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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Bangyo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2734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0권 0호 (2015)
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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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비장전>을 원전으로 하여 근대소설, 영화, 뮤지컬, 마당놀이, 창극 등 다양한 장르와 내용으로 변개된 5편의 문화콘텐츠 양상을 정리하면, 인물의 갈등양상과 사건의 전개방식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배비장이 정의현감에 제수되고 애랑을 첩으로 들인다는 신구서림본계열로 채만식의 소설 <배비장>(1943), 신상옥 감독의 영화 <배비장>(1965),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1966)가 여기에 해당된다. 배비장을 순진하고 고지식한 인물로 설정하여 장난이 심하고 주색에 적극적인 제주목사에게 조롱당하는 사건으로 구성하였다. 배비장이 순진하고 고지식한 인물이니 위선적 인물에 가해지는 풍자가 성립되지 않고 해학이 두드러진다. 제주목사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배비장 길들이기를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인데 채만식의 작품은 서울양반과 제주아전의 대립으로 진행시켜 애꿎은 배비장이 희생제물이 됐으며, 영화와 뮤지컬은 길들이기의 과정에서 오히려 배비장에게 사랑을 느낀 애랑이 적극적으로 애정을 추구하는 사건으로 변개시켰다. 영화와 뮤지컬은 배비장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 아예 ‘배비장과 애랑의 사랑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배비장을 도덕적 부담감에서 자유롭게 상처(喪妻)한 처지로 설정했으며 영화보다도 뮤지컬에서는 애정 요소를 더욱 심화시켜 사별한 아내를 잊지 못하는 ‘순애보적 사랑’을 강조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어느 정도 풍자가 드러난 마당놀이 <배비장전>(1987)과 창극 <배비장전>(2013)으로 김삼불이 교주한 원작의 내용을 바탕으로 변개시킨 작품이다. 배비장이 궤 속에서 나와 헤엄치는 장면으로 마무리 했으며, 정의현감에 제수되거나 애랑을 첩으로 들인다는 후일담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인 배비장은 호색적이며 놀기를 좋아하는 허랑방탕한 인물로 풍자의 대상으로 적합하게 설정되었다. 마당놀이에서는 아예 부인이 감시자로 방자를 딸려 보냈으며, 창극에서는 모친과 부인에게 여색을 조심하겠다고 맹약을 할 정도로 호색적 인물로 등장 한다. 여기서는 방자의 역할도 중요해 목욕장면을 훔쳐보는 대목에서 원작처럼 신랄한 풍자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런데 마당놀이는 전통 소재를 가져와 당대 현실을 다루기에 무엇보다도 현실의 구체성과 연결돼야 한다. 80년대 현실의 문맥과 아무런 연결이 없으며, 절정을 이루는 부분인 궤 속에서 나와 망신당하는 장면도 열린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통렬한 풍자대신 목사와 애랑, 방자, 배비장만이 등장하는 ‘밀실게임’으로 변개시켰다. 창극은 더 심해 풍자는 보이지 않고 목사와의 자존심을 건 주색에 대한 내기로 사건을 구성했다. 방자와 애랑은 하수인에 불과하고 ‘주색논쟁’이 사건을 전개시키는 계기가 된다. 원작 <배비장전>을 변개시켜 골치 아픈 세상을 잊고 유쾌하게 살라는 식으로 흥겹고 신나는 무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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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제주의 교방 문화와 기생 활동의 문화콘텐츠화 기반 마련을 위해, 관련 문헌 자료를 검토하고 그 문화원형을 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간 제주의 전통문화 연구에서 교방과 기생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대상이었다. 그러나 제주 교방은 지방 관아의 부속 기관으로 오랜 기간 존재해 왔고, 관련된 교방 문화와 예술은 그 담당층들 -기생, 악공 등- 에 의해 꾸준히 연행·전승되어 왔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제주에는 17세기 중반에 교방의 역할을 하고 있던 ‘장춘원’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아 17세기 이전에 이미 교방이 설치되어 지방 관아의 행사와 연희를 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주 교방은 장춘원이라는 명칭으로 통칭되다가 18세기전후한 시기에 장춘원과 교방이라는 명칭으로 함께 존재하였다. 17~19세기 제주 교방의 기생 수는 시기에 따라 적게는 40여 명에서 많게는 80여명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제주의 교방 풍류 및 기생들의 활동을 잘 보여주는 자료는 우선 이형상의 『탐라순력도』를 들 수 있다. <제주양로(濟州養老)>, <정의양로(旌義養老)>, <대정양로(大靜養老)> 등의 양로연에서는 <포구락> 등 당대 대표적 정재 종목 및 가곡 공연이 이루어졌다. <정방탐승(正方探勝)>, <병담범주(屛潭泛舟)>에서는 제주 뱃놀이의 실제적인 연희 양상이 담겨졌고, 가장 특색있는 모습이라 할수 있는 <귤림풍악(橘林風樂)>과 <고원방고(羔園訪古)>에는 감귤 과수원 속에서의 풍류악 장면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제주 기생들의 활동상은 이형상의 『남환박물』, 임제의 『남명소승』, 신광수의 『석북집』, 김정의 『제주풍토록』, 김상헌의 『남사록』 등의 문헌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기록들 중 눈에 띄는 부분은 제주 기생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에 대한 기록들이다. 임제의 『남명소승』, 신광수 『석북집』의 한시, 이능화는 『조선해어화사』(1927)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제주 기생들의 말 달리는 재예가 오랜 시간의 연습을 거쳐 쌓은 제주 기생만의 특색 있는 재예임을 알게 한다. 또한 제주 기생들이 가사(歌詞)를 불렀다는 기록들이 남아있어 흥미를 끈다. 먼저 김춘택이 제주에서 유배 시 지은 <별사미인곡>이 확인되며, 이 외 미인 곡류, 상사곡류의 가사를 제주 기생들이 불렀음이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특히 <별사미인곡>은 차후 김춘택의 정인이었던 제주 기생 석례에게 불려지며 상사의 가사로 전승되었다. 