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구비문학연구검색

Journal of Korean Oral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019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8권 0호 (2014)

구술/기술'의 패러다임과 그 담화적 실현

송효섭 ( Song Hyosup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38권 0호, 2014 pp. 1-27 ( 총 27 pages)
6,700
초록보기
이 글은 ‘구술/기술’의 패러다임이 담화에서 실현되는 구체적 양상을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술/기술’은 기존의 ‘구비/기록’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여기에는 ‘말하고 쓰는’ 연행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단지 도구적인 데 그치지 않고, 메시지의 심리적, 사회적, 역사적인 조건들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구술’과 ‘기술’은 담화에서 각기 독자적으로 실현될 수 없어 모든 담화에서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구술이 기술을, 기술이 구술을 내포함으로써, 모든 담화는 구술과 기술의 복합체로 실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구술과 기술 각각에서 구현되는 시학이 무엇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이 글은 먼저 구술시학과 기술시학의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문자로 기술될 수밖에 없는 구술 텍스트를 시학적으로 기술하기 위한 통합적 방법론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패러다임이 문체론과 수사학에 적용되는 양상을 통해 그것이 갖는 문화적 확장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구술성과 기록성의 관계에 대한 영어권 학자들의 초기 탐구에 대한 소고

나수호 ( Charles La Shure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38권 0호, 2014 pp. 29-63 ( 총 35 pages)
7,500
초록보기
서양 학계에서는 구술성과 기록성의 관계에 대해서 오랜 세월동안 논의되어 왔으나 현대 논의는 1960년대에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초기 미국·캐나다·영국 학자들의 대표적인 이론을 정리하여 이 분야에 기본이 되는 서양 이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구술성과 기록성의 관계에 대한 현대 연구의 출발점을 설정하자면 로드의 The Singer of Tales가 출판된 1960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밀만 패리의 연구에 이어 슬라브 구비서사시를 연구하였으며 후대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구전 정형어구 이론을 펼쳤다. 이어서 많은 학자들이 구술성과 기록성에 대해 논했는데 본고에서는 캐나다 정보이론학자였던 맥루한, 미국 정보이론학자이자 예수회 신부였던 옹, 영국 구전학자였던 하베록, 영국 사회인류학자인 구디, 영국 사회인류학자인 피네간의 이론을 검토하였다. 맥루한은 구술성에서 기록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감각을 사용하는 비율이 청각 위주에서 시각 위주로 변하였고 이 변화는 또한 인간의 사고방식에도 극단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리고 맥루한의 이론의 특징 중에 하나는 ‘끊김’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매체의 진화가 부드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매체가 이전의 매체를 몰살한다는 주장이다. 옹도 매체의 진화가 사고방식에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었지만 그 진화는 ‘끊김’의 관계라기 보다 새로운 매체가 이전의 매체를 ‘보강’하는 것이라 주장했는데, 실제 논의에서는 이전의 매체가 살아남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가 특히 후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개념은 문자가 없는 사회의 ‘일차적 구술성’과 문자가 있는 사회의 '이차적 구술성'이다. 반면 하베록은 알파벳이 도입된 지 수 백 년 후인 플라톤의 <공화국>이 저술된 시기에 아직 구술성이 지배적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구술성과 기록성의 공존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맥루한이나 옹처럼 매체의 변화가 사고방식의 변화와 연결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이 오래 걸린다고 주장했다. 한편, 구디는 구술성이 기억과 망각으로 사회 전통을 지켰다면서 기록성은 객관성으로 인한 역사의식으로 특징지어지지만 기록적 사회에서 구술성이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매체로 인한 변화가 있다면 맥루한의 주장과 달리 그것이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것이라고 했다. 피네간도 이른바 ‘대경계론’을 부정하여 구술성과 기록성이 연속체와 같다고 주장했으며 특히 인간의 사고방식 변화의 촉매가 매체라고 하는 강한 결정주의를 거부했다.

