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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철학검색

EPOCH AND PHILOSOPHY(A Semiannually Journal of Philosophical Thought in Korea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7-280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8권 1호 (2007)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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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은 인간의 지각 체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시각에 준 영향은 매우 크다. 인간은 다양한 시각 장치들을 발전시켜왔으며, 이러한 시각 장치들도 시각 체계를 확장시키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 발전은 간접적으로 시각 체계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일찍이 벤야민은 기술 발전이 시각 세계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으며, 그 이후 비릴리오 또한 이러한 주제를 연구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 두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기술 발전이 시각 체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 둘은 이론적으로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에 대한 평가에서는 근본적으로 입장을 달리 한다. 따라서 벤야민과 비릴리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현대 기술 문화에 대한 다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바로 이점을 밝히는 것이 본 논문의 주된 내용이다.

주변의 의미와 잠재성 -몸과 타자의 문제-

문성원 ( Sung Won Moon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1호, 2007 pp. 41-64 ( 총 24 pages)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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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주변의 긍정성을 다룬다. 여기서는 이 긍정성을 중심을 지향하는 주변이나 중심-주변 구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바깥 또는 타자와 맺는 관계에서 찾고자 한다. 즉 주변의 긍정성은 주어진 체제의 경계로서의 주변의 특성에 있으며, 이 특성의 요체는 바깥과 타자를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새로움을 수용하는데 있다는 것이 본 논문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먼저 중심 지향적 주변을 내세우는 관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바깥을 지향하는 시선이 지니는 한계를 논의한다. 이때 주요한 전거가 되는 것은 데리다의 견지를 원용하는 스피박의 견해이다. 이어서 이 논문은 우리의 제한된 시야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어떻게 주변으로서의 몸에 주목하게 되는가를 해명한다. 메를로-퐁티나 들뢰즈 등이 몸에 주목하는 중요한 이유가 의식에 의한 바깥의 동화와 지배를 넘어서는 바깥을 향한 개방에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 논문이 중심-주변의 구도를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로 제시하는 것은 레비나스의 타자 중심의 윤리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견지 역시 또 하나의 지배적 사고방식이 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주변성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아나키즘의 윤리관과 전통 윤리관의 만남 및 변용 -한국 근대의 경험을 중심으로-

김갑수 ( Kab Sou Kim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1호, 2007 pp. 65-110 ( 총 46 pages)
8,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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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은 조선왕조의 지배이념이었던 성리학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아나키스트 이론가들은 먼저 성리학을 전통적 윤리이념에서 분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의 눈에 성리학은 조선을 망하게 한 망국의 윤리체계이고, 주체성을 망각한 사대주의적 윤리체계이고, 민중에게 수동적 복종만을 강요하는 노예적 윤리체계로 비쳐졌다. 그들은 성리학을 전통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고 우리 고유의 사상적·윤리적 체계를 그 자리에 앉혔다. 근대 초기부터 해방 전후의 시기까지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아나키스트로는 이회영, 신채호, 정화암, 이을규, 유림, 박열, 이정규, 하기락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전통 윤리관과 관련된 글을 저술이나 논문 혹은 논설의 형태로 남긴 사람으로는 신채호와 하기락이 대표적이고, 그 밖에 이정규가 있다. 신채호는 유교 윤리사상의 부정적 측면 중 유약, 복종 등 노예적 도덕을 비판하면서 저항적이고 혁명적인 윤리를 적극 주장하였다. 그는 특히 우리 고유의 낭가사상 속에서 새로운 윤리 이념을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한국 아나키스트 운동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그의 『조선혁명선언』의 핵심은 민중 혁명에 있다. 신채호는 오직 민중의 자각과 혁명만이 우리 민족을 식민 상태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었다. 그는 복종과 노예의 도덕을 택하여 착취당하는 빈민으로 살거나 반항과 혁명의 도덕을 택하여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되거나 하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그 결과는 오직 민중 자신의 자각과 선택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아나키스트 활동가 고순흠과 박열은 도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순흠은 자신의 아나키즘 사상의 연원을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이 아닌 노장에서 찾았다. 고순흠이나 박열 등이 노장과 아나키즘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거나 양자의 융합을 꾀하려 했던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아나키즘과 도가 사상과의 관계나 그들의 도가 사상에 대한 이해의 정도 등 구체적 내용을 말해주는 자료는 아직 없다. 이정규는 성리학의 반민주성, 사대주의성, 허례허식 등을 비판하면서도 원시 유교의 윤리 정신은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는 공자나 맹자 등 원시 유교의 윤리 정신을 아나키즘적으로 해석·수용하려고 하였다. 하기락 역시 앞의 신채호나 이정규 등과 같이 전통적인 성리학적 윤리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었다. 하기락에게 있어 주자학은 신분·등급질서를 정당화하고 고착화시키기 위한 이론적 근거였다. 그것은 정복자, 수탈자의 윤리이지 농민, 피수탈자의 윤리는 아니었다. 하기락은 지배 집단에 대항하는 힘과 전통이 우리 고유의 전통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본 것이고 그것을 아나키즘적 정신의 표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조선 시대의 주자학 혹은 성리학은 우리의 전통사상이 아니라 지배계층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 잠시 빌려온 것일 뿐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아나키스트들은 식민적 상황으로부터의 해방에 필요한 윤리적 지도 이념을 저항과 투쟁으로 보았고 그 주체는 민중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우리 고유 사상 속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모든 아나키스트 이론가들이 성리학을 부정하였지만, 공자나 맹자 등 원시 유교의 윤리 규범의 어떤 부분은 아나키즘 속에 적극 수용되기도 했다. 아나키스트 이론가가 많지는 않지만 그들 대부분이 전통적 윤리관에 대한 아나키즘적 설명으로부터 출발점을 삼은 것은 크게 주목하여야 할 점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에 대한 포퍼와 하이데거 사상의 비교연구

