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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고전연구검색

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521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성신한문학(~2003)→한문고전연구(200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9권 0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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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의의 목적은 筆者가 지난번에 『漢文古典硏究』 第13輯에 발표한 高麗 `竹林高會` 詩學을 檢證하기 위해 그들의 作品世界를 고찰함에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죽림고회원이 활동했던 기간은 정중부의 난으로 인하여 구귀족이 몰락하고 신진사류가 새로이 등장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옛 문신귀족 출신은 무신들에 의해 가문이 몰락하게 됨에 따라 현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문학관을 바탕으로 당시 형식 위주의 科場文學이라든가 변려문의 유행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였고, 詩가 본질을 벗어나서 戱作化 되는데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고문부흥운동을 제창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實際 작품을 살펴보면 그들의 문학론과 실제 작품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현상이 나타난다. 즉 죽림고회원들은 그들의 문학론에 입각한 글을 쓰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않은 글도 많이 남겼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들의 실제 작품을 검토하여, 그것이 그들의 詩學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검증해보고, 그들의 실제 作品에 그들의 시학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으며, 만약에 그것들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밝혀냄으로써 同時代人으로서 당시 문인들이 지녔던 고민을 살펴보고자 한다.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의 대일인식(對日認識)

손유경 ( Yoo Kyung 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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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일본간의 문화적 교류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는 198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그로 인한 성과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연구대상이 임진왜란 이후 12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조선통신사 연구에 집중되어 있어서 조선 전기에 이루어진 대일 교류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약한 실정이다. 조선통신사들의 문학작품이 일본에 직접 가서 그곳에서 본 경물, 의복, 풍속으로 창화하고 吟詠한 것인 반면, 임난 전에 지어진 양국 사이의 문화적 교류의 산물들은 조선에 있으면서 일본에 대해 듣거나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지은 것이다. 본고는 중종조에 선위사로 활동했던 모재 김안국의 대일인식에 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였다. 김안국 역시 일본에 직접 방문한 적은 없지만 내빙하는 사신들과의 지속적인 교유를 통해 당시 조선에서 일본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었으니, 김안국의 대일인식을 살펴보는 작업은 한 개인의 대일 교류 및 사신과의 교유 활동상을 밝히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김안국은 일본 여러 使僧의 접대를 담당하였는데 본고에서는 특히 지속적인 교류 양상이 드러나고 있는 使僧 붕中, 安心東堂과의 교류 양상에 연구의 포커스를 맞추었다. 『중종실록』에서 역사적 기록을 추출하고, 『모재집』 수록 작품들을 통해서 구체적 양상을 밝히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김안국의 대일인식이 개방적이고 우호적이었음을 밝혀내고, 이러한 인식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는 華夷論에 입각해서 일본을 夷로 파악하던 당시 문사들의 일반적 대일인식과는 구별점을 가지는 것이기에 그 연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 전기의 문사인 김안국의 일본인식을 살펴봄에 있어서 김안국의 문집이나 실록의 자료만을 참고해야 한다는 사실은 대단히 안타깝다. 조선 전기 문인들과의 문학교류 양상이 드러나 있는 다양한 문학작품이 일본에서도 발굴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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臺山 金邁淳은 당대에 유통되는 저술들을 거의 섭렵했던 광범한 독서 이력을 가지고 있고, 그를 통해 이조 후기 학계를 정밀하게 진단하였다. 그는 도학자이자 경학가임에도 보다 유연한 사고로 학문을 대하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기술한 저작 『闕餘散筆』 6권 3책을 남겼다. 대산의 從弟 金龜淳 (1793-1869)은 『궐여산필』 首篇에 대해 `이 십수 장은 바로 『문목표보』와 『유고』의 골자`라고 평한 바 있거니와 이 발언은 사실 『궐여산필』 전편에 그대로 해당된다 해도 過言이 아니다. 그 속에는 顧炎武, 陸롱其, 阮元 등을 비롯한 10여 인의 中朝 학자와 일본학자 太宰純에 대한 비평이 있다. 