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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anguag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1447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0권 0호 (2017)

국어 의지 표현 구문의 화행 양상 연구

조경순 ( Jo Kyeong-sun )
배달말학회|배달말  60권 0호, 2017 pp. 1-27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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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화자는 자신의 의지를 특정한 맥락 속에서 표현하며 일정한 행위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의지 표현 구문의 화행 양상을 살핀다. 의지 표현 구문에 반영된 화자의 태도와 발화 상황 조건을 살피는 것은 한국어 의사소통 양상을 밝히는 데 필요한 논의이다. 본고는 먼저 선행 연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의지의 개념과 의지 표현 구문의 구성 조건을 밝히고, 화행 이론 속에서 그 담화적 특징을 살핀다. 의지는 어떤 일을 이루려고 하는 목적성이 있어야 하고, 주체는 구체적인 행위를 결정하며 선택한다는 점에서 `목적성, 수행성, 결정/선택`을 의지 표현의 특징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의지 표현 구문은 화자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행위를 언어적으로 표명하며, 화자가 수행하고자 하는 행위를 행동으로 옮기고자 함을 스스로에게 부과함을 구문을 통해 나타낸다는 점을 화행론적 접근을 통해 밝힌다.

고급 한국어 학습자의 소설 읽기 시 발생하는 `학습부담`의 요인과 학습 전략

김희경 ( Kim Hee-kyoung ) , 김경훤 ( Kim Kyong-hwon )
배달말학회|배달말  60권 0호, 2017 pp. 29-62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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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모국어 사용자의 언어 사용 양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외국어 교육 자료이다. 특히 소설은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어휘나 문법의 쓰임을 익힐 수 있고, 언어 사용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어 언어 능력 발달시키는 데에 유용하다. 또한 문학 능력과 문화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소설은 작품이 길고 언어량이 많아서 읽기 활동 시 학습자들의 학습부담이 크다. 특히 많은 양의 어휘와 다양한 형태의 문법은 학습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설의 어떤 요소가 학습자의 학습부담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한국 단편 소설 중 정전에 속하는 「봄봄」, 「소나기」, 「수난이대」를 대상으로 문법과 어휘의 분석하였다. 그리고 한국어 학습 항목과 대조하여 학습부담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은 요소들을 추출하였다.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문법과 어휘를 처리하여 학습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전략을 제안하였다.

강세황의 경관 체험을 반영한 예술 세계와 기행문의 특징

권정은 ( Kwon Jung-eun )
배달말학회|배달말  60권 0호, 2017 pp. 63-90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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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표암 강세황(1713~1791)의 국내 진경 체험 후 그린 그림과 기행문의 특징 및 존재가치를 논한 것이다. 일찍이 예원의 총수로 일컬어진 강세황은 18세기 전반을 포괄하는 화가이자 문인으로 명성이 높다. 그런데 그가 남긴 많은 작품 가운데에서도 실제 경관 체험을 근거로 하는 그림과 기행문은 제작 시기와 작품의 성격에서 특이점을 보인다. 우선 관념 산수화와 달리, 실제 체험을 반영한 그림은 40대 중반 이후 탄생하여 70대까지 인생의 완숙기에 창작된 것이다. 기행문은 바로 이 작품들과 동반관계에 있는 것으로, 둘째 아들 강완의 부임지인 부안을 방문했던 경험을 반영한 <우금암도>과 <유격포기>, <유우금암기> 그리고 장남 강인을 방문한 후 남인 <풍악장유첩>과 <유금강산기> <중구일등의관령소기>를 주요 작품으로 손꼽아볼 수 있다. 이들 작품을 구성과 표현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그림은 인상적인 장면을 그리는 과정에서 동일 작가로서의 공통된 화풍이나 특성을 반영하기보다 상황에 다른 가변적인 양상을 드러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기행문의 경우는 그림과의 친밀도가 각기 다르기는 하지만, 분리된 작품이 세부일정을 꼼꼼하게 반영하면서 그림에서 모두 담아낼 수 없는 노정을 잘 보여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들 문학작품은 철저히 현장 중심의 시각적 정보에 집중하며 감각적 묘사를 통해 왜곡 없는 현장감을 전달하는 것을 장점으로 손꼽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니는 기행 체험의 작품들은 그림과 문학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공존 속에서 그 존재 가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인데, 궁극적으로 단순한 실상의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비망록이자 예술적 해방구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여타의 18세기 진경문화와는 다른 독자적인 개성을 구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산잡영>과 <도산십이곡>의 관련 양상 연구

