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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철학검색

EPOCH AND PHILOSOPHY(A Semiannually Journal of Philosophical Thought in Korea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7-280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4권 1호 (2013)

판 빠레이스의 초기기본소득론과 생태사회

권정임 ( Jeong Im Kwon )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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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판 빠레이스의 초기기본소득론 및 이 이론에 함축된 생태사회론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의 이론이 갖는 의의를 부각함과 아울러 그 한계와 원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때 특히 맑스의 철학과 이론에 대한 그의 해석과 해석방식이 그의 초기기본소득론과 생태사회론, 나아가 후기기본 소득론까지 결정적으로 제약함을 보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기본소득론과 생태사회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전망의 획득과 관련하여, 맑스의 철학과 이론에 대한 보다 엄밀한 해석과 발전이 유의미함을 보일 것이다.

프로이센 왕정복고와 헤겔의 정치 법학적 입장 -프리스와의 대결을 중심으로-

남기호 ( Ki Ho Nahm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1호, 2013 pp. 47-81 ( 총 35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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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왕정복고 시기 출판된 『법철학 개요』는 헤겔의 순응주의적 변신을 나타내는 저서로 많이 오해되었다. 특히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표방한 부르셴샤프트의 정신적 지도자 프리스(J. F. Fries) 에 대한 그의 비판은 동시대인들에게도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이 글은 이에 대한 집중적 조명을 통해 『개요』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고자 한다. 프리스는 법의 개념을 민족 내의 제한적 평등에 근거지우며 이를 통해 자유주의를 폐쇄적 민족주의로 환원시킨다. 이에 따라 민족의 공동체 정신은 소수 교양인들이 인도하는 배타적 애국주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반유대주의는 그의 법철학의 일관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는 아래로부터 민족 삶에 기반을 둔 헌법 제정을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소수 교양인들의 심정 윤리학에 의해 조성되는 민족의 여론을 정치의 핵심으로 이해했다. 헤겔의 비판은 바로 이 심정에 기초한 소수 교양인들의 선동 정치를 겨냥하고 있다. 이에 반해 그는 법 개념을 자유의지의 현존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민족의 자유의지의 객관적 현존, 다시 말해 제도적 현실화를 헌법으로 파악함으로써 여론 조작에 의한 인위적 헌법 제정의 위험을 극복한다. 헌법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삶 속에 즉자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은 민족의 교양 수준에 따라 발전한다. 따라서 교양인은 발전한 민족의 교양 수준에 준거해 그때마다 헌법을 실정화할 수 있을 뿐이다. 헤겔의 이러한 헌법 개념은 배타적 애국주의를 지양하며 교양인에 의한 여론의 이성적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한다.

민족정체성 연구의 양적/질적 대립과 해체-소통적 연구방법론

박영균 ( Young Kyun Park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1호, 2013 pp. 83-113 ( 총 31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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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민족정체성 연구와 관련하여 양적/질적 연구방법론의 대립과 극복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양적/질적 연구방법론의 대립은 인문학과 사회과 학이라는 근대적인 연구전통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이글은 ``코리언의 민족정체성 연구``의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 각각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한계를 검토한다. 둘째, 이런 검토를 통해서 이 글은 양적/질적 연구방법의 변증법적 결합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합은 양적 연구는 가설, 질적 연구는 결론이라는 역할 분담 또는 기계적 결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글은 그것이 보다 많은 이론들을 생산하는 ``생산적 연구``로서, ``해체적 기획-설계``와 ``해체적 독법``에 근거한 결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소통으로서 연구방법을 제안할 것이다. 그것은 연구자 자신의 아비투스를 해체함으로써 ``타자의 타자성``을 발견하며, 연구자와 연구대상자의 위치를 드러냄으로써 연구자와 연구대상자, 그리고 연구자들 상호 간에 삼중적 소통을 만들면서 ``생성적`` 연구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 논의에서 라캉의 "구조"와 가타리의 "기계"의 차이점