문자문화의 시대에 생성된 구술 텍스트 -판소리의 내향성에 관하여

이유진 ( Yi Yu Jin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38권 0호, 2014 pp. 65-88 ( 총 24 pages)
6,400
초록보기
판소리는 조선후기에 발생한 구비문학 장르로서, 문자문화가 완전히 정착된 시대에 생성된 구술 텍스트라는 특이성을 갖는다. 설화나 민요와 같은 역사 깊은 구비문학 장르들이 한반도에 문자가 도입되기 전 구술문화 속에서 생장한 후 나중에 문자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 것과 달리, 판소리는 애초에 문자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태어났다. 판소리는 분명히 글이 아닌 말의 형태로 존재하는 문학이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문학이었지만, 그것의 질료인 언어는 사실상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양쪽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판소리는 필연적으로 기존 구비문학 장르들과 구별되는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겠는데, 본 논문에서는 문자문화의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 이 문제를 고찰한다. 설화나 서사무가와 같은 기존 구비서사 장르들과 판소리를 비교할 때 극명한 차이가 나타나는 부분은 바로 등장인물의 내면을 다루는 방식이다. 본래 전통적인 구비서사 장르들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개별적인 등장인물의 내면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에 합당한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외적변화이다. 따라서 설화나 서사무가와 같은 기존 구비서사 장르들은 등장인물의 내면에 대해 너무 길게 말하지 않는다. 그와 대조적으로 판소리는 등장인물의 내면에 대해 말하는 데 사설의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판소리에서는 주어진 역할에 합당한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그로 인해 나타나는 외적변화보다, 오히려 개별적인 등장인물의 내면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그러한 판소리의 속성을 ‘내향성’이라 칭한다. 판소리는 아마도 소설의 영향을 받아 내향성을 갖게 되었으리라 추정된다. 등장인물의 내면을 비중 있게 다루는 소설의 글쓰기 방식에 익숙해진 판소리광대들이 그와 유사한 방식의 말하기를 시도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판소리가 등장인물의 내면을 다루는 방식은, 소설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다. 판소리는 등장인물의 내면에 대해 말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기존 구비서사 장르들뿐만 아니라 소설과도 구별된다.

제주도 무가 <헤심곡> 연구 : <회심곡> 사설의 수용과 변용을 중심으로

강진옥 ( Kang Jinok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38권 0호, 2014 pp. 89-138 ( 총 50 pages)
12,500
초록보기
<헤심곡>은 제주도의 망자천도의례(亡者遷度儀禮)인 ‘차사영맞이’에서 불려지는 무가이다. 불교 재(齋)의식에서 불려지는 화청(和請) <회심곡>을 수용하여 제주도 무속의 신앙체계에 부합되는 방향으로의 독자적 변용을 실현함으로써 불교계 가사와 무가사설의 교섭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 불교계 가사 <회심곡>에서 무가 사설 <헤심곡>으로 전환하는 과정에는 제주도 무속의 신앙관념이 수용과 변용의 중심축으로 뚜렷이 자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헤심곡>은 <회심곡>의 기본구조와 중요단락을 받아들이되, 특정대목에서는 제주도 무속의 신앙관념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사설 변이를 시도하는데, 특히 ‘저승차사의 도래’ 단락에서 부각되는 ‘본향당 탐색’과 ‘가신들의 대응’ 삽화는 불교계 가사 <회심곡>이 제주도 무가 <헤심곡>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되었던, 제주도민의 문화적 정체확인과정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제주도 무속집단은 외래종교문화적 배경을 지닌 <회심곡> 사설에 토착의 신앙관념을 대변하는 삽화들과 제주도민의 생활문화적 가치관념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제주도 무속의 세계관념과 의례구조 속에 ‘죽음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세계관적 기반을 도입했을 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진행되는 제의 맥락과의 연관성을 구체화하는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망자의 저승천도와 극락왕생에의 기원을 현실화하고자 했다. 그 결과 <헤심곡>은 제주도 무속의 신앙체계와 사후관념, 저승관념을 뒷받침해주는 텍스트로서, 차사영맞이의 주요제차를 뒷받침하는 근거이자 사령의례의 근간을 이루는 중추적 무가 사설로 거듭날 수 있었다. 본고에서 시도한 <헤심곡>의 존재양상에 대한 문화문맥적 접근은 불교적 세계관의 무속적 수용과 변용의 양태를 이해하고 제주도 무속집단의 문화적 정체성과 상상력 체계에 대한 이해의 단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심청굿의 전승과 확산