변종현 ( Byun Jong-hyun )
배달말학회|배달말  60권 0호, 2017 pp. 91-129 ( 총 39 pages)
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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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도산잡영>과 <도산십이곡>의 관련양상에 대하여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두 작품에는 도산서원을 배경으로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며 학문과 수양에 힘쓰고자 하는 퇴계의 정신세계가 잘 구현되어 있다. 특히 <도산십이곡>의 `언지 6`과 `언학 6`은 『중용(中庸)』 비은(費隱)장에 토대를 두고 있어서, <언지>와 <언학>의 내용이 다같이 군자의 도를 노래하는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두 작품의 관련 양상을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자연과 도학의 세계를 탐구한 측면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서록(西麓)>에서 퇴계는 서쪽 산기슭에 띠집을 짓고 살면서 구름과 노을을 벗하면서 살고자하는 뜻을 표현하였는데, <언지(言志) 1>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뜻을 뚜렷이 밝히고 있다. 그리고 <어촌>에서 퇴계는 순박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내었는데, <언지 3>에서는 순박한 풍속이 죽었다고 하나 거짓말이고, 사람의 성품이 어질다 하니 옳은 말이라 하였다. <구저(鷗渚)>에서 퇴계는 모래톱의 갈매기를 바라보며 욕심없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뜻을 투영하였는데, <언지 5>에서는 산과 물을 배경으로 갈매기떼는 날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백구맹(白鷗盟)을 하면서 자연과 친화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흰 망아지는 멀리 마음을 두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구저>에 나오는 갈매기의 모습이나 <언지 5>에 나오는 떼 많은 갈매기는 모두 퇴계가 백구맹(白鷗盟)의 의지를 보여주는 내용들이다. <천연대(天淵臺)>에서 퇴계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의 이치를 음미하면서 하늘 이치의 유행과 활발발함을 확인하고 있다. <정초(庭草)>에서는 주돈이(周敦?)의 시구와 주희(朱熹)의 시구에 나타난 천기(天機)를 다시금 마음 속으로 체득해 보고 있다. <언지 6>에서 퇴계는 질서정연하게 반복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를 관찰하면서 느끼는 감동을 노래하였다. 퇴계는 <언지 6>에서 사계절의 아름다운 흥취를 그려내면서, `어약연비(魚躍鳶飛)`, `운영천광(雲影天光)`의 반복 순환하는 이치를 모든 사람들이 함께 깨달아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음으로 학문과 수양의 세계를 탐구한 측면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완락재(玩樂齋)>에서 퇴계는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의 세계를 다 드러내고 있다. 주경(主敬)은 의(義)를 모으는 공부이니, 비망비조(非忘非助)하며 점차적으로 통달해야 한다고 하였다. <언학 1>에서 퇴계가 권유하는 학문과 수양의 방법은 만권생애를 통해 성인의 학문을 익히는 것과 왕래풍류를 통해 마음을 비우고 억지로 조장하지 않는 방법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암서헌(巖栖軒)>에서 퇴계는 증자나 안연처럼 박문약례에 힘을 기울이면서 매사에 조심하여 마치 깊은 연못에 임한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이 신중하게 처신하며 살아가야함을 다짐하고 있다. <언학 3>에서 퇴계는 옛 성인들이 행했던 학문 수양의 방법을 따라서 자신도 학문과 수양에 몰두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반타석(盤陀石)>은 퇴계가 이상으로 여겼던 군자(君子)의 모습이며, 선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물결이 혼탁하고 거세어도 그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반타석처럼 군자나 선비들은 학문과 수양에 힘을 써서 변함없는 마음가짐이나 처신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반타석>에서 군자나 선비들은 변함없는 마음가짐으로 학문과 수양에 힘써야함을 노래하였는데, <언학 4>에서는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학문과 수양에 몰두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시습재(時習齋)>, <관란헌(觀瀾軒)>>과 <언학 5>는 끊임없는 학문 수양 자세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련성을 가진다 할 수 있다. <몽천(蒙泉)>에서는 몽괘의 “군자는 과단성 있는 행동으로 덕을 기른다”는 말을 기억하며 바름과 덕을 기르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언학(言學) 6>에서 퇴계는 학문은 어리석은 사람도 알면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고, 성인도 못 다 하시는 것이니, 우부나성인 할 것 없이 끝없이 반복 실천하다 보면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학문에 심취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특히 <언학 6>에는 군자의 도를 끝없이 추구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퇴계의 정신세계가 잘 구현되어 있다. 