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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466-175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8권 0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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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가 인간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문화이며 그 안에서 문학적 생성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본 연구는 음주 문학 중에서도 권주라는 독특한 기능을 담당하는 시가, 특히 우리말 권주가의 특성을 살피고 동양 문학에서 그 연원이 오래된 ‘장진주’ 시가의 맥을 잇고 있는 우리말 권주가의 내용적 일체성과 작품군의 실상을 고찰한다. 우선 우리말 권주가가 갖는 주제의식과 그 표출 양상을 살폈다. 내용적으로 이 작품들은 모두 당나라 이백, 이하의 <장진주>에서 드러냈던 주제의식이라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인생무상에서 오는 비애의 정감’과 그에 따른 ‘음주의 당위’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 주제의식은 <장진주사>부터 12가사류<권주가>까지를 모두 관류(貫流)하고 있다. 또 이 작품들은 이러한 주제를 나타내기 위하여 몇 가지 동일한 표출 양상을 보인다. 우선 이하의 <장진주>에서 비롯된 죽음 이후의 무의미함을 통해 인생무상을 노래한다. 사망 이후에 누가 술을 권하겠는가라고 지적하여 비애와 당위를 모두 드러내는 양상이다. 다음으로 권주의 대상 ‘君, 그대’가 표면적이거나 내면적으로 등장한다. 자작(自酌)이 아닌 수작(酬酌)의 기능을 담당하기 위한 노래이기에 대상의 존재는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술 권하는 행위가 언사(言辭)로 나타난다. ‘잡으시오, 먹새그려’ 등의 직접적 명령이나 권유 외에 ‘안 먹으려 하는가’와 같은 간접적 요구도 등장한다. 이러한 어구들이 모두 권주의 실제적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우리말 권주가의 세력에 대하여 파악하였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이 계통의 최초 작품은 <장진주사>라 할 수 있다. 이 노래와 함께 청구영언에 수록된 신흠·김천택·무명씨의 시조, 박인로의 <권주가>는 동시대에 향유되었다. 또한 12가사 <권주가> 역시 18세기에 형성되었는데 후대 가집에서 앞의 세 종과 혼재되어 나타난 양상을 보인다. 즉 네 노래가 일정 시간에 같은 연행 공간에서 향유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한 계통으로 파악되기보다는 개별 작품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었다. 본고에서는 이를 하나의 독립 계통으로 보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렇게 여러 형태의 노래를 하나의 계통으로 파악했던 예를 ‘어부가’에서 찾을 수 있다. 한시 ‘어부사’에 대비하여 우리말 노래를 ‘어부가’로 계통화한 것이다. 그에 비출 때, 우리말 권주가 역시 계통화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파악하였다. 물론 각편 연구에서 얻어지는 의미도 크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계통화를 통해 국문시가의 폭과 영역이 확장되고 문학사의 지평도 확대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말 권주가에 대한 시각을 거시화한다면 조선 후기 우리문학사가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우리가 현재 전수받은 작품들이라는 것은 그 세력이 강하든 약하든 생존하였다는 의의를 지니므로 이외의 작품 역시 그 가치가 크다. 더욱이 선인들 역시 <장진주사>의 존재가 막강함에도 다른 우리말 권주가를 향유하고 창작하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김수장 시기에 「어부가」가 하나의 작품군으로 독립성을 지닌 것처럼 지금 시기에 우리말 권주가를 개별적 계통으로 인정해야 옳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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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후기 가사에 나타난 지옥의 형상화 양상과 그 시대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옥을 노래하고 있는 조선후기 불교가사는 지옥 관련 화소의 유무 여부와 내용적 경향성에 따라 다음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형은 지옥 관련 화소가 없고 ‘지옥’의 시어만이 등장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지옥’의 시어를 통해 세상사에 탐착하고 貪·瞋·癡의 三毒에 빠져 있는 청자들을 경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청자들이 참선 또는 염불에 힘쓸 것을 권하고 있다. 