국문 신문’을 읽거나 듣는 독자층의 면면을 확인함으로써 『제국신문』의 ‘독법’에 대한 추론이 가능해질 것이다. ‘국문-(국문 신문)-국혼’의 의미망을 형성하면서 ‘국문 신문’의 구독을 강조하는 일련의 논의들은 신문사 측의 재정난을 타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인쇄기술의 발달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동참하기를 요청하는 매체론적 요구였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문’론과 계층성의 연관을 기반으로 『제국신문』에서 ‘우리’라고 지칭될 수 있는 대상들이 어떻게 ‘정치적인 것’을 출현시키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논설’에서 ‘지방 동포’라고 명명된 대상들은 정운복 등 신문사의 일방적인 호명에 의해 구성되었다기보다 ‘기서’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독자와의 상호작용 위에서 가능했다. ‘지방 동포’의 실상을 논의하면서 지배 계층의 수탈 등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논설이 발견되고, ‘이소사’가 직접 신문사에 방문하여 억울함을 호소한 일을 ‘사건화’하여 ‘별보’에 게재하는 것을 통해 『제국신문』이 ‘공담’·‘공론’을 대변하는 기관이라는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향, 귀/천, 노/소, 남/여를 둘러싼 미시적인 차별의 장면을 포착하고, 배제된 대상들의 ‘감수성’을 지면을 통해 가시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풍속 개량’ 논의는 『제국신문』이 다양한 불평등과 차별이 발생하는 현장에 ‘감성론’의 관점에서 개입하는 전략적 실천이었음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적 세계 인식과 동정의 윤리 - 양건식의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

송명진 ( Song Myung-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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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양건식 문학을 대상으로 1910년대 진화론이 작동되는 방식에 대해 고찰했다. 1910년대 진화론은 일상에서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논리였다. 먼저, 진화론은 ‘개인’을 ‘근대적 개인’으로 호명했다. 진화론에 의해 호명된 근대적 개인은 우승열패의 생존경쟁의 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경쟁해야만 했다. 지속되는 경쟁의 피로감과 약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한편, 경쟁에서 이긴 승자가 생존하는 것은 맞지만 그 생존이 곧 승자의 윤리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양건식은 진화론의 어긋난 윤리성에 기초하여 약자에 대한 동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식민지 상황에서 언제나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조선인의 잠재된 약자 의식은 다른 약자를 위한 동정의 윤리를 실천하는 데에 장애가 되었다. 1910년대 개인을 단위로 한 진화론은 곧 일상의 문제였다. 양건식 문학은 국가가 사라진 지점에서, 개인이 일상에서 겪는 경쟁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김동리 소설에 나타난 공간 의미 고찰 - 주요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