이들은 모두 중국과 일본의 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로, 이들에 대한 대산의 비평은 인상비평적 성격의 短評도 있거니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학술 성격을 예리하게 지적하여 논리적으로 비평한 것이다. 본고에서는 중국과 일본 학자들에 대한 대산의 비평을 통해 고증학, 불교, 양명학 등에 대한 이조후기 주자학자들의 시각과 고민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조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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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외손자이자 제자인 방산 윤정기는 평생 전국을 방랑하거나 혹은 현지답사를 하며 우리나라 역사지리지인 『동환록』을 저작하고, 역사유적을 다룬 회고시를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글은 방산의 시문집을 검토하여 방산이 평생 전국을 여행하였다는 통설이 고향인 강진을 왕래하며 지은 작품에서 기인한 오해였음을 밝히고, 이 여정에서 지은 기행시를 분석하여 두 가지의 특징적 경향을 추출하였다. 첫째는 역사유적을 對句로 구사하여 懷古詩와 유사한 면모를 보여주지만,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경물로 존재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悲哀의 정조가 일관되게 표현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역사유적 또한 비애감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는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기행시의 특성은 방산이 우리나라의 역사지리에서 소재를 취해 시를 쓸 것을 주장한 다산의 朝鮮詩論을 계승하면서도, 자신의 처지와 정감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서정성을 더욱 강화시켜 나갔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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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문인들과 士大夫家 여성들 사이에서 애호되던 구양수의 비지문의 특징과 그 애호 요인에 대해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후기에 구양수의 비지문은 김창협 등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으며 특히 「瀧岡阡表」는 名文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조선후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비지문은 전통적 유교 규범을 충실히 따르는 여성상을 구현하거나 작자의 情에 의거하여 망자의 일상 체험을 서정적으로 그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 가운데 일반적인 조선후기 여성 묘주 비지문은 대체로 전자의 경향을 따르고 있었다. 필자는 구양수의 비지문, 그 가운데 특히 「瀧岡阡表」가 여성으로 대상으로 하고 있으면서 조선후기 문인들과 士大夫家 여성들 사이에서 비지문 창작의 典範으로 기려졌던 것에 주목하고 「瀧岡阡表」의 어떠한 점이 높이 평가되었으며, 그것이 조선후기 비지문 창작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폈다. 「瀧岡阡表」는 구양수가 부친 사후 60년, 모친 사후 17년 뒤에 쓴 글로 모친의 傳言을 토대로 부친과 모친의 德을 기술한 墓表이다. 이 글은 조선후기 남성 문인들뿐 아니라 士大夫家 부녀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애호되었다. 남성 문인들은 이 글이 墓主 死後 일정 기간이 지나 지어진 점에 주목하여 부모 사후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서 부모의 비지문을 지을 때 구양수의 이 글이 지어진 경위를 빈번히 언급하며 선례로 삼고 있다. 또 이 글에서 구사하고 있는 傳言의 再演 기법이 사실의 객관성을 확보해 준다는 측면에 주목하기도 하였다. 한편 士大夫家 여성들은 이 글이 전통적인 가치를 구현하면서도 이 글에 구사된 傳言의 再演 기법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 즉 여성이 남성의 삶을 기술하는 주체로 등장하여 보다 주체성을 띠는 존재로 부각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 글을 애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대부가 여성들이 자식에게 여성 자신의 死後 이와 같은 글을 지어줄 것을 당부한 몇몇 예가 있는데, 이를 통해 조선후기에 들어서 여성이 비지문 창작에 보다 적극적으로 간여하였던 사정도 확인할 수 있다. 구양수의 이 글은 모친의 傳言에 기대어 부모의 德을 기린 것으로 자칫 단조롭고 추상적인 나열에 그칠 수 있는 부모의 德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李縡가 구양수의 이 글을 典範으로 삼아 부모의 비지문을 작성한 예 등을 통해 구양수의 이 글이 조선후기 비지문 작성에 미친 영향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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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朱熹의 『詩經』 注解書 4種에 대한 비교 검토를 통해 각 책의 특징과 성격을 밝히는 것을 연구 목적으로 하였다. 주희가 직접 저술한 『詩集傳』과 『詩序辨說』, 주희와 그의 門人들간의 問答 기록인 『朱子語類』의 『시경』 관련 부분, 주희의 손자 朱鑑이 편찬한 『詩傳遺說』 등을 대상으로 하여, 각 책의 편찬 시기, 저술 취지, 내용 구성 등의 槪況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아울러 詩經論 各論에 대한 해설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각 책의 특징과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詩集傳』은 주희의 『시경』 주해서의 대표적인 것으로, 漢·唐 舊說을 비롯하여 특히 宋朝 諸家의 說을 두루 수용하여 宋學 『시경』 연구의 집대성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시경론 관련 논술을 직접 제시하기 보다는, 각 詩篇에 대한 주석과 해설의 방식으로 시편의 내용 풀이에 주력하면서 주희의 詩經觀을 제시하였다. 