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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Bangyo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2734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5권 0호 (2013)

특집 : 근대 언어와 매체의 다층성 ; 계몽기 서사의 영혼과 육신, 그 모색의 경로

권순긍 ( Sun Keung Kwon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35권 0호, 2013 pp. 5-33 ( 총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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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기 서사의 다양한 양식을 검토하기 위해 문명개화와 부국강병 그리고 반봉건과 반외세의 이념이 어떤 육신을 통해 구현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말하자면 개화와 계몽의 다양한 담론들이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졌는가를 고찰한 것이다. 특히 고전과 현대의 연속성의 입장에서 고소설을 통하거나 고전서사의 양식들을 활용해 어떻게 근대의 정신을 담게 되었는가를 주목해서 다루었다. 신작고소설 <정씨복선록(鄭氏福善錄)>은 교육과 산업을 진흥시켜 서구열강과 대등하게 교류하고 통상하는 ‘대남국’을 통해 당시 민족적 과제였던 자주개화와 부국강병의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실현시켰다. 이는 천상계가 설정되어 현실을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영웅소설의 문맥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영웅소설이라는 전대의 통속서사의 육신을 가져와 자주개화의 정신을 안착시킨 것이다. 신소설의 서사구조는 임화의 지적처럼 대부분이 고소설의 가정소설을 그대로 가져와 인물만 당시의 인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인물들의 위치를 바꾸거나 구시대의 인물과 신시대의 인물을 대비시켜 봉건사회의 모순을 비판함으로써 반봉건 의식을 형상화했다. 그 대표작인 <귀의성>은 ‘선처악첩(善妻惡妾)’의 구조를 ‘악처선첩(惡妻善妾)’으로 전도시킴으로써 유교적 명분을 드러내고 가문을 수호하고자 했던 ‘선처’의 역할을 양반의 위세를 이용해 평민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악처’로 바꾸었다. 17세기 가문의식을 내세우고 가부장권을 지키고자 했던 가정소설의 서사가 양반과 봉건적 가족제도의 부패를 보여주는 것으로 전도되어 활용된 것이다. 야담의 의적담(義賊談) 양식을 육신으로 한 <소금강(小金剛)>은 주인공이 개화사상의 한계를 깨닫고 민중무력투쟁인 ‘활빈당(活貧黨)’에 가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게다가 그 활빈당이 의병투쟁으로, 다시 간도의 항일독립투쟁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반외세저항을 구체화시킨 작품이다. 진정한 자주개화와 부국강병이 무엇인가를 현실 가능한 구체적 사건들을 통하여 거시적 시각에서 전망하고 있다. 판소리 개작소설 <옥중화(獄中花)>는 애정소설인 <춘향전>을 개작하여 남녀동등의 삽화를 요소요소에 배치하여 남녀동등의 상호신뢰와 존중이라는 근대적 애정관을 보여준 작품이다. <춘향전>의 애정서사를 취해서 개화와 계몽의 이념을 담으려 한 것이다. 그것은 <춘향전>을 정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윤리적 관점인 풍속개량의 차원에서 개작한 것이다.

특집 : 근대 언어와 매체의 다층성 ; "한글"(명칭) 사용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

