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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Oral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019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7권 0호 (2020)

한국민요에 나타난 자연·생명관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성찰

서영숙 ( Suh¸ Young Sook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57권 0호, 2020 pp. 5-38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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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근대화, 산업화 이후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는 자연에 대한 반성과 위기의식 속에서, 우리 선조들은 자연·생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관계를 유지해왔는지 한국민요를 통해 찾아보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성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한국민요 중 자연·생명을 다룬 노래를 택해 노래 속 화자(서술자)에 따라 사람이 화자인 경우와 자연·생명(동물)이 화자인 경우로 나누어 민요 속에 나타난 자연·생명관을 고찰하였다. 인간의 목소리로 인간·자연·생명의 관계를 풀어낸 노래로 <줌치(주머니) 노래>, <누에 노래>, <서답(월경대) 노래>, <애운애기 노래>, <타박네 노래>, <쌍가락지 노래> 등을 살펴 본 결과, 이들 노래에는 자연의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점, 인간의 이승 삶은 저승의 삶이나 환생한 생명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 자연·생명, 그중에서도 특히 동물은 인간을 위로하고 애환을 나누는 존재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음을 밝혔다. 한편 자연·생명의 목소리로 나타내는 노래인 <소 노래>, <닭 노래>, <꿩 노래>, <생선 삼촌 노래> 등의 동물 노래에는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존재이며,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중심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는 점을 살폈다. 이를 통해 한국민요에 나타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자연·생명관은 생명 약자인 자연·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의식과 태도임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에 미래 세대가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하며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인간의 생명 약자에 대한 폭력적 삶을 반성하고 자연·생명과의 공생을 모색해 온 한국민요 속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야 함을 강조하였다.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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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대왕과 풍수>는 ‘왕이 올 자리’라는 화소를 중심으로 왕ㆍ이인ㆍ백성의 만남과 관계가 의미 있게 해석되며 인기리에 전승된 설화이다. 화소에 따라 <묘터형>, <집터형>, <종합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묘터형>은 풍수지리를 통한 지관의 예언자적 능력을 돋보이게 하고, <집터형>은 가난하게 사는 지관의 태도가 더욱 강조되는데, 각 유형이 제시하는 문제와 지향점이 <종합형>에서 한 편의 본격담으로 통합되어 심화되기도 한다. <숙종대왕과 풍수> 설화는 죽음의 위기에 처한 가난한 백성을 왕의 앞에 내세우거나 호혜적인 관계가 훼손된 공동체의 상황을 통치자에게 보이면서, ‘왕이 올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지관의 존재에 초점을 맞춘다. 지관은 땅ㆍ천문ㆍ길흉화복의 이치를 두루 통달한 인물로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있는데, 그가 가난한 소외자들에게 명당을 잡아주는 것은 땅이 생명을 품고 만물을 살아가게 하는 것처럼, 가난하지만 정성스러운 사람들에게 복을 주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이치를 실천하고 가르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숙종대왕과 풍수>에서 상상된 사회는 백성ㆍ왕ㆍ지관(예언자적 지식인)의 관계가 위계적이지 않고 정립(鼎立)적으로 그들은 상호 얽히며 공존한다. 사회는 다양한 백성들을 함께 살게 하고 그들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통치자가 필요하며, 이 공동체가 도덕적ㆍ윤리적 삶을 지속하기 위하여 자연의 이치를 알고 실천하는 이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설화는 이들이 실제로 부딪혀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의 존재를 연민과 친밀, 놀라움과 반성 속에서 경험하며 공생해야 하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곧 ‘왕이 올 자리’란 왕이 백성을 구제하는 통치가 이루어지고 그런 통치자를 자극하며 ‘아는 자’로서 살아가는 지관의 앎ㆍ삶ㆍ희망을 상징한다.

