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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466-175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5권 0호 (2015)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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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개된 13편의 만주망명 관련 가사문학 가운데 안동에서 창작한 작품이 7편이나 된다. 이 점은 안동의 지역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 연구는 안동의 지역성을 통합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지역문화콘텐츠로 만주망명 관련 가사문학을 제안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우선 안동의 지역성을 살폈다. 첫째, 안동은 규방가사 창작의 중심지였다. 필사본 규방가사 자료가 가장 많이 수집된 지역은 안동으로 나타난다. 안동여성은 가사 창작을 일상생활문화의 하나로 지니고 있었다. 둘째, 안동은 독립운동의 메카였다. 안동은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특히 경술국치 후 안동유림은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안동유림은 만주로 망명할 때 문중 전체를, 특히 여성을 동반해 갔다. 다음으로 안동 여성이 창작한 만주망명 관련 가사문학을 살폈다. <위모사>, <간운사>, <조손별서>, <눈물뿌린이별가>와 <송교행>, <답사친가> 등의 작가는 모두 안동 명문대가에 속한 여성이었다. 이들 작가는 자신의 문중이 만주 독립운동에 가담함으로써 극적인 삶의 변화를 겪게 되었으며, 그것을 가사로 표현했다. 이들이 쓴 가사에는 고국을 떠나는 처참한 심경, 고국에 있는 부모·형제·동기에 대한 그리움, 만주에 가 있는 딸·친정식구 등에 대한 그리움, 나라를 빼앗긴 울분, 자신이나 육친이 만주로 망명하기까지의 과정, 만주생활, 독립운동의지의 고취 등이 서술되어 있다. 만주망명 관련 가사문학의 창작은 안동의 두 가지 지역성이 작용한 결과였다. 즉 안동이 규방가사 창작의 중심지였다는 점과 안동이 독립운동의 메카라는 점이 결합하여 나타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 가사는 안동의 지역성을 총체적으로 드러내주는 훌륭한 지역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한편 이들 여성도 양반가 문중의 일원이었으므로 이들의 가사창작문화도 양반문화에 편입되어야 한다.

가사의 활용과 활성화 방안

김병국 ( Byung Kuk Kim )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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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가사작품이 현대에 활용되는 모습과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기존 연구를 검토하여 나름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가사의 활용에 대한 연구들을 검토해보면, 문화콘텐츠로의 개발, 글쓰기교육, 한국어 교육, 한국 문화 교육, 문학치료 등에 가사를 활용하고 있다. 가사를 현재의 생활에 활용하거나 그 활성화의 경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가사 문학이 현대에 활성화되고 그 전통이 미래에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전통이기 때문에 지켜야 된다는 당위성보다 그 속에서 현재의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를 찾아 널리 공감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 한 방법이 바로 문화 콘텐츠로의 개발이다. 이 경우, 지역과 관련 있는 가사 작품만을 문화콘텐츠로 개발하기보다는 한 지역을 대상으로 기본 콘셉트를 잡아 문화콘텐츠로 개발하면서 그 일환으로 가사를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면에서 ‘담양’의 경우는 현재 담양이 추구하는 가치와 전통으로 보아 자연과 인간의 교감, 자연과 (과학)문명, 전통과 현대의 공존, 예술과 놀이의 공존, 관람과 체험의 공존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을 힐링한다는 것을 기본 컨셉트로 하고 지역민들이 담양이라는 지역, 문화, 전통에 자긍심을 느끼면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또한 학문적으로 가사의 자료를 집적하고 그것에서 현재적 가치를 개발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실생활 속에서 손쉽게 가사 작품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현재까지 교육 분야에서는 주로 글쓰기 교육, 창의력교육, 비판적 사고 교육 등에 가사 작품들을 활용하고 있는데, 교육에서도 문화콘텐츠와 관련된 에듀테인먼트로의 개발이 필요하며, 이러한 가사에 대한향유가 학교 교육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에도 생활 속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현대에 가사도 시조처럼 일정하게 그것을 향유하는 계층의 존재가 필요하니, 그것은 우리가 생활의 표현수단을 하나 더 갖는다는 점과 그것이 오랜 우리의 전통으로부터 나왔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정해정 <민농가>의 배경과 성격

