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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일문학연구검색

Journal of Japa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일어일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25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94권 2호 (2015)

『신手本忠臣장』からみる戱作者と신家の創作法について

강지현 ( Ji Hyun Kang )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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戱作者振鷺亭作신本『신手本忠臣장』(1796年刊)を中心に、신家桂文治の신本『假名手本忠臣장』(1804~1818年頃刊行)を比較することで、戱作者と신家の創作法を考察した。序段の兜改め、二段目松切りをはじめとする多くの場面において振鷺亭が試みる創作法、卽ち忠臣장原作の人物たちを登場させながら、原作の文句も一部使用するものの、最初の基本的な樺組のみ同一で、事件の結果は讀者の予想に反するような「落ち」にて締括る技法は、後に桂文治が繼承する創作法である。但し、振鷺亭は原作本文を直接引用したならば、桂文治は間接引用しながらパロディを驅使した点が相違する。また、三段目「師直の五重塔지め」「坂內のお輕見誤り」の他、人名のみ借りては原作台詞を脚色することなく、原作における些少な一部を擴大·再解釋し、先行する小돌を典拒とするなど、原作とは關係ない新たな話を創作する場合がある。パロディという側面からみると、登場人物の職業·場面自體を最初から變更して렬る中で原作台詞を巧みに脚色する桂文治の創作法の方が、 振鷺亭のこの創作法を更に發展させたものといえよう。このように戱作者振鷺亭の創作法を신家桂文治は繼承·發展させたといえる一方、振鷺亭の殊に戱作者としての眞面目が現れた創作法として、滑稽本に相通じる笑い、<忠臣장もの>黃表紙の一般的な創作技法の受容、黃表紙をはじめとする戱作の書誌的影響を受けた構成法が擧げられる。

近世後期、日本の年中行事に關する一考察 -江戶と大坂の風俗を中心として-

이현영 ( Hyun Young Lee )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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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論文は近世後期の日本の年中行事についての考察である。筆者は以前『江戶名所圖會』、『東都歲事記』、そして『江戶名所花曆』など江戶に關する文獻に表れている名所、俳諧、そして年中行事について檢討し、開幕とともに發達した大都市江戶の庶民生活について調べた。しかし、'江戶'という新生大都市の名所と俳諧、そして年中行事が中心であったので、同時代江戶と幷んで商業都市として繁昌した大阪と長い歷史·文化を誇る京都の風俗にまでは手が屆かなかった。從って本論文では、近世後期の風俗を記錄した『守貞만稿』という文獻を調べ、江戶と京坂の風俗を比較·分析し、庶民の生活像を統合して把握して見ようとした。また、各各の風俗はどんな變化をたどってきたのか、江戶と京阪の風俗にはどんな共通点と相違点があるのかなど、江戶の諸文獻との比較を通して明らかにしてみた。その結果、江戶、大阪、そして京都という地域によって行事の內容と方法が多少違っていて、行事の意味も變化していったことが確認できた。特に、五月五日の端午と十月二十日の大阪の'誓文拂'と江戶の'惠比壽講'からはこのような現象が目立つと言えよう。それは各地域的な特徵、すなわち江戶は武家を中心とした大名家の風習が、大阪は商業の都市として商賣と關連した風俗が發達してきたことが分かった。これらは今日の日本の年中行事の性格を理解するにも役に立つであろう。

田村俊子が描く晩年の夫婦像 -『山道』を中心に-

이상복 ( Sang Bok Lee )
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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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道』は田村俊子の通常の作品で見ることができる男女の葛藤と、相克に關する極端な描寫は全くせずに、愛による女の內面葛藤を描き出している。俊子は『山道』で佐多稻子に對する申し譯ない思いを表現しながらも、 窪川鶴次郞を通じて鈴木悅との愛を再演しよする期待を持ってみたりもする。しかし、山道を降りてくる途中で出會った夫婦の動いている樣子を見て、幸せだった悅との過去の日日を回想する。同時に、今の男は失った悅との愛を滿たせないことを悟ることになる。山道を降りてくる場面は、自身が今まで生きてきた道程をもう一度천る表現で、俊子自身の一代記を含蓄的な意味で表現した作品と言える。

