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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론총검색

Eo Mun Lon chong (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3928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어문논집(~1963)→어문론총(196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5권 0호 (2015)

경남 창녕 지역의 어두경음화 현상

김유정 ( Yu Jung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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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어두경음화의 개신지라고 할 수 있는 경남 창녕 지역의 어두경음화 현상을 통시적·공시적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통시적 측면에서 근대 이전 국어에 어두 단자음을 가졌던 69개 어사를 가지고, 『한국방언자료집』에 나타난 창녕 지역의 실현형과 비교를 통해 그 실현율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창녕 지역의 경우 어두경음화의 개신지에 위치한 여타 다른 지역에 비해 어두경음화가 가장먼저 발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공시적 측면에서 창녕 지역의 어두경음화 현상을 세대별, 어휘별, 성별, 말투별 등의 요인에 따라 살펴보았다. 세대별의 경우 연령이 높을수록 어두경음화 실현율이 높았으며, 어휘의 경우 체언보다는 용언에서, 어두 자음은 ‘ㅅ>ㅈ>ㄱ>ㅂ>ㄷ’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성별에 따른 차이는 없었으며, 격식적인 말투보다는 일상적인 말투에서 높은 실현율을 보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창녕 지역 10~20대의 어두경음화 현상이다. 정영주 (1987)은 1980년대 창녕 지역의 어두경음화를 주도한 세대가 노년층임을 밝힌바 있다. 그 당시 젊은층들이 30년의 세월이 흘러 현재 50~60대가 되면서 창녕 지역의 어두 경음화를 주도하고 있는바, 세월이 흐를수록 10~20대 젊은층의 어두경음화 실현율이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결과는 앞으로 창녕 지역의 어두경음화는 10~20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언어 변이를 겪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어 "없이"의 유형과 일본어 대응 표현에 대한 연구 -한일 병렬 말뭉치 용례를 중심으로-

오선영 ( Seon Yeong O ) , 다키구치게이코 ( Takiguchi Keiko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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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국어의 ‘없이’류 부사어를 대상으로 하여, 말뭉치에 나타난 한국어 ‘없이’ 구성의 형태·통사적 특징을 살펴보고, 이에 대응되는 일본어 표현이 한일 병렬 말뭉치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어의 ‘없이’는 ‘-이’의 문법 범주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파생 부사와 부사절을 이끄는 부사어로 볼 수 있는데, 현대 한국어 말뭉치 용례를 통해 ‘없이’를 살펴본 결과, 한국어의 ‘-없이’류 부사어는 단독 부사형, ‘어근+(조사)+없이’형, 통사적 구성, 관용적 구성 등 4가지 유형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한국어의 ‘없이’는 사전적 기술에 따르면 대체로 일본어의 ‘なく’ 또는 ‘ず’로 대응이 되는데, 한일 병렬 말뭉치 용례를 분석해 보면, 한국어의 ‘없이’에 대응하는 일본어 표현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일본어 대응 표현을 유형별로 정리하면, 크게 8가지 정도이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난 것은 ‘ず’(ずに、ず と)이다. 그리고 한국어의 ‘없이’는 형태적으로나 의미적으로 부정을 표현하는데 반해, 일본어 대응 표현에서는 부정의 의미가 형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밖에 한국어 ‘없이’가 일본어에 대응될 때 통사적으로 다른 표현에 대응되는 경우, 접두사 ‘無’에 의해 파생된 어휘로 나타나는 경우, 조사 ‘も’ 가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경우, 일반적인 부사로 대응되는 경우, 대응 표현을 찾기 어려운 경우 등이 있다.