김주필 ( Joo Phil Kim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35권 0호, 2013 pp. 35-64 ( 총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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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 이후 ‘우리 문자’의 명칭으로 국내에서는 ‘國文’이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나 해외에서는 그 이전부터 ‘韓文’이 사용되어 왔다.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해외 신문은 이미 한글 전용이 상당히 이루어자 ‘韓文’도 ‘한문’으로 표기되어 ‘漢文’과 ‘韓文’을 구별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중의성을 해소하기 위하여 ‘韓文’의 ‘文’을 그 훈(訓)인 ‘글’로 바꾸어 ‘한글’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런데 한일합병으로 주권을 상실하여 국내의 정치적 상황이 해외와 유사하게 되고 ‘國文’으로 ‘일본문’을 지칭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민족을 나타내는 ‘한(韓)’이 포함된 ‘한글’을 국내에 끌어와 대내적으로도 우리 문자의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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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근대적인 관점에서 국어 교과의 개념이 설정되어 온 방식과 그 개념을 추동시킨 역사적 맥락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국어 교과의 정체성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면 국어 교과가 걸어온 자기규정의 역사를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본고에서는 『보통학교 학도용 국어독본』이라는 국정 국어 교과서의 기원이 되는 텍스트를 바탕으로, ‘국어’ 교과가 어떻게 자기를 개념화하고 규정해 왔는가에 중점을 두었다. 국어 교과서의 기원인 『국어독본』은 전범으로 알려져 있는 일본의 국정 교과서인 『심상소학독본』과 다르게 조선의 식민지화를 위한 정치적 욕망을근대지(智)의 형태로 담론화한 텍스트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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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대계몽기 여성 대상 교과서인 장지연의 『여자독본』을 중심으로, 당대 여성 교육의 내용과 그 사회가 주조하려 했던 여성상이 무엇이었는지를살폈다. 장지연의 『여자독본』은 전한(前漢) 시대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처럼 여성 인물의 이야기를 열전(列傳)의 형식으로 엮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에게 강조되어 왔던 어머니상, 아내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남자 못지않은 군공을 세우고 나라의 기강을 확립하는 등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전자가 한국의 여성들이라면, 후자가 중국 및 서양의 여성인데, 이러한 여성상 사이의 모순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열녀전(列女傳)’이라는 형식의 동일성 하에서이다. 전범이 되는 여성인물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여성상을 세우고, 그것을 배우게 하려는 계몽적인의도를 지니고 있다. 세간에 떠돌던 훌륭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제만을 취하는 방식으로 요약 제시한다거나, 본문의 말미에 주요 한자와 그것의 뜻풀이를 달아 한자 습득의 역할을 겸하고자 한 것은, 『여자독본』이 근대적 교과서로서의 기능 역시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상권의 한국 여성과 하권의 중국 및 서양 여성을 다른 기준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국 여성에게는 전래의 정절 관념 혹은 아들의 교육이나 남편에 대한 내조 등의 여성 역할을 강조하고 있음에 비해, 중국 및 서양 여성에게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발언하거나 전쟁 혹은 정치에 참여하는 남성적 여성상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러한 여성상은 근대계몽기의 여성들에게 새로운 부덕(婦德)을 제시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리고 그러한 여성 인물들 사이에는 층위와 위계가 설정되었다. 분류될 기준이 없어 잡편(雜編)에 묶인 한국의 기생이나 무녀가 있고, 그 위에 어머니나 아내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한국의 가정부인이, 또 그 위에는 군공을 세우거나 남성의 일을 대신하는 중국 여성이, 또 그 위에는 정치에 참여하거나 교육 사업을 벌이는 서양 여성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국가에 대한 충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애국부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양 여성들 역시 남성 주체(국민)들을 ‘매개’하거나 ‘대신’하는 역할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고, 본래 여성이 맡았던 가정주부의 일에 아들 교육, 그리고 전쟁 및 정치 참여라는 의무가 더 부과되었던 것이다. 근대계몽기는 새로운 여성상이 유입되었지만 여전히 ‘이상’의 여성과 ‘현실’의 여성은 간극을 유지한 채 표류하고 있었다. 열(烈)은 그 의미를 변화시키면서 여성들에게 여전한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접미사 부류의 탈문법화 양상

노명희 ( Myung Hee Noh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35권 0호, 2013 pp. 129-164 ( 총 36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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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국어에서 접미사적 특징을 지니던 요소들이 구에 결합하면서 어기에서 분리되는 과정을 탈문법화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하였다. 첫째, 의미는 변하지 않고 형태론적 지위만 변하는 역형태단위화에는 접미한자어 ‘산(産), 행(行), 적(的)’과 고유어 접미사 ‘답, 투성이’ 등이 있다. ‘산, 행’은 구에 결합하면서 부분적으로 의존명사의 용법을 지니게 되어 역형태단위화에 해당되나 ‘제(制), 위(委)’ 등은 역방향인 자립적인 단어에서 의존형식으로 변한 것으로 보여형태단위화의 예가 된다. ‘적’은 고유어 접미사 ‘답-’과 유사한 용법을 보이지만구에 결합한 예가 아직 보편적이지 않아 의존성이 강한 예이고 ‘투성이’는 복수접미사 ‘들’이 삽입된 예도 발견되어 접사적 특성에서 벗어나는 탈문법화의 전형적인 예이다. 둘째로 접미사가 주요 범주인 명사로 변하는 어휘화에는 ‘님, 거리, 버거, 이즘’ 등이 있다. ‘님’은 의존명사 ‘씨’를 대신하여 쓰이다가 2인칭 대명사의 용법을 획득하고, ‘거리’는 ‘꺼리’로 음운론적 재구조화를 겪으면서 명사로 쓰인다. 영어 외래어 접미사로 쓰이던 ‘버거, 이즘’은 상위 명사로 쓰여 대표적인 어휘화에 해당한다.

