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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철학검색

EPOCH AND PHILOSOPHY(A Semiannually Journal of Philosophical Thought in Korea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7-280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4권 2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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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개화기부터 한국 전쟁 휴전(1953)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서양의 고대철학에 대한 연구와 번역현황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번역의 측면에서 우리가 서양의 고대철학을 받아들인 일정한 흐름을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서양 고대 철학에 대한 연구와 번역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개화 이전에 조선에서 발전해 있던 종교·철학계에서 외래의 철학사상에 대한 반향으로 이루어진 연구물들이다. 다른 한 쪽 흐름은 서양의 철학과 종교 및 문화를 근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발판을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하는 계몽의 수준에서 이루어진 연구와 번역의 흐름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양의 고대철학을 본격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책은 이인재의 『희랍고대철학교변』(1912)은 앞의 흐름에 속한다. 그러나 이 흐름은 각종 소개서를 토대로 한 연구에 그치고 번역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반면에 계몽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흐름은 번역으로 이어진다. 최초의 서양고대철학 고전 번역인 류형기의 플라톤의 대화편들 번역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번역들은 완역도 아니고 원전 번역이 아닌 영어본을 모본으로 한 중역본이라는 한계가 있다. 성제대의 설립으로 본격적으로 서양 학문을 흡수한 세대에 의해서 비로소 희랍 원전 번역은 이루어진다. 신남철의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어 번역』은 철학자의 사상을 그 원전으로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역자의 생각이 관철된 결과물이다. 그의 번역은 이 전의 계몽 수준의 번역과는 달리 학술 번역의 기본 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불충분한 희랍어 능력, 고대 철학에 대한 부족한 이해 등으로 충분한 번역이 되지는 못했다. 결론적으로 개화에서 1953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서양 고대철학에 대한 연구와 번역 실적은 미미하다. 일제 강점이라는 혹독한 현실하에서 지식인들은 배우기에 장구한 시간이 걸리고 현실을 우회해야 하고 고답적으로 보이는 고전 연구에 매달리기에는 기막힌 현실이 너무 급박했던 탓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과 맞물려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일본어 번역과 연구물이 고전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감소시켰으리라 보인다. 그러나 결국 일본어를 통한 서양고대철학의 접근은 해방 이후 학문어의 단절을 가져와 파행적인 연구방식과 번역문화를 낳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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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 철학은 주제의 성격상 종교적 관심사 속에서 근대 한국에 유입되었으며, 종파별로도 다른 경향을 보인다. 가톨릭은 주로 프랑스인과의 접촉을 통해, 개신교는 대개 미국인과의 접촉을 통해 기독교와 서양 중세 철학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번역의 상황은 서양 철학의 다른 분야에 비하더라도 아주 열악한 것이 사실 이다. 1953년까지는 라틴어 원전 번역은커녕 아우구스티누스의 Confessiones에 대한 중역본 1종만이 있을 뿐이고, 게다가 중세 철학과 관련된 문헌도 드문 편이다. 개신교 쪽의 잡지들에 실린 글들은 일반적인 소갯글에 지나지 않으며, 가톨릭 계통의 잡지 가운데는 덕원신학교의 교지 ≪신우≫가 스콜라 철학을 다루는 몇 편의 중요한 글을 남기고 있다. 번역본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번역어를 추적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 중에서 1891년 파리외방전교회가 발간한 ≪羅鮮小辭典≫과 1936년 윤을수 신부가 편찬한 ≪羅鮮字典≫을 보면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전자는 한자 표기를 전혀 하고 있지 않으며 순한글의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데 반해, 후자는 한자어에 대해서는 모두 한문 표기를 하고 있고 순한글 표기가 가능한 낱말에 대해서까지도 한자어를 선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한자어는 거의 모두가 당시의 일본 문화권의 용어 사용법과 일치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한국이 일제에 편입되면서 주체적 번역의 가능성이 소실되고 말았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원전 번역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일제의 영향권에 귀속되어 있었다는 것은 서양 중세 철학에 대한 수용 과정이 순탄치 못했음을 보여주는데, 내부적으로는 성경무오설과 같은 개신교의 보수주의적 신학과 가톨릭 쪽의 교제주의(敎制主 義)가 번역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켰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서양 철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한 당시의 한국 철학도들은 서양 중세 철학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를 견지했고, 이 때문에 중세 철학에 대한 번역의 동기가 학계에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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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전의 번역 수용사를 다룬다. 