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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3권 0호 (2017)

시원(枾園) 김기동(金起東) 선생의 삶과 학문

김승호 ( Kim Seung-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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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枾園) 김기동(金起東) 선생(1926~1986)은 2세대 국문학자에 속하는 인물로 그는 앞선 세대들의 학문관, 방법론을 승계하여 고전소설 영역을 독보적으로 천착하다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인물이다. 그는 초창기 국학자들에 의해서 국문학의 토대가 마련된 점을 인정하면서도 고전소설이 실상에 비해 연구가 미흡한 점을 간파하고 이의 실상과 가치를 밝히는 일을 소명으로 삼았다. 본고는 모색기, 입신기, 활약기, 정리기 등으로 시원의 생애를 4분한 뒤 시기별로 학문연구적 특색을 밝히고자 하였다. 해방 이후 1955년까지는 시원에게 있어 장차 학자로서 어떤 시각으로 무엇을 연구대상으로 삼을지 고심했던 모색기이다. 『국문학개론』의 집필을 통해 그는 국문학의 전체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 고전소설이 실상에 비해 외면당하는 현실과 마주하고 고전소설을 연구대상으로 설정한다. 1956~1959년은 고전소설 연구자로서 위치를 굳히는 입신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시원은 소개되지 않은 작품 발굴에 전념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고대소설개론』과 『이조시대소설론』을 연이어 출간함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대표 작품·작가의 나열에 그쳤던 관행을 넘어 발굴 작품을 동원해 소설사의 편폭을 확장시키고 제종(諸種)을 가름하는 유형작업을 시도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60~1979년은 시원이 가장 활발하게 고전소설연구를 진행한 시기이다. 여전히 소설의 발굴과 해제를 지속하면서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던 장서각(藏書閣) 소장 대하소설을 통독하고 해제함으로써 문화콘텐츠, 연구대상으로서의 가능성을 알렸다. 아울러 고전소설의 발생, 비교문학적 검토, 종교사상 등을 테마로 논문을 작성하는 한편 문고판 도서의 간행을 통해 고전소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진작시켜 나갔다. 1980~1985년은 시원이 연구, 발굴보다는 전집 간행을 통해 자료를 총집해 제공하는 데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때이다. 그가 간행한 거질의 소설, 야담의 자료집은 이후 소설뿐만 아니라 여타 고전서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적 풍토를 조성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하였다.

시원(枾園) 김기동 선생의 고소설 발굴 성과에 대하여

유춘동 ( Yoo Choon-dong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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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枾園) 김기동(金起東, 1926~1986)은 한국전쟁 이후, 고소설 연구가 본격화 되면서 이 분야의 초석(礎石)을 놓았던 1세대 고소설 연구자이다. 그는 1980년대 고소설 400여 편을 발굴하여 학계에 존재를 알렸다. 그러나 이러한 시원 선생님의 연구 성과와 수집의 과정은 자세히 다루어지지 못했다. 이 글은 이러한 과정과 내용을 논의했다. 먼저, 시원 선생의 고소설 발굴 과정, 연구의 주요 방법론, 저서가 지닌 의미 등을 기준으로 (1) 『국문학개론』 간행 전후기(1955), (2) 『한국고대소설개론』의 간행 전후기(1956), (3) 『이조시대 소설론』의 간행 전후기(1959), (4) 『이조시대 소설의 연구』의 간행 전후기(1974), (5) 『한국고전소설연구』의 간행 전후기(1981), 다섯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1세대 고소설 연구자로서 시원 선생의 위상은 나손, 천봉 선생과 비교를 통해서 분명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 시원 선생의 차별적이면서도 두드러진 업적은 연구자들에게는 연구의 기반을 마련해주었고, 일반인들에게는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점이다. 시원 선생은 자료의 발굴, 자료의 독파, 내용(줄거리) 제시 및 고소설사적 의미라는 연구의 큰 방향을 설정한 뒤, 먼저 모리스쿠랑과 김태준이 언급했던 자료를 발굴, 독파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를 찾아내기 위하여 국립중앙도서관, 각 대학의 도서관, 개인 소장본 등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결과가 정리될 때마다 단행본으로 연구 성과를 제출했다. 단행본은 간행할 때마다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새로운 이본을 내용에 추가했고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기도 했다. 이렇게 30여 년 간, 소신을 갖고 새로 발굴하고 정리했던 고소설은 모두 400여 편이다. 이 글은 이러한 내용을 다루었다.

