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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bang Korean Classic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68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3권 0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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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한자문화권내에 속하였던 한국에서는 漢語와 상대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고유어를 ``方言``으로 인식하였다. 고려 시대의 士人들은 전형적인 한문으로 작성된 글만이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장구하게 유전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한문에 대한 우리말의 간섭현상은 조선 초기에 좀 더 심각하게 생각되었다. 우리말로는 哲理의 탐구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公用文에서 우리말식 한문표현과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한자의 사용을 배제하자고 주장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로는 한문학 작가를 중심으로 우리말과 한문의 모순 현상에 대한 고민이 한층 심각해졌다. 조선 후기의 역사가들은 우리 고유의 지명을 속되다고 卑下하였으니, 이는 제도적 측면에서 중국을 따라야 한다는 의식의 단적 반영이다. 한편 중세 사인들의 우리고유어의 가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발견된다. 하나는 실용적 차원에서 우리고유어를 긍정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세 지식인들은 법률이나 기술서적, 정치적 교화와 학습을 위해 필요한 서적은 우리말식의 한문, 혹은 훈민정음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을 개진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 고유 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자긍심과 관련이 있다. 더욱이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의 문화가 중국보다 우월하다는 자긍심이 강하게 형성되면서 제도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을 분리하려는 의식이 강화되었다. 한편 박지원·홍대용과 같은 작가들은 한자를 공통의 형식으로 사용하는 한자 문화권에서 우리민족의 독자적 문학을 성취하기 위한 돌파구로 우리 고유어의 사용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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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 이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민족을 규정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본고는 조선 사인들의 언어와 문자에 대한 인식을 통해 중세 보편주의 세계관 속에서 조선사인의 인식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박제가와 같은 경우는 중국과 문화적인 동등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으로 우리말을 버리고 화어를 익혀야 할 것으로 보았고 홍양호는 외교상의 필요에서 화어를 익힐 것을 주장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조선후기 화어에 대한 인식과 함께 동음, 즉 훈민정음에 대한 자각이 싹트게 되는데, 동음에 대한 자각은 한자의 음 표기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시기 훈민정음에 대한 관심은 한자의 음을 정확하게 표기하여 한어를 익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아울러 조선사인들은 말과 글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시대적인 한계로 인하여 한자 한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적어도 중국에 대한 ``나``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중세보편주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맹아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글로 문자생활을 하기까지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으며, 소위 선각적 지식인이라고 하는 인물들도 한문중심이라는 틀 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어렵게 공용문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하여 언문일치의 시대를 연 만큼 이를 소중하게 아끼고 다듬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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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형성되었다. 토착적인 생활 문화와 주변 국가와의 교류적인 문화의 측면이다. 주변국과 교류하면서 형성된 문화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것은 동아시아 한문문화이다. 이는 한국의 토착적인 민중 생활 문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주변의 국가들에게도 문화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한문문화는 한국의 문화의 정신적, 물질적인 모든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다. 사상사적으로 고려시대의 불교, 이조 사회의 유교 사상(성리학) 등이 그것이다. 유교이념의 내용은 전적으로 ``한문문화``에서 起因했다. 이러한 한국의 한문문화는 주로 언어적인 측면에서 출발하고 있다. 바로 한문으로 기록되어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한문의 교양과 지식을 지닌 지식인들은 또한 한문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기록물을 만들어냈을 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내용을 담아냈다. 이러한 내용은 하나의 분야에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산수 자연 문학에 관련된 문학작품이 미술 작품으로는 산수화나 건축으로는 자연친화적인 한옥 건축 미학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한문문화는 단지 언어적인 것에 머물러 존재할 수 없는 것이요. 수많은 근대 이전의 사회 문화 속에 적용이 되는 것이며, 오늘날 현재의 우리 삶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물질주의의 공세가 커질수록 오늘날 현대인의 삶 속에는 그에 대항할 만한 사상과 문화로서의 반물질주의적인 문화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문문화의 전통이 우리의 잠재적인 문화로 존재하는 것으로 현대의 물질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문문화의 전통이 현대 물질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도록 미래 세대에 대해 교육할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한다. 