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중국어문학지검색

The journal of chi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중어중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735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8권 0호 (2014)
7,900
초록보기
李嶠的《雜詠詩》由120首單題形式的詠物五言律詩組成,這些詩的作詩意圖和風格與壹般的詠物詩有所不同,其文學價値常遭貶低。李嶠曾多次擔任初唐時期的宰相職務,也是當時的文壇領袖,爲了啓發引導初學者、推廣五言律詩,李嶠創作了這些具有啓蒙敎材性質的《雜詠詩》。《雜詠詩》將120個主要物象分作10類,如同壹部簡縮的類書。這些詩展示了如何將與某壹物象相關的代表性典故運用到五言律詩中,因此幾乎每句都羅列有典故,且大部分以表達壹般的感懷或啓蒙性主旨爲主,而非具有個人特性的感懷,也正式因此,這些詩給人以將以前的長篇詠物賦縮略爲五言律詩的感覺。雖然從整體看來其結構比較簡單,但其使用的語言和表達方式却較爲華麗、幷具有神秘感,其中不少詩句往往令人聯想到楚辭風格。《雜詠詩》120首大部分都遵守近體詩格律。在五言律詩尙未完全成形之際,這樣大量創作的高合律度、以敎材形式出現的詩作具有十分重要的意義。《雜詠詩》不僅展示了五言律詩的聲律,而且也出現了後來允許使用的拗、拗救和平仄的特殊形式的用例。這使得律詩格律具有了融通性,使得以後的律詩創作路子更爲寬廣。此外,這些詩不僅嚴格遵守對仗的規則,而且首聯和尾聯中時常運用程式化表現方式。雖然經常運用程式化表現方式會讓人感到니煩,但是對於初學者來說,却起到了反複學習典型模式的效果,學習者通過這種方式,能구흔快掌握律詩如何開始、如何收尾的技巧。如此,從形式方面來看,《雜詠詩》也具有普及五言律詩格律、爲初學者提供作詩入門指導的性質。換言之,與其說李嶠普及了已經完善的律詩格律,不如說通過包括李嶠在內的數位初唐詩人的努力,律詩最終得以完善。李嶠的《雜詠詩》在後代繼續得到廣泛傳播,但是隨著時間的流逝,這些詩特有的創作目的逐漸爲人忘却,與李嶠詩集中的其他詩作相比,這些詩的價値逐漸被人貶低,直至今日尙且如此。李嶠的《雜詠詩》雖然不能稱作“詠物詩”中的佳作,但對於後代詠物詩的發展、特別是五言律詩的完善和盛行却有著不可忽視的重要影響。

