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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발표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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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ISSN :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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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범위 : 2018권 1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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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20세기 초의 ‘동아시아 번역장(飜譯場)’을 통해 한국에 ‘중역(重譯)’된 텍스트를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 가운데 텍스트의 ‘외적 조건’이 의미하는 바를 밝히는 데 있다. 종래의 이 시기 번역 연구는 텍스트와 텍스트의 비교 자체에 방점이 있었으며, 관찰되는 차이는 주로 번역자의 자의적 판단이나 번역 공간의 정치적 사정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귀결되어왔다. 하지만 출판물의 번역과 유통은 일정한 물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바, 번역의 경로와 번역 매체라는 조건 역시 이 모든 과정에 내재해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인 번역자가 일본어 텍스트를 저본으로 삼는 경우와 중국어 텍스트를 저본으로 삼는 경우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가, 그리고 번역 후 단행본 출판이 예정된 형태와 정기간행물에 연재하는 형태 등 지면의 차이는 어떠한 변수로 작용하는가 등이 이 연구의 주요 논점이다. 이상의 문제의식 하에, 이 글을 특히 근대전환기의 동아시아 3국이 공통적으로 적극 수용했던 서구영웅전에 한정하여 논의를 전개 하였다. 동아시아 번역장에서 텍스트가 한국에 이르는 번역 경로는 대개 <서양→일본어→중국어→한국어>와 <서양→일본어→한국어>의 두 가지였다. 이중 첫 번째 경로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첫째, 텍스트 선택의 폭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지만 그만큼 작업의 효율성은 상승한다. 둘째, 원본과의 내적 간극은 보다 커지고 한국인 번역자의 개입은 보다 축소된다. 두 번째 경로의 경우 이러한 특징을 역으로 적용할 수 있다. 서양에 접속하기 위해 중국어 텍스트를 번역한다는 것은 비단 서양어 내지 일본어라는 역로(譯路)상의 우선순위를 가동할 수 없는 제약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만을 함의하는 게 아니다. 동시에 그것은. 유사한 문제의식이 팽배했던 이언어(異言語)의 공간에서 이미 검증되고 가공된 텍스트를 손쉽게 활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던 것이다. 지식의 유통 및 담론의 형성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것이 당시 번역의 지향이었을진대, 이러한 견지에서라면 오히려 중국어 텍스트야말로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일부는 좀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하더라도 일본(어) 단계에서 직수입한 지식을 선호했을 것이다. 다만 이 경로는 국가적 위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 메시지’를 원할 경우 직접 전폭적인 가공 작업을 감수해야만 했고, 독자층의 일반교양을 위한 ‘객관적 지식 수용’을 원할 경우에도 최적의 대상을 탐색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한편 같은 텍스트라도 ‘어떠한 지면’에 번역하는가에 따라 번역자의 텍스트 선정과 개입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었다. 단행본은 완결성과 안정성 측면에 장점이 있었다. 이는 곧 저본과의 간극이 크지 않을 가능성을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잡지의 경우 번역자의 유연한 대처와 적극적 개입 면에서 장점이 있었다. 물론 이 경우 저본과의 간극은 커질 공산이 컸다. 