박찬국 ( Chan Kook Park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1호, 2007 pp. 111-140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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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와 포퍼는 20세기의 사상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철학자들이면서도 이들의 사상은 거의 모든 점에서 철저한 대립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이데거가 현대를 존재망각이 극에 달한 시대로 파악했다면, 포퍼는 2차 대전 이후의 현대세계를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세계 중에서 가장 좋은 세계로 평가했다. 하이데거가 과학이 아니라 예술과 시적인 사유가 존재자의 진리를 가장 드러낼 수 있다고 보았다면, 포퍼는 과학이야말로 존재자의 진리를 가장 드러내 준다고 보고 있다. 하이데거가 존재의 진리가 새롭게 개시됨으로써만 현대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면, 포퍼는 과학적인 분석과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열린 대화에 입각한 점진적 사회 개혁을 통해서만 현대사회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본 연구는 하이데거와 포퍼에서 보이는 이러한 차이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에 대한 양자의 견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본다. 포퍼는 자연철학자들의 자연학설에서 근대의 보다 발전된 자연학설의 씨앗을 보면서 근대의 자연학설은 자연철학자들의 초보적이지만 대담한 자연학설이 발전되어 나온 것으로 본다. 이에 반해 하이데거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이 근대 과학과는 전혀 다른 자연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과 근대과학은 동일한 지평에서 비교될 수 없다고 본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과 관련해서 양자 사이에 보이는 이러한 견해 차이에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역사와 같은 철학적인 주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가 근저에 깔려 있다. 본 연구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에 대한 양자의 견해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두 사상가 각각의 통찰과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양자 간의 생산적인 대화를 매개하려고 한다.

