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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철학검색

EPOCH AND PHILOSOPHY(A Semiannually Journal of Philosophical Thought in Korea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7-280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8권 4호 (2007)

도구적 합리성과 도덕에 대한 비판적 검토

오재호 ( Jae Ho Oh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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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도덕과 관련한 도구적 합리성의 적절한 개념과 기준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도구적 합리성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처음 논의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활동을 하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능력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인지과학자들은 일상 생활에서 인간이 심각하고 체계적인 인지적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히면서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인간 행동이 기대만큼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은 합리성을 전제하는 여러 연구 분야의 기본 원칙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필요를 제기한다. 따라서 이 글은 인간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회의주의를 합리성을 규정하는 방식과 범위에 따라 달리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리성이 오직 효용극대화만을 의미한다면 합리성은 대부분 실패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합리성을 목적에 부합하는 판단에 대한 평가 라고 이해한다면 인지적 오류가 발견된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비합리적이 라고 결론내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합리성에 대한 획일적이고 엄격한 요구 조건들은 적절하게 수정되어야 한다. 만일 합리성이 개인의 목적 달성과 관련이 있고, 도덕을 사회적 선의 실현으로 이해할 경우 합리성은 또한 도덕의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시각 중심적 건축의 한계와 불투명성으로서의 공간

박영욱 ( Young Wook Park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4호, 2007 pp. 37-69 ( 총 33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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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은 근대적 공간 체계를 전제한다. 그러한 근대적 공간 체계는 공간이란 외부의 사물들에 대해서 독립적이고 항상 균등하고 불변적이라는 뉴턴의 절대공간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한 공간은 일상적인 체험이나 다른 감각들이 배제된 시각중심적인 기하학적 공간이다. 근대건축은 객관화할 수 없는 촉각, 후각, 청각적 요소를 가능한 배제하고 시각적인 공간만을 절대화시킴으로써 공간의 투명성을 확보한다. 루이스 설리번의 ``기능이 형태에 앞선다``는 기능주의 원칙은 시각중심적 건축의 가장 극적인 표명이며, 미스반데어로에의 보편공간이나 꼬르뷔지에의 모듈러도 이러한 공간의 패러다임을 개별건축에서 실현하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론은 공간을 사회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역사적 한계나 특수성도 벗어난 보편적인 건물을 지향하였던 미스의 시그램 빌딩이 5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오히려 낡은 퇴물로 보이는 아이러니는 바로 근대 건축의 역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핀란드의 건축가이자 건축 이론가인 유하니 팔라스마는 "오늘날 우리시대 건축과 도시의 비인간적 특성은 감각과 몸에 대한 무시, 그리고 우리 감각 체계의 불균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대의 시각 중심적 예술이나 건축은 인간의 사유나 시각을 자극하지만 세계에 뿌리박고 있다는 근원성을 창출하지 못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의 중첩으로서 현재적 존재라는 인간의 삶은 파괴된다. 소재의 면에서 볼 때도 돌, 벽돌, 나무와 같은 자연적인 재료들은 시간적 경과와 더불어 그 흔적이 미를 더한다. 하지만 유리나 도료 덮인 금속, 합성수지 등의 인공재료들은 연륜과 상치되며 과거의 흔적을 제거함으로써 더욱 빛난다. 하이데거는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에서 건축이란 거주와 동일하며 거주란 단지 어떤 건물 안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시간적인 경과와 더불어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이때 하나의 공간은 그저 보편적인 공간이 아닌 특정한 공간, 즉 장소가 되며 나의 신체와 교감하는 공간이 된다. 건축은 바로 그러한 장소를 만드는 것이며, 이 점에서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특정한 공간의 장소성을 드러내는 테크네인 것이다. 캐스턴 해리스는 건축에서 하이데거의 테크네를 물성과 관련 짓는다. 그는 건축은 특성상 어떤 사물을 단순히 재현(representation)할 수 없으며,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그때마다의 재료를 통해서 재-현(re-presentation)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 재-현의 과정은 지금까지 은폐 되었던 재료의 물성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알바 알토나 헤르조그와 드 뮈론이 물성을 강조함으로써 근대적 시각주의를 넘어선 대표적인 건축가로 평가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물성에 대한 강조는 공간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각과 맞물려있다. 공간은 시각적인 경험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감각의 대상으로서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불투명성은 힐데브란트나 로잘린드크라우스와 같은 미술이론가들이 지적하였듯이 현대 조각에서 물성의 강조로 나타난다. 그것은 대상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괴하고 근접적인 시야를 유도함으로써 대상을 촉지적으로 느끼도록 유발하는 것이다. 모더니즘 건축이 사실상 가장 불투명한 소재인 콘크리트를 사용하면서도 가장 투명한 건축이 된 이유는 건물의 구조를 기능적으로 최적화하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공간 자체가 기하학적으로 완전히 점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식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투명한 공간을 구축하려는 미스의 "더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격률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등장 이후 공간의 불투명성을 강조하는 것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공간의 불투명성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이후의 건축이 근대적 투명성을 지양하는 하나의 성공적인 건축적 패러다임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가령 건축 이론가 비들러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건축을 투명성도 불투명성도 아닌 그 중간의 상태인 반투명성(translucency)으로 규정한다. 비들러에게 반투명성이란 ``익숙한 낯설음``(uncanny)의 현대적 표현이다. 그가 보기에 렘 콜하스의 프랑스 국립 도서관 계획안에 나타나듯이 실재로 반투명한 유리 건물은 이러한 반투명성을 잘 나타낸다. 반투명한 유리는 내부의 공간을 애매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려는 외부 관찰자의 시선, 즉 그것을 보려 하는 우리 자신의 응시를 중첩시킨다. 그럼으로써 익숙하지만 어딘가는 낯선 우리들 자신의 기괴한 모습, 즉 언캐니(uncanny)한 모습을 보여

