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동방한문학검색

Dongbang Korean Classic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68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8권 0호 (2011)
초록보기
家訓은 일반적으로 표어나 속담식의 짧은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많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길이와 심도 있는 의논을 전개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본고는 이러한 부류의 가훈을 중심으로 하여 尹기의 「家禁」과 家訓類를 중심으로 하고 더불어 安之推의 『顔氏家訓』과 丁若鏞의 「家誡」로 논지를 보충하고 비교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家禁」의 성격과 家訓類의 形態와 內容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더불어 家訓類에는 당대의 시대 상황에 대한 진단과 경계의 과정에서 당시대 사회상과 인물상을 핍진하게 알 수 있는 효용도 있었다. 尹기는 자신이 평소에 품은 뜻과 議論을 모두 문집에 싣고 후손들이 이를 보배로 삼아서 훈계를 따르고 준수하기를 기대하였다. 다른 문집과 비교하면 尹기의 문집에 家訓이나 가훈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저술이 특별히 많은 편이다. 尹기가 이렇게 많은 家訓을 남긴 理由는 첫째, 家門을 復興시키기에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切感하였다. 둘째, 자손의 力量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후손 역시 기대만큼 출중하지 못하자 미래의 후손에게 더 많은 敎訓과 警戒를 남겨 전하고자 하였다. 그 내용은 의리와 명분에 관한 것에서부터 일상생활의 지극히 사소한 일 까지 勸戒를 남기고 이치의 실상을 추구하였다. 표현은 때로는 조부가 손자를 달래듯이, 때로는 엄격한 부친이 책망 하듯이 다양한 내용과 표현으로 서술하였다. 그는 「家禁」을 포함한 가훈에 대하여 ``마음가짐의 要諦이고 守身과 保家의 법이요 聖人이 다시 오더라도 절대로 이 말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確信하며 가훈류에 대하여 문집에서 가장 큰 比重을 두고 중요시 한 것으로 보인다. 尹기는 양반사대부의 도리와 금기에 대하여 그 身分에 맞는 道理를 실천하고 品行을 바르게 하여 일반 백성이나 常漢에게 嫌惡와 疾視의 대상이 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 官人으로서는 官街에 풍미하는 不正한 風潮를 따르지 말고 자신의 직무를 誠實히 수행하고 言行을 조심하며 私的인 感情을 개입시키지 말라고 하였다. 財産의 社會 還元과 유사한 논의가 가훈에 보인다. 尹기는 일정 이상의 재물은 남에게 나누어주고 재산 보다는 義理를 중시하고 仁과 禮義를 높이도록 하였다. 茶山은 物質을 자기 자손에게 전해주는 것은 물질로 사용하는 것으로 모두 없어지지만, 물질을 남에게 베풀어 주면 그것은 물질을 精神으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永遠하고 변함이 없다고 보았다. 물질을 남에게 베풀면 물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주는 것이라는 설명은 현대의 기부문화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논리라고 하겠다. 윤기와 안지추가 제시한 早期敎育은 知識中心이 아니라 人性敎育과 禮節敎育에 주안을 두고 있다. 조기교육은 아이가 얼굴을 구별할 줄 알 정도면 시작하여야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2~5세 정도부터 필요한 경우에는 體罰을 시작하여 自我가 어느 정도 형성되는 나이(약 10세 정도)까지는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자아가 형성되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에게는 체벌은 反感만 불러일으킨다고 보았다. 이 논리는 체벌의 시행 뿐 만 아니라 시기에 맞는 적절한 교육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듯하다. 家訓類에서 제시하는 本分을 지키고 社會에 寄與하며 인성교육에 힘쓰고 삼가는 생활태도는 현대인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의 교육에도 참고할 만하겠다.
초록보기
秋齋 趙秀三(1762~1849)은 18세기 후반~19세기의 조선 후기 문학사에 있어 큰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인물이다. 中人胥吏출신인 까닭에 사회적 제약을 받기는 하였지만 그의 문학적 성과는 매우 탁월하다 하겠다. 詩文을 저작함에 있어 그가 보여준 독특한 取材방식과 인간과 사물에 대한 열린 視覺 등은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매우 충분하다. 문인 작가들의 작품이 그들의 행력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듯이 추재 또한 그러하다. 6번에 걸친 燕行체험은 그의 삶 곳곳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燕行詩로서 당시의 風光과 감상을 담아내었다. 때문에 추재의 연행시 연구는 그의 문학작품 전반에 걸쳐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라 여겨진다. 이에 본 연구자는 박사논문에서 연행시를 주된 대상으로 삼아 연구를 진행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연구자들이 기본 텍스트로 삼았던 연활자본 『추재집』이 심각한 편간의 오류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최근까지 작품의 연대순 배열로 구성되었다고 여겨졌던 연활자본 『추재집』은, 기실 작품의 著作時期를 감안하지 않은 편간이었던 것이며, 이는 추재의 燕行詩들을 분석하는 가운데서 더더욱 확실시 할 수 있었다. 추재의 연행은 모두 6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으므로, 연행의 차수에 해당하는 연행시의 순차적 배열이 작품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본 연구자의 박사논문에서는 주로 추재의 신자료인 『경원총집』과 규장각 필사본 『추재시고』 등을 토대로 하여 『추재집』 편간의 오류를 일부분 지적하고 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單發性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이후의 지속적인 검토와 대조, 그리고 자료의 수집과 분석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이에, 좀 더 정확하고 근거 있게 접근하기 위해 연활자본 『추재집』과 다른 필사본들을 꼼꼼히 교감하고, 『經원總集』, 『聯牀小諧』와 같은 추재 본인이 편간한 선본들을 활용하여, 『추재집』의 편차를 연대순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사안이라 판단된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진행시키는 과정 속의 중간 보고서라 할 수 있다. 향후, 書誌的 고찰과 관련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여 그의 연행의 전모와 특성을 규명하고, 문학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이기도 하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구산선생풍아(臼山先生風雅)』 연구(硏究)

