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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466-175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7권 0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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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시가문학회에서는 그 동안 매년에 걸쳐 학술연구 발표대회를 가졌고, 학회지로서 『古詩歌硏究』를 발간하는 등 고시가 연구의 활발한 연구를 꾸준히 계속하여 왔다. 학술 발표대회는 금년까지 23회를 개최하였는데, 그동안 수행되었던 연구발표의 안건은 총 102건이요, 대회에 임한 학술연구 발표자 수는 56명에 이른다. 또한 회원들의 꾸준한 학문연구로서 추진한 학회지 『고시가연구』는 제27집의 발간을 예정하고 있다. 제25집까지 게재된 논문의 수는 총 316편이요, 그 집필자 수를 헤아리면 112명에 이른다. 이는 학계 절대 다수의 연구진이 참여한 방대한 논문집의 출간이라 하겠다. 한편 학술발표에는 주요 과제를 공동연구의 특별 주제로 내세워 전국대회를 8차에 걸쳐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송강 정철의 생애와 문학, 사대부가사의 전통과 미학, 고시가의 정체성과 미학, 고시가 연구 방법론의 검토와 모색 등 흥미 있는 주제 논의는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학회지에 발표된 316편의 논문은 고전시가 전반에 걸쳐 심층적으로 연구된 결과이다. 이를 시가 유형별 비중으로 보면 가사와 시조 그리고 한시 등에 대한 논총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가사문학 연구의 업적이 대단하였음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송강문학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작가론 또는 문학론의 탐색이 다양하게 모색되었다고 하겠는데, 본 학회지에 발표된 정철관계의 다양한 연구들은 ``송강문학 재인식``의 괄목할 성과로 평가된다.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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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망명가사는 총 7편이다. 유일한 남성의 작품인 <분통가>는 독립운동가이자 혁신유림인 김대락이 창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6편은 모두 혁신유림문중의 여성이 창작했다. 따라서 만주망명가사의 담당층 및 산출 기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혁신유림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이다. 그리하여 이 논문은 만주망명가사의 배경적 연구로서 혁신유림의 개념, 혁신유림의 철학사상, 혁신유림의 작품인 <분통가> 분석, 그리고 가사문학사적 의의 등을 논의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우선 2장에서는 작품의 개관과 혁신유림의 개념을 살폈다. 2.1에서는 만주망명가사 7편의 개관을 정리했다. 2.2에서는 혁신유림의 개념을 살펴보고, 만주망명가사의 작가들이 혁신유림과 그 문중 여성임을 규명했다. 3장에서는 혁신유림의 사상적 기반을 살폈다. 3.1에서는 ``유학적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의 측면에서, 3.2에서는 ``공동체와 가족 지향 의식``의 측면에서 논의했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 여성들까지 투쟁의 현장에 서게 한 그들의 독립운동 의식이 어디에 근거하는지에 중점을 두었다. 4장에서는 유일한 혁신유림의 작품인 <분통가>의 작품세계를 분석했다. ``유학적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작품 안에 구체적으로 구현된 양상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가사문학사적 의의를 규명했다. 혁신유림과 문중 여성이 만주망명가사를 창작한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논의했다.