이러한 논의를 정리하며 제주 교방과 기생 문화의 문화콘텐츠화 방향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주 교방 정재의 공연 문화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제주 교방·기생만의 특색 있는 공연 및 연희를 기획하여 문화콘텐츠화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셋째, 제주 기생들의 가창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문화콘텐츠화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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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문학+연구의 존재 기반과 지형은 그야말로 ‘춤’추고 있다. 이 춤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 문학 자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 연원은 인류사와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 학문 분과로서의 문학연구 입장에서는 최근의 사태로 인식되기 쉽다. 이렇게 입장이 이원화되는 이유는 고전문학과 근현대문학이 상이한 까닭이다. 더 분명히 하자면, 근대문학-문자미디어[문자+책+인쇄]의 입장에서 ‘1차 구술성’의 고전문학도 수렴되었으며, 그렇게 수축된 문학관(文學觀)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발산인 오늘날 ‘2차 구술성’의 문학들을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1차 구술성의 문학과 2차 구술성의 문학은 현장성이 그 실현의 본령이라는 점에서 동일성을 갖고 있으나 작금의 문학연구에서는 후자가 훨씬 더 버겁게 여겨지는 것 같다. 2차 구술성의 문학이란 미디어-테크놀로지에 의해 현장성의 상당 부분이 직접적으로 저장·소통됨으로써 발생하는 텍스트 요동(搖動)의 효과이자 춤추는 세계이다. 이는 문자문학 등 현장성과는 거리가 먼 텍스트들에도 유사한 영향을 미친다. 텍스트 소통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개인적 차원의 미디어 사용 환경에서 텍스트의 고정성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늘날에는 원저자나 원작품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절단·축약·발췌·변개 등에 의해 변환된 텍스트들을 일상의 도처에서 접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2차 구술성의 문학 환경에 대하여 춤추는 ‘춘향’은 문학의 대유이며, 몸-동작은 그러한 문학의 주요한 한 양상이다. 따라서 이 글은 미디어-테크놀로지에 의해 강화된 몸-동작의 문학적 효과와 역할에 대한 중장기적 연구를 발레<춘향전>으로부터 개시해보고자 한다. 더욱이 발레<춘향전>은 글로컬 문학의 성격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문화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연구될 필요성도 있다. 이 글에서는 발레<춘향전>을 분석하기 위한 상대 항으로서 판소리<춘향전>을 상정하였다. 전자가 ‘몸-동작’이라면 후자는 ‘몸-소리’이며, 전자가 글로벌리티이면 후자는 로컬리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자의 하이브리드서의 발레<춘향전>이 명색이 글로컬 문학·문화로서의 성향을 지니기 위해서는 ‘몸’의 이쪽과 저쪽을 지배·지휘하는 원리로서의 ‘장단’에 주목하여야 하며, 거기에 한국창작발레<춘향전>의 지향점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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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문학에 대해 괄목할 만한 창작 성과와 비평 및 연구 성과가 축적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준열히 경계하고 성찰해야 할 것은 이 성과에 자족하거나안주해버린 채 4·3을 기념화·화석화해서는 곤란하다. 4·3문학은 늘 깨어있어야 하며, 예각화된 시선을 갖고 4·3을 한층 웅숭깊게 탐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4·3문학은 해방공간의 특수한 지역 문제에 한정된 ‘지역문학’으로만 인식되는 것도 아니고, 이 시기를 다룬 한국문학사를 온전히 구축시키는 차원에서 그것의 결락된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데 자족하는 한국문학, 곧 ‘국민문학’으로 만 인식되는 것도 아닌, 세계 냉전체제의 발아되는 현장과 현실에 연동되는 ‘세계문학’의 문제틀(problematics)로서 새롭게 인식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4·3문학은 해방공간에서 항쟁 패배자의 기억이 승리자의 기억, 즉 대한민국(미군정의 지원과 미국)의 공식기억(official memory) 속에서 억압·왜곡·부정된 측면을 세밀히 탐구하고, 승리자의 시선 아래 착종·왜곡·은폐된 승리자에 대한 기억 역시 천착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4·3문학은 유럽중심주의에 내밀화되지 않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넘어, 유럽중심주의로 심화·확산되는 근대성에 매몰되지 않는 ‘또 다른 근대성’을 함의하는 것들 사이의 연대이고, 4·3문학과 트리컨티넨탈의 연대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4·3문학이 새로운 세계문학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참여적 실현’을 통해 유럽중심주의의 근대세계를 보증하는 문자중심주의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문화적 자양분을 4·3 관련 현장으로부터 섭취해야 한다. 특히 4·3문학처럼 언어절(言語絶)의 역사적 참극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우리에게 낯익은 문학의 형상적 사유만으로는 4·3을 온전히 다루는 데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4·3문학은 폐색적(閉塞的) 내셔널리즘에 갇힌 지역문학과 국민문학의 문제의식과 다른 지구적 국제성을 획득하는,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문학 구성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4·3이 지닌 평화의 원대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 화자의 비언어 행위 연구 - 감탄사에 동반하는 몸짓을 중심으로