둘째 유형은 ‘징벌’의 양상과 그 이유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 유형의 가사들은 다양한 종류의 지옥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각각의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징벌의 이유로는 살생·妄語·음주·邪見 등의 5惡 내지 10惡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유형은 ‘저승길의 여정’·‘시왕의 심판’·‘지옥의 징벌’ 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작품들이 해당한다. 이 유형에 속하는 <회심곡>류 불교가사는 시왕의 심판을 받는 죄인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한 뒤, 남자죄인에게는 선행의 덕목을, 여자죄인에게는 악행의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선행의 덕목과 악행의 항목들에는, ‘보시행’ 및 ‘妄語·兩舌·惡口·綺語’ 등의 불교적 윤리 규범과, ‘삼강오륜’을 포함한 유교적 윤리 규범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적 특징은 당시 불교계의 사상적 동향이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기존 체제를 위협하는 사상적·사회적 혼란, 그 중에서도 천주교의 교세 확장에 대한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결국, <회심곡>류 불교가사의 지옥 형상화는 유교사회의 상식을 반영하여 유교와의 공존을 추구한 불교의 시대적 변용이자, 당시 널리 확산되고 있던 천주교의 지옥설에 대한 종교적·문학적 대응의 성격을 갖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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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박세채의 『증산염락풍아』증보 작품의 성격과 특징을 다루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염락풍아』는 송말 원초의 학자인 김이상이 송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들의 시문을 모아 편집한 것으로,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교양 필독서로 자리하며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읽혀졌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박세채는 『염락풍아』을 증산하여『증산염락풍아』란 이름으로 간행했다. 이는 편자인 박세채의 특정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포폄을 넘어, 시대상이나 문학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먼저 『증산염락풍아』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증산염락풍아』는 편자 나름대로의 가치 판단과 비평 기준, 시대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새로이 증산한 것이다. 김이상의 『염락풍아』에 비해 주자학적 이념이 훨씬 강화된 모습을 보인다. 증보 작품에 나타난 특징을 구체적 작품을 대상으로 살펴본 결과,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심성 수양의 잠계이다. 박세채는 고체의 형식을 빌려 箴이나 銘이란 시제로, 심성 수양법 중의 하나인 敬을 다룬 작품을 주로 증보하였다. 이는 자신이 敬에 대한 여러 설을 뽑아 엮은 『心學至訣』을 저술한 사실과도 관련된다. 둘째, 지동도합의 표출이다. 박세채는 주자를 중심으로, 성리학 발달에 기여한 학자나 주자와 직접적인 사제 관계에 있는 인물들의 작품을 주로 증보하였다. 성리학자인 소옹과 장식, 주자의 스승인 이동과 유병산, 그리고 재전 제자인 웅화 등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셋째, 차산수명도의 구현이다. <무이도가>를 순수한 산수시로 간주했던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는 학문 입도 차제의 조도시로 파악했다. 이는 원의 학자인 진보의 설을 추종한 조선 성리학자들의 보편적 견해의 반영이자, 박세채의 정통 주자학에 대한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넷째, 격물치지의 영탄이다. 