마르크스주의 철학 및 꼬뮤니즘 운동의 탄생지ㆍ성장지가 근대 유럽사회였던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식민지 근대 하의 조선인들에게 외래사상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서양에서 발원 된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식민 피지배 상황에 놓여 있었던 우리 근대 사회의 공론영역에 수용되었다. 외래사상 수용의 경우, 번역물에 대한 독서가 공론 영역에 서 이루어지고 여론 또한 거기서 형성되었다. 바로 그 점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의 수용사에 대한 연구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전에 대한 번역 작업을 탐색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번역은 외래사상의 일방적인 수용 과정이 아니다. 번역은 사람들 사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되물을 가능성, 그리고 같은 텍스트에 대해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작업이다. 번역은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접촉 행위이다. 그 접촉은 전 통을 변화시킨다. 이 점은 번역어 형성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이 수입 번역한 외래어를 우리가 또 다시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흔적이 우리글 번역어에 배어 있다. 하지만 번역은 의미의 풍부화여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의 경우 우리가 수입한 일역어는 우리 근대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고 역사적 실정성을 구성했다. 그렇지만 번역어 탄생시부터 일역어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이 우리글 번역어에도 고스란히 이전된 식민 잔재의 흔적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식민 잔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번역어에 남아 있는 식민 잔재의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관점을 견지하면서 연구한 이 논문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철학사 상 원전에 대한 우리말 번역 실상을 조사ㆍ검토하며, 누가 어떤 동기로 원전을 번역했는 지, 번역 대본으로 무엇을 사용했는지, 시기별 번역된 원전의 내용과 우리의 시대 상황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중심으로 원전 번역의 동기, 번역 수용의 경로, 번역의 시기적 특징, 번역과 시대 상황의 관계, 그리고 번역이 미친 영향력 범위를 검토하고자 했다. 이 검토 작업은, 수입된 외래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 원전에 대한 번역 수용이 식민 피지배 상황의 우리 근대인에게 어떤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고 어떤 신조어를 발생시켰는지, 이 같은 사회적 상상력과 신조어 형성이 우리의 식민지 근대에 어떤 문화적 코드를 부여하면서 우리의 근대를 어떻게 재구성하였는지, 마르크스주의가 우리의 민족 문화 기획과 근대 사회과학 및 사회ㆍ역사철학의 형성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으며 우리 근대성의 구성요소로서 어떻게 소화되었는지, 또 마르크스주의 번역 수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문제점이었는지에 관한 물음의 대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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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독일근현대철학을 연구하고 번역하는 과정과 그 결과에서 나타난 연구와 번역 그 자체의 특성을 밝히는 것이 1차 목표이다. 그래서 우선 일제하에서 1950년대 초까지 연구되고 번역된 자료들을 철학사상가와 철학유파별로 그리고 주제별로 통계적으로 정리하였다. 그런데 독일근현대철학의 유입과 수용은 포괄적으로 볼 때 어쩔 수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소개)와 번역을 통한 독일근현대철학의 수용은 사상적으로 어느 정도 시대적 유효성을 지녔고, 이것은 독일근현대철학이 우리의 근대성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경우 여전히 서구의 근대적 합리성이라는 이름하에 무조건 우리의 근대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제기될 수 있다. 그리고 자료에 근거하여 각 시기별 철학적 담론의 유형과 내용을 추출함으로써 ‘독일근현대철학의 연구와 번역’의 동향과 특징을 논의하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근현대철학의 한국적 수용 태도와 문제의식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수용과 번역의 경로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경로는 연구와 번역에서 어떤 문제를 발생시키며, 식민지 근대성과 어떻게 연관되고 또 극복되는가를 밝히기 위한 역사적 사실적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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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철학 원전 번역으로 본 우리의 근현대"이라는 전체 연구 주제의 한 토막으로서, 1953년 이전의 프랑스 철학 연구/번역을 다루고 있다. 한국 현대 철학의 요람기로서 1930년대가 지목되거니와, 프랑스 철학의 연구 역시 이 시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비중이 작으며 데카르트, 계몽사상, 베르그송 등이 다소 산발적으로 연구되었다. 프랑스 철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며, 1990년대에 갑작스럽게 증폭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30년대에는 각천, 철아, 이종우, 안호상, 이관용, 김문집, 옥천생, 류형기 등이 연구 논문들을 남기고 있고, 데카르트와 베르그송의 책이 번역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일제하라는 맥락에서 철학적 문제의식이 강렬하고, 또 해방후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유물론적 분위기가 강하다. 이 글은 두 편으로 이루어진 논문의 전반부이며, 한국에서의 프랑스 철학의 연구/번역이 가지는 의미는 두번째 논문에서 다룰 예정이다.

