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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들뢰즈의 운동-이미지가 『씨네마』에서 어떻게 성립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운동-이미지는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과 초기 영화사 사이에서 배태된 개념으로, 본 논문은 운동-이미지의 의미와 위상을 먼저 규정한 뒤, 그 성립 과정을 해명한다. 우선 운동-이미지는 단순히 움직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운동의 운동성(mobilite)을 표현하는 이미지이다. 운동성은 베르그손이 운동의 본성을 운동하는 동체의 형상(forme)이 아니라 지속하는 운동 자체로 사유할 때 성립하는 개념으로, 『씨네마』에서 이동카메라가 동체를 촬영할 때 화면 자체 속으로 운동이 함입하는 순간, 즉이미지와 운동이 연결부호 ‘-’를 통해 내적으로 접촉하는 순간 표현되고 몽따주를 통해 변주된다. 들뢰즈는 쁠랑(plan) 개념으로 운동-이미지를 규정하면서, 몽따주와 프레임 사이를 오르내리며, 지속하는 영화 전체와 부분적인 피사체들을 상호 전환시키는 숏(shot)의 위상을 설명한다. 쁠랑은 숏과 평면의 의미를 함께 갖는 들뢰즈의 철학용어로, 평면이 초월성을 배제한 전체적 평면, 즉 내재성의 평면(plan d’immanence)을 이루듯, 숏은 베르그손의 질적 복수성(multiplicite qualitative)과 같은 통일성, 즉 선율 한 소절이 수적으로 구분되지 않으면서도 다른 소절들과 내적으로 상호 침투하여 이루어지는 음악처럼 통일성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운동-이미지는 지속하는 전체의 동적인(mobile) 절단으로 성립한다. 문제는 베르그손이 『창조적 진화』 4장에서 영화를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과 기억』 1장에 기초한 들뢰즈의 영화철학이 어떻게 성립할 수있는가, 하는 점이다. 베르그손은 부동적(immobile) 사진들, 즉 일련의 프레임을 재빨리 움직이게 하여 거짓 운동을 생산해낸다는 이유로 영화를 비판한다. 하지만 베르그손이 비판하는 영화는 아직 몽따주 관념이 없는 초창기 영화의 숏들로, 들뢰즈가 본격적인 영화의 이미지로 제시하는 운동-이미지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들뢰즈는 『물질과 기억』 1장에서 베르그손이 제시하는 이미지가 숏에 상응하는 동적인 절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운동-이미지 개념을 성립시킨다. 『물질과 기억』 1장의 이미지는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이미지로, 『씨네마1』 4장에서 ‘이미지=운동=물질’공식으로 요약되는 내재성의 평면이다. 내재성의 평면은 『물질과 기억』 1장에서 사진, 즉 부동적 절단으로 해석되지만, 지속하는 과거의 기억이 논의되는 2, 3장을 함께 고려할 경우 동적인 절단으로 평가된다. 들뢰즈는 내재성의 평면이 갖는 양의성 중 후자를 강조하면서 운동-이미지를 지속하는 전체의 동적인 절단으로 성립시킨다. 『베르그손주의』에서 들뢰즈는 베르그손이 미적분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철학적 미적분을 질적인 차원에서 사유했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이러한 강조는 프레임과 몽따주 사이의 숏으로 운동-이미지의 위상을 규정했던 쁠랑 개념의 전제로서, 들뢰즈가내재성의 평면을 동적인 절단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