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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비교연구검색

The Comparative Study of Worl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175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1권 0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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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각 나라에서 현재까지 장르확산을 통한 리메이크가 가장 많이 된 작품『춘향전』과 『주신구라』를 시대적 배경 및 향유층을 중심으로 비교·분석하였다. 두 작품의 극 무대를 중심으로 한 장르확산은 무대예술에 대한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과 공급자와 향유층이 차별화되면서 작품의 주제의식 및 스토리전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대예술은 관객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관객의 성향은 그 나라의 대중문화의 형성과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한국의 <창극>과 일본의 <찬바라>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극무대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또한 영화장르로의 확산 과정에서 한국의 춘향전은 <민족적 정서>를 부각시키며 여성의 정조를 강조하는 여성상을 구축하였다. 한국인의 민족적 정서를 강조하며 상업적 효과와 부합되면서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대중문화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해 왔다. 일본의 주신구라는 메이지유신 이후 제국주의적 시대배경 하에 주군을 위해목숨을 바치는 충의를 강조하는 남성상을 구축하였다. 영화장르에서도 『주신구라』가 80여편 이상 리메이크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현상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각 나라의 영화장르의 발달과 함께 대중문화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명확히 밝혔다.

1920년대 범죄소설로서의 『난영(亂影)』연구

채호석 ( Hoseok Chae )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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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연재된 최독견의 장편소설 『난영』을 범죄소설이라는 측면에서 연구하고자 하였다. 『난영』은 일곱 건의 살인과 한 건의 자살이 나오는, 범죄가 중심이 된 범죄소설이다. 이 범죄소설을 살인을 행하는 자와 살해당하는 자로 구분해서 그 의미를 분석해 보았다. 분석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난영』은 범죄가 중심이 되는 범죄소설이다. 살인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가해자는 대부분 실질적인 처벌을 받는다. 주인공 민혜원도 자기-살해를 통해 처벌을 받는다. 이를 보면 『난영』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대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처벌을 놓고 생각할 때, 『난영』에서 처벌은 사법체계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점과 맹왈득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분석을 통해, 『난영』에는 자본주의의 외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침입해 들어와 있다는 사실, 식민지 시대 일본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분석의 결과에 따라 다음과 같은 해석과 결론이 나왔다. 자본주의의 외부가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난영』은 문제적인 작품이다. 최독견은 『난영』을 비롯한 장편소설에서 장편소설 양식을 실험해 보았고, 『난영』은 그한 결과이다. 『난영』에 자본주의 외부가 들어가 있는 것은 그 이전 작품의 영향이면서 또한 잔존해 있는 내밀한 지향의 하나이다. 『난영』을 통해 한국 추리소설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되었다. 범죄소설에서 탐정소설로의 변화로서의 추리소설사.
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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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잡지 『朝光』에 대한 연구이다. 이 연구는 『朝光』의 모든 글쓰기와 담론들이 기본적으로 ‘상식’의 자장 안에 배치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대중성’을 『朝光』의 성격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지, 대중적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면 어떠한 형태로 대중성이 구현되지를 살폈다. 잡지 내에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통해 다양한 정보와 재미를 제공하였기때문이었다. 『朝光』은 ‘상식 조선’의 기치 아래 ‘상식적 인간’을 주조하려 하였다. 물론 상식이라는 정보에 치중하면서 기획력의 부족과 내용의 빈약함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상업지로서 대중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한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朝光』이 교양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문학작품은 물론 좌우익 인사들을 모두 필진으로 흡수하여 균형감을 맞추려하고 있는 점은 대중지인 『朝光』의 성격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기획력의 부재가 드러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朝光』이 시도한 장르의 확대나 편집체제의 변화에서 근대적 포털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청루운어(靑樓韻語)』 시가(詩歌)에 대한 통시적 고찰

