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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bang Korean Classic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68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5권 0호 (2010)

기획 : 김종직(金宗直)의 질병(疾病)과 문학적(文學的) 표출(表出)

강민구 ( Min Gu Kang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5권 0호, 2010 pp. 7-33 ( 총 27 pages)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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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은 50세 이전부터 소갈병을 앓았고, 57세에는 안질을 앓았다. 59세에는 한질을 앓았는데, 이것은 가벼운 감기가 아니라 독감으로 추정된다. 그는 환갑 전후에 중풍에 걸려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였고 오른팔에 수전증세가 있었다. 김종직은 醫術은 신뢰하였지만 醫員은 신뢰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의 저급한 의료수준을 반영한 意識이다. 그는 의료사고를 당하여 병이 악화되기까지 하였으며, 그의 아내는 巫術에 의지하려고 하였다. 김종직은 병을 앓는 과정에서, 조건 없는 위안을 주는 벗은 오직 자연뿐이라는 사실, 세속적 가치의 덧없음, 인간의 정신은 長大하며 우주가 완전하다는 이치, 자연의 변화는 법칙성의 구현이며 그것과 상반된 무상한 인정세태, 인간의 병도 ‘자연의 신진대사’라는 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김종직은 병을 앓으면서 문학적 정서가 건강할 때와 다른 양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병을 앓으면서 생성된 사유와 정서를 놓치지 않고 시로 표현하였다. 형식적 측면에서 대체로 연작이 많다. 병을 지루하게 오래 앓은 만큼 말할 것도 많았던 것이다. 표현의 측면에서는 난삽한 표현을 배제하고 평이한 수사를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진솔한 정서의 표출이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사상적 측면에서 老莊的 傾斜를 보인다. 그가 병을 앓으면서 쓴 시 중 상당수는 『莊子』에서 용사를 취하고 있다. 병자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사상으로 老莊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기획 : 홍경모(洪敬謨) 「나덕헌전(羅德憲傳)」분석(分析)

이군선 ( Goon Seon Lee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5권 0호, 2010 pp. 33-56 ( 총 24 pages)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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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덕헌은 명청교체기 후금과 조선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인물이다. 이 글은 나덕헌에 대하여 홍양호의 비문과 홍경모의 「나덕헌전」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나덕헌의 생애에 대해서는 황윤석의 행장을 중심으로 구성하여 당시 대명의리와 대후금 인식의 단면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광해군의 유연한 외교정책과는 달리 인조 반정의 주 세력은 대명의리를 주장하였고 후금에 대하여는 부정적인 생각이 이미 병자호란 이전에 형성되어 조야 간에 널리 퍼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덕헌전」은 청 건륭황제의 전운시가 나옴으로 인하여 나덕헌의 행적이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 결과 많은 문인들이 나덕헌의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 글은 「나덕헌전」의 형성 경로를 나덕헌의 「북행일기」를 바탕으로 황윤석의 행장이 지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김양행의 시장이 지어졌으며, 홍양호가 묘갈명을 지을 때 이를 참고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홍경모의 「나덕헌전」은 저술의 직접적인 관계는 홍양호의 묘갈명에 두었다. 그 근거는 홍경모가 홍양호의 문집을 정리하여 간행하였으므로 홍양호의 문집을 통하여 나덕헌의 항절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개연성이 많기 때문이다. 홍경모는 「나덕헌전」을 기술하며 청의 칭제건원 시 항절한 나덕헌이라는 인물상을 드러내기 위해 항절에 대한 직접적 묘사와 예화와 간접서술을 통하여 인물의 특징을 부각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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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朴來謙의 『西繡日記』를 통해 조선시대 仕宦日記의 성격을 고찰하였다. 삶의 궤적과 저술을 통해 작품을 검토하고 『西繡日記』를 분석하여 그 성격과 특징을 考究하였다. 그의 일기는 筆寫로 존재하는 유일본이며 楷書體로 기술되어 있다. 박래겸의 삶을 修學期, 仕宦期, 老年期로 정리하였는데, 30세부터 58세까지를 사환기로 삼고 그 이전을 수학기로, 이후를 노년기로 구분하였다. 저술에는 시문집인 『晩悟遺稿』, 암행어사의 기록인 『西繡日記』, 북평사의 기록인 『北幕日記』, 서장관의 기록인 『瀋차錄』등이 있다. 『西繡日記』는 관인으로서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보고 듣고 체험한 사실을 기록한 仕宦日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조선후기 관료지식인의 현실 인식과 문학에 대한 단면을 조망할 수 있고 그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적 현상 등에 대해서 살필 수 있다. 『西繡日記』는 그 내용이나 형식이 다양하고 풍부하며 종합적일 뿐 아니라 당시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19세기 전반기의 사회와 문화 등 다방면의 연구에 기여하는 자료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한편 서술이 자세하고 정확하며 진솔한 특징이 있으며, 단순한 기록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식을 투영함으로써 문학적 특징도 지닌다. 결국 『西繡日記』는 사환일기의 성격과 함께 現時性, 寫實性, 眞實性등 다양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본고의 결과는 한문학 연구에서 문화사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활용하여 작가와 시대에 대한 연구의 영역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데 기여 할 것이다.

