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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Bangyo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2734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2권 0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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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형성기의 한국어 정리 사업에 있어 서양 선교사들이 행한 위업은 성경과 한 세트가 된 일련의 이중어사전의 편찬으로 나타난 바 있다. 만약 한국근대 번역사의 세 줄기를 각각 문화 내 번역, 이질 언어간 수용 번역, 전파 번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서양 선교사들은 성경과 전도서, 서양 고전의 번역을그렇다고 할 때 이들의 활동이 1917년을 전후한 시점 특히 1919년을 기점으로 결정적인 변화 국면을 맞게 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총독부 통제 하의 초보적 근대 교육과 일본유학을 통해 성장한 청년 문사들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서양 문명’의 번역과 한국어와 세계 여러 언어들을 매개해왔던 서양 선교사들이 권위가 흔들리는 한편, 오히려 변화하는 포교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 매체의 비평적 담론들을 ‘리뷰’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예컨대 1917-8년에 들어서면서 이광수는 「신생활론」 등을 비롯한 일련의 평문을 통해 유교와 기독교를 한데 묶는 비판하였고, 제임스 스캇 게일 등의 선교사들은 이광수로 대표되는 새로운 근대 지성의 출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종래의 한국 근대 사전사 연구들에서 서양 선교사 그룹의 영향력이 일부 거론되기는 했으나, 서양 선교사가 개입했던 한국어문학의 주요 국면들에 있어 그 영향력이 차고 기우는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이 미진하였다. 필자는 본고의 전반부를 통해 한국어문학 연구에 있어서의 서양 선교사 그룹의 담론적 헤게모니가 축소되어 간 과정을 이광수를 비롯한 고유 지성(vernacular intellectual)의 기독교 비판과 그에 대한 서양 선교사 제임스 스캇 게일의 비상한 주목을 통해 해명하려 했다. 또한 후반부에서는 The Korea Bookman(1920-1925)의 한국 근대 학술/매체에 대한 리뷰들, 특히 윌리엄 커의 한국 근대 매체 리뷰들을 통해 어떻게 근대 한국어가 서양어와 일본어라는 두 축 사이에서 하나의 고유성을 획득해 갔는지를 논증하려 했다. 윌리엄 커는 조선인들의 문예잡지의 생장에 각별히 주목하였고, 사상 술어 해제와 같은 말에 대한 자의식을 지켜보며 일본어식 글쓰기들이 한국의 담론장에서 고유화해가는 흔적들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남겼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근대 한국 학술에 있어 서양 선교사들의 헤게모니가 황혼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역할 변경의 사례라 할 터이나, 보기에 따라서는 상보성의 원리 하에서 국내외 학술이 상호 전이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증표이기도 했다. 복수의 언어와 지식들 사이의 상호 전이(轉移)의 가능성, 상호 적용과 재적용(readaptation)의 순환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한국 근대 어휘들은 이중어사전이라는 형태 속의 틀잡기 외에도, 술어사전이나 단일어 사전과 같은 개별성 하에서도 외부의 지식을지시할 수 있게 될 터였다.
