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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Literary History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7-096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0권 0호 (2016)

책머리에 : 창간호에서 59호까지의 두께

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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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경림, 염무웅, 백낙청의 비평을 대상으로 하여 1970년대 전반기의 ``민중``, ``민중문학``의 정치성에 대해 규명하고 있다. ``민중``이란 1971년 비상사태 선언 후 유신체제를 주도한 ``권위주의의 결단하는 주체``에 맞서 저항세력이 상상하고 호명해낸 고유의 정치적 주체이다. 그리고 ``민중문학``이란 이러한 정치적 주체의 형상화에 핵심 있는데, 그 특성은 김정한과 황석영의 작품, 이에 대한 비평에서 매우 잘 드러난다. 김정한의 인물들은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결단에 맞서는 70년대 고유의 민주주의적인 정치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황석영의 인물들은 ``몫 없는 자임을 선언하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민중에서 한 걸음 나가 있다. 그들은 믿음, 사랑, 희망을 실천하는 정치신학적 차원의 민중이다. 백낙청의 관점에 따를 때, 그들은 양심에 따라 자연스럽게 역사적 사명에 이르고 사명에 정진하는 주체이다. 사명(부름)에 정진하는 그들 고유의 역설적 삶은 ``기다림``의 자세와 시간을 본질로 한다.

특집 : 1970년대의 비상사태와 근대성

황정아 ( Jung A Hw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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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의 국가비상사태 선언 및 1972년 비상계엄 선포와 더불어 유신체제가 수립한 때부터 1979년 박정희정권이 마침내 몰락하면서 또다시 국가비상사태가 선언되기에이르기까지, 1970년대는 말그대로 비상사태가 일상이 된 시대였다. 유신체제가 한국 역사에서 비상사태를 가장 직접적이고 전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상사태에 대한 이해는1970년대를 인식하는 한 가지 유익한 방도가 될 수 있다. 비상사태는 한편으로는 특정시기에 예외적인 사건으로 발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외상태의 상례화``라는 논제에 암시되어 있듯이 근대 역사 전반에 잠재한 요소이기도 하다. 근대적 법질서나 주권권력 같은 정치영역을 비롯하여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구조적으로 비상사태를 포함하고 있다면, 1970년대비상사태의 함의를 더 복합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근대성 자체에 내장된 비상사태의 층위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 글은 예외상태에 관한 이론 및 본원적 자본축적에 관한 논의들을 참조하여 유신체제와 근대성에 동시에 걸쳐있는 비상사태의 의미망을 중층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는 1970년대의 현재성을 가늠하고 비상사태와의적대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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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의 70년대 문학비평 담론에서 김종철 문학비평이 갖는 의미를 탐색해보고자 하였다. 김종철은 그의 문학비평에서 세계를 매우 가변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김종철에게 세계가 인식하고 파악하며 재현해야하는 정태적 대상이 아니라 창조하고 생성하며 대화하는 관계적 지평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이러한 독특한 세계인식은 70년대 문학비평의 근대적 담론으로부터 문학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힘을 생성하며, 이러한 힘을 통해 타자와의 연대 가능성을 문학적인 방법으로 성취한다. 김종철이 그의 문학비평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변화와 과정 속에 있는 현실과 관계를 맺는 문학이며, 그러한 현실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문학의 가능성이다. 그는 문학에는 구조로 환원될 수 없는 구체성의 영역이 존재함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현실과 문학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관계의 지평 위에 올려놓으려 한다. 문학의 구체성에 대한 김종철의 강조는 산업화와 노동소외라는 근대 산업 사회의 변화 속에서 공적 영역이 상실되고 자율적 인간의 소멸하여사회의 공적 기능이 마비된 사회적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학에 대한, 혹은 문학을 통해 보여주는 삶의 구체성에 대한 그의 감각은 문학이나 삶을 이야기하는 언어가 추상적인 개념이나 개념적 표상으로 전환되는 것을 중지시키곤 하는데, 이러한 점은 70년대 후반 문학 비평의 주요 논점이었던 ``제3세계 문학``에 대한 서술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김종철의 ``제3세계 문학론``은 민족주의.민중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당대의제3세계 문학론의 담론적 경향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그것은 그가 민족이라는 특수한집단, 혹은 민중이라는 특수한 계층 및 계급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보편적 존재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김종철은 제3세계 문학에 등장하는 억압받는 민중들에게 민족이나 민중과같은 집단적 개념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타자적 존재로서그 누구도 대신하거나 교환될 수 없는 보편 존재로서의 인간성을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것은 사회로부터 밖으로 내몰려 있는 타자를 가시적인 세계로 현상하는 일, 다시 말해 공적인 관계로 타자와 마주하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세계의 열림을 현시하는 것이며, 이러한 생생한 관계의 변화 속에서 개인적 수준이 아닌 세계의 전체적인 구조 변혁에 준하는 인간 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끊임없이 추상적인 개념과 언어의 세계에서 구체적인 삶의 세계로 내려가서 타자와의 생생하게감각할 수 있는 ``살아있는 관계``를 회복하려는 그의 문학적 노력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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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74년부터 1975년까지 벌어진 일련의 정치적 사태 속에서 발현된 시민성의 위상을 ``프레스 정동``이라는 관점으로 살핀 글이다. 『동아일보』 기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자유언론실천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문학공론장은 자유실천문인협회를 결성하여 언론진영이 벌이는 투쟁을 적극 도왔다. 이 과정에서 신문이라는 인쇄매체는 하나의 정치적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며, ``표현의 자유``는 그 계기를 촉발하는 정동적 힘을 발휘했다. 문학자들이 ``선언`` 및 문인광고를 통해 공론장을 조성하는 동안 독자들은 자신을 ``자유``, ``민주`` 시민으로 규정하면서 자발적으로 언설의 장에 합세했다.『동아일보』의 ``백지광고`` 사태는 ``시민으로서의 독자``를 호명하게 만든 계기로써 사실상 유례없는 정동적 힘의 장을 생산해냈다. ``교양의 효용``이 ``표현의 자유``와 결합하여 나타났을 때 이들 ``시민으로서의 독자``는 자유를 수행하는 주체로서 국가의 공공성을 조롱하고 문제제기하는 위협적인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작가들이 ``선언``을 통해 문학성을 쇄신하면서 독자들에게 정동을 불어넣는 존재들이었다면, 이들은 1970년대 문학장을 ``대중``의 취향 및 소산으로 전환시킨 주체들이다. 작가는 그 대중의일원으로서 호흡하고자 했다.

