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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일문학연구검색

Journal of Japa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일어일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25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4권 0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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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일본학편 ( Literature Japanology ) : 심포지엄 < 주제발표 > 일본어 한글 표기의 합리적 방안에 대하여 ; 토론요지

노영희 , 편무진(Mu Jin Pyon) , 고수만(Soo Man Ko) , 최재철(Jae Chul Choi) , 임영철 ,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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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硏究は日本文學における挽歌の傳統と人麻呂の詩歌との關連性を人麻呂の宮廷挽歌を中心に考察したものである. その結論は次のようだ. 万葉歌人, 枾本人麻呂は人間の死に關する挽歌の世界においても, 日本文學の傳統の上に立っている歌人であると言える. しかし, 宮廷讚歌とは異なって, 挽歌の世界では古代日本において, 主として喪葬儀禮にたずさわりながら『万葉集』の挽歌の起源をもたらし, 宮廷と密接な關係を結んで和歌の筆錄や傳承をも擔當していた, 古代韓國からの渡來人, 野中川原史滿の影響をある程度受けたと考えられる. それは野中川原史滿の作品と人麻呂の作品との比較分析によって, 共通的に指摘できる挽歌的發想·漢詩漢文學の影響·修辭法や表現方法などを通して確認することができた. 一方, 人麻呂の宮廷挽歌の場合, 原始的な文學樣式と言える祝詞や記紀歌謠などの影響を受けつつ, 作品を形成したことがわかった. 特に私は人麻呂が前代からの傳統的な文學樣式である祝詞の影響を强く受けた事實が確認できた. したがって, 枾本人麻呂は自分の宮廷讚歌と同じように, 宮延挽歌においても前代から傳わる日本の固有の文學的傳統や渡來人文學の傳統を繼承した傳統歌人であると言える. 但し, 人麻呂の場合は, 專門的な宮廷儀禮歌人の資格をもって持統宮廷に登場してくるという點が人麻呂以前の宮廷歌人とは違う點であり, その宮廷挽歌も莊嚴で長大であるのが, 前代から傳わる挽歌の傳統と大いに異なる點であると言えよう. そして, このような人麻呂の宮廷挽歌の特徵は, 持統朝が壬申の亂後, 旺盛に追求してきた專制的な中央集權國家と律令制度の確立期であったという歷史的·時代的な背景にもその原因があるだろうが, 歷史意識と國家意識が大きく發達した天武朝において天武·持統とともに, $lt;日本$gt;という新しい國家建設にたずさわっていた皇子皇女たちが持統期にきておもわぬ死に直面するようになった時代狀況も人麻呂の宮廷挽歌を特徵づける重要な原因として作用したと考え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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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일본학편 : 『 청령일기 』 와 예 (穢)