기획 : 최술(崔述)의 『맹자사실록(孟子事實錄)』연구(硏究)

박준원 ( Joon Won Park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5권 0호, 2010 pp. 91-117 ( 총 27 pages)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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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사실록』은 청대 고증학자인 崔述(1740-1816)의 저술로 『考信錄』 諸書중의 하나이다. 최술의 『考信錄』은 최술의 사후 백 년 가까이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일본의 那珂通世가 1902년 『史學雜誌』에 「考信錄解題」를 발표하면서 이 책의 학술적 가치가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며, 1932년 중국의 『史學年報』에 이 글이 번역 소개 되면서 중국 학계에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한국에서의 최술과 『考信錄』에 대한 연구는 중국에 비하여 매우 늦게 시작되었으며, 특히 공자의 생애와 사적을 변증한 『수사고신록』에 대하여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 『수사고신록』은 철저한 고증에 의한 최술의 독창적인 견해가 제시되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공자와 『논어』의 연구자들 사이에 필독서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본고에서 다룰 『맹자사실록』은 맹자와 그의 제자들에 대한 매우 심도 있는 논의를 담고 있는 최술의 중요한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연구 성과가 한 건도 보고된 적이 없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맹자사실록』의 저술동기와 고증체계, 구성과 고증목록, 고증의 특징 등을 분석하여 소개했다. 『맹자사실록』은 기본적으로 맹자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탄생한 저술이다. 최술은 먼저 맹자의 생애를 시기별로 나눈 다음, 『맹자』의 본문을 해체하고 분류하여 재배치하였다. 그리하여 맹자의 행적이 두서없이 섞여있던 『맹자』라는 책은, 맹자의 유년 시절부터 노년시절까지 일목요연하게 ``事實``을 수록한 『맹자사실록』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것은 기존의 『맹자』에 대한 주석과 고증과는 다른 최술만의 새로운 시도이다. 최술이 『맹자사실록』에서 사용한 고증방법은 ``以經爲主論``이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열녀전』이나 『한시외전』 같은 소설류 전기 자료들의 허황함을 부정하고, 『전국책』과 『사기』의 맹자에 대한 왜곡 현장을 폭로하였다. 최술의 맹자에 대한 칭송은 각별하다. 그는 韓愈의 견해를 인용하여 맹자가 異端을 배척하고 문화를 지켜낸 공로를 기리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자를 있게 한`` 맹자를 현학적인 경지를 추구하며 폄하하고 있던 宋나라 儒者들의 관점을 비판하였다. 이것은 최술의 고증학이 空理空談을 일삼고 있던 이들에 대하여 견지했던 일관된 태도이기도 하다. 그는 ``맹자를 있게 한`` 맹자 문인과 제자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때문에 맹자 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행적을 추출하고 분류하여, 이들을 악정자, 공손추, 만장과 같은 ``수준 높은 弟子``부터 제자의 여부를 단정할 수 없는 그룹까지 4등급으로 나누어 고증하고 있다.