나종선 ( Jong Seon Na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8권 0호, 2011 pp. 85-104 ( 총 20 pages)
5,500
초록보기
田愚(1841~1922)는 19세기 외세의 침략 앞에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과 무너져가는 도학적 질서를 지켜야만 했던 당대 최고의 도학자로서 간재는 도통을 계승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사명을 삼고자 하였다. 그간의 연구 대부분이 性理學을 照明한 것인 반면 문학에 대해서는 많은 시문과 산문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되지 않아 문학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간재의 문인 玄谷 柳永善(1893~1960)의 『玄谷集』을 보던 중 「臼山先生風雅跋」이 수록되어 있는 것에 착안하여 간재의 다른 시문집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 후 시문집을 찾으려고 노력하던 중 충남대학교 도서관에 소장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원래 간재의 시문은 『艮齋集』, 『秋潭別集』, 『臼山先生風雅』 등에 수록되어있다. 『艮齋集』에 수록된 시는 271수이고, 『秋潭別集』에 수록된 시는 17수이며 『臼山先生風雅』에 수록된 시는 모두 419수이다. 그 중 『艮齋集』에만 수록되어 있는 시는 98수이고, 또한 『추담별집』에만 수록되어 있은 시는 1수이다. 따라서 중복되는 시를 제외하면 현존하는 간재의 시는 총 518수이다. 본고는 『艮齋集』과 『추담별집』에 수록되지 않은 많은 시를 담고 있는 『구산선생풍아』의 시를 함께 정리하여 간재 시작품의 내용을 파악하고자 한다. ``『구산선생풍아』의 체제 및 형식``과 ``『구산선생풍아』의 내용``으로 정리하면 간재의 시작품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산선생풍아』를 발굴 소개하며, 아직도 미약한 구한말 일제강점기의 한문적 실상의 파악과 더 나아가 근현대 한시사 연구에 일조 하고자 한다.