재미 동포의 한국어 사용에 나타난 변이어 연구

원미진 ( Mi Jin Won )
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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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재미 동포 사회에서 사용되는 한국어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주민 사회의 언어 접변 현상에서 나타나는 한국어의 사용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7백만 재외 동포들의 언어생활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재미 동포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양상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쓰이는 언어와 다른 것을 변이어라 정의하고 변이어의 유형과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60명의 세대별 연령별 변인을 고려한 재미 동포들을 대상으로 반구조화된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네 가지의 변이형을 분류 하였다. 첫째는 모국과 시공간적인 단절로 인해 언어적 개신의 영향을 받지 못하고 개신형 대신 살아남아 있는 이전 용어들인데 이를 비개신형이라고 부를 수있다. 둘째는 현지의 지배적 언어인 영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국어와 영어의 혼종어이다. 영어가 한국어의 사용 맥락 안에서 단어나 구, 때로는 절이 삽입되어 있는 것들이 있으며, 특히 단어 이하 단위에서는 한국어의 파생접사와 함께 사용되어 혼종어를 이루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셋째, 영어의 영향으로 인해 한국어의 어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영어 단어의 형태가 선호되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외국어가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어의 구사력이 퇴화되었거나 아직 완전하게 학습되지 못해 발생하는 중간언어 형태의 유형을 살펴 그 특징을 밝혀 보았다. 이러한 기초 자료의 분석은 재외 동포 사회에서 한국어의 사용 양상 및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조선 시대 <서유기>의 개작 양상과 그 소설사적 의미

서혜은 ( Hye Eun S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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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시대 유입된 중국 장편 소설 <서유기>의 개작 양상과 개작 양상에 내포된 소설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유기>는 한글로 번역되어 원본과 동일한 필사본으로 향유되었다. 이러한 국문 필사본을 저본으로 하여 개작된 단편이 경판 <서유기>와 <당태종전><손오공>이다. 경판 <서유기>는 <서유기>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삼장 일행과 요괴들이 대결하는 삽화를 선별하여 재구성하고 축약한 개작본이다. 그리고 <당태종전>은 태종에 대한 비판과 그 극복의 서사로, <손오공>은 長生不死의 욕망 추구를 위한 손오공의 활약상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서유기>를 개작한 단편 소설이다. 장편 소설 <서유기>를 단편 소설로 개작한 경판 <서유기>와 <당태종전><손오공>은 20세기에 이르러 <서유기>의 대중성을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조선에서 <서유기>는 주로 고구려를 침략한 당나라 태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부각된 <당태종전>으로 향유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당태종전>이 조선인들의 민족자존 의식에 의해 <서유기>가 자국화된 작품임을 제시한다.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의 의의와 지역문화유산 활용의 전망

조정현 ( Jung Hyun C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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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은 2009년 대구경북지역에서 시작되어 현재 1,750여명의 이야기할머니가 활동하는 전국적인 문화현상이 되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과 한국국학진흥원의 주관으로 일구어온 이야기할머니 사업은 그 의의와 함께 한계점도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기에, 구체적인 현장 참여관찰 조사를 통해 바람직한 개선방안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특히 이야기 구연 자체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현재의 구조를 개선하여 지역문화유산과 연계한 지역화를 이루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이야기할머니 사업을 분석하기 위해 크게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첫째, 이야기의 선정과 활용양상, 둘째, 이야기할머니의 선정과 활용양상, 셋째, 이야기판의 구성과 활용양상 등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이야기할머니 사업의 의의와 성과를 분석하는 데에도 사용되는 분석틀이고 그 한계점을 도출하는 데에도 활용될 뿐만 아니라, 그 대안 모색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요소이다. 이 세 가지 구성요소를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이야기할머니 사업의 의의와 한계, 대안 등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판단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할머니 사업이 중앙부처와 위탁기관 중심으로 우리 이야기문화의 보편적인 성격과 일반화를 추구해왔다면, 이제는 각 지역의 로컬리티와 고유성을 발견하고 지역화하는 매개체로서 이야기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각 지역 이야기의 조사와 연구, 가공 및 콘텐츠화 등과 함께 이야기할머니의 발굴, 다양한 방식의 구연 방법과 향유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며, 각 지역의 문화유산과 연계 활용해 나감으로써 명실 공히 이야기문화를 제대로 꽃피워나가고 지역문화의 새로운 질적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남호 영기(南湖永奇)의 가사 창작과 모연의도의 문학적 형상화

