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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일문학연구검색

Journal of Japa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일어일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25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01권 2호 (2017)

일본의 고려관에 관한 고찰-오에노 마사후사(大江匡房)의 자찬을 단서로 하여-

데시마다카히로 ( Teshima Takahi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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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헤이안 시대, 특히 인세이(院政) 시기의 일본의 고려(高麗)인식을 고찰함으로써 일본에게 있어서 `고려`란 어떠한 존재였는가를 개관하기 위한 시도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오에노 마사후사(大江匡房, 1041-1111)라는 문인 귀족이 가지고 있었을 고려관(高麗觀)에 대하여 규명하였다. 특히 그의 저서 『고단쇼(江談抄)』 안에는 마사후사 자신이 작성한 고려 외교 문서의 한 구절이 송나라 황제로부터 칭찬받았다고 하는 자찬(自讚)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중화(中華) 콤플렉스에 기인한 날조된 기사라고 알려져 왔다. 본고에서는 마사후사가 살았던 동시대의 고려·송간의 긴밀한 대외관계를 바탕으로 송나라 황제가 고려문인들의 문장에 대하여 칭찬한 여러 사례(事例)를 마사후사가 알고 자신의 것으로 작성했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마사후사가 당대 제일의 석학이었기 때문에 고려에 대하여, 또는 항상적인 문화 교류를 추진하고 있었던 고려·송간의 관계에 대하여 선망이나 동경(憧憬)의 마음을 가졌을 가능성을 모색한 것이다. 위의 고찰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헤이안 시대 일본의 고려 인식에 대하여 한층 더 심화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고려의 양국뿐만 아니라, 송이나 요·금과 같은 나라들을 비롯하여 복잡하게 얽혀 있었던 아시아의 대외관계로 시야를 확장시킴으로써, 그 안에서 보이는 일본·고려의 양국 인식에 대하여 살펴봐야 할 것이다.

중고·중세문학에 나타난〈재해(災害)〉―문학작품 속 재해묘사에 대해서―

조지영 ( Cho Ji-young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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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헤이안 시대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수필, 설화, 모노가타리 등의 문학작품에 나타난 재해에 대한 서술양상을 검토하였다. 먼저 가마쿠라 시대 초기 가모노초메이(鴨長明)에 의해 성립한 수필『호조키(方丈記)』와 불교설화집『홋신슈(發心集)』에 대해 검토하였다. 초메이가 말법관(末法觀)의 영향으로 인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그 의식이 재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호조키』나『홋신슈』에 그려진 재해 묘사를 보면 현저하게 드러난다. 다음으로, 불교설화집『곤자쿠모노가타리슈』제26권3화에는 미노국(美濃國) 이나바강(因幡川)에서 대홍수가 일어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당시 미노국의 이나바강은『속일본기(續日本紀)』에도 관련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러한 사료(史料)를 통해 전반부는 당시의 지리적 특색과 부합하여 미노국의 이나바강의 홍수와 그에 대한 대책마련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후반부는 여러 재난으로부터 구사일생한 소년의 모험담과 관음영험담, 그리고 전생의 숙보(宿報)로 인한 것이라 주창하는 기담(奇譚)으로 마무리 되어 있다. 동 설화집 제10권36화도 마찬가지로, 재해 현상을 가지고 초월적인 존재의 힘에 대한 인지와 신앙을 이끄는 서술양상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겐지모노가타리』스마(須磨)권의 마지막 대목에서 재난으로부터 피하기 위한 하라에(?)를 행한 뒤, 폭풍우가 일어나는 장면에 대해 검토하였다. 스마권에서 아카시(明石)권으로 이어지는 폭풍우는 겐지의 죄에 대한 벌, 혹은 그것을 씻어내는 의미로서의 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정치적 선악이 천재지변에 영향을 미친다는 천견사상(天譴思想)을 엿볼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겐지가 스마를 떠나 아카시로 옮길 결심을 하는 계기로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이야기서술방식의 하나로서 재해가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곤자쿠모노가타리슈』나『겐지모노가타리』와 같이 사실(史實)에 직결되지 않고 저자 혹은 편자의 서술의 방향성이 크게 영향을 끼치는 문학작품에 있어서는, 재해는 이야기 전개 속의 한 장치로서, 그리고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모티브로서 이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헤이안 시대의 여성 작가 작품에 나타난 노년의 미학

신미진 ( Shin Mi-jin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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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aims to examine women`s literary works from the Heian period in terms of the aesthetics of old age. First of all, from the old-age image appearing in the essay, `Makuranososhi`, the author`s writing style of Sei Shonagon is lacking in consideration or sympathy for the elderly and has a strong inclination to evaluate old age through superficial phenomena rather than the essence. The manner that was going to watch the aspect objectively is strongly seen than Sei ShonagonI express sympathy while putting feelings into a partner. And she strongly criticize a person doing the behavior that does not fit an old person. Then, in `Murasakishikibu Nikki`, the author described her own old-age aspects while distinguishing herself from young people, and her description about old age in the diary can be regarded as a process of the authors` earnestly seeking the aesthetics of ideal old age. When own old age was conscious of, Murasakishikibu was going to never appear before the noble of the man. But she show a sense of beauty of the deep sorrow to show the sympathy that is not negative in the state of the bureaucratic old age of the old man. Overall, through each literary work, this study intended to examine those who arrived at senescence before death and what their lives were like from the viewpoint of people around them in terms of the aesthetics of old age.