품산(品山) 이수암(李壽암)의 삶과 문학 세계

박영호 ( Young Ho Park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8권 0호, 2011 pp. 105-134 ( 총 30 pages)
6,500
초록보기
품산 이수암은 1844년에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읍 저곡리에서 태어나 1924년 6월 7일에 81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삶의 궤적은 거주지에 따라 楮谷里·興邱里·乾坪洞 거주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품산은 家學으로 가르침을 받았고 붕우들과 강습을 통해 학문을 익혔다. 학덕이 일찍이 이루어졌지만 세상에 나아가려는 뜻을 접고 초야에 거처하며 학문 연마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집안사람과 자제에게는 엄정하였고 종족에게는 화목하였으며 붕우에게는 공경하고 정성스러웠다. 사람들에게는 화합하고 공손하였으며 세상일에는 신중하고 침묵하였다. 『품산집』에 수록된 품산의 시문은 시가 247제 320수, 서간문이 72편, 제문이 9편 등이다. 품산의 시는 칠언율시를 중심으로 하는 근체시가 대부분이며, 그 내용은 교유, 애도, 한정, 유람 등이다. 그의 시는 붕우, 친족, 향린 등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창작된 것이 특징이다. 세속적인 영리나 부귀를 초탈하여 자연 속에서 일상적으로 생활하면서 느낀 정회를 읊은 생활시이다. 서간문은 대체로 상호간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 중심이며, 제문은 운문체와 산문체가 혼재하고 장편으로 작성된 것이 특징이다.
5,700
초록보기
본고는 최사전의 묘지명과 열전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서 각각의 장르가 지니는 상이성과 유사성이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는데 어떻게 작용하고 있으며, 사실성과 역사성을 지향하는 역사서사가 작가의 목적의식과 그것의 표현방식에 따라서 달라지는 양상에 관해서 논의한다. 묘지명과 열전에서 드러나는 서술방식의 편차를 보면, 전자에서는 성품을 "충성스럽다"라고 직접 설명하는데 이는 인물을 추상화시켜 개성 있는 모습을 그려내지 못하게 한다. 반면 후자에서는 "공을 세운 덕에 한미한 가문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다."라고 하여 행적에 대해 논평한다. 이는 공을 세운 일련의 사건과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인물을 구체화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한다. 또한 서술자는 인물의 생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판단한 부분에 대화체를 구사하는데 최사전과 왕의 대화 내용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하는 바는 사뭇 다르다. 묘지명에서는 해당 인물의 변함없는 충성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비해 열전에서는 이자겸을 척결하기 위한 논의 과정에 중심을 두고 있다. 전체 분량을 안배하는데 있어서도 편차를 드러낸다. 묘지명은 인물명기, 관직, 처자손 등 반드시 필요한 정보와 개인의 행적을 다룬 일화 등을 모두 서술하여 고른 분포를 보인다. 반면, 열전은 개인 정보는 간략히 다루고 이자겸의 난과 관련된 일화는 밀도 있게 서술함으로써 일화에 집중한다. 즉 전자는 인물의 충직한 성품에 중심을, 후자는 사건의 진행과정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처럼,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더라도 서술자의 의도에 따라서 그 강조하는 바는 달라질 수 있다.

「광한루기(廣寒樓記)」 평비(評批) 분석 (2)

정길수 ( Kil Soo Chung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8권 0호, 2011 pp. 157-187 ( 총 31 pages)
6,600
초록보기
「廣寒樓記」는 「춘향전」을 한문으로 改作한 작품이다. 19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우리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비평 방식을 취하고 있어 일찍부터 주목받아 왔다. 본고에서는 「광한루기」의 주요 비평가인 小廣主人의 評批 중 回評과 夾批를 분석하였다. 「광한루기」의 評批者는 각 章回의 앞뒤에 回評을 삽입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외형상으로는 金聖歎의 評批에 비해 回評을 강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回頭評과 回尾評에 차별적인 역할을 부여하지 못한 채 다만 回尾評에서 때때로 「광한루기」와 느슨한 연관을 가진 에피소드를 자유롭게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작품에 대한 평가 역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광한루기」의 우수성을 자랑하거나 「광한루기」의 장점을 이해 못하는 ``창父``를 꾸짖는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어 충분한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작품과 비평의 긴밀한 대화에 이르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광한루기」 혹은 그 원작인 「춘향전」의 의미를 낮은 차원으로 제한하며 작품 해석의 지평을 축소하는 역효과에 이르기도 했다. 「광한루기」 夾批에서는 작품 본문과 적절하게 대화하면서 평비자의 재치가 발휘된 대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범한 서술 대목에 "敍事絶品!", "敍事佳品!" 등의 과장된 評語를 붙이고, 묘사 구절마다 "奇語!", "妙妙!", "奇文! 妙文!" 등의 評語를 남발하는 등 구체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극찬이 이어지면서 夾批가 상투적인 말로 채워지는 약점이 노출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광한루기」의 回評과 夾批 모두 작품 본문과 밀착해서 대화하며 재기발랄하게 작품 안팎의 세계에 대한 도저한 인식을 보여주는 評點批評 특유의 장점을 충분히 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점 金聖歎의 『西廂記』 評批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 없이 그 외면적 형식만을 차용하여 재치를 발휘해 본 「광한루기」 評批者의 戱作 취향 때문으로 생각된다.

