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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RATIV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091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6권 0호 (2015)

조선후기 시와 그림에 나타난 성시(城市) 풍경의 양상 비교

권정은 ( Jung Eun Kwo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6권 0호, 2015 pp. 5-30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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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중세 도시인 성시와 관련된 그림과 시를 비교해서 살펴본 것이다. 원래 동아시아 문명권에서는 농경이 사회 경제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산수 혹은 농촌 체험이 중세 예술의 주된 모티브가 되었다. 하지만 근대로 이행하는 조선후기에는 도시의 풍경을 근거로 많은 작품이 탄생했다. 우선 그림의 경우에는 중국의 <청명상하도>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태평)성시도>와 일본의 <에도명소도병풍>을 대표 작품으로 손꼽아볼 수 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탄생 시기가 앞서는 <청명상하도>는 중세적 요소 즉 고즈넉한 자연 풍경이 도입부에 배치되어 자연과 도시가 경계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에 반해 <성시도>는 주로 육지의 건물과 시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풍경이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대단히 번화한 모습으로 일종의 이상향으로서의 태평시대를 구현했다. 반면에 성시 풍경을 담은 시는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우선 <한양가>와 <성시전도>와 같은 작품은 기본적으로 그림과 같은 동일한 성향을 지니면서도 한양에 투영하는 소망을 내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동호거실>, <한경사>, <기이>와 같은 작품은 그림이 포착할 수 없는 도시 속 개인의 사연과 고독한 속내까지 담아내고 있었다. 이처럼 그림이 보여주는 태평시대라는 소망과 시 작품이 들려주는 복잡한 현실이 각자의 노선을 걸으면서도 공존하면서 근대로 향해가는 시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상화 할 수 있었다.

김우진의 일본어 글쓰기 -근대 문학의 공백과 이중 언어 인식

권정희 ( Jung Hee Kwo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6권 0호, 2015 pp. 31-64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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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극작가 김우진(金祐鎭)의 언어 의식과 일본어글쓰기의 의미를 규명하려는 것이다. 종래 김우진 연구는 ‘조선어의 부흥과 개량’을 역설한 식민지 조선의 자의식을 지닌 작가상을 구축해 왔다. 이러한 선행 연구에서 배제해 왔던 일본 유학 시기의 일본어 창작을 이 글에서는 김우진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는 텍스트로 연구 대상에 포함하여 일본어글쓰기의 의미를 김우진의 언어 의식과의 관계에서 분석했다. 그 결과 이 글에서는 김우진의 자전적 생애를 재구성하기 위한 단서로 당시의 일기와 시를 참조하는 텍스트 분석을 통해 <동굴 위에 선 사람(洞窟の上に立たる人)>의 여주인공을 윤심덕에 친연적인 여성 이미지로 형상화한 소설이라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또한 <방련은 어찌하여 나병의 남편을 완쾌시켰는가(蒡蓮はいかにして癩病の夫を全快させたか)>는 조선의 설화를 숭고한 의리의 희생의 서사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 두 편의 서사를 작가의 생과 관련지어 사랑과 부부애 서사의 생성 동인을 탐색했다. 이로써 조선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형성한 언어 내셔널리즘의 강박 속에서 조선어에 의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일본어로 구획되었던 언어 의식이 가시화되었다. 여기에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긴장· 갈등하는 근대소설 형성 시기의 근대적 개인의 정립이 언어와 결부되어 나타나는 문제가 작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우진의 일본어 글쓰기는 1940년대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작가에게 강제되었던 일본어글쓰기와는 이질적인 층위에 놓여 있다. 이러한 논의는 궁극적으로 김우진의 이중언어 인식과 일본어글쓰기의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타임 패러독스>, 또는 좀비가 말하지 못한 것