한문교육은 바로 그런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제7차 교육과정의 한문과 성격에는 "언어생활의 한자어" 교육을 강조하였다. 언어생활 한자어가 한문 문화에 의해서 형성된 국어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한문과 성격의 제1의 것으로 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새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성격은 "한문의 학습을 통하여 다양한 유형의 한문 자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심미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과"라고 규정하고 있다. 심미적으로 고전 자료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제시하였다. 7차에 비해 매우 적극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그의 실천은 아직 미정이다. 교육과정으로 선언만 하였을 뿐 실천은 교과 전체의 책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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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한문 교육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수업 목표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한문 교육이 전통의 계승과 인성의 계발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으나 이것만으로는 한문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다. 문어라는 한문의 특성을 잘 살려 한문 교육에 실용성과 미래지향성을 부여해야만 한다. 한문 교육이 한국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의 독해력 향상과 모국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확립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유구한 한문 문학의 전통이 한국어 문학의 진흥에 필요한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강조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문 교육의 목표가 단순히 한문의 습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의 위상정립에도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한문 교육의 기능을 강화하고 한문 교육의 정당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교육 방법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한문이 단지 전통의 寶庫만이 아니라 언어의 보고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전통적인 교육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언어학적 방법으로 체계화된 문법을 중심으로 한 수업 방법과 한문의 제이 외국어화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문법의 정리를 위해서는 한국과 주변국에서 나온 성과뿐만 아니라 서구 중국학계에서 나온 성과도 함께 참고해야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가 중요하다. 한문 교육의 미래지향적인 방향 설정을 위해 본고에서는 독일 학교의 라틴어 교육과 독일 대학의 고전 중국어 교육을 사례로 검토했다.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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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연시의 의미와 한국에서의 전개양상을 논의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술되었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 우선 근대 이전에 사용되었던 田園詩, 山水詩, 田家詩 등의 개념에 대한 정리를 바탕으로 하여, 근대적 의미의 自然詩의 의미와 범주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武臣亂으로부터 시작되는 혼란한 정국 속에서 고려 자연시의 본격적인 출발이 시작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자연시인은 金克己와 李奎報이다. 김극기는 무신란의 혼란한 정국 속에서 초연히 세속을 떠나 초야를 떠돌며 은사로서의 삶을 영위하였다. 그는 많은 자연시를 남겼는데, 도연명 전원시의 전통을 계승한 한국 최초의 사실적 자연시인으로 평가된다. 비교적 순탄한 환로를 밟았던 이규보도 도연명의 영향을 받아 많은 자연시를 남겼지만, 그의 자연시에는 은연중 현실에 대해 동경하는 내용이 숨어 있다. 이 두 사람의 자연시를 통해 삶의 궤적에 따라 자연시의 성격이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자연시는 사화와 당쟁의 와중 속에서 꽃을 피웠다. 조선 전·중기를 대표하는 자연시인으로는 전기의 宋純과 중기의 白光勳이다. 송순은 내외요직을 역임하다가 만년에 이르러 고향 담양으로 퇴거하여 면앙정을 중심으로 전원생활을 마음껏 즐긴 인물이다. 반면 백광훈은 연이은 사화의 정국을 피하고자 하여 산수 자연을 벗 삼았고, 잠시 벼슬길에 나아간 적도 있으나 마음만은 항상 전원에 두었던 분이다. 이러한 삶의 궤적에 따라 송순의 자연시에는 귀거래에 대한 열망이 떠들썩하지만, 백광훈의 자연시에는 떠들썩함이 전혀 없는 醇正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후기의 자연시는 대체로 당쟁과 외척세도의 정국 속에서 산출되었는데, 또한 당시에 대두되었던 寫實主義的 시작 경향과 동궤를 이루고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 자연시인으로는 李書九와 丁若鏞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사람 역시도 삶의 궤적이 차이를 보였거니와, 이로 인해 자연시에 있어서도 일정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이서구의 자연시에는 전통적 의미의 자연시와 朝鮮風의 사실주의적 자연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반면 정약용의 자연시는 조선풍의 사실주의적 자연시의 특징적 경향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의 자연시에는 자연, 전가에서의 삶이 이서구의 그것에서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자연시는 일종의 避接行爲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피접이란 다툼으로 인해 발생한 질병으로부터 요양을 떠나는 행위이다. 세상사의 다툼으로부터 완전히 관심을 떨쳐버리는 데에서 요양은 효과가 극대화된다. 우리 인류가 영원히 다툼의 현장에서 내려 올 수 없는 숙명적 존재라면 자연시는 영원히 지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시란 근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희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을 바탕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시가 끊임없이 창작되는 한, 그 성격이 어떠하든지, 우리 인류는 최소한의 건강성, 자연성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 터이다.

