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어문론총검색

Eo Mun Lon chong (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3928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어문논집(~1963)→어문론총(196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4권 0호 (2017)

조선 전기 이전의 지리지와 지명

박병철 ( Park Byeong-cheol )
7,000
초록보기
「지리지」란 일정한 지역 내에 분포하는 땅과 관련된 제 현상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중앙집권제 강화와 통치 자료 확보 나아가 문화적 이념의 확산을 위하여 지리지가 편찬되었다. 시대 상황을 반영하며 편찬된 지리지 중 우리나라 최초의 지리지인 『三國史記』「地理志」는 대부분 군현의 명칭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高麗史』「地理志」에서는 각 군현의 명칭을 그 연혁과 함께 열거하였다. 이들 사료는 이칭과 함께 복수의 형태를 제시한 경우도 있어 당시의 언어를 비롯한 지리, 역사, 민속 등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중앙집권화가 진전되면서 각 지역의 지리를 비롯한 종합적 정보를 담은 지리지가 편찬되었다. 『世宗實錄』「地理志」의 경우 군·현명 위주의 자료가 대부분이지만 동리명, 향·소·부곡명, 산명, 역명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마을명칭으로 볼 수 있는 所屹串里, 加左谷, 牛項등의 명칭을 확보할 수 있다. 비록 이들 지명은 한자로 표기되었지만 솔곶이, 가자골, 쇠목 등을 표현한 것으로 한국 지명의 원초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전성기 조선의 주역들이 영속적인 지배를 염원하며 문화적 내용을 강조하여 편찬한 것이 조선 전기 지리지의 결정판 『(新增)東國輿地勝覽』이다. 그 명칭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문헌은 단순한 지리지가 아니라 이 땅에서 축적된 문화까지 망라된 종합지이다. 앞선 시기의 지리지가 군·현명을 중심으로 한 행정지명의 반영에서 출발하였지만 이 문헌은 산천명을 비롯한 자연지명과 문화를 담은 인문지명까지 망라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지명이 한자어화하였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구지역어의 ㄹ첨가 현상과 신방언으로서의 가능성

배혜진 ( Bae Hye-jin )
6,600
초록보기
본 연구는 ‘ㄹ’ 첨가 현상이 토박이 노년층 화자들이 사용하는 방언형과는 다른 젊은 세대들이 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방언인 ‘신방언’으로서 대구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밝히는 데에 있다. 첫째, ‘ㄹ’ 첨가 현상이 ‘신방언’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노우에 후미오(2015)의 조건에 따라 대구에서 생장한 123명의 20대 청년층을 대상으로 언어 인식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대구지역에서 실현되는 수의적 ‘ㄹ’ 첨가 현상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쓰는 비표준형이며 개신자들 스스로가 이를 인식하고 있으므로 ‘신방언’으로 볼 수 있었다. 둘째, ‘ㄹ’ 첨가 현상의 세대별 실현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청년층과 노년층으로 나누어 각각 22명의 제보자들을 대상으로 구어 발화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노년층에서는 ‘르’ 불규칙 어간과 연결어미 ‘-(으)려고’ 모두에서 ‘ㄹ’ 첨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비해 청년층에서는 두 경우 모두에서 ‘ㄹ’ 첨가형이 생산적으로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경상도 방언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집에 가까?’와 같은 ‘ㄹ’ 탈락형과는 반대로 발음의 경제성이 높지도 않은 ‘ㄹ’ 첨가형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하여 대구에서 생장한 123명의 20대 청년층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하였다. 그 결과 ‘르’ 불규칙 어간에서 나타나는 ‘ㄹ’ 첨가형은 감정 표현의 강조나 극대화 효과를 위해 사용되었고 연결어미 ‘-(으)려고’에서 나타나는 ‘ㄹ’ 첨가형은 ‘공손, 완곡’의 표현 효과를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ㄹ’ 첨가형과 비첨가형의 차이에 대한 인식률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이를 통해 신방언이 성장의 초기 단계에 있을 때에는 특정 상황이나 언어적 효과를 위해 쓰이다가 그 사용역이 넓어지게 되면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ㄹ’ 첨가형은 이미 신방언의 초기단계에서 확산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신방언’은 단기간의 관찰로 이루어질 수 없고 긴 시간동안 천천히 변화하기 때문에 그 판단이 신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간의 관찰로 이루어진 본고의 결과를 더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할 것이다.