기획 : 한국(韓國) 초등학교(初等學校) 한자교육(漢字敎育)의 실태(實態)와 요구(要求) 분석(分析)

박세진 ( Se Jin Park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5권 0호, 2010 pp. 117-2125 ( 총 2009 pages)
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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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漢字敎育의 실태 및 요구를 알아보기 위해서 학부모·교사의 요구도 조사를 실시하였다. 여기서 사용된 설문지는 定量方式을 이용하여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설문조사에 관한 문헌을 조사하였고 그 이후 설문조사에 대한 설계를 다음과 같은 절차와 방법으로 실시하였다. 설문 목적 및 설문 대상을 선정 → 설문 문항을 구조화 및 설계 → 전문가협의회 → 예비검사 → 설문지 배포학교 임의적 선정 → 설문지 확정 및 설문지 배포 → 코딩 후 기술통계 및 교차분석을 실시하였다. 설문문항의 체계는 교사용 설문과 학부모용 설문을 ①기본사항, ②한자 학습 경험, ③한자교육 실태, ④초등학교 한자교육에 대한 인식 및 요구의 4단계로 구조화하여 설계하였다. 표집대상은 수도권지역(서울, 경기, 인천, 춘천)을 대상으로 임의적인 비확률적 방식으로 선택하였다. 통계검증은 코딩작업 후 통계전문가에게 의뢰하여 1차 기술통계를 실 시하였고 그 후 부분적으로 교차분석을 실시하여 현 한자교육의 실태와 요구를 정확히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 연구를 통하여 2009 개정교육과정의 일환인 창의적 체험활동시간을 통하여 체계적인 한자교육을 실현 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한자교육의 위상과 이상적인 한자교과서의 방향을 얻을 수 있었다.

근재(謹齋) 안축(安軸) 시문(詩文)에 나타난 신의(新意)의 양상(樣相) 고찰(考察)

