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한문학논집검색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hines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31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5권 0호 (2016)

『흠영(欽英)』에 수록된 의료 소재 야담에 관한 연구

김하라 ( Kim Ha-ra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5권 0호, 2016 pp. 9-35 ( 총 27 pages)
6,700
초록보기
兪晩柱는 의원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 야담을 즐기는 취향, 의료 수요자로서의 절실함 등 여러 견지에서 의원과 의료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을 듣고 자신의 일기에 기록했다. 그 결과로 창작된 유만주의 의료소재 야담은, 실존인물인 의원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슷한 시기에 많이 보이는 의원전과 다르고, 신이한 흥미요소에만 이끌리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도사와 같은 용한 의원이 주인공인 일반적인 야담과도 성격을 달리한다. 그의 의료소재 야담 중 가장 비범한 성과를 꼽는다면 경상도 풍기의 名醫 任泰?에 대한 기록을 들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 임태후는 어떤 국면에서도 적절한 처방을 내놓을 수 있고 환자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유능하고 친절한 의원으로 그려진다. 또한 이 의원이 내렸다고 제시된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처방 내용은 실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의학 지식을 수렴한바, 유만주가 그려낸 명의의 형상에 리얼리티를 부여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구실을 하고 있다. 임태후 이야기를 포함한 유만주의 의료소재 야담은 18세기 조선의 사대부 계층에서 필요로 했던 의원의 면모를 현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며, 『흠영』에 산재한 여타 의료 관련 기록과 마찬가지로 조선후기 의료사의 자료로서 가치를 갖는다.

우역(牛疫)에 대한 지식인의 인식과 고뇌양상 -한시와 제문을 중심으로-

황만기 ( Hwang Man-ki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5권 0호, 2016 pp. 37-58 ( 총 22 pages)
6,200
초록보기
이 논문은 우역 발생시에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무엇을 고민했고 어떤 식으로 대처하였으며 어떻게 극복해갔는지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이전인 1636년 5월부터 우역이 시작되어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이듬해인 1637년에는 우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종자 개체수까지 사라질 정도로 그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농업경영에 있어서 소의 부재는 일의 능률 저하, 수확 감소 등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인간생활의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는 인간생활의 질적 저하는 물론 국가적인 큰 재앙이었다. 이때 안동의 선비 愚川 鄭?은 우역의 심각성을 한시를 통해 고발하였고, 眉? 許穆 역시 제문을 통해 우역의 심각성을 드러내었다. 비록 시기는 다르지만 18세기 봉화의 선비 立齋 姜再恒과 20세기 全南 谷城 長善里 출신인 韓圭桓도 제문을 통해 우역의 피해와 지식인으로서의 적극성을 보여주었다. 본고는 牛疫을 한문학과 접목한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나름 의의가 있다고 판단되며, 향후 의학 분야와의 교신연구가 폭넓게 진행되었으면 한다.

