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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urnal of chi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중어중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735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8권 0호 (2012)

張爲《詩人主客圖》之體系與詩學思想

성은리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38권 0호, 2012 pp. 7-27 ( 총 21 pages)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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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句圖``는 시가비평방법으로서 꾸준히 명맥을 이어온 ``摘句批評``의 한 형태이다. 張爲의 《詩人主客圖》는 현존하는 最古의 ``句圖``임에도, 남다른 시가 분류기준으로 인해 오랜 세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詩人主客圖》는 전통적인 《詩品》류 비평에서 탈피, 참신한 체계를 세우고, 새로운 비평 기준을 제시한 저술로서 만당시기 시가 창작 및 비평에 나타난 변화 기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장위는 《詩人主客圖》를 통해서 ``法度``라는 포괄적인 분류 기준을 제시했다. 法度는 시의 형식 및 내용, 나아가 詩를 통해 드러나는 분위기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風格``과 흡사하다. 장위는 이 ``法度``에 따라 中晩唐詩人84명을 ``廣大敎化``, ``高古奧逸``, ``淸奇雅正``, ``淸奇僻苦``, ``博解宏拔``, ``괴奇美麗`` 여섯부류로 나눴으며, 각각 宗主격인 ``主`` 한 사람을 선정한 뒤, ``客``의 위치에 작품의 예술적 성취에 따라 ``上入室``, ``入室``, ``升堂``과 ``及門``을 배열했다. 위와 같은 시가 분류는 儒·佛·道思想을 고루 흡수한 장위의 哲學과 세속적 견해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운 성정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또, 여섯부류 사이에 등급을 설정하지 않은 것은 각각의 작품에 드러나는 ``個性``의 가치를 인정한 결과이다. 《詩人主客圖》는 晩唐詩人의 전통의 계승과 돌파를 아우르는 시가 창작 경향을 담아낸 저작물로서, 司空圖의 《二十四詩品》과 宋代이후 성행한 "風格流派論"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지(李贄)와 마테오 리치의 만남과 의미

