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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RATIV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091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7권 0호 (2019)

한국과 일본의 근대적 ‘문학’ 관념의 한 단면 -다카야마 조규와 이광수를 중심으로

송민호 ( Song Minho ) , 표세만 ( Pyo Sema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7권 0호, 2019 pp. 5-34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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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 최초로 근대적인 문학론을 내세웠던 이광수를 중심으로, 그가 근대적인 문학론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영향을 받았던 일본의 문학 담론들을 살피고자 하는 시도이다. 기존 이광수의 문학론 중 ‘정(情)’의 분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은 대개 그 문학론이 일본의 쓰보우치 쇼요의 영향 하에서 형성된 것이라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광수의 문학론의 편력이나 일본 문학사의 구도를 살펴보게 되면, 단순히 ‘정’을 매개로 이광수와 쓰보우치 쇼요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광수는 쓰보우치 쇼요를 비롯하여 시마무라 호게쓰로 이어지는 와세다 대학 중심의 자연주의자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이광수의 문학론이 다카야마 조규의 그것에 깊은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검토한다. 이미 하타노 세츠코는 이광수가 ‘본능만족주의’를 언급하던 초기 문학론에서 다카야마 조규의 영향이 미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이미 언급해두고 있다. 본 논문은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이광수의 초기 문학론을 넘어 그가 ‘예술을 위한 예술’을 거부하고 ‘인생을 위한 예술’이라는 명제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 전반에 다카야마 조규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본다. 다카야마 조규는 흔히 ‘일본주의’를 제창하였던 국가주의자로 오해되고 있는데, 그는 개인주의적 국가주의라는 지극히 모순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비평가였던 것이다. 그는 문학이 추구하는 본능 중심의 미(美)가 ‘정(情)’적 작용에서 비롯된다고 파악하였으며, 국민의 성정이라는 매개를 통해 본능 만족의 문학이 국가를 포괄하는 데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이광수는 또한 조규의 사후에 출판된 ‘문은 사람이다(文は人なり)’라는 비평집을 여러번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문사’의 자리를 재구성한다. 이후 이광수의 문학적 실천 과정은 조규가 제기한 ‘미적생활론’의 요체, 즉 개인주의적 국가주의의 지점과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비교문학과 아날로지

신정환 ( Shin Jeong-hwa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7권 0호, 2019 pp. 35-58 ( 총 24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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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문학은 구체적 내용과 방법론이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아 곧잘 위기설에 휩싸이곤 했다. 이는 ‘비교’ 행위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만일 이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정립된다면 무엇을, 어떻게, 왜 비교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본 연구는 ‘비교’ 행위를 세계 인식의 상반된 틀인 ‘아날로지(analogy)’ 및 ‘아이러니(irony)’의 원리와 관련시켜 보면서 비교문학의 존재론 및 윤리학을 탐색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비교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다리를 놓는 아날로지는 수사법의 한 종류라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비교와 달리 아날로지란 외형적 ‘유사성’이 아니라 우주 내 모든 존재와 사물들이 맺고 있는 유기체적 관계에 대한 믿음이다. 그런데 근대의 도래와 함께, 인간과 세계의 조화가 깨지면서 말과 의미, 현상과 실재가 어긋나고 있음을 인식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절대 진리가 상대적 진실로 흩어져 버리고 신이 모습을 감춘 가운데 인간 소외가 시작되면서, 상실된 세계의 총체성을 문학적으로 구현하는 임무를 맡은 소설이 탄생한다. 또한 유럽에 국민국가가 등장하고 국가주의가 득세하면서 비교문학이 탄생한다. 상실된 ‘세계문학’을 복원하려 하는 비교문학은 분열적 아이러니를 치료하는 통합적 아날로지이다. 비교문학은 국수주의적 국가문학을 지양하고 국경을 초월하여 상호 이해의 도구로 기능한다. 이는 근대 이후 찢고 나누었던 아이러니에 대한 치유이자 환원적 민족주의에 대한 해독제이다. 따라서 비교문학의 도달점은 인류 공존 속에 우주적 조화를 전파하는 총체성이다. 그러나 이것은 질서와 통일을 추구한 역사적이고 산문적인 총체성과는 달리 아이러니로 찢긴 존재와 사물들 사이를 잇는 영성적이고 시적인 총체성이다. 다석(多石) 유영모의 철학에 따르면, 인간의 존재를 말하는 ‘있음(being)’은 본래 ‘잇음’이다. 즉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이를 이어서 모든 것을 있게 한다. 여기서 ‘잇는’ 행위, 즉 비교 행위는 인간 존재론으로 승화된다. 또한 계(界)를 가로지르며 조화와 융합을 추구하는 비교문학의 아날로지 원리는 독점적 세계화에 맞서 타자성(他者性)을 존중하는 세계시민주의 시대의 윤리학이 된다.

