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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mparative Study of Worl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175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7권 0호 (2014)

적지전설의 전승과 변이 연구

임철호 ( Cheol Ho Lim )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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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전설은 국내의 문헌설화와 구비설화, 그리고 조선족의 구비설화와 조선족설화 등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적지전설은 증거물인 ``적지``의 명칭 유래담인 동시에 도조의 영웅성과 이성계의 조선왕조 창업이 용의 보은에 의한 것이라는 정치적 성격과 기능도 지닌다. 적지전설은 전승의 시기와 매체, 그리고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변이를 보인다. <용비어천가>의 적지전설은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면서 도조와 이성계가 신화적 영웅으로 변이되어 있다. 『여지도서』는 지리서라는 책의 성격 때문에 민간전승의 설화를 그대로 수용하여 전설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적지전설 전승에 포함시킬 수는 없지만 거타지설화와 작제건설화도 전반적인 내용은 적지전설과 같다. 그러나 도조와 이성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또한 적지 유래담이 아니라는 점에서 독자적으로 전승되던 ``악룡 퇴치 이야기``를 각기 다른 경로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비설화로 전승되는 적지전설은 정치적 성격이 약화된 반면에 전설로서의 성격은 강화되어 있다. 등장인물도 도조와 이성계 두 사람에서 이성계 한 사람으로 단순화되어 있고, 증거물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야기 또한 다양해졌다. 민간전승의 구비설화로 전승되는 적지전설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변이는 증거물의 소재지가 국내에서 중국으로 확장되고 있는 점이다. 조선족의 적지전설은 국내의 적지전설과 다른 양상으로 전승되었다. 도조와 이성계의 영웅성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은 같지만, 이성계가 신화적 영웅이 아니라 민족적 영웅으로 변이되어 있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조선족 적지전설의 경우 증거물이 중국이 아닌 국내에 있기 때문에 전승에 상당한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에 있는 증거물과 연결되면서 적지전설의 내용 또한 다양한 변이를 보이게 되었다.

손창섭의 『길』이 제기하는 몇 가지 문제들

김영찬 ( Young Chan Kim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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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개발``과 ``근대화``라는 명제가 한국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잘 살고 싶다``는 대중적 욕망이 급격하게 분출하고 넘쳐나던 시대였다. ``성공``은 그 시대 대중들의 망탈리테를 점거한 지상(至上)의 가치였으며 ``성공의 로망스``는 개발동원 체제의 지배논리 및 이데올로기와 결합해 하나의 마스터플롯으로 기능하면서 강력한 수사적 호소력을 발휘했다. 손창섭의 장편소설 『길』은 성공을 꿈꾸는 16세 소년 성칠의 서울 상경기를 통해 그 성공의 로망스를 문제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럼으로써 그는 정당한 방법으로 성공하는 것을 가로막는 한국 자본주의 근대의 온갖 부정과 비리를 폭로한다. 문제는 『길』에서 나타나는 경제윤리의 담론이 1960년대 박정희 개발동원 체제의 지배논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정부패의 일소``라는 처방 마찬가지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길』의 담론은 근본적으로는 1960년대 박정희 체제한국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논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거꾸로 그 자신이 비판하는 그 지배체제의 담론과 한편으로 겹쳐져 그러한 지배담론의 맥락에서 읽히고 기능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이 제기하는 한국사회 비판의 담론이 곧바로 지배체제의 담론아래 포섭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소설이 한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한국사회의 타락한 자본주의적 현실과 정신주의 및 도덕주의의 화해 불가능성이다. 이 소설은 오히려 1960년대 한국사회에서 개발동원체제가 만들어낸 실제의 현실과 그 체제의 이데올로기가 강조하는 정신주의와 도덕주의의 필연적인 모순과 균열을 폭로한다. 손창섭의 『길』이 제기하는 한국사회 비판의 담론이 1960년대의 이데올로기적 지형 속에서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역설의 위험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거꾸로 그러한 모순과 균열을 증상적으로 드러내는 지점으로 기능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데 볼 때 우리는 1960년대의 담론적·이데올로기적 지형 속에서『길』이 드러내는 저 역설은 차라리 한국사회 자본주의의 성격을 둘러싸고 지배담론과 비판담론 사이에 벌어지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쟁투의 현장을 집약해 보여주는 증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청루운어(靑樓韻語)』 판본 연구