박세채는 격물치지의 예로서, 소옹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증보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觀物詩>, <首尾吟>, <天意>, <極論>, <先天吟>, <感事吟>, <天道吟>, <閒吟>, <觀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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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한매일신보』에 수록된 배설(裵說) 추모시가를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이 글은 배설의 절명, 배설 추모시가의 현황, 내용 및 의의에 대해 살폈다. 이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배설은 『대한매일신보』의 최초 발행인인 영국인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1872년 11월 3일 ~ 1909년 5월 1일)의 한국식 이름이다. 1904년에 대한제국으로 건너온 배설은, 애국계몽기에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배일 논조를 펼쳤다. 이 일로 배설은 1907년, 1908년에 영일 양국의 기소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1908년 재판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1909년에 심장확장으로 절명했다. 배설 사후인 1909년 5월 5일부터 5월 10일에, 대한매일신보사는 배설 추모시가를 모집한다는 사고(社告)를 『대한매일신보』에 냈다. 그 결과로 국문판 『대한매일신보』 □조란에 「□고□고」(1909년 5월 6일자) 1편, 「□셜씨 상□ 에 통곡」(1909년 5월 9, 12, 13, 14, 30일자) 5편 등 총 6편의 배설 추모시 가가 게시되었는데, 이 글은 배설 추모시가의 이러한 현황을 살폈다. 이 글은 배설 추모시가 6편의 내용에 대해 구명했다. 배설 추모시가 6편은 작품에 따라 내용의 양상이 달리 나타나지만 이를 종합한 결과, 배설 추모시 가는 대체로 초혼, 망자의 행적, 망자에 대한 칭송과 애도, 망자의 사인, 망자 의 한에 대한 위로, 망자의 절명에 대한 원망뿐만 아니라 생자의 비애, 소망 및 다짐 등의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았다. 이 글은 배설 추모시가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고찰했다. 첫째, 배설 추모시가는 ‘죽음’이라는 인간 보편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기 위 해 망자와 생자가 소통하는 방식을 취하는 가운데, 생자가 계몽, 자강, 독립 을 다짐하는 발화를 통해 자신의 태도와 가치관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도록 유도하고 있다. 둘째, 배설 추모시가는 근대적 인쇄매체인 신문에 실려 대중 독자와 더불어 공적 인물인 배설을 추모하고, 당대의 시대적 과업인 계몽, 자 강, 독립의 정론을 공유하고 있다. 셋째, 배설 추모시가는 고대가요 「공무도 하가(公無渡河歌)」에서 출발하는 한국 추모시가의 계보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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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聯抄解』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金麟厚(1510-1560)가 초학자에게 한시를 가르치기 위하여 한국과 중국 역대의 5언절구, 7언고시, 7언절구, 7언율시 중에서 聯句 99개를 뽑아 7언율시의 함,경련으로 다듬어 언해를 붙여 간행한 책이다. 대표적인 선본인 필암서원본, 동경대본, 박은용본은 수록 순서가 다르고 필암서원본에는 제100연이 없을 뿐 같은 책임을 알 수 있다. 전거는 시대별로는 고려 6, 조선 3, 성당 3, 중당 3, 만당 6, 송 10, 원 1, 명 1연 순으로 만당과 송이 가장 많고 작가는 두보와 백거이가 각 3연으로 가장 많은데, 명작 위주라기보다는 작시법 터득 위주로 편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백련초해』는 科詩 학습을 위한 근체시 교재이었기 때문에 학생에게 7언율시의 근간인 평측과 압운이 맞는 함, 경련의 대우법을 익히게 할 목적이 가장 컸다. 이를 위해 措辭 구조에서 5언과 7언을 호환하며 한시 작법을 훈련하는 구성을 하였음을 가늠할 수 있다. 『백련초해』에서 쓰인 한자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해보면(표3) 535자이고, 전체 1400자의 88.5%인 1239자가 교육용 한자로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명들이다.『백련초해』에서의 평자는 교육용 1800자에서 단음으로 측자는 장음으로 나타나는 상관 정도는 87.8%로, 이는 교육용 1800자를 배울 때 장단음을 구분하며 익힌 학생이면『백련초해』의 평측자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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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상용의 시조 작품 <오륜가 오장>의 교술적 성격을 살펴보는 데 그 초점을 두었다. 