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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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의 한국고전에 대한 비평 혹은 번역을 매개로 한 저술들 즉, 그의 한국고 전학이 놓인 근대 학술사적 문맥은 서양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세 연구 주체들이 함께 펼친 역동적인 활동의 장으로 복수의 언어를 원천으로 한 ‘근대초기 한국학’이 형성되던 현장이었다. 본고는 이러한 근대 학술사적 문맥을 구성하기 위해 이중어사전에 수록된 어휘의 대역관계망을 살피며 한국고전, 외국어가공존하며 상호관계를 맺던 당시 한국어의 문화생태를 살피고자 했다. 특히, 한국의 이중어사전에 수록/소거된 개별 한국어 표제항의 문맥과 용례를 복원하는 하나의 사례연구로써, 오늘날 ‘문화재 원형보존’에 있어 핵심적이며 쟁점적인 개념인 ‘원형’이라는 어휘[개념]의 형성 문맥과 그 용례를 고찰하고자 했다. 문화재란 어휘의 형성 이전 한국의 문화유산을 지칭하는 어휘를 찾기 위해, 개신교선교사의 한국고고학 논저 전반을 대상으로 서구어 어휘를 선정하여 이중어사전의 등재양상과 대역관계를 살폈다. 이를 통해 “古蹟=Ancient Remains”라는 대응관계의 등장이 원형 개념의 형성과정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좌표로 설정한 후, 이 등가관계 형성 이전/ 이후 개신교선교사의 고고학 논저를 통시적으로 고찰했다. 그 초기적 용례를 살펴보면, 헐버트가 영문으로 한국사를 서술한 고전학 성과를 기반으로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근대 국민국가 단위의 우수한 민족문화를 구성하는 차원에서 한국의 문화유산을 조명했다. 그렇지만 헐버트의 이러한 용례는 서구어(영어)와 한국의 문화유산이라는 매우 제한된 관계망 속에서 등장한 것이다. 게일이 “古蹟=Ancient Remains”이라는 대응관계를 『韓英字典』(1911)에 등재시키지 않은 까닭은, 한국인의 한국어로 헐버트와 동일한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문화생태가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10년대 세키노 타다시(關野貞)를 위시한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사업과 제국 일본의 근대 국민국가 차원에서의 한국문화유산에 관한 보존관리는 한국인에게도 문화재 원형보존 관념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학술지에 수록된 게일의 한국 고전학/ 고고학 논저(「파고다公園考(The Pagoda of Seoul)」(1915))는 이렇듯 새로운 1910년대 한국의 근대 학술사적 문맥에서 등장한 연구성과였다. 또한 원각사지 10층석탑의 역사적 원형을 복원한 이 논저 속에는 “古蹟=Ancient Remains”를 내면화한 조선광문회의 한국 근대 지식인의 개입이 존재했다.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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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문세영이 간행한 사전의 목록을 제시하여 그 출판 흐름을 살피는 것과 문세영이 편찬한 ≪조선어사전≫의 일러두기를 중심으로 특징을 살펴 사전편찬사의 의의를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문세영은 1938년 ≪조선어사전≫을 편찬한 이후 1940년 수정증보판을 발간하였다. 그 이후 ≪수정증보 조선어사전≫은 1942년, 1944년, 1946년, 1949년, 1954년에 이르기까지 거듭 간행되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수정증보 조선어사전≫이 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방기 시기에는 ≪국어소사전≫, ≪중등조선어사전≫, ≪국어사전≫ 등을 간행되었다. 그리고 1950년대 이후에는 그의 이름으로 장문사의 ≪최신판 표준국어사전≫과 ≪순전한 우리말 사전≫이 간행되었다. 문세영 사전의 발간 흐름 추적은 국어학사에서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문세영 사전의 발간 흐름을 밝히는 데 필요한 일이며 희미해지는 우리말 연구 및 사용의 흔적을 복원하는 일이기도 하다.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의 특징을 고찰하기 위해 일러두기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일러두기를 기반으로 사전의 모습을 살피는 일은 필수적이다. 다른 사전의 일러두기와 비교를 통해 ≪조선어사전≫의 특징을 구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일러두기 항목 하나하나와 사전의 기술 내용을 분석하는 일은 의의가 있다. 문세영 ≪조선어사전≫의 일러두기와 조선총독부 ≪조선어사전≫의 일러두기는 매우 비슷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문세영 사전이 더 발전시킨 모습을 보인다. 문세영 사전 이후의 중사전 규모 이상의 사전들의 일러두기가 상세하게 나타나는데 그 저변에는 문세영 사전의 일러두기가 기반이 된 것이다.