김석 ( Suk Kim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6권 0호, 2015 pp. 65-89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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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의 기록적인 흥행에 가려, 소수 SF 팬 층 이외의 주목을 끌기 힘들었던 동년도 개봉작 <타임 패러독스>(Predestination, 2014)는 많은 면에서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의 1958년 단편소설 「너희 모든 좀비들」(“All You Zombies”)을 충실히 재현한 영화이고, 또 그러한 까닭에 문학작품 원작의 영상화가 수반하는 일반적인 한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작 「너희 모든 좀비들」 역시 1941년에 출간된 동일저자의 전작 「자기 힘으로」(“By His Bootstraps”)에서 전경화된 시간여행과 자기-창조 같은 주제들을 수용해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나아가 오늘날 영상매체 및 시각중심 문화가 향유하는 지배적 영향력으로부터 문학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와 같은 일반론적 접근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 <타임 패러독스>의 문제는, 오히려 ‘원작’의 핵심적 주제라고 전제되어 스크린 위에 단순화된 공식으로 환원된 ‘예정 역설’로 인해 텍스트가 지닌 울림의 힘을 간과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비록 서사 내에서는 파편적 이미지로 스칠 뿐이지만 제목에 의미심장하게 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작품 전체에 긴 잔영을 드리우는 좀비의 존재가 영화에서는 실질적으로 소거되고 만 것이다. 본 논문은, 좀비를 습관의 체현적 원형이자 떨쳐버릴 수 없는 유령적 존재로 상정한 지젝(Slavoj Zizek)의 관점과 다른 한편으로 좀비의 알레고리적 기능을 탈근대의 비물질적 노동과 연관시킨 라르센(Lars Bang Larsen)의 시각을 활용하여, 「너희 모든 좀비들」에서 <타임 패러독스>로 이어지는 서사의 변형 궤적을 조명함으로써 외부라는 타자적 공간은 물론 죽음이라는 절대적 사건의 무게마저 삼켜버린 21세기 ‘자기-식인화’ 문화현상으로부터의 탈주 가능성을 모색한다.

경계를 묻는 문학적 실천: 이시무레 미치코 『고해정토』로부터

심정명 ( Jeong Myoung Sim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6권 0호, 2015 pp. 91-111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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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미나마타병 환자를 다룬 이시무레 미치코의 『고해정토』를 각종 경계들을 다시 그리는 것으로서 읽는다. 가와데쇼보신샤의 새로운 세계문학전집에 일본어 문학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정된 바 있는 이 작품은 주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측면에서 읽혀 왔지만, 그와 동시에 특정한 사건을 둘러싸고 산 자와 죽은 자,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경계를 물으며 당사자의 문제를 직접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또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의 일본과 관련하여 죽음의 경험들을 어떻게 영토화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도 이어진다. 『고해정토』에서 미나마타병 환자와의 만남은 화자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분열을 가져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사이의 간극이 쉽게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은 오히려 의사와 환자들 사이, 미나마타 시민과 환자들 사이에 뚜렷이 존재하는 경계를 부각시키는데, 이는 1959년에 미나마타 공장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를 둘러싼 갈등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이를 통해 『고해정토』는 미나마타병 환자들이 고도 경제 성장과 안보 투쟁으로 대표되는 당시 일본의 내셔널한 서사에 포섭될 수 없는 잔여이자 ‘터부’임을 보여준다. 작품은 또한 죽음 자체를 둘러싼 경계에 대해서도 질문하는데, 삶이 언제든 죽음으로 바뀔 수 있다는 잠재적인 가능성이야말로 문학에서 읽어낼 수 있는 보편성의 단서일 것이다. 작품에서 부각되는 미나마타라는 장소는 시간적, 공간적인 중첩 속에 존재한다. 이 장소는 식민지 조선의 역사와도 이어지며, 국경으로 나뉘지 않는 공동성을 배태하기도 한다.

