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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연구검색

Journal of Korean Oral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019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1권 0호 (2005)

공동체와 구비문학의 상관관계

서대석 ( Seo Dae Seok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1권 0호, 2005 pp. 1-34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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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과 공동체의 관계를 연구하는 이유는 구비문학이 공동체의 특성을 반영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논의는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사이버공동체나 동아시적 공동체 또는 지구촌공동체까지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이들 공동체의 특성을 드러내는 구비문학 자료가 연구대상이 될 만큼 축적되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자료의 채록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연구의 실효성이 없는 공허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구비문학연구의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통구비문학 자료가 전승되었던 촌락공동체의 연구부터 시작하여 고을단위의 지역공동체나 민족공동체까지의 범위를 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공동체와 구비문학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구비문학 장르에 따라서 다르게 접근될 수 있다. 신화는 신성성이 인지되는 공동체의 범위에 따라 씨족신화, 마을신화, 민족신화로 구별된다. 씨족신화는 씨족이라는 특정한 혈연집단인 공동체에서, 마을신화는 일정 지역을 점유한 마을 주민이라는 공동체에서, 그리고 민족신화는 민족공동체 차원에서 전승되는 신화이다. 이러한 신화는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과정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의 행위규범과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동체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구비문학 갈래가 민요이다. 노동요 의식요 등 기능요는 공동체 구성원이 일을 할 때나 의식을 행할 때 함께 불렀던 노래로서 마을 공동체 문화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한국민요 중에서 대표적인 노동요는 <모심기노래>, <논매기노래>이고 대표적인 의식요는 <상여소리>와 <달고질소리>인데 이들은 모두 마을공동체에 구성된 ‘두레패’들이 부른 선후창으로 불려진 민요로서 공동체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설화는 특정지역 공동체의 특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계층적 특성을 보여주는 갈래이다. 조선조 사회에서 형성된 설화는 학식이 있는 문인사대부층의 설화와 한자문화에서 소외되었던 서민층의 설화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점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 공동체 차원에서 설화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무가는 무속인 공동체의 문학이면서 지역공동체의 문학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무가는 무속인들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으면서도 특정지역 공동체의 안녕과 복을 비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속인공동체 이외에 기생이나 광대 등 전문연예인 집단의 공동체문학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 연예인 집단의 구비문학은 공연자와 향유자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작은 범위 공동체 문학으로서 성격을 찾기는 어렵다. 구비문학이 진정한 공동체문학으로서 의의를 가지려면 구연자와 향유자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문학이어야 하고 공동체의 의식과 세계관이 담긴 문학이어야 하며 공동체의 삶과 작품의 세계가 일체성을 띠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대극의 성립과 해체 과정에 나타난 공동체 문화의 위상

사진실 ( Sa Jin Shil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1권 0호, 2005 pp. 35-65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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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와 탈춤은 지역적이거나 계층적인 공동체 문화를 기반으로 향유된 구비문학이면서 근대 이행기의 문화를 대표한다는 측면에서 동질성을 지닌다. 그런데 판소리와 탈춤은 한국연극사의 전개 과정에서 근대극의 성립과 해체라는 상반된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논의에서는 연극의 공연 행위와 공동체 문화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판소리와 탈춤의 변별적인 위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방법론은 연극 공연에서 발생하는 극중공간, 공연공간, 일상공간의 세 층위를 바탕으로, 제의와 연극 등의 연행에서 참여자들의 변화를 포착한 셰크너의 이론을 수정 보완하여 마련하였다. ‘지속적인 변환’을 하는 대표적인 연행 양식이 통과의례라면, ‘일시적인 변환’을 하는 대표적인 연행 양식이 근대극이다. 이 논의에서는 지속적인 변환을 추구하면서도 반복적인 연행을 통하여 끊임없이 공동체 문화를 다져나가는 변환 방식으로 ‘주기적인 변환’을 설정하였다. 탈춤과 판소리는 지속적인 변환을 이루는 제의에서 출발하여 민속예술의 단계를 거쳐 흥행예술로 성장하였다. 그 과정에서 판소리는 고도의 음악성을 바탕으로 고급예술로 발전하였고 연행자와 관객이 모두 일시적인 변환을 경험하는 근대적인 공연 양식인 창극으로 개량되었다. 판소리의 창극화는 근대적인 극장문화에 편입되는 대신 공동체 문화의 기반을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탈춤은 공연방식과 공연미학의 측면에서 공동체 문화의 속성을 유지하는 대신 근대적인 극장문화에 편입될 수 없었다. 근대극의 해체 과정에서는 공동체 문화로서 연극의 위상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민속예술 또는 민중예술 단계의 이념과 형식을 회복하기 위한 연극운동의 결과 탈춤이 지닌 공동체 문화의 장점을 돌아보게 하였던 것이다. 탈춤의 마당극화를 통하여, 극중공간과 공연공간, 일상공간의 층위가 서로 소통하고 연기자와 관객이 직접 소통하게 되었다. 연극 공연이 참여자의 삶에 지속적인 변환을 가져다줄 수 있는 공동체의 연극이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극의 해체 과정에서 돌아보게 된 공동체 문화는 중세나 근대 이행기 연극의 양상과는 다르다. 중세나 근대 이행기의 연극에서는 지역이나 신분, 생업 등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었다면 마당극 운동에서는 이념적 동질성에 기초한 공동체 문화를 추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의 무속과 공동체문화