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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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계보학적 탐색을 통해『樂府』(羅孫本)의 성격을 재조명하였다. 『악부』(나손본)는 19세기 통영 지방의 관변 풍류의 현장에서 소용된 여러 가집을 모아 乾과 坤2권으로 다시 엮은 가집이다. 『악부(건)』은 19세기 전반 가집『흥비부』의 이본이다. 편제와 수록 가곡의 특성을 비교한 결과 ``각조음``의 수록 작품에서 크게 차이가 났다. 본고에서는 그 이유를 ``각조음``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찾았다.『흥비부』와 달리『악부』 (나손본)의 편자는 가곡뿐만 아니라 시조 악곡까지 포괄하여 ``각조음``을 새롭게 해석했던 것이다. 『흥비부』가 통영에 유입된 경로는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통영의 풍류 문화에 정통했던 편자에게『흥비부』는 대단히 흥미로운 대상이었음이 분명하다. 체제가 잘 정비된 대규모의 가집일 뿐만 아니라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악곡들이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흥비부』를 필사하여 『악부(건)』으로 삼은 이유이다. 그리고 내친김에 소장하고 있던 여러 가집, 풍류의 현장에서 직접 지어 불렀던 노래들을 모아 건편과 짝을 이루는 곤편을 만들었던 것이다. 『악부(곤)』에는 크고 작은 가곡 가집 3종과 舞譜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편자가 소장하고 있거나 통영의 관변 풍류의 현장에서 소용되던 것들이다. 무엇보다 18세기 중후반에서 19세기 초 가집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악부(곤)』에는 편자와 그 주변의 기녀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주고받은 시조를 수록한 점이 흥미롭다. 이를 통해 우리는 편자의 성격과 통영의 관변풍류에서의 가집 소통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악부(건)』이 당대 가곡 연행의 보편적 실질과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이라면,『악부(곤)』은 통영의 가곡 소통과 연행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악부』 (나손본)는 통영에서의 가곡에 대한 당대적 관심과 소통의 역사를 두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던 것이다.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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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西金璇(1568~1642)은 조선 중기 나주 출신의 학자요, 문인이다. 그는 과거를 포기하고 평생을 布衣로 살았으나, 선조, 광해, 인조시대의 壬丙兩難은 물론 광해의 亂政과 反正등 많은 내우외환 속에서도 명분과 대의를 지킨 유학자였다. 시서는 광해원년(1609)에 五賢書院請額疏를 올려 나주의 錦陽書院이 景賢書院으로 賜額을 받는데 앞장섰다. 또한 이듬해인 광해 2년(1610)에는 道內儒林의 疏頭가 되어 文廟의 東方五賢配享을 위한 請五賢從祀疏를 주창하여 광해군의 허가를 받았다. 이는 前代의 己卯, 乙巳士禍로 인한 사회적 퇴폐분 위기를 일신하고 정통유학의 政論을 확립하여 文風을 통한 학문적, 사회적 교화를 이루려는 儒者의 현실의식을 조정이 반영한 것이다. 시서는 도학자이기에 앞서 시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를 좋아하여 짧은 시에 힘을 기울였으며, 생전에 1200여 수의 漢詩作品을 남겼다. 시서 詩의 性情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憂國之情이다. 그가 處했던 시대가 亂世였기에 나라와 君主에 대한 단순한 哀傷과 念慮가 아닌 悲憤慷慨한 憂國語調가 수 편의 시문에 표출되어 있다. 둘째는 安貧樂道이다. 시서는 을묘년(1615), 그의 나이 48세 때 과거를 포기하고 향리에서 五樂亭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그는 형제, 처자, 시와 술 그리고 거친 음식과 貧窮을 五樂으로 삼았다. 窮하면서도 義를 잃지 않는 것을 樂道라 여겼다. 그것은 老莊의 無慾이 아닌 儒者의 분수로 시서는 그것을 가장 편하게 여겼고 또 그의 삶처럼 그의 시에서 즐겼던 것이다.