윤동환 ( Yun Dong Hwan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38권 0호, 2014 pp. 139-166 ( 총 28 pages)
6,800
초록보기
굿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전승력을 상실하여 소멸되거나 새롭게 창출되기도 한다. 동해안 무당들은 안질의 퇴치를 위한 추남굿 또는 맹인거리를 별신굿의 심청굿으로 전환했다. 또한 심청전을 동해안 지역의 언어와 무악을 기반으로 끌어들여 굿으로 재창출했다. 무당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시도는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김석출과 이금옥의 경우 1950년대에 동해안 중남부지역에서 봉덕이타령을 서사무가로 구연하였다. 봉덕이타령은 에밀레종 전설과 관련된 것으로 성덕대왕신종을 만들 때 맑은 종소리를 내기 위해 아이를 쇳물에 넣었다는 이야기를 동해안 무당이 별신굿 또는 오구굿에서 중모리장단에 맞춰 무당이 서서 구연한 것이다. 봉덕이타령은 그 당시 대중적 취향에는 부합하였으나, 굿거리로써 주술성이 없었기 때문에 관중의 외면으로 더 이상 전승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동해안 무당들은 추남굿의 주술성을 수용하였고, 이를 토대로 소설 심청전을 무가의 모본으로 삼아 판소리 심청가 일부를 장면에 맞게 삽입가요로 구연함으로써 심청굿을 완성했다. 또한 무당들은 심청굿을 구연하면서 관객에게 별비를 요구하는 새로운 장면들을 삽입하여 자신들의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켰다. 현재 동해안별신굿의 심청굿은 사회적 상황에 적응한 결과로 재창출된 것이다.
11,600
초록보기
본 연구에서는 도화녀와 진지왕의 신이혼으로 탄생한 비형랑의 문신좌정을 진지왕의 왕권 재확인으로 등치시킨 <도화녀 비형랑> 서사체계의 성립배경을 진지왕계 집단의 특수한 왕권신화 인식체계 속에서 규명해 보았다. 도화녀 비형랑>의 진지왕·도화녀의 인귀교혼은 진지왕계 집단의 특정한 신화관념과 도화녀를 인격상징으로 하는 도목벽사 관념의 습합을 신화적으로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인귀교혼의 결과 탄생한 비형랑이 여우귀신을 죽여서 문신으로 좌정하는 과정은 진지왕계 집단이 도목문신 관념을 수용하여 왕권신화를 재구성하는 신화구성의 메타 이니시에이션이 된다고 가설을 세울 때 비형랑의 문신좌정이 진지왕의 왕권 재확인으로 등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지왕계 집단이 지니고 있었던 특수한 시조기원은 소호금천씨다. 진지왕계 집단은 가야 김씨인 모계 혈통의 비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신라 김씨와 가야 김씨를 아우를 수 있는 소호금천씨를 시조기원으로 내세워 기존의 신라 김씨에 의해 확립되어 있던 건국신화체계를 재편했다. 