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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hines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31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7권 0호 (2017)

한국 한문학 연구에 대한 해외로부터의 학적 요구

심경호 ( Sim Kyung-ho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7권 0호, 2017 pp. 9-48 ( 총 40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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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쓰인 국문학 작품을 가리키는 협의의 한문학은 전통인문학(광의의 한문학)을 바탕으로 성립하며, 광의의 한문학과 협의의 한문학은 다시 기초학(소학과 문헌학)을 토대로 발전해 왔다. 이 셋은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으므로, 협의의 한문학에 대하여 연구하거나 그 발전상을 고찰할 때 그 셋의 관계를 살펴야만 한다. 또한 한문학은 문언어법의 한문을 사용하여 한국 민족의 사상 감정을 표현한 문학, 역사 사실의 기록, 학문적 사색의 논술, 사대교린의 외교 관계나 공적, 사적 생활에서 작성한 문건을 모두 포괄한다. 근대 이전에는 `문`이라 하면 학술과 문학을 포괄했고, 협의의 `문`이라고 해도 순문학 만이 아니라 공용문이나 실용문까지 아울렀다. 게다가 문언어법의 한문을 주로 사용하되 한국어 어법을 적용하면서 이두를 붙인 표기법을 사용한 표기체계의 시문과, 한자를 음차(音借)와 차자(借字)의 방식을 결합해서 제작한 시문도 민족문학의 일부를 이루어왔다.따라서 한문학을 그 광의의 의미에서 파악하고 한문학의 역사적 전개를 그 콘텍스트 내에서 재구성하는 일이 지금 한문학 연구에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각성은 해외로부터의 학적 요구와 맞물려져 더욱 첨예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본고는 한국한문학 연구에 대한 해외로부터의 요구 가운데 다음과 같은 점을 특별히 주목했다. ①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개념과 실상 파악 ② 비교문학 및 비교문화 연구방법의 새로운 도입 ③ 저술 콘텍스트의 재구성 혹은 전기(傳記)의 작성 ④ 논쟁사와 사상사의 구상 ⑤ 고전적 `문`의 환경에 대한 고찰, `문`과 권력의 문제에 대한 성찰 현재 한국한문학 연구는 시대, 주제의 면에서 스스로 구획을 짓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국시대의 문학이나 고려시대의 문학에 대해서는 인접 국가 지역 연구자들의 연구가 더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내의 한문학 연구자들은 인접 국가의 정리에 스스로의 자료를 내맡기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또한 小峯和明 편의 『일본문학사』, 河野貴美子·Wiebke DENECKE 주편의 『일본「문」학사』, 옥스퍼드 대학의 『Oxford Handbook of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등은 모두 근대 이전의 문학을 서구적 문학의 개념이 아니라 전통적인 `문`의 개념에서 파악하고, 문학의 흐름을 테마 별로 조망하며, 한자문화권의 한정된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한자문화권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것은 장보웨이 교수가 `한문화권`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동아시아 한문학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경향과도 상응한다. 한국한문학 연구도 지역주의의 한계를 돌파하여 동아시아 한문학의 역사를 독자적 관점에서 재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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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臺灣)이란 지명은 조선 숙종 8년 청나라와 정금의 전쟁으로 인해 조선의 주본(奏本)에 일찍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청나라가 해금 정책을 실시한 데다가 대만은 절해의 외딴섬이었기 때문에 대만과 조선의 실질적인 교류는 없었고 조선은 중국의 관원과 문인, 유구(琉球)나 안남(安南)의 사절을 통해서 대만의 대략적인 소식만 알 수 있었다. 1729년 윤도성(尹道成) 일행 30인이 제주에서 육지를 향해 배를 띄웠다가 불행히 풍랑을 만나 대만에 표착했다. 9개월의 시간이 걸려서야 복건성(福建省), 소주(蘇州) 등지로 해서 북경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돌아갔다. 이러한 험한 여정이 문자로 기록되어 1732년 정운경(鄭運經)이 편찬한 『탐라문견록(耽羅聞見錄)』에 수록되었다. 『탐라문견록』에는 윤도성의 표류 기록 외에 배에 동승한 송완(宋完)의 유사한 기록도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의 기록은 내용면에서 그 상세함의 격차가 비록 크지만 대만과 조선의 최초 민간 교류 문자 기록으로서 모두 높은 역사적 의의와 연구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상의 두 기록은 모두 외국 사람의 시각으로 실제 경험하거나 목격한 것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대만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기록되지 못했던 것들이 오히려 기록되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할 수 있었다. 이외에 기록에 현지인과의 필담 내용도 많이 남겼다. 이러한 대화 내용을 통해서 표면에 나타난 가상(假像)이 아닌 상대방 마음속의 실제 생각에 한 걸음 더 다가가 그 내용과 생각들을 짐작할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기록에서 중요한 키워드와 내용을 찾아낸 다음에 정리와 분석을 통해서 18세기 대만의 진정한 모습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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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中國의 한국학 학술지 속 한국 한문학 연구 동향을 점검한 논문이다. 이를 위해 본고는 중국의 학술지 제도와 중국 내 한국학 학술지의 현황 및 그 속에 수록된 한국 한문학 관련 논문들의 연대별 분포와 대체적인 연구 주제 상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중국의 대표적인 한국학 학술지인 『東疆學刊』·『當代韓國』·『韓國硏究論叢』을 창간호부터 2016년 현재까지 통독하면서 한문학 관련 논문 285편을 추출하여 시간별/주제별로 논문을 분류해 점검해 보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의 한국 한문학 관련 논문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고 그 주제도 다양해졌는데, 특히 실학자이면서 연행과 교역 등 중국과 관련이 깊은 인물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박지원 연구를 예로 검토해보니 중국인의 시각으로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한국의 기존 연구를 반복하고 있는 것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동아시아 각 국 연구자들의 활발한 소통과 동아시아 한문학 연구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본고는 각 국의 거점 대학 연구자들이 협력하여 다중언어에 기반한 국제학술지를 공동으로 발간할 것을 제안하였다.