이일숙(Il Sook Lee)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34권 0호, 1999 pp. 129-152 ( 총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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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일기」中의 촉예 記事는 18例(重複 記事를 빼면 8例)로, 同時代의 다른 作品에 비해 훨씬 많다. 穢는 方忌·物忌와 흔히 混同되는 槪念으로, 이러한 混同에서 오는 誤解도 적지 않은데, 本論考에서는「청령일기」中의 촉예기사를 中心으로,道綱母에 있어서의 穢記事의 意味와 作品理解를, 硏究者들의 註釋을 참조하면서 考察해 보았다. 當時의 穢의 種類에는, 사람의 死나 出産, 六畜의 死·産, 肉食, 改葬, 傷胎(流産), 懷妊, 月事(生理), 失火 등에 의한 것이 있다. 穢의 最大의 特徵 중의 하나는, 그것이 다른 곳으로 傳染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 穢를 피하기 위해서는「着座」를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선채로[たちながら] 일을 보아야 한다.『청령일기』에는「たちながら」라는 대목이 다섯 군데 나오는데. 「たちながら」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데서 오는 不正確한 해석을 한 註釋書도 다수 있었다. 「청령일기」 에는, 사람의 출산에 의한 穢가 一件, 사람의 죽음에 의한 穢가 一件, 月事穢가 二件, 動物(犬)의 死穢가 一件, 不明이 三件 있다. 道綱母(와 관련되는)촉예기사는 三件이고, 兼家의 촉예기사는 四件, 道綱의 촉예기사는 一件이다.『청령일기』의 物忌·方忌記事는 天祿二·三年間에 集中해 있는데, 穢記事에는 그러한 特徵을 볼 수 없다. 「청령일기」 中의 物忌·方忌記事는 兼家의 來訪과 關連해서 意味를 가지는 것이며. 夫婦 사이에 危機感을 느낀 道綱母의 內面 葛藤이 그것들의 記事에 굴절되어 나타나 있다고 생각된다.「청령일기」 의 穢記事는, 그것이 硏究者들에게 物忌·方忌와 混同되는 槪念이라고는 하지만 道綱母에 있어서의 意味는 달랐다고 보여진다. 物忌와 方忌의 경우는,兼家의 來訪과 關連되는 記事가 많지만, 穢의 경우에는 그것이 兼家의 來訪과 직접 關連해서 登場하기 보다는 어떤 事件의 哲景에 촉예 사실이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道綱母가 兼家의 來訪을 意識해서 穢記事를 記述 하고 있는 例는 없다. 또한 당시의 촉예관에 입각해서 作品을 봄으로 해서, 日記중의 촉예기사를 明確히 함과 동시에,「たちながら」 의 意味, 지금까지 그다지 擧論되지 않았던「病穢」의 再確認, 硏究者들의 認識 부족으로 인한 不明確한 解釋 등 몇가지 問題点을 確認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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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經記』の形式上の特徵は前半部と後半部が有機的な因果關係を結んでいない二部構成に成っている點である. これは重點的に取り扱われるはずの源平合戰での武勳譚を意圖的に省略した『義經記』の編集に大きく起因する. 『義經記』の前半部構成はテキストの冒頭文に提示された義經の名將軍像を前提に彼の成長過程が最大限に擴張されている. その反面, その結果として實際に名將軍として活躍する實狀はただ數行に要約されることによって, 過程は最大化されて結果は最小化されるという特異な構成を見せている. また, 『義經記』の後半部構成は賴朝と義經の間に行われる$lt;兄弟不和$gt;が主な原因になって, 義經の$lt;不運$gt;=賴朝の$lt;果報$gt;として結末づけられている. その過程で義經は京都脫出→吉野山脫出→北陸道突破→死の選擇という一連の段階を通じて各各の場面でそれなりの獨特な成功を擧げているようになっているものの, その結果は悲慘な最期を遂げることとして失敗に終っている. 過程での成功が結果としての失敗に結ばれる論理的矛盾が『義經記』の後半部で繰り返されているのである. このような『義經記』二部構成の論理的矛盾は義經に對する$lt;判官비희$gt;と賴朝に對する$lt;果報$gt;の受容という兩者擇一の間で價値判斷を保留した『義經記』の編集姿勢がいちばん主な原因である. したがって, 義經と賴朝を各各の軸にする登場人物の論理と讀者の價値判斷の間に乖離を招來する裝置が『義經記』に現われた逆說の論理構造なのである. 『義經記』に現われた逆說という觀點での論理構造を整理すれば次のようになる. 第一に, 『義經記』の全體を通じて義經と賴朝の論理驅使及び人物像は一貫性を欠如している. 義經の場合, 前半部では打倒平家の爲に積極的意志と行動性を見せながら$lt;武勇$gt;を誇るが, 後半部では中世武士というより王朝貴族の姿で$lt;藝$gt;を誇示する方に變っていく. 賴朝の場合は, 義經を除去する爲の一連の措置を自ら指示するが, 自分の論理を自分の口で發說しない二重的態度を取っている. 第二に, 『義經記』に現われた義經對賴朝の葛藤構造が兩大軸を形成しているが, 兩側の周邊人物たちによる相互補完がテキスト全體において相當な比重を擔っている. そして, 弁慶を始めとする義經側の人物たちは$lt;兄弟不和$gt;の原因を賴朝の薄情に置くことで與論を背負って名分論上の優位にいることを主張する. その反面, 賴朝側は梶原と전山の强硬論と穩健論に分けられるが, 幕府本制の確立に必要な動きを施していく現實論の立場で賴朝による力の支配を合理化させている. 第三に, 『義經記』の編集姿勢は表面の上曖昧である. 義經=絶對善, 賴朝=絶對惡の圖式化は決して成立しない. にもかかわらず, 義經の $lt;不運$gt;=賴朝の$lt;果報$gt;という表面的結果は『義經記』全體を通じて義經の$lt;武勇$gt;と$lt;藝$gt;という過程に焦點が當てられることによって$lt;判官비희$gt;という編集意圖を暗默裏に同調する方に作用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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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日漱石의『夢十夜』에는「夢(꿈),을 바탕으로 하면서「夢(꿈)」의 形象이나 特性에 가탁하여 漱石 자신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問題를 意識的으로 언어를 통하여 試圖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작품 『夢十夜』는, 漱石의 내면에 있는 恐怖觀念, 過去에 묶여 있는 부자유 그 자체인 자신, 무력하고 약한 心層, 生死에 대한 불안감, 죄악감등에, 두려워하고 있는 자신으로부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경지 및 자기의 眞相을 나타내고 있다.『夢十夜』에서 시사한 百年. 죽음 등은 그 자체가 모든 것이 끝나는 의미가 아니고 生死輪廻, 因果應報로 연결되어, 시간을 초월한 한 瞬間의 刹那的인 것임을 漱石는 意圖的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부모와 자식간의 殺害에 대해서는, 불교의 業 思想과 관련되는 것으로, 그것이 來世觀으로서 前生의 業이 現世에까지 나타나서, 因果應報를 초래하기도 하고 또 그 業에 의해서 生死輪回를 일으키는 것이라는 점을 불교적 禪的인 관점에 입각해서 묘사하고 있다. 또 漱石가 일생의 문제였던 參禪을 통한 깨달음에 대한 願望의 이야기로, 漱石가 二十六,七세때 鎌倉의 円覺寺에서 참선했을때의 體驗이 기반으로 되어 「-趙州曰く無と, 無とは 何だ」라는 話頭를 두고 알지 못한다고 괴로워하는 자신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이와같이 漱石는, 佛敎 公案 (話頭)인 「趙州無字」 및 「父母未生以前 本來面目」에 관계되는 내용으로 人間自體의 根源을 탐구하여, 佛敎의 禪思想과 더불어 無意識의 意識化로서 一貫性있는 이야기로 재통합, 夢(꿈)을 그 수단으로 구성하여 작품 『夢十夜』가 쓰여졌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夢十夜』는, 時空을 超越하여 絶對의 境地, 깨달음의 道에 到達하려했던 漱石가 生涯에 걸친 求道過程으로서 그의 마음속 깊이 內在되어 있는 問題를 夢(꿈)의 形態로 表現, 描寫한 作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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