소호금천씨가 주관한 동방 변경의 신화지리지는 소호금천씨가 직접 주석한 뽕나무산(扶桑山)과 도목문신이 주석한 복숭아나무산(桃都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도산에 있는 대도목(大桃木)의 동쪽 가지(東桃枝) 끝을 도목문신(桃木門神)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도목문신에 관한 신화가 세모(歲暮)의 도목추나 풍속으로 발전하면서 대문에 도목랑을 세우던 것이 도목문신 그림을 붙이는 것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진지왕계 집단이 소호금천씨를 기원으로 한 시조관념을 신라 김씨가 당초 갖고 있던 시조계보와 접맥시키고자 하였다면 이처럼 소호금천씨가 주관하던 중국신화의 동방 변경의 지리지를 신라 경주의 그것 속에 재구성해내야 하는데, 사량부의 각각 서쪽 경계와 동쪽 경계에 위치한 선도산과 왕가수가 여기에 부합한다. 사량부는 애초 급량부 나정 숲에 탄강한 박혁거세가 돌산고허촌 촌장 소벌도리에게 발견되어 양육된 뒤 신라 건국조로 등극한 곳이고, 선도산은 시조모 선도산성모가 주석한 곳으로 신라왕실의 도목벽사 관념의 중심지이고, 왕가수는 도목벽사의 중심지인 선도산의 동방(東方)에 위치해 있는 신라 왕실의 목신 제사처가 된다. 이러한 진지왕계 집단의 신화지리 관념에 따르자면 선도산의 동쪽에 해당하는 왕가수의 위치는 선도산 도목의 동방에 위치한 동도지의 끝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왕가의 목신을 제사하던 왕가수는 동도지에 위치해 있던 귀문(鬼門)이 되고, 제의대상인 목랑은 도도산의 문신 형상을 도목에 조각하여 대문에 세워두었던 대도인인 도목랑에 대응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소호금천씨 시조 기원을 가진 진지왕계 집단의 왕권신화 체계에서 보자면 모계 혈통을 선도산을 주석지로 하는 도목벽사 관념과 접목시켜서 탄생시킨 왕자가 도목문신으로 좌정하게 되면 전통적인 신라 건국신화와 소호금천씨 도목신화가 결합되어 정통성이 확보된 새로운 시조신화 체계가 확립되게 된다. <도화녀 비형랑>의 진지왕·도화녀의 인귀교혼은 진지왕계 집단의 시조관념과 선도산을 주석지(主席地)로 한 도목벽사 관념의 습합을 신화적으로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인귀교혼의 결과 탄생한 비형랑이 서천의 왕가수 언덕에서 여우귀신을 죽여서 문신으로 좌정하는 과정은 진지왕계 집단이 소금천씨 신화의 도목문신 관념을 수용하여 왕권신화를 재구성하는 신화구성의 메타 이니시에이션이 된다. 도화녀와 진지왕의 신이혼으로 탄생한 비형랑의 문신좌정이 진지왕의 왕권 재확인으로 인식되는 <도화녀 비형랑>의 서사체계는 이러한 진지왕계 집단의 왕권신화 구조로 설명해 볼 수 있게 된다.

