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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철학검색

EPOCH AND PHILOSOPHY(A Semiannually Journal of Philosophical Thought in Korea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7-280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4권 3호 (2013)

특집 : 한국현대철학사의 방법과 관점

이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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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근대철학사, 그 관점과 방법을 생각하다

홍원식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3호, 2013 pp. 27-48 ( 총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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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근현대철학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독창적으로 해석한 이규성 선생의 최근 저서, 『한국현대철학사론』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는데 있다. 우선, ‘심정의 경험’과 ‘내외합일’이라는 구도로 구한말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철학의 역사적 전개를 이해하는 시각에 대한 비판적 검토이다. 이규성 선생은 한국 근현대철학사에 대한 생철학적 시각을 내외합일의 창조적계승이라는 문맥과 의도적으로 일치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20세기 한국철학사의 유의미한 부분을 누락시키는 동시에 일관된 해석을 하기어렵게 만든다.(2장) 다음으로 ‘내외합일’의 구도에서 제기될 수 있는 철학적 문제에 대한 검토이다. 이규성 선생은 내외합일의 세계관으로부터 오늘날 한국철학이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핵심적인 철학적 과제를 ‘신비주의’, ‘자연철학’, ‘민주주의’로 설정하고 있다.(3장)셋째, 철학사상의 시대 연관성과 관련된 비판적 검토이다. 이규성 선생은 내외합일의 세계관의 현대적 계승을 중시하기 때문에 철학사상의 시대연관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며, 특정 철학자로부터 내외합일의 세계관을 살릴 수 있는 측면을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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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빠레이스의 후기기본소득론과 생태적 지속가능성

권정임 ( Jeong Im Kwon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3호, 2013 pp. 107-147 ( 총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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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판 빠레이스의 후기기본소득론을, 기본소득제 및 이에함축된 이상사회, 곧 최적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 특히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연구하여 그 의의와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판 빠레이스의 최적 자본주의가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관련하여 가지는 최대의 난점은, 그가 자연자원고갈에 대한 약한 지속가능성의 관점에 기초하여 성장주의적인 경향을 취하면서 전기의 올바른 문제의식, 곧 경제의 생태합리적인 ‘규모’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를 폐기해 버린다는 점이다. 양적으로 무한한 자연자원은 없다. 따라서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바로 생태합리적인 경제‘규모’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이 글에서는 데일리(Daly)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에 따라 데일리가 제안하는 ‘최적경제규모’를 동학화하면서, 판빠레이스가 제안하는 ‘최대의 기본소득’이 윤리적,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생태적으로도 지속가능하기 위한 조건을 모색한다.

사랑을 통한 갈등해소와 보편성 실현의 가능성 탐구

김석 ( Seok Kim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3호, 2013 pp. 149-177 ( 총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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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자크 라캉이 말하는 에로스, 사랑, 이웃사랑의 개념에 근거해 한국사회의 갈등해소와 보편성의 실현가능성을 탐구해보는 시론이다. 사랑은 한편으로는 주체를 소외시키는 나르시시즘적 정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주체의 진리를 드러내는 욕망의 중재자이기도 하다. 상상계에 속하는 나르시시즘은 쉽게 공격성으로 표출되는데 그 중심에 하나가 되고자 하는 자아가 있고 소외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에로스와 달리 진정한 사랑은 언어속에서 탈존 하는 존재를 겨냥한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론적 전환을 통해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를 확립할 수 있다. 사랑이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철학의 조건이라는 것은 알랭 바디우도 강조한 바 있다. 사랑이 주체화의 가능성뿐 아니라 보편성의 실현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더 발전된 개념인‘이웃사랑’ 덕분이다. 추상화된 보편성이 아니라 개체성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타자의 올바른 관계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웃사랑 개념은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웃사랑은 사랑의확장도 아니고 이타심도 아니다. 이웃사랑은 자아가 무화시킬 수 없는 타자(Autre)를 통해 존재의 되찾음을 가능하게 하며, 타자의 향유를 통해 주체가 잃어버린 대상인 ‘물’로 향하게 하는 적극적 작업이다. 사랑과 이웃사랑은 관용이나 차이의 철학과는 다르게 주체화를 통해 갈등을 풀고 새로운 보편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에 대한 지젝의 비판