시원(枾園) 선생의 한문소설 연구

엄태식 ( Eom Tae-sik )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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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은 25년간 5권의 저술을 통해 230여 편의 작품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본고에서는 시원의 한문소설 연구 성과를 검토하고 그 의의를 살펴보았다. 시원의 고전소설 연구는 대개 ‘서지-경개-개평’의 순으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그는 고전소설 작품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매우 큰 공을 기울였다. 한국 고전소설 기초 연구에 대한 그의 업적은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그간 시원의 저서는 고전소설 연구의 ‘공구서’로 활용되어 왔는데, 한국 고전소설 연구서 가운데 이러한 지위를 얻은 개인 저술은 시원의 것이 유일하다. 이를 생각해 보면, 시원의 연구에 대한 몇몇 비판의 목소리들은 무색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시원 선생의 한글소설 연구 - 넓은 편폭과 깊은 호흡 : 유형 분류를 중심으로 -

엄태웅 ( Eom Tae-ung )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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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시원 김기동 선생의 학문적 업적 중 한글소설 연구, 그 중에서도 특히 시원 선생이 매 저술마다 시도했던 유형 분류에 대해 살폈다. 시원 선생의 저작을 유형 분류의 의의의 측면에서 접근하면 크게 세 권의 저술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고대소설개론』(1956), 『이조시대소설론』(1959), 『한국고전소설연구』(1981)가 그것인데, 이들 저술에서 펼친 유형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하면서 선생이 유형론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생각했던 바를 드러낸다. 그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하위 장르 개념의 수정 및 소속 작품의 조정, 둘째, 새로운 하위 장르의 추가, 셋째와 넷째는 하위 장르의 재검토와 갱신이다. 대표적인 한글소설 유형들은 약간의 수정을 거치며 자리를 잡게 되고, 범주화가 명확하지 않았던 유형들은 몇 차례의 결합과 분리를 통해 오늘날 우리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하위 장르의 토대가 되었다. 시원 선생은 학문적 황혼기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연구를 되돌아보고 교정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국 고전소설 연구의 학문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한글소설에 대한 유형 분류는 그러한 연구 지향의 구체적 현현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시원 김기동의 불교소설 연구 성과와 의미

김진영 ( Kim Jin-young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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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시원 김기동의 불교소설 연구 성과와 그 의미를 살핀 것이다. 먼저 시원 선생의 불교소설 연구 경향을 검토하고, 연구 성과와 과제, 그리고 연구사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시원은 불교소설을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자료·작품·사상 연구이다. 자료에서는 불교소설 작품을 소개하거나 간행한 것을 들 수 있고, 작품 연구는 고전소설 전반을 다루는 저작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불교소설만을 별도로 다룬 저서는 불교소설의 제반 사항을 알 수 있도록 하여 주목할 만하다. 사상 연구에서는 다양한 경전을 검토하면서 불교사상을 추출하고, 그것이 우리의 문학, 특히 고전소설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고찰하였다. 시원은 방대한 고전소설을 탐독하면서 귀납적으로 얻은 결과물을 다양한 저서에 담아놓았다. 대부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이기에 큰 성과라 할 만하다. 자료·작품·사상에 두루 관심을 기울인 결과이다. 이제 자료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는 더 확장된 텍스트를 강구해야 하겠거니와 작품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는 불교소설을 더 유의미하게 검토해야 하겠다. 그리고 사상 연구의 성과를 토대로는 불교사상을 더 깊이 있게 검토해야 함은 물론, 사상적인 융화까지 짚어내야 하겠다. 시원은 고전소설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불교소설도 의미 있게 다루었다. 불교소설을 모아 간행함으로써 감상과 연구의 텍스트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음은 물론, 주요 작품을 분석적으로 고찰하여 불교소설의 특성이 부각되도록 하였다. 그런가 하면 불교소설의 사상적 배경을 심도 있게 살펴 불교소설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드러냈기 때문에 불교소설에 대한 시원 선생의 업적을 평가할 수 있다.

