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동방한문학검색

Dongbang Korean Classic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68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6권 0호 (2018)

한국 한문학의 용사(用事)와 지적(知的) 체계(體系)에 대한 연구

김선화 ( Kim Sun-hwa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76권 0호, 2018 pp. 7-41 ( 총 35 pages)
7,500
초록보기
본고는 용사론이 고전 시학에서 어떻게 문학이론으로 자리를 잡고 수사방법의 하나로 발전해 나갔는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고전 시학에서 용사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규보의 『白雲小說』·이인로의 『破閑集』·최자의 『補閑集』을 바탕으로 고려 문인의 용사론과 용사 활용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 서거정의 『東人詩話』를 중심으로 조선 초기 용사론을 고찰한 다음 조선 문인의 용사 활용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한 한국한문학의 용사와 지적체계에 대한 연구이다. 용사는 기본적으로 故事를 인용하는 기법인 만큼 표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용사가 어떻게 표절이 아닌 수사학적 기교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 비평서들은 시를 지을 때는 자신의 깊은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학습한 내용을 끊임없이 자기화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함을 주장한다. 또한 용사의 부적절한 활용에 대해서 이인로는 點鬼簿, 西崑體라는 표현으로 경계를 했고, 이규보는 ‘九不宜體’를 통해 적절치 못한 作詩法을 제시하였으니, 작가가 용사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용사 사용에 앞서 지식을 넓히고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을 선택하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용사는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 등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作詩法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을 단순히 인용만 한다면 그것은 용사가 수사법의 하나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표절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된다. 현재 상황에 대치되는 과거의 일을 작자의 문학적 안목과 수사 기교를 통하여 자신의 상황에 맞게 변형하고, 알맞게 재구성된 과거의 일을 통해 현재 상황을 연상 할 수 있을 때 用事가 단순 인용이나 표절이 아닌 창작행위이자 하나의 수사기법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용사의 대상 범위를 규정하고 그 내용까지 구분한 것을 봤을 때 고려시대 시인들이 용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중기에는 宋詩風이 만연하여 무분별한 용사가 이루어져 표절도 서슴치 않던 당시 詩壇에 대한 반성적인 시각이 등장하였다. 허균과 이수광은 모두 송시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으며 더불어 과도한 용사를 배격하고 독창적인 표현을 할 것을 독려하였다. 정약용은 용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는데 아들에게 시를 짓기 위해 용사 활용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지적하여 용사 학습이 한시를 짓는데 분명히 필요한 요소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인용하는 서적과 고사의 범위가 대부분 중국에 국한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우리나라의 서적을 적극 인용할 것을 권하기도 하였는데, 용사 활용에 대한 조선시대 문인들의 고뇌가 엿보인다. 일반적인 시어가 언어적 감수성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용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용사는 작품 안에 사용된 어구를 통해서 그 말이 본래 지닌 배경적 사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용사를 운용할 때는 반드시 유래처가 있어야 독자가 축자적인 의미를 넘어선 배경적 사건을 떠올려 시구의 참된 의미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영편(晝永編)』 연구 -지식의 형성 배경과 서술 태도에 관하여-

서한석 ( Seo Han-seok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76권 0호, 2018 pp. 43-71 ( 총 29 pages)
6,900
초록보기
『晝永編』은 조선 후기의 학자 鄭東愈의 저술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저자는 이 책을 “긴 여름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썼다고 하고 또 “짜임새나 순서가 없어 심심풀이로 보기에도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는 스스로의 겸사일 뿐 실상과는 다르다. 상하 2책 총202칙에 이르는 이 책은 규모는 작지만 역사, 학술, 언어, 역법으로부터 풍속, 지리, 명물 호칭 등 다양한 방면에 걸친 흥미로운 기사들이 실려 있다. 18~19세기 조선은 類書나 차기체 필기류가 유행하던 시기이다. 『주영편』은 이러한 문학사적 배경에서 저술되었고 두 가지 특징을 겸하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각각의 항목들이 체계적으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서보다는 차기체 필기로서의 면모가 도드라진다고 본다. 이에 본고에서는 차기체 필기의 관점에 입각하여 『주영편』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주영편』은 정동유의 만년의 저술로 저자의 폭넓은 독서와 노년의 학예적 성취에 기반한 학술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정동유는 家乘과 師承을 통해 폭넓고 다양한 지식을 축적하고 기존의 통념과 속설의 모순점을 합리적인 의심을 통해서 부정하였으며, 명확한 실증적 근거를 통해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산출해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영편』은 『芝峰類說』로부터 받은 영향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봉유설』에서 비롯된 名物考證學의 전통이 『星湖僿說』과 『松南雜識』, 『五洲衍文長箋散稿』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주영편』 또한 이러한 시대 배경과 문학사적 연속선 상에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난실담총(蘭室譚叢)』의 편찬 시기와 지식 구축 방식