주지하듯이 오륜가는 본질적으로 목적성이 매우 강한 교술 시가이다. 이 담론은 역으로 목적성에 부합하게 작품이 제작되어야 함을 뜻하는데, 바로 이 과정과 방식을 면밀히 검토하고자 한 것이다. 특히 오륜가가 연시조인 점을 감안하여 구성적 배치와 형상화 원리 등의 체계적 측면에 주목하였다. 그 결과 <오륜가 오장>은 ‘부자’와 ‘군신’을 핵심 항목으로 삼고, 나머지 ‘부부’, ‘형제’, ‘붕우’를 외연 항목으로 배치하여 크게 가정 윤리와 사회 윤리로 분류하고 있다. 이처럼 분류된 데에는 작품 내적으로 ‘당위성’와 ‘선택성’이라는 관계적 속성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즉 이 관계적 속성에 의해 오륜의 다섯 항목이 일정하게 통합, 분별되고 있는데 이때의 통합, 분별 양상은 오륜의 구성 원리와 원칙으로 작용, 부각되고 있다. 결국 <오륜가 오장>은 이 오륜의 구성 원리와 원칙을 재현한 작품이다. 그리고 훈민의 의미와 학문 전수라는 의미를 동시에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 중의적 목적성이 곧 이 작품의 교술적 성격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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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아시아 自挽詩의 주제적 전통 속에서 張岱(1597-1684?)와 李言直(1631-1698)의 자만시를 對比하여 연구한 것이다. 이들은 17세기 명말청초와 조선 후기라는 서로 다른 공간을 살다갔지만, 이들의 자만시는 명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이란 매우 유사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 글에선 두 작품을 대비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이언직이 장대에 비해 더욱 직접적이고 일관된 對明義理를 드러내고 있다. 두 사람의 미묘한 인식차는 이 시기 양국 지식인들의 명나라와 청나라를 바라보는 의식의 차이를 반영한다. 그런데 자만시에 투영된 시대상은 이언직의 작품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조선시대 자만시에서 유독 정치현실이나 국제 정세의 변화와 관련된 작품이 많다는 점은 우리 문인들이 자만시를 좀 더 현실적 발언의 도구로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장대 자만시의 표현방식이 암시적이고 우회적인 반면 이언직의 자만시는 단선적이고 직설적이다. 이언직의 자만시가 유언에 가까운 자기 선언으로 일관된 배경에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자만시 인식과 작시 방식이 있다. 이런 차이는 개별 사례이기는 하나 한중 양국의 자만시가 동일한 기원(도연명의 <의만가사>)에서 비롯하였지만, 일정하게 다른 길을 선택해서 나름의 글쓰기 방식으로 변화해갔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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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 부(賦)에서 여러 여성 인물을 형상화하였는데, 그 중 “미인”의 형상은 가장 대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인”의 형상은《시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현실주의를 지니고 있는《시경》에서 “미인”에 대한 묘사는 현실 생활 속에 진실한 사람과 관련된 것이다. 굴원은 중국 시가(詩歌) 역사상 최초로 “미인”을 의식적으로 아름다운 정치와 밝은 군주의 상징으로 비유하였다. 아름다운 정치와 밝은 군주라는 이상을 추구했던 굴원이 비록 현실 속에서는 여러 번 좌절당하지만, 아름다운 정치를 추구하는 그의 숭고한 정신은 세인들의 경앙을 받아 왔다. 이에 굴원의 “미인” 형상은 후세 및 국내외의 문학에 깊은 영향을 끼쳐 역대 문인들이 본보기로 삼아 학습하는 문학전범이 되었다. 특히 굴원과 그의 작품이《문선(文選)》을 통해 한국 문학계에 들어왔을 때, 한국과 초나라의 정치 환경이 서로 비슷하였는데, 한국의 문인명사들은 불안정하고 부패한 사회 환경 속에서 정신적으로 위로해줄 약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초사》에 나타난 굴원의 충정한 애국심은 특별히 추앙을 받았고, 생사의 선택에서 굴원이 보여준 굴절된 인격의 가치 및 그의 작품에서 향초 미인으로 비유한 군신과 이상에 대한 추구 등에서 드러난 인격적인 매력은 역대 한국의 문인묵객을 감화시켜 그들이 잇따라《초사》와 관련된 내용을 소재로 의소(擬騷), 조소(吊騷) 등 문학 작품들을 저술했다. 고려 시기와 조선 시기에 “미인”의 형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작품들의 출현은 한국 한문학과 시가 문학의 발전을 크게 촉진시켰다.