뒤바뀐 성별, 새로 쓰는 전통: 황원개(黃媛介) 시 읽기

김의정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48권 0호, 2014 pp. 47-75 ( 총 29 pages)
6,900
초록보기
這篇論文主要探討明末淸初女性詩人黃媛介的詩歌內容及其意義。本文要突出黃媛介這位詩人的獨特形象和其社會上的位置。因爲타擁有근同時代女性詩人不同的生活經驗,因而留下來的作品有深沈的悲哀,濃厚的孤獨意識。雖然明末淸初這特殊時代誕生了許多女性作家和詩人,但是타們始終屬于家庭領域。所以흔多場合上“家庭”這空間擔當女性詩人活動的背後條件。黃媛介其人不屬于壹般士大夫文人家庭的夫人-因爲타爲了解決生活,在家庭外接觸社會各層人士,賣詩畵。這樣的活動在當時不容易得到認可。所以타的作品難免流出被別人誤解的苦悶和要逃避的矛盾心理。本文主要探討타的內面意識。現在筆者사到的타的詩歌總數是109首。這當中本文的主要分析對象是50余首。剩下的壹半差不多是從交流活動中産生的。這部分也是爲了理解黃媛介非常重要。筆者先要考察黃媛介周圍的文人以後在령外壹篇進行硏究。
7,100
초록보기
In this paper various aspects and characteristics of feminine culture of the Ming and the Qing Dynasty are explored and viewed through Dream of the Red Chamber, which was created in the mid-18th centuryduring the ruling of the Qing Dynasty. In the novel, female characters are constantly portrayed and regarded as superior to male characters in terms of intelligence, talents, character, and virtue. While male characters around Jia Baoyu from the Jia clan indulge themselves in debauchery and obscene life, female characters make a living and manage the household instead, and their wide spectrum of abilities from managing the household affairs to an exceptional level of refinement and erudition in the arts and culture surpass that of male characters. Theirnoble nature also allows them to exhibit sympathy and compassion towards the weak members of society with a great deal of generosity. The genesis of Dream of the Red Chamber is closely related to the flourishing feminine culture of southern area, so-called ‘才女’(talented woman) to bespecific, during the late-Ming and early-Qing period. The feminineculture of southern area during the late-Ming and early-Qing periodprovided a meaningful and appropriate setting for the novel to acquireverisimilitude for everyday life and animated imagery of women, andphilogyny. The topography of the feminine culture during the Ming and theQing period is first examined in this paper. During this period womenstrictly and thoroughly learned Confucian values and standards with textbooks for women under the centralized and Confucian system ofgovernment. Therefore, chastity was demanded more strongly thananyother eras would have ever required, and in order to defend chastity, thesuicide rate of women increased dramatically. Meanwhile, new feminine culture called ‘The Culture of Talented Women’ began to expand, andparticularly during the late-Ming and early-Qing in southern area a newwave of feminin

조선시대 중국 탄사(彈詞)의 전래와 새 자료 한글 번역필사본, 옥쳔연에 대하여

김영 , 박재연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48권 0호, 2014 pp. 109-143 ( 총 35 pages)
7,500
초록보기
本文主要探討新發現的《玉釧緣》韓文手抄本的飜譯狀況和意義。령外,考察中國彈詞的流傳和接受。通過本文得出的結果如下。第壹,根據朝鮮時代士大夫的文獻記載,商人貿易、學者留學之外,通過燕行也流入了許多中國彈詞。此擧現存的10多種彈詞和幾種韓文手抄本來可以證明。尤其是韓文飜譯本在宮廷裏有限的被享受了。第二,韓文手抄本《玉釧緣》是修경室收藏本(壹冊,卷之四)。與中國版本對照來看,全部飜譯的話,大槪고計超過70多冊。第三,從標記、音韻、語法、詞彙形態看,《玉釧緣》是19世紀後期的譯本,且與樂善齋本《再生緣》的筆體極爲相似,也有宮中本的可能性。第四,雖然彈詞《玉釧緣》(32卷64冊)藏在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 ,但無法確認飜譯與否。因此,韓文手抄本《玉釧緣》雖然是殘卷壹冊,但是朝鮮時代飜譯成韓文的重要資料。