<바닷물이 짠 이유> 설화의 한일 비교

박연숙 ( Park Yeun Sook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38권 0호, 2014 pp. 209-250 ( 총 42 pages)
11,700
초록보기
이 글은 <바닷물이 짠 이유>(AT 565)의 유형적 특징, 분포, 역사, 우리의 고유성, 상징들, 유입된 경로와 변이 등의 제반 문제를 고찰하였다. 그를 위해서 유럽 및 중국의 설화를 돌아보며 우리 설화와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는 일본 설화의 구성 및 구성요소와 비교하는 방법론을 이용하였다. 범세계적 분포를 보이는 이 설화의 유형적 특징은 ‘맛난 죽(KHM 103)’, ‘맷돌을 훔친 사람이 주인을 불러 멈추다’, ‘선장이 훔친 맷돌을 바다 위에서 소금을 내다가 멈추는 방법을 몰라 배가 가라앉고 바다 속에서 계속 소금을 내서 바닷물이 짜다’라는 세 방향의 전개가 지적되고 있다. 그 역사는 중국의 물 여신 신화 <수모낭낭> 및 북구의 신화 <그로티 노래>에 거슬러 올라가고 전자의 문헌기록은 명대(明代)의 『패사휘편』, 후자는 『고 에다』 『산문에다』에 전한다. 우리 설화는 대체로 세 번째의 전개양상을 보인다. 구성은 맷돌획득과 상실(적대자1), 맷돌탈환과 상실(적대자2), 그리고 바닷물이 짠 이유로 이루어지며, 이 모티프를 모두 갖춘 C형, 맷돌획득과 탈환과 상실(적대자2)이 누락된 A형, 맷돌탈환과 상실(적대자2)만이 누락된 B형과 D형, 바닷물이 짠 이유가 누락된 E형으로 구전되어 왔다. B형은 증여자가 특히 선한 자질의 주인공에게 맷돌을 증여하는 특징을 보이고, D형은 조력자와 증여자 모두 나타나는데 증여자가 ‘꼬마사람’이라는 특이함을 보인다. A형이 가장 단순한 구성이면서 더 많이 채집되었고 C형은 그 다음이다. 일본 설화는 B형에 대응하는 b형이 다수이고 D형에 대응하는 c형이 그 다음이다. 우리의 C형은 유럽형에 더 가깝고 D형은 일본형과 흡사하다. 이 두 형은 일제강점기에 유럽형의 일본어번역서를 통해 각기 유입되어 자국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A형은 구성의 단순함과 요소의 특이함, 평북 및 함남의 채집 등을 고려하여 자국 내 변이와 아울러 중국대륙 등 다른 경로를 추정해 볼 여지도 남는다. B형과 E형은 자국 내에서 변이한 것이다. 이 설화에서 핵심적 기능을 하는 마법 맷돌은 선한 자질을 가진 자에게는 부의 기적을 발휘하고 시기와 탐욕과 한탕의 횡재를 바라는 자에게는 바다 속으로 침몰시켜 경계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바다 속에서 돌기를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귀중한 소금을 생산하여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 그로 인해 악을 물리치고 윤택한 삶을 영위하도록 생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지금껏 전해내려 오고 있다.

사방지 스캔들로 본 욕망과 성, 그에 대한 질서화 방식

홍나래 ( Hong Narae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38권 0호, 2014 pp. 251-282 ( 총 32 pages)
7,200
초록보기
세조대 사방지는 이순지 딸과 간통사건을 일으켰지만, 여자 옷을 입고 생활하던 정황과 그에 대한 양성인 논란이 가중되면서 간통죄로 치죄되지 않고 그야말로 스캔들로 다루어진 독특한 사건이다. 본고는 사방지 스캔들이 성의 권력적인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세조대 힘에 의한 국정 운영 방식을 흥미롭게 증명해준다는 데에 주목하여, 간통녀인 이순지 딸의 위상과 행위를 중심으로 이 사건을 재구하면서 초법적 권력이 작동되는 과정과 여성의 욕망이 배제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이순지의 딸이자 정인지의 사돈이었던 이씨는 친인척 관계를 동원하여 간통 사건을 초법적으로 해결하고 사방지를 되찾고자 했는데, 여장과 간통이라는 사방지의 범죄가 형법을 비껴갈 수 있었던 것은 여장문제에서 사방지를 철저히 타자화하고, 그의 신체를 양성인으로 더하여 비인류로 규정함으로써 가능했다. 이렇게 하여 ‘정상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남성들을 진정한 남성에서 배제하며 가부장 사회의 남성성과 성의 질서를 지킬 수 있게 되었고, 그를 둘러싼 여인들의 행위는 성적으로 보이는 물건에 집착한 집단적인 페티시 현상으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15세기 사방지 스캔들에서 보인 여성들의 적극적인 욕망표출 양상은 남성 중심 지배질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를 질서화하는 과정에서 능동적이고 과감하게 욕망하던 성적 주체로서의 여성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원형스토리와 매개스토리를 통한 이황 등장 설화의 스토리텔링