현대 한국어 형성기의 자전 편찬과현대 한국어문학

이준환 ( Jun Hwan Yi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42권 0호, 2016 pp. 133-176 ( 총 44 pages)
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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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대 한국어 형성기에 국문으로 뜻풀이를 한 『국한문신옥편』, 『자전석요』, 『신자전』 등의 자전이 연이어 나오게 된 배경을 당시의 어문 환경과 관련지어 보고, 이 자전들에 반영된 언어가 독본 등에 반영된 당시의 현실 언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언어생활에서 어떤 역할에 했을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한자음에 대한 수요, 한자의 뜻에 대한 정확한 구별, 교육 등의 목적에서 실제 언어생활에 도움을 줄 국문으로 뜻풀이가 된 새로운 형태의 자전이 나오기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은 여러 잡지의 기사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실제 독본 자료를 보면 한자음의 변화로 인한 한자음의 정리와 통일의 필요성, 한자어와 국한문을 이해하기 위한 한자의 뜻을 정확히 알고 한자가 쓰인 문맥에서의 의미나 기능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다의어와 유의어를 충실히 반영한 자전의 필요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렇게 편찬된 자전이 한문의 번역과는 어떤 관계를 맺을지를 살펴보니, 『시문독본』에서 최남선이 번역한 『열하일기』와 이윤재가 번역한 『도강록』을 한문 원문-국한문 번역문- 『신자전』의 뜻풀이와 견주어 본 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자전』에 제시된 정보가 대체로 국한문 속에서 보이는 정보와 일치했고 국어의 통사적 질서와 맥락속에서 번역한 국한문이 언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적절히 변형되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최남선과 이윤재는 번역을 하는 데에 『신자전』 등의 자전을 참고하거나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하겠다.

< 모던조선외래어사전 >의 계량적 분석

김한샘 ( Han Saem Kim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42권 0호, 2016 pp. 177-196 ( 총 20 pages)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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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던조선외래어사전 >은 현대적 사전 편찬 방식이 구현된 근대 외래어 신어어휘에 대한 살아 있는 기록이다. < 모던 >의 표제항을 분석한 결과 총 14,203개의 표제항이 실려 있고, 이표기의 단위까지 분리하니 16,099개의 표기가 실려 있었다. < 모던 >은 자모, 접사, 일반적인 단어와 약어, 구, 문장 등 다양한 단위를 표제항으로 싣고 있는데 이중 10% 이상이 구 이상의 단위임이 드러나 외래어유입 초반에 단어를 넘어서는 단위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다. < 모던 >의 표제항 중 94%가 영어를 원어로 한다는 것은 < 모던 >의 자서에서 현대 외래어의 구할을 영어가 차지하고 있다고 기술한 것과 일치하는 결과이다. 영어의 뒤를 이어 독일어, 불어, 범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의 순으로 많은 외래어가 유입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 모던 >은 범례에 제시한 것보다 훨씬 많은 177개의 전문영역 표지를 사용하여 전문용어인표제항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 모던 > 수록 어휘에 대한 계량적 정보를 통해 근대 외래어 어휘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었으며 외래어 어휘의 구조, 사용양상 변화 등에 대한 후속 연구가 기대된다.

한불자전 과 현대 한국어문학

이은령 ( Eun Ryoung Lee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42권 0호, 2016 pp. 197-229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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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들에 의해 편찬되었고, 1880년 요코하마에서 출판된 『한불자전』은 사전편찬학적 관점에서 최초의 한국어 이중어사전이다. 이 사전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영미권 선교사들의 한국어-영어 이중어사전의 모델이 되었고 이후 한국어와 타 외국어의 이중어사전뿐만 아니라 국어사전 편찬에도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프랑스어로 된 뜻풀이와 외국인에 의해 편찬된 이중어사전이라는 한계 때문에 『한불자전』은 우리말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세종 21세기 계획의 「역사 자료 말뭉치」로 구축되면서 『한불자전』은 비로소 19세기 한국어의 역사를 증언하는 자료로 탈바꿈했고, 이후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활용됐다. 본 연구에서는 『한불자전』이 현대 한국어문학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기 위해 『한불자전』을 활용한 학술논문을 분류하여 그동안 현대 한국어문학에서 『한불자전』이 소환된 양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우리는 『한불자전』이 19세기 한국어 어형과 의미변화를 고찰하는 실증적 자료로 쓰인 예가 가장 많았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사전 편찬 경위와 타 사전의 영향 관계에 관한 연구와 『한불자전』이 가진 문화적 함의에 대한 여러 논의를 통해 개항 전후 시대의 사회 문화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속어 동사의 사용 양상에 대하여