신동엽의 <석가탑>과 현진건의 『무영탑』 비교 연구 ― ‘비어 있음’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대성 ( Lee Dae-seong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7권 0호, 2019 pp. 59-83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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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오페레타 <석가탑>의 의미를 『무영탑』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이미지로서 살펴본다. 신동엽은 생전에 대본을 공개하지 않았고, 팸플릿이나 등사본 어디에도 『무영탑』을 차용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차용 여부와 상관없이 『무영탑』과 함께 「석가탑」이 독서되지 않으면, <석가탑>은 단지 학교 예술행사 중 비교적 나은 공연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텍스트적 구별의 표면을 발견하고, 선택된 장면들이 바라보이는 한에서, 극 중 인물들이 바라보고, 존중하는 무언가를 독자도 이미지로서 바라보고 숙고할 수 있다. 「석가탑」은 제4경에 이르기까지 시야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성역을 바라보는 시선 그 자체로서 눈동자 이미지를 전경화하고, 제5경부터는 죽은 아사녀의 빈 자리가 드러나도록 땅 위에 열리는 무덤 이미지를 전경화한다. <석가탑>공연은 독자-관객에게 비어 있는 구멍으로 구별되는 눈동자 이미지를 바라보게 하면서, 불국사 설화에서부터 『무영탑』에 이르기까지 희생의 의미체계 내부에 오직 비어 있음으로 남아 있는 무덤 이미지를 존중하게 한다. 이 오페레타는 평범한 사람들이 종교, 민족, 오락 등의 의미체계로부터 벗어나는 가벼움을 경험하게 하며, 자기가 붙잡고 있던 의미들을 기꺼이 포기하고 비워짐의 세계로 이행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동아시아 문학, 새로운 패러다임과 방법론