이용범 ( Yi Yong Bhum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1권 0호, 2005 pp. 67-98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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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역공동체 문화와 관련시켜 근대화과정에서 나타난 한국무속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화 이전 한국인의 삶과 문화는 매우 지역 의존적이었다. 이는 무속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무당의 정체성, 무당들의 상호관계, 무당의 활동범위와 일반 사람들과의 관계, 무속의례의 절차와 연행방식, 무속의 전승 등 무속의 거의 모든 것이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의 무속은 그것이 속해있는 지역공동체와 그 문화에 의해 많은 부분이 설명된다. 그러나 근대화와 함께 지역공동체와 그 문화가 해체되거나 약화되고, 당연하게 지역공동체 및 그 문화를 기반으로 존재하였던 무속에도 일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 글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무속의 변화를 바로 무속과 지역공동체 및 그 문화와의 관계 변화의 맥락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다시말해 한국무속은 지역공동체의 맥락속에서 존재하다가 근대화와 함께 그러한 지역성의 맥락에서 벗어난다는 전제를 가지고 근대 한국무속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 이 글은 먼저 근대화 이전 지역공동체를 토대로 한 무속의 모습을 살펴보고, 근대화 이후 한국사회에 나타난 무속의 변화양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결국 근대화 이후 한국무속의 변화를 지역성의 탈피라는 큰 틀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근대화 이전이나 이후의 무속을 설명함에 있어서는 무속의 종교전문가인 무당, 굿을 중심으로 한 무속의 의례, 무당과 그 신봉자들로 이뤄진 단골제도의 세 부분으로 나눠서 서술하고 있다. 현재 한국무속은 그 기반인 지역 공동체와 공동체 문화의 해체내지 약화에도 불구하고, 가신신앙이나 마을신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공동체와 공동체 문화를 상실한 무속이 어떻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 지, 아울러 이러한 한국무속에 대해 어떤 관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될 지가 이후 한국무속 연구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근대 민요공동체에 대한 사적 고찰

나승만 ( Na Seung Man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1권 0호, 2005 pp. 99-125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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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통시대부터 이어온 다양한 민요공동체 활동을 검토하고 근대시기에 성립된 민요공동체들의 존재 양상을 검토하여 근대민요공동체의 성격을 규명한 글이다. 연구 결과 근대민요공동체는 주체의 면에서, 이념의 면에서, 공간확장의 면에서 전통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주제면에서 신분과 억압으로 부터의 인간해방, 경제와 권력으로부터의 평등의식 실현은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인 바 근대민요사회는 전통민요사회가 속으로만 담아왔던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밖으로 드러내고 이를 실천하여 인간 중심의 사회,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민요공동체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앞서 시대를 견인하는 힘을 발휘한 공동체로 평가되며, 이는 민속문화가 담고있는 오래된 미래의 문화적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되며, 이를 통해 민속문화가 우리의 미래문화를 견인하는 주요 인자가 됨을 재인식시켜 준다.