19세기 소설론의 장(場)과 그 담론들 -소설 서문과 평비문을 중심으로-

장예준 ( Yae Joon J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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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세기 소설론 논의 양상을 한문 장편소설 작자와 동료들, 『남가록』 작자, 평비소설 작자와 평비자 세 부류로 나누고, 소설론을 전개하게 된 계기와 관심사, 소설의 문체와 정체성 탐구, 소설에 대한 인식, 소설의 창작 동기와 주제 구현 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논의를 통해 19세기 소설론의 장(場)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님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견문, 문예적 지향과 취향 등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측면에서 소설의 성격을 규정하려 하였다. 그래서 소설론 전개의 계기와 관심사, 소설에 대한 인식 등에서 서로다른 면모를 보였다. 세 부류 모두 소설을 자신들의 관점에서 개별적으로 규정하였던 바, ``소설에 대한 개별적 규정의 장``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이는 보편적 양식으로서 ``소설``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인정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유행하는 수많은 소설 가운데 자신들의 집단에서 나온 소설 정도만이 가치있다는, 철저한 구별짓기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가치 있는 소설의 기준 확립과 구별짓기의 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소설 창작의 기반, 소설 문장의 운용, 소설의 문체와 본질, 윤리적 감계가 뒷받침된 주제 구현 등의 측면에서는 공통된 입장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의도하지 않았지만 ``소설이라는 문체의 성격을 확립한 장``으로서 기능했다. 결국 19세기 소설론의 장(場)은 비록 부류들 간에 소설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각기 다른 관점에서 소설이라는 문체를 탐구하여 규정하고 그 가치를 놓고 각축을 벌이던 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중교(柳重敎)(1821~1893)의 춘추대의, 위정척사, 중화, 소중화