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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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가사는 장흥 사람에 의해 제작되었거나, 장흥을 배경으로 성립된 가사작품이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장흥가사의 특성과 의의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연구 대상을 장흥의 전통가사에 한정하였으며, 장흥가사의 범주에 드는 작품 현황 검토 및 연구 동향 분석을 중심으로 목적에 접근하였다. 논의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작품 현황이다. 그동안 장흥가사로 취급되어 왔거나 새로 발굴된 작품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장흥가사를 모두 9편으로 분류하였다. <관서별곡>, <천풍가>, <금당별곡>, <임계탄>, <자회가>, <권학가>, <초당곡>, <인일가>, <장한가>가 그것이다. 이어 장흥가사에 대한 연구 동향을 작품에 대한 개별적 접근과 지역적 접근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그 결과 장흥가사는 조선 후기의 기행가사·교훈가사·현실비판가사가 주류를 이루면서, 각 유형의 작품들이 모두 나름대로의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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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당시 구례 석주관에서 칠의사와 의병들이 순절하였다. 본고는 구례 석주관의 제명각에 새겨져 있는 이들에 대한 추모 한시 50여수를 분석한 것이다. 제명각에 새겨진 시판의 시문들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써진 것들이었다. 칠의사의 후손이나 구례의 문인 또는 구례 관인들이 제사를 올리면서 추모시를 썼고 시판의 시를 새긴 것이다. 시문은 형식상으로 모두 칠언율시였다. 칠의사의 한사람이었던 왕득인의 후손인 개성 왕씨들의 작품이 가장 많았다. 후손이 아닌 경우에는 매천 황현(1855~1910)의 시문이 제일 많았다. 또 매천 주변 인물들의 시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은 칠의사의 후손이나 유제양을 비롯한 매천 주변의 인물들이 1901년 칠의각을 만들면서 추모시문을 썼고, 시판에 시문을 새겼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은 이 시기에 개성왕씨 가문과 매천이 구례 사회를 주도하고 있었으며, 또한 구례의 시단이 크게 융성하고 있었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석주관의 시문들은 조선 말기에 한문학사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이 시문들의 주제는 한결같이 왜란 당시 칠의사의 충절을 찬양하고 석주관의 사적을 읊은 것으로, 우리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시들이었다.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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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金文世(1894~1926)의 장편 창가 <高麗寺歌>를 발굴하여 소개한 글이다. 이 작품은『불교』 제8호(1925년 2월)에 수록되어 있으며, 7.5조 창가로 총 376행 분량의 작품이다. 김문세는 1919년 기미독립운동 당시 정주지역에서 만세운동을 한 우국지사이다. 일제의 추적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독립신문의 기자 신분으로 항주에서『사고전서』를 열람하면서 우리나라의 역사 자료를 수집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항주에 있는 高麗寺를 방문하고 느낀 바를 기본 틀로 삼고, 중국에 있는 우리나라 관련 유적지를 낱낱이 활용하여 <고려사가>를 창작하였다. 작품에서는 또 高麗寺를 중창하는 데 역할을 한 고려 대각국사 의천의 행적을 따라 중국을 종횡하는 긴 여정을 사료에 의거하여 형상화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한편, 행간에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7.5조 창가가 외래의 사조나 신세계의 문명을 찬양하는 초기의 모습을 벗어나 항일지식인의 내면적 리듬으로 수용 정착되고 있는 단계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의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이 작품을 매개로 하여 당시에 한국과 중국 간에 고려사를 중건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던 양상이 당시의 잡지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일제치하 한중 우호협력의 양상을 파악하는 데도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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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과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는 한국의 16세기와 17세기를 대표하는 시조문학이라 할 수 있다. <도산십이곡>이 산수자연을 즐기면서 일상생활에서 주어지는 온유돈후(溫柔敦厚)한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면, <어부사시사>는 산수자연에서 여가생활을 즐기면서 강호한정(江湖閑情)과 물외한적(物外閑寂)의 감흥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수사학적인 측면에서도 <도산십이곡>은 은유(隱喩)의 수사학을 통해서 수직적 계열체의 언어를 반복하고 나열하여 변화하지 않는 동일성의 세계를 함축하는 안빈낙도의 정신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시조가 시작되면서 그 뜻이 앞의 내용과 다르게 전개되기보다는 시조의 초장이나 첫 장에 그 의미가 정해져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은유의 수사학은 기호와 관념사이의 모순이 없는 등과관계로 연결시켜 보편적이고 관념적인 세계를 드러내기에 편리한 수사학이라 할 수 있다. 