아울러 당시의 여러 서구영웅전 중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것과 각종 잡지에 연재된 것을 전반적으로 비교 검토해본 결과, 단행본의 경우는 중국어 서적을 저본으로 삼은 텍스트가 주류였고, 잡지 연재본의 경우는 일본어 서적이 단연 주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단행본 간행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던 국내 언론계에 핵심 지식인층이 한문 소양을 장착하고 있었던 점(중국어 저본), 그리고 잡지의 간행이 보다 용이하던 진영은 대개가 일본에서 유학하던 신진 엘리트들이었던 점(일본어 저몬)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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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年舊曆の4月に行われたウサは朝鮮王朝のジュンサ(中祀)に屬する國の祭祀である。朝鮮王朝のウサと‘ウサ樂章’に登場する‘ダマン(勾芒).チュクユン(祝融)·ヨクス(□收)·ヒョンミョン(玄冥)’は、それぞれ四季を管掌していた神?であり、フト(后土)は土地 を、フジッタは穀物をそれぞれ管掌していた中國出身の神?である。これらの六人の神?は、熟した中世の雰圍氣の中、朝鮮王朝で‘自我化’に成功した存在である。自然の本質を循環と視点で考える点や王が季節に適わない政事を進める場合は、その時期の生長すベ き農作物に支障がでて、最終的には災いや戰爭につながると信じていた点などは、<<イエ ギ(禮記)>>の「ウォルリョン(月令)」に反映された基本意識であり、そのような意識は、6位の相公の務めを介して生態的主題意識として‘ウサ樂章’に反映された。彼らが見る治者の德目は、自然循環の原理や宇宙の秩序など、そして、人間の生活を正確に調和.一致さ せることにあった。人間の生活と宇宙や自然循環の一致は平凡な民の自發的努力や物的自 然の推進力ではなく、神の命令を受けた王が主管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見た。その原理や 力こそがイデオロギ一的普遍主義によって支配される ’中世性’であり、そこで行われる自然と人間の調和がまさに ‘中世的生態主義’であった。イデオロギ一の根源である最高の神格[サンゼ(上帝)]、サンゼの意思に基づいて生態的行動規範を主管していた6人の相 公たち、サンゼの代理者としての王などが位階を形成した中で‘人間と自然の調和’を成 し遂げすることで、民に豊かさを享受させることが、東アジアにおける中世王朝の理想で あった。中國の天子國は天に雨乞いと豊かさを祈り、諸侯國は相公に雨乞いと豊かさを 祈った。韓國は古くから天に雨乞いをして來た。しかし、朝鮮王朝建國後に儒敎を統治の イデオロギ一として採用するようになってからは祭祈の名分に對する論議が提起された。 中國の天子國と同レベルの對象に雨乞いと豊かさを祈るわけにはいかないという事が、當 時の支配層の考えだった。それは、當時の政治ㅡ外交の名分上、物議をかもしてしまう可能 性があったからだ。多くの議論の末、最終的には人鬼となった6人の相公を祭祈の對象に定 め、それに伴う諸般のプロセスも高麗王朝までのものとは異なるものとなっていた。季節 の循環という生態秩序に順應し、‘天子國:諸侯國’という中世の政治ㅡ外交的名分、それ に合ったウサの制度を設け、樂章もまたそれに相應しく制定された。いわば自然生態調和 と中世の政治ㅡ外交名分という社會生態の調和を成す二っの方向が同時に包括された儀式が ウサであり、その方向を言語で具體化させたものがウサ樂章だったのだ。人間が讀みとった宇宙.自然の秩序をモデルにして中世的生態主義のパラダイムを作り、そ のパラダイムを根幹にして作られた「月令」は、中世生態主義の實踐綱領であり、テキス 卜であった。ウサ樂章は「月令」を基礎テキストとし、樣?な儒敎經典の一部を借用して作 成されたテキストであり、基礎テキストとの關係から相互テキスト性を有するもう一つの 派生テキストである。イデオロギㅡ的想像による體系と經驗的分析による體系が結合されることで、新しい論理體系が作られており、それに人間の生活が組み合わせられることで 倫理と生態思考の合目的性が介入された。このような過程から「月令」が作られ、その核心 を絞りだして、新たに作成したテキストがウサ樂章である。强固な中世の雰圍氣に後押しされ、中國の歷代人物6人を神と して祈ることができ、朝鮮王朝で相當の間、祈雨と祈豊の生態的權力を行使するように なった。このように政治.外交的考慮の下で、東アジアにおける祭儀の標準や普遍性を確保 しようとしていた‘集團的欲望’と‘人間と自然の連携性’という根本的な生態主義が ウ サ樂章において中世的生態學を形成した二つの重要な軸であったことが確認でき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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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근래 초유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북한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즈음, 그들을 이해하는 한 방식이 바로 그들의 사상을 대변하는 문학 살피기가 아닌가 싶어 주체사상 관점에서 보는 북한문학에서의 항일혁명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연극문학에 대해 살펴보았다. ‘주체’라는 용어는 1950 년대에 등장하여 1967 년을 기점으로 체계화가 이루어지며 1970 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역사와 문화를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체사상은 천리마운동속에서 용솟음쳐 나온 영웅을 부각하는 과정에 유일사상으로 일관되어 왔다. 