한국어 흉내말의 관련어망 설계를 위한 기초 연구

박동근 ( Dong Geun Park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35권 0호, 2013 pp. 165-192 ( 총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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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국어 흉내말의 관련어망 설계를 위한 기초 연구로, 한국어 상징어에서 관련어망을 형성하는 요소를 망라하여 체계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어는 매우 방대한 흉내말 자료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음 교체’, ‘자음 교체’, ‘반복’, ‘형태 확장’ 등에 의해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어 흉내말의 관련어를 체계화하는 일은 표면적으로 존재하는 한국어 흉내말의 총 수에서 한국어 흉내말을 구성하는 실질적인 기저형의 수를 확인하는 일이 된다. 역으로 한국어의 방대한 흉내말을 생성하는 실마리를 확인하는 기초 자료가 된다. 이 연구의 결과는 국어사전에서 보다 상세한 관련어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를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한국어 흉내말의 낱말망을 구축하는 기초가 된다.

표기와 음운현상을 통해 본 『셩경직히광익』 이본 간 선후 관계

박순란 ( Soon Ran Park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35권 0호, 2013 pp. 193-224 ( 총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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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셩경직히광익』 이본 5종의 표기와 음운현상을 비교하여, 이들이본의 계통과 이본 간 선후 관계를 밝히고자 하였다. 한국 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된 필사본 4종과 인쇄본 1종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필사본은 그 분권(分券)상태를 기준으로 하여 각각 20권으로 분권된 필사본은 A본, 19권으로 분권된 필사본은 B본, 14권으로 분권된 필사본은 C본, 16권으로 분권된 필사본은 D본으로 지칭하였다. 가톨릭의 절기를 기준으로 분권되는 상태로는 A본, B본, D본이 동일한 기준으로 분권되었으므로 같은 계통이며 C본은 분권의 상태가 다른 이본들과 다르므로 다른 계통인 것으로 보았다. 표기의 특징으로는 D본이 유일하게 부분적으로나마 ‘ㅂ’계 합용병서를 사용하고 있고, 용언의 명사형에서 전혀 분철되지 않았다. 이본들에서 경음을 표기 할 때 대체로 합용병서를 사용하는데 B본은 각자병서가 나타나고 있어, 경음을 표기하는 데 전면적으로 각자병서를 사용하고 있는 인쇄본과 유사하였다. 대부분 이본에서 ‘ㄹ’을 어간으로 가진 용언에서 연철되는 경향이 많은데, B본과 인쇄본은 분철을 하고 있어 이 두 본의 영향 관계를 볼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 이본에서 ‘ㄹ’을 가진 한자음이 어두에 오거나, 앞 음절이 종성으로 끝나는 경우 ‘ㄹ’이 ‘ㄴ’으로 바뀌지 않고 ‘ㄹ’표기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음운현상의 경우에는 대부분 이본들에서 한자음의 경우는 구개음화되지 않은 형태들을 유지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일반 한자어일 경우는 이본마다 그 양상이 조금씩 차이가 있고, 특히 B본은 구개음화된 형태가 많이 나타났다. 그러나 종교용어 한자어의 경우는 5종의 이본들이 구개음화되지 않은 형태를 사용하여 일반 한자어의 경우와 차이가 있었다. ‘ㆍ’의 변화에 관해서는 이전시기 ‘ㆍ’를 가지고 있던 어휘가 ‘ㅏ’로의 변화된 상태가 이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 D본은 이전 시기의 ‘ㆍ’를 그대로 나타나는 경향이 많았고, B본은 ‘ㅏ’로 변화된 형태가 많았다. 5종의 이본들은 1856년 도입된 축일이 포함되어 있음으로, 필사시기가 1856년을 앞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각 이본들의 표기와 음운론적 특징을 비교해 보면, 각 이본들을 필사할 때 사용한 저본들의 시간적 상태에서 차이가 있는 것을 추론할 수 있어, 본고에서는 5종의 이본들의 선후 관계를 “D → A → C → B → 인쇄본”의 순서로 보았다.