이기훈 ( Ki Hoon Lee ) , 황영희 ( Yeong Hi Hwang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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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明 萬曆 44년에 張夢徵이 편찬한 책으로 晉나라에서 명나라까지 모두 180명의기녀가 창작한 주요 작품 500 여수(시 449수, 사 43수, 곡 7결, 구 1연)를 수록한 청루시가총집인 『청루운어』의 판본에 관한 연구이다. 본문에서는 먼저 선행연구 검토를 통해 기존연구 사항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청루운어』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는 李曉寧의 『晩明風月文化: 以『靑樓韻語』爲探討核心』이란 석사논문이 유일하다. 이 논문은 기본적인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소략하고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하지 못했다. 따라서 가장 기초 단계인 『청루운어』 판본부터 새롭게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필요성을 갖는다. 본고에서는 본 연구팀의 자료 조사와 현지 답사를 통해 확보한 『청루운어』의 모든 판본에 관해 구체적인 비교·분석을 진행하였다. 지금까지 확인한 『청루운어』 판본은 모두 5종으로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明 萬曆 44年 刻本 『靑樓韻語』 2. 明 崇禎 6年 重刊本 『閑情女肆』 3. 民國 3年 掃葉山房 石印本 『靑樓韻語』 4. 民國 3年 同永印局 影印本 『靑樓韻語』 5. 民國 24年 中央書店 重刊本 『靑樓韻語』 각 판본 간의 이동을 면밀히 고찰한 결과 현존하는 『청루운어』 판본은 시기와 발행 주체에 따라 문헌 형태 즉 판식, 자형, 서발문의 순차, 추가된 서발문, 본문의 체례, 판화의 위치와 분량 등에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내용상 커다란 차이는 보이지 않으며 모두 만력 44년각본을 저본으로 삼아 만들어진 동일 계열 판본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학술적 연구를 위해서는 응당 原刻本인 만력 44년 각본을 저본으로 삼아야 한다. 다만 서발문을 통한 역대문인들의 『청루운어』에 대한 인식을 고찰하려면 동영인국 영인본에만 나오는 「청루운어변언」까지 포함해야 하고, 『청루운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판화에 대해서 연구하려면 원각본은 물론 각 판본에서 변형된 형태, 수량의 차이 등을 상호 비교해야 할 것이다. 즉 연구 주제와 각도에 따라 5종의 판본을 적절하게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고에서 정리한5종의 판본에 대한 기본적인 書誌사항과 특징은 향후 본격적인 『청루운어』 연구에 일정한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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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란은 이슬람권 국가에 속해 있지만,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는 미트라교(Mithraism),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페르시아 불교(Persian Buddhism), 수피즘(Sufism), 마니교(Manichaeism), 네스토리우스교(Nestorianism), 마즈닥교(Mazdakism)로 연결된다. 고대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조인 사산(기원후 226-642)조는 조로아스터교, 불교, 마니교, 기독교와 마즈닥교의 다종교문화의 사회로 이루어져 있었다. 7세기 중엽 이후 이슬람교가 페르시아에 유입된 후 셈족의 일신교인 이슬람교가 성행했지만, 중세 이슬람시대에도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문화는 수면아래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다. 이런 페르시아의 종교 계보에 관해 종교학적 관점에서 상호 비교·분석해보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예컨대 마니교는 개혁적 성향의 신불교라는 것이 일부 이란 학자의 관점이며, 수피즘 이후 등장하는 종교이다. 이란에서 세력을 얻은 네스토리우스교를 제외하고,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는 범신론의 토대위에 놓여있다. 지역적인 관점에서, 고대와 중세에 걸쳐 형성돼온 페르시아권에 관해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의 핵심 국가는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이란과 파키스탄이다. 페르시아권의 철학 역시 이런 관점에서 조정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인도 베단타와 페르시아의 범신론과의 연관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파니샤드라고도 불리는 베단타철학은 페르시아의 애르펀(Mysticism)과도 그 체계가 아주 유사하다. 페르시아 애르펀은 범신론이나 존재의 유일성(Vahdat-e-Vojud)을 의미한다. 페르시아 애르펀과 범신론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마르 카이얌(Omar Khayyam, 1048-1131)의 시는 이런 페르시아의 고대 종교문화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다. 본 논문에서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문화가 중세 시학, 특히 오마르 카이얌(Omar Khayyam, 1048-1131)의 시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데, 에드워드 피츠제럴드(Edward Fitz Gerald, 1809-1883)의 영문 시 번역도 적지 않은 오류를 담고 있다. 피츠제럴드가 고대페르시아의 종교문화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카이얌 시의 토대는 고대 페르시아권의 종교 문화와 커다란 연관성을 갖고 있다. 특히 필자는 카이얌 시철학의 한 축이 노자의 도가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본 논문에서 우선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문화에 관해 언급하고, 이후 페르시아 불교의 영향 아래 있었던 간다라 불교의 실체에 관해 설명하면서 고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다. 고대 페르시아 종교문화가 간다라 불교를 통해 고대 한국 불교에 끼친 영향을 파악한다면, 카이얌의 시 이해에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본다. 이 논문은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문화적 배경, 간다라 불교의 실체, 카이얌의 생애와 시적 사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파악한 후, 페르시아어 문헌을 토대로 번역한 카이얌 시를 해설과 더불어 소개·분석하고 있다.