『詩序辨說』은 책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주로 詩序의 문제점을 논박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大序를 비롯하여 각 시편에 해당하는 小序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변론을 펼치고 있으며, 詩序와 관련된 주희의 견해가 집약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朱子語類』의 권80, 권81, 권23에는 각 시편에 대한 해설 뿐 아니라, 美刺說 부정, 大序의 `變風止乎禮義`에 대한 부정, 詩序子夏所作說 부정, 讀詩者의 `思無邪` 주장, 反詩序說, 淫詩說 등 주희 시경론의 주요 내용에 대한 다양하고 상세한 자료가 제시되어 있다. 특히 주희 시경론의 晩年 定論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는 의의를 가진다. 『詩傳遺說』은 『晦庵集』과 『朱子語類』 등에 보이는 주희 시경론 관련 자료를 발췌하여 수록한 것으로, 『시집전』에 누락된 주희 시경론의 내용을 집성함으로써 『시집전』의 내용을 보충하였다는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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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동양 정치사에서 禮治에서 脫禮治로 진행되는 법제 변화를 언급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인물은 荀子나 商앙이다. 순자는 외재적인 제도형식으로 인문질서를 건설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그는 儒家와 法家를 이어주는 교량자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상앙은 秦獻公의 개혁정책을 기반으로 孝公을 도와 變法개혁을 단행하여 중국 서쪽 미개국이었던 秦國을 戰國七雄 중 가장 먼저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게 하고, 農戰정책을 통해 부국강병을 달성하여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으며, 진시황의 천하통일의 기반을 구축했던 공헌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법제의 변화와 발전은 전국시대 법가 계열의 사상가들에 의해 최초로 시도된 것이 아니라, 周代의 상업발달과 화폐유통 과정에서 벌금제도가 성립됨으로써 그 단초가 보였고, 그 변화가 춘추시대에 이어져서 상업이 발달하고 상인의 위상이 높았던 鄭國에서 나타나 확대 시행되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법제의 변화와 발달이 전국시대 법가들에 의해 현저하게 이루어졌다는 기존의 주장을 재검토하고, 법제 변화경향성의 시초와 확대를 周代의 벌금제도와 鄭國의 성문법 제정에서 찾는 데 그 목적을 두고자 한다. 아울러 鄭國의 성문법 제정의 의미가 피통치자의 권리보호와 객관적인 법 집행을 통한 국가질서 확립에 있음에 주목하고, 鄭國이 현대사회의 법률 제정과 목적에도 부합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법제 발달을 이룩하였으며, 이러한 변화경향성에 힘입어 상앙에 이르러서는 형법에 의한 규제가 일반화되어 독립적인 법인격이 형성될 수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유교(儒敎) 교육론(敎育論)의 교학(敎學)의 상관성(相關性)

김일환 ( Il Hwan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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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은 본질적으로 社會的 性格을 가지고 있다. 儒敎 敎育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상호간 유대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儒學의 敎學精神의 핵심은 『書經』과 『禮記』에 보이는 `敎學相長`과 `斅學半`이며, 이것은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인 기능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敎學相長은 敎와 學이 서로 대등한 관계에 있는 성어이지만, 효학반은 남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은 자기에게도 공부가 된다는 의미로서 가르침보다는 배움에 중점을 둔 성어라 할 수 있다. `가르침과 배움의 상호 보완` 속에는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전제되어 있다.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도움이 된다는 것은 곧 가르치다 보면 학문의 어려움을 깨닫게 되고 배우다 보면 부족함을 느껴서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斅學半은 교육 주체의 자기계발과 자아성찰을 강조한 점이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儒學에서는 修己에서 시작하여 治人에 도달함으로써 학문의 도가 완성된다고 파악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간 상호간의 유대와 화합을 지향하는 참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교의 교육정신을 재조명하여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孔子는 자신에 대하여 말할 때 `완성된 인간`으로 자처하지 않고 항상 탐구하는 자임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유교의 교학정신은 바로 `가르침은 배움의 반이다`라는 相補的 關係를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현대 사회에 있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부단한 배움의 자세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敎育은 본래 인간관계의 고리가 연결된 것이어야 한다. 현대사회의 교육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지금은 특히 『論語』에 보이는 爲己之學의 자세와 교학상장, 효학반의 교학정신이 재조명되어야 할 때이다. 특히 교육자와 지도자의 열린 마음은 교육 주체와 객체의 교감과 융화, 나아가서는 사회적 화해와 화합을 이룰 수 있는 필수적 요소라 하겠다.