주희의 태극(太極) 황극론(皇極論) 연구 -육구연(陸九淵), 엽적(葉適)과 비교를 통해서-

조남호 ( Nam Ho Cho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1호, 2007 pp. 141-170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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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의 사상계는 크게 주희와 육구연, 그리고 엽적이 삼분하였다.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철학체계를 완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주희가 보기에 육구연과 엽적은 부분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육구연은 본성과 마음을 일치시키고자 하였지만, 대상과 그것과의 관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주희는 이들과 태극론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무극과 태극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곧 대상의 리를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구연이 마음에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엽적은 대상의 리를 강조한다. 주희가 보기에 엽적의 이런 생각은 단지 객관적인 추세 또는 법칙만을 추구하고 개체의 마음의 문제를 중요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희에게서 개체의 마음과 대상의 법칙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상의 법칙을 탐구하지 않는다면 주관적인 사고에 빠지지만, 대상의 법칙의 효율성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공리적인 사고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육구연은 본성과 마음의 문제를 중시하고 마음의 밖의 리를 탐구하는격물문제나 남과 관계를 맺는 충서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반면에 엽적은 마음의 밖의 리를 즉 탐구하는 문제에만 관심을 쏟고, 충서도 내면적인 것에 치우쳐 있다고 함으로써 평가절하한다. 이러한 사고는 대상 또는 남과의 관계를 맺는 주관의 역할을 등한시하게 된다. 주희는 마음과 대상(타인), 그리고 태극을 체계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희는 태극을 선험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부론속에서 드러난 것으로 설명하는 점에서 다른 두 사람보다 체계적인 철학을 완성할 수 있었다.

기술(技術)의 본질과 오인(誤認)의 원천들

박영균 ( Young Kyun Park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1호, 2007 pp. 171-204 ( 총 34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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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술의 충돌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책들이 무수하게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 그 자체의 본성을 다룬 책들은 거의 없다. 이것은 ``기술과 철학``일 뿐 ``기술 철학``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기술을 ``적용된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다. 그러나 이런 망각된 기술은 배경 또는 기술적 환경 그 자체가 되어 버린 현대 기술들로부터 야기된 효과이다. 이런 기술들은 ``부재하는 현존``이다. 돈 아이디에 따르면 인간과 기술이 맺고 있는 관계는 체현관계, 해석학적 관계, 배경관계와 같은 3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런 3가지 유형의 분석에서 기술 그 자체의 구조와 본질이 나타난다. 기술의 3가지 유형 안에 있는 기술의 본질적 구조는 ``본질적인 확장-축소의 구조이며 기술 그 자체의 본질은 "도구적 지향성"이다. 기술에 대한 유토피아/디스토피아적 대립과 낭만주의는 인간-기술 관계가 지닌 확장/축소라는 기술의 본질적 구조가 발휘하는 효과이다. 기술의 본질에 대한 도구론과 실체론의 대립은 기술의 도구적 지향성에 대한 오인이 낳은 효과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오인들의 원천을 밝힘으로써 기술 개발과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사회결정론과 기술결정론 사이의 논쟁들이 잘못된 인식이라는 점, 그리고 ``도구적 지향성``에 근거한 사회결정론을 통해서만 기술 철학적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자기기만의 진화론적 해석

최종덕 ( Jong Duck Choi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1호, 2007 pp. 205-233 ( 총 29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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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자기기만은 외부적으로는 비록 가상적이지만, 자아 내부로는 자기 자신에게 매우 실제적이며 사실적으로 여겨지므로 고도의 내적 일관성이 유지된다. 결국 자기기만을 통하여 상대에게 의도된 자기를 표출하는 효율성 또한 높아진다. 인간사회에서 행태적 꾸밈 현상은 도덕적 다원화 현상을 수반한다. 그래야만 자기표출의 성공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적절한 행태적 꾸밈현상은 불특정 상대로 하여금 당장의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하기보다는 미래의 희망적인 이익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산출하는 기능을 제공 한다. 나를 꾸미는 모종의 기만은 친구의 적군을 나의 적군으로 여겨주며, 친구의 우군을 나의 우군으로 여겨줌으로써 친구와 공감대 형성을 확대한다. 나아가 상대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적군의 친구를 적군으로 만들며, 우군의 친구를 우군으로 만드는 확장된 생물학적 생존기술을 지향한다. 더 나아가 고급의 행태기만은 대의적 명분과 집단적 책무성을 강조함으로써 불특정 다수의 자발적 동조를 형성하려는 행태유형을 제공한다. 완벽하고 이상적인ideal 자기기만의 상황은 자기가 기만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이상조건일 때만 가능하며, 실제의 인간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만 비교적 성공적이거나 효율이 높은 자기기만인 경우, 그것이 아무리 성공적이라고 해도 자신의 기만적 행위를 인지하는 것이 상례이다. 문제는 자기기만을 자기가 인지하고 있는 경우라도,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게 자기기만으로 유도하는 행위는 진화생물학적 적응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환경적 영향에도 크게 기인한다. 이에 대한 다양한 진화론적 논거를 제시한다.