신승철 ( Seung Chul Shin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1호, 2013 pp. 115-145 ( 총 31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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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의 ``구조``와 가타리의 ``기계``는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핵심 개념이다. 라캉은 분열된 주체를 응시하지만, 기표라는 구조가 분열을 극복하는 것에 대해 주목했다. 반면 가타리는 기표가 결정하는 구조로부터 벗어나 분열을 확장할 주체성 생산의 가능성을 기계에서 발견한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언어구조로 이루어진 상징계의 주도권에 의해 설명되지만, 가타리의 분열분석은 비언어적이며 실재계의 현실운동인 기계를 통해서 설명한다. 또한 라캉은 결여에 의한 욕망을 말하지만, 가타리는 욕망하는 생산을 말한다. 라캉이 프로이트의 포르트 다 놀이에서 발견한 반복현상은 objet a로 개념화되며 가타리의 욕망하는 기계 개념의 모태가 된다. 이에 따라 가타리는 사회를 거대구조가 아닌 작은 기계부품이 기능연관에 따라 접속, 이접, 연접으로 연결된다고 본다. 라캉의 기표독재체제는 자본주의의 등가교환을 유지하는 고정관념과 고정된 틀이며, 이를 넘어 가타리는 자유로우면서도 고도로 조직된 도표로 향한다.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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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흔히 정신, 즉 사유 혹은 관념을 감각화하는 활동으로 이해된다. 근대들어 인간의 사유는 자연을 초월한다. 근대적 사유의 특징은 ``무한성``과 ``자유``이다. 여기서 근대 예술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무한한`` 사유 혹은 정신을 어떻게 ``유한한`` 예술작품을 통해 나타낼 수 있는가가 그것이다. 이 글은 이 딜레마를 둘러싼 낭만주의자(Fr. 슐레겔)와 헤겔 간의 입장 차이를 ``반어``를 통해 살펴본다. 슐레겔은 무한한 사유의 자유를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길은 ``반어``에 있다고 본다. ``반어``가 지니는 ``자기창조, 자기파괴, 자기제한``의 ``무한한 부정``을 통해 무한성과 유한성의 괴리가 끊임없이 좁혀질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한 헤겔의 비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낭만주의자들의 예술적 완성도와 예술 자체가 지니는 원리상의 한계가 그것이다. 헤겔은 ``반어``의 ``자의성``을 들어 낭만주의자들의 예술을 혹평한다. 헤겔은 낭만적 반어가 그 자의성으로 인해 진지함의 결여, 공허성 및 공허를 채우기 위한 동경, 자기 파괴에 그친다고 본다. 나아가 절대이념을 표현하는 세 가지 형식, 즉 예술·종교·철학 가운데 근대정신이 지니는 무한성은 철학을 통해서야 제대로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근대에 들어서면서 예술은 더 이상 무한한 정신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형식이 아니다.

탈/중심적 주체

이병창 ( Byung Chang Lee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1호, 2013 pp. 173-202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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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라캉의 텅 빈 주체라는 개념을 탈/중심적 주체라는 개념으로 재규정한다. 그것은 세계의 중심이지만 그러나 자기의 근거를 자기 밖에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지젝은 이런 탈/중심적 주체 개념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서 근대 철학에서 발견하려 한다. 그 출발점은 데카르트의 고기토이다. 이 고기토 개념은 경험적 나와 보편적 중심으로서 주체 사이에 분열되어 있지만 데카르트는 이런 분열을 알지 못하고, 양자가 통합되어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칸트의 근본적 입장은 통각이 직관의 다양을 구성하여 현상계를 성립시킨다는 것인데, 지젝은 이런 칸트의 현상계의 배후에는 초월적 주체와 초월적 대상과 같은 초월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 초월계는 현상계의 소급적인 근거로 전제되는 것인데 이것은 현상계를 넘어서는 경계선 상에 걸쳐져 있으며 이런 점에서 탈/중심적 주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초월계는 현상계로 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예지계와 구별된다. 그런데 칸트의 경우 현상계와 초월계, 초월적 주체와 초월적 대상은 서로 대립하여 근본적인 화해에 이르지 못하였다. 헤겔에 이르러 현상계의 자기의식은 이미 새로운 더 포괄적인 자기의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균열되어 있다. 이렇게 현상계의 자기의식에 잠재된 자기의식은 현상계 속에서 전혀 규정되지 않는 낯선 타자성의 출현을 매개하여 현실적으로 실현된다. 이것을 통해 자기의식은 새로운 자기 의식으로 반성한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자기의식의 운동을 반성적 운동이라 하였는데, 헤겔은 이런 반성적 주체 개념을 통해서 탈/중심적 주체 개념에서 나타나는 현상계와 초월계, 경험적 나와 보편적 주체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려 한다. 지젝은 라캉의 탈/중심적 주체 개념을 헤겔의 반성적 주체 개념 속에서 확인하려고 시도할 때, 그 의의는 무엇인가? 탈/중심적 주체 개념은 헤겔이나 라캉에게 모두 주체와 타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 즉 타자의 철학을 제기한다. 그런데 비역사적인 탈/중심적 주체 개념을 역사적인 반성주체 개념으로 해소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정신분석학의 제한된 주체 타자의 관계를 더 풍부한 주체 타자의 관계 속에 위치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지양(Aufhebung)을 연기시키는 웃음-헤겔과 데리다