조선후기 한문학과 일본 고문사파(古文辭派) 문학 연구의 접점과 방향

노경희 ( Kyung Hee Rho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7권 0호, 2017 pp. 103-127 ( 총 25 pages)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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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명대 전후칠자 문학의 수용과 관련한 한국과 일본 양국 학계의 연구사를 검토하여 그 성격을 비교하고 양자간의 접점을 찾고자 시도한 것이다. 16세기 후반 이후 조선의 복고적·의고적·상고적 문학과 18세기 에도의 고문사파 문학이 그 주요한 비교 연구 대상이며, 조선통신사와 소라이파 문인들의 교류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 양국 고문사파 문학의 `관계`를 함께 고찰하였다. 한일 학계 모두 초기의 연구는 중국문학과 자국문학의 영향 관계에 집중하였으니, 중국 전후칠자 문학과 차별화되는 지점에 주목하면서 그러한 차이점을 야기한 자국 문단의 독자적 특성에 주목하였다. 본고에서는 조선문단의 경우 작가의 개성과 내면의 표현을 강조하는 반면, 일본문단의 경우 작품의 격조와 형식, 문사(文辭)의 재현을 중시하는 점이 가장 차별화된다고 정리하였다. 18세기 들어와 일본 고문사파 문인들과 조선통신사의 직접적인 만남이 성사되면서 독자적으로 진행되던 양국의 고문사파 문학에 드디어 접점이 생긴다. 조선통신사와 고문사파 문인들은 전후칠자 문학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다. 이들의 직접적인 접촉이 양국 문단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향후 더욱 발굴하고 주목해야 할 연구 주제이다.

한국 한문학 연구와 민족주의-김택영(金澤榮)의 사례를 중심으로-

김우정 ( Kim Woo-jeong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7권 0호, 2017 pp. 129-151 ( 총 23 pages)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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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망명이라는 특이한 이력으로 인해 한·중 양국의 주목을 받아온 김택영과 그에 관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 민족주의의 문제를 점검해본 것이다. 역사학계에서는 망명을 전후하여 편찬된 역사저술에 관해 실증사학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부터 민족사학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 그리고 군국주의적 식민사학에 감염되었다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평가가 제기된 바 있다. 문학 방면에서는 망명 이후 지어진 시들에 나타나는 패배주의적이고 자기분열적인 태도에 대한 엇갈린 평가를 거쳐 최근에는 디아스포라(diaspora)적 측면에서 김택영 문학의 정체성을 해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디아스포라라는 것이 일종의 귀속성을 전제로 한다면, 이 역시 민족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좀 더 진전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일부 논고에서는 어떠한 문제의식 없이 이전의 논고를 짜깁기하거나 복제하다시피 한 사례도 보이며,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자료를 곡해하거나 비약한 경우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문학의 자장 안에서 완전히 고립적이고 독창적인 영역은 존재하기 힘들다. 더구나 세계질서가 격렬하게 요동치는 시기를 관통했던 김택영의 경우라면 더더욱 많은 인소들의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초로의 지식인이 망명을 결심했다면 그 결기 뒤에는 무엇으로도 바뀌지 않을 세계관이 똬리를 틀고 있었으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망명 이후 김택영은 이전에 비해 한결 과감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비치고 중국의 영향을 받았음을 토로하기도 하였으나 그 근저에는 망명 이전부터 간직해온 중세적 사유에 대한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김택영(金澤榮)과 장인년(張麟年)의 교유(交遊)와 자만시(自挽詩)-한중(韓中) 자만시 비교(3)-