신 앞에 펼쳐진 인간과 자연의 오래된 놀이, 황해도 <사냥굿> 연구

윤준섭 ( Yoon¸ Joon Seob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57권 0호, 2020 pp. 64-92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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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황해도 굿놀이 <사냥굿>에 내재된 사냥의 의미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살피고자 했다. 이를 위해 ① <사냥굿>의 목적을 확인하고, ② 사냥 실패 및 성공의 양상을 살핀 다음, ③ 사냥에 성공한 이유를 통해 <사냥굿>에 담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확인하였다. <사냥굿>의 문제적 상황은 신에게 바칠 제물을 마련하는 것이다. 제물로 바칠 동물은 굿놀이판에 마련되어 있지만 실제 굿놀이는 동물이 부재한 것을 가정한 채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물 사냥을 위해서는 특별한 인물이 필요했다. 그 인물은 만신의 아들인 막동이었다. 이때 막동이는 사냥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 만신이 그를 어르고 달래서 사냥을 나서지만, 정작 그는 사냥타령을 부르는 대목에서 잠을 잘 뿐이다. 그러나 <사냥굿>에서 사냥은 두 가지 이유로 성공한다. 첫째는 명산대천에 노구메를 정성껏 올렸기 때문이다. 동물 사냥, 즉 인간이 자연을 취하려면 명산대천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논리가 발견된다. 하지만 이 단순명료한 논리는 <사냥굿>의 본의를 가렸다. 사실 사냥에 성공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만신이 막동이를 어르고 달랬기 때문이다. 만신은 막동이를 협력자로 만들기 위해 그를 계속 어르고 달랜다. 만신은 막동이에게 음식, 술을 대접하고 마을 처녀와의 결혼을 허락하여 인연을 만든다. 그 결과 막동이는 비협력자에서 협력자가 된다. <사냥굿>은 ‘돼지 어르는 굿’이라 불린다. 하지만 실제 굿놀이는 돼지를 어르지 않고 막동이를 어르고 달랜다. 이를 통해 본래 막동이는 자연에 가까운 존재이자 붙잡힌 동물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막동이를 붙잡힌 돼지와 동일하게 이해한다면 <사냥굿>에 대한 풍부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만신이 막동이를 어르고 달래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어르고 달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막동이가 사냥에 협력한 것은 동물이 인간에게 잡히는 것을 허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사냥이란, 만신이 막동이를 어르고 달래듯이, 인간이 자연을 어르고 달래야만 사냥에 성공할 수 있다고 <사냥굿>은 말한다.

의례를 통한 단군신화의 와해 - 와우리 단군전을 중심으로

박성혜 ( Park¸ Seong Hye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57권 0호, 2020 pp. 93-138 ( 총 46 pages)
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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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 단군전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전승되는 의례가 단군신화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가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단군사묘는 전국적으로 약 40여개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 중 와우리 단군전은 현전하는 단군전 중에서 그 유래가 가장 오래되고, 단군 영정을 보관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매년 두 번씩 단군전에서 의례를 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금까지 신화와 의례의 관계를 다룬 논문들은 주로 무속신화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었고, 건국신화의 경우 현재적인 사례를 확인한 경우는 없다. 따라서 21세기에 단군 의례가 단군 신화와 서로 어떻게 연관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확인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와우리 단군전은 1910년대에 한 대종교인이 단군영정을 가지고 와서 제향을 드리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의례를 제대로 수행할 수도 없었고, 영정을 보관하는 것도 어려웠으나 해방 이후 지역민들이 단군전을 세우고 단군 영정에 제향을 하다가 1987년 현재의 단군전을 중건하기 시작하고, 의례도 유교식으로 재정비하여 지금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곳에 봉안된 단군영정은 20세기 초반에 대종교를 중심으로 전승되던 단군신화에 형상화 된 것으로 신화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단군신화와 비교했을 때 신화도상은 단군으로 의미가 집약되는 것이 특징이다. 단군전은 어천제와 개천제가 지켜지는 것, 영정이 봉안된 것을 근거로 단군영정을 봉안하던 천진전의 전통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의례의 참여자들은 일상과 다른 정형적인 행동의 반복을 통해 신화보다 초점화된 신화적 관념(mythical concept)의 단군을 만나고, 단군이 구현한 세계의 당위성을 행위로 추인하며, 의례의 참여자들에게 이를 현시한다. 행동을 통해 강화된 신성성의 감각은 이미 신화도상이라는 형식을 통해 의미가 집약된 신화적 관념(단군)을 한번 더 응집시키고, 고양시킨다. 그러나 의례의 통해 고양된 신화적 관념은 단군신화와 함께 전승되지 못한다. 단군이라는 신화적 관념이 의례를 통해 고양되는 과정에서 천신에서 국조로 그 의미가 바뀌었고, 신화적 관념에 필요한 형식을 신화적 서사 대신 단군영정과 의례를 수행하는 행위가 대체했기 때문이다. 의례와 관련해서 신화는 와해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사(mythical narrative)가 완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군전의 의례는 단군전이라는 장소의 유래와 의례라는 행위의 타당성을 설명할 수 있는 증거물인 단군영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군영정은 이제 그 자체로 영정의 역사성과 단군전 의례의 연원을 설명해주는 유래담의 핵심 증거물이 된다. 그리고 단군신화가 와해된 자리에 단군 영정의 유래담이 확장되고 있다.