신체어의 비유적 의미에 대한 말뭉치 기반 접근

송현주 ( Song Hyun-ju )
6,400
초록보기
This study aims to demonstrate that you can use body-part terms in the corpus-linguistic methodology to study lexis in cognitive linguistics. It particularly explores body-part terms such as “mouth,” “hands,” and “feet” and by means of their frequencies, examines their figurative meaning by the usage patterns. Among the body-part terms with high frequency use, this study examined the figurative meaning of the target words such as mouth, hands, and feet. The target words were extracted from the Sejong corpus to ensure the qualitative validity of the quantitative expansion. This study analyzed body-part terms only, the combination control of the use of these expressions in a pattern when used in a figurative sense. It is concerned with word meaning from the perspective of cognitive linguistics on one hand and corpus linguistics on the other hand.

연결어미 ‘-다가’의 형태 의미와 의미 기능

이재성 ( Lee Jae-seong )
5,200
초록보기
이 연구에서는 연결어미 ‘-다가’의 형태 의미와 의미 기능을 밝혔다. 연결어미는 하나의 형태소이므로 형태소로서 형태 의미를 가지며, 종속절과 주절의 의미 관계에 따라 의미 기능을 가지게 된다. 연결어미 ‘-다가’의 형태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분석 범위를 ‘-다가’절로 한정해야 하며, 연결어미 ‘-다가’의 의미기능을 밝히기 위해서는 분석 범위를 ‘-다가’절과 주절의 관계로 한정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 방법을 통해, 연결어미 ‘-다가’의 형태 의미는 ‘종속절 사건의 전개 상태가 해당 상태의 도달점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이며, 연결어미 ‘-다가’의 의미 기능은 주절에 대해서 ‘-다가’절이 [전환]이나 [원인]임을 밝혔다. 연결어미 ‘-다가’의 의미로 언급되던 [조건]은 보조사 ‘-는’의 의미 간섭으로 인한 것으로, 연결어미 ‘-다가’의 의미가 아님을 밝혔다.

구어 말뭉치에 나타난 ‘그러니까, 그니까, 근까, 그까’ 비교 연구

전영옥 ( Jeon Young-ok )
6,300
초록보기
이 연구에서는 구어 말뭉치에 나타난 ‘그러니까’, ‘그니까’, ‘근까’, ‘그까’를 비교 분석하여 이들의 의미 기능에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형태의 변화가 의미의 변화를 가져오는지, 구체적으로 어떠한 차이가 나타나는지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세종 구어 말뭉치에서 사적대화, 공적대화, 사적독백, 공적독백으로 구성한 약 20만 어절의 말뭉치를 분석하였다. 우선 ‘그러니까, 그니까, 근까, 그까’의 형태별 실현 빈도를 보면 총 1,229개 가운데 ‘그러니까’가 286개(23.3%), ‘그니까’가 360개(29.3%), ‘근까’가 326개(26.5%), ‘그까’가 257개(20.9%) 나타났다. 따라서 실현 빈도상으로는 ‘그러니까’ 못지않게 ‘그니까, 근까, 그까’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인과관계로 사용된 187개 가운데 ‘그러니까’는 93개(49.7%), 축약형인 ‘그니까, 근까, 그까’는 94개(50.3%) 나타났고, 보충설명으로 사용된 491개 가운데 ‘그러니까’는 79개(16.1%), 축약형은 412개(83.9%) 나타났다. 발화 연결 및 발언권의 연결로 사용된 416개 가운데 ‘그러니까’는 78개(18.8%), 축약형은 338개(81.2%) 나타났다. 따라서 축약이 되면 기본 의미인 인과 관계의 의미는 약화되고, 보충설명의 기능과 발화 연결 및 발언권의 연결 기능이 강화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의 축약형이 원래의 어휘 의미를 전부 상실하고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 의미보다 확장된 의미, 담화표지로서의 의미 기능을 더 많이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축약 형태로의 변화는 새로운 의미기능을 획득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의미 변화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또한 축약 형태의 실현 빈도가 높은 만큼 사전에서의 표제어 선정이나 문법 기술에서의 축약 형태의 사용 양상을 어떻게 포함할지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과정일록(課程日錄)』의 분류체계 및 어휘 고찰