일본 동북지방의 신라신사와 전승

노성환 ( Sung Hwan No )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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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지역에 있어서 분포된 신라신사에 대해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그곳에 신라의 문화가 이식되는 데는 신라인의 이주에 의한 것과 일본인의 이주에 의한 것이 있었다는 점이다. 전자는 일본 어느 지역에 정착했다가 다시 동북지역으로 이동한 것에 비해, 후자는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본인에 의해 타율적인 형태의 이주였다. 둘째, 신라신사의 건립에는 신라인에 의한 것, 지배자 난부씨에 의한 것, 삼정사계 승려에 의한것으로 3가지 유형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에 따라 제신도 달라지는데, 신라인이 건립한 신사에는 스사노오 혹은 신라여신이지만, 난부씨의 경우 그들의 시조 신라 사부로 요시미쓰, 삼정사계는 신라선신이었다. 셋째, 일본인에 의해 건립된 신라신사는 오우미의 삼정사의 신라선신당에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라선신당에 모셔진 신라선신은 원래는 당나라에 거주하는 신라인의 신앙대상이었다. 이는 삼정사의 승려 원진이 당나라 유학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신라인의 우호상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난부씨의 시조 요시미쓰가 신라사부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도 이곳에서 성인식을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인이 세운 신라신사는 중국의 신라방에서 출발하여 일본으로 들어가 관서의 삼정사에 정착하였고, 그것을 신앙한 요시미쓰에 의해 야마나시 지역으로 진출하였고, 요시미쓰의 후예인 난부씨의 이주와 삼정사계 승려들의 활약으로 동북지역으로 진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연령별 일본 이미지와 관련 요인 -국민의식과 일본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카가미토미요 ( Kagami, Tomiyo ) , 박애스더 ( Esther Park ) , 오카무라카요 ( Okamura Kayo ) , 코마츠미도리 ( Komatsu Midori )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94권 2호, 2015 pp. 95-123 ( 총 29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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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국인의 연령별 국민의식과 일본에 대한 관심도가 일본 이미지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연구 방법으로 인터넷을 통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연구 대상은 2012년 12월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13-18세, 20세, 25-29세, 30대, 40대, 50대, 60대 이상의 각 연령, 총 1049명이다. 설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 이미지 척도는 카가미 토미요, 박지선 외 (加賀美常美代·朴志仙 ほか, 2010)에서 사용한 형용사 19항목에 사회적, 환경적인 내용을 추가하여 40항목을 작성하였다. 국민의식 척도는 카라사와 미노루(唐澤穰, 1994)의 ‘국민의식 척도 일본어판’을 토대로 한국인 유학생 5명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항목들을 추가하여 작성하였다. 일본에 대한 관심은 카가미 토미요, 박지선 외 (2010)의 18항목으로 구성된 척도를 사용하였다. 분석은 SPSS에 의한 통계 분석을 실시하였다. 이 연구의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 이미지의 요인 분석 결과, ‘신뢰성’, ‘집단주의적 선진성’, ‘재해·사회문제의 심각화’, ‘공격성’, ‘개방성’의 5개 요인이 추출되었다. 둘째, 한국인의 국민의식에 관한 요인 분석 결과,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 ‘국가적 우월성’, ‘외국에 대한 개방성’, ‘저(低)자기 관여적 배타성’, ‘한국의 발전 우선’의 5개 요인이 추출되었다. 셋째, 일본에 대한 관심에 관한 요인 분석 결과, ‘일본과의 적극적 접촉’, ‘국제적 문제’, ‘일본 대중문화’, ‘한일간 영토·역사문제’의 4개 요인이 추출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국민의식과 일본에 대한 관심이, 일본 이미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토하기 위해 일본 이미지를 종속변수, 국민의식·일본에 대한 관심을 독립변수로 한 중회귀 분석을 연령대별(10대, 20대, 30·40대, 50대 이상)로 실시하였다. 그 결과, 긍정적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일본에 대한 관심의 하위 요인 중 ‘일본과의 적극적 접촉’과 ‘일본 대중문화’의 2개 요인으로 밝혀졌으며, 이러한 요인들이 동시에 있을 경우, ‘신뢰성’, ‘개방성’과 같은 일본에 대한 친화적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것(카가미, 2013)으로 나타났다. 10대~40대까지는 영토·역사문제에 대한 관심의 정도가 낮은 것이 신뢰성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일본과의 적극적 접촉’은 ‘집단주의적 선진성’과 같은 다양하고 다각적인 일본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 점이 명확해졌다. 한편, 부정적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국제적 문제’임이 밝혀졌으며, 10-40대까지는 국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경우, 이것이 일본의 공격성 이미지와 관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인터넷이나 TV에 의해 국제적인 문제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더욱이 30대 이상의 연령층은 국민의식 중 ‘국가적 우월성’을 가진 경우, 이것이 일본의 공격성 이미지와 관련이 있었다. 이처럼 일본 이미지 형성 요인에 한국인의 사회적 아이덴티티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결과는 일본 이미지의 형성에 관한 새로운 측면으로,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적극적 접촉이나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의 정도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국민의식이 관련 요인으로써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혔다.