이정은 ( Jeong Eun Lee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1호, 2013 pp. 203-240 ( 총 38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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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적 사유에 기초하는 서양 철학을 로고스중심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데리다는 개념적 사유의 대표자를 헤겔로 간주한다. ``지양``과 ``부정성``에 의해 모든 개념을 총체적 통일로 실현하는 헤겔은 떨쳐버려지지 않는 ``가장 강력한 유령``이다. 만약 데리다가 헤겔과 겨루어서 해체 가능성을 드러낸다면, 서양 철학 전반과 겨룬 셈이 되기 때문에, 데리다는 헤겔 변증법과 지양 개념에 대한 해체적 독해를 기획한다. 데리다는 전통 철학의 이성적 사유 체계를 이끌어 온 철학 개념뿐만 아니라 철학 자체도 상징과 은유에서 출발했고, 근저에는 ``차연``이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차연을 드러내기 위해, 그는 해체적 글쓰기(일반적 글쓰기)를 시도하며, 전통 철학의 제한 경제학에 반대하는 일반 경제학을 새로운 문자학 (grammatology)의 이름으로 내세운다. 해체적 발상은 데리다가 처음 창안한 것은 아니다. 니체와 하이데거에게서도 나타나며, 두 개의 의문부호, 웃음, 유희를 통해 데리다 착상을 선취한 것은 니체이다. 인과 개념뿐만 아니라 본래적 실재까지도 거부하는 니체에 힘 입어서 데리다는 차연과 상징과 은유를 정당화한다. 니체의 인과 개념 비판, 언어와 실재 간의 자의성에 천착함으로써 기호학과 경제학의 자의성을 보여주고, 헤겔의 총체적인 개념적 사유를 비판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헤겔의 지양을 지연시키고 연기시키는 비변증법적 측면을 발굴하는 데도 활용된다. 데리다는-지양을 통해 가장 강력한 개념적 사유를 하는-헤겔 체계에서 차연과 상징과 은유를 부각시키기 위해, 생명과 죽음의 역설을 찾아낸다. 헤겔 『정신현상학』의 주노변증법은 목숨을 건 주인의 생명의 경제 안에 죽음의 경제가 들어있는 역설이며, 이 ``추상적 부정성``에서 해체를 위한 ``웃음``이 야기된다고 한다. 그러나 헤겔의 주노변증법에서 야기되는 웃음은 ``코미디``이다. 웃음이지만 해체적 웃음이 아니며, 그나마 코미디 웃음마저도 지양 운동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럼에도 데리다는 포기하지 않고 해체적 웃음을 위해, 즉 헤겔 변증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차연의 무덤과 침묵을 찾아낸다. GLAS에서는 가족의 사랑과 죽음을 대변하는 안티고네를 통해 헤겔의 생명의 책략을 무력화하는 죽음의 경제를 보여준다. 데리다는 변증법적 지양으로 환원되지 않는 비변증법적 계기를 주노변증법이 지닌 생명 경제의 역설을 통해, GLAS에서는 성가족 비유와 안티고네 자살을 통해 논증한다. 데리다는 이런 식으로 비판하지만, 철학 체계와 개념적 사유물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는 막지 못한다. 상징과 웃음을 통해, 죽음의 경제를 통해 지양을 연기하고 체계를 해체시키지만, 강력한 유령이 자꾸 되살아나는 것은 막지 못한다. 그래서 헤겔은 일반 경제학의 입구, 해체적 웃음의 입구가 된다. 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입구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입구임이 헤겔 변증법으로서 지양과 부정성을 통해 반증된다.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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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1세기 중국 지식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신좌파에 집중한다. 구체적으로는 신좌파 중에서도 왕후이의 국가의 굴기에 대한 미래구상이라 할 수 있는 ``중국모델론``을 매개로 하여 그들의 보수화와 국가주의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신좌파는 ``중국모델론``을 펼치는 과정에서 다른 유파의 지식인으로부터 ``국가의 변호인``, ``국가주의자``, ``전향한 지식인``, ``국가의 싱크탱크`` 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비판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 이 글은 왕후이가 ``전향``한 원인을 21세기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달라지자, ``중화제국의 재구축``에 자신들의 목표를 투영하는 과정에서 국가와의 ``거리두기``에 실패한 데서 찾는다. 