이선영 ( Seon Yeong Lee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42권 0호, 2016 pp. 234-257 ( 총 24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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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어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에서 사용하기 힘든 표현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신문 기사나 비속어 관련 논문에서도 사용을 자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적지 않다. 그런데 우리 언어생활을 살펴보면 속어가 심심치 않게 쓰이고 있으며 언론 매체에서도 다양한 속어의 예가 확인된다. 이는 속어에 대한 인식과 언어 현실이 동일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비속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비속어는 비어와 속어를 아우르는 말이며 주의해서 사용해야 할 말은 속어가 아니라 비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어는 대상을 낮추거나 낮잡거나 얕보는 말이고, 속어는 통속적으로 쓰는 속된 말이다. 속어는 어떤 면에서 우리의 언어생활을 풍부하게 해 주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지난 15년간 언론 매체에서의 속어 사용을 보면, ‘꿰차다, 찜하다, 뺨치다, 뿔나다, 끝내주다’는 10,000회 이상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상적인 말과 이에 대조되는 속어, 예를 들면 ‘화나다’와 ‘뿔나다’는 동의 관계이며 개념적 의미는 동일하되 내포적 의미에서 차이가 있는 말이다. 국어 연구에서 동의 관계는 주요한 주제로 다루어지나 일상어와 속어의 관계는 별로 다루어진 바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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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피은(避隱)편 소재 「영재우적」조에는 향가 < 우적가 >와 < 우적가 >의 작자인 석(釋) 영재의 일화를 담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영재우적」조를 해석함에 있어 기존 연구자들은 < 우적가 >가 지어진 시대적 배경이나 노래의 등장 인물들-영재와 도적-의 정체 그리고 「영재우적」조가 수록되어 있는 삼국유사 피은편과의 연관성을 중심을 두고 다양하게 연구하여 왔다. 그러나 기존 연구에서는 「영재우적」조 배경설화의 결자(缺字) 3자와 그 의미를 간과하고 해석하여 왔다. 이 논문에서는 그러한 < 우적가 >의 배경설화에 관한 기존 논문의 한계를 벗어나서 석 영재에 관한 이야기의 전체적인 서사 맥락을 파악해보고 그에 따른 등장 인물들의 의미 변화를 통해 더 정확한 「영재우적」조의 의미 파악을 시도하였다.「영재우적」조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석 영재의 경우 그의 성품을 ‘釋永才性 滑稽 不累於物’이라고 직접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기존의 논의에서는 이를 두고 영재의 두 가지 특성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것으로 파악하여 ‘석 영재는 성품이 골계하고 사물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 부분은 ‘석 영재는 성품이 골계하였지만 사물에 얽매이지 않았다’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본문의 결자 3자를 통해 도둑들이 영재에게 < 우적가 >를 짓도록 직접적으로 명령했던 것은 아니었으며 영재가 도적들을 교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향가 장르를 선택하였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다른 등장인물인 도적들의 정체는 당대의 사회상을 살펴볼 때 단순히 선(영재)을 위협하는 악의 무리로 서술되고 있는 것이 아닌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선과 악이 내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영재우적」조를 읽는 독자는 고고한 인품을 지닌 영재의 능력에 대리만족을 느끼기 보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물질에 사로잡혀 있는 도둑들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고 보았다.「영재우적」조의 서사적 전개는 물욕에 사로잡힌 도적들과 도적들의 마음 속의 선함을 일깨워주는 조력자 영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특히 도적들이 물욕에서 벗어나게 되는 과정이 ①칼날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영재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의 정체를 궁금해 함, ②영재의 향가를 들은 후 그 의미를 이해하여 물욕에서 벗어난 듯 보이지만 영재에게 오히려 재물을 바침으로써 물욕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모습을 보임, ③실제로 재물을 가벼이 여기는 영재를 보고 마음 속 깊이 탄복하여 영재를 따라 피은함 등 점차 강한 교화적 수단을 사용하는 점층식 3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결국 삼국유사 소재 「영재우적」조는 서사 중심의 기록물로써 그 길이는 길지 않지만 치밀한 서사 구조 때문에 등장 인물의 치환이나 서사의 확대·재생산이 용이한 설화이기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 리면서 오랜 기간 동 안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인-기자로서의 현진건