거듭나기 과정으로서의 질병 -한국한문학이 포착한 질병의 한 특징-

이홍식 ( Lee Hong-shik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5권 0호, 2016 pp. 59-87 ( 총 29 pages)
6,900
초록보기
그동안 한국한문학 분야에서 진행해 온 질병 관련 연구는 주로 개별 작가의 질병에 대한 인식을 추적하거나 질병의 문학적 형상화 방식을 탐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 문학이 질병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해 왔는지, 우리 문학은 왜 그토록 집요하게 질병을 노래하고 사유해 왔는지, 우리 문학에서 질병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개별 작가의 질병 기록에만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질병 기록을 종합하되, ‘질병에 걸리고, 고뇌하고, 치유하고,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는` 일련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질병의 문학이 탄생하는 지점과 여기에서 분화되는 질병의 의미 등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질병 관련 작품을 남긴 많은 작가들이 질병을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해 왔을 뿐 아니라 각각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문학이 탄생하고 질병의 의미도 분화되었던 까닭에, 우리 문학이 집요하게 질병을 사유하고 노래한 이유를 이 지점에서 엿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한문학에서는 질병 그 자체보다는 질병에 수반되는 고통과 그것으로 인해 야기된 병든 주체의 정서와 삶의 변화 등에 보다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고, 때로는 이 질병을 당대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의 맥락 위에 배치하여 당대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의 문제를 읽어내는 매개로 활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치병 후 질적으로 변화된 병든 주체의 모습을 그려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보다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질병을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한 결과이자 우리 문학이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 질병이나 질병이 만들어낸 고통 자체가 아니라 질병과 관계를 맺은 인간과 그 인간이 질병과 관계를 맺는 양상에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 문학에서 질병이 차지하는 의미 가운데 간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질병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주체의 거듭남을 매개하고, 각각의 과정마다 새로운 문학의 탄생을 자극한다는 데 있다고 본다. 우리 문학이 질병을 지속적으로 노래하고 사유한 이유 또한 여기에서 찾을 수 있고, 질병이 소재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오랫동안 문학과 관계를 맺어 온 증거 또한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7,400
초록보기
개인이 스스로를 돌보는 효과적인 방법, 자신의 과거와 내면을 성찰함으로써, 즉 돌아 봄으로써 구축할 수 있었던 이상적인 좌표 등을 살펴보는 것이 본고의 주요 테마이다. 이러한 목표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선택한 대상은 沈魯崇이 남긴 病의 서사인데, 서사가 지닌 구체성과 일상성, 내밀한 것에서부터 枚擧通觀하며 철저히 반성하는 양상 등이 심노숭의 병 관련 서사를 선택한 주요 근거이다. 그 고찰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돌보기`의 측면에서는 아래에 보이는 양상과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 攝生의 측면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꼼꼼히 관찰했기 때문에, 그가 남긴 병의 서사는 언제나 상세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두 편의 病錄을 비롯한 다양한 병의 서사를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에 관련된 사소한 이상 징후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 세밀함을 분명하게 살필 수 있었다. 둘째, 단편적이거나 쇄말적인 일상성에 그치지 않고, 警戒의 원칙을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 자신의 병을 돌보았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결국 구체에서 보편으로 진행되는 그의 관찰과 글쓰기는 스스로를 돌보는 모범적인 양상을 보여주었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방기하지 않고 자신의 통제 아래에 넣음으로써 삶의 주체가 되려고 했다는 점이 ‘돌보기`로서의 병의 서사가 지닌 의미이다. 다음으로, ‘돌아보기`의 측면에서 심노숭이 남긴 병의 서사를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양상과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 자신의 과거와 내면을 성찰하고 참회함으로써 이전과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서술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면모는 조선중기 이전까지 거의 보이지 않던 양상으로서 병의 서사는 물론, 자기 서사라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둘째, 자신이 실천했던 성찰과 반성을 구체적이면서도 개성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도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글쓰기를 통해 모호한 사유를 명징하게 형상화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인물 서사나 記事類 산문의 특징적인 흐름 속에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개성적 자아를 표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과 의미 등은 심노숭이 남긴 병의 서사뿐만 아니라 자기 서사로까지 범위를 확대했을 경우에도 여전히 작지 않은 가치를 갖는다. 다만 조선 후기라는 환경 속에서 그가 지니고 있었던 경제 인식이나 사상적 지향에 대한 고찰이 더해진다면, 심노숭이 지니고 있었던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의식을 조금 더 입체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초록보기
본고는 15세기 전기 태종조 조야 제현의 야은 찬영시 및 15세기 후기에서 17세기 전기 사이 야은 유적지 방문 사림들의 야은 찬영시에 대한 검토에 이어, 국왕의 입장에서 야은의 충절이 크게 추숭되었던 17세기 말엽 이후의 야은 찬영시의 양상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국왕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야은 찬영시 창작은 18세기 초기 숙종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을 밝히면서, 먼저 숙종 어제 야은 찬영시의 존재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어 숙종 어제시에 대한 당대 신하들의 갱진시 및 후대에 산출된 차운시의 양상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야은의 절의가, 야은 생전의 양촌의 기록 및 야은 사후 국가적 추숭의 결과물인 『삼강행실도』의 내용에서는 주로 백이·숙제와 같은 불사이군의 충절의 측면에서 강조되어 왔는데, 숙종의 어제시에서는 공명에 아무런 욕심이 없는 엄광과도 같은 은사의 청아한 풍도의 측면에서 강조되고 있다. 국왕의 입장에서 야은의 청아한 은사로서의 절의를 새롭게 부각시켜 칭송함으로써, 벼슬에서 밀려나 은거하고 있거나 은거할게 될지도 모르는 당대 사대부들의 삶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적극 부여해줌으로써 그들의 충성심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숙종의 어제시에 대해 명곡과 동강은 갱진시를 통해서 자신들을 비롯한 당대 및 후대의 모든 사대부들이 태종·세종·숙종 등의 임금이 야은의 은사로서의 맑은 절의를 포상해준 사실을 듣고서 은사로서의 절의를 절로 흥기하게 될 것이라고 화답하고 있다. 후대에는 순조와 역천, 사미헌과 한주가 숙종 어제시에 차운시로 화답하였다. 숙종·순조, 명곡·동강은 야은의 은사로서의 측면에 주목하고 있는데, 역천·사미헌·한주는 야은의 백이·숙제에 비견되는 불사이군의 충신으로서의 측면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숙종·순조, 명곡·동강은 국왕 또는 조정의 관료이지만, 역천·사미헌·한주는 재야의 학자라는 점이 이러한 차이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이 된다.