일본의 초기상징주의의 형성과정

왕신영 ( Sin Young Wang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6권 0호, 2015 pp. 113-145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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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를 발원지로 하는 상징주의는 장르를 초월한 예술정신의 맥락화(脈絡化)라는 관점에서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의 동인(動因)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시운동의 중요한 발판으로 그 맥락의 지속성을 보였다. 한국시사에서는 그 명칭이 명시적으로 나타나는 이입기를 제외하면 상징주의는 대체적으로 낭만주의에 흡수되거나 그것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본 상징주의도 낭만적 경향을 지닌다는 점에서는 한국문학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일본문학사 속에서 충분한 공간 확충이 되어 있다는 점은 차이가 있다. 필자는 예술운동의 보편성이라는 관점에서 상징주의의 공간 확충의 필요성과 그 가능성을 주로 순수시라는 ‘장르’의 명칭으로 기술되고 있는 김영랑(1903-1950)의 시를 통하여 모색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논문에서는 이를 전제로 1900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서구에서 일본으로 상징주의가 어떻게 이입, 변용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서구 상징주의가 일본에 이입되면서 ‘일본상징파’ 시로 변용, 육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의 일본문학자들이 서구 상징시 속에서 일본의 전통적 미의식과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발견에는 인적교류를 통한 유럽과 일본의 문화(문학)적 상호 침투에 의한 상대화가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전자의 관점에서는 ‘유겐(幽玄)’이라는 일본 중세의 미적 개념으로 상징주의를 규정하려 했던 우에다 빈(上田敏, 1874-1916)과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 1842-1898)의 시를 불교적 개념으로 극복하려했던 간바라 아리아케(蒲原有明, 1875-1952)를 중심으로, 후자의 관점에서는 1900년 전후의 이른 시기에 상징 시인으로 구미에서 활동하며 왕성하게 일본의 전통시를 전파한 노구치 요네지로(野口米次郞, 1875-1947)와 그와 인적교류를 가지고 있으면서『상징주의의 문학운동』으로 일본의 문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아더 시몬즈(Arthur Symons, 1865-1945)를 중심으로 논하고자 한다.

네그리튀드 운동과 마르크스주의의 관계 지도 그리기

이석구 ( Suk Koo Rhee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6권 0호, 2015 pp. 147-168 ( 총 22 pages)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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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리튀드 운동이 본격화되기 전에 출간되었던 흑인들의 잡지 『정당방어』나 『흑인들의 외침』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나 초현실주의적인 노력이었지 네그리튀드 잡지는 아니는 말로 무시당했다. 이와 관련하여 본 연구가 취하는 입장은 외래 사상을 받아들였는지의 기준으로 진정한 흑인문화운동인지 아닌지를 평가한다면 『흑인학생』의 창간인들인 세제르, 생고르, 다마스의 활동도 네그리튀드에서 제외되는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지만 기성 연구에서 좀처럼 지적되지 않는 사실은, 『흑인학생』의 창간호에서 이 핵심인물들이 외래의 서양 사상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는 부분을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순수한 아프리카의 정신을 노래했을 때조차도 네그리튀드 운동은 마르크스주의와 초현실주의 같은 유럽의 사상과 문화를 수용하였다는 것이 본 연구가 주장하는 바이다. 구체적으로 본 연구에서는 『정당방어』에서 시작하여 후기의 세제르와 생고르에 이르는 프랑스어권 흑인문화운동이 마르크스주의를 왜 수용하게 되었으며, 또 어떤 이유에서 거리를 두게 되었는지, 식민 해방 이후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취한 입장은 이전과 어떤 점에서 다른 것인지를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와 맺은 관계의 사상적 지도를 그려내고자 한다.