김신중 ( Shin Chung Kim )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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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884년에 정해정이 지은 가사 <민농가>에 대한 연구이다. <민농가>는 1980년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시도된 바 없다. 이에 <민농가>에 대한 세밀한 검토를 통해, 그 창작 배경과 문학적 성격을 해명한 것이 이 글이다. 제1장에서 이런 연구 취지와 목적을 밝혔다. 제2장에서 <민농가>의 창작 배경을 탐색하였다. 작자 정해정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및 작품의 창작 동기가 그것이다. 정해정은 조선 말 호남의 무등산 자락에 살았던 인물로, 개항과 개화로 대변되는 19세기 후반의 시대적 환경 속에서, 당시의 특수한 사회 상황을 반영하여 이 작품을 지었다. 이어 제3장에서 <민농가>의 세밀한 내용 분석을 통해, 주제의식과 문학적 성격을 해명하였다. 내용 분석은 작품 전체를 네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진행하였고, <민농가>에 두 개의 주제의식이 내재되어 있음을 밝혔다. 그 결과<민농가>가 단순한 권농가사가 아니라, 당시의 부당한 세정과 어려운 민생에 반발한 현실비판가사임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농부가류 가사로서, <민농가>의 특성과 의의가 있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연구의 내용과 결과를 요약 정리하였다. 아울러 <민농가>에그 단초가 보이는 조선 후기 농부가류 가사의 변모상 탐색을 남은 과제로 제시하였다.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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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가>와 <성산별곡>은 강호시가로서의 존재양상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학적 성취의 지점이 다르다. 담양이라는 장소와 관련하여 그 체험과 의미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 ‘담양’은 구체적 삶의 경험을 담지한 곳, 仙界-아름다운 자연을 지닌 곳, 歸隱의 이상적 공간,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한 곳, 따라서 조화와 합일에 의한 안정과 眞樂을 추구하고 완성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었다. 특히 특정시대(16세기, 사화기), 특정지역(담양), 특정집단(호남사림)의 장소성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두 작품에 내재한 ‘담양’은 그 장소성에 차이가 있다. 만년(70대)에 창작된 <면앙정가>의 ‘담양’은 송순의 고향이었으며, 연륜과 인생의 깊이, 오랜 경험 끝에 도달한 최상의 경지로서 ‘자연’이었다. 반면, 20대 중후반에 창작된 <성산별곡>의 ‘담양’에는 어린 시절 유배지 체험과 유랑의 고통, 10년의 학문과 문학적 성장기 이후,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송강의 체험과 관심이 녹아있다. 송강에게 ‘담양’은 ‘고향 같은 곳’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성장시킨 곳이었지만, 아버지의 좌절과 방황 끝에 정착한 곳, 근원적 상처를 지닌 채 찾아들었던 타향이었다. 따라서 <면앙정가>의 ‘담양’이 절대조화의 자연세계, 여유와 달관, 자긍과 眞樂의 장소성을 지닌 곳이라면, <성산별곡>의 ‘담양’은 眞仙이라는 만족감에 기대어, 현실과 이상의 갈등, 그 일시적 해소의 장소성을 지닌 곳이었다. 멈추어 아름다운 ‘담양’의 자연 속에서도 時運과 人心, 世事로 인한 갈등과 번민의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한 곳, 완전한 물아일체에 이르지 못한 곳이다. <면앙정가>의 ‘담양’이 송순이 부여하는 가치들의 안식처로서, 안전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한 중심, 부조리와 불안, 반감과 분노가 전혀 없는, 자긍심과 평정심·정서적 안정감을 지닌, 眞樂에 도달한 귀의처였다면, <성산별곡>의 ‘담양’은 자기 정체성의 회복, 안정과 성장의 안식처로서 仙境과 歸隱에 대한 동경과 예찬의 대상임에도, 미진한 현실에 대한 관심과 갈망이 녹아있는 곳, 그 아름다움 속에서도 출렁이는 갈등, 젊음의 불안과 욕망이 내재한 곳, 자연에 완전히 몰입·동화되지 못한 채, 그 일시적 해소를 도모했던 의지 처였다. <면앙정가>와 달리 번민과 시름, 현실에 대한 미련이 尙存하는 곳이었다.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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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김삿갓 시세계가 지닌 특징과 의의를 작품에 투영된 시대상과 시적 지향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한 것이다. 