근대적 생명정치의 계보학적 계기들 -생명복제시대의 생명정치학을 위하여-

이진경 ( Jin Kyung Yi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4호, 2007 pp. 71-104 ( 총 34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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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복제시대란 생명체 자체를 대상으로 권력이 작동하는 시대다. 푸코는 생명권력 내지 생명정치의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그것이 ``인구 / 주민``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지금의 생명정치는 인구의 범위를 넘어서 생명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이 논문에서는 생명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생명정치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인간을 동물처럼 실험대상으로 삼는 수용소를 모델로 근대의 생명정치를 규정한 아감벤을 비판하면서, 생명정치의 문제는 휴머니즘을 넘어서 사유해야 함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생체실험은 수용소를 모델로 하는 게 아니라 임상의학 자체에 그 계보학적 발생계기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더불어 의학이 행정 내지 경찰적 권력과 결합하게 했던 전염병의 문제 역시 근대적 생명정치의 중요한 계기라는 점에서 그 발생지점을 다시 볼 것이다. 의학에서 발생한 이러한 권력이 생명 자체를 겨냥하게 된 것은 전염병의 문제를 세균이란 개념을 통해 실험실에서 다루게 된 파스퇴르를 통해서였다. 이 세 가지 계기를 통해 현재 작동하는 생명정치의 장을 명확히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현대화와 민족주의

최형식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4호, 2007 pp. 105-137 ( 총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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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 국가로 구성된 중국에게 있어 현대화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는 소수민족 문제 해결을 통한 민족 통합이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한족과 소수민족의 경제적 격차는 오히려 확대되었고, 소수민족문제가 변강문제와 맞물리며 모순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중국정부는 1992년 제 14대 대회에서 소수민족지구의 발전을 가속화하고, 민족단결을 더욱 강화하여 조국통일과 사회안정을 유지 옹호하는데에 민족정책의 주안점을 두기로 결정하였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민족정책은 ``다원(多元)``으로서의 56개 민족과 ``일체``로서의 중화민족의 중층구조를 지닌다. 그런데 중화민족은 현재 중국의 강역내에 거주하는 모든 중국 공민을 지칭하는 개념으로서 정의됨으로써 실제적으로 민족과 국민의 개념이 동일시되며 중화민족론은 민족통합의 핵심개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에서는 1990년대 민족주의가 대두되었으며, 이같은 민족주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론을 배경으로 애국주의와 실천과 연결되어 공산당의 주도하에 강력히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민족주의는 소수민족 뿐 아니라 해와 거주 화교의 문제까지 연결될 수밖에 없어 향후 그 추진의 수준과 전개 방향에 따라 인접국가와의 외교적 마찰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높다. 또한 중화민족 개념 자체가 ``현재 중국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고 민족의 통합을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의 강화와 함께 소수민족의 경제적 토대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요구된다.

소외 계층과 호흡하는 인문학 -경험 사례를 중심으로 실천 인문학의 가능성 모색-

우기동 ( Ki Dong Woo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8권 4호, 2007 pp. 139-168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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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민(소외계층) 인문학 교육의 실제를 경험적으로 정리한 후, 시민 인문학 교육이 갖는 의미를 통해 인문학의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시민 인문학 교육은 첫째, 상대적 박탈감 속에 체념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로 하여금 자아 존중감을 갖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일궈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 그 동안 대학이라는 제도 교육에만 매몰되어 있던 인문학의 인문정신을 사회 속에서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셋째, 대학의 연구와 교육 활동의 성과를 사회에 환원하여, 인문학의 대중화와 사회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다시 시민 인문학 교육은 대학의 연구와 교육 활동을 진작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요컨대 시민과 호흡하는 실천 인문학은 대학의 연구와 사회 교육의 관계를 선순환 구조로 안착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시민 인문학 교육은 인문학과 민주주의, 인문학과 문화, 인문학과 시민사회의 윤리 등과 같은 인문학의 연구 주제를 심화시킬 수 있고, 또한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실천적인 사회 교육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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