조선 이수광과 청대 조익(趙翼)의 한유 시관(詩觀) 비교 연구

김지영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48권 0호, 2014 pp. 145-175 ( 총 31 pages)
7,100
초록보기
本論文以朝鮮李수光的《芝峰類說》和淸代趙翼的《歐北詩話》爲原典,對於韓中學者的韓愈詩評價,進行了比較硏究. 首先,考察了《芝峰類說》和《歐北詩話》的資料的意味,而且探究了李수光和趙翼的對於詩歌的批評意識. 李수光和趙翼以爲韓愈詩在中國詩歌發展上擔當了壹定的役割,對於韓愈詩的時代精神高度評價了. 然後在《芝峰類說》和《歐北詩話》理,把韓愈詩的內容區分六個項目分析了. 就是 1)詩體的變化, 2)作詩特徵 3)韻字使用 4)作品論 5)風格論 6)其他. 關於韓愈詩改革唐詩,用獨特的句法作詩,善用通韻和險韻,具有雄姿和奇險的風格等等,韓中兩位知識人的意見沒有差別. 但對於韓愈的個別作品他門的意見完全不壹樣. 本論文通過韓中知識人評價的異同點,對於韓愈詩考察了多樣的評價.筆者希望對韓愈詩提供深度的了解.
6,500
초록보기
청말의 기독교소설 《오경종(五更鐘)》은 미국여선교사 라우라 화이트가 발의하고중국인작가 진춘생(陳春生)이 필술 개작하여 완성한 작품으로 1907年 상해미화서관(上海美華書館)에서 出版되었다. 이 작품은 중국인에게 전도하기 위해 출간한 선교소설(宣敎小說)인데, 1936년까지 15차의 재판이 거듭된 20세기에 가장 많이 판매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다섯 번의 경종사건(警鐘事件)을 중심으로 작품을 전개시키고 있는데 주로 주인공 림구여(林九如)와 방봉혜(龐鳳兮)가 등장하여 찬반 입장으로 나누어 기독교와교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데, 림구여(林九如)는 봉혜(鳳兮)와 경생녀사(更生女士)에게 감화를 받고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잘못을 깊이 참회하고 이상촌‘평안촌(平安村)’에 가서 기독교에 귀의하고자 하지만 세속의 명리(名利)에 사로 잡혀 중도에 포기한다. 비록 아들을 얻고 관직에 나아가 부귀공명을 누리지만 만년에 부인과 사별하고 관직에서 물러난 뒤 실의에 빠진다. 이때에 구여(九如)는 자신의 일생을 회상하면서 깊이참회하고 평안촌(平安村)으로 가서 기독교에 귀의한다. 《오경종(五更鐘)》은 림구여(林九如)를 주인공으로 불신자에서 크리스천으로 변화되어 가는 중국 士人階層의 심리변화과정을 생동적으로 서술한 종교소설이다. <대범팔칙(大凡八則)>에서는 이 작품의 핵심 요체가‘평안(平安)’이란 단어에 있다고 밝히고있는데 등장인물들은‘평안(平安)’과‘수난(受難)’이란 이원적(二元的) 대립(對立)으로 구분할 수 있다. 主人公 九如의 이름은‘복록수희(福祿壽禧)가 모두 뜻대로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기독교를 믿기 전에는 온갖 시련과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가정에서는 부자(父子)간에, 고부(姑婦) 간에, 부부 간에, 자식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밖에서는 관장(官場)에서, 사업에서 갖가지 충돌과 분규에 휩 쌓이면서 五倫이 부화(不和)하고 관직에서 밀려나니 가정 또한 지옥과 같아서 모든 것이 불행해진다. 《오경종(五更鐘)》의 작자(作者)는 방봉혜(龐鳳兮)의 입을 빌어 이러한 고난이 모두 마귀(魔鬼)의 농간과 모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기독교의 수난관은 청말의 여러 기독교소설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본 논문은 모두 4절로 나누어 청말의 기독교중문소설에 나타난 수난(受難)과 순교서사(殉敎敍事), 성(聖)、마(魔)와 선악관(善惡觀), 고난(苦難)과 평안서사(平安敍事), 이들 작품에 나오는 공통적인 사망서사특징(死亡敍事特徵)을 고찰 분석해 보았다. 상기한 《오경종(五更鐘)》은 24회의 장편장회체소설(長篇章回體小說)로 모든 특징을 구비하고 있으며, 《유도요지(喩道要旨)》(리차드 티모디 역, 1894년), 《구마전(驅魔傳)》(곽자부(郭子符) 저, 1895년), 《인가귀도(引家歸道)》(그리휘트 존 저, 1889년)의 관련부분을 비교 분석하여 네 가지 각도에서 주제를 고찰 탐구해 보았다. 먼저존 프라이어의 현상공모소설인 《구마전(驅魔傳)》 중에 묘사된 각종 마귀군상(魔鬼群像)의 세밀한 분석을 통해 청말 기독교소설 중에 나타난 성마관(聖魔觀)과 선악관(善惡觀)을 살펴보았다. 《창세기》에서 유래된‘마귀(魔鬼)’의 유혹과 인류원죄(人類原罪)의 주제는 《유도요지(喩道要旨)》, 《구마전(驅魔傳)》, 《오경종(五更鐘)》등의 기독교소설(基督敎小說) 속에 서술되어 있고 또한 이들 작품 특유의 서사특징을 드러내고 있는데, 바로 청말사회에 중국 도처에 만연되어 있는 각종 부패와 악풍패습(惡風敗習)의 근원을 하나님에게 대항하여 사람을 유혹하여 죄악을 저지르게 만드는“마귀(魔鬼)‘의 농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제4절에서는 《오경종(五更鐘)》과 《인가귀도(引家歸道)》의‘사망(死亡)’에 관한 단락을 비교 분석하여 경건한 기독교인들은 모두‘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으며 사후에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과 함께 동거한다는’공통적인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이들 작품 중에는 순교를 하거나 자연적 사망을 막론하고 신실한크리스천의 죽음을 성화(聖化)되고 리상화(理想化) 필법(筆法)으로 묘사하여 사후에 천국에 올라가 영원히 복락을 누린다는 기독교의 영생관(永生觀)을 표현하고 있다. 청말의 기독교소설들은 고난과 사망서사를 통해 부활과 영생을 소망하는 기독교의 신앙관과 청말 사회의 각종사회양상을 중국소설양식으로 적절하게 서술하여 선교와 계몽이라는 두 가지 창작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범석(李範奭)을 모델로 한 백화문 작품의 한국어 번역본