양주별산대놀이의 전승집단과 지역공동체 문화와의 관련성

정형호 ( Chung Hyung Ho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1권 0호, 2005 pp. 127-163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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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별산대놀이가 전승되는 유양리 지역은 읍치지역의 성격을 지니며, 1800년 전후로 서울의 본산대를 이식하여, 이 놀이를 지역 공동체문화의 중심으로 성장시켰다. 따라서 이곳은 문화적 수용성과 놀이적 신명이 강한 곳이다. 시대에 따라 官과 民의 역할, 상업성 여부, 생업의 변화, 종교와의 관련성에 따라 변모 양상을 보인다. 19c 이후 탈놀이의 전승집단과 공동체의 관계를 시기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19c는 관과 민의 밀접한 관련 속에 산대놀이가 지역 공동체 문화로 정착이 되었다. 연희의 주도층은 관아의 하급 잡역부와 상인층이었다. 한편 초파일 공연의 실시와 巫系의 핵심적 참여로 보아 무속·불교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녔다. 따라서 탈놀이는 지역의 세시적 대동놀이로 전승되었다. 갑오경장 이후 1920년대까지의 시기는 탈놀이가 민 중심의 상업적 성격을 지니며, 지역 공동체문화의 중심으로 전승되었다. 지역의 판주와 상인층이 주도하면서 난장도 형성되었다. 또한 종교적 성격이 약화되고 연희 시기가 다양화되어, 상대적으로 놀이성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일시 외부 공연이 시도되었지만, 여전히 양주의 탈놀이는 지역의 세시적 대동놀이의 구심체 역할을 수행했다. 1930년대 이후의 일제 후반기는 일제의 억압에 의해 세시적 공연이 중단되고, 마을이 빈한한 농촌마을로 바뀌게 되어 전승이 침체되었다. 당시 탈놀이는 일부 주민들의 내적 욕구에 의해 자발적인 신명풀이의 형태로 전승되었다. 해방부터 1964년까지는 복원과 중단이 반복되면서 전승력이 약화되어 갔다. 해방후에 비세시적인 상업적 공연으로의 복원 조짐은 전쟁으로 타격을 입었으며, 탈놀이는 지역 문화의 구심체에서 마을 단위의 놀이로 축소되었고, 공동체적 성격도 약화되었다. 문화재 지정 이후는 관의 재정적 지원이 증가하면서 체계적 전승이 이루어지고, 외지인을 위한 공연도 늘었다. 하지만 관의 영향력 증가와 자체 전승 기반의 약화, 탈지역화 현상으로 인해 지역민의 공동체 문화로서의 위상은 거의 상실되었다. 결국 통시적 접근을 통해 보면, 양주의 탈놀이는 관과의 적절한 관계의 모색, 새로운 형태의 지역적 기반의 구축이라는 과제를 안고 방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야담의 전개 양상

김준형 ( Kim Joon Hyeong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1권 0호, 2005 pp. 165-208 ( 총 44 pages)
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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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야담의 전개 양상을 고찰하기 위한 목적에서 쓰여졌다. 야담은 17세기 중·후반 이후 필기와 패설의 전통을 이으면서 등장하였는데, 19세기말로 접어들면서 야담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를 꾀한다. 변모의 방향은 크게 세 경로로 요약된다. 첫째, 역사로의 경사. 둘째, 야담의 독자성 확보. 셋째, 소설로의 경사가 그것이다. 또한 표기문자도 순전한 한문에서 한문현토나 국문 표기의 양상도 나온다. 이러한 움직임은 야담이 자기갱신을 하면서 발전하는 한 양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1894~1910년의 야담은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 방향의 하나는 교화와 계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오락에 있다. 두 방향 모두 당시 신문 등을 비롯한 언론매체를 통해 이러한 양상을 읽어낼 수 있다. 이는 또한 야담이 파적을 위한 개인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비특정 독자를 대상으로 변모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10~1920년대의 야담은 구활자본으로 출간되어 향유된다. 이 때 나온 야담은 19세기에 편찬된 야담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부분적으로 사실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그렇지만 전대에 보여주었던 계몽을 위한 특성은 현저하게 약화된다. 1920년대 후반, 야담은 민중계몽운동의 일환으로 활용된다. 그 양상은 야담운동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는 야담을 통한 민족 공동체를 꾀한 한 양상으로, 문학이 시대에 어떻게 대처하였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렇지만 야담운동은 일제의 탄압에 의해 결국 붕괴되고, 그 자리는 통속적인 형태의 야담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900년대 전반기 방랑이야기꾼과 이야기문화