기획 2 : 한국 한시의 특징과 전개 (1) ; 한국 도가시의 유형과 전개 양상

강민경 ( Min Kyoung Kang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33권 0호, 2007 pp. 137-165 ( 총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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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시는 도교 이론을 탐색하거나 도교를 수련한 내용, 도교적 환상을 추구한 한시의 부류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의 도가시는 최치원에게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고려 때는 도교의 신앙체계가 확립되었다. 무신의 난 이후 몰락한 문인들은 현실의 질곡이나 고통을 은일사상이나 신선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극복하고자 하여, 도가적 성격의 시를 남겼다. 조선의 도가시는 내단의 성격이 강해진다. 도가시는 조선 중기 선조, 광해군 시절에 가장 융성하게 발전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산문정신이 발흥하여 도가시는 점점 쇠퇴한다. 도가시 유형은 遊仙詩, 玄言詩, 仙趣詩, 煉丹詩, 儀禮詩의 다섯 가지로 나뉜다. 유선시는 신선이 되어 선계 체험을 노래하거나 불로장생의 염원을 노니는 내용을 담은 시다. 도가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이들의 내용은 自我의 仙化, 신선고사의 줄거리 나열, 꿈을 통한 유선 등으로 나뉜다. 선취시는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으면서 대체로 明景을 대하여 신선을 떠올리고 선계를 꿈꾸는 내용의 시이다. 현언시는 노장의 철학적 가르침과 주해를 드러내고 있으며 시 속엔 현묘한 이치가 들어 있는 시이다. 연단시는 내단법과 외단법을 통해 신선에 이르는 방법을 보여주는 실천적 시이다. 의례시란 도교의 재초례를 비롯한 갖가지 의례를 표현한 것이다. 도가시에는 유교 문화 속에서 인간의 의식을 알게 모르게 억압하고 왜곡하는 현실을 초월하려는 특성이 잘 드러난다.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여 얻어지는 정신적 해방감과 승화를 만끽하기 위해, 시인은 도가시를 창작했던 것이다. 도가시는 근본적으로 현실 너머 세계의 실재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고 현실에서 초월세계로 끊임없이 일탈하려는 양식이었다. 도가시는 중세인이 꿈꾸었던 자유와 초월에의 의지를 가장 잘 대변한다.