만운(晩雲) 정충신(鄭忠信)의 『백사선생북천일록(白沙先生北遷日錄)』 연구(硏究)

이성형 ( Lee Soung-hyung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5권 0호, 2016 pp. 157-192 ( 총 36 pages)
7,600
초록보기
『白沙先生北遷日錄』은 晩雲 鄭忠信(1576~1636)이 廢母論에 반대해서 北靑으로 유배된 白沙 李恒福(1556~1618)을 배행하면서 白沙의 언행과 일화를 기록한 유배일기이다. 『북천일록』은 ‘서문·일기·정사수의수초·발문`으로 구성되어 독립된 서책의 형식을 갖추고 간행되었다. 일기에는 선별된 白沙의 한시가 수록되어 있고, 본문의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서 주석이 보강되어 있다. 『북천일록』의 내용으로 먼저 ‘憂國衷情과 量時處己`에 대한 내용은 당시 시대변화의 大槪를 설명하고, 이에 대처하는 白沙의 신념과 충의를 통해서 후인들에게 바람직한 ‘量時處己`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두 번째로 ‘配所生活과 生別의 苦惱`에 대한 내용은 풍요로워 보이는 일상 이면의 고뇌와 가족들과의 生別에 대한 苦惱를 담고 있다. 세 번째로 ‘行路難과 治喪過程의 感慨`에 대한 내용은 불순한 일기와 험한 노정을 통해서 격었던 行路難과 白沙의 치상과정에서 보여준 수많은 인사들의 애도를 담고 있다. 『북천일록』은 객관적인 서술에 머물면서 문학성이 부족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간행 직후부터 많은 문인들에게 愛讀되었고, 특히 白沙의 忠義에 깊은 감동을 표명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북천일록』은 ‘忠臣言行錄`의 성격이 농후한 유배일기로 판단된다.
7,400
초록보기
본고는 교육과정에 기술된 술목 관계의 문제점을 ‘有/無` 서술어 중심으로 살펴보고, 교육과정 상의 술목 관계 설정과 그간 논란이 되었던 예시문 들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타동성(Transitivity)을 바탕으로 검토하였다. 문장성분으로서 목적어를 구분할 때 타동성과 논항의 의미역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어는 타동성이 있는 서술어의 지배(government)를 받을 때 그 타당성을 높게 인정받을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목적어 범위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타동성(Transitivity)은 비대칭적 관계의 두 참여항과 관련된 것으로, 서술어가 나타내는 행위나 상태의 영향이 한 참여항으로부터 다른 참여항으로 옮겨지는(transferred) 통사 의미적 관계를 뜻한다. 이러한 타동성을 검증하는 방법으로 대표적인 것이 Hopper & Thompson(1980)의 타동성 분석인데, 이를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한문의 타동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 참여항(Participants), 동작성(Kinesis), 행위자성(Agency), O의 피영향성(O-affectedness)의 4가지 자질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所有의 ‘有/無` 서술어를 분석했을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행위자성(Agency) 측면에서 所有의 ‘有/無` 서술어 앞에 위치한 유정명사구는 대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둘째 동작성(Kinesis) 측면에서 所有의 ‘有/無` 서술어는 ‘所有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所有의 상태`를 나타낸다. 셋째 O의 피영향성(O-affectedness) 측면에서 所有의 ‘有/無` 서술어 뒤에 이어지는 명사성 성분은 ‘행위자의 영향력`이 미치는 대상이 아니라 주어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서의 대상이다. 결론적으로‘有/無`서술어는 목적어를 필요로하는 타동성을 지닌 일반적인 서술어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교육과정 상의 서술어와 그 뒤에 이어지는 성분의 의미 관계를 타동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所有의 ‘有/無`를 삭제할 것을 제안한다. 아울러 所有의 ‘有/無`서술어는 교육과정상 술보관계의 개념에 부합하므로 따로 기술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밝힌다. 교육과정의 학교 문법은 교수 학습 내용 구성에 있어 중요한 토대가 된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는 부분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교육과정 상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만구와(晩求窩) 김진구(金鎭龜)의 제주유배문학 소고