시원(枾園)의 고소설 연구 지평과 고전소설사

정환국 ( Jung Hwan-kuk )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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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원(枾園) 김기동(金起東)의 고소설 연구의 지평을 확인하고, 향후 고전소설사의 방향을 모색한 것이다. 한국 고소설 연구사에서 시원은 엄연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초기 연구자로, 고소설의 유형 분류와 그 체계화를 선도적으로 이끌었다. 그가 남긴 고소설 분야의 개론서와 연구 저작, 그리고 선집과 총집 사업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점에서 그는 한국고전소설사 연구의 맥락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상이다. 이 글에서는 그의 저작들을 망라하고, 고소설의 유형 분류와 그 체계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고자 했다. 그 자신 소설사를 지향하기 전에 개별 작품들에 대한 분류와 정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피력했던 바, 이를 횡적 연구의 차원에서 그 성과와 한계를 짚어 봤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업은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소설 연구사에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과정을 혼자 감당한 성과였다. 이런 그의 성과는 이후 고소설의 새로운 지점들에 착목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결과 현재 고소설 분야는 고전문학 연구 영역에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가 최종 목표로 삼았을 것으로 판단되는 새로운 고전소설사 집필은 현재 우리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이에 필자는 명실공히 종횡의 고전소설사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그의 유형 분류를 토대로 영험서사, 원혼서사, 가족서사, 세태서사라는 네 가지 층위를 설정하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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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李溟)은 조선중기의 고위관료이며 유능한 호조판서로 알려진 인물이다. 유만주(兪晩柱)는 이 인물이 사적(私的) 공간인 집안에서 자기 소유의 노비에게 가혹한 법을 적용하고 함부로 그들을 살해한 이야기를 듣고 이를 자신의 일기 『흠영』(欽英)에 기록했다. 그에 따르면 이명은 가법(家法)이라는 명목으로 노비의 노동과 일상을 철저히 통제하고 그로부터 이탈하는 경우 가차 없이 살해하는 일그러진 심성의 소유자이자 잔혹한 가부장이다. 이명의 행적에 대한 주변 기록을 참조하건대 그의 악행이 최대치로 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선대(先代)로부터 부정하게 취득한 막대한 부와 그가 평생 주도면밀하게 추구하여 획득한 권력, 그리고 조선에 엄존하던 노비제도가 맞물린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명은 부유한 권력자의 처지에 있었기에 국법을 벗어나 가부장의 권력을 천단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만주는 이명의 어두운 이면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인 노비의 내면을 재현함으로써 인간악의 폐해를 가시화했다. 아울러 피해자에 대한 그의 공감적 시선은 그가 선취한 평등의 감수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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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그의 죽음 20년을 계기로 조선에서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기억’은 본격적으로 재구축 되었다. 대한제국 멸망과 조선침략의 ‘원흉’이 아니라 일본과 조선의 화평을 위해 헌신하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영웅’적 인물로 현창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1932년 “박문사”가 완공됨에 따라 그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는데 이후 이곳은 ‘조선 신궁·경성신사’와 함께 참배 명소로 거듭나기도 했다. 그리고 전시동원 체제가 시작된 1938년, 이토 사후 30년 기일을 맞아 함께 그의 시대를 함께 살아간 조선의 (협력적) 구지식인 집단은 일본인과 함께 그의 죽음을 다시금 추모하는 동시에 그의 공덕을 찬양하는 시를 작성해 박문사 영전에 올린다. 이토 사후, 일본인과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이 ‘합작’한 최초의 추모시집이 탄생한 것이다. 위 시들은 “우국충군(憂國忠君)”의 뜻을 피력한 이토의 시를 차운한 것으로 시집에는 일본인 49명과 조선인 31명이 작성한 93수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당시 이곳에 시를 수록한 조선인들의 평균연령은 65.5세로, 사실상 이들은 당대의 ‘원로’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즉 원로급 조선인 유력자·한학자·종교가 등을 이토 추모 행사에 동참시킴으로써 내지인뿐만 아니라 식민지인 역시 그에 대한 추모의지를 갖고 있음을 ‘전시’하려 했던 것이다. 과거처럼, 여전히 한자를 ‘제 1문어(文語)’를 활용하던 그들은 한시를 통해 이토의 시대를 문치(文治)가 빈빈(彬彬)했던 과거 당송(唐宋) 시대와 비견하거나 그를 일세의 영웅으로 칭송하는 시를 남겼다. 이들은 조선조 전통의 세례를 받고 태어나 통감부를 거쳐 일제 패망까지 살아간 원로이면서 식민권력에 순응해 온 당대의 전형적인 구지식인이라 평할 수 있는데 그들의 시 역시 이러한 점을 여실히 ‘표출’하고 있었다. 즉 식민지 공간에서 ‘기성의 언어이자 기득권의 문예’였던 한시가 차지하고 있는 한 지점, 다시 말하면 한시를 통해 일제와 그 주변의 권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어 전개되고 있던 식민지시기 한시 창작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정주 시의 불교생태학적 존재관