김재욱 ( Jae Ug Kim )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48권 0호, 2014 pp. 203-223 ( 총 21 pages)
6,100
초록보기
This study examined the bibliographical information and general characteristics of Korean translation version of 5 written colloquialChinese works with Yi Beom Seok as its model (《韓國的憤怒》·<騎士的哀怨>·<露西亞之戀>·《北極風情畵》·<伽椰>). In chapter 2, the studyfigured out that there are several more translated versions of 《韓國的憤怒》which included 《Hyeoljeon》,(abbreviatedversion), and . Inchapter 3, the study examined the publishing process of short novelcollection 《露西亞之戀》which was serialized in 《Kukjesinmun》andpublished as a monologue under the title of 《Bangrangui Jeongyeol》, andalso figured out that and publishedin 《Wudungbul》were adapted versions. And, chapter 4 examinedpublication status of 2 abbreviated versions besides the translatedversion of 《北極風情畵》, another version of the translation by KimGwnagju, and translated version of <伽椰>which was part of 《荒漠裏的人》. The researcher found that the translated versions mentioned in thisstudy were distributed in Korea under the author name Yi Beom Seokexcept for 1 version. Yi Beom Seok was a prominent figure in politicswho served the chief of staff at the independence army, the first primeminister and the minister of defense of Korea. It is a matter of coursethat if works where he was the main character are distributeddomestically, the effect of those works could not remain in thearea ofliterature. As the study partially confirmed, while there were somedifferences in the translation period of the written colloquialChineseworks on him, those works apparently contributed to reinforce hispolitical status, and in turn, it had no less effect on the Korean societyfor rather long term. This is the most significant point of translationversions with Yi Beom Seok as the model among general Chinese modernliterary works distributed in Korea after the liberation of thecountry. The researcher did not conduct sufficient discussion why those works were published under the author Yi Beom Seok. From the researcher’spoint of view, this issue must be dealt carefully as it is a special type onthe contemporary literary exchange between Korea and China. Regardingthis issue, a further study will be carried out in the follow-up next

주작인(周作人)에게 민속은 무엇이었을까?