김새미오 ( Kim Saemio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5권 0호, 2016 pp. 227-252 ( 총 26 pages)
6,600
초록보기
본고는 晩求窩 金鎭龜의 삶과 제주유배문학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노론계 인물이었던 만구와는 당쟁이 격렬했던 숙종 대에 남인들을 가혹하게 숙청했다는 죄목으로 제주도 유배형을 받았다. 이 시기 만구와는 제주도로, 동생인 김진규와 김진서는 각각 거제도와 진도로, 그리고 삼촌인 김만중은 남해도로 유배를 떠났다. 만구와의 문집인 『晩求窩府君遺文』은 충남대 도서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제주도 유배시문인 『島竄日錄』에 집중하여, 시간에 따른 작가 의식의 변화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정리하였다. 유배형을 받고 표현된 만구와의 첫 감정은 가족·지인들과의 이별과 불안감이었다. 만구와는 가족들에게는 미안함, 지인들에게는 비교적 호기로운 모습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속적인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주도에 온 후 만구와는 철저히 고립되었고, 내면에 깊은 고독감이 자리한다. 이는 제주로 내려오면서 느꼈던 이별과는 그 층위가 다른 것이었다. 이별이란 적어도 상대가 있는 반면, 고독은 홀로 견뎌야만 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의 고독감은 어머니의 생일, 삼촌 김만중의 죽음과 같은 가족간 대소사가 있을 때 그 파장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 하지만 만구와가 유배지에서 그대로 좌절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유배상황을 직시하고, 자신에 대해 비판적으로 자각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제주선비와의 교유와 교육, 제주 민중에 대한 애정어린 시각 등은 모두 외부 사람들과의 교유에서 비롯하였다. 이렇게 외부와 교유할 수 있었던 바탕에 바로 자신에 대한 자각이 자리한다. 이런 의식의 변화는 형벌로 인해 침체되었던 감정이 자신에 대한 자각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힘이 되었다.