하영휘 ( Young Whee 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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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주요한 사상이었던 춘추대의, 위정척사, 중화, 소중화 등은 서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상호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그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논문은 화서학파의 이론가 유중교의 저술을 통하여 이 네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춘추대의는 공자의 『춘추』에서 나와 중화를 높이고 이적을 물리칠 것을 주장하는 사상으로, 병자호란 후 완성되었다. 위정척사는 『맹자』에서 나와 정학(正學)을 지키고 사학(邪學) 을 물리칠 것을 주장하는 사상으로, 18세기 이후 서학(西學)의 유행에 대응하여 대두된 사상이다. 이 두 사상이 표방하는 바는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추구한 것은 중화다. 중화는 삼강오상, 예악, 제도 등 중국고대의 이상적인 문화를 말한다. 명의 멸망과 동시에 중국에서 중화문화가 사라지자, 조선의 사대부들은 오직 조선에만 남은 중화문화의 맥을 잘 보존하여 장차 꽃피워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소중화사상이다. 유중교는 오직 중화문화만이 세상에 질서와 평화를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중화문화 지상주의를 부르짖었다. 그에게 국가는 그 다음문제였고, 민족은 애초에 그 개념조차 없었다.

1910~20년대 "자유시" 논의에 나타난 장르적 무의식

고봉준 ( Bong Jun K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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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는 ``새로운 시[新詩]``의 모색기였다. 근대문학의 하위범주이자 근대시의동의어인 ``새로운 시``를 현실화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과거의 시, 전통적인 문학양식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 차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에대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대시 논의를 주도한 김억, 황석우, 주요한 등의 일본유학파 출신들은 일본을 경유한 프랑스 상징주의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고, 그것은 ``자유시``라는 개념으로 압축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조선적 근대문학``이라는 이상과 프랑스 상징주의의 자유시가 완전히 일치될 수는 없었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에서촉발된 ``자유시론``은 ``근대 자유시``라는 표현처럼 지금도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근대시의 성립에 있어서 프랑스 상징주의라는 외래 사조의 영향이 컸다는 주장은 1910~20년대 프랑스 상징주의의 수용과정이 보여주는 ``시``에 대한 당대의 장르적 무의식 문제를 빠뜨리고 있다. 이 논문은 이 지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가령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번역 소개된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은 보들레르가 베를렌느이다. 하지만 프랑스 상징주의의 문학적 이념을 대표하는 것은 이들이 아니라 랭보와 말라르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랭보와 말라르메의 작품은 번역되지 않았다. 상징주의 수용과정에서 한국문학은 보들레르와 베를렌느에게는 각별한 애정을 보였으나, 랭보와 말라르메에게는 무관심했다. 이러한 선택적친화성은 ``전통``이 전무하다고 주장한 폐허 동인들의 생각과 달리 장르에 대한 선이해에기초하여 상징주의를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이해 때문에 김억을 비롯한 많은 문학인들은 ``노래성``과 ``음악성``을 구분할 수 없었다. 시는 운문이어야 하며, 노래여야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장르적 무의식의 구체적 내용이다. 흔히근대시와 근대 이전의 시는 시(詩)와 시가(詩歌)의 차이를 통해 설명되지만, 실제 1910~20 년대 자유시 논의에서 ``시``와 ``시가``는 구분되지 않았다. ``문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해조선적 근대문학의 방향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의문학인들에게 여전히 시는 ``노래``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노래``를 배제하고 설명된 근대시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염상섭의 자기혁명과 초기 문학