유물론에 관한 그람시의 견해

이순웅 ( Soon Woong Lee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1호, 2007 pp. 235-266 ( 총 32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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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는 관념론자는 아니지만 관념의 힘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우위를 주장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교조화된 정통 유물론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관점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맑스, 엥겔스, 레닌 등의 저작을 재구성함으로써 ``실천철학``으로서의 맑스주의를 강조한다. 그람시에게 실천철학은 맑스주의를 의미하기도 하고 맑스주의는 실천철학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천철학이라는 말은 당시의 맑스주의자들에 의해서 주장된 정통 맑스주의와 그람시의 맑스주의를 구별하는 핵심적 요소이기도 하다. 그람시에 따르면 맑스주의의 독창성은 유물론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실천 철학의 주요한 적이 관념론인 것도 아니다. 그람시는 자신의 맑스주의를 구축하기 위해 관념론과 유물론, 토대와 상부구조, 이론과 실천 등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과 같은 정통 맑스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변증법적 유물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위와 같은 이분법의 거부가 역사적 블록 개념과 관계되는 것이고 이 개념을 통해 드러나는 맑스주의가 절대적 역사주의, 절대적 인간주의로서의 실천철학이다. 그람시는 토대와 상부구조를 역사적 블록으로 보면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인간에 주목한다. 이러한 절대적 역사주의에는 헤겔의 변증법과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환원론에 대한 거부가 들어있다. 그리고 환원론 거부는 구조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블록`` 개념을 보지 못하면 ``실천의 철학``과 ``철학의 실천``을 구별하지 못할 수도 있다.

변증법 비판으로 독해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이성백 ( Seong Paik Lee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1호, 2007 pp. 267-296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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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는 그에 의해 독창적으로 해석된 니체 철학을 통해 좌파의 철학적 패러다임의 지위를 누려온 헤겔의 변증법을 전복하고자 시도한다. 90년대에 들어서서 한국의 좌파 철학은 위기에 처해 있다.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헤겔의 변증법과 맑스주의 철학이 좌파 철학을 대표하였으나, 현실 변화에 불감증이 걸려 있지 않다면 이제 더 이상 변증법이나 역사유물론이 현실을 충분하게 해석해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새로운 좌파의 철학이 나와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들뢰즈는 대립,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부정의 부정 등 변증법의 핵심 개념들을 해부해 들어가면서, 변증법의 근본적인 한계들을 비판하고 있다. (1) 대립이 아니라, 차이가 사물의 근원적인 존재방식이며, 대립은 차이로부터 파생된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대립을 근본으로 삼아온 변증법은 차이를 사유하는 데에 무능하다. 변증법은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부정적인 관계로만 파악하고 있다. 차이의 긍정이 사물들 사이의 긍정적인 관계를 개념화한다. (2)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노예해방의 원리를 충분히 개념화 하고 있지 못하다. 주노 변증법의 상호인정은 인격들 간의 대등한 상호존중을 논하고 있으나, 이는 단지 반응적 힘의 보편화에 불과하다. 진정한 노예 해방은 인격들 간의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상호 대등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개인들의 적극적 힘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것을 인정하는 적극적 인정이어야 한다. (3) 변증법의 부정의 부정은 현존의 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허위 긍정에 불과하다. 변증법은 현존을 비하하는 허무주의의 현대적 화신이다. 참된 긍정은 오로지 현존을 긍정하는 것, 현존의 결백을 믿는 것뿐이다. 들뢰즈의 변증법 비판은 매우 통렬하며, 또한 변증법의 여러 한계를 적절하게 짚어내고 있다. 들뢰즈의 비판 이후 변증법이 어떤 형태로 재구성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변증법의 과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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