김용기 ( Kim Yong Ki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38권 0호, 2014 pp. 283-313 ( 총 31 pages)
7,100
초록보기
이 논문은 일부 이황 등장 설화를 활용하여 이황 설화의 현대적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데 목적을 둔다. 특히 이황의 출생과 관련된 작품과 그의 성장 및 수학, 인간적 성숙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결구하여 스토리텔링화 하는 방안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각각의 단위담에서 원형스토리와 원형스토리의 성격을 고려하여, 메인 원형스토리와 매개스토리로 구분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 둘의 결합을 통해 하나의 변형스토리를 생성시키는 방식을 두 번 반복하였다. 이렇게 해서 생성된 변형스토리는 ‘변형스토리1’과 ‘변형스토리2’로 각각 구분하였다. 그리고 다시 두 개의 변형스토리를 하나로 스토리텔링하기 위해 약간의 수정과 가필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형성된 스토리를 ‘창작스토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생성된 ‘창작스토리’는 이황 등장 설화와 관련된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텔링 결과물이다. 이를 필자는 ‘이황 창작스토리’라 명명한다. 하지만 이 결과물은 문화콘텐츠로 활용하기 위한 1차적 자료의 완성이지, 이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니다. 다만 후속 작업을 진행할 ‘이황 등장 설화를 활용한 게임 스토리텔링’을 위해 기본적인 캐릭터의 유형과 성격 및 역할을 참고로 제시한다. 이를 토대로 ‘이황 등장 설화의 게임 성향과 스토리텔링 구조’, ‘배경의 시·공간과 스토리텔링’, ‘아이템의 구성과 이황 스토리텔링’, ‘이황 등장 설화의 단계적 게임스토리 구성’ 등을 세부적 논의 대상으로 하여 후속 작업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글은 새롭게 완성된 하나의 스토리텔링 자료를 제공하여 이황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콘텐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욕심이 강하다 왜냐하면 이황과 관련된 설화적 요소들을 영웅서사담의 구성방식으로 스토리텔링하는 작업을 통해, 인물 설화를 현대적으로 계승시키고 활용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전통매체와 전파매체의 이야기 손실

남찬원 ( Nam Chanwon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38권 0호, 2014 pp. 315-348 ( 총 34 pages)
7,400
초록보기
예술은 매체의 변화에 가장 극명하게 반응하는 분야이다. 매체의 변화에 따라 예술의 한 갈래가 쇠퇴하기도 하며 동시에 새로운 예술의 갈래가 생성되기도 한다.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종이의 등장, 인쇄의 보급과 함께 문학은 원시종합예술의 형태와 구비문학이 전부였던 시대에서 벗어나 기록문학이라는 새로운 갈래를 등장시켰다. 사진 기술과 영사 매체의 등장과 함께 연극으로 한정되어 있던 극문학은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로 진화한다. 라디오, 텔레비전의 등장에 따라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일부 계층의 고급 소비재였던 문학은 전면적인 드라마, 토크쇼 등의 형태로 대중화의 시대로 접어든다. 이 시기까지 전통적인 형태의 구비문학은 새로운 문학 형태의 등장으로 위축되고 약화되는 듯이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 과정에 대해 옹(Walter J. Ong)은 구비문학의 약화를 구술성의 소멸 현상으로 분석한다. 그는 문자성이 구술성을 소멸시키는 현상이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말 보급된 전혀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의 등장은 구비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고 옹의 구술성 소멸에 관한 논지는 다양한 측면에서 반박되고 있다. 잭 구디(Jack Goody)는 문자체계가 구술성에 반영구적 형식을 부여함으로서 구술성의 영역이 더 넓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본고에서는 인터넷 매체 이전 단계인 전파매체의 시대까지 구술성 소멸로 인한 구비문학의 역동성 감소의 측면까지만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