호모에코노미쿠스 이후에 누가 오는가?: 데리다와 도래할 계산의 주체를 중심으로

정재식 ( Jae Sik Chung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6권 0호, 2015 pp. 169-191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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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데리다의 “계산” 개념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호모에코노미쿠스 이후에 도래할 경제적 주체의 양태를 구상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작업을 위해서 본 논문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측정하기”(Measuring what makes life worthwhile)라는 미국의 호텔 최고 경영자 칩 콘리(Chip Conley)의 강연문과 “계산 불가능한 것을 계산하는 것”에 관한 데리다의 사유를 접목시켜 보면서, 주체 중심의 동일성을 잣대로 타자를 측정하고 지배하는 폭력의 행위와는 다른 방식의 계산 형식을 탐구한다. 데리다에게 계산은 수리적, 경제적 개념에 국한되지 않고, 독특성으로서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 양태와 삶의 형식을 결정하는 철학적, 존재론적 개념에 해당한다. 그의 계산 개념은 주체의 동일성을 내부에서 분화시키는 타자의 “이질적인 낯섬”(a troubling foreignness)을 핵심 범주로 삼는 “불가능성에 의한 계산”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해체론적 계산을 통해 우리는 경쟁과 효율을 계산의 기본 원리로 삼으면서 자본의 무한 확장과 시장 논리 그리고 기업의 조직과 운영 방식을 인간 행동의 합리성의 정점에 놓은 신자유주의적 호모에코노미쿠스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계산 불가능한 것을 계산하는 독특성의 주체 형식을 창안해야 한다. 상처와 변질의 위험 속에서도 계산 불가능한 것을 현실 제도와 다양한 실천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계산하면서 타자의 목소리에 윤리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새로운 계산과 실천의 양태를 발명하는 주체,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호모에코노미쿠스 이후 도래할 주체,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창안해야 할 “도래할 계산의 주체”이다.

비교문학이 생산하는 지식: ICLA 2010 세계 비교문학대회가 남긴 한국비교문학자의 과제

조성원 ( Sung Won Cho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6권 0호, 2015 pp. 193-222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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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내재적 성찰의 입장에서 2010년 8월 15일 서울 중앙대학교에서 개최되었던 제19차 국제비교문학회 세계대회가 한국비교문학자에게 남긴 과제가 무엇인지 찾아 보는 글이다. 이 대회에 참가했던 외국 비교문학자들은 이 대회를 매우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한다. 아울러, 이로 인해 한국비교문학의 국제적 위상도 어느 정도 격상된 듯 하다. 그러나 이 대회를 개최했던 한국비교문학자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이 대회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실익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이 대회를 통해 한국비교문학자들은 한국에서 비교문학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연구적 상황이나 학문후속세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여실히 개선되기를 기대했으나, 여전히 그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국인의 시선에서는 성공적으로 보이는 대회가 국내학자들에게는 그리 큰 성과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 ICLA 2010 서울 세계대회의 명암의 의미를 살펴 보고, 그 자성적 평가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비교문학하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실천적 전략을 모색해, 21세기 한국비교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 탐구의 결과로, 이 글은 한국의 비교문학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할 실천적 방안으로서, 문학의 국제적 관계에 바탕을 둔 전통적 비교문학연구방법에 대한 가치를 새로이 인식할 것과, 외국어능력, 특히 영어능력의 함양을 통해 한국비교문학자의 국제경쟁력을 기를 것을 제안한다.