이옥(李鈺)의 「각로선생전(却老先生傳)」: 노쇠한 신체의 발견과 자기 서사

안세현 ( Ahn Se-hyun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5권 0호, 2016 pp. 253-276 ( 총 24 pages)
6,400
초록보기
본고는 李鈺(1760~1815)의 「却老先生傳」을 老化와 自傳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한 것이다. 「각로선생전」은 족집게를 각로선생으로 의인화하고, 혹자와 나와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은 假傳의 형식을 가탁한 일종의 自傳으로, 50세에 접어든 이옥이 노쇠한 신체를 발견하고 자신의 처지를 우의한 작품이다. 「각로선생전」의 특징적 면모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문체적 파격성이다. 假傳이든 自傳이든 ‘가계-행적-평결`이라는 傳의 서술방식을 준용하는데 반해, 「각로선생전」은 각로선생을 두고 혹자와 나와의 가설적 논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도연명의 「오류선생전」 이래 대개의 자전이 작자 자신을 가탁한 제3의 인물을 제시하고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삶을 자부심 있게 그려내는 데에 반해, 「각로선생전」에서 이옥은 자신의 신체적 노화에 놀라고 지나 온 삶을 안타까워하며 여전히 삶의 지향을 찾지 못하는 ‘불안한 자기`를 내보였다. 「각로선생전」의 문체적 파격성은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둘째, 노화에 대한 인식에 있어 신체적 변화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이를 極微하게 묘사한 점이다. 이옥 문학이 지닌 특징 중에 하나가 사물을 미시적으로 관찰하고 이를 섬세한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다. 「각로선생전」에도 이러한 특징이 그대로 나타났는데, 특히 새까만 터럭이 백옥처럼 하얗게 새는 과정이나 몸에 있는 터럭이 새는 순서에 대한 묘사는 극치를 보여준다. 이옥에게 신체의 노쇠함은 추상적으로 인식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셋째, 노화에 대처하는 태도이다. 이가 빠지고 머리가 새는 등의 노화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후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노화에 놀라고 이를 지연시키고자 노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화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노년의 삶을 차분하게 준비한다. 그러나 이옥은 지나 온 삶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노년의 삶의 지향점을 찾지도 못하고 머뭇거릴 뿐이다. 이런 점에서 「각로선생전」은 오십 줄에 접어든 이옥 자신의 삶을 가탁한 자전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7,800
초록보기
先學들뿐만 아니라 현재의 한문학계 또한 소학(한어문자학)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듯하다. 한어문자학 소홀은 문장해석에 여러 가지 폐단을 낳고 있다. 특정 한자에 대한 습관적인 의항 적용도 그 중 하나이다. 예컨대 豈는 ‘어찌` 然은 ‘그러나` 獨은 ‘홀로` 亦, 又, 且는 ‘또` 등이 그것이다. 成百曉 선생의 『譯註 孟子集註』 또한 然, 豈, 獨을 문맥과 상관없이 ‘그러나, 어찌, 홀로`로 적용한 곳이 있다. 『孟子』 公孫丑 下 “且比化者 無使土親膚 於人心 獨無?乎”의 獨을 선생은 ‘홀로`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이곳의 ‘獨`은 ‘豈`의 용법으로, ‘獨無?乎`는 ‘어찌 사람의 마음에 만족하지 않겠는가?` 정도이면 문의에 부합될것이다. 『懸吐完譯 孟子集註』의 해석은 단어나 어휘를 그대로 노출시킨 곳도, 설명이 미진한 곳도 보인다. 市朝, 辭命, 昌言 등은 단어를 그대로 노출시킨 경우인데, 市朝는 시장(저자), 辭命은 辭令으로 ‘응대하는 말,` 昌言은 善言으로 ‘정당한 말`이란 뜻이다. 선생은 昌言의 ‘昌`을, 善言을 염두에 두고 ‘착하게 말하다.`라 하였는데, 자전에 이런 의항은 없다. 『孟子』 公孫丑 上 “市 廛而不征”의 廛을 ‘자릿세`로 해석 하였으나, 廛은 ‘시장의 집`을 가리킨다. 같은 곳 “廛 無夫里之布”의 布도 ‘베`로 해석하였으나 布는 ‘泉(錢)`을 나타낸다. 역시 같은 곳 주석 『周禮·載師』의 ‘宅不毛者`의 ‘不毛`를 ‘집이 불모인 자`라 해석하고, ‘毛`를 ‘풀이 없을 모`라고 했는데 ‘不毛`는 ‘삼과 마를 심지 않음`이고, 毛는 苗의 가차로‘심다`란 뜻으로 쓰였다. ‘毛`에 ‘풀이 없다.`란 의항은 있지 않을뿐더러 ‘毛`를 ‘풀이 없다`로 해석하면 不毛는 ‘삼과 뽕나무를 심다.`가 되어 文意와 완전 반대가 된다. 『孟子』 公孫丑 下의 주석 “豈不快然無所恨乎”를 “어찌 쾌하여 恨되는 바가 없지 않겠는가.”로 해석하였는데, 이곳 豈는 추측을 나타내는 ‘其`의 용법으로 “‘(그 자식 된 마음이)편안하고, 후회됨은 없지 않겠느냐`라 한 것이다.”로 해석하면 文意가 순조롭다. 先學들이 한문 실력이 부족해서 위와 같은 습관적인 의항 적용과 난해한 해석을 이끌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찮지만 매우 간단한 漢語文字學的 지식을 소홀히 여긴 결과라 생각한다.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