임준철 ( Lim Jun Chul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7권 0호, 2017 pp. 155-185 ( 총 31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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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중 자만시 비교 연구의 하나로 金澤榮(1850-1927)과 중국 문인 張麟年(1870~1940)의 교유와 그들의 자만시 唱和(唱酬)를 살핀 것이다. 장인년은 南通의 저명한 시인이며 琴 연주가이다. 김택영과 장인년의 관계는 1907년 5월 19일 남통 福萱橋에서 함께 찍은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잘 드러난다. 김택영은 이 사진에 대해 「桑麻閒話圖記」(丁未)라는 글을 남기고 있다. 이 글에서 장인년 역시 자신처럼 세상에서 쓰이지 못한 채 일부러 부정한 현실을 멀리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자만시는 동아시아 시인의 독특한 자기표현 방식의 하나이며, 시인이 자신의 죽음을 가정하고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문학 양식이다. 따라서 자만시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사건이다. 그럼에도 장인년이 망명객 김택영에게 자만시를 보내고 답시를 요청했다는 것은 자만시가 한중 문인 사이에서 진지한 의식 교류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음을 잘 보여준다. 또 한 그들이 부정한 현실에 대한 자기표현으로서 자만시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양국의 자만시 전통이나 두 사람의 인식에 동일한 부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楹聯에 대한 인식 차이와 淸末에 유행한 自挽聯의 존재는 한중 자만시의 차이를 보여주는 양상 중의 하나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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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경술국치 후 서간도로 망명을 떠난 강화학파 耕齋 李建昇(1858~1924)의 망명 전후 매화시 변화 양상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를 살다간 경재는 총 12편 53수에 달하는 매화시를 남겼다. 그의 매화시는 크게 지척에서 관조하며 지은 망명 전 8편 44수와 고향에 두고 온 매화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며 읊은 망명 후 4편 9수로 나누어진다. 망명 전 작품은 다시 을사늑약 전후로 나눠볼 수 있는데, 늑약 직후에 지은 작품은 매화를 대하는 경재의 심경에 큰 변화 양상을 보인다. 을사늑약 전 매화시가 전형적인 문인들이 매화의 외적 형상을 읊은 것과 대동소이하다면, 을사늑약 직후 1편(18수)의 매화시에는 죽은 줄 알았던 매화가 7년 만에 회생한 것을 통해 을사늑약이 파기되기를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망명 후의 매화시는 그리움의 대상으로 고향의 매화를 읊고 있다. 이때 경재는 매화 자체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 나아가 月沙梅를 분양해다 심은 형 李建昌에 대한 그리움, 조국의 독립을 희망할 수 없는 좌절감까지 농축시켜 드러내었다. 또 경재는 동시대 문인들 가운데 金允植을 제외하고 최다 매화시를 읊은 인물이다. 그러나 김윤식은 친일 논란이 있는 바, 매화의 상징적 의미와 부합되는 삶을 살다간 인물로는 단연 경재가 으뜸이다. 이에 따라 경재의 매화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문학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 한국문학사에서 18세기에서 끊어진 매화시의 맥을 20세기 정인보의 매화시조까지 잇게 해주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아울러 경재의 매화시를 통해 강화학파 사람들이 매화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조선시대 사대부 남성 유서(遺書)의 사회문화적 기능과 의미 탐색