김한샘 ( Han Saem Kim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40권 0호, 2015 pp. 157-181 ( 총 25 pages)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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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의 느낌이나 의지를 나타내는 감탄사 범주를 대상으로 동반되는 비언어적 행위를 분석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한국어 화자의 비언어 행위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 감탄사라는 범주를 선정한 것은 감탄사가 관습화된 발화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발화까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범주의 특성상 감정이나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비언어 행위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감탄사에 동반된 비언어 행위의 출현 양상을 보면 감정이나 의지를 표출하는 데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반하는 것은 고갯짓이었다. 특히 긍정과 부정의 의사를 전달하는 응답의 감탄사에서 고갯짓이 두드러진다. 반면 담화의 구조와 관련한 기능적 감탄사가 출현할 때에는 주로 얼굴의 변화, 구체적으로는 시선의 회피가 두드러졌다. 발언권을 유지하기 위한 감탄사와 동반한 손짓은 모두 발화의 내용이나 리듬과 무관한 ‘적응하기’에 해당했다.

"(이)서" 문법

김인균 ( In Kyun Kim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40권 0호, 2015 pp. 183-206 ( 총 24 pages)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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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혼자서’와 ‘둘이서, 셋이서’ 등의 다양한 분포 양상을 살펴 그 문법적 특성 및 의미적 특성을 검토하고 ‘(이)서’ 구성의 형태 분석을 통해 ‘이’와 ‘서’그리고 ‘이서’의 문법 범주 및 의미를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이)서’ 구성은 구성 성분의 내부 구조와 그 문법 범주를 고려할 때 아래와 같이 ‘혼자서’와 ‘둘이서1’, ‘둘이서2’와 ‘두 명이서’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한편 ‘혼자서’는 행동하는 주체가 단수임을, ‘둘이서1’은 행동을 (함께) 하는 주체가 복수임을 의미한다. 이때 ‘둘이서1’의 ‘이’는 파생 접미사로 이들 ‘둘이, 셋이’는 ‘혼자’와 대비되는 하나의 묶음 단위로 기능하여 ‘공동성(여동성)’이라는 파생된 의미를 가지며 ‘혼자서, 둘이서1’의 보조사 ‘서’는 ‘존재 전제’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둘이서2’와 ‘두 명이서’류에 나타나는, 문법화의 결과물인 부사격조사 ‘이서’는 특이하게도 자음으로 끝나는 선행 형식과만 분포하고, 주어를 포함한 선행 성분이 하나의 단위로 묶인 것임을 전제하는 의미를 나타낸다.