윤세순 ( Yun Se-soon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76권 0호, 2018 pp. 73-102 ( 총 30 pages)
7,000
초록보기
『蘭室譚叢』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학자인 成海應(1760~1839)이 편찬한 저작이다. ‘蘭室’은 성해응의 號인데, 좋은 친구나 본받을 만한 훌륭한 사람이 있는 곳을 비유한 말이다. 또한 蘭臺와 같은 뜻으로, 漢나라 때 궁중에 있던 藏書閣의 이름이기도 하다. 성해응은 이 두 가지 의미를 아우르는 차원에서 ‘난실’이란 호를 채택했을 것이다. 성해응은 29세 때인 1788년(정조12)에 규장각 檢書官이 되었는데, 이후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던 각종 서책들을 마음껏 열람할 수 있었고, 뛰어난 학자인 이덕무·박제가·유득공 등과 학문을 토론하고 담소를 즐기며 학자로서의 황금기를 보냈다. 따라서 『난실담총』은 성해응이 다양한 분야의 많은 서적을 열람하고, 당대의 박식한 학자들과 교유하여 폭넓은 견문을 얻을 수 있었던 규장각 검서관 시절 기획되어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난실담총』의 정확한 자료수집 기간과 편찬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전체내용을 자세하게 읽어보니, 자료를 채록한 시기를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자료수집 기간은 최소한 20여년(1789~1812)임을 알 수 있었다. 『난실담총』은 총6권으로 『연경재전집외집』 56권부터 61권까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子餘 부문에 해당한다. 또 자여 부문 안에서도 筆記類로 분류해 놓았다. 권1에 수록된 내용은 주로 국가 제도 및 왕실과 궁궐에 관련된 것들이다. 권2에 수록된 내용은 주로 관직제도와 조정의 벼슬아치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권3에 수록된 내용은 주로 남다른 면모를 지닌 인물, 이름과 호칭, 풍속, 복식, 장례, 국방, 역사적 공간과 관련된 것들이다. 권4에 수록된 내용은 주로 식물, 동물, 奇石, 글자, 귀신, 외국과 관련된 것들이다. 권5에 수록된 내용은 주로 명말청초 시기와 관련된 인물과 사건, 그리고 청나라와 관련된 것들이다. 권6에는 주로 考證, 서책, 서화, 종교, 歸化人, 금석문과 관련된 것들이다. 『난실담총』에 수록된 내용이 이처럼 다양하고 폭넓은 것은 18,9세기 조선의 학술계에 유행했던 박물학의 영향을 받은 성해응의 박물학적 지식취향 때문이다. 『난실담총』은 필기류 양식이 변화를 겪고 있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도 필기류 본연의 글쓰기 방식인 述而不作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다. 성해응은 자신이 견문한 사실이나 문헌 기록들을 정리하여 『난실담총』에 지식정보로 구축해 놓았는데, 본고에서는 지식구축 방식을 6가지로 나누어 파악해 보았다. 지식구축의 6가지 방식은 다음과 같다. ① 직접 목격하거나 측근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로 구축 ② 동일하거나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를 하나의 항목으로 묶어 구축 ③ 기존 문헌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고 재구성하여 구축 ④ 기존 문헌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겨와 구축 ⑤ 기존 문헌의 내용에 후속 정보를 보완하여 구축 ⑥ 한 서책에서만 발췌하여 구축 『난실담총』은 외양적으로는 이것저것 모아놓은 잡다한 기록물처럼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일정한 체계를 갖추어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각 항목에 적절한 제목이 달려 있고, 서로 비슷한 類에 속하는 항목들이 모아져 있다. 이는 『난실담총』이 類書의 형식을 어느 정도 모방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동선기(洞仙記)」 전고(典故) 연구

