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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철학검색

EPOCH AND PHILOSOPHY(A Semiannually Journal of Philosophical Thought in Korea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7-280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0권 2호 (2009)

편집인의 말

서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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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평론 : 바보 노무현과 살바도르 아옌데

김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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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곤과 박종홍의 전통철학 연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병수 ( Byung Soo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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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1세대 가운데 고형곤과 박종홍은 분명한 철학적 문제의식을 지니고 동서철학의 회통을 시도하였다. 이들은 20세기 한국철학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서양 철학자들의 철학사상을 해석하는데 머물지 않고, 동서를 가로지르는 통합적 사유를 펼쳤다. 이 논문의 목적은 이들이 서구근대라는 이질적 문명과의 접촉 속에서 전통철학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 철학적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를 해명하고, 최근 동아시아 담론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과 관련하여 비판적으로 고찰하는데 있다. 이를 통해 동서철학의 회 통은 문화적 민족주의의 편협함을 넘어서, 동서 문명이 조우한 20세기 한국 근현대의 사상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 특정 국가나 지역의 특유한 문화적 전통에 특권을 부여하는 사상적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점, 전통철학의 탐구에서 존재론적 접근과 지식사회학적 접근의 유기적 연관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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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욕망과 충동, 그리고 안티고네와 시뉴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슬로베니아 학파의 라깡 해석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는다. 슬로베니아 학파, 부르스 핑크 등 최근 영어권의 몇몇 저자들은 욕망과 충동을 과도하게 구분하고 후자를 특권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라깡 이론을 잘 이해하고자 하는 본래의 취지에 반해 오히려 라깡 이론을 왜곡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은 주판치치의 시뉴 해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판치치는 욕망에 대한 충동의 우위를 주장하는 가운데 시뉴의 행위들에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며 이를 안티고네의 행위와 대조시킨다. 물론 후기 라깡이 향유와 충동에 강조점을 두었으며, 라깡의 연구가 향유 개념으로 옮겨 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저자들은 향유와 욕망 개념의 `변증법적` 연관성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라깡 이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석의 끝` 개념을 설명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며 라깡 이론을 전반적으로 독자들에게 적절하게 이해시키지 못한다. 끝으로 이 논문은 『세미나 7권』 이후의 라깡 이론의 발전과정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키에사의 `정치편향적` 향유이론을 비판한다.

세계시민주의, 공동체주의, 자유주의

김지현 ( Ji Hyun Kim ) , 손철성 ( Cheol Sung Son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0권 2호, 2009 pp. 93-126 ( 총 34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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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의 동심원이 아니라 여러 동심원, 즉 가족, 도시, 민족, 국가, 인류 공동체 등 다양한 공동체로 이루어진 삶의 공간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동심원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충돌할 때 어느 것에 우선적인 도덕적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친다. 세계 국가를 세우려는 극단적인 세계시민주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세계시민주의는 다양한 동심원을 인정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관심이나 충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계시민주의는 가장 중요한 동심원이 인류 전체이고 따라서 인류 전체나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에 대한 충성이 일차적이라고 본다. 모든 인간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출신 지역이나 국가에 따라 차별 대우를 받지 않고 세계시민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시민주의는 보편주의 관점에서 인권과 같은 보편적인 기본 권리와 더불어 인류애의 관점에서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시한다. 그런데 대체로 공동체주의는 세계시민주의와는 다르게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를 부정하면서 특정 공동체에 타당한 특수한 윤리 규범을 인정하며,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과 헌신보다는 특정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성, 사랑, 헌신을 더 중시한다. 따라서 이러한 공동체주의는 세계시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다. `다원적 공동체주의`와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는 지역적 공동체성과 더불어 세계시민성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서로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복수의 공동체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서로 충돌할 경우에 어떤 공동체의 가치를 더 우선시할지에 대해서는 서로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자는 더 이상 가까워지기 어렵다. 세계시민주의는 공동체주의보다는 자유주의와 양립 가능성이 더 높다. 자유주의는 보편적 권리를 인정하고 그것의 차별 없는 평등한 적용을 주장하는데, 이것을 국가를 넘어서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 적용한다면 자유주의는 세계시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실제로 이러한 자유주의의 관점을 국내에만 적용시킬 뿐이고 세계적 차원까지 확대 적용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계시민주의자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그리고 `자유주의적 세계시민주의`는 `급진적 세계시민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인류애를 요구하기 때문에 해외 원조에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국경선에 따른 원조 수준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급진적 세계시민주의와는 입장 차이를 보인다.