원주용 ( Ju Yong Won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5권 0호, 2010 pp. 189-211 ( 총 23 pages)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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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齋 安軸(1282~1348)은 고려 후기 중앙 정계로 진출한 新興士大夫의 한 사람으로, 14세기에 활약했던 문인이다. 본고는 安軸 문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新意가 詩文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고찰을 통해 李奎報에게서 비롯된 新意가 어떻게 후대로 이어졌는지 살필 수 있을 것이며, 그동안 고려 말 몇몇 新興士大夫만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전반적으로 확산되어 신흥사대부 문학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일조가 되었으면 한다. 安軸 문학관의 핵심은 新意라 할 수 있다. 安軸은 재미있는 상상의 표현을 사용하여 내면의 어두움을 승화시켰고, 잘 쓰지 않은 형식을 활용하여 대상을 칭송하였으며, 양식에 있어 탄력성을 보여주었고, 새로운 詩形인 景幾體歌를 지어 정신적 긴장감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또한 자연을 관념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현실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에서 기인한 認識의 차이에서 동일한 제재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文人들과 다른 새로운 내용이나 주제를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문인이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찬사와 찬탄을 노래한 반면, 安軸은 아름다운 경치의 외형이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백성을 괴롭히는 원인이 되는 내재적 요인을 서로 대립적으로 파악하고 있어 여타의 문인에게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 것은 一般性과 慣行性을 따르던 당시의 문학적인 흐름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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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세 作品의 敍事的 特徵을 보면, 「猊山隱者傳」은 순차적 구성방식에 따라 人物의 內面世界를 전개한다. 作家의 趣旨는 인물의 성품을 서술하는 것이다. 겉보기에 별다른 일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내적인 동기에 의해 쓴 것이다. 남들과 질적으로 다른 자기 각성이 집필동기이다. 「崔瀣碑誌」의 構造는 어느 한 부분에 집중하지 않고 전체 인생을 조망하도록 구성한다. 執筆意圖는 인물의 생애 중에서 내세울 만 한 점을 부각시키는데 있다. 作家는 墓主에게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된 정보와 業績을 序頭에 서술한다. 이것은 作家가 원하는 墓主의 상을 讀者에게 刻印시키는 효과를 준다. 「崔瀣列傳」에서 인물의 주변 정황에 관한 내용은 疏略하다. 그러나 行蹟과 事件은 구체적으로 서술하여 장면과 행위를 통해서 인물을 부각시키려 한다. 事件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인물을 드러내기보다 事件과 행위를 표현하는데 중심을 둔 글쓰기 방식이다. 집필동기는 일화를 통해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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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陵 李尙毅는 아직까지 학계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는 65년 생애의 대부분을 관직에서 보낸 인물로, 임진왜란과 인조반정이라는 역사적·정치적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인물이다. 역사적·정치적 격변의 현장에서 일생을 관료로 생활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소릉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릉의 문집을 살펴보면 소릉의 문학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단서들이 존재한다. 특히 『여강세승』을 보조 자료로 하여 소릉의 문집을 살펴보면 그의 문학적 역량이 주로 시를 통해 표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문집 4권 중 두 권이 시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나 소릉에 대한 芝峯 李·光의 평가가 시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소릉의 문학적 역량이 시를 중심으로 표출되었다고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시를 중심으로 구현된 소릉의 문학적 역량은 그의 사행 경험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소릉은 일생 동안 두 번의 사행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두 번의 경험을 모두 시 속에 오롯하게 담아내었다. 소릉의 두 차례 사행은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첫 번째 사행은 丁酉年인 선조 30년(1597) 겨울 陳慰使의 書狀官과 執義를 겸하여 명나라에 다녀온 것인데, 이 사행에서 소릉은 서장관의 직책을 맡아 조선에 대한 명나라의 의심을 푸는 辨誣에 주력하였다. 두 번째 사행은 辛亥年인 광해군 3년(1611) 가을 東宮告命 冕服奏請使의 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것이다. 이 두 사행의 성격과 소릉의 직책이 다르다는 것은 두 사행 기간 창작된 시들의 성격이 동일할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정유년 사행의 기록인 「정유조천록」에 수록된 소릉의 시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가 爲國忠情을 중심으로 하여 國事에 번민하는 소릉의 모습을 담고 있는 시이다. 두 번째는 간간이 느끼는 자신의 우수와 갈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행 과정에서 동료들과 주고받으며 창작한 의례적인 희작시이다. 이 세유형 중 세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시는 「정유조천록」 속에 단 3수가 나올 뿐이다. 이와 달리 신해년 사행의 기록인 「신해조천록」에는 「정유조천록」에 수록된 시의 첫 번째 성격, 즉 國事에 대한 고민이나 爲國忠情의 의식이 드러난 시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보다 「신해조천록」에 수록된 시에는 客愁와 無常感, 그리고 중국의 풍광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내용만으로 본다면 「신해조천록」에 수록된 시들은 使行詩라기보다 紀行詩나 遊覽詩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행 기록의 차이는 소릉의 삶의 태도와 관계된 것이라 생각된다. 篤信謹守의 학문자세와 必求中正의 행동 기준을 지니고 있었으며, 小學을 중심으로 한 자제 교육을 강조했던 소릉의 삶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虛僞的인 반응을 거부하게 만든 것이라 생각된다. 소릉에게 戰亂의 원군을 불러오기 위한 辨誣의 절실함은 사행 기간 동안 다른 어떤 생각도 갖지 못하게 했을 것이고, 이 때문에 정유 사행시 國事를 위한 고뇌와 번민이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 달리 동궁의 告命과 冕服의 주청을 위한 신해 사행에서 소릉은 정유 사행 때와는 다른 심리적 여유와 안정감을 지닐 수 있었을 것이다. 소릉에게 두 차례의 사행은 상당한 거리감을 가지는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이고, 이 때문에 두 사행 기간 동안 창작한 시에서도 자연스럽게 변별적 양상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정유조천록」과 「신해조천록」이 지니는 상이점은 소릉의 의도적 행위였고, 이와 같은 행위는 소릉이 지니고 있었던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경서전(金景瑞傳)」연구 -문제적 인물의 영웅화 과정-