魯迅의 『광인일기(狂人日記)』에 대한 똘스또이 문학(文學)의 영향(影響)

강명화 ( Myeong Hwa Kang ) , 권호종 ( Ho Jong Kwon )
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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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에 똘스또이는 『광인일기』를 썼으며, 반전통의 사상으로서 인생의 후반에 직면한심적인 투쟁과 ‘정신적인 분열’을 겪게 된 것을 명시했다. 그런데 1918년에 20세기 첫 단편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로서 반전통을 부르짖은 루쉰도 자신을 ‘미치광이’ 라고 자처하였다. 이들은 반전통을 구현(具現)하는 임무가 막중하다는 것을 깊이 알고서, 거리낌 없는 ‘미치광이’같이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외롭게 자신의 뜻을 실천하고자 했다.52)루쉰의 『광인일기』를 살펴보면 똘스또이의 문학작품들과 창작 면에서의 생각, 감정, 심미적 공감이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작품은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의 구성에서부터 시작하여 작품의 주제, 인물형상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유사하다. 루쉰의 작품에 끼친 러시아작가들의 영향을 전반적으로 관찰하면, 고골과 가르신의 영향과 함께 똘스또이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크다. 두 사람은 문학창작 면에서의 유사점과 연계성이 명확하며 서로 밀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루쉰의 문학창작에 미친 똘스또이의 영향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전자들과 함께 또 다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두 『광인일기』의 주인공 광인은 불우한 운명 속에 처해있지만 사회악을 바로잡고 정의사회를 구현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다. 두 작품은 극적 인도주의적 정신과 태도를 견지하는 ‘광인’을 통해 도처의 사회악에 집요하게 저항하며 주제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두 작품은 소설의 일반적인 서사형식인 ‘시작 - 전개 - 마무리’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마무리 - 시작 - 전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서두에서 두 ‘광인’의병이 모두 이미 나았다는 것을 밝힌 것, 언급하지 않아도 될 의학자 이야기, 소설이 나오게 된 배경을 언급 하는 등이 바로 똘스또이의 작품들로부터 『광인일기』가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본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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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은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을 외치면서도 혁명의 희생자들을 단호하게 처형해야만 했다. 참수형을 당해야만 하는 자에 대한 휴머니즘적인 배려로 의학박사들에 의해서 고안되어 세상에 드러나 한 시대를 장식했던 단두대는 국왕과 왕비조차 제물로 삼으며, 평등이라는 대혁명의 가치를 가장 극적으로 구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19세기의 소설가는 ‘잘려져 죽어가는 머리’라는 환상적인 주제를 문학적으로 재현해야만 하는 소명에 매료되지만, 단두대와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단두대의 검이 내려치는 순간, 즉 삶이 죽음으로 바뀌는 순간은 존재하지만, 지속되지는 않는다. 단두대의 순간을 재현하는 데 있어서 문제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작가의 상상적 작업과 세계관만이 요구될 뿐이다. 역사적 진실을 마주한 작가는 죽음의 순간을 과장해서 재현함으로 죽음을 비범한 것으로 격상시키기도 하고, 단두대의 순간을 장황하게 늘여 묘사하면서 본질적인 ‘진리의 순간’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기도 한다. 스탕달에 있어서, 권태와 무료함이 지배하는 19세기 초에 유일한 위대함의 상징은 참수형에 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권이 귀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와 명예가 귀족다움을 만드는 것이다. 소설 『적과 흑』은 참수형을 통해서 줄리앙이 고귀함을 성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틸드는 현실에서의 줄리앙이 아니라 참수형 당한 줄리앙의 머리를 사랑하고, 줄리앙은 죽음의 순간에서야 죽음 앞에서 약해지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산하게 된다. 참수형을 당하는 순간에야 줄리앙은 역사의 위대했던 영웅들과 교신을 하고, 영웅적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 스탕달이 묘사하는 단두대의 순간과 죽음의 순간은 극도로 시적이다. 