김일성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학을 벗어나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울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는데 이르렀고 1967년 6월 28일 4.15 문학창작단이 결성되면서 항일혁명 문학의 집체창작시기에 이른다. 결과 1970 년대에 이르러 북한의 5대연국이 탄생한다. 이러한 주체사상은 다시 주체문예이론이 되어 문학창작의 이론근거가 되었는데 그 창작의 의거는 주로 수령의 형상을 부각하는 것이있고 이러한 작업은 4.15 문학창작단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이들에 의해 5대가극과 ‘불명의 총서’가 탄생하였다. 항일혁명문학은 시기별로 보통 1926. 10~1931. 12/ 1931. 12~1945.8/1945, 8.15-1960년대/1970년대 ?오늘까지로 네개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시기에 창작된 연극작품으로는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쏘다」(1927), 「만국회에서 피를 뿜다」, 「성황당」, 「3인1당」 등으로 항일혁명연극의 시원을 열어놓았다. 두번째 단계의 대표 연국은 <피바다>이다. 이 연극은 깊은 감동을 낳았고 영화 <피바다>, 가요 <피바다> 등 기타 예술형식으로도 재창작되었다. 그외에도 <피바다>와 맞먹는 연국작품에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혁명가의 아내 수동이어머니』, 『혁명가의 아내』 등이 있다. 이외에도 주체적인 항일무장투쟁 노선의 관철을 위한 투쟁을 반영한 혁명연극 『아버지는 이겼다』가 있다. 이상으로 북한 주체사상의 관점에서 북한 항일혁명 연국문학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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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이하 통신사)는 게이초(慶長)12년~분카(文化)8년(1609-1811)까지 12회 파견되었다. 당초에는 ‘회답 겸 쇄환사’였으며, 국서(國書) 응답과 포로 반환을 의미하는 사절 파견이 었지만, 나중에 「通(요시미)을 통한다」 라는 의미의 ‘通信使’가 되었다. 그동안 통신사에 관한 연구는 일조(日朝) 관계 또는 대외관 형성, 바쿠한(幕?) 관계 등 각 방면에서의 축적이 있다. 통신사가 기숙한 각 지역에서는 응접에 관한 자료도 많이 있다. 본고에서는 통신사가 규슈(九州)의 유일한 기항지(寄港地)였던 후쿠오카 번(神岡?)의 상황에 대해 사료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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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최초로 한글로 활자화 된 아동극의 대본은 『어린이』 창간호(1923년 3월20일)에 소개된 「동화국 노래주머니」이다. 한국의 아동문학, 아동문화의 본격적인 출발은 천도교 소년회를 주도하던 방정환이 중심이 되어 1923년에 설립된 색동회의 활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창간되기 무려 10여 년 전부터 경성일보사가 주최한 구연동화회가 빈번하게 열리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이와야 사자나미(巖谷小波)나 구루시마 다케히코(久留島武?)와 같은 아동문학가들이 초빙되어 조선 각지를 순회하며 구연동화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또한 1916년부터 경성일보에는 어린이를 위한 칼럼이 만들어져서 동화가 연재되었다. 한국 아동문학, 아동문화의 성립 배경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의 활동에 관한 연구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 행해진 일본인들에 의한 아동문학이나 아동문화에 관한 선행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오타케 기요미(大竹聖美, 2002)에 의해 몇몇 아동문학가들의 조선 방문이 소개된 후, 김성연(金成?, 2008)에 의해 일본인들의 조선 구연동화 활동 연표가 작성되는 등 구연동화 활동의 전체적인 흐름은 밝혀 졌지만, 구연동화 이외의 아동문화 활동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찾아 불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구연동화에 초점을 맞춰서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행해진 일본인 문학가들의 활동에 대해 연구해 왔지만, 최근 경성일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본 최초의 여자맘술사인 쇼쿄쿠사이 덴카쓰(松旭?