엄태식 ( Eom Tae-sik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76권 0호, 2018 pp. 103-132 ( 총 30 pages)
7,000
초록보기
본 연구의 목적은 「洞仙記」에 인용된 典故의 기능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동선기」의 특징은 작품에 수많은 전고가 인용되어 있다는 점인데, 「동선기」의 전고는 등장인물 간의 편지와 대화 속에 집중되어 있다. 전고의 분량은 작품의 1/3 가량이지만, 그 부분의 밀도는 다른 부분보다 훨씬 높다. 「동선기」에 사용된 전고는 대부분 修辭的인 것들인데, 문맥에 맞지 않거나 부적절한 전고의 인용도 확인된다. 「동선기」의 작자는 재자가인소설의 흥미로운 서사에다 전기소설의 미려한 문체를 아우르면서 자신의 지식과 文才까지 과시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동선기」는 17세기 창작된 소설로 추정되는데, 17세기 한문소설 가운데는「동선기」처럼 많은 전고가 인용된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작품의 내용보다는 지식과 文才의 과시에 창작의 목적이 놓여 있는 한문소설들이 출현하였다. 이런 종류의 소설들에는 다양한 문예 양식과 수많은 전고들이 서사를 압도할 정도로 과도하게 삽입되어 있다. 「동선기」는 이러한 흐름의 형성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작품으로 생각된다.

초사(楚辭) 「초혼(招魂)」의 수용(受容)과 확산(擴散) -조선시대 지식형성의 특징을 중심으로-

신두환 ( Shin Doo-hwan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76권 0호, 2018 pp. 133-166 ( 총 34 pages)
7,400
초록보기
이 연구는 「초혼」의 수용과 확산을 조선시대 지식의 형성과 특징을 중심으로 연구한 논문이다. 「초혼」은 초사 중의 독특한 문체로서 사후세계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과 초나라의 샤머니즘, 그리고 민속 문화가 풍성하게 함의되어 있는 고대 시가문학의 걸작이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이 함의하고 있는 풍부한 상상력과 수사력은 시가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그 슬픈 감정의 순수한 정감은 상례의 전범으로 발전하였다. 천당과 지옥의 사후세계에 대한 상상력은 동양 역사상 최초의 창의력이었으며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후대로 오면서 「초혼」은 계속 읽히고 비평되면서 수많은 작품으로 수용되고 확산되면서 최근까지도 초혼의 주제의식은 영화, 대중가요, 시가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확산되고 있다. 「초혼」은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그 위상과 문예미학의 우수성이 입증된 명품이다. 위대한 작품은 수용되고 확산된다. 「초혼」은 조선시대 문인들에 의해 애송되었고, 지식의 형성과 특징을 바탕으로 수용되고 확산되면서 조선의 만사에 「초혼」의 문구가 없으면 시가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게 수용되고 있었다. 「초혼」은 다양한 장르에 수용되고 확산되면서 조선의 문학 속에 앙금처럼 녹아서 영롱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말 표기 수단의 탄생과 세조대 불전(佛典) 번역의 이면