이도흠 ( Lee Doheum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7권 0호, 2019 pp. 85-117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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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동아시아는 중심과 주변, 제국과 식민, 지배와 종속, 포섭과 배제, 억압과 해방이 뒤섞여 요동치고 있다. 그동안 유럽의 문학과 사상, 문화가 ‘중심, 보편, 우리’이고 아시아의 그것들은 ‘주변, 특수, 타자’였다. 아시아인 또한 이를 내면화하였다. 아시아 작가와 지식인에게 1차, 2차, 3차, 4차 오리엔탈리즘이 혼재한다. 이에 대립자를 내 안에 모시는 상생의 퍼지적 사유인 대대(待對)의 패러다임을 가진 제3세계의 주체들이 유럽중심주의와 중화주의는 물론, 기존의 사회경제적 토대, 텍스트와 담론을 해체하고 탈영토화하며 세계체제(world system) 자체를 혁신하여야 한다. 아시아와 유럽은 서로 거울이자 타자다. 동아시아는 서양의 모방과 저항의 과정에서 고정된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이에 동일성에서 차이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타자와 공감하고 환대/연대하는 타자성(alterity)을 획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동아시아 문학은 국민국가 체제와 민족주의에 균열을 내고 중심-파워엘리트, 남성, 다수민족-에서 주변-서발턴과 호모 사케르, 여성, 소수민족-으로 시선을 옮기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동아시아 문학작품의 비평은 실증주의, 역사주의, 맑시즘에서 벗어나 젠더, 인종, 아비투스, 이데올로기, 담론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문화론으로 이행해야 한다. 동아시아 문학은 전 지구 차원의 환경위기와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근본적으로 인간중심주의에서 포스트휴머니즘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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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쿤데라의 대표작으로 간주되는 두 편의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불멸』을 개인정체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비교하려고 한다. 이론적 준거로는, 데카르트의 '거리를 둔 자아'와 루소 이후 '낭만적 표현주의'의 자아 모델을 근대이후 유럽문화에서 쌍벽을 이루는 자아의 두 패러다임으로 규정한 철학자 찰스 테일러의 저작을 주로 참조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 테레사에게 있어 우위를 이루는 것은 낭만적 표현주의의 자아 모델이다. 자신의 유일무이한 영혼을 표현함으로써 자아실현을 이루려는 테레사의 시도는 거듭해서 장애에 부딪힌다. 그녀의 표현주의적 기획의 좌절은 영혼과 육체의 이원성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조건을 가리키는 동시에 전체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탈개인화와 무차별화에 대한 고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불멸』의 주인공 아녜스는 데카르트의 거리를 둔 자아의 모델에 가깝다. 그녀는 고립된 채 외부세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아의 본질을 탐구한다. 『불멸』에서 데카르트적인 육체기계론의 전면화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이원성과 관련된 쿤데라의 비관주의의 심화를 보여준다. 그것은 동시에 육체숭배와 자아실현을 동일시하고 개성을 육체적 특징으로 환원하는, 낭만적 표현주의 패러다임의 왜곡 현상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셀프카메라와 바디 스타일링, 성형이 보편화되고 스크린과 CCTV가 편재하는 오늘날 육체 숭배로서의 자아 숭배에 대한 쿤데라의 비판과 개인의 자율성의 위기에 대한 그의 경고는 여전히 현재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불멸』에서 자아의 우상 금지가 육체와 이미지의 물신화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도 주인공의 극단적인 내면지향성에서 자아 실체화의 위험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산불」과 「웰컴 투 동막골」의 전쟁 기억 비교ㆍ연구

조아름 ( Cho Ahreum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7권 0호, 2019 pp. 153-190 ( 총 38 pages)
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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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차범석의 「산불」(1962)과 장진의 「웰컴 투 동막골」(2002)을 작품이 창작될 당시의 전쟁에 대한 기억을 담아낸 문화적 산물로 분석하고자 한다. 「산불」과 「웰컴 투동막골」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희곡이다. 두 작품은 ‘부락(공동체)’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전쟁을 기억한다. 그러나 기억의 방식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의 단초를 제공해 주는 것이 ‘문화적 기억’이다. 모리스 알박스로부터 시작된 ‘기억 연구’의 요지는 기억이 사회적 상황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즉, 기억은 과거사실을 있는 그대로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라는 현재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아스만부부는 기억에 대한 알박스의 관점을 공유하며, 더 나아가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형식의 ‘문화적 실천’이 이러한 기억의 재구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를 ‘문화적 기억’이라고 말한다. 결국 「산불」과 「웰컴투 동막골」 ‘문화적 기억’의 관점에서 비교ㆍ연구하는 일은 첫째, 작품이 창작될 당시의 전쟁에 대한 담론을 살펴보는 일이며, 둘째, 사회와 기억의 관계, 즉 사회가 기억을 구성하는데 어떻게 역할 하는가를 밝히는 일이며, 셋째, 궁극적으로 연극이 기억을 구성하는 문화적 실천으로 기능함을 밝히는 일일 것이다.