황인덕 ( Hwang In Douk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1권 0호, 2005 pp. 209-256 ( 총 48 pages)
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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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00년대 전반기를 대상으로 삼아 방랑이야기꾼의 유형을 정리하고 이야기 전승문화의 일단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반백년간의 시기를 일거에 횡단하여 방랑이야기꾼을 다룬다는 것은 이야기꾼 연구에서 이제까지 시도되지 못했던 일로서 매우 의미있는 주제이자 또한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렵은 한국 근현대사의 접점을 이루고 있어 역사의 조류가 다변했고 흐름도 빨랐던 시기였다. 따라서 위 주제는 이야기꾼의 양상과 동태를 시대적 상황과 연결지어 이해하고 그로써 이야기꾼의 유형과 시대·사회적 성격 등의 문제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좀더 넓히는 데에 기여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들의 출생 기점이 거의 1990년대 이전이며, 혹은 늦어야 1900년대 초반에 해당한다. 때문에 생존인물을 직접 만나기가 어려우며, 대부분 한 두 세대 뒤의 목격자들이 당사자를 목격한 기억에 의존하여 이야기꾼으로서의 모습을 파악해야 하므로 대상인물을 두루 찾아내고 구체적인 인물의 실상을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난점이 있다. 필자는 우선 방랑이야기꾼의 특성문제부터 간단히 정립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야기꾼과 시대와의 관련성을 중시하여 이야기꾼을 파생시킨 해당 시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정리함으로써 역사와 이야기꾼이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야기꾼 개인에 대한 깊은 이해에 이러한 측면이 고려될 필요가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표면적 측면 외에 역사의 일반적인 흐름 속에서 지속되고 있는 다양한 유형의 이야기꾼을 파악하여 정리하고자 했다. 그리고 끝으로 이들 방랑 이야기꾼들의 활동을 통한 이야기 문화와 공동체적 성격의 일단을 파악해보고자 했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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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노래 문화의 변화와 노래 공동체의 재편 양상을 잡가를 중심으로 살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선 후기와 일제시대에 걸쳐 존재했던 잡가의 존재양상을 밝히고, 이것이 근대 노래 공동체의 형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밝히려 한다. 잡가의 위상 변화와 수용층의 조직에 매체가 중요한 역학을 담당했으리라는 것은 이 연구의 중요한 전제가 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존재했던 잡가의 존재양상과 소통방식의 추이를 추적하다보면 신분에 기반한 노래 공동체, 지역에 따라 분화된 농촌 중심의 노래 공동체가 해체되거나 재배치되는 의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아울러 노래 공동체가 형성. 유지되는 요소가 신분, 혈연, 지연, 생활에서 자본의 흐름, 취향, 여가, 신념으로 대치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곧 근대 노래 공동체 형성을 향한 과정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근대적 노래 공동체는 자본의 유입, 생산, 대량 소비를 기본으로 하는 대중문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이전에 형성되었던 노래 공동체를 대신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용자 집단이라 정의해볼 수 있다.