구술성과 설화 교육의 새로운 방향 - 중고교 설화교육을 중심으로

심우장 ( Sim¸ Woo Jang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57권 0호, 2020 pp. 139-188 ( 총 50 pages)
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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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에서 설화를 배우는 이유는 설화를 통해서 서사에 대한 구비문학적 이해의 틀을 갖추고, 서사 갈래의 보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텍스트 중심의 이해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구비서사의 특징적인 면과 연결시켜서 서사이해의 새로운 전형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교육 과정에서는 이러한 설화교육의 의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 여전히 문자문화적인 관점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설화의 구비문학적 특징에 대한 인식도 많이 부족한 상태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설화 교육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관점이나 방법론으로서의 구술성은 설화 교육과 관련하여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비문학의 정체성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고민들이 구술성이라는 범주에 잘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선 설화 갈래에 대한 구술문화적 이해를 심화시켜야 한다. 설화에 나타난 구술문화적인 표현의 특징, 패턴이나 이야기스키마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있어야만 소설과 견주지 않고 설화를 설화답게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맥락적 이해에 가장 적합한 갈래가 설화라는 점도 강조되어야 한다. 맥락과 결합하면서 다양한 의미를 생성해내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설화를 통해서 이해한다면 문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설화를 통해 현실 담론을 만들어내는 작업도 무척 중요하다. 구술문화에서 설화가 담당했던 역할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통념적 지식에 기대어 변화하는 현실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설화를 활용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설화는 특유의 붙임성으로 인해 다양한 맥락과 쉽게 결합될 수 있기 때문에 문학의 담론 생성 역할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최적의 갈래이다.

중국의 <장가르> 연구 현황

전금화 ( Quan¸ Jin Hua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57권 0호, 2020 pp. 189-222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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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르>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몽골 영웅서사시로 <게세르>, <마나스>와 함께 중앙아시아의 3대 서사시로 꼽힌다. 주로 러시아 연방의 칼미크[Kalmyk], 몽골, 중국 등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데, 중국의 경우 서북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오이라트[衛拉特, Oirat] 몽골족 거주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역사적 특성상 해방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장가르>의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불모지나 다름이 없던 중국에서 <장가르>가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벤위안[邊垣]이라는 한족 남자에 의해서다. 1950년 벤위안이 신장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몽골족 재소자로부터 전해들은 <장가르>를 출소한 뒤 기억에 의존하여 한어(汉语)로 출판한 것이 시작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문화대혁명이 발발하면서 <장가르> 연구는 침체기를 맞이하게 된다. 중국에서의 <장가르> 연구는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978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활기를 띤다. 내몽골대학의 보얀히식[寶音賀希格]을 비롯하여 보렌바야르[佈仁巴雅爾], 신장인민출판사의 토·바드마[托·巴德瑪], 린첸[仁欽] 등 연구자들이 직접 채록, 정리한 <장가르> 구전자료를 출판하면서이다. 이를 시작으로 수많은 <장가르> 구전자료집들이 본격적으로 출판되는데, 토도[Todo] 몽골문, 위구르 몽골문, 한어, 영어, 라틴어 등 다양한 민족의 언어로도 번역되어 <장가르> 연구의 기초자료 구실을 하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중국의 <장가르> 연구는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고, “장가르학”이라는 전문 학술분야까지 형성하며 방대한 연구 성과를 축적하였다.