김지연 ( Kim Ji-yeon )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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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미당 서정주 시전집(未堂 徐廷柱 詩全集)』 1(민음사, 1991)을 텍스트로 하여, 서정주 시세계에 드러난 불교생태학적 존재관을 구명하고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본문의 논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인은 작품 속에서 사대(四大)의 인연화합과 사유(四有)의 윤회를 통하여 순환적 존재의 비실체성을 그려내고 있다. 세상 모든 존재들이 고정된 실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깨달음은, 자성(실체성)을 전제함으로써 일어나는 분별심을 버리게 한다. 이 비실체성의 자각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탈중심의 자세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둘째, 우주법계를 이루는 연기의 원리에 따라 미당 시에 드러난 존재의 본질은 상호의존적 관계성을 띤다. 이 관계성은 작품 속에서 사물들이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상호적 조건으로 드러나며, 연기 관계에 있어서는 정보(正報) 중심이 아닌 정보와 의보(依報)의 의존적 상호작용으로 구현되고 있다. 또한 시인은 상즉상입하는 연기의 실상을 통해 개체 존재의 독자성을 부정하고 전일론적 체계 속의 관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미당 시에 드러난 화자는 진리의 통찰을 통해 탈개체적 자아로서 자비를 실행하는 보살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보살의 이타행(利他行)은 자연스럽게 자기희생을 수반하지만, 삼라만상 속의 더 큰 자신을 찾아가는 대자아 실현(Self-realization)이자 동체자비(同體慈悲)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비추어 볼 때, 미당 시에 형상화된 탈개체적 자아의 동체자비는 자리이타(自利利他)적 생태윤리의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청맥』의 제3세계적 시각과 김수영의 민족문학론

박연희 ( Park Yeon-hee )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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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민족주의가 대항이념으로 급부상하게 된 시기에, 김수영이 언급한 민족문학의 이념과 범주는 과연 1960년대 진보적 지식인의 좌표 속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또 어떤 시각과 연대 가능했던 것일까. 이 글은 김수영을 『청맥』의 지식인으로 재맥락화하는 가운데 그의 민족문학론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청맥』의 민족주의 담론은 무엇보다 한일협정이 미국의 냉전아시아 정책에 따른 결과임을 밝힘과 동시에 반둥회의 이후 제3세계 지역에서 제기된 중립 프로젝트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청맥』의 주요 필자 중 하나였던 김수영은 『청맥』의 ‘제3세계적 민족주의’ 담론을 전유함으로써 당대 내셔 널리즘의 통념에 저항한 비판적 자유주의자 면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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