허만하의 시론 연구 - ‘의지 세계’와 ‘미적 직관’을 중심으로

최라영 ( Choi Ra-young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7권 0호, 2019 pp. 191-225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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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藻(해조)’ 즉 ‘바닷말’은 6.25전쟁 종군 중에 바닷가에 널브러졌던 체험과 결합적으로 작용한다. 즉 ‘해조림의 기억’과 관련한 전쟁체험은 그의 시에서 ‘비극성’과 ‘허무의식’의 근원을 이룬다. 그는 ‘해조림’의 기억을 통해 인류의 역사상 존재한 많은 전쟁과 무수한 사람들의 슬픔을 관조적으로 사유한다. 그는 주로 ‘의지 세계’의 원형적 특성을 ‘물’을 주요 모티브로 하여 형상화한다. ‘의지’의 표상으로서 ‘물’은 ‘좌절을 사랑한 적 없는 정신’으로 명명되며, ‘성운처럼 소용돌이치는’ ‘물살의 의지’는 ‘싱싱한 다랑어’ 혹은 그 해역 물고기의 ‘의지’로 전이된다. 시인은 ‘의지’가 실체화되고 전이되어 자연만물이 연관되는 ‘의지세계’의 영속성을 형상화한다. 그는 자연의 ‘의지세계’ 중에서도 인간의 ‘맹목적 의지’의 위험성에 주목하면서, 궁극적으로 그것을 조망,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게서 ‘정신’은 순수직관에 의해 표상의 세계들을 조망할 수 있는 ‘인간’의 특별한 힘, 즉 ‘직관’ 혹은 ‘관조’에 의해 구현된다. 시인은 주로, ‘지층’, ‘벼랑’, ‘바다’, ‘사막’ 등, 지질학적 자연물을 중심으로 개별 생명체들의 ‘의지세계’를 조망하고 있다. 그는 풍부한 과학지식에 근거하여 그러한 자연물에 접근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자연물에 몰입하는 하나의 계기로서 작용한다. 즉 과학지식과 연관된 그의 표현들은 과학지식이 무력해지는 지점을 노출하면서, 과학적 관점을 뛰어넘는 초월적 관점 혹은 시적 관점의 의미를 실감하도록 만든다. 그럼에도 풍부한 과학지식에 근거한 그의 상상력은 관조하는 자연물이 그 역사 속에서 어떤 생태와 변천을 겪어왔는지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한다. 통시간적 상상에 의해 의지세계를 조망하는 것은 시인의 주요한 시적 원리이다. 그는 만물과 인류의 먼 과거와 미래, ‘거대한 역사’의 장면을 자유롭게 오간다. 그가 ‘해조의 기억’으로 표상되는, ‘전란의 체험’을 극복하는 방식 또한 통시간적인 ‘의지세계’의 조망과 관련을 지닌다. 시인은 자연의 생명체들의 ‘최후’ 이후에도 맹목적으로 영속하는 의지세계를 직관한다. 이 점에서 쇼펜하우어와 공통점을 지니지만, 그는 자연생명체의 ‘최후’에서 의지의 심연을 체험하고 그 순수성과 신비함을 초점화하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그의 ‘미적직관’의 형상화에서 의지세계들의 갈등은 그것의 순수성과 유기성을 조망하는 배후에서 희미하게 드러난다. 시인은 개별의지의 일시적 망각을 넘어, 만물의 의지세계와의 합일을 경유하면서 떠오른 ‘이념’의 세계를 예술의 언어로 빚어낸다. 그가 ‘은백색 빗줄기와 번개의 섬광’ 속에서 ‘수직으로 서 있는 눈부신 벼랑’을 말할 때, 그 자신도 ‘벼랑’이 되어 ‘수직으로 서 있’으며 ‘눈부신’ 존재가 된다. ‘낯선 천체 위에서 꽃들은 바람도 없이 온몸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란 구절은 순수주관에 의한 ‘이념’의 신비한 세계를 가리킨다. 그것은 ‘바람도 없이’ ‘온 몸을 흔드’는 것 곧 ‘근거율’을 초월하여 그 자체로 존재하며 영속적으로 이어지는 세계이다. 그 세계는 조화로운 표상을 얻은 ‘의지’ 세계로서 시인은 이 심미적 형상이 ‘불멸의 언어’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만물이 소멸한 뒤에도 영속적 의지세계를 추억하는 존재는 ‘인간’이며 인간의 ‘미적 직관’에서 탄생한 ‘예술의 언어’라고 말한다.