기획 2 : 한국 한시의 특징과 전개 (1) ; 기생(妓生)의 한시, 사회적 정체성과 섹슈얼리티의 서사

박영민 ( Young Min Park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33권 0호, 2007 pp. 165-197 ( 총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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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생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계층적 성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조선시대 기생의 문학은 그들만의 고유한 계층적 성격과 밀접한 관련 하에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기생은 대부분 모계로부터 세습되었으며, 국가에 대한 公的 의무를 져야 했던 특수 계층의 여성이었다. 또한 기생이 국가에 대한 공적 의무를 행하거나 생계를 위하여 私的으로 妓房 활동을 하거나 기생의 활동에는 그들의 섹슈얼리티가 매개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기생의 공적 의무와 섹슈얼리티의 활용을 비롯한 그들의 신분적 특수성은 그들의 문학적 특성을 형성하는 주요 기반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가 가져야 할 덕목이 규정되어 있듯이 기생이 가져야 할 덕목이 규정되어 있었다. 기생이 만약 자신의 정감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중세가 규정한 정감을 따르지 않는다면 사대부 시화 담론은 이 시들을 철저하게 외면하였다. 즉 기생이 술자리에서 만난 남성에 대한 감정은 사랑, 연민, 선망, 무심함, 조롱조, 희화적 등 매우 다양할 터이다. 그러나 기생이 있는 그대로의 정감을 다양하게 표출한다면 그 시들은 시화의 담론에서 제외될 뿐만 아니라 술자리에서 매질을 당하고 쫒겨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사대부 시화의 기생 한시에 대한 담론은 일정한 방향으로 구조화되었다. 시화에 나타난 기생의 한시를 읽을 때에는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능화의 『朝鮮解語花史』 역시 이러한 담론의 편향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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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리시는 철학적 진리의 시적 표현이다. 특히 유가 중 주자학파의 철리시는 그 내용과 형식 면에서 다양하면서도 높은 성취를 이룩하였다. 이들의 철리시를 내용에 따라 분류해 보면, 크게 유가 경전의 내용을 시로 표현한 說經詩와 유학자들의 철학적 주장을 운문화 한 說理詩로 나눌 수 있다. 설경시의 경우, 경전의 내용을 시로 표현한 經義詩와 경전 주석의 내용을 시로 표현한 注義詩를 하위범주에 둘 수 있다. 한편 설리시의 경우, 주로 인간의 심성과 우주의 원리를 주제로 다룬 시들이 많은데, 전자는 性情詩, 후자는 自然詩라 명명 할 수 있다. 哲理詩에서 說理詩가 차지하는 비중은 說經詩 보다 매우 높다. 이는 비단 양적으로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그러하다. 그리고 설리시의 두 축인 性情詩와 自然詩에서는 우주적 법칙의 구현체인 인간과 자연을 통해 根源的 一者를 發見하려는 혹은 合一하려는 旅程을 운문으로 훌륭하게 표현해 놓고 있다.

기획 2 : 한국 한시의 특징과 전개 (1) ; 한시(漢詩)에서의 사회상(社會相), 그 안과 밖의 모습들

진재교 ( Jae Kyo Jin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33권 0호, 2007 pp. 225-262 ( 총 38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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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에서 중요한 범주의 하나가 ``민``의 문제이다. 공자와 맹자 이래로 유학에 종사하는 자들은 ``민``을 그들 思惟와 議論의 중심에 두었다. 민의 안정은 仁政과 국가를 위해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러므로 유교를 이념으로 하는 사회는 민본사상을 강조한다. 조선조 사대부들 역시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민본적 사유를 강조하는 것도, 문학의 주요한 범주로 ``민``을 포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 본위의 사상을 문학으로 전환할 때, 문학의 중요한 범주는 민을 중심에 놓고 이를 형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대부 시인들은 시를 통해 民本과 愛民, 爲民의 경향을 드러낸다. 그래서 사대부 문인들의 작품에서 민본적 사유에 기댄 한시를 통해 풍부하고 다양한 애민적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기획 2 : 한국 한시의 특징과 전개 (1) ; 한국 제화시의 특징과 전개

구본현 ( Bon Hyun Gu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33권 0호, 2007 pp. 263-303 ( 총 41 pages)
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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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畵詩는 어떤 그림의 畵題, 畵面, 畵法, 畵意, 畵論 등을 소재나 제재로 삼은 한시를 가리킨다. 시인은 그림의 내용을 단순히 언어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 제화시를 창작한다. 또한 제화시의 형상화 방식은 그림의 성격에 따라 결정되는 한편 한시라는 문학 갈래의 관습적인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제화시는 그 유래가 오래되었으나 그 창작과 감상이 성황을 이루었던 시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는 시보다 그림을 천대하였던 사회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전기까지의 한국 제화시는 그림의 성격보다는 시인 자신의 개성이나 당대의 詩風에 따른 특징을 보인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그림에 대한 가치평가가 달라지면서 제화시의 성격 또한 변화를 보인다. 즉 畵法, 畵論에 대한 관심을 담아내는가 하면 畵意를 새롭게 해석하는 시각 또한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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