이경민 ( Kyung Min Y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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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염상섭의 초기 문학이 자기혁명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었음을 밝히는 데 있다. 자기혁명은 염상섭이 적어도 세 가지 담론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역사적 개념이다. 하나는 『학지광』을 매개로 보급된 개인주의 사상이며, 다른 하나는 아나키즘이며, 마지막은 도스토예프스키·니체의 초인 사상이다. 초기에 염상섭은 자기혁명을 온건한 형태로 이해하는 학지광 의 경향과 거리를 두면서 내적 해방과 외적 해방을 동시에 강조하는 『삼광』의 아나키즘적 경향에 경사된다. 그러다가 그는 슈티르너를 통해 자기혁명을 ``모든 고정관념의 파괴와 일체의 권위에 대한 반역``으로 정식화한다. 이 무렵 노동운동가에서 소설가로 변모한 염상섭은 자기극복의 문제에 천착했던 도스토예프스키·니체에게서 자기혁명의 소설화에 필요한 형식들을 빌려온다. 「암야」는 도스토예프스키·니체를 미분화된 형태로 원용한다. 대지에 입맞추는 장면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온 것이지만 이때 대지는 하늘과 대비되는 ``땅(삶)``을 뜻한다는 점에서 니체적 의미를 띤다. 「표본실의 청개고리」는 ``병자의 광학``이 반영된 소설로서 광인의 삶을 통해 니힐리즘의 극복을 의도하였다. 니힐리즘의 극복은 지배적인 가치에 대한 ``비판``이라는 슈티르너적 방식과 비극적 경험을 통한 자기고양이라는 니체적 방식을 통해 도모된다. 「제야」는 라스콜리니코프의 ``경계넘기를 차용하여 자기혁명을 구현하는데 이는 인습적 혼인을 극복하고자 하는 최정인의 저항적 삶으로 형상화된다. 최정인은 남편의 용서를 계기로 내적 갱생을 하게 되면서 자기혁명의 주체로 완성된다.

프로문학의 제도적 연원 -김기진의 경우-

박현수 ( Hyun Soo 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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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기진을 중심으로 조선에서 프로문학을 정초하는 과정과 의미를 가늠하려 했다. 「Promeneade Sentimental」, 「눈물의巡禮」 등에서 김기진은 산책을 행하는데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일정한 준거를 따르고 있다. 김기진이 새로운 문학적 진로의 개척한 것은 나카니시 이노스케의 소설 『자土に芽ぐむもの』를 읽고 나서였는데, 둘 사이에는 낙차가 존재한다. 그는 「ㅁ다시「클라레테」에對하야」, 「支配階級敎化·被支配階級敎化」 등에서 자본주의 제도를 붕괴시키는 임무를 사회주의에 부여하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프롤레타리아 컬트를 든다. 앞선 주장은 바르뷔스, 아소 히사시 등의 글을 연원으로 하지만, 미끄러짐에 대한 주목 역시 필요하다. 문학이 자본주의 제도에 지배당하는 영혼을 구출해 내는 무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주장은 곧 환멸, 혐오 등과 조우하게 된다. 김기진은 「Promeneade Sentimental」을 발표하는 것을 계기로 연이어 『개벽』에 글을 실었다. 그것은 당시 이루어졌던 『개벽』의 사상적 지향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김기진은『개벽』에 글을 발표하던 중 매일신보사에 입사를 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로직과 육체의 불균형``을 면하려다가 다시 ``절름발이``가 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기진이『개벽』에 일련의 글들을 발표한 것은 문학관에 변화를 거친 후였으며, 그것은 1920년대 동인지 문학을 부정하는 작업과 연결이 되는 것이었다. 1920년대 동인지 문학은 ``문학``의 반대편에 ``현실``을 위치시켰을 뿐 그것의 인식에 있어서는 추상적이었는데, 그 음영은 김기진의 문학에도 드리워져 있다. 당시『개벽』의 변화가 당대 조선의 사회, 경제 영역에서 제기되는 문제의 원인이나 개선 방안을 다루었다는 데서 그 의의는 부정될 수 없다.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개벽』이 김기진에게 ``머릿속에서 뽑아낸 로직``이 ``발바닥을 붙이고 있는 땅``과 교섭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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