최형우 ( Hyung Woo C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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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불교 사찰은 국가로부터 억압을 받으면서도 그 세를 확장하고자 각종 불사를 행하였다. 1855년에 시작된 수도산 봉은사의 화엄경 판각 및 판전 중건불사는 이러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남호영기에 의해 주도되었다. 남호영기는 이러한 불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모연(募緣)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는데, 이러한 모연활동을 위하여 <광대모연가>, <장안걸식가>를 창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광대모연가>, <장안걸식가>에는 남호영기의 불사를 위한 모연의도가 문학적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동일한 목적을 위하여 창작된 두 작품이라 할지라도 각기 다른 형태로 형상화되어 있어 주목할 만하다. <광대모연가>는 작품 전반부의 화자를 대중에게 밀착시켜 공감대를 넓히고, 후반부 화자를 통하여 모연의도를 직접 제시하는 형태로 모연의도를 형상화하고 있다면, <장안걸식가>의 경우 주된 모연의 공간이 되는 한양 성내의 경물을 다양하게 언급함으로써 일반 대중들과의 공감대를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모연의도를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모연의도는 결국 불사를 위한 사찰의 물적, 인적 경제력의 확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대규모 불사를 성공적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경제력은 필수적인 조건인데,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당시 널리 유행하던 가사의 창작과 향유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남호영기가 창작한 두 편의 가사는 이러한 큰 규모의 불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야 했기 때문에 각각 효과적인 방식으로 모연의도를 형상화하였던 것이다.

전후시에 나타난 "여성"과 "사랑"의 의미 -김구용과 전봉건의 시를 중심으로

김양희 ( Yang Hee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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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전후의 현대시에 나타난 ‘여성’형상의 양상과 의미를 파악하고 ‘사랑’의 의미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 전쟁은 전후의 시인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를 시적 과제로 선사하였다. 특히 김구용과 전봉건은 전후에 창작된 시에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시적 화두로 삼고 있다. 이 때 주체 정립은 타자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다. ‘나’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관계 정립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타자의 역할은 두 시인의 시에서 ‘여성’이 담당하고 있다. 이 논문은 두 시인의 시에 나타난 ‘여성’의 의미와 역할을 해명하려는 데 있다. 전봉건의 ‘여성’은 황폐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청되어야 할 자연이며, 그런 의미에서 심미화되고 이상화된 가상의 자연이다. 김구용의 ‘여성’은 전후 한국 사회의 부정적 모더니티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존재로서 ‘산 -죽음 living-dead’의 형상으로 반복 출현한다. 뱀, 시체 등으로 변이하는 여성은 전후 현실이 일상의 베일 너머에 감추고 있는 잔혹성을 폭로한다. 주목할 사실은 이 과정에서 김구용과 전봉건이 모두 ‘사랑’을 주요한 테마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전후기에 호명하는 ‘사랑’은 전쟁이라는 현실에 대한 시적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의 양 국면- 사랑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타진함으로써, 두 시인은 전후 미적 모더니티의 장에서 주체 정립의 다양한 국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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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에서 진보적 연극운동은 1983년부터 본격화 되었다. 1983년 1월에 극단 시인이, 12월에 놀이패 탈이 창립되면서 기존의 대구지역 연극과 차별성을 가진 진보적 성향의 연극이 시작된 것이다. 극단 시인과 놀이패 탈은 경북대학교 졸업생들이 주축을 이루었으며, 대학 내에서 연극반과 탈춤반 활동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대구지역의 기성 극단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단체를 결성함으로써 진보적 연극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극단시인과 놀이패 탈은 대구지역 연극계의 문제점을 두 가지로 보았다. 기성 극단은 운영에서 전근대적 폐쇄성이 강하고, 연극 공연에 있어서 서울 종속성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단원들의 동등한 권한과 책임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합의에 의하여 공연작품을 선정하는 민주적 운영체제를 대안으로 내어놓았다. 극단시인과 놀이패 탈은 대구시 사회단체와 함께하는 연대 활동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대구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로서 지녀야 할 사명감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서울 종속성을 탈피하려는 시도는 대구지역의 특성이 살아있는 작품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대구지역에서 발굴한 소재로 창작한 마당극을 공연하고, 지역 사투리를 공연언어로 사용한 극단 시인과 놀이패 탈의 연극은 그 무렵 대구지역의 일반적 경향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 대구지역에서 진보적 연극운동의 씨앗을 뿌린 두 단체는 1990년에 극단 함께사는세상으로 통합하게 된다. 극단 시인과 놀이패 탈은 공통적으로 마당극을 지향하고 있었고, 정치사회적 인식도 동일하였기 때문에 통합을 통하여 진보적 연극운동의 전문성을 제고하려 한 것이다. 1980년대 극단 시인과 놀이패 탈의 진보적 연극운동은 대구지역의 보수적 연극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지는 못하였으나, 진보적 연극운동을 출발시키고 극단 함세상을 통해 지속될 가능성을 확보하였다는 것만으로도 대구지역 연극계에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어린이』 아동극의 계급주의 수용과 그 의미