19~20세기 강우(江右) 문인(文人)의 김강산(金剛山) 유람(遊覽)과 한시(漢詩)

문정우 ( Jung Woo Moon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8권 0호, 2011 pp. 187-209 ( 총 23 pages)
5,800
초록보기
본 연구에서는 19~20세기 강우 문인의 금강산 유람의 목적과 금강산 한시의 情景 표출양상을 살펴보았다. 19~20세기 강우 지역 문인에게 금강산 유람은 흥취와 풍류의 목적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결단하여 찾아가는 소중한 경험의 국토 순례였다. 금강산 유람의 또 다른 의미는 遊山과 함께 서남쪽 바다가 아닌 망망대해의 동해 바다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觀海의 결과 정신 경계를 드넓혀 우주적 이치를 탐험하고자 하는 지적자극까지 받았다.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의 정경 표출 양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웅대한 규모 앞에 인간의 왜소함, 슬픔과 상실, 선계에 대한 동경, 탈속지향적 정신세계보다는 바탕과 문식의 조화를 떠 올리며 자연의 이치에 몰입하여 순수하게 감탄하는 감상법을 취하고 있었다. 둘째 금강산 한시가 동적 심상이 주조를 이루는 반면 19~20세기 강우 문인의 금강산 한시에는 靜寂의 요소가 근저에 자리 잡고 있었다. 靜的인 기반 위에 動的 심상을 사용하여 비애의 감정으로 흐르거나 격한 표현에 그치지 않았다. 셋째 19~20세기 강우 문인의 금강산 한시에는 자아성찰과 反求諸己의 정신이 담겨 있었다. 그 이유는 강우 문인이 금강산을 찾아 나선 것은 결국 금강산이 아니라 자신을 탐험하고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본 연구를 통하여 성취한 문학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19~20세기 강우 문인의 한시의 정경 표출은 금강산이라는 객체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창작 주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표출되어 있는 점을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금강산 한시의 표출 양상에서 일정한 전형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특색은 강우 문인 사이에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었다. 이 점은 19~20세기 강우 문인의 금강산 한시가 가지는 중요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애제류(哀祭類)의 갈래 성격과 글쓰기 특성

김종철 ( Jong Cheol Kim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8권 0호, 2011 pp. 209-228 ( 총 20 pages)
5,500
초록보기
본고는 한문학 자료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애제류 산문의 갈래를 정리 분석하고, 그 각각의 갈래들이 지니는 연관성과 개별적 특성을 정리하여 우리 한문학사에 나타나고 있는 애제류 문장의 글쓰기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哀에 속하는 哀辭, 弔辭, 뢰文 悲文, 傷辭, 輓辭, 挽歌, 冊(哀冊, 諡冊), 哀贊 등과, 死者와 天地, 山川, 宗廟, 社稷, 諸神 들을 대상으로 기원하는 祭에 사용된 盟, 齋詞, 願文, 醮辭, 贊饗文, 靑辭, 祭文, 祝文, 告祭, 招魂, 告文, 祈文, 冊(祝冊,祭冊), 玉牒文, 表本, 上梁文, 上牌文, 道場榜, 道場疏, 疏語, 齋文, 靑詞, 告牒, 投簡, 解語, 하辭, 禱 등과 같은 다양한 문류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애제류 문장들의 형식과 수사는 전통성과 전범성을 우선시하는 문체 특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일정한 형식과 투식어로 이루어지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亡者를 애도하는 哀冊이지만 문체특성은 祭文에 가까운 「拜昌陵竹冊文」, 문장의 내용과 효용성에 적합한 檄文이라는 갈래 대신 死者에게 쓰는 祭文이라는 갈래를 선택하여 창작함으로서 우회적으로 문장의 효용성과 의미 그리고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고자 한 「祭蘇정方將軍文」, 조선전기 『동문선』 편찬자들이 지녔던 애제류 갈래분류의 관점을 보여주는 「天王院齋詞」같은 작품들은 애제류 문체가 지닌 한계를 극복한 매우 의미 있는 작품들로 평가된다.