신상필 ( Shin Sang-phil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76권 0호, 2018 pp. 167-193 ( 총 27 pages)
6,700
초록보기
우리는 중국 문명의 거대한 흐름과 역사를 함께 해왔다. 그만큼 한자문화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이 점에서 한문을 적극수용하고 높은 수준에 도달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분명히 각인시켜왔다. 그리고 그 과정은 한문에 대한 이해이자 자기화 과정이며, 달리 말하자면 번역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신라 薛聰의 經書 口訣의 파급력과 崔致遠의 수준 높은 문학적 성취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고려를 거치며 깊이를 갖춘 불교 중심 사회는 그 학적 역량을 불전의 번역으로 제고하였다. 다만 고유의 표기수단을 갖지 못한 관계로 借字表記를 통해 불교의 교리를 전수하고 학습하였다. 釋讀口訣이 그것이다. 그런데 석독구결은, 14세기를 지나며 禪宗이 불교계의 주도권을 얻으면서, 수양과 대중을 고려한 音讀口訣로 중심을 옮겨갔다. 우리말 어순을 고려한 석독구결은 불교 교리의 이해를 중시하는 과정에서 불전에 대한 깊이를 더할 수 있었고, 이렇게 다진 불교계의 역량을 기반으로 대중화 경향에 음독구결의 간편함을 추구한 것이다. 이때 明淸 교체의 동아시아 전환과 함께 조선이 건국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귀족 중심의 불교 사회가 국왕과 사대부 주도의 유교 국가로 탈바꿈한 것이다. 더구나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는 문명 전환의 유용한 도구가 되었고, 번역의 혁신을 가져왔다. 그 이전은 물론 이후로도 구결을 통한 번역은 여전히 유효하였다. 태종을 시작으로 유교 경전과 불전에 대한 구결작업이 이어졌고, 세종은 훈민정음의 창제와 동시에 실질적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문명 전환의 국가적 기획은 세조가 계승하여 직접 유교와 불교의 경서에 대한 구결과 언해 작업을 주도하였다. 나아가 농서, 의서, 관용문서에도 적극 활용함으로써 독자적인 표기 수단을 통한 지식의 보편화를 기획하였다. 결론적으로 조선 전기의 번역을 통한 문명 전환의 국가적 기획은 한자문화권의 공고함을 넘지는 못하였다. 이후 성종에 이르러 문화적 전성기를 맞은 것으로 평가되지만, 유교 중심의 국가 체계를 확립했다는 점에서는 다양성을 잃었다고 하겠으며, 번역을 통한 자기화의 측면에서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으나 한글 번역의 보편화와 대중화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조선전기의 문명전환은 국왕 중심의 국가 주도이자, 집현전 출신 학자와의 협업이었다는 점에서 그 과정을 보다 세밀하게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그 재조명 과정에서 경주된 다양한 노력과 쇄신을 사대부사회의 현실적 이면에서 읽어내기 위한 한 과정이다.

심성(心性)의 문학적 형상화와 그 기록에 대한 연구

우지영 ( Woo Jee-young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76권 0호, 2018 pp. 195-223 ( 총 29 pages)
6,900
초록보기
‘신령스럽고 밝은 집’이라는 뜻의 ‘神明舍’는 인간의 심성을 건축물에 비유한 명칭으로, 마음이 머무는 집을 의미한다. 본 논문에서는 신명사를 가상적인 공간으로 설정하여 이 공간의 유래와 구조, 마음을 잃는 과정과 되찾는 과정에 대한 경위 등을 기록한 記文인 「神明舍記」에 주목하여 연구를 진행해 보았다. 신명사를 소재로 하는 기문은 주로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문인들에 의해서 주로 지어졌는데, 본 논문에서 대상으로 하는 작품은 바로 尹光啓, 張維, 姜大遂, 鄭弘溟, 河溍에 의해 지어진 「神明舍記」이다. 「신명사기」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머무는 곳을 공간적으로 형상화하여 추상적인 개념을 가시적인 것으로 치환하고, 인간의 심성을 여러 가지로 의인화하여 표현하였다. 또한 올바른 마음을 잃어버렸다가 되찾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기술함으로써 상실된 마음을 회복하고 심성 수양으로 나아가려는 목표에 도달하는 방도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마음을 성찰하고 수양하여 신령스럽고 밝은 마음을 상실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교훈적 가르침을 여러 가지 문학적 수사로 참신하고 생동감 있게 전달하였다. 본 논문에서 연구 대상으로 한 작품들은 곧 마음의 근원을 궁구하고 올바른 본성의 이상적 실현을 위한 방안에 대해 고심한 흔적의 소산물임과 동시에 심성론과 관련된 경서의 전고를 적절히 수용하여 교훈적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다소 희작적인 창작 기법이 교차하는 문예지향적 작품이라고 그 의미를 평가해 볼 수 있겠다.

조선중기(朝鮮中期) 승려한시(僧侶漢詩)의 도검의상(刀劍意象)에 대한 고찰(考察)