조선 시대 불교계 연희집단과 유랑연희패의 관계 양상

이경진 ( Kyung Jin Lee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35권 0호, 2013 pp. 225-248 ( 총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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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의 연희에서 확인되는 불교적 색채의 기원을 찾고자 연희담당층의 관계에 주목하였다. 특히 조선 시대 불교계 연희집단과 유랑연희패가 관계를 맺었을 접점을 제시하여, 두 집단 간 연희종목의 교류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우선 불교계 연희집단으로 조선전기 ‘사장(社長)’, ‘거사(居士)’와 조선 후기 굿중패의 활동시기를 확인하고, 유랑연희패와의 관계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기존의 논의는 조선 전기 사설사암의 ‘사장’·‘거사’와 조선 후기 유랑예능인의 구성원인 ‘거사’를 동일시하였으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17세기 이전‘거사’집단은 유랑예능인들과 구별되는 승려집단임을 확인하였다. 굿중패의 활동양상은 감로탱을 통해 확인하였다. 17~18세기 감로탱에서는 굿중패와 사당패가 함께 등장하나, 18세기 말 이후 굿중패에 대한 묘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사당패는 19세기 두 종류로 분화되어 활동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굿중패가 18세기 이후 사당패와 교류 또는 합류하여 조선 후기 연희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다. 불교계 연희집단과 유랑연희패의 관계양상을 확인하여, 그 교류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이 논문의 의의가 있으며, 이는 조선 후기 연희에서 불교적 기원을 밝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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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미디어로서 한국 문화의 저변을 형성하기 시작한 때는 한글이 글쓰기의 중심 미디어로 등장한 시기와 맞물린다. 엄밀히 표명하자면 사진이 앞선다. 사진은 회화에서 확립된 3차원 투시도법(원근법)이 기계화한 것으로서,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체계, 즉 감각-지각-인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져왔다. 더욱이 그러한 체계는 동양의 전통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서양의 회화와 사진에 대한 당대의 반응은 충격과 거부감이 주를 이뤘다. 사진에 대한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임오군란 때의 성난 군중은 사진관을 부수기도 했던 것이다. 서양의 미디어 및 문화사에서는 사진의 미디어적 변별점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뚜렷한 시점(始點이자 視點)을 갖고 이뤄질 수 있지만, 한국(동양)에서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특히 글쓰기 및 문학사와 관련짓고자 할 경우에는 사정이 더 복잡해진다. 한국의 사진사(寫眞史)는 한문과 한글문의 교체기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문자 미디어로서 완숙해 있었던 것은 한문이어서 사진과의 미디어적 변별성을 논의하는 데에 적합할 수 있지만, 그 문화 자체가 개화에 소극적이거나 저항적이었으며 퇴로에 놓여 있었던 까닭에 논의의 시작 전부터 한계가 노정된다. 한문 텍스트와 사진을 직접적인 교호 작용으로 분석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한글문[국문]의 적극적 사용을 주장하였던 이들은 사진의 활용과 확대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직접적 견문으로 외부와 타자를 인식하기도 했지만 서책과 사진을 통해서도 간접적인 견문을 확장 및 증해 갔던 것이다. 하지만 한글문자체가 형성기에 놓여 있었던 까닭에 사진이라는 기계-미디어와의 관련 논의를 하고자 할 때 양자의 위상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러한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한국 문화ㆍ문학사에서 텍스트와 사진의 교호 작용이 대단히 중요한 논제임을 부정할 수 없는 까닭에 미흡한 대로 논의를 시작해보고자 했다. 사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던 대중매체는 『매일신보』이었다. 그에 앞서 간행되었던 민족지들은 자본과 기술력의 한계 때문에 그러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1910년대의 『매일신보』는 한국 문화ㆍ문학사에서 텍스트와 사진의 미디어적 교호 작용의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거의 독보적인 자료원이다. 이 글은 『매일신보』의 사진을 분류하면서 아울러 사진이라는 미디어의 특성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사진과 텍스트가 교호 작용을 통해 생성해 낸 서사들을 여섯 가지로 대별하였다. 그 결과로 이 글은 문학(사) 연구에 새로운 시각의 도입 내지 추가를 주장하였고 몇 가지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일기를 통해 본 김구용 문학의 형성 과정

장인수 ( In Su Jang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35권 0호, 2013 pp. 289-316 ( 총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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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은 병약한 체질 때문에 자신의 운명이 남들과는 다르다고 느꼈고, 이는 자기진술 욕망으로 이어졌다. 1940년 그는 산사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문학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일기를 통해 습작 과정을 규율?통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시기 습작들보다 일기 쓰기 자체가 오히려 그의 문학 세계를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가령 그의 일기는 추억 속 이미지의 편린이 어떻게 다른 사물들과 결합하여 변형되는지 그 기제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의 일기는 그의 시의주제의식인 ‘자신불’, ‘불이’와 같은 불가적 깨달음에 관한 그의 생각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해방기에 이르러 그의 일기는 일층 문학적인 것으로 변모했다. <구곡>등 그의 장시에 등장하는 다면적 화제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진술방식을 이 시기 일기가 선취하고 있었다. 전시기의 일기는 전시 수도 부산의 문단이 ‘다방’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문화사적 양상과 피폐한 민중 현실의 참상을 핍진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자체로 문학성을 띤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모든 정신적 가치를 압도하는 생계의 압박 속에서 다방과 거리를 넘나들면서 방황했고, 이 헤맴을 ‘자기[眞我] 찾기’, 참된 문학으로 향하는 모색의 도정으로 삼음으로써 자기 문학의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했다. 전시기 일기는 당시 기층민들의 삶의 애환, 문단의 풍속도를 담아냄으로써 1950년대 그의 시의 원풍경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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