스탕달은 난폭하고 잔인했던 역사적 사건을 예술을 통해서 시적으로 승화시키며 가치부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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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 노동관계의 침식과 불안정화가 가속화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과연 근대적 직업윤리인 금욕과 근면의 명제가 여전히 삶의 보편적 정언이 될 수 있을까. 1990년대 이후 국가 복지정책의 축소와 전면적 시장경제 체제는 비교적 안정된 유럽의 노동시장을 급격하게 무너뜨렸고, 이후 독일과 유럽에서는 예기치 못한, 후기 자본주의의 변종이라 할 수 있는 ‘장기인턴세대(Langzeit-Praktikum-Generation)’가 나타났다. 노동시장의 흐름에 따라 유럽의 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통상 한시적 고용의 ‘인턴’을 거쳐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대신임시직, 계약직을 전전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기나긴 불안정한‘견습’의 삶은 종종 경제적 자립과 정상적 사회진입을 가로막기에 소위 ‘성년의 지연(Postadoleszenz)’ 현상으로 이어진다. 독일의 장기 인턴생들의 사례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지연된 성년’의 실존적 모순과 개인주의, 사회적 지향점의 부재 등은 최근 발표된 독일 현대소설들에서 보다 극단적인 현실전복의 양상을 띠고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크리스티안 크라흐트(Christian Kracht)의 소설 『파저란트 Faserland』와 동독 출신 안드레 쿠비첵(Andre Kubiczek)의 『미래의 젊은 역군들 Junge Talente』이다. 두 작품의 ‘늙은’미성년 주인공들은 예컨대 노동시장의 ‘탈근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의 장기인턴 생들의 의식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근대의 ‘평생직장’(천직) 개념이나 시민적 노동원칙으로부터 멀찍이 벗어나있다. 두 주인공의 삶에서는 근대 노동 이데올로기의 두 가지 형태인 자본주의적, 사회주의적 노동가치론과의 뚜렷한 단절이 보인다. 그들의 의식은 노동에 천착하는 현실사회 체제에 진입하려 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그러한 체제 밖을 넘보는 현실거부의 삶을 지향한다. 이들의 이러한 보헤미안적 태도의 근저에는 ‘노동’을 통한 자기실현이 불가능한 세대의 전형적 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에 대한 미학적 대응은 19세기 말 룸펜예술가에서 연유하는 보헤미안적 유미주의에까지 다다른다. 세기말 댄디들의 사회 전복과 긍정의 모순된 문화양식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재현한『파저란트』와 『미래의 젊은 역군들』의 두 남자 주인공은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또는 사회집단의 인간적 변혁을 위해 누구나 노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파저란트』가 신성한 노동의 원칙 대신 나태와 무위라는 삶의 전략에 기대어 쾌락과 풍요, 소비에 잠긴 독일의 화려한 대도시를 부유하는 ‘포스트모던’ 댄디를 그렸다면, 이와 대조적으로 『미래의 젊은 역군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단조로운 동독의 소도시 고향마을을 떠나 반체제의 예술가 집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사회주의적’ 댄디를 묘사하였다. ‘노동’을 통한 자기실현이 불가능한 이들 동서독의 댄디 유형에서는 공통적으로 청년기 특유의 유동적 삶의 방식과 무위의 단계가 극단적으로 연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여유’의 과도기는 각기 그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장기인턴세대’다운 ‘만년 청년’의 자세를 암시한다. 일견 확대된 자유로운 경험과 소비의 시대 이면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자리를 둘러싸고 사회적 대립이 심화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청년세대의 실존적 모순은 우리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다. 이러한 현실인식을 토대로 본 논문은 90년대 독일 현대문학에 나타나는 젊은이들의 정체성 위기와 무욕의 일상을 노동과 직업, 정체성이라는 사회적 실존의 틀에서 고찰하였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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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금의 인도네시아인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식민지 사회상을 다룬 작품 『막스하벌라르』(Max Havelaar)를 포스트식민주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네덜란드 식민문학은 1860년 출간된『막스 하벌라르』와 함께 시작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문화와 제국주의』(Culture and Imperialism)에서 그 당시 만연하던 제국주의적이며 서구중심주의적인 사고를 탈피한 아주 드문 예가 바로 『막스 하벌라르』의 작가 뮬따뚤리(Multatuli)라고 언급한다. 작품을 통해 뮬따뚤리는 지속적인 반항과 저항의 목소리로 원주민들의 가난과 고난의 원인이 식민주의제도의 병폐적 경영과 관리라고 외치며, 네덜란드 식민정부가 시행하는 농업제도(cultuurstelsel)의 폐단을 분석적인 시각으로 고발한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작품의 복합적 구성과 화자들의 다면적 목소리를 통해 표출된다. 