깨달음, 선시, 그리고 그 갈래

조태성 ( Jo Tae-s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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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요 목적은 현행 선시의 갈래 체계를 재탐색하는 것에 있다. 갈래 체계는 그것이 속한 결과물들을 모두 그 체계 안에 포섭함으로써 그 문학적 가치를 더욱 확고하게 정립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미 보편화되다시피 한 현행 선시의 갈래 체계는 이러한 가치를 확실하게 담보하고 있는가? 예외의 여지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대답은 역시나 유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그런 까닭에 이 글에서는 기존 갈래 체계에 대해 먼저 분석해보고, 이를 토대로 좀 더 대안적인 갈래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선시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깨달음에 대한 정의와 그 시적 경계에 대해 살펴보는 일을 선행하였다. 선시가 가진 선적 측면 이외의 가치를 보다 확실하게 드러내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가 시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이러한 선행 작업들이 선시의 갈래 체계가 가진 문학적 의의를 보다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는 선시의 한 지향점으로서 선취시의 위상 재고를 제안하였다. 선취시를 선시의 한 갈래로 취급하기보다는 선시의 한 지향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간의 연구 성과들에서도 선취시는 선시의 최고 가치로 평가되어 왔지만, 더불어 이를 인위적으로 어느 체계 안에 포섭시킴으로써 오히려 그 가치를 축소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시적 경지가 선취시라고 한다면 이제 그것은 구체적인 어떤 갈래의 명칭이 아니라 추상적인 시적 지향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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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가람 이병기의 시조에 관한 논의들과 고시조 선집 『역대시조선』을 고찰해, 그의 학문적 지향 및 시조 연구의 성과와 영향을 재점검하였다. 이를 통해 그의 시조론과 시조 운동이 ‘전통’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으로서 시조 창작 뿐 아니라 고시조 탐구와도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밝혔다. 이병기가 고시조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깊이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이룩한 시조론과 시조 비평의 핵심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시조는 정형시(定型詩)가 아닌 정형시(整形(的 自由)詩)로, 자유롭고 유동적인 시형이다. 둘째, 현재의 시조는 작(作)이요, 문학이어야 하며, 시조를 현재에 계승하려면 음악으로부터 분리해 시조의 형식은 유지하되 내용을 새롭게 해야 한다. 셋째, 시조는 실감실정(實感實情)과 독창성을 지녀, 작가의 내면 감정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병기는 전통 시가로서 시조가 지닌 가치와 의의를 역설하면서도 시조를 만능이라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시조가 지닌 형식의 유연성을 살리고 서정과 서경을 모두 담아내며, 자기 시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취하여 시조를 살아있는 문학으로 세우고자 했다. 또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인상 비평이 아니라 어떤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구체적으로 정밀하게 감상해 제시하는 시조 비평을 개척했다. 이러한 그의 시조에 대한 의식은 고시조를 감식하고 선택하는 데도 반영되었는데,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역대시조선』(1940)이다. 작품의 주요 어휘를 풀이하고, 작가나 창작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으며, 나아가 작자 논란이 있거나 연대를 고증하기 어려운 작품, 노랫말이 혼동되어 전하는 작품들의 경우 이본을 대교해 바로잡는 등 최초의 고시조 교주(校註) 선집을 마련한 것이다. 이병기의 넓고 깊은 연구 성과가 집적되어 편찬된 산물로서, 일반인을 넘어 고전 연구자들을 배려한 ‘조선문학’의 결실이다. 시조에 관한 이병기의 인식은 실천적이며 실용적이다. 그의 시조론과 시조 비평은 강연이나 기고 등 실천적인 활동의 산물이었으며, 『역대시조선』 또한 정형시로서 고시조의 탁월성과 예술성을 입증함으로써 시조 계승의 방향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고시조와 현대시조를 연결하고 시조의 창작과 연구에 더불어 힘씀으로써 그의 시도와 고민을 현재 지속형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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