김혜경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38권 0호, 2012 pp. 29-54 ( 총 26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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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十六世紀卽將結束之際,李贄與基督敎傳敎士利瑪竇曾經有過幾次會面。依據他們留下的紀錄,兩人在南京見面三次、在濟寧見面兩次。身爲中西兩個世界最先鋒的人物,他們的話題當然不外乎宗敎和思想之類,尤其在濟寧的對話據說是頗有深度的。由此推論,他們相遇或許可以發展爲兩種不同文明之間的對話。但遺憾的是,到目前爲止,我們還無法조到會談所帶來的任何結果。因此,本文在分析探討兩人往來事實的基礎上,將他們之間所存在的隔開歸納爲兩種。第一、李贄是一位非常激進的、要打破因襲的自由主義者。他徹底批判所謂的聖賢和社會道德觀念。當時,在混亂的明末,還有一批要``救國``的儒學正統派――東林黨。他們不僅追求科學技術的實學,還排斥佛敎等異端,因而以張問達等爲首的東林黨核心人物逼迫儒學判逆李贄,直致使他因走投無路而死。利瑪竇曾經在南京結交了흔多屬於泰州學派的非正統儒家,但他一到北京就認爲東林黨才是政治主流,幷爲了傳敎而聯合他門。之後,利氏對李贄的態度也有所變化,他也加入到批評李贄的隊伍中去了。第二、利瑪竇是基督敎傳敎士,李贄却與此相反,不僅是고理學的,同時還是佛敎的僧人。宋明理學本來是依據無神論而構成的形而上學,也就是在中國傳統土壤中온釀出來的精華,而且已經涵蓋了佛、道兩敎的一些因素。因爲明末是統合분圍濃厚的時代,於是李贄等人提出的``三敎合一``論便流行起來了,那便是旣具多元化,又具有相對主義性質的中國固有思想。而西方基督敎的世界觀니,恰恰與此相反,是在一元論與絶對主義的基礎上所建立的。利瑪竇雖然提出了``補儒易佛``以企圖使基督敎與儒家相結合,但他却無法接受宋明理學的無神論,他只不過是肯定孔子的原始儒敎而已,而對當時的主流思想理學却予以否定。他的這種認識缺陷,旣導致了與李贄不能兩立的局面,又給後來的傳敎活動帶來了不利的影響。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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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傳奇《규髥客傳》在明代頗受曲家們關注。明代戱曲家張鳳翼《紅拂記》和馮夢龍《女丈夫》都是以唐傳奇《규髥客傳》爲底本,根據各自的處境、各自不同的社會環境及不同的戱曲觀改編而成的戱曲作品。由於唐傳奇編幅不長,他們兩個人采取了雙重結構。張鳳翼夾雜了樂昌公主破鏡重圓的故事,馮夢龍穿揷了娘子軍的故事。樂昌公主的故事帶著濃厚的男女之情的色彩,那個故事把紅拂的俠女形象變成了``懦弱``的女人,因此許多曲論家批評《紅拂記》情節蕪漫。馮夢龍從結構入手,增刪出目情節,故事情節保持了戱劇結構和人物形象的統一性。馮夢龍對主要事件(``私奔``、``西嶽之夢``、``규髥下海``等)的處理也是흔周到。他注意關目之間的貫穿銜接和埋伏照應。馮夢龍在眉批中無數次提到的``張本``,就是伏筆之意。馮夢龍除了文本上的改編以外,還兼顧了表演上的效果,比如說地文、道具、揷科打원、曲律問題。這些問題以後値得繼續硏究的課題。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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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雨花》是一部明末淸初影響頗大的長篇彈詞作品。故事則以明末的朝政爲線索,通過"정擊"、"紅丸"和"移宮"三案之爭,以及魏忠賢的特務統治,描寫了以主人公左維明爲代表的正直的官僚與權臣方從哲、外戚鄭國泰以及宦官魏忠賢之間的明爭暗鬪,顯然這是一部富於政治色彩的文學作品,表達了作者鮮明的政治傾向和豊富的思想內涵。但敍事的重點幷非這三大歷史案件,而是主人公左維明、左儀貞父女的家庭生活、政治活動。更有甚者,名義上是寫史彈詞作品,但完全擺脫了對具體的曆史事件的依賴,只是借助某個歷史背景以及某些歷史人物展開敍事,家庭生活以及爲女子張目依然是此書描繪的重點。這一特點與彈詞的作者及讀者幾乎都是女性有關,由於當時的社會環境,女性作家們大部分深處內閨,導致타們對男子社交、生活方式的陌生,使타們只能揚長避短,多寫타們所熟悉的人情事理、家庭生活。而這也正是大部分水平一般的女性讀者所感興趣的。女性讀者欣賞彈詞首先幷不是想從中學到些什마或者發現些什마重大、嚴肅的人生哲理。他們最初的欣賞動機就是想從彈詞中得到娛樂,或是暫時忘却一下現實人生的種種煩惱,或是在愉悅中讓靈魂得到片刻的休息"或是追求感官上的刺激以獲得精神上的消遣和娛樂。作者把滿腹的心事都轉移到了主人公的身上,通過主人公形象的塑造來表現作者內心的幻想和渴望。深閨庭院限制了女性的空間,對外部世界的向往幾乎深藏於每一個女性的內心。

