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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 나타난 ``게가레(穢れ)``, ``이미(忌)``, ``쓰쓰시미(つつしみ)``라는 표현에 주목하여, 그 용례의 분석을 통하여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일상생활에 뿌리내리고 있던 ``촉예(觸穢, 부정 탐)``와 그 해소행 위인 ``근신(謹愼)``이 작품 속에 어떻게 기술되어 있으며, 작품 형성의 한 방법으 로서 작품의 내적 전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헤이안 시대 촉예의 규정은 『엔기시키(延喜式)』「임시제(臨時祭)」의 조 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엔기시키』에 규정된 촉예의 대상은 죽음 부정(死 穢)·출산 부정(産穢), 이장(移葬)과 유산 부정인데, 그 밖에 화재나 여성의 달거 리도 부정의 대상이었다.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촉예를 직접적으로 나타내 는 ``게가레``라는 표현은 15회 사용되고 있다. 그중 11회가 유가오(夕顔)와 우키 후네(浮舟)의 죽음과 관련된 죽음 부정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두 사람의 죽음이 ``게가라이(穢らひ)``로 간주된 이유의 하나는 그녀들의 죽음이 횡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자연사라 할지라도 죽음은 부정을 타는 대 상일진대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두 사람의 죽음만 부정의 대상으로 기술되 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유가오와 우키후네가 지닌 존재성, 즉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여성이라는 두 여성의 존재성이 죽음의 장면에까지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겐지 모노가타리』에 죽음 부정을 떨쳐버리기 위한 ``이미(忌)``의 용례는 19회인데, 죽음과 ``이미``는 남은 중심인물 의 입장에서 기술되어 있으며, 이후의 작품 전개와 밀접하게 연결된 하나의 계 기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겐지 모노가타리』 내 ``모노이미(物忌)``는 19회 중 12회, ``쓰쓰시 미``는 22회 중 5회가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구실``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용례를 통해, 남성이 새로운 여성과의 ``밀회를 위한 구실(口實)``로서 ``모 노이미``를 이유로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히카루겐지와 가오루·니오노 미야(내宮)라는 남성들과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들의 사랑 이야기를 큰 축으로 삼고 있는 『겐지 모노가타리』의 기본 구도를 생각할 때, 사랑의 계기 가 되는 ``사랑의 장(場) 만들기``라는 ``모노이미``의 설정은 작품의 근간과 관련이 있는 만큼 작품 형성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겐지 모노가타리』에는 회임과 출산과 관련하여 순산을 기원 하는 ``쓰쓰시미``라는 표현이 3회 쓰이고 있다. 헤이안 시대의 출산은 귀족들의 일상생활에 뿌리내리고 있던 부정을 타는 행위였다. 그런데 히카루겐지, 유기 리, 아카시노히메기미(明石の姬君) 소생의 동궁, 가오루와 같이 작품의 축을 이 루는 중심인물들의 탄생을 그리고 있는 『겐지 모노가타리』 내 출산장면에서 주목할 점은, 출산 후의 부정보다는 태어난 아이가 가져온 인간관계의 양상과 이후의 작품 전개가 중점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게가레``, ``이미``, ``쓰쓰시미``라는 표현으로 기술되어 있는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일상생활에 밀착되어 있던 ``촉예``와 ``근신`` 은, 작품의 전개를 촉진시키는 계기로서 작품 형성의 한 방법으로 설정되어 있 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