박현수 ( Hyun Soo Park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42권 0호, 2016 pp. 281-311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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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 시대일보 에 발표한 작품은 「나들이」, 「발(簾)」, 첫날밤 등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동명 , 시대일보 등의 근대문학에 대한 인식의 문제와 함께 언론사가 처했던 경제적인 문제가 놓여 있었다. 선행 논의에는 현진건이 < 시대일보사 >를 그만둔 후 동아일보 의 기자가 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사이 1년 정도 < 조선일보사 >에서 일했다. < 조선일보사 >, < 동아일보사 >에서 근무할 때는 거의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기자로 근무하는 미디어에 작품을 싣는다고 해서 따로 원고료가 책정되지 않았던 점, 당시에는 기자의 월급만으로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현진건이 1933년 12월 20일부터 6개월 가까이 이어간 赤道 의 연재는 현정건의 투옥, 사망 등과 관련되어 있었다. 현진건이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이 계기가 되어 < 동아일보사 >를 그만둔 것은 1936년 9월 25일이었다. < 동아일보사 > 퇴사와 함께 이루어진 활발한 작품 활동은 흔히 문인-작가라고 불리는 존재들의 작품 활동과 언론사 생활의 관계를 보여준다.

담(談)류의 공연예술적 장르 미학과 변모

배선애 ( Seon Ae Bae )
반교어문학회|반교어문연구  42권 0호, 2016 pp. 313-350 ( 총 38 pages)
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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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대상인 ‘담’류는 근대 공연예술 환경에 조응하여 새로운 장르미학을 구축하며 등장한 근대적 공연예술로, 전통적인 이야기 문화라는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재담, 야담, 만담의 세부적인 장르 미학과 공연 주체는 서로 다르다. 1927년 김진구에 의해 대중교화의 목적으로 공연예술계에 모습을 나타낸 야담은 야담가 1인의 연행이 중심이기 때문에 야담가에게는 야담의 전문적 지식과 퍼포먼스 연행자로의 여러 자질이 요구되었다. 윤백남에 의해 오락성과 대중성을 갖춘 공연예술로 자리잡은 야담은 전시체제기에는 만담과 함께 선전선동의 전위로 공연되다가 해방 이후 인쇄매체와 소리매체로 옮겨가면서 공연예술계에서는 자취를 감춘다. ‘담’류 중 가장 늦게 등장한 만담은 신불출이 신랄한 현실 풍자를 위해 의욕적으로 실천한 장르로, 1인의 독만담과 두 명의 대화만담이 공연되었다. 1인 미디어라는 경제성과 만담이 지향하는 웃음이 전시체제기에는 동원의 근거가 되어 체제선전과 선동의 현장에서 공연되다가 해방 후 김윤심, 장소팔, 고춘자 등에 의해 전승되지만 코미디와 개그 등에 자리를 내어주고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가장 역사가 오래된 재담은 박춘재의 행보를 통해 확인되는 것처럼 재담말을 기본으로 하되 재담소리를 중심으로 거기에 재담극의 요소가 결합된 혼종적 장르였다. 이러한 장르적 유연성은 해방 전후로 만담과의 적극적 결합을 꾀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으며, 이는 재담을 독자적 공연예술로 정착시키지 못한 채 전통 연희의 자장에 머물게 했다.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전제하면서 서로 다른 주체가 각자의 방식으로 공연예술의 장에 등장했던 ‘담’류에서 발견되는 장르 구축과 변모의 과정은 근대 극장과 근대 공연예술계에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독자적 미학을 구축해가던 공연예술 장르들의 역동적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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