즉,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액자식 구성과 드로흐스토펄, 스테른, 뮬따뚤리라는 세명의 화자를 통한 다성적 구도를 통해 제국주의적 관점과 저항의 목소리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더 나아가 이 글은 작품 속 영웅인 하벌라르의 양심적이고 도덕적 행동이 식민정책의 당위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뮬따뚤리 또한 식민주의 야망을 지닌 네덜란드인이었다는 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 작품이 지니는 포스트식민주의 기제의 양가성을 살펴해 보았다. 다양한 해석을 초월하는 귀결점은, 통렬한 식민주의 비판을 담은『막스 하벌라르』는 네덜란드 최초의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작품이며, 이 작품을 필두로 이후에 발표된 많은 작품들을 통해 뮬따뚤리는 문학계는 물론 민간차원에서도 인간성의 상징이자 인도네시아 독립투쟁의 지지자이며, 네덜란드 비판정신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전기(傳記)의 서사적 특성과 인문학 텍스트로서의 적용

심옥숙 ( Ock Sook Shim )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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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과 독일의 현대적 전기에서 나타나는 서사적 특징은 무엇이며, 전기의 이러한 특징이 인문학적 정신의 고양과 발현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밝히는 것에 있다. 전기는 문학적인 특성과 역사적 또는 개인적 사실의 기록에 근거하는 이중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기는 문학이며, 동시에 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전기는 문학의 한 형식으로 간주되며, 전기야말로 최초의 문학형식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전기의 본질 역시 문학의 본질인 이야기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다만 전기는 사실상 실존했던 사람의 구체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순수한 ‘허구’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하면 전기는 작가에 의해서 사실적 이야기로서 재구성되고, 표현된다는 점에서 전기는 문학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갖는다. 본 연구는 바로이 지점에서 전기가 인문학적 텍스트로서의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한다. 전기를 통해서 우리는 한 개인의 ‘이미 살아버린 삶’을 현재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며, 나가서 삶의 다양한 형식과 고유함에 대해 소통하며 공감한다. 이러한 전기가 인문학적 가치와 정신을 함양하는 텍스트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인식은 전기의 역할이 인문학의 본질적인 가치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이해에서 출발한다. 인문학적 가치와 정신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성의 발현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가 실제적으로 구현되는 공간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삶을 통해서이다. 인문학의 가치는 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전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문 정신은 역사, 사회, 문화의 상호관계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태도를 함의하는 것으로 본다면, 인문학은 사람다움의 가치를 인식하고 사람다운 삶을 지향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전기의 서사적 특성이 인문학 텍스트로서의 바람직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 근거한다. 전기는 개인의 삶과 ‘공적인 삶’이 어떻게 교차하는가 하는 문제를 ‘사실’이라는 틀 속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준다. 그리고 개인의 삶이 당시의 역사적 조건과 사회적 구조, 그리고 문화적 환경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한 개인과 개인이 속한 사회 공동체의 다양한 조건들, 문화, 역사, 도덕적 가치가 서로 어떠한 의미작용을 하며, 이에 대한 개인의 선택과 행위방식이 어떤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사실적 서사를 통해서 전기의 독자는 이미 있었던 과거의 사건을 있을 수 있는 ‘사건‘으로 이해하면서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기는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으며, 전기의 독특한 구조와 형식은 인문학 텍스트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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