김삿갓의 삶은 개인적 모순에서 사회적 모순으로 전이된 면이 강하며, 그가 남긴 시편들은 당대 봉건 권위주의에 맞서 고착화된 관념이나 가치를 깨뜨리면서, 전혀 새로운 시적 형상을 통해 새로운 관념과 가치의식을 창출한 데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김삿갓은 19세기 중엽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애환을 사실적인 수법을 통해 진솔하게 노래했다. 또 당대 사회현실에서 제기되는 불합리와 부조리를 특유의 언어감각을 동반한 파격의 형식과 희작성의 내용을 결합하여 신랄하게 노래했다. 이와 함께 그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함께 당대 변화하는 시대현실에서 대두된 풍정과 세태 및 가치의식을 즉생활적 제재와 형상들을 통해 노래했다. 그는 파격적인 발상을 통해 당대를 살아가면서 그가 생각하고 느낀 바를 보다 자유롭게 표출함으로써, 종래의 시적 정서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였다. 그런 면에서 김삿갓은 단순히 한시 형식만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념과 가치 및 삶의 형식까지를 깨뜨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삿갓의 시편들은 더없이 인간적이고 사실적이며 진솔하다. 이는 그가 역사 격동기의 생활시인으로서, 경험적 진실성이 우러나는 작품들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일구어 나갔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시화 대상에 대한 동화 혹은 이화의 정서와 태도를 통해 삶의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시대의식에 입각하여 당대의 인간풍정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편들이 당대 이후 계층을 초월하여 인구에 회자된 데에는, 이와 같은 시적 지향의식이 이른바 ‘김삿갓 시’로 일컬을 수 있는 그만의 특유한 개성을 창출한 데 있다. 김삿갓 시의 문학사적 의의와 위상은 이와 같은 개성과 시적 지향의식을 통해 중세적 사유방식과 가치의식의 틀로부터 벗어나 근대를 예비하는 새로운 시적 형상을 창출한 데 놓여 있다고 할 것이다.

송순 교유시의 양상과 정서

백숙아 ( Suk Ah Baek )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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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여러 각도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송순의 문집인 『면앙집』에는 560여수의 한시가 실려 있다. 이 중에서 교유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은 비교적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연구성과를 토대로 송순 한시에 나타난 교유의 양상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특히 사제지간의 정을 담은 작품들과 동료지간에 믿음과 우정을 담을 작품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사제지간에 관련된 작품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당대 최고 절의가이자 문장가로 추앙 받아온 박상, 박우 형제의 가르침을 통하여 이름을 드높였다는 점이다. 송순은 자신이 학자가 되기까지 두 분의 가르침이 많았다며 늘 두 형제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았다. 두 번째는 송 순의 삼종 당숙으로 소문난 청백리인 지지당 송흠(1559~1547)과 전북 태인의 취은 송세림(1479~?)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수학을 통하여 풍류시인으로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송순 한시에 나타난 동료와의 신의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송순은 인품이 온유돈후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돈독한 정을 유지하며 지냈다는 것을 그의 작품과 함께 살필 수 있었다. 동료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고 이해하며 조화로운 시작 활동을 하였던 점이 주목된다. 송순의 한시 속에 드러난 교유 양상을 보이는 작품들은 이 밖에도 스님과의 교분과 별시나 만시를 통하여도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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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이 만들고 즐겼던 고전시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작품과 관련을 가지는 모든 정보가 있어야 한다. 작품의 내용, 작품 형성의 사회적 배경과 문화, 작품과 관련을 가지는 역사적 사실, 작가에 대한 정보, 관련 유적 정보, 작품과 관련을 가지는 방계 정보 등 수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보는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용이 풍부하면 할수록 이해의 수준을 높일 수 있으며, 예술적 아름다움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정보들은 지금까지는 각각 분리된 채로 존재했고, 정보와 정보간의 자유로운 소통이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정보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어주는 과정과 이론이 반드시 필요했다. 