紅樓夢子弟書《露淚緣》的藝術特色

함영은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38권 0호, 2012 pp. 111-130 ( 총 20 pages)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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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의 영역에서 청대에 크게 성행한 자제서 장르는 아직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영역이다. 본문에서는 홍루몽 원작 소설의 일부 대목을 소재로 하여 엮은 자제서 노루연을 대상으로, 홍루몽 이야기의 변용 양상 및 그 문화적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비교적 충실하게 원작 홍루몽을 계승한 여타 소설과 희곡에 비해 홍루몽 자제서는 그 수용 과정에서 표현의 솔직함과 소박함 등의 특징을 보이며 독자적인 장르를 이루어나갔다. 내용과 형식양면에서의 비교를 통해, 내용의 통속적인 성격과 세부 묘사에서의 수사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자제서는 시대적 맥락에 의해 원작에 비해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데 대중의 취향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특징이 있는 한편, 편폭 면에서의 단편화와 언어 사용 면에서의 구어화 등의 특징을 갖는다. 자제서의 텍스트가 다른 연창 장르에 비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차이점은 좀 더 통속적인 면모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대중의 기대와 기호에 부응하는 것으로, 민중의 정서에 부합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전승 과정에서 일부가 보태어지거나 빠지게 되는데 이것 또한 구전문학의 탄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통속성은 불가피하나 설창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것으로 자제서에서도 빠질 수 없는 특징이다. 강창의 민간문학으로서의 의의는 변용된 문헌의 문자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변화해가는 텍스트의 내용을 해석하여 왜 그렇게 변하게 되는가 하는 것을 시대조류와 사회통념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대륙에서는 자제서의 강창문학으로서의 의의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여 주제의식의 통속화나 표현의 저속함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간과해버린 점이 있다. 본문에서는 그동안 간과된 영역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으로 홍루몽 자제서가 갖는 독자적인 자리를 확인하고자 하였으며, 고정된 텍스트가 아닌 전승 맥락을 고려한 텍스트 읽기에 의미를 두었다.

劉師培對經學今古文的看法及其局限

문병찬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38권 0호, 2012 pp. 131-145 ( 총 15 pages)
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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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師培는 晩淸民國시대 古文經學의 大師중 한명이다. 일생을 그의 집안의 家學을 이어받아 《左傳》 연구와 今古文의 源流를 연구하는데 힘을 썼다. 그의 저서 《漢代古文學辨誣》를 보면 淸代中期이래 점차 興起한 今文經學의 대표적인 인물 劉逢錄、宋翔鳳、魏源、鞏自珍 등의 견해에 대해 《左傳》의 傳承淵源은 그 자체에 있으며 戰國, 秦漢시대 이전에는 今古文의 구분이 없었으며, 經學의 今古文의 구분은 西漢시대에서 부터 시작되었다고 논박하였다. 廖平《今古學考》에서 《王制》는 今文이고, 《周禮》는 古文의 계통이라 구분 지은 견해에 대해서 劉師培는 《王制》의 原本은 古文이고, 漢代今文經學家에 의해 曲解를 거치면서 비로서 지금의 面貌로 바뀌었다고 반박하였다. 전체적으로 볼때 劉師培의 觀點은 다방면으로 廖平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立論방법 에서는 廖平의 影響을 지대하게 받았다. 그와 동시대의 章太炎과 비교해 볼때, 劉師培의 학설은 歷史적 안목 부족, 지나친 西漢古學숭배, 今古門戶의 견해는 그의 학설의 歷史한계성이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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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起源於岩畵和陶器上的各種多樣化的圖畵和符號.通過觀察根據岩畵上顯現的各種符號的象徵性意義,對漢字的本義和本義中推導出來的引申義的硏究奠定了重要的基礎.從舊石器時代開始,湧現出有著多樣化的象徵性意義的符號.在這些符號之中``◇``符號在韓國和包括中國在內的世界各個國家都有發現,有關這個흔多學者推導出了``女性生殖器``和相關符號的結論.使用文字符號``◇``的蘇美爾族是用``光和白天``的意思來表現出來的,還有````是母體,````是子孫的意義表現的.雖然中國古文字中的甲骨文和金文裏也使用過符號``◇``,但是我們不能把握這個符號的準確的意味,只能把握這個符號用族徽,人名來使用過而已.所以我們進行了對古文字字形中含有符號``◇``,````,````的漢字的分析和硏究,推測出了以下結論.第一,通過對古文字中``齊``字的硏究,可以發現符號``◇``所象徵的意義是和``生命的孕胎和開始``,``生命的誕生``,``臍帶``有著密接的關系.第二,通過分析金文字形和``也``字的相關性,我們得到了符號``◇``的聯接形的符號````(요,玄,멱)是表示``臍帶``的結論.這種結論下,我們能把``繁``,孫,``禦``,``胤``,``率``,``紹``,````,``亂``等一些漢字裏的符號````用``臍帶``來解釋.這樣的解釋更接近於以上漢字的本義.第三,通過分析《說文》裏的重疊型文字,我們得到了符號````的衆疊型符號````(,玆,絲)的象徵意義是和符號````的象徵意義基本上沒有區別.這種結論下,我們能把``幽``,``玆``(慈,滋,자),``繼``,``絶``,``紹``,``斷``,``幾``(기,기,饑,기),``련````산``,``蠻``等一些漢字裏的符號````也用``臍帶``來解釋.這樣的解釋更接近於以上漢字的本義.以上的內容能證明,岩畵符號出現在甲骨文和金文的字形裏的時後,岩畵符號的象徵意義與甲骨文和金文的本義的關系有著密切的聯系.
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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該論文的硏究目的是總結朝鮮時代中國語言文字硏究的成果,通過考察李德懋的《靑莊館全書》中的內容,了解當時朝鮮對小學的硏究水平。李德懋認爲文字是萬事的根本,他强調學習六書和說文的必要性,主張使用正確的漢子發音,探究漢字書體的轉變和詞彙的來源等等。由此我們可以了解到李德懋個人乃至朝鮮中後期對小學的硏究情況。以後我們還要繼續조出這種未被發現的硏究成果,來記述韓國漢字基礎學的曆史和傳統。