이홍식 ( Lee Hongshik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7권 0호, 2017 pp. 213-235 ( 총 23 pages)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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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시대 사대부 남성 유서의 사회문화적 기능과 그 의미를 밝히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먼저 유서의 사회문화적 속성을 점검하여 조선시대 사대부 남성 유서가 당대의 사회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었던 내적 근거를 찾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가(家)를 너머 당대의 사회문화에 끼친 유서의 영향을 살펴 유서의 사화문화적 기능과 의미를 도출하고자 하였다. 현재 확인 가능한 대부분의 유서는 죽음을 매개로 망자의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메시지로 이해되어 한 집안에서 대를 이어 전해지고 실천되었으며, 그 대상뿐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에게도 읽히어 개인을 넘어 가(家)로, 가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유교적 실천 덕목을 가르친 유훈형(遺訓形) 유서의 경우 가문의 전통성을 확립하고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상장례와 제례 등과 관련된 망자의 사후 문제를 주로 다룬 유명형(遺命形) 유서의 경우 의례(儀禮)의 실천과 예학(禮學)의 전수와 연결되어 유교의 이념과 가치의 사회적 구축과 확장에도 기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유서는 사대부들이 지향했던 유교의 실천 덕목과 예학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했음이 분명하다. 비록 유서마다 같고 다름의 차이가 있고 그 차이만큼 사회문화적 의미 또한 달라지지만, 그 전체를 조망해보면 유서가 당대의 사회문화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서를 문학뿐 아니라 사회학과 교육학 등 여타 인문학의 시선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한문교과에서 학습 요소로서의 생략에 대한 연구

김성중 ( Kim Sung-joong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7권 0호, 2017 pp. 237-260 ( 총 24 pages)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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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표는 한문과 학교 문법에서 중요하게 여겨졌음에도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생략에 대해 학습요소로서의 범주를 명료화함으로써 교과서 집필 및 학교 현장의 교수·학습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학교 문법은 학문 문법이 간결화, 간이화 과정을 거친 것이므로 먼저 학문 문법에서 제시하는 생략의 개념을 정리, 분석함으로 써 학교 문법으로의 적용 방안을 논의하였다. 학습 요소로서의 생략의 기준과 범위 관련해서는 언어학 일반의 각도에서, 생략으로 보아야 하는 주어 생략문과 생략으로 볼 수 없는 無主語文을 구분하였으며, 한문의 언어적 특성에 의거, 繫辭 생략을 학습 요소로 상정할 수 없음을 논하였다. 또한 학문 문법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사의 생략은 학교 문법의 측면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이 적정함을 고찰하였다. 생략의 유형 및 문장 풀이에의 활용방안 관련해서는 현행 고등학교 한문Ⅰ 교과서 10종을 대상으로 하여 주어, 서술어, 보 어, 목적어 등 문장의 주요 성분의 생략 유형 및 교과서 풀이 실태를 분석함으로써 생략에 대한 문법 지식이 문장 풀이에 효과적일 수 있는 방안을 서술하였다. 아울러 현행 교육과정에서 학습 요소로 상정하지 않은 겸어, 개사 목적어의 생략도 언급하였는데, 교수·학습 현장에서 교수자가 인지할 필요가 있거나 교과서 편찬에 일정 정도 요구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고의 논의가 향후 한문교육계의 생략에 대한 후속 연구에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문(漢文)과 학교 문법의 보어 특성 고찰

공민식 ( Kong Min-sik )
근역한문학회|한문학논집  47권 0호, 2017 pp. 261-288 ( 총 28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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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형태론적, 의미론적, 통사론적 관점에서 보어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특히 대부분의 언어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목적어의 일반적인 특성(대상성, 피영향성)을 한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 보어의 경우 일반적으로 인정되던 의미적 특성 뿐 아니라 통사적 특성에 의하여 구조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보어는 초점이 되는 서술 대상(주어, 목적어)의 상태를 의미적으로 보충하는 특성이 있다. 이때 서술 대상과 보어는 통사론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보어는 서술 대상을 대신하여 지정·확인하는 방식(대유성)을 통해 의미적인 완결성을 이룬다. 결론적으로 보어는 의미론적 측면에서 보충성을, 통사론적 측면에서 대유성(代喩性)을 중요한 특성으로 갖는다. 그리고 보어의 이런 특성을 바탕으로 문장성분(목적어, 부사어)의 분류 기준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보어의 이러한 특성이 보어의 개념과 범주를 설정함에 있어 확정적이고 절대적인 조건으로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보어의 설정은 교과 내용으로서가 아니라 언어 탐구 과정으로서의 문법 교육적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단순히 보어의 개념과 특성을 확정하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수 학습 과정에서 언어 현상에 대한 탐구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 한다. 결국 문장 성분의 개념을 고정 불변의 대상으로 확정하고, 그 범주 안에서 적용 가능한 예문들 중심으로 문장성분을 확인하는 결과 중심의 문법 교육이 아닌 보어의 특성을 통해 문장성분으로서의 기능과 의미를 찾고, 그것을 한문 독해에 활용하는 언어탐구과정으로서의 문법 교육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문장성분에 대한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언어적 탐구 능력을 향상시키는 관점에서 보어의 개념과 특성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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