종래의 이런 이해 방식은 멀지 않은 미래에 일반화할 것으로 보이는 빅 데이터가 기초를 이루는 사물인터넷으로 인해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누군가에 의해 자료들이 수집되고, 분석되고, 이론화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면 앞으로는 사물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면서 수요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맞춤정보의 방식으로 선택해서 수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빅 데이터와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맞춤정보시대는 인류의 삶을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가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고전시가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고전시가는 작품과 관련을 가지는 모든 정보들을 빅 데이터화하고 분석하여 분류한 다음 각각 분리되어 존재하는 정보들은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체계화한 문예콘텐츠를 통해 수요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되어야 한다. 후백제를 세운 시조인 견훤과 관련을 가지는 시가인 <완산요>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견훤의 생애 관련 자료, 역사적 활동 자료, 유적 자료 등이 모두 필요하다. 이러한 자료를 모두 하나로 모아 빅 테이터화 한 다음 그것을 일정한 기준에 의해 분류하고 사물인터넷 방식으로 연결하여 수요자에게 맞춤정보로 제공할 수 있는 문예콘텐츠를 창조해야 한다. <완산요> 관련정보는 견훤의 출생과 죽음에 이르는 생애 자료, 세력의 확장과 건국 과정에 대한 자료, 견훤과 관련을 가지는 산성 자료 등으로 크게 분류한 후 다시 아래 단위로 세분화하여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견훤의 출생 설화인 야래자설화와 같은 방계 자료에 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하고, 모든 정보들이 사물인터넷 방식을 통해 유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체계를 갖춘 <완산요>의 문예콘텐츠가 만들어지면 수요자는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든 허브와 허브에 담긴 정보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소통할 수 있는 수많은 통로를 따라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면서 적합한 것들을 맞춤정보로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완산요>와 같은 방식의 문예콘텐츠의 창조는 고전시가 전체 작품에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서는 고전문학 전체 작품이 이러한 방식으로 재창조되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산수제화시의 전개와 특성

여기현 ( Gy Hyun Yeo )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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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인들이 선호한 산수화는 송적의 ‘소상팔경도’, 장언보의 ‘청산백운도’, 나옹화상의 ‘운산도’·‘설산도’이다. 명종을 비롯한 무신집권기의 문인들은 ‘소상팔경도’를 선호하였다. 이후 민사평·이색 등 신진사인들은 ‘청산백운도’를 선호하였다. 고려 말 정치적 혼돈의 시대에 이첨·원천석 등 사대부들은 ‘운산도’와 ‘설산도’를 선호하였다. ‘소상팔경도’를 선호한 까닭은 첫째는 회화적 감동이다. 둘째는 그림은 정신적 위로를 위한 탈출구이다. 셋째는 중국의 산수는 고려가 아니기 때문에 관념적 유희를 즐기기에 적합하였다. ‘청산백운도’를 선호한 까닭은 첫째는 유가의 산수관념을 수용한 신진사인들은 자연산수를 새롭게 인식했다. 둘째는 새로운 자연미의 발견이다. 자연에서 즐거움과 흥취를 느낀다. 그래서 담백하고 평원하고 여백이 있으면서 선비의 향이 풍기는 문인화를 선호하였다. ‘운산도’·‘설산도’를 선호한 까닭은 첫째는 고려의 실경을 그렸다. 익숙한 고려 산수에 공감하였다. 둘째는 화의와 기교에의 공감이다. 구름에 가려진 청산이나, 운무에 뒤덮인 골짜기나, 눈이 쌓인 산이란 화제에 대한 공감이다. 불확실성의 현실 속에서 구름과 눈은 그들에게 가슴에 와 닿는 좋은 소재였다. 본고는 문인들이 산수화에 제시한 작품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그 특징을 분석하였다. 제화시 분석을 통하여 회화사에서 밝히지 못한 당대 문인들의 선호와 그 까닭과 산수화 화제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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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송순의 면앙정 구축 과정과 그 과정에서 산출된 시문들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면앙정가>의 창작 시기를 알아본 것이다.