"서사론"의 개념과 역사 고찰

최라영 ( Ra Young Choi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6권 0호, 2015 pp. 223-252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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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사’와 ‘서사론’에 관한 개념범주들을 고찰하고 이와 관련한 ‘서사론’의 역사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았다. 프린스에 의하면, ‘서사론’의 개념은, ‘서사론’을 ‘내러톨로지’로서 처음 명명한 토도로프의 구조주의적 관점, ‘서술론’을 ‘소설의 분석’과 관련하여 정밀, 체계화한 주네뜨계열 이론가의 관점, 그리고 최근 서사론자들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서사연구를 확장시키는 동향에 부합한 발(Bal)적 관점에서 범주화된다. 한편 코블리의 ‘서사론’의 개념은 프린스가 정의내린 것과 비교할 때 서사론의 텍스트를 ‘소설’, ‘신화’, ‘설화’ 등에 한정짓지 않은 포괄적인 것으로서 규정하고서, 1960년대 이후 번성한 구조주의적 서사론을 서사론의 특정 범주로서 다루고 있다. 서사론의 개념범주에 관한 이같은 입장 차이들은 서사론의 역사기술에 있어서도 반영되고 있다. 즉 서사론의 역사에 관해서 구조주의적 서사론을 중심으로 정리하면서 주네뜨, 슈탄젤 등의 이후를 서사론의 쇠퇴기로 보는 입장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구조주의 중심의 서사론이 구조와 형식에 치우친 측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서사론의 범주를 확장한 ‘서사 전환’, 즉 현재의 융복합적 접근방식의 서사론을 중심에 두는 입장이 있다. 전자의 서사론의 역사를 정리한 기술로는, 후스터레이, 허만의 것을 들 수 있으며 후자의 것으로는 코블리, 플루더닉의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기존 서사론의 역사기술에서 역사주의적 관점이 결여된 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맥헤일의 서사론의 역사 논의를 들 수 있다. 최근, 서사론의 개념들과 서사론의 역사기술들의 전개양상을 살펴볼 때 서사론의 서사 개념은 말로 된 것과 글로 된 것을 아우르고 있으며 소설중심의 허구적 서사를 넘어서서 논픽션, 법, 정신분석, 영화, 음악, 미디어 등 출현했거나 출현 가능한 서사들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서사론의 역사는 ‘서사’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너머, 누구를 위한 것이며 또한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와 관련하여 광범위한 영역으로까지 전개되어왔다. 즉 ‘서사론’의 분야와 연구방향도 ‘소설론’으로서의 내러톨로지(Narratology)로부터 포괄적 영역의 서사들을 아우르는 서사이론(Narrative Theory)으로 심화, 확장되고 있다.

김동인의 문학창작관(觀)과 문학의 역할론(論)

김시몽 ( Si Mon Kim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6권 0호, 2015 pp. 253-273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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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은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한국에 근대문학을 부여하고자 글을 쓴 사람이다. 권선징악을 주장하는 윗세대와 맞싸워 현실을 그대로 그려야된다는 문학관을 내세웠다. 그 당시의 현실이라함은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의 가난한 평민의 삶이다보니, 그 젊은 작가들이 주장하는 사실주의 문학은 경제 측면에서 불공평한 사회구조를 반영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김동인의 문학관이 다소 달랐다. 예를 들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점을 판히 볼 수 있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이 몸이 아픈 아내를 어쩔 수 없이 혼자 놔두고 돈을 벌러 나오는데 집에 들어올 때 자기 아내를 죽은체 발견한다. 이 얘기로 작가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인정사정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에 비슷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광염소나타’는 이 비극적인 상황이 결국 주인공 백성수의 천재성을 깨워주는 기회라고 보는 것으로, 김동인은 예술 앞에서 모든 희생이 용납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이 예를 보면, 김동인이 현실을 접하는 태도는 이야기 즉 소설을 구성하기위한 서술적인 장치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김동인의 성격은 단순히 사회구조를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사실주의문학과는 거리가 있다. 김동인 작품세계에 대한 평론을 보면 김동인이 단순히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에만 몰입하지 않고 민족주의, 탐미주의, 예술지상주의, 낭만주의 등등 많은 문예사조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품마다 문학성향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김동인 문학세계의 일관성을 찾을 수 있는 건지에 대하여 본 논문이 알아보고자 한다. 김동인의 문학세계는 그의 문학창작觀 속에 정의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김동인이 작품마다 문예사조가 다르다는 것은 김동인이 한 문예사조에 속하지 않고 끊임없이, 매 작품마다, 그 작품에 적합한 사조를 추구하는 것이다. 김동인에 있어서 문예사조는 사조이기 전에 창작의 도구다. 사조에 따라 이야기하는 주제, 진행, 구조, 모든 요소들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찾아가면서 김동인이 계속해서 문학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의 문학의 일관성은 지속되는 그 실험에서 찾을 수 있다. 김동인에 의하면 작가가 새로운 글을 쉬지않고 시도하는 것이 문학작가의 진정한 태도이며, 결론적으로 그가 문학창작을 하면서 그리고자 하는 것은 한 시대에 한하는 사회적인 현실보다도 일제 강점기하에서도 지키려는 김동인 바로 그가 생각하는 한국의 본 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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