특집 : 철학원전 번역을 통해 본 우리의 근현대 - 개화기부터 1953년 이전까지 ; 50년대까지 영미철학의 수용과 용어의 번역

황필홍 ( Hwang Pil Hong ) , 이병수 ( Lee Byeong Su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4권 2호, 2003 pp. 147-170 ( 총 24 pages)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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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고전경험론과 분석철학, 실용주의를 포함하는 영미철학이 이 땅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부터다. 그 전까지 영미철학은 독일철학과 구분되는 철학적 사조로서 주목받지 못했다. 이 글은 50년대까지 영미철학적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철학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철학적 입장과 그들이 사용한 주요 철학용어를 고찰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 글에서 다룬 철학자는 한치진, 박종홍, 김준섭이다. 초창기 철학자들이 일본어 번역에 의존하여 서양철학적 개념을 이해했다는 사실은 번역 과정에서 야기될 수밖에 없는 서양철학적 개념어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사상적 고투가 그들에게 생략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화와 철학적 사유의 초기 상황의 제약아래서도, 초창기 철학자들은 자신이 설정한 철학적 과제와 밀접한 철학적 개념어에 관한 한, 분명한 자각을 가지고 있었다. 초창기 철학자들은 일본어 번역에 의지하여 철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 주체적 번역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 후 실용주의, 과학철학과 기호논리학 등 영미철학 관련 용어가 철학자마다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는데, 이는 번역되는 철학사상이 완전히 소화되지 못한 초기적 단계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음과 동시에 해방 이후 서양철학과 직접 접하면서 나름대로 적합한 번역어를 모색한 노력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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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7,8세기에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들의 한문 저술들이 조선후기 새로운 학문을 추구한 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 문화사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다루었다. 논문의 구성은 한문서학서의 형성과 조선에 전래되는 과정, 그리고 구체적으로 수용된 사례들을 다루었다. 결론적으로 예수회 선교사들의 한문서학서는 조선 후기 새로운 학문을 추구한 학자군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수용되었으며, 정치 경제적 영역의 실제적 관심이기보다 문화적 지적 관심으로서 새로운 학문 방법과 다른 문화전통에 대한 개방적 이해의 태도로 평가되었다. 한문서학서를 계기로 전통적 세계관의 중요 주제인 오행설에 대한 논증적 비판이 제기되었고, 지구설이나 지전설, 새로운 과학 용어의 형성이 있었음을 밝혔다. 한문서학서에 접근하는 태도는 시기별, 학자별로 차이를 보이지만 실학자로 분류되던 새로운 학문 추구의 의지를 가진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적극적 관심을 보였고, 그 기본적 태도는 주체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지식을 흡수 하는 형식이었다고 정리하였다.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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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기 유가 철학 원전에 대한 번역은 이이가 언해한 『사서율곡언해』와 왕명에 의해 鄭逑, 崔永慶, 韓百謙, 鄭介淸, 鄭澈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간행된 관찬본 『사서언해』 및 『삼경언해』가 있다. 이들 전통시기의 언해는 모두 한문으로 된 본문 뒤에 각각 언해를 붙이고 각 한자에는 모두 음을 붙여 놓았지만 본격적인 의미의 번역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경전으로서의 권위를 중시하는 학자들에 의한 언해로 사대부들의 유교문헌 학습의 수단이 될지언정, 다수 대중을 위한 계몽의 수단이 될 수는 없었다. 대한제국 말기 및 일제강점기의 유가철학 원전 번역은 『소년논어』와 『유교경전언역총서』, 『言解四書』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번역은 단연코 『소년논어』로 다음과 같은 번역사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원전숭배주의를 극복했다는 점이다. 『소년논어』는 원문의 내용을 우리말로 옮기는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의미와 맥락을 따라 내용을 변형하기도 했는데 이는 원문의 신성성을 떨쳐버리고 주체적인 의미의 번역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둘째, 『소년논어』는 단순히 한문문자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삶의 문맥을 활용하여 번역했는데, 논어의 내용 대부분이 삶의 무게가 실린 생활훈이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번역은 시대를 넘어 삶을 꿰뚫는 통찰이 엿보인다. 셋째, 『소년논어』는 대중어를 이용하여 번역했다는 점에서 깜짝 놀랄만큼 생동감이 뛰어나다. 『소년논어』는 원문의 난해함을 실제 당시의 대중들이 즐겨 썼을 법한 용어로 치환하여 번역했기 때문이다. 