이처럼 <도산잡영>과 <도산십이곡>은 창작동기나 시 내면세계가 동일한 사상이나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창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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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20년대 동인지문단의 붕괴 과정이 사회문화적 맥락에서도 해명될 필요가 있다는 곳에서 출발한다. 3.1운동 직후 문학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진행된 개조운동의 중요한 일 부문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문학은 새로운 사상과 감정으로 민족의 신문화를 건설해야 할 중요한 사명을 띤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1920년대 동인지문단의 붕괴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살펴보기 위해 이 글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 시기 `感情`이 문학(특히 시)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동인지문단의 시가 `감정과잉`의 시로 평가된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연애`를 둘러싼 다양한 감정들을 주로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연애`를 둘러싼 다양한 감정들은 근대적인 개인의 개성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곧바로 건강하고 고상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었다. 이광수나 서유준의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듯, 그것은 `□카단적`(퇴폐적) 감정으로 규정되면서 민족의 새로운 문화를 건설해야 할 청년들의 심신을 좀먹는 `병균`이나 `마물(魔物)`로 비난받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사회적 비판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문단 내외의 비판은 특히 당대 청년들에게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었던 소위 신경쇠약이라는 `현대병`과 연관되면서, 과도한 감정의 적절한 통제라는 사회문화적 요구로 이어지고 있었다. 신경쇠약의 문제는 1920년대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 “現代人의 全般이 神經衰弱의 徵候가 잇다”는 진단이 내려지고, `불안`과 `공포`를 동반한 신경쇠약이 “現代의 資本主義”라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이 나타나는 것은 1920년대 중반 경에 들어서였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조선청년의 대부분이 신경쇠약에 걸린 것은 사세부득이의 일”이며, 따라서 신경쇠약은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심각한 “一大 社會問題로 思惟”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1920년대 중반 경부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신경쇠약의 문제는 어떻게 감정의 절제와 통제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기 신경쇠약의 문제는 조선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진단되지만, 유독 학생과 청년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청년들이 앓고 있는 신경쇠약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성적인 문제, 즉 연애의 문제였다. 청년의 연애 문제는 동정피로, 곧 신경쇠약을 야기할 수 있었고, 그것은 민족의 미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인지문단의 상징과도 같은 연애를 둘러싼 감정이 청소년 혹은 청년들의 과도한 민감성과 연관되면서 증상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신경쇠약담론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적절하게 통제된 감정이 통제되지 않은 과도한 감정보다 고상한 감정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