김성우 ( Seong Woo Kim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3호, 2013 pp. 179-209 ( 총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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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적인 입장은 칸트의 비판 철학으로 마르크스의 코뮌주의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타자를 단지 ‘수단’으로만 취급하지만, 칸트의 ‘자유의 왕국’이나 ‘목적의 왕국’에서는 이성적인 주체만이 아니라 이성적인 타자도 자유로운 인격으로 간주된다. 코뮌주의는 이러한 도덕적인 계기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의 ‘칸트와 마르크스의 트랜스크리틱’은 신칸트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와 기존의 아나키즘적인 마르크스주의와 차별점을 두려고 한다. 그는 신칸트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의 느슨함을 발견하고, 동시에 아나키즘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인간을 강제하는 사회적인 관계의 힘에 대한 논리적 파악이 부족함을 들춰낸다. 이런 인식의 느슨함과 논리적 빈곤에 기인하여, ‘해방의 댄스’를 추려는 그들의 시도들은 항상 무력하게 비극적으로 끝을 맺었다. 이런 이유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 세계체제인 ‘자본=네이션=국가’로부터의 해방의 댄스(아래부터의 저항)에 세계공화국이라는 체제(위로부터의 강제)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칸트적인 아나키스트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주장하는 세계공화국에 의해 외적으로 매개된 ‘공적 시민의 연합’으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은 여전히 직접 민주주의의 직접성(헤겔 식으로 표현하면 추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것은 진정한 헤겔적인 의미에서 자유의 체제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가라타니 고진의 칸트적인 길에 대한 지젝의 헤겔적인 비판의 핵심이다. 이는 역으로 우리 시대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려는 변혁의 정치학은 칸트적인 길이 아니라 헤겔적인 길에서 그 힘을 얻을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일의 인문적 비전 -소통으로서 통일론-

박영균 ( Young Kyun Park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3호, 2013 pp. 211-236 ( 총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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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기존의 통일 방안 중심의 통일론들이 국가 중심의 기능주의 적인 체제통합 및 국가통합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본질적으로 ‘국가우선적 시각’에 빠져 있다는 비판에서 출발한다. 국가 우선적 시각은 민족의 통합을 두 국가의 통합 차원에서 보기 때문에 자신들의 관점에서 각각의 가치들을 서열화하고 그런 가치들을 중심으로 통일한(조선)반도의 미래상을 관념적으로 추상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이나 북은 모두다 통일 방안에서 ‘민주’라는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둘은 서로 같은 가치를 공유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과남이 내세우는 ‘민주’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 따라서 남과 북은 서로에 대해 자신의 ‘민주’만이 진짜고 상대의 ‘민주’는 가짜라는 점을 들추어내고자 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대립과 적대를 생산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남과 북의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들을 인정하고 그것을 서로 나누는 ‘소통’이 필요하다. 이 논문은 소통을 “가르치고-배우는 비대칭적 관계”로 규정한다. 그것은 남과 북이 각가 가지고 있는 ‘평화’, ‘자유’,‘평등’, ‘민주’, ‘인권’, ‘생태’와 같은 인문적 가치들의 의미를 괄호 속에 묶고 서로 가르치고 배움으로써 소통 속에서 통일한(조선)반도의 미래규칙‘을 생성하는 것이다.