영화 『피와 뼈』에 관한 일고찰

안노마사히데 ( Anno Masahide )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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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최양일 감독의 영화 『피와 뼈』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우선 일본 영화 속의 재일코리안상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였고, 그리고 기존의 재일교포 감독의 영화의 주인공과는 다른 캐릭터로 그려진 『피와 뼈』의 주인공 김준평의 삶의 특징에 대해서도 고찰해보았다 그는 1923년 제주도를 떠나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전후 일본 사회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논자는 『피와 뼈』속에 그려진 한국의 해방 전후의 <재일코리안의 역사>를 작품의 내용에 의거하여 분석해보았다. 이러한 작품의 뒷면에 그려진 한국의 전후 근대사를 살펴봄으로써 기존에 그려진 재일 코리안의 위상을 좀 더 새로운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즉 역사적으로 일본에 <피해자> <열등자> <이방인>이라는 재일코리안상과는 다른 「역사의 다이너미즘」에 번농되지 않는 재일코리안상으로서 영화 속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 유산절고《楢山節考》의 공동체 상상과 형성

임숙단 ( Lin Shudan )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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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 부시코(深澤七郎)의 작품 <유산절고>(楢山節考, 1956년 작)는 전후 일본 문학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아들이 제 어머니를 업고 산에 올라가 버려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이야기를 묘사했다. <유산절고>는 발표 당시 문단에 충격을 주었고, 발표 이 년 후에는 유명 감독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惠介) 의해 영화화되었다. 이 영화는 초호화 캐스팅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큰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후 1983년에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가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惠介)의 영화를 리메이크했으며, 이 작품은 1983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평을 제외하고는 소설 원작과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미비하며, 두 편의 영화가 표현하고 재현해낸 내용이 소설 원작과 어떠한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에 본 논문은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영화를 통해, 가족 상상과 공동체 구성 매커니즘에 초점을 두어 어떠한 방식으로 원작 텍스트의 상상력을 영화 텍스트에서 재현하였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전사자 추모의 `탈전후적` 상상력-에토 준의 야스쿠니 문화론을 중심으로-

서동주 ( Seo Dong-ju )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101권 2호, 2017 pp. 107-130 ( 총 24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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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e Ministers of Japan in the 2000s have justified their visits to Yasukuni Shrine on `cultural relativism,` that these visits should not be criticized as they are part of Japan`s tradition and culture. As this article finds, such cultural relativist argument by Japanese Prime Ministers can be traced back to the work of Eto Jun`s Perspectives of the Living and the Dead (1986) - Japan`s representative post-war conservative culturalist. Briefly put, Eto Jun argues in this article that Prime Ministers` official visits to Yasukuni Shrine should not be contextualized in terms of the constitutionality, whether they are infringing on the principle of separating religions from the state matters. Instead, Eto finds that the discussions on the Yasukuni visits should be addressed in a separate cultural dimension, how these practices are at the essence of how Japanese society have treated the livings and the deads - Japan`s own culture of the livings and their `sense of co-existence/symbiosis with their memories of the deads.` However, what makes Eto`s essay exceptional is not so much of his application of cultural relativism to the Yasukuni issues, but his unique reasoning and approach to history. He criticizes Japanese society`s contemporary tendency to treat the issue of Yasukuni Shrine visits in relation to the 1946 postwar Constitution. Instead, he argues that the meaning of Yasukuni Shrine should be thought as part of important ancient literary theme - symbiosis between the livings and deceased. Put differently, Eto is bringing in a much broader scope and timeframe, extending and connecting the `postwar` frame to the `ancient` period. While this approach seems to highlight Eto`s emphasis on understanding in-depth history, his extensive scope actually generalizes the meanings of individual histories. Based on his personal or fictional extension of history, Eto is trying to construct `history as an event.` Such approach to history can be similarly found in Eto`s other writings on the post-war history. To Eto, post-war Japan has become distorted and `enclosed within set of dictions` under the censorship of GHQ, as well as the `virtual reality` created by bureaucrats who have treated the Yasukuni issues only in the realms of legal principles. By focusing on the origin of occupation and censorship in Japan, Eto seeks to erase the distinctiveness of historical incidents of power politics and struggles in Japanese history.