정연정 ( Jeong Yeon-jeong ) , 윤향림 ( Yoon Hyang-rim )
6,800
초록보기
이 연구는 분류어휘집인 『과정일록』을 소개하고 어휘 분류체계와 표제어 및 주석을 살펴 국어사적 가치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과정일록』은 한자 표제어에 대한 간략한 풀이를 붙인 필사본 어휘집으로, 현재 오구라문고와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에 소장되어 있다. 오구라문고본은 2권 2책으로 본문에 사주와 계선이 있으며 한 면에 4단 10행으로 필사되어 있다. 반면 존경각본은 2권 1책 불분권으로 사주나 계선이 없이 한 면 4단 12행으로 필사되어 있다. 두 이본은 표제어의 표기나 주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과정일록』은 모두 30개의 부류 아래 9,000여 개의 어휘가 실려 있다. 이 가운데 한글 주석이 달린 표제어가 5,700여 항목이나 된다. 花木摠言, 禽獸摠言, 人倫人事, 理生, 仕止등 다른 분류어휘집에는 보이지 않는 분류기준이 있으며 부류순서도 천문과 지리 다음에 동식물 관련 부류가 배열된다. 『과정일록』의 표제어나 어휘를 다른 분류어휘집과 비교해 보면 동일한 표제어에 주석차이를 갖거나 주석이 동일하더라도 표제어가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한자어의 사용 실태 및 한글어휘의 변화 모습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과정일록』은 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본다.
6,400
초록보기
본고에서는 태조 이성계의 고조인 목조 이안사에 관련된 전승들 가운데 전주지역에 전해 오는 장군수와 호운석 설화의 특징 및 전승 양상을 해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성계가 외적을 방어하면서 명망을 떨쳤던 고려 말부터 전주에서는 그의 조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특히 황산대첩 직후 이성계가 전주에 들러 종친들과 회합하면서 목조의 유년기 자취인 장군수가 본격적으로 부각된다. 호운석 또한 이 시기에 함께 회자되었으리라 보인다. 그러나 장군수와 호운석 설화가 후대에 전승된 방식은 다르다. 목조가 나무아래에 단정히 앉아 있으면 여러 아이들이 지나면서 절을 하는 모습이 관청에서 조회를 하는 모습과 흡사하였다는 정도의 내용으로만 구성된 장군수 설화는 오히려 그 같은 단출함 때문에 식자층의 관심을 받게 된다. 경험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인 데다 단순한 내용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 가치를 칭송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무의 기상이 왕조의 유구한 기반을 환기하기에 장군수에 대한 흠모가 더욱 배가되기도 하였다. 장군수 설화가 「부사기」에 기록되거나, 관찰사와 임금이 주관하는 시험에 시제로 채택된 것도 그러한 흠모의 정이 투영된 결과이다. 한편, 호운석 설화에서는 목조가 하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져 결국 그 자손인 태조에 의해 왕조 창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천명을 표출한다. 그러나 그 같은 주지를 구현하기 위해 신령스러운 호랑이를 등장시키고 동굴이 돌연 붕괴되는 우연적 사건을 개재하는 등 전반적으로 허구적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어서 이 설화는 식자층 사이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호운석 유적을 추앙하려는 움직임이 표면화되지 않았고, 관련 설화를 관헌이나 조정에서 공인하였다는 기록도 발견되지 않는다. 반대로 호운석 설화는 민간에서 보다 활발하게 전승되고 다채로운 서사로 개작되면서 전주 이외의 지역으로까지 확산되어 갔다.