임유경 ( You Kyoung Yim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5권 0호, 2010 pp. 265-290 ( 총 26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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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서는 평양 출신의 장군이다. 임진왜란에 출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나, 말년에 강홍립과 함께 심하전투에 나가 명을 도와 싸우다가 후금에 패하여 항복하였다. 패장이라는 이유로 조정에서는 별다른 대우를 하지 않는 사이 평안도 지역에서는 그의 죽음이 적의 정세를 살피다가 발각되어 죽은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의 신원을 청원한다. 그의 고향에서는 그에 관한 설화를 엮어서 ``영웅 만들기`` 작업을 지속적으로 펴나갔다. 우선 그의 업적을 연보로 묶고 그에 관한 기록을 찾아내어 책으로 묶어 내니, 1738년 평양에서 간행된 『김장군유사』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홍양호가 「부원수김경서장군전」을 썼고, 개화기의 잡지인 『서북학회월보』에는 「김경서장군전」이라 하여 방대한 분량의 전을 싣고 있다. 이 논문은 『김장군유사』내의 「관서충렬전」과 홍양호의 「부원수김경서장군전」, 『서북학회월보』의 「김경서장군전」등 세 편의 김경서전을 비교 검토하고 패장인 그가 영웅화되어가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그러나 그를 영웅시하는 것은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 여론일 뿐이고 여전히 중앙의 인물지 등에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북한에서는 그를 우표에도 싣고 그의 고향인 평안남도 용강군에 있는 그의 집을 국가 지정문화재 국보급으로 선정하여 그가 마시던 우물까지 기념하고 있는데, 남한에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잊혀진 인물이 되어가고 있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삼사(三事)”의 꿈, 홍길주의 「여의침명서」 재론을 겸해

박무영 ( Moo Young Park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5권 0호, 2010 pp. 291-319 ( 총 29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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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홍길주의 저작인 『孰遂念』에 대한 주제적 측면에서의 연구이다. 『숙수념』의 제8관인 「三事念」은 ``三事’에 대한 담론을 다루고 있는 장이다. ``삼사’ 중에서도 기용의 이용에 대한 담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삼사념」인데, 이 속에 제시되는 기물들은 기본적으로 ``삼사’에 관련된 담론의 현현물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한편 이 「삼사념」에 놓인 기물 중 하나인 베틀은 그 자체가 『숙수념』의 은유이기도 하다. 즉 「삼사념」은 홍길주 자신에 의해서 『숙수념』 전체의 은유로도 해석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삼사’ - 특히 이용후생의 이상을 둘러싼 담론은 『숙수념』의 세계를 구성하는 기획 이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삼사념」 속에 놓인 기물 중 하나인 여의침에 붙여진 「如意枕銘序」는 당대의 현실학문 풍토를 좌우했던 성리학과 고증학에 대한 비판과, 나아가 그 자신이 상당한 식견을 지니고 있던 도교나 불교적 취향에 대한 비판을 거쳐 ``삼사’의 학문적 결론에 도달하는 탐색의 경로를 환몽기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삼사념」 전체의 서문에 해당한다. 「삼사념」의 기타 기물들과 기물명/찬을 통해서는 ``이용후생’과 관련된 갖가지 사고들을 드러낸다. 여기에는 현실의 음화로서의 환상세계라는 『숙수념』의 성격이 드러난다. 즉 「삼사념」에는 후생의 책임을 져야하는 지식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자임하는 만큼, 현실적인 실현의 가능성에 좌절한 지식인의 자화상이 드러난다. 이 점에서 현실의 음화로서의 측면을 드러낸다. 한편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는 조선후기 이용후생학파의 삼사에 대한 이해와는 달리, 담론에 치중하거나 수학적ㆍ과학적 상상력 자체에 유희적으로 몰두한다는 점도 홍길주의 ``삼사’가 갖는 특징이다. 즉 홍길주의 「삼사념」은 실용성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표적인 이용후생지구에 대해서도 관념적으로 해석하는 명을 붙여놓았을 뿐이며, 수학적 기기를 창안하고 있지만, 실제 이 기구들에서 보게 되는 것은 실용성이 아니라 자족적인 수학적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홍길주의 이용후생 관념이 실제 당대의 이용후생학파들의 이용 관념과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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