한국어 재귀사 "자기, 자신"과 중국어 재귀사 "自己"의 대조 연구

( Yunzhu Feng ) , 이선웅 ( Seon Ung Yi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40권 0호, 2015 pp. 207-236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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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한국어 재귀사 ‘자기, 자신’과 중국어 재귀사 ‘自己’의 사용 동기 및 그것들이 가리키는 선행사의 인칭을 분석하고 재귀사와 선행사의 조응 관계에서 보이는 특성을 기술함으로써 한국어와 중국어 재귀사의 특성을 대조 언어학적으로 분석하였다. ‘자기’는 대체로 3인칭으로 사용되고 제한적으로 2인칭에도 사용된다. 그 사용의 동기는 중의성을 해소하는 데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은 1, 2, 3인칭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데, 그 사용의 동기는 재귀적 상황이나 재귀적 행위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재귀사의 선행사는 [+유정성] 자질을 지닌 (대)명사이다. ‘自己’는 1, 2, 3인칭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그 사용의 동기는 재귀적 상황이나 재귀적 행위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自己’의 선행사는 [+유정성]과 [-유정성] 자질을 모두 지닐 수 있다. ‘자기’는 ‘자기’가 NP를 보충어로 취한 ‘NP+자기’ 형식 속에 쓰이기 어려우나, ‘자신’은 ‘자신’이 NP를 보충어로 취한 ‘NP+자신’ 형식 속에 쓰일 수 있다. 한국어의 관형어 ‘자기의, 자신의’에서 ‘의’는 생략이 가능한 것과 같이 중국어의 관형어 ‘自己的’에서 역시 ‘的(de)’이 생략 가능하다. ‘자기, 자신’의 복수형은 ‘-들’을 첨가함으로써 만들어지지만, 중국어의 ‘自己’는 복수형이 없다. ‘자기, 자신’과 ‘自己’는 모두 재귀 지시, 강조, 두루 가리킴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재귀 지시 기능에서, ‘자기, 자신’과 ‘自己’는 근거리 결속과 장거리 결속 양쪽에 쓰일 수 있다. ‘自己’의 역행 대용적 기능은 ‘자기, 자신’보다 광범위하다. 강조 기능에서, ‘NP+자신’의 형식은 광범위하게 쓰이는 데 반해, ‘NP+자기’의 형식은 구어 환경에서 ‘3인칭 NP+자기’와 같은 형식으로 매우 제한적으로 쓰인다. ‘自己’는 ‘NP+自己’, ‘是(shi)+(NP)+自己’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두루 가리킴의 기능에서, ‘자기, 자신’과 ‘自己’는 모두 자유롭게 쓰인다.

<소현성록>의 이중성에 내재된 욕망의 실체

이지하 ( Jee Ha Lee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40권 0호, 2015 pp. 237-269 ( 총 33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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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성록>은 초기의 국문장편소설로서 주목받는 가운데 여러 방면에서 연구되었으나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가문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견해와 여성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대립된 평가를 받고 있다. 본 논문은 이 작품의 서사에서 발견되는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요소들을 탐색함으로써 새로운 접근법으로 작품의 성격을 해석해보고자 하였다. <소현성록>의 서사 속에는 일관성이 결여되거나 모순처럼 보이는 이중적 요소들이 존재한다. 첫째 작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 소경의 형상이 이중적 면모를 보인다. 소경은 훌륭한 관리이자 어진 남편으로 표상되는데 작중에서 그의 과거 시험에서의 부정행위와 오해로 인한 아내 축출을 그림으로써 그의 군자적 자질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둘째 이 작품에서는 소경에게는 술을 비롯한 풍류 행위가 방탕으로 치부되며 엄격히 금지되는 반면 소씨가문의 여성들에게는 너그럽게 허용된다. 셋째 다처제 하에서 여성들이 느꼈을 고뇌에 대해 공감하는 시선을 보내면서도 투기 행위는 엄격히 금지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인식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이중적 요소들이 발생하게 된 이면에는 소경의 어머니인 양부인의 욕망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인다. 양부인은 효성의 강조와 엄격한 통제를 통해 아들을 가문의 대표자로 양성하고자 하며, 가문의 번영을 위해 다처제를 용인하고 활용한다. 따라서 이 소설은 어머니 양부인과 아들 소경의 서사라고 할수 있으며 그 속에 아들을 통해 가문을 중흥시키고 영예로운 어머니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양부인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부인이 지향하는 것이 성공한 아들의 신화를 통해 효성을 매개삼아 노년의 영광을 꿈꾸는 상층사대부가 여성들의 욕망과도 통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이 여성주의적 관점보다는 가부장적 가문주의의 관점에 입각해 있다고 생각된다.