백석의 만주 체험과 시

오성호 ( Oh Seong-ho )
배달말학회|배달말  60권 0호, 2017 pp. 155-195 ( 총 41 pages)
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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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백석의 만주행과 이 시기의 시를 그의 내면에서 작동하고 있던 근대성의 변증법, 그 가운데서도 재마법화와 그 일부를 이루는 엑조티시즘(exoticism)과 관련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했다. 이런 접근법은 백석의 시와 삶에서 나타나는 모순, 즉 지극히 모던한 취향과 토속적이고 샤마니즘적인 세계에 대한 애착이 공존하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 적잖이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백석의 만주행 역시 이런 근대성의 변증법과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다. 백석의 만주에서 쓴 시에서 만주와 만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나타난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이 시기 그의 관심사가 온통 낯선 세상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이 거칠고 낯선 세계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익명의 존재로 지워져 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에 따라 그는 이런 존재 망실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여기`가 아닌 `그때 거기`로의 정신적인 망명을 꿈꾸거나 일종의 `저주받은 시인` 의식을 내세워 자신이 세상보다 `높은` 곳에 있는 존재임을 되풀이해서 강조함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자신의 `시인됨`에 대한 성찰 과정에서 그가 발견한 가장 핵심적인 시인적 자질은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고 생명을 아낄 줄 아는” 마음과 거기서 우러나는 “놉은 시름, 놉은 슬픔”과 `게으름`이었다. 이 중 `게으름`은 삶과 세계에 대한 성찰, 그리고 창조적 에너지와 열정의 축적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그것은 속도와 효율성을 앞세워 자연과 인간을 극한까지 쥐어짜는 근대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백석은 해방 직후(만주국의 붕괴) 만주에서 귀환해서 그대로 북한에 머물렀다. 이 귀환의 과정은 그의 시와 관련해서 보자면 높은 곳에서 낮은 세계로의 하강을 의미한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은 이 점을 보여준다. 특히 그가 지난 시절에 대한 회오(悔悟)와 자신을 이끌어온 운명의 의미를 성찰한 끝에 발견한 `갈매나무`는 만주 시절의 시에서 그린 `고고(孤高)`한 시적 주체와는 전혀 다른 지상적인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만주 시절의 삶에 대한 반성문이자, 이후 전개될 자신의 삶에 대한 예감을 말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이 하강의 동기와 과정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진행된다면 백석이 북한에 남은 이유를 해명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의미에서 백석의 삶과 시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우걸 시조에 나타난 현실 인식과 존재론적 성찰

우은진 ( Woo Eun-jin )
배달말학회|배달말  60권 0호, 2017 pp. 197-220 ( 총 24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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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부터 시조 창작을 해온 이우걸 시인은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통찰을 중심으로 이우걸 시조의 현대성을 구축해왔다. 이우걸 시조는 그 초기 시작부터 자본주의 논리에 함몰된 현대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바탕에 두고 인간 존재에 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왔다. 즉 교환가치체제가 일상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본래적 존재를 망각한 채 자유와 결단이 결여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부조리한 인간소외의 현실을 시조 텍스트 속에 담아내어 왔다. 이때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시조 텍스트 내에 존재론적 사유의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것 또한 이우걸 시조의 한 특징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우걸 시조의 중심에 있는 의미를 자본주의 비판을 중심으로 한 현실 인식, 존재론적 사유를 바탕에 둔 자기성찰이라고 보고 그 텍스트를 분석하고 있다.

이육사와 중국

하상일 ( Ha Sang-il )
배달말학회|배달말  60권 0호, 2017 pp. 221-247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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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는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대표적 저항시인이자 사상가이고 독립운동가이다. 이육사의 문학은 식민지 시기 독립운동을 실천하는 중요한 방법적 선택 가운데 한 가지였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사적 접근과 문학적 논의를 통합해서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이육사의 행적과 활동 가운데 아직도 의문과 의혹으로 남겨진 사실들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고 재구해냄으로써, 각 시대의 문학적 실천이 어떠한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과제가 이육사와 중국의 관계이다. 이육사의 중국행은 모두 다섯 번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의 중국행이 독립운동을 위한 것이었음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검증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문학 작품 번역, 중국의 정치사회에 대한 시사평론, 중국문학에 대한 논평 등 당시 이육사의 중국에 대한 소양은 아주 남달랐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이육사에게 당시 중국은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녔던 것일까. 이 글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이육사와 중국의 관계는 독립운동의 차원이든 문학적 차원이든 아주 밀접한 영향 관계에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방향은 상호 유기적인 관련을 맺으며 그의 삶과 활동 전반에 핵심적인 문제의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육사의 문학 세계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당시 그가 중국의 정세와 중국문학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했는가 하는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이육사의 다섯 번의 중국행을 전기적으로 따라가면서 각 시기마다 그의 사상과 문학의 형성에 중국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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