김미정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48권 0호, 2014 pp. 225-250 ( 총 26 pages)
6,600
초록보기
中國新文學發展伊始便天然地與民俗學結合在壹起,這爲我們從民俗視野硏究中國現代文學提供了必要的前提. 周作人是中國新文學理論的奠基人,同時又是最早關注民俗學的中國現代知識分子,他不僅是中國現代民俗學的先驅,而且將民俗學作爲表現題材納入了畢生的文學創作,推動了中國民俗學和民俗風物的閑適散文的發展.本篇論文意在探討周作人民俗學的接受內容和思想背景,幷對民俗學的態度做了進壹步探討.第壹,試圖以五四時期國民性批判入手,討論以民俗學的視角如何看待國民性.西歐民俗學卽是以進化論的普遍主義爲思想基點,通過考察民俗習慣以及原始部落的野蠻習俗,解釋文明社會的歷史進程,改造國民性以提高人民文明水平,乃是這壹學說的目標.1920年代周作人提出民間道敎的野蠻遺風支配著中國人民的精神世界的主張,卽爲這壹學說的影響.不過1930年代以後周作人的民俗關懷,不再以國民性批判爲宗旨,而是轉向了對“平常人心情”的發掘,這是壹種更接近于“在日常生活中發現人民的歷史”的現代民俗學的眼光.本文揭示了民俗風物是如何響應周作人內心的訴求,民俗學是즘마對周作人的民俗閑適散文産生影響的。周作人常常通過民俗學關懷觀照文學,究其原因,壹是周作人自我文化建構的精神曆程中紹興越文化傳統的浸潤給周作人以民俗學的感性認識,二是日本柳田國男的民俗學的理念賦予他注重民間文化的基底精神.總之,中日戰爭以後.他在‘故鄕猶故國然’的文化想像之下,壹直用筆觸對故鄕進行描摹,這意味著其在文化上對民族認同的苦心追求.

장아이링(張愛玲)과 최승희, 한국전쟁 서사 그리고김일성 사망 소식

홍석표
중국어문학회|중국어문학지  48권 0호, 2014 pp. 251-280 ( 총 30 pages)
7,000
초록보기
張愛玲文學的本質在于描寫男女之情、婚姻等凡人的樸素故事中,卽告誡“文過飾非”,予人以啓示寫出‘底子’的實狀。張愛玲同時追求了沈從文似的離曆史、革命等巨大話語保持距離的文學特征和魯迅似的暴露曆史累積下來的中國人的劣根性、懦弱性的文學特征。因此,張愛玲的文學世界不同于尋求善良人性與理想的沈從文的烏托邦敍述,以懷疑的視線描寫生活的萎敗與人性的荒凉,同時不追求魯迅般的銳利、竭力暴露的筆鋒,以淡然的文筆來敍述故事。張愛玲相見韓國舞蹈家崔承喜的時候,對타東洋傳統的藝術自覺有同感,幷在長篇小說《赤地之戀》的韓國戰爭敍述之中,喩示了克服理念對立,超越國家主義的內心所向。張愛玲將타手拿著刊登北韓前國家領導人金日成去世消息的報紙的‘蒙太奇’照片放在《對照記》再版,自己扮演死神,喩示了對英雄敍述的拒절及平息極端的理念對立的期待。以上內容,可視爲近代時期韓中交流及相互理解的曆史經驗,進而可視爲表明願超越國家主義、政治理念的張愛玲的文學、思想立場的論據。
11,600
초록보기
This article is researching after the root of Zhajiangmian. Chinesecuisine in Korea is rooted on Lucai & Jiaodongbang or Fushanbang. Gonghechun & Zhonghualou have the same root. Furthermore theopenning of Yantai Port deeply influenced on the development ofYantaiCuisine. The naming of Gonghechun in 1912 is a byproduct of XinhaiRevolution on the network of chinese overseas in the cities?Incheon,Yantai, Nagasaki, Kobe where chinese have lived. As such, the relocationto present situation of Gonghechun in 1917 and the openning ofZhonghualou in 1918 are coincided with the influx of shandong coolie.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