조혁상 ( Cho Hyuk-sang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76권 0호, 2018 pp. 225-257 ( 총 33 pages)
7,300
초록보기
1592년에 開戰된 임진왜란은 조선 역사에 있어서 미증유의 전쟁이었으며, 동시에 조선 중기의 刀劍文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크나큰 사건이었다. 이러한 왜란 시기 동안 사대부들의 전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도검문학 작품들이 탄생하였고, 이를 근저로 하여 17~18세기에 다양한 문체의 刀劍文學 作品群이 창작되는 潮流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전후로 창작된 도검문학작품들 중에서 僧侶와 僧兵將의 禪詩와 漢詩들을 살펴보면, 특이하게도 刀劍意象이 그 안에 담겨있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16세기 말기 선시와 戰爭護國詩에서의 도검의상은, 수행을 통해 破邪顯正을 이루는 心劍인 禪劍과 文殊菩薩의 지혜의 검인 般若劍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護國佛敎의 護國劍적인 의미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불법에 대한 정진의 신념과 불교적인 지혜의 관념, 호국불교를 바탕으로 한 구국의 일념이 도검의상에 담겨서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다는 점은, 조선중기의 도검문학이 보여주는 또다른 면모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선검과 반야검을 다룬 시들은 禪詩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으며, 호국검을 다룬 시의 경우에는 오히려 사대부의 邊塞詩에 가까운 풍격을 보이고 있는 점이 확인된다. 본고에서는 16~17세기 朝鮮漢詩 중 승려들에 의해 창작된 한시의 刀劍意象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樣態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佛敎的 刀劍意象의 개념과 실체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알아보고, 주로 승병장과 여타 승려들의 한시 속에 나타난 도검의상의 세 가지 양태인 선검, 반야검, 호국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에 대한 애제문(哀祭文) 연구

조영임 ( Cho Young-lm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76권 0호, 2018 pp. 259-287 ( 총 29 pages)
6,900
초록보기
본 연구는 故人을 애도하는 형식의 글인 ‘애제문’을 중심으로 임진왜란당시 순절한 泉谷 宋象賢(1551∼1592)에 대해 당대 문인이나 후대인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공적·사적인 애제문을 통해 국가와 개인은 어떻게 그를 위로하였는지, 또 그 속에서 문학은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송상현에게 내려진 9편의 사제문에는 殺身成仁, 義重恩輕, 端坐不動, 顔杲卿 등의 몇 개의 핵심 키워드를 지속적으로 중복, 변주한 것으로 보아 관념화된, 규범화된, 정형화된 節義의 표상으로 추숭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송상현 사후 200여 년 동안의 조선 사회에서 그가 취한 大義라는 가치를 높이 선양할 목적과 이유가 분명히 있었으며, 국가는 사제문을 통해 이를 적극 활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사제문과 달리 일반 애제문에서는 송상현의 죽음 자체를 애도하고 슬퍼하는 私情이 표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제문은 표면적으로 애도를 내세우면서 국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이념에 걸맞는 인물을 끊임없이 표상하여 추숭하는 한편 국가적 차원에서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무하였던 고도의 정치적 문학양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애제문에서 고인을 잃은 상실감을 통곡, 한탄, 비탄, 부끄러움, 안타까움, 슬픔, 구차함 등의 다양한 감정으로 言表하였는데, 그것 자체로 ‘자기 위로와 치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쏟아내는 행위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는 천곡 송상현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단서를 제공함과 동시에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상흔을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서 문학의 기능에 주목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인명용 한자’ 자형 및 자음 표준화 방안 연구

조성덕 ( Cho Sung-duk )
동방한문학회|동방한문학  76권 0호, 2018 pp. 289-318 ( 총 30 pages)
7,000
초록보기
우리나라의 ‘人名用漢字’는 여러 차례에 걸쳐 범위가 확대되었으며, 2009년에는 주민 인명용 한자와 호적 인명용 한자를 통일하여 주민등록 발급 및 열람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인명용한자’ 확정에 명확한 원칙이 정해지지 않아 일부 자형과 자음에 혼선이 나타난다. 그 중에는 이체정보 오류로 인한 음가오류와 동일한 한자가 음가에 따라 이체자가 다른 경우가 있었다. 또 KS에 포함되지 않은 자형이 대표자로 수록된 경우와 속자가 대표자인 경우가 있었으며, 자형 판독 오류로 인해 자형이 중복된 경우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명용한자’의 기본 원칙의 수립이 필요하다. 한번 예외 조항을 두기 시작하면 결국 유사한 자형의 이체자와 이음자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향후에 발생한 문제 및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명용한자’의 자형과 자음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국가기관이 주축이 되어 한자의 대표 자형을 체계적으로 제정한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체자 정보 오류도 대표자 제정과 맞물려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정자를 규정하는 원칙이 세워지면 속자를 포함한 이체자 문제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인명용한자’의 정리방안을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 번째는 현재 등록된 한자의 빈도를 추출하여 빈도순으로 정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현재 등록된 한자의 이체관계를 검토하여 유형별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인명용한자표」에 나타난 문제가 개선될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