은유의 수사학을 통해서 <도산십이곡>은 사대부(士大夫)가 선(善)적인 미의식으로 자연을 바라보면서 온유돈후한 유교적 미의식을 겸선(兼善)이라는 관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어부사시사>에 나타난 환유(換喩)의 수사학은 경험적이고 특수한 내용을 통합적으로 확대시켜 관련되는 단어와 문장을 확장하여 통합적으로 그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환유의 수사학을 통해서 <어부사시사>는 자연으로 돌아온 일사(逸士)가 미(美)적인 측면에서 자연을 바라보면서 강호한정과 물외한적의 미의식을 구체적이고 경험적으로 드러내어 독선(獨善)의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은유의 수사학이 문맥 내에서 전통지향적이고 정적이고 결정적이라면, 환유의 수사학은 문맥 내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동적이며 미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조선중기 <도산십이곡>과 <어부사시사>는 사대부가 정치현실에 나아가 경세제민의 의식을 표출한 시가라기보다는 산수자연에 은거하면서 안빈낙도를 표출하는 시가이며, 사대부들의 출처관(出處觀) 중에서 출(出)보다는 처(處)에 관한 견해가 중심이 되어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어촌 심언광 시세계의 양상과 특징

박영주 ( Young Ju Park )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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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우리 한시사에서 16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면서도 그동안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한 어촌 심언광의 시세계에 개괄적으로 접근하여, 현전하는 그의 한시 작품수를 파악하여 유형적 양상을 살피고, 그의 시와 시세계에 결부된 역대 문헌들에 전하는 평들을 한 자리에 모아 그 특징적 면모들을 작품론에 입각하여 정리·논의한 것이다. 현전하는 어촌의 한시 작품수는 도합 850수로 파악되며, 율시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형식에 상관 없이 특히 7언을 선호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 850수의 내용을 작품 창작 계기 및 제재에 초점을 맞추어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술회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외직 경험이 많은 탓에 유람시 또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며, 교유시·관각시·애도시에 있어서 여느 사대부들에 견주어 많은 작품을 창작한 점이 두드러진다. 역대 문헌들에 전하는 어촌의 시와 시세계에 대한 평을 작품론적 실상에 입각해 살펴보면, 기풍 면에서는 ``웅혼하고 도타우며 화려하고 아름다움[渾厚浮艶]``·``기력이 혼연히 굳세고 물 흐르듯 노련함[氣力渾剛波蘭老成]``·``건실하고 풍부하며 화려함[健富麗]``이 돋보이는 것으로 이해되며, 격조 면에서는 ``수식과 기교를 배제한 진정성이 돋보임[無穿鑿纖巧之態]``·``만당시의 풍격과 운치를 갖추고 있음[頗饒晩唐人風韻]``이 돋보이는 것으로 함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어촌 시세계의 유형적 양상과 특징적 면모들은 그의 시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적절한 거점을 마련해 줄 수 있으며, 그가 일구어 나간 시세계 및 시적 성취에 대한 판단 준거로써 활용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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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엽집』은 고대 한국과의 친연성이 크다고 인정받아 왔으며, 그 시기가 인접한 향가와의 비교 연구가 성과를 축적해 왔다. 그러나 작가의 혈통, 향가와 동질적인 요소들만의 제한적 비교, 한일 양국의 민족적 차이점을 단순 비교하는 등의 방법론적 제약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따라서 연구자들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향가와『만엽집』의 비교 연구가 순탄치 않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백제문화권을 공통 기원으로 한 속요와『만엽집』의 계통적 동원성과 아울러, ①애정 소재, ②극적·극한 상황, ③이전가치 등의 주제론적 비교 가능성을 개진함으로써 속요 연구의 방법론을 확장하고 비교문학의 대상으로서『만엽집』의 성격을 보다 깊이 이해할 단서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구체적인 작품분석은 ①개체와 개체 사이의 이별, 그리움, 기다림의 정서, ②개체와 그 주변을 이루고 있는 극적·극한 상황의 설정 방향, ③계층을 불문하고 인정받을 만한 이전가치의 요소 등을 간취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이 논의에서 개별 작품 차원에서 이루어진 논의 성과들이 보다 유효적절한 이론적 구도를 갖춤으로써 속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백제문화권의 후대적 영향력을 재조명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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