19~20세기 전반기 공동체의 변화와 판소리

김종철 ( Kim Jong Cheol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1권 0호, 2005 pp. 289-325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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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판소리는 다른 구비문학과 달리 마을 공동체보다는 군현(郡縣) 단위의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면서 동시에 중앙 무대를 주요한 기반으로 하는 중층적 구조의 기반을 확보해 왔다. 19세기까지 판소리는 마을 공동체 또는 지역 공동체 문화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지역적 범주를 넘어선 대중 예술로서의 성격을 가졌고, 창자·작품·청중·비평가·후원가 등을 갖춘 판소리계(界)를 형성하였다. 중고제·동편제·서편제 등 지역적 기반에 따라 심미적 취향이 다른 유파가 등장하는 등 판소리 공동체라 할 수 있는 양상들이 등장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판소리는 전국적으로 연행 공간을 확대해 나갔으며, 또한 극장 공간을 연행 공간으로 확보하면서 도시의 시민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기도 했다. 이로써 19세기까지의 부정기적 연행의 한계를 넘어서고, 극장 전속 출연 등 시장 경제의 논리에 편입되었다. 아울러 음반 발매를 통해 대중 예술로서의 면모를 더욱 강화했다. 판소리는 마을 및 지역 공동체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상을 전망하기도 했다. 공동체 내부의 변화와 갈등을 포착하고 그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청중들의 공감을 획득했다. 판소리에 반영된 공동체는 구성원들 사이의 유대와 연대감이 작동되는 것이었으며, 긍정적 주인공에 대한 연대의식은 중세의 모순이 극복된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전망을 내포한 것이었다. 판소리는 동시대의 문제를 공동체 내에 소통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이 소통을 통해 스스로의 연행 기반을 확대하고 동시에 상하층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으며, 또한 상하층이 공유하는 새로운 감정문화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로써 상하층이 모두 즐기는 대중 예술이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근대 초기 극장의 중심적인 공연 예술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극장에서 판소리는 새로운 작품을 추가하지 못해 근대 초기 사회의 문제를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데 실패하고 대중가요 등에 밀려나게 되었다. 결국 시민들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함으로써 판소리는 진행형이 되지 못하고 과거형이 되었던 것이다.

공민왕 몽진 설화에 나타난 주민들의 역사의식

임재해 ( Lim Jae Hae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1권 0호, 2005 pp. 327-374 ( 총 48 pages)
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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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몽진 설화는 안동 지역사 연구의 중요한 구술사료로서 네 가지 사실을 담고 있다. 첫째, 역사적 사실로서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해 왔다는 사실을 풍부하게 전승한다. 둘째, 문화적 사실로서 안동놋다리밟기와 수동별 신굿놀이 유래, 그리고 청량산성이나 신석산성 관련 전설 등 지역사회의 유무형 문화재의 내력을 설명한다. 셋째, 신앙적 사실로서 공민왕의 당신화와 관련 서낭신의 영험전설을 널리 전승한다. 넷째, 지형적 사실로서 밀성대와 푸주바위, 굉미리쏘 등 공민왕 몽진과 관련된 특수한 지명 유래들이 전승된다. 공민왕 설화의 전승동향을 통해서 드러난 역사의식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안동주민들의 공민왕 인식은 두 가지이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공격에 밀려 패배한 왕으로 인식되는 경우와, 다양한 전술과 신통력으로 홍건적을 슬기롭게 물리친 훌륭한 왕으로 인식되는 경우이다. 둘째, 고려왕조에 관한 긍정적인 인식이다.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환영하고 극진히 받들며 서낭신으로 섬기는 까닭은 공민왕 부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려왕조에 대한 충성심과 연관되어 있다. 셋째, 지역사회에 관한 도읍지 의식이다.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 와서 행궁을 정한 것을 단순히 피신이라 여기지 않고 파천이라 하여, 거의 천도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 넷째, 역사적 사실에 관한 인식은 쓰여진 역사를 전달하거나 가르쳐진 역사를 수용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주민들의 의식을 담아내는 새로운 역사를 재구성하여 공유하는 경향이 강하다. 설화의 전승양상과 역사인식을 검토한 결과, 안동지역 주민들은 도읍지 의식을 지니며 공민왕의 안동몽진을 계기로 고려왕조에 대한 친연성을 특별히 가지며, 공민왕을 훌륭한 문예적 능력은 물론 탁월한 무장의 역량을 지녔을 뿐 아니라, 주술적 신통력을 발휘하는 사제왕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공민왕 및 그 가족들과 관련된 전설과 신앙이 상당히 폭넓게 형성되어 전승되고 있고 놋다리밟기와 같은 공동체 놀이까지 700년 전통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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