손증상 ( Jeung Sang 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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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근대 아동문학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아동잡지 『어린이』가 어떻게 계급주의를 수용하고 있는지를 아동극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어린이』중심의 연구는 지금까지 『별나라』와 『신소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던 계급주의 아동문학 연구에서 해명하지 못한, 동심천사주의의 아동문학 장이 계급주의를 수용할 수 있었던 맥락을 규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소년운동의 방향전환론 이후의 『어린이』 아동극을 살펴본 결과, 1928년 이후의 작품은 옛이야기와 서양의 동화를 극화하거나 동화적 세계 구현이 그대로 유지되는 작품이 대다수이고, 1930년대에는 사회적 약자의 연대와 계급적 세계관을 보여주면서 동화극의 틀을 가져오는 작품 <개고리와 배암>과 계급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도덕적 인식 체계를 유지하는 <겁내지마라>, <도야지>가 발표되었다. 이와 같이 계급주의 수용은 아동극 내용과 형식의 변화를 가져오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농촌소년극``이라는 아동관객의 분류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왔으며 각 나이에 맞는 작품 창작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킨 지점이다. 그리고 이는 아동극 장르의 분화를 가지고 온다는 점에서 아동극사에서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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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의 박영희는 김기진과 함께, 외국 문학 특히 러시아 문학자와 작품을 참조하고 인용하면서 자신의 문학론을 전개했다. 이와 같은 글쓰기 방법은 이광수, 김동인 등 이른바 부르주아 문학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문학의 개념적 윤곽을 그리는 한편,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비평하는 관행이 자리잡지 않았던 단계에서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러시아 문학의 역사적 경로에서 조선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상상했다. 그러나 1880년대의 체호프는 두 사람의 차이를 보여주는 계기였다. 체호프의 러시아적 환멸기는 알렉산더 1세 이후 폭력적 전제정치, 러시아 지식인의 무력함을 그 특징으로 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생활에 대한 의욕, 진리 탐구에 대한 열정 등도 조금씩 나타났던 시대였다. 이와 같은 러시아 환멸기의 다양한 주제에서 김기진은 고독과 환멸의 감각을, 박영희는 실생활에 대한 의욕과 열정을 각각 부각시켰다. 1924년을 지나면서 김기진은 조선 현실에서 환멸감을 느꼈다. 그것은 민중 교화라는 역사적 임무를 홀로 자각한 예술가가 깊은 잠에 빠진 조선 민중 앞에서 느꼈던 고독감과 관계 깊다. 이는 조선 지식인 및 예술가에 대한 김기진의 ‘회의 없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박영희는 소설이나 철학은 물론, 실생활의 감각을 상실한 예술가나 지식인도 ‘회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김기진과 박영희가 ‘상아탑 속의 예술’로 표상되는 부르주아 예술과 달리, 새로운 예술은 ‘실제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는 점이다. 요컨대, 박영희는 예술이나 철학, 그리고 지식인 그 자신까지도 회의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철저했다. 1924년 박영희의 소설 「결혼전일」, 「애의 만가」, 「이중환자」의 서사적 구도를 ‘환상 - 현실 감각의 상실’과 ‘자각 - 새로운 성장의 계기’ 사이에서 그려볼 수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환상을 제거하는 실제적인 것의 감각은 초기 사회주의 문예 담론 구성 과정에서 박영희 이론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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