조선후기 연행사의 중국 명산 유람 양상과 특징

신익철 ( Ik Cheol Shin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40권 0호, 2015 pp. 271-306 ( 총 36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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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연행록 22종을 대상으로 연행사의 중국 명산유람 양상과 그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책문(柵門)을 통과해 북경에 이르기까지 연행 노정 부근에 위치한 명산으로 연행사가 주목하고 유람한 산은 책문 근처의 봉황산, 안산(鞍山) 인근의 천산, 광녕(廣寧) 부근의 의무려산, 산해관(山海關)에 위치한 각산, 영평부(永平府) 난하(난河) 가의 수양산, 그리고 계주(계州) 북쪽에 있는 반산의 6산이다. 연행록 소재 이들 명산의 유람기는 ① 봉황산(鳳凰山): 안시성 성터와 고토(故土) 의식, ② 천산(千山) : 유람의 8가지 어려움과 김창업의 유기, ③ 의무려산(醫巫閭山) : 화이(華夷)의 경계와 감로암의 주지승 수행(秀行), ④ 각산(角山) : 만리장성과 발해를 조망하는 풍광, ⑤수양산(首陽山) : 충절의 공간과 고사리 고사, ⑥ 반산(盤山) : 송수석(松水石)의 삼승(三勝)과 원굉도의 「유반산기(遊盤山記)」로 그 특징을 정리할 수 있다. 연행사의 중국 명산 방문 양상은 그 층위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안시성(安市城), 이제묘(夷齊廟), 망해정(望海亭), 북진묘(北鎭廟)와 같은 유적이나 경관을 지닌 봉황산, 수양산, 각산, 의무려산이고, 다른 하나는 천산이나 반산처럼 이정귀(李廷龜), 원굉도(袁宏道) 등의 유산기에 많은 영향을 받아 유산(遊山)의 체험을 중시한 경우이다. 유산의 체험을 중시한 경우 이정귀의 「삼산유기(三山遊記)」, 원굉도의 「유반산기」와 같은 산수유기가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독립된 산수유기 형식으로 전승되지는 않았지만 김창업의 연행일기 내의 유산 기록도 후대 연행사에게 널리 읽히면서 참조가 되었다. 연행사는 요동 지방에 있는 봉황산, 천산, 의무려산을 유람하는 경우 이곳이 고구려의 강역임을 상기하고 고구려 관련 유적이나 양만춘, 설인귀, 연개소문 등의 설화에 대해 관심을 지녔다. 연행사의 중국 명산 유람은 연행의 실상을 이해하고, 한중 문화교류의 현장을 검토함에 있어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연행록 외에 조선 후기 문인의 문집에는 연행로 부근의 명산을 유람하고 남긴 유기(遊記)가 상당수 수록되어 있다. 향후 본고에서 다루지 않은 여타 연행록 및 문집의 관련 기록을 보완하여 연구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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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大容은 1765년 11월 2일 한양을 출발하여 1766년 4월 27일 돌아오기까지 冬至使서장관 洪檍의 子弟軍官으로 연행에 참여한다. 홍대용은 北京의 天陞店에서 杭州의 陸飛·嚴誠·潘庭筠을 만나, 詩文과 尺牘을 왕래하고 天涯知己의 友誼를 나누며 兄弟를 맺고 돌아온다. 귀국 후, 홍대용은 그들과의 교류를 『古杭文獻』과 『乾淨동會友錄』으로 기록하고, 편지를 왕래하며 교류를 이어간다. 그러나 嚴誠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아, 1766년 2월 3일부터 29일까지의 한중지식인의 교류 실상을 기록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중국에서는 朱文藻가 주도하여 嚴誠의 자료를 바탕으로 『日下題襟合集』과 『日下題襟集』을 연이어 편찬하고, 조선에서는 홍대용이 주도하여 『乾淨筆談』과 『鐵橋遺唾』 및 『鐵橋話』등 일련의 작업이 진행된다. 홍대용의 연행과 『乾淨동會友錄』은 李德懋·朴齊家·朴趾源의 연행과 저술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일례로, 박지원은 『熱河日記』에서 홍대용의 연행과 그가 교류한 항주의 지식인들을 도처에서 언급하고 있으며, 홍대용을 통해서 중국 지식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따라서 당시 한중 지식인의 교류와 기록에서 홍대용과 엄성은 비중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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