넷째, 『소년논어』는 계몽의 차원을 넘어서 독자를 대화의 상대로 동등하게 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전적 권위를 벗어던지고 다수대중의 삶을 존중하는 근대적 가치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두 종류의 번역서는 여전히 전통적 방식을 답습하는데 그쳤지만 최남선만은 유가철학 원전의 대표격인 논어 번역을 통해 전통적 가치를 근대적 상황에 맞추는 가치전환을 시도 했으며, 그 결과물이 『소년논어』이다. 『소년논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가철학 원전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번역이라고 할 만 하다.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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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은 1920년대에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시작했고, 근대적 방식에 의해 동양철학이 연구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1910년부터 1949년까지는 도가 및 제자철학에 대한 전문 주석(해설)서나 번역서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논문이나 평론 등을 통해 도가 및 제자철학에 대한 당시 지식인들의 태도나 관점을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시기의 도가 및 제자철학에 대한 관점은 주체적 해석론, 동서 절충론, 전면 부정론 등 세 가지 틀로 정리될 수 있다. 주체적 해석론자들은 동양철학 혹은 제자 철학이 서양에 뒤질 게 없다거나 심지어는 서양철학 사상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에 바탕하여 서양 철학이나 문화를 비판한다. 동서 절충론자들은 동서양의 문화적 특징을 부각시키면서 양자의 조화 가능성을 모색하거나, 서양의 특정 사조의 사유 형태가 동양에서도 발견된다고 논증함으로써 그것이 인류 사상사의 보편적 사조임을 주장한다. 전면 부정론자들은 동양문화 혹은 노장 사상의 열등성을 입증하는 데 골몰하지만 상당 부분 오해와 몰이해를 드러낸다. 1950년대 초에 이르러 서경보와 김운주에 의해 『노자』 주석(해설)서가 출판되고, 50년대 후반에는 신현중과 유영모에 의해 『노자』가 번역된다. 두 종의 『노자』 주석(해설)서는 모두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도가 및 제자철학과 관련된 현존하는 최고의 번역서라고 할 수 있는 신현중의 『국역노자』는 요즘 나오는 번역서들과 비교해도 질적으로 크게 뒤지지 않지만, 유영모의 『늙은이』는 일상적 언어와는 거리가 먼 낯선 언어로 번역되었고 또 널리 보급되지도 않았다. 1950년대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노자』주석(해설)서나 번역서들은 동양철학 전문 연구자에 의해 수행된 것이 하나도 없고 또 전문 연구자를 그 독자로 상정하고 쓰여진 것이 하나도 없다. 근대적 방법에 의해 동양철학이 연구되기 시작한 뒤 30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 도가 및 제자 철학 원전이 단 한 권도 번역되지 않았던 주요 원인은 전문 연구자나 지식인들이 한문 을 외국어로 생각하지 않았던 데 있고, 다른 한 원인은 당시의 독서ㆍ출판 시장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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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학은 송명대 발생하여 근대이전사회까지 한ㆍ중ㆍ일 삼국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였던 철학이자 지배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근대화과정에서 특히 근대화=서구화의 도식 속에서 신유학은 봉건잔재, 봉건이데올로기로 치부되면서 동아시아의 정신세계로부터 배척당하였다. 이는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주자학의 일방 독주에 대한 반성이자 반발 이었다. 이들은 당대 문제를 양명학의 실천적 요소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고, 이를 시대적 요구로 받아들였다. 이 연구는 50년대 중반이전의 신유학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경향과 원전번역에 나타 난 특징을 다루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번역서가 거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다. 따라서 당시 연구자들의 연구물에 나타난 원전 번역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해 둔다. 당시 연구 자료와 번역서들이 비록 편린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 취급된 번역어를 통 해서 근대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아쉬운 것은 온전한 번역서가 없다는 것도 있지만, 번역어조차도 국한문혼용체이기 때문에 순전한 번역어라고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그들이 원전을 이해하는데 사용한 개념들을 하나의 번역어로 간주할 수 있다 면 이 연구의 주제에 상치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본 연구는 1900년도부터 1950년대까지를 범위로 삼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민족적 대격변과 근대화의 시점을 염두한 것이다. 1950년대 중반이전과 이후는 근현대의 분기점으로 볼 수 있다. 이 연구논문에 먼저 근대화 시기의 번역문제 를 다루고, 나머지는 2차년도 과제로 남겨둔다. 둘째, 1960년대부터는 완역서는 아니더라도 번역본들이 출판되고 있다. 번역서 없는 시절의 신유학에 대한 태도와 번역서 있는 시절의 신유학에 대한 태도는 분명 다를 것이다.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라도 시기를 1950년대 중반으로 잡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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