오키나와 이류혼인담의 양상 및 특징 -뱀과 인간의 혼인을 중심으로-

송영숙 ( Song Young-sook )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101권 2호, 2017 pp. 131-150 ( 총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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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terogeneous marriages stories which express marital relationship of human and snake handed down for generations in Okinawa can be classified roughly into < snake groom > type and < snake bride > type. As for the < snake groom > type, the identity which makes the virgin pregnant has been found snake, but the substance of snake has been found God, not kills the snake, there is distinct characteristic that the descendants are worshipped as God of Utaki. In other words, it is focused on the role of descendant that the heterogeneous descendant is worshiped as God of Utaki as identity of heterogeneous snake, rather than be focused on eradicating the heterogeneous snake groom. In addition, < snake groom > type is characteristic in appearing the origin of annual events like Hamaori. The descendant of heterogeneous snake is described as young snake, not as God, but the chronological changes are reflected in the tales, which the snake is not recognized as God anymore. After all, it is interpreted as it is missing the sanctity of snake completely. On the one hand, < snake bride > type of Okinawa does not emphasize special sanctity or spiritual power of heterogeneity like snake bride, but this study has found out that the snake eyes which make child grow safe and sound contain pecial divine power. In addition, this study has found that the appearance of snake bride like heterogeneity produced results which brought about the prosperity to leave the descendants to the world of mortals.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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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im of this research paper is to identify the aspects of the cultural mechanism of colonialism employed by the Empire of Japan to dominate its colonies by contemplating the actual background of and purpose for holding Kabuki performances in colonial Taiwan in 1913. During the pre-war period, it was rare for Kabuki theatre troupes to perform in othercountries. The so called `Okabuki`, a Kabuki performance where first-class Kabuki actors appeared, was unheard of, except for Ichikawa Sadanji`s performance in Russia in 1938. However, Ichimura Uzaemon`s Kabuki performances were held in colonial Taiwan, colonial Korea, and the Manchuria regions under the power of the Empire of Japan. The performances in colonial Korea and the Manchuria regions happened in 1935; however, in colonial Taiwan, they were held in 1913. While the Kabuki performances by Uzaemon in colonial Korea and Manchuria were meant to provide entertainment and comfort to the Japanese citizens in the colonial regions as well as to serve as part of the commercial strategies of entertainment companies, the nature of the Kabuki performances in colonial Taiwan was different. The intention of Takamatsu Toyojiro, the promoter of the performances, was to break cultural barriers and to further promote friendly relations between colonial Taiwan and the Empire of Japan by improving impressions of Japan in colonial Taiwan through performances by the noted, well-liked, and famous actor, Uzaemon. Foreign tours of traditional Japanese theatre troupes were used to facilitate the smooth functioning of the mechanism of colonialism for the domination of the Empire of Japan over its colonies.

『양동창화후록(兩東唱和後錄)』에서 찾은 조선인 의사 김덕방

노성환 ( No Sung-hwan )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101권 2호, 2017 pp. 173-196 ( 총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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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investigated Kim Deok-Bang, a Korean doctor found in a collection of conversation writing of Korean Japanese medicine called 『YangDongChangHwaHuRok』. Kim Deok-Bang was captured by an armed Guwanashogen under Chosokabe who invaded Korea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3, brought to the city of Kochi, and settled there. His medical practice did not display great effects at first and became a target of criticism instead, but he soon became an outstanding physician of the region as his medical practice became magnified after realizing that the cause resulted from not considering natural characteristics of Japan and nature of the Japanese. Anecdotes about his medical practice became legendized and are being handed down in Dosa region where he lived in, and tools and prescriptions he used are still maintained as record. The Lord Chosokabe of Dosa who highly praised his medical practice made him an official medical personnel and always brought him along when he visited Kyoto. As a result, his medical practice became widely known in Kyoto as well, but it became the cause of becoming an unfortunate person by getting poisoned by Japanese doctors who were jealous and envious of him. There is no record that he married a Japanese woman. Thus there is no mention of his children either. In other words, there are no descendants he left behind. He did not leave descendants in Japan, but he left many successors through medical practice. First, he became the foundation of Unkaisiryu that continued academic system called Woon Hae - Kim Deok-Bang - Shokan - Kento, secondly, he passed down medical techniques to families, and thirdly, he contributed greatly to the formation of acupuncture school that continued the tradition of Kim Deok-Bang - Nagada Tokuhon - Danaka Chishin - Hara Taian by passing down medical techniques to Nagada Tokuhon, a legendary noted physician of Japan. Fourthly, as seen in 『YangDongChangHwaHuRok』, it was identified that his medical techniques have been handed down to Murakami family who told us his name for the first time. As said, he is not known in his motherland, but it is true that he is a great man who left his significant legacy in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acupuncture of Japan.

문화자본으로 읽는『산시로』

김성희 ( Kim Sung-hee )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101권 2호, 2017 pp. 197-216 ( 총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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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ble, “Sansiro”, depicts a youth`s campus life. He came from Kumamoto Province in Meiji Era to make something of himself. In those times the established emotion and value was completely denied and a newly one had formed. In this trend a new class appeared to get the cultural capital, that is `academic cliques`. They strived to learn various western foreign languages and knowledge instead of traditional ones. It was, of course, prerequisite that they should discipline their bodies to accustomed to western style life. This manuscript looks into how the youths formed a new cultural capital and led their life through Sansiro`s campu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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