문예에 대한 왜곡된 시선, "완물상지론(玩物喪志論)"에 관한 소고

신영주 ( Young Ju Shim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8권 0호, 2011 pp. 229-263 ( 총 35 pages)
7,000
초록보기
본고는 ``玩物喪志``라는 말의 사회적 함의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다르게 바뀌어 갔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 의미 변화의 맥락을 짚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 ``완물상지``는 문예나 또는 技藝의 영역을 기반으로 형성되어 다양한 층위에서 변용되었다. 그만큼 다층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런 이유로 이를 통해 문예에 대한 인식의 다양한 층차에 접근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본고는 이를 실증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작업의 하나이다. 색다른 시각에서 문예사의 전개 과정을 엿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가늠자로써 이 ``완물상지``라는 말을 활용하여 보았다.

訓고學初探

한연석 ( Youn Suk Han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48권 0호, 2011 pp. 263-301 ( 총 39 pages)
7,400
초록보기
훈고학은 漢語文字學 전 영역을 아우르고, 훈고의 대상은 민속, 예술, 정치, 군사, 농경, 천문, 역법, 의례, 산천초목 등 자연현상을 망라한다. 訓고란 古籍의 字, 詞, 句 등의 ``알기 어려운 옛말을(고) 지금의 말로 쉽게 해석해내는(訓)`` 행위를 가리키고, 訓고學이란 고대 문헌언어를 해석하는 방법과 규율을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즉, 前代의 훈고재료와 前人의 훈고작업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문으로, 훈고 행위를 통해 드러난 규율, 이론, 방법, 체제 등을 연구하고 체계화 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아울러 古語의 새로운 연구방법과 이론을 계발하는 것 또한 훈고학의 임무이다. 정식으로 훈고를 수행한 사람들은 漢代 經學家들이었다. 훈고학가들은 경전 주석을 훈고의 실천대상으로 삼고, 문헌의 正文 뒤에 傳, 說, 解, 詮, 疏, 證, 고, 注, 正義 등등의 이름으로 주석을 가하기도 하고, 일정한 원칙에 의거 纂集, 編排한 훈고 材料集 혹은 訓고專書들을 생산해내기도 하였다. 훈고학은 東周시대부터 진행되어온 훈고행위를 기초로 형성되었고, 漢代 注釋과 訓고書가 생산되면서 정식 형성되었다. 訓고는 古今의 시간차, 사용 공간의 異同, 雅言과 俗語, 가차자의 사용 등으로 이를 소통하기 위해 생산되었다. 訓고는 文字異形의 판명, 詞義의 해석, 文意의 파악, 篇章과 語法의 분석, 名物, 制度, 習俗, 風習의 규명, 句讀의 확정과 誤謬의 정정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훈고형식은 彼訓釋部分, 訓釋部分, 訓釋術語 등 3부분으로 이루어고, ``A는 B이다.``식의 直訓과 동일한 한 개의 詞로 意義가 相同, 相近한 몇 개의 詞를 訓釋하는 同訓, 특정한 ``詞``가 구체적 언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쓰였나``를 규명하는 文意訓釋, 설명 중심의 下義界란 훈석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訓고 재료는 纂集類, 考證類, 注解類가 있으며, 훈고학에서 문헌 중의 詞義를 규명하는 방법으로는 字의 형체분석을 통해 義를 규명하는 以形說義, 音을 중심으로 義를 규명하는 因聲求義, 句文의 비교를 통해 義를 규명하는 比較互證, 실제의 경험을 통해 義를 규명하는 훈고방법이 사용된다. 한문학뿐만이 아니라, 全 국학분야 발전을 위해서 훈고학의 보급이 필요하다. 훈고학의 도입은 간독, 비문 등 요즈음 새로이 발굴되고 있는 삼국시대 출토문헌을 우리 한문학계의 연구영역으로 편입시킬 수 있고, 국어나 전적 중의 한자의 音義에 대한 명확한 규명과, 경서를 비롯한 전적을 한층 깊고 새롭게 해독할 수 있을 것이다. 한문학계의 학문영역 확대와 학문발전을 한 단계 고조시키기 위해 훈고학의 도입은 매우 필요하다.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