유(有)의 의미기능과 유(有)자문 빈어의 특징

홍연옥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38권 0호, 2012 pp. 197-224 ( 총 28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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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文認爲"有"的核心意義是"特定値的獲得",本文根據"有"的特定値的種類的不同,對其多種意義的形成進行了考察。考察的結果是,外部擁有會形成"擁有"意,內部擁有的所取得値爲事物、狀態、動作時會分別形成存在、比較、變化之意。"有"的賓語要有特定性,本文同時對因這種特定性而出現的"有字句"的特點也進行了考察。由特定性而形成的指稱性意義能購解釋"有+VP"結構裏的部分性意義以及有字比較句裏面形容詞前面爲什마要有"這마"、"那마"或數量詞,而且也能흔好地說明南方方言裏"有"字的强調用法。本硏究考察了以往被看作多義詞的"有"的本義在衆多語義中如何發揮作用,也考察了本義在語法化了的結構中由本義發展而來的"有"的意義如何發揮作用。這一點正是本硏究的意義所在。

對漢語諧音避諱的考察

주홍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38권 0호, 2012 pp. 225-241 ( 총 17 pages)
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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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또는 어휘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가 소리를 통해서 전달되는 과정에서 "해음 연상(諧音聯想)"이라는 현상으로 인해서 그 단어 또는 어휘에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해음 연상이라는 것은 해음 단어 또는 어휘를 통해서 그사이에 의미상의 연관과 전환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효과를 나타내면서 "길한 것을 취함" 혹은 "흉한 것을 피함"의 두 가지 상반된 언어 취향을 가지게 된다. 부정적인 효과를 피하려는 언어 취향에서는 의도적으로 해음의 연상을 끊거나 회피하는 "해음 피휘(避諱)"가 나타나게 된다. 피휘(避諱)는 글자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본 연구에서는 해음에서 나타난 피휘에 관하여 주목하였다. 중국역사상에 피휘의 여러 방법중의 하나인 "피혐명(避嫌名)"는 왕의 이름에 쓰인 한자와 해음된 한자을 피해 쓰지 않는 것이고 본 논문에서 "해음 피휘"라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피혐명"이라는 해음 피휘는 한대(漢代) 이후 삼국시대(魏, 蜀, 吳)부터 시작이 되어 당대(唐代)에 많아지면서 송대(宋代)에는 제도화 되었다.때문에 중국 역사상의 문헌과 비석문중의 피휘의 사례는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중국각지의 민간에서도 "민속피휘(俗諱)"이가 존재하였다. 민속피휘는 글자말고 생횔 속에서 주로 말(음성)을 통해서 나타났기 때문에 해음 피휘가 더욱 발달될 수 있었다. 본 논문에서는 구체적인 사례의 심층 분석을 통해서 해음 피휘가 한어 어휘의 수량과 표현측면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흉한 것을 피하고 길한 것을 취한다(趨吉避凶)"는 민속 심리를 반영하고 사회적 금기(禁忌)를 형성시켰다는 것들을 토론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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