한문과(漢文科) 교육에서의 다문화(多文化) 교육 방안

이동재 ( Dong Jae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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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회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유입과 결혼 移民者 등으로 총인구의 2%를 넘는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이에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지원 대책」을 세워서, 이들을 한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이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인 이주민에 국한된 정책으로서, 다문화 정책의 방향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多文化란 사회의 소수 구성원들이 가진 다양한 固有文化가 支配文化로 통합되기 보다는 각각의 고유성을 그대로 간직하며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다문화교육은 자신을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는 寬容敎育이며, 사회의 그릇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대항하는 법을 배우는 人權敎育이기 때문에 한문과 교육과 많은 관련성을 가진다. 한문과 교육에서의 다문화 교육의 準據는 한문과의 교육목표에서 찾을 수 있다. 한문과 교육 목표는 人權 敎育, 反戰平和 敎育, 生態環境 敎育, 複數文化 敎育, 國際理解 敎育, 反偏見 敎育, 世界化 敎育 등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한문과 교육이 전통문화 교육에 초점을 두어, 민족의 동질성과 전통문화의 固守에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다른 문화를 이해하여야 한다는 교육목표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他民族, 他文化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였다. 따라서 한문과 교육을 통한 다문화 교육에서는 세 가지 점을 유의하여 교육하여야 한다. 첫째, 한문과 교육 내용이 `仁`과 같이 인간존중 사상과 이를 구현하는 `忠恕`와 같은 寬容敎育을 통해 민주적 이상을 지지하는 평등 指向 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둘째, 우리의 역사에서, 金忠善과 같은 외국에서 이주하여 성공한 사례와 우리 민족의 구성원이 외국에 나가 다른 문화에 적응하여 성공한 사례를 교육의 내용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셋째, 한문과의 교육 내용은 인권 존중의식과 평등 의식이 主流를 이루지만 일부 내용 가운데 兩性平等에 어긋나거나 `單一民族`같이 우리 민족의 배타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내용은 排除하여야 한다. 나아가 현재의 한문과를 통한 다문화 교육은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아닌 내국인을 대상으로 이주민 문화의 多樣性과 異質性을 이해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교육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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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개정 7차 한문과 교육 과정`의 `평가` 에 관한 부분의 의의와 문제점 그리고 그로 인한 한문과 교육의 전망을 논의하였다. 개정된 교육과정에서의 `평가` 부분은 교과서 제작이나 교육 실현의 규범이 되기에 적정하게 설계되었다. 또 그 내용이 교육 평가의 최근 동향에 적극 부응하는 방향으로 기술되었다. 또 평가 부분은 2007 개정 교육과정 총론과의 연계도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것은 개정된 교육과정의 `평가` 부분에서 평가 기준을 탄력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번에도 정의적 영역과 심동적 영역의 평가에 관한 언급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한문 지식` 영역이 한문과 내용체계의 대영역으로 설정되면서 평가에서도 그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 또한 염려스럽다. 평가 결과의 활용 부분에서 일부 진술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개정된 한문과 교육과정의 내용 전반이 그러하듯이 `평가`에 관한 사항 역시 크게 바뀜에 따라 한문과 교사들의 곤란이 초래될 것이므로 일선 교사들의 평가 도구 제작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다. 성취 기준이나 평가 기준을 담은 지침서와 그 구체적 적용 양상을 보여주는 예제의 개발과 보급이 있어야 한다. `평가`에 관한 사항들이 한층 체계화, 구체화되어 교사들의 평가에 관한 관심이 많아지고 학생 평가 전문성 신장 요구가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양질의 한문과 평가 관련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한문과 교육과정에서 `평가` 에 관한 사항이 비중을 두고 다루어진 것은, 교과서 집필진들에게 교과서를 가르치면서 효과적으로 동원할 평가 도구 마련에 유념하게 할 것이다. 그동안 있어 온 교과서 속 평가 문항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들이 잦아들게 될 것이다. 한문과 교수-학습 방법의 다양화에도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비형식적, 직접적, 질적 평가 등을 실시하려면 교수-학습 방법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또 평가 결과의 분석과 재투입 과정에서 교수-학습 방법의 개선이 수반될 것이다. 한문과는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시험 과목으로 편성되었고, 지금까지 여러 차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모의고사를 실시하면서 한문 교육 관계자들의 평가 문항 제작 및 적용 경험이 성공적으로 축적되었다. 시도 교육청이 주관하는 모의고사도 여러 번 실시하였으며, 한문 교육 관련 학회와 교사 모임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축적된 경험과 활발한 인적 자원으로 보아 개정 한문과 교육과정의 평가 역시 성공적인 방향으로 적용될 것이 분명하다. 주의해야 할 것은 개정 한문과 교육과정의 초기 적용 시점이다. 초기 적용 때부터 시행착오 없이 새롭게 바뀐 것들의 적용이 효과적으로 증명되어야 개정 교육과정의 교육 현장 실현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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