이 ``거리두기``의 실패는 90년대 자신의 논리 안에 구축해놓았던 긴장 구도를 무너트렸다. 90년대에 왕후이가 제시한 ``反현대성적 현대성`` 안에서는 동양과 서양 또는 중국과 서양이 공존하면서 갈등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자유와 평등이 갈등하면서 공존했다. 그리고 이러한 공존과 갈등은 신좌파의 논리에 모순과 긴장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이런 입장은 자신의 논리 안에 서구식 발전 도식만을 상정하여 애초부터 긴장과 모순을 소거해버렸던 당시 중국 자유주의자들의 이론구도와는 명확히 대비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21세기 신좌파의 ``중국모델론`` 안에서는 갈등하는 한쪽 축이 사라지면서 대결구도 또한 실종되어버렸다. 필자는 왕후이의 ``중국모델론``의 기본골격을 중국 개혁개방 30년의 ``밝은 면``과 사회주의 30년의 ``우량한 측면``의 무원칙한 조합으로 본다. 이 논문은 ``중국모델론`` 안에서 이 양자가 원칙 없이 ``행복한`` 결합을 하게 됨으로써 신좌파가 90년대에 보여주었던 중국의 현대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그들이 견지했던 反봉건성도 실종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중국모델론`` 안에서는 이미 중국 근현대 100년을 지탱시켜온 5.4의 민주의식과 ``서양의 근대성``은 거세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중국의 이러한 변화된 지식 구도를 기초로 하여 이제 다시, 진보란 무엇인가, 비판적 지식인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재질문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좌파라는 것은 일종의 비판의 전통이고 이 비판은 먼저 자신이 속해 있는 기존의 틀(status quo)을 겨냥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중국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자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국가와의 ``거리두기``를 유지하려는 태도가 지금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이 보여주어야 할 최소한의 모습이라고 본다. 21세기 중국의 변화된 지식구도는 왕후이를 비롯한 신좌파와 공감대를 형성해왔던 중국학을 하는 한 국인의 입장에서도 민감하게 주시해야 하는 부분이다.

여성주의 실천으로부터 치유의 인문학 방향 찾기

허라금 ( Ra Keum Huh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1호, 2013 pp. 277-307 ( 총 31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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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단 하나의 올바론 대답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 대답을 발견하는 데서 철학적 인문학적 치유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전개한다. 취약한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고자 하는 철학적 접근은 다양한 인식의 차이를 허용하는 철학적 틀을 통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유를 구성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탐색을 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발화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 질서를 창조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인간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인문학적 질문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밝히고, 그 가치를 실현하려는 철학적 치유는 내면적 세계 뿐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양산하는 세계 질서에 대해서 역시 질문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주체로서의 능동적 행위성 회복까지를 그 치유의 범위에 포괄시켜야 한다. 이 글은 이 같은 논지 위에서 그 철학적(인문학적) 치유의 가능한 한 가지 길을, 지난 반세기 동안 전개된 여성주의 경험으로부터 구체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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