파베세의 I paesi tuoi 배경과 공간의 이미지 연구

한성철 ( Han Sungchul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7권 0호, 2019 pp. 227-247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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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으로 내성적이고 소심한 파베세(Pavese)의 성격은 문학 속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고독하고 쓸쓸하며 실존적 고뇌를 즐기는 인간형을 등장시켜 작품속의 작가의 실존을 느끼게 하여준다. 그의 문학적 지형이 잘 표출된 작품이 1941년 발표한 그의 첫 장편『당신들의 고향 I paesi tuoi』이다. 이 작품은 그의 불안정한 내면세계와 관조적인 인생의 행로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도시와 농촌의 상반적인 이미지를 대비하면서 자아를 잃고 내적불안으로 방황하는 당대인들의 내적, 외적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도시에서의 삶도 농촌에서의 삶도 당대인들의 소외와 고독 그리고 내적 불안을 치유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성보다는 감성, 이성적 에세이 보다는 로맨스, 냉정한 판단보다는 충동적 광기 그리고 희극 보다는 비극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이 내러티브는 계절적 배경인 여름과 어우러지며 작품의 의미를 한층 부각시킨다. 이 작품은 도시에서 농촌이라는 공간이동과 이미지 이동 그리고 공간과 이미지의 변화에 따른 등장인물들의 특징들이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는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주체와 타자의 문제, 농촌과 도시의 이미지, 도시인과 농촌사람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 등, 후기 산업사회에서 인간이 갖게 되는 내적 불안을 작가의 슬픈 목소리로 표현해 내고 있다. 작품의 비극적 결말은 10년 후 그의 비극적 죽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작품을 비롯 파베세의 거의 모든 작품 속 이야기의 배경은 뜨거운 여름이다. 공간도 역시 농촌이 대부분이다. 무더운 여름과 농촌이라는 배경은 그의 작품의 테마와 비극적 결말을 은연중에 예고하는 코드이기도 하다.

음악과 시: 월래스 스티븐스의「The Man with the Blue Guitar」에 드러난 음경(音景) 연구

한지희 ( Jihee Ha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7권 0호, 2019 pp. 249-276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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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래스 스티븐스는 꽤 많은 시에서 청각 요소들을 사용하여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유의 장을 마련하곤 한다. 비평가들 역시 그러한 점에 주목하며 그의 음경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비평을 읽어보면 그들은 오히려 청각보다는 시각적 상징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스티븐스가 구축하는 음경을 일종의 비유로서만 취급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스티븐스가 모더니즘과 청각 상징주의 논의에서 빠져있다는 필레이스의 주장에 공감하며, 「The Man with the Blue Guitar」에 구현된 음경을 동양의 무위자연의 미학적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특히, 33개의 연작시로 구성된 이 시에서 그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소음’들은 1930년대 미국사회의 인종적, 계층적 갈등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데, 그러한 사회적 갈등의 소음은 지배계층에게는 보이지 않는 현실을 담고 있는 것이자, 동시에, 하층계급에게는 너무나 현실적인 삶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재와 존재의 역학은 동양의 사유에서 ‘무’의 개념에 해당하는 바, 이 논문은 스티븐스의 동양적 관념이 오카쿠라 카쿠조의 영향에서 연원한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이 논문은 스티븐스의 소리 미학과 동양의 미학 사이의 상응관계를 설명하며, 현대 미국의 노래를 연주하는 스티븐스의 시적 감수성에 배어 있는 동양적 요소를 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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