天勝)가 경성에서 아동연극공연을 한 자료를 발견하였다. 1901년부터 5년간 미국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일본에 돌아와 최초로 미국식마술 쇼를 상연하여 큰 인기를 끈 덴카쓰는 메이지 시대의 국민적인 마돈나였다. 1915년 9월부터 51일간 경복궁에서는 일본의 조선 통치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조선 물산 공진회가 개최되었는데 같은 기간 경성일보사는 가정박람회를 열어 관객몰이에 주력했다. 덴카쓰의 공연도, 가정박람회에 보다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경성일보사가 기획한 것이었다. 연일 무대 공연뿐만 아니라 유니크한 이벤트에 덴카쓰를 등장시켜 끊임없이 화제몰이를 하였다. 10월 10일부터 19일까지 예정됐던 덴카쓰의 공연은 매일 관객들로 가득 찼고 인기에 힘업어 매번 연장되더니 결국 11월 6일까지 공연을 했다. 순종의 만찬회에도 불려가 공연을 하고 많은 하사품을 받기까지 했다.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마술사 덴카쓰가 경성에서의 마지막 공연에 올린 작품이 이와야 사자나미 원작의 아동연극이었다. 본고에서는 구연동화와 아동연극으로 대표되는 근대 일본 아동문화의 흐름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만나지는 덴카쓰의 조선 공연의 전체 내용을 소개하는 동시에 이 자료를 앞으로의 연구의 초석으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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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の東アジアの言說が本格的に行われたのは1990年代の初めからだ。それから、今まて'、に約 30年に近い時間が經過した現在、韓國と中國、そして日本の硏究者の相互の知的交流は活發に 行われている。しかし、知的談話の交流が私たちの日常と考え方を變化させる程度の實質的なレ ベルに達したかを質問試みるとき、その指摘交涉の速度は非常に遲く進行しているように見え る。次に、今新たな段階の東アジアの知的交流で要求されるのは、歷史的經驗をより積極的に共 有することて' 新しい(歷史的-政治的)主體の可能性を模索するとともに、知識の革新を高揚 していく問題である。東アジアの談話の歷史的な行方は知らず知らずに、すでに私たちの日常に 浸透しているからである。そのような点て' もはや固着的な歷史論爭で導出された國のイデオロ ギ一から拔け出し、日常生活レベルで動作するオブジェクトとイデオロギ一の相互作用がより重 要になった時点が到來したと言えるだろう。ここで境界線上に獲得されるジレンマの空間と、そ の存在論的體驗の領域がもたらす困難を打開していくことが何よりも重要であることを言う必要 もない。ここで槪略的に見て見ることになる長崎は、東アジア近代の經驗がそれぞれの時代を生 きていっ主體の日常や生活の樣式がどのように密接に關連していたのかをよく示す事例に該當す る。 1995年に韓國で開催された國際學術大會に參加した中國社會科學院の孫歌は、日中韓各國の 學者たちが自國の歷史的經驗を强調する一方的な知識の交流の場を經驗しては、そのユミュニ ケ一シ3ンは不可能と指摘狀況に衝擊を受けたと告白している。そんな告白があったから2年後 の孫歌は溝口雄三のような、日本の中國の硏究者たちと一緖に「日中知の共同體」プロジェクトを 結成した。東アジアの知識場の力學を考えるとき孫歌の告白とその後の活動は、東アジアの言說 が現實的で實效的な層の上に惱んでなければならない問題点であるという事實を示している。思 想の構築とは現實との樂觀的な合一もなく、また現實を度外視してもならない。むしろ思想は、 限られたバランスと繁張の中だけで存立することができ、それはすぐに境界線のジレンマを打開 することにより、絶えず疎通する現代知性の責任意識を强調する。丸山眞男がフィクシ3ンを實 體化してしまうの「內部1中心部〉」にとらわれるな人間は自由でないため、內部と外部の境界の ジレンマに立ったときにのみ、現代知性は存立でき、またその時こそ「榮光の現代の課題」を實行 することができると力說したのは、まさにそのためである。內部(中心部)の固着された視線 は、目に見えない論理を越えるためには、その固着性を意識しながら、絶えず外部と疎通してい く道だけだ。 「知識とは否定するために追求しなければならない」は、竹內好の言葉を吟味すれば、今までの存立してきた中心の知識を否定していく主體はあくまでも新しい主體の形成を經な ければならする困難さを甘受していくしか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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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인협회 활동 연구

김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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