함경도 망묵굿에 나타난 자살의 서사 양상과 의미

한상효 ( Han¸ Sang Hyo ) , 김민수 ( Kim¸ Min Su ) , 신동흔 ( Shin¸ Dong-hun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57권 0호, 2020 pp. 223-273 ( 총 51 pages)
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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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서사무가에 나타나는 ‘자살’의 양상과 의미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죽음에 대한 대표적 의례라 할 만한 함경도 망묵굿의 굿거리 가운데 자살 모티프가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도랑선비 청정각시〉, 〈대감굿〉을 대상으로, ‘‘자살’이 갖는 신화적 의미를 새롭게 살피고 그 의례적 함의를 짚어내고자 했다. 우선 서사무가 <도랑선비 청정각시>를 분석하였다. 청정각시는 신혼초에 죽은 남편 도랑선비를 만나기 위해 갖가지 지난한 시도를 행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자살’을 통해 그와의 만남을 성취한다. 이승과 저승, 또는 삶과 죽음 사이의 본질적 엇갈림이라는 문제상황을 극복하는 핵심 역할을 ‘자살’이 수행하고 있다. 청정각시의 ‘자살’은 본인이 간절히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의지와 염원이 집약된 행동으로서 그 핵심적 의미는 상징적 죽음을 통해 기존의 자기자신을 버리고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대감굿> 서사무가를 분석했다. 이 무가는 주인공 짐달언이 억울하게 패사한 아버지 짐미련의 원수를 갚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서사무가에서는 아버지 원수갚기와 신으로 좌정하기라는 두 서사가 서로 단절돼 있는데 그 전환을 추동하는 것이 ‘자살’ 모티프이다. 짐달언의 ‘자살’은 아버지의 복수에만 매몰된 과거의 삶을 스스로 청산하는 상징적 죽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도랑선비 청정각시>와 <대감굿> 두 서사무가를 통해 볼 때 망묵굿에 나타나는 ‘자살’은 자기 포기나 좌절과 같은 일반적인 의미와 질적으로 다른 신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주인공들이 적극적인 자기 선택을 통해 자신이 매몰돼 있던 지난 삶과 결별하고 존재적 거듭남을 추구하는 일로서 성격을 지닌다. 그 과정을 통해 주인공은 경계를 넘어선 영원의 존재로서 신격을 부여받는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자살’ 모티프가 갖는 제의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망묵굿은 죽음에 대한 굿이다. 망묵굿 굿거리들은 가족이나 이웃의 죽음을 앞에 두고 삶과 죽음 사이에 가로놓인 존재에 대해 전면적 성찰을 행하는 과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서사무가는 망자의 죽음을 음미하는 동시에 의례적 죽음을 통해 굿 참가자 자신이 죽음을 간접경험하는 과정으로서 성격을 지닌다. 두 죽음의 만남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제의적 소통이 이루어진다. 아울러 굿 참여자들은 언젠가 맞이할 스스로의 죽음을 미리 경험하는 가운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아득한 경계를 경험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의례적 몸짓의 극점에 ‘스스로를 죽이는 일’로서 자살이 놓인다고 할 수 있다. 망묵굿의 ‘자살’은 죽음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는 역설적이고도 초월적인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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