대학 시민교육, 그 철학적 토대

우기동 ( Ki Dong Woo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3호, 2013 pp. 237-267 ( 총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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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만남, 인간다운 사회적 관계는 품격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품위 있는 사회다. 이런 품위 있는 사회는 민주사회의 다른 이름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덕목과 합리성의 수준을 체득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교양교육’이다. 이러한 교양교육의 중심축에 <시민교육>이 있다. ‘시민’으로서의 ‘나’는 가족, 이웃, 지역, 국가, 세계라는 모둠판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시민교육>은 다음과 같은 ‘시민’ 양성이라는 교육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첫째 민주사회를 발전시킬 역량을 가진 합리적 비판적 민주시민, 둘째 공동체적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신뢰, 선의, 공감, 배려, 봉사, 유대의 덕목을 가진따뜻한 이웃, 셋째 한 나라의 시민임과 동시에 지구사회를 생각하는 ‘세계시민’이 그것이다. 교양교육과 시민교육의 철학적 토대는 ‘훌륭함(arete, 아레테)’을 실현하는 삶이다. 바꿔 말하자면 ‘훌륭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교양교육과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훌륭함을 알고, 그 앎(episteme, 에피스테메)을 실천과 합일시킬 수 있는 지적·윤리적·사회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 대학의 시민교육이다.

주체의 해석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 -이해는 진단인가? 낙인적 범주화인가?-

윤지영 ( Ji Yeong Yun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4권 3호, 2013 pp. 269-295 ( 총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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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의 주체와 주체의 해석학이라는 단어들의 전치를 통해 나는 어떠한 전략성을 발휘하려 하는가. 해석학의 주체가 의지적, 항상적, 자율적 주체를 상정해 왔다면 정신분석학에서의 주체 개념은 분열적, 무의식적, 비자발적 주체를 상정한다. 즉 이러한 두 학문 분과의 상이함과 이질성이 어떻게 교차, 접속될 수 있는가를 이러한 단어들의 전치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접점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대타자의 질서 역시 완결된 닫힌 구조라기보다 거대한 규범적 픽션(fiction regulatrice)으로서 구조가 가진 유약성을 주체의 지속적 산출을 통해 가리려 하는 것이다. 나아가 주체 또한 존재론적무와 공허, 심연을 가리고자 대타자의 질서 안에 강권적으로 배치됨으로써 대타자의 부재를 은폐하고 상징질서의 견고성을 간증하는 것이다. 이는 주체와 대타자는 실재와의 대척점이 아니라 실재라는 비규정성의 한 조각들일수 있음을 드러낸다. 즉 상징계 중심의 기존 위상학적 배치방식에서 벗어나, 실재라는 비규정성의 대우주 속 작은 응결점들-그러나 내부적 균열과 비규정성을 내포하고 있는-로서 주체와 대타자를 인식하려 하는 것이다. 실재가 상징계의 바깥이 아니라, 상징계가 실재의 내부적 응결점으로 보는 이러한 위상학적 지형도의 전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상징계 중심으로 주체화 과정을 읽어 내려왔던 기존 주류적 독법방식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욕망의 전복』에서 페터 비트머 역시 실재를상징계의 바깥으로 위치 짓고 있다.1) 이러한 상징계의 외부로서의 실재 개념이나, 나아가 지젝이 제시하는 상징계의 내부적 균열로서의 실재 역시 상징계 중심의 지형학적 배치에 불과한 것이라 나는 보는 바이다. 여전히 언어질서인 상징계를 축으로 실재가 그것의 내부 혹은 외부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내가 제시하는 실재의 새로운 지형학적 위상은 실재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실재의 잠재태(le mode virtuel)로서 상징계에 접근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는 실재의 비규정성이 이미 상징계를 관통하는 것임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실재의 회오리같은 역동적 힘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즉 실재가 상징계에 구멍을 낸다는 것은 실재가 상징계의 내부적 균열이 아닌 상징계가 실재의 편린들이며 잠정적 응결체로서 언제든 잉여적 쥬이상스에 의해 범람하고 마는 것으로 나는 분석하는 바이다. 실재가 상징계의 위협이라기보다 상징계가 실재의 정주 방식, 잠정적 영토화 방식(territorialisation)이며 이는 언제고 탈영토화(deterritorialisation)의 가능성 안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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