송순은 1524년(32세)에 면앙정 터를 구입하였고, 1533년(41세)에 면앙정을 창축(創築)하였으며, 1552년(60세)에 면앙정을 중즙(重葺)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시문들을 창작하고 부탁하였는데 이것들은 창축 시기의 것과 중즙시기의 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면앙정을 창축한 후 송순은 한시 <면앙정>과 시조 <십년을 경영하여~>를 창작하였다. 그리고 소세양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에게 부탁하여 면앙정을 소재로 한 한시를 받았고 스스로 이에 차운(次韻)하는 시를 지었다. 면앙정 중즙 이후에는 가사 <면앙정가>와 이 작품의 핵심 지향을 압축한 삼언시(三言詩) 형태의 <면앙정가>를 지었다. 그리고 기대승, 김인후 등에게 부탁하여 <면앙정기>와 <면앙정삼십영>을 받았고 만년에는 임제에게 부탁하여 <면앙정부>를 받았다. 이상의 사실에서 창축 이후와 중즙 이후에 창작된 시문들이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송순이 나름대로 구상하고 기획한 결과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편 면앙정 구축 과정과 이 과정에서 산출된 시문들을 자세히 검토하는 작업을 통해 <면앙정가>는 송순이 선산부사를 마치고 담양으로 돌아온 1555년(63세)부터 전주부윤으로 다시 출사한 1558년(66세) 사이에 창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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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존의 일생을 다룬 율문의 전통을 근현대에 가사로 나타낸 것이 <석존일 대가>이다. 이 작품은 근대 가사로서 특징도 보여주며 교술이면서 서사적이고 희곡적인 성격도 보여 주며, 가사로서 석존의 일대기를 다루는 문학사의 최근 현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연구가 이제 시작되는 단계에 이 작품 자체의 표현 구조, 장르 성격 등을 따져 봄으로써 그 본질을 해명하고자 했다. 먼저 표현 구조의 문맥 구조와 단락 전개 구조 중에 문맥 구조에서는 두 행 또는 두 문장 이상이 모여 이룬 큰 문장들의 내적 상호 관계 맥락을 연결 방식과 종결 방식으로 나누어 살폈는데 사실의 나열이나 시간 순서에 따른 제시의 관계로 연결되는 경우, 인과 관계로 연결된 경우 등 연결 방식은 이 작품이 많은 사실 전달하고 가르치면서도 논리적으로 독자를 설득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다. 단락의 전개 방식에서 보면 전체가 9개의 장에 각 장은 다시 여러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제1, 5, 6장은 문제-해결 배치 방식의 단락 전개를 보이고, 제2, 3, 8장은 자연적 시간 질서와 인위적 논리 질서를 병행하고, 제4장은 세출세간의 갈등을 통한 출세간 가치의 승리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제7장은 세간과 출세간을 아우르는 교화, 고난과 극복으로 이어지는 교화를 서사적으로 진행하면서 사이에 작자의 설명, 판단 등을 개입시키는 방식으로 단락이 전개되고, 9장에서는 주장과 이유 제시라는 인위적 논리에 따라 단락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곧 문맥 구조를 통해 감성적으로 제시한 여러 사실을 논리적으로 증명함과 동시에 석존과 그 가르침에 대한 작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단락을 전개시키고 있었다. 작품의 장르 성격 가운에 서사성의 측점에서 작품 외적 자아가 장면 서술을 통한 표면적 개입은 물론 인물의 심리 세계나 제시한 사실에 대해 고증하는 방식으로 개입함으로써 심층적 개입을 하고 있고,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간의 치열한 갈등을 드러내며, 전체 작품 내용의 서술에서 과거와 현재시제를 혼용하여 내용 전달의 효과를 증대시키고 있다는 점 등에서 서사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이 작품은 희곡적 요소인 대화를 많이 사용하는데 특히 핵심적 갈등요소를 주로 대화의 기법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출가를 두고 갈등을 빚은 태자와 부왕의 대화, 출가후 수행방법을 두고 갈등을 빚은 태자와 외도의 대화, 석존과 제자의 대화, 제자들 사이의 대화가 그 대표적 예이다. 대화 기법은 그 자체로 희곡적 성격을 나타내보여 주는데 특히 대화의 제시 방법에서 설명을 희곡에서의 지문과 같이 하고 대화 방식은 희곡의 그것과 완전히 같게 하여 본격적 극의 성격을 보여 줌으로써 이 작품은 희곡성을 장르 성격으로 확보했다고 보았다. 이 두 가지 성격이 상호 관계를 맺으면서 사실을 알리고 가르치려는 교술성에 기초하고 있었다. 희곡성과 서사성이라는 두 성격을 통하여 드러낸 내용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가르치려는 데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장르적 성격을 희곡적 성격을 약하게 가진 서사적 교술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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