<기우목동가>, <진여자성가>의 십우도(十牛圖) 문화 수용과 문학적 변용 연구

최형우 ( Choi Hyung-woo )
6,000
초록보기
본 논문은 이전 시기 한국에 유입되어 조선조에 지속적으로 유행하였던 十牛圖문화에 직접적 영향을 받은 국문시가 2작품을 대상으로 十牛圖문화 수용 방식과 이에 대한 문학적 변용을 논의한 것이다. 十牛圖는 선불교의 참선 수행 과정을 10개의 그림과 게송으로 표현한 것으로 사상, 종교, 회화, 문학을 아우르는 불교의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십우도는 고려시대에 이미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찰의 벽화로 그려지거나 문학 창작의 소재가 되는 등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문화로 향유되었다. 조선시대 창작, 향유된 경기체가 <騎牛牧童歌>와 가사 <진여자성가>는 이러한 十牛圖문화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국문시가들이다. 十牛圖가 부분적으로 문학 창작의 소재나 이미지로 활용되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十牛圖를 전면적으로 수용하여 문학이 창작된 경우는 흔하지 않다. 더군다나 조선 후기 경허, 만해, 백봉 등에 의해 창작된 한시는 십우도송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계승하는 차원에서 창작된 것이다. 이에 비해 국문시가인 <기우목동가>와 <진여자성가>는 十牛圖를 수용하면서도 시가 갈래의 본질에 맞춘 문학적 변용이 이루어져 불교시가의 창작 및 향유사에서 주목하여야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십우도 문화를 수용한 국문시가의 창작은 대중들을 위한 포교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해당 시가 갈래의 향유층의 기호를 고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불교의 포교활동과 그 가운데 이루어진 국문시가의 창작과 향유는 조선시대 불교가 대중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하였다는 증거이다. 아울러 시가 창작 과정에서의 문학적 형상화는 당시 불교 승려들의 문학 활동이 단순히 전대의 문화를 답습하는 차원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시대와 향유층의 변화에 따라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300
초록보기
이광수의 『그 여자의 일생』은 기존 논의에서 연애소설류의 하나로 저평가되고 소홀히 다루어진 작품이었다. 본고에서는 『그 여자의 일생』이 여성인물에 대한 작가의 젠더 인식의 한계와 남성 인물의 추상적 형상화로 인해 기존의 연애소설의 서사 구조와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것은 이전의 작품에서 정신 개조나 민족주의를 추구하던 작가의 세계관이 비합리적 세계로 급격하게 전환되면서 발생한 특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작가는 비정상적인 여성성을 그리는 과정에서 도덕적 남성인물과의 이분법적 대립구조를 탈피하여 '여성 자신'이 여성을 부정하고, '여성의 적이 여성'이라는 서사 방식을 구현함으로써 이 작품의 여성인물들을 극단적인 악인의 형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민족 개조와 도덕적 정신의 함양이라는 주제와 목적이 의미를 잃게 됨으로써 부정적 여성인물과 대비되던 도덕적 남성인물이 추상적으로 그려지고 대부분 악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악인에 대한 서사의 강화는 죄를 지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보살행'이라는 결말로 가기 위한 작가의 전략이기도 했다. 요컨대 서사구조의 변환과 특징들은 이 작품의 연재 과정에서 바뀐 작가의 세계관이 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결국 『그 여자의 일생』은 이전의 소설에서 추구하였던 민족주의에 대한 서사가 철저히 배제되었고, 종교라는 비합리적인 세계로 서사를 봉합하는 결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여자의 일생』은 이광수의 후반기 작품세계를 형성한 세계관 전환의 시발점을 보여준 작품으로서 이전보다 좀 더 의미 있는 평가가 필요하다.

「읍혈조」(泣血鳥)에서 드러나는 세계 인식과 구원의 불가능성

김상모 ( Kim Sang-mo )
6,000
초록보기
이 글의 목적은 「읍혈조」의 소설예고와 실제 연재 내용 사이에서 나타나는 불일치에 주목하여, 작품 속 여주인공의 타락이 지니는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소설예고에서는 당대 조선의 비판적 형상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이 드러난다. 특히 이기적이고 허위의식에 빠져 있는 서병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러한 타락상이 묘사된다. 하지만 병호는 결국 모두에게 버림받고 단죄당하며,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소설예고의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이 결국 순리대로 돌아간다는 낙관적인 세계관이다. 하지만 실제 연재 내용에서는 서병호가 아니라 여주인공인 김선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서사의 중심이 김선희로 옮겨 가면서 연재예고에서 드러난 낙관적인 세계인식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데, 이는 선희가 단지 연인들의 말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배신당하고 타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선희의 낙관적인 인식이 세상을 순탄하게 살아온 선희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에서만 비롯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는 타인의 욕망과 이기심이 판치는 세계에서 자신을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아가 작가는, 선희가 자신의 주체를 보전할 현실적 맥락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는 서병호-김선희-김성운이라는 인물 관계를 통해 구원과 타락 간의 저울질로 드러난다. 서병호가 현실적으로 철저히 타락한 인물이라면 김성운은 과거를 백지화시키고 비약을 통해 구원을 받는 인물이다. 선희는 현실 세계 속에서 더욱 철저히 타락하느냐 또는 과거를 백지화하고 새사람이 되느냐라는 선택지속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문제는 구원의 가능성이 현실적 맥락에 접속하는 방식이 아니라 철저히 우연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선희의 타락과 죽음은 낙관적인 세계 인식이 철저히 주관적이라는것, 나아가 이를 구원할 현실적인 역량을 작가가 제공할 수 없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는 조선 현실을 다루는 창작소설과 『동아일보』 사이의 균열이기도 하다. 문화주의를 그 주지로 표방한 『동아일보』는 실업과 교육, 구습의 개량을 주장하면서 점진적인 실력양성의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논리는 초기 번역번안 소설에서는 사필귀정 내지 인과응보라는 안정적인 세계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다만 창작 연재소설의 단계로 들어서면서 작가의 상상력은 그러한 것을 포착해 내지 못한다. 1923년 지면 개혁과 함께 이루어진 연재소설의 판도 변화는 이러한 균열을 봉합하려는 내적인 계기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