레비나스의 "탈출" 개념에 관한 연구

김동규 ( Dong Kyu Kim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0권 2호, 2009 pp. 127-154 ( 총 28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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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주요 주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레비나스의 초기 사유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인 그의 탈출 개념을 해명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의 탈출 개념이 레비나스 철학에서 어떻게 확장되고 전개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탈출 개념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레비나스의 1935년 작품, 『탈출에 관해서』가 지닌 중요성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탈출이란, 레비나스 철학의 여러 개념들 가운데 하나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유의 출발임과 동시에 그의 사유 전반에 내재되어 있는 중요한 장치라는 점이 본 논문을 통해서 입증될 것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존재와 자아로부터의 탈출이 일어나는 상황 자체가 레비나스 철학의 중요한 전개 방식이요 구조 가운데 하나인, `역설`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켜 줄 것이다. 레비나스의 철학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곧장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가 지닌 역설적 상황을 거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이 점에서 탈출은 역설이라는 레비나스 사유의 형식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우리는 이 논문에서 바로 이러한 레비나스 사유의 특징을 탐구할 것이다.

칸트의 숭고에 관하여 -미판단과 숭고판단의 연속성을 중심으로-

박지용 ( Jee Yong Park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0권 2호, 2009 pp. 155-185 ( 총 31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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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숭고는 도덕적인 감정과 유사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판단력 비판』 속에서는 미학적인 감정으로서 그 지위가 선험적인 해명을 통해서 제시된다. 숭고는 선험적인 감정으로서 미의 감정과 함께 주관의 미학적인 체험의 고유성과 보편성을 밝혀준다. 숭고는 경험적인 대상 체험을 통해서 분석되지도 않을뿐더러, 주관적인 인식능력만으로도 분석될 수 없다. 미와 마찬가지로 숭고 또한 자연에 대한 미학적인 반성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숭고는 미에 비해 부차적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이 글은 숭고가 미와 연속적이라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칸트 미학의 편향된 이해를 지적하고, 나아가 숭고논의에서의 미학적인 고유성과 특성을 구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반목적적인 자연이 칸트의 숭고논의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주목되어야 하며, 나아가 반목적적인 자연이 상상력의 총괄과 역진을 통해 이념과 조우될 수 있음이 고찰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주관의 이념적 능력이 숭고판단의 근거이지만, 감성적인 표상과 결부될 경우에만 숭고는 선험적인 의미에서 미학적 고유성을 획득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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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클라우제비츠의 아포리아가 전쟁에 대한 정치의 지배를 통해 근대적 주체를 확립하고자 했다는 것에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전쟁에 대한 정치의 지배는 `비합리성`에 대한 `합리성의 지배`이며, `강제`에 대한 `동의`의 지배이다. 그러나 이 비합리성은 합리성을 깨 버리는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역사 발전의 동인임을 발견할 수 있으며 역사적 경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클라우제비츠의 아포리아는 클라우제비츠를 재해석하고 재전유한 맑스 주의에게서도 다른 방식으로 발견된다. 그것은 노동자 농민 대중이 계급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사물화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전쟁에 대한 정치적 공포만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르주아 사회 자체 안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부르주아 사회 자체가 무너져서는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때 전쟁에 대한 정치적 공포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는 혁명적 노동자와 지식인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므로 노동자, 농민 대중들은 상당히 기회주의적이며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은 항상 계급의식을 지니지 못한 노동자, 농민 대중들로부터 일정하게 분리될 수밖에 없으며 부르주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계몽적으로 조직할 수밖에 없다. `당`은 근대적 주체인 부르주아 국가처럼 `이성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클라우제비츠의 철학적 아포리아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맑스를 재해석하고 재전유해야 한다. 클라우제비츠처럼 근대적 주체(국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또한 기존의 맑스주의처럼 내전을 전쟁으로 간주하는 것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한 주체는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 그 외부인 `코뮌`을 형성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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