東アジアの蛇壻入り類型の民譚に關する比較考察

이시준 ( Si Jun Lee ) , 장경남 ( Kyong Nam Jang ) , 황민호 ( Min Ho Hwang )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94권 2호, 2015 pp. 125-144 ( 총 20 pages)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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蛇壻入り類型に關する旣存の硏究、特に韓中日比較硏究は主に「夜來者」說話の相互比較が多い傾向があった。そこで、本稿では日本の「姉と妹」類型の民譚を中心に、韓國の「グロンドンドンドンシンソンビ」と中國の「蛇壻入り」をそれぞれ比較分析した。「グロンドンドンドンシンソンビ」の下位類型は四種類で、この中、動物の姿をした新郞と末娘が結婚して、新郞が人間の姿になって幸せに暮したというの內容の基本形は日本の「田螺息子」類型とその構成が酷似する。一方、「グロンドンドンドンシンソンビ」の完結型の場合、基本形の內容以後の弟を妬んだお姉さんが新郞から受けたタブ-を破り、妹が夫と再結合するために苦難と難題を乘り越えて行く內容は日本の「姉と妹」類型の構成と大局的に一致する。但し、二つの說話の詳細的な內容においては、「グロンドンドンドンシンソンビ」はタブ-の破綻と克服、「姉と妹」は因果應報に其-焦点が合わせられており、これによってその他の要素でも異同が見受けられる。また、中國の「蛇壻入り」說話は、 日本の「姉と妹」類型と基本的な構造はもとより、詳細的なモチ-フまで酷似しているのが確認できた。親に援助を與えた新郞と末娘が婚姻し、これを妬んだお姉さんが妹を殺して彼女の代わりをして、妹は鳥を始め何回の轉生を經て、終極には夫婦が再結合するのである。但し、親が受けた援助の內容、妹を殺すお姉さんの序列などの詳細的な部分では兩者間に若干の異同が見受けられた。

신本と豊臣秀吉

이재훈 ( Jae Hoon Lee )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94권 2호, 2015 pp. 145-167 ( 총 23 pages)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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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戶時代、庶民の文學として良く知られている신本。本稿はこの신本というジャンルの中で、特に日本國文學硏究資料館の公開資料の『신本大系』の中で、豊臣秀吉のイメ-ジがどのように描かれているのかについて考察したのである。 신本の中で、豊臣秀吉のイメ-ジは時代的な雰圍氣とか신本の展開により、大きく變わっていたのである。 初期のものと言える1615年刊行の『戱言養氣集』は當時、豊臣秀賴と豊臣秀吉の殘黨が殘っていた時代でもある。未熟期の作品という理由からか、まだ滑稽味は持っておらず、豊臣秀吉は單に德望のある指導者として描かれている。それが신本の成熟に伴い、『昨日は今日の物語』などでは、だんだん「落ち」の素材として描かれ始める。確立期、全盛期、退廢期に入ると、豊臣秀吉ははなしの中の補助的な手段にしか過ぎなくなってしまう。また、秀吉の名前が登場する戰爭においても、最初は憂鬱な雰圍氣を持っていたのが、だんだん「落ち」の背景を設定する道具として使われるようになる。 朝鮮に對する蔑視觀が廣まった17世紀後半に刊行された『籠耳』には、異例的に文錄慶長の役を素材としても使ったりもしたが、신本の性格が固まっていくにつれ、近松の『本朝三國誌』や、朝鮮軍記物語りなど、他のジャンルでは秀吉のイメ-ジは近代に至るまで强くなりつつある中でも、신本の中での秀吉のイメ-ジは弱くなってき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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