이다경 ( Lee Dak-young ) , 김종회 ( Kim Jong-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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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형식 가운데 소설은 작가가 창조해 낸 허구의 세계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세계는 작가와 독자가 경험하는 현실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문학 텍스트의 공간은 회화나 연극, 영화 등과 같이 시각적으로 포착될 수 있는 공간보다 독자의 상상력의 개입이 적극적으로 요구되는 공간이다. 그것은 작가의 의식적 공간, 체험적 공간, 상상적 공간이 언어라는 기호체계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까닭에 독자는 작중인물이 이동하는 공간을 따라서 함께 이동하고, 그들의 행위나 사건을 통해서 공유하는 심리적 공간 역시 확장과 축소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학 공간은 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될 뿐 아니라 세계 인식까지 두루 고찰하게 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처럼 소설과 공간 사이에는 엄밀한 필연성이 작용하고 그렇게 생산된 소설의 공간은 문학적 맥락에서만 그 가치를 담보한다. 특히 작가가 지향하는 의식이나 작품의 특징을 규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 공간이 갖는 특질을 분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은 관점 아래 김동리의 문학세계를 관류하는 의식이 그의 소설 공간에서 어떤 특징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 연구의 목표가 될 것이다. 김동리 소설의 공간 전개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탈속적 세계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신화적 공간으로, 김동리 문학 세계의 대표성을 담보하는 ‘생의 구경적 탐색’이라는 자연과 인간의 일체화, 즉 핍진한 현실 세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제시되는 영원회귀의 탐구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자기동일적 세계 인식의 공간으로, 작중인물이 제기하는 삶의 현상, 즉 인간의 무의식에 침투해 있는 초월적 세계에 대한 탐구의 한 방법으로 인간 본성이 추구하는 이상적 세계를 향한 욕망과 관계된다. 셋째, 생명윤리적 실존의 공간으로, 설화적 무대는 역사라는 사실적 압력이 사라진 상상력으로 응축된 세계를 표상한다. 이렇게 발견되는 인간 내면세계의 탐색은 이미 그것 자체가 공간적 표상이다. 사회적 규범, 물질세계의 공간과 시간이 얽매어 놓은 덫을 빠져나가 다양한 자아의 탐색 과정, 그 자체가 하나의 공간적 투영인 것이기 때문이다. 김동리의 문학세계가 주술적이고 설화적인 세계에 대한 긴밀한 접점을 통해서 현실을 상징화하기도 하며, 때로는 주술적 세계관의 문화사적 내지 신화적 복귀 과정에 초점을 둔 나머지 소멸되는 것에 대한 연민의 미학이 발현되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따라서 죽음과 영원, 시간의 역진과 같은 문제들이 여러 상황에서 제시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김동리가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파악했던 토착적 신앙, 곧 샤머니즘의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의 이면에는 우리 것의 ‘사라짐’ 또는 ‘잊혀짐’이라는 절맥(絶脈)에 대한 의미 부여의 노력이 자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시대의 내면 풍경을 드러내는 문학은 궁극적으로 역사적 통시성과 사회사적 공시성의 교직일 수밖에 없다. 문학 작품이 언어를 매체로 인간 활동과 의식의 다변적 영역을 그려내는 이상 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문학공간에 대한 폭넓은 사유와 다양한 연구방법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 논문은 앞선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는 물론 그 한계까지 포함하여 김동리 연구를 통해 한국 문학의 이해와 확장에 새로운 단초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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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36년 최재서가 일본어로 번역한 이태준의 「櫻は植えたが(원제: 꽃나무는 심어놓고)」와 박화성 「旱鬼(원제: 한귀)」를 원작과 비교해 그 표현의 특징과 최재서의 의도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최재서는 「한귀」 번역본에서 여성인물의 어투를 도시적으로 바꾼 반면 남성인물에게는 사투리를 사용하게 하고, 글을 읽을 줄 아는 농민임을 숨겼다. 최재서는 남성인물을 순박하고 도덕적인 농부로, 여성인물을 지적이지만 가뭄으로 인해 토속신앙에 빠지고 만 아내로 표현했다. 그것은 일본인 독자의 조선인에 대한 멸시감정을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꽃나무는 심어놓고」에서는 주인공이 실향하는 원인인 악덕지주가 일본인임을 복자로 숨기지만 그것은 그 밖의 부분에서 복원이 가능하기도 하다. 최재서는 제국의 탄압과 작가의 사명 사이에서 타협점을 모색했다. 최재서의 「한귀」 번역본에서 등장인물을 주로 일반명사로 서술되며 이는 독자와 등장인물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이 거리는 최재서가 느끼고 있는 일본인과 조선의 거리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국 근대 잡지에 나타난 강원도 표상 연구

이주라 ( Lee Ju-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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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강원도라는 공간에 대한 표상이 형성된 역사적 과정을 정리하고 분석하였다. 강원도의 지역적 특성은 전근대 시대부터 기록되었지만, 근대로 전환되는 시기에 근대적 지식 체계에 의해 재편되었다. 그간 강원도 표상에 대한 연구는 조선 시대의 기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거나, 근대 시기를 연구하더라도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 논문은 근대라는 시기에, 잡지라는 매체를 통해 유통된 사회·정치 담론을 분석하며, 한국 근대 강원도 표상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 논문에서 대상으로 삼은 잡지는, 『소년』, 『청춘』, 『개벽』, 『별건곤』, 『동광』, 『삼천리』, 『조광』이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강원도 표상은 근대 지리학의 체계를 통해 재편되었다. 근대 지리학은 표면적으로는 객관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문명의 위계질서라는 가치 평가의 기준을 작동시켰다. 1920년대 초반 강원도는 근대적 문명과 산업의 발전 정도가 낮기 때문에 낙후된 지역으로 그려졌다. 1920년대 후반에도 산골이라는 강원도의 표상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표상에 대한 가치 평가는 달라졌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과거의 풍속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강원도는 근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휴식과 향수의 공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질적이고 기괴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1930년대 후반 전시체제기의 국가 주도 담론의 영향 아래에서 강원도는 산업기지로 발전할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정치·사회 담론에 나타난 산업기지로서의 강원도 표상은 문학 담론에 나타난 궁핍한 강원도 표상과 대립하며 충돌하였다. 한국 근대의 강원도 표상은 전근대 시대 만들어진 강원도 표상을 계승하면서도 근대적 패러다임에 맞춰 변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또한 정치·사회적 담론과 문학 담론의 끊임없는 길항 작용을 통해서 다층적 면모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다층성을 지닌 강원도 표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재 강원도 표상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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