이기훈 ( Kihoon Lee ) , 황영희 ( Yeonghi Hwang )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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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청루운어』의 ‘작품자체에 대한 통시적 분석’으로, 편찬자의 의도를 배제하고 『청루운어』에 수록된 작품을 순수하게 분석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청루운어』표경의 편집자 주원량이 만든 경문과 경목, 경문주석 등 구성을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작품 자체만을 가지고 그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2장에서는 ‘청루’라는 말의 기원과 ‘청루’가 작품집의 표제어로 사용된 예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본고의 주제어인 ‘청루시가’로 사용이 가능한지의 여부를 논의해 보았다. 이어서 3장에서는 『청루운어』의 작품을 크게 4개 시기로 나누어 시대별로 어떻게 발전되었고 각각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청루시가는 적어도 晉代로부터 시작하여 중국의 봉건사회가 유지되는 동안 계속하여 창작되는데 각 조대의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른 특징을 보임을 알 수 있었다. 우선 가기 보유가 본격적으로 사회 보편적인 행태가 된 南朝시기는 家妓들의 애환과 진정에 관한 작품이 많다. 隋唐代로 넘어가면서 문인사회가 정착되고 시를 창작하고 수창하고 이로써 교류를 하는 행위가 일상화되면서 연회석상에 동반하는 기녀들 역시 시 창작에 능하게 된다. 따라서 文妓, 詩妓등이 나타나며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창화시를 짓고 이를 다시 가창하고 율동하는 일종의 종합예술로 거듭나게 된다. 宋元代들어 새로운 문학 장르인 사와 곡이 등장하고 더욱 음악성을 띄게 되는 특성상 기녀들은 전문적인 詞妓와 曲妓가 등장하게 된다. 한편 송대 理學이 발달함에 따라 일부 청루시가는 說理的인 특징을 갖게 되는데 특히 貞節을 노래한 시들이 많이 나타난다. 『청루운어』의 마지막 조대인 明代가 되면 창기 산업은 전례없이 번영하여 수많은 종류의 기녀들이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다양한 재주를 갖고 문인들과 더욱 다양한 오락을 즐기게 된다. 또한 그녀들은 이전과 다른 자유로운 정신을 갖게 되어 때론 호방하고, 때론 직설적인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 『청루운어』는 바로 이러한 기녀들의 모습을 핍진하게 담고 있는 청루문화의 산실이라 말할 수 있다.

우교사(牛嶠詞)의 제재 연구

홍병혜 ( Byung Hye Hong )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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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唐代는 詞라는 문학형식이 부상하기 시작하여, 宋代의 흥행을 위한 제반 토대를 완비한 시기이다. 이에 五代에 편찬된 『花間集』은 중국최초의 文人詞集이자 이 안에 수록된 詞는 이후에 文人詞의 전범이 된다. 『花間集』에는 18人의 詞作500수를 싣고 있다. 『花間集』의 작가들을 통상 花間詞人이라 명명하는데, 牛嶠역시 18人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花間詞人이다. 그러나 『花間集』의 작가 중 溫庭筠과 韋莊을 제외하고는 주목하지 않는다. 따라서 『花間集』에서 溫庭筠과 韋莊을 뺀 나머지 詞人들은 군소작가이다. 일반적으로『花間集』을 언급할 때 溫庭筠과 韋莊의 詞를 중심으로 花間詞의 특징을 제시하는데, 물론 16人의 군소작가 중에는『花間集』의 대표작가 2人과 그 작품의 성격이 대동소이한 詞人도 있다. 그러나 『花間集』에 일정이상의 작품을 수록한 작가들에 대해서는 별도로 주의하며 군소작가로 취급하는 편견을 탈피해 그들의 특징과 개성을 고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花間集』을 면밀히 파악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작업이다. 본고 역시 『花間集』의 군소작가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려는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花間集』에는 牛嶠의 詞32수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들의 제재는 ‘애정’ ‘영물’ ‘변새’ ‘회고’ ‘유랑’ ‘해후’로 다양하다. 이 중 ‘애정’의 묘사를 통해서는 섬세한 포착력을 기저로 절제된 白描수법을 통한 美景을 완성하고 있었다. 또한 ‘영물’이라는 제재를 운용하는데 있어서는 단순히 사물의 표현에만 국한하지 않아 궁극적으로 情과 景이 일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수작에서 과시하고 있는 면모이다. 뿐만 아니라 ‘변새’ ‘회고’ 등의 제재에서는 작품의 전편을 통해 자세하게 묘사하는 서사특징이 두드러지고 있었으며, 이는 唐詩의 흔적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결국 牛嶠는 『花間集』의 군소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적지 않은 詞作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피상적으로는 대표 작가들과 유사할 수 있지만 밀도 있는 고찰을 진행한 결과, 대표 詞人들과는 상이한 특징과 개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牛嶠詞의 독특한 정체는 향후 花間詞에서 宋詞로 그 婉約性을 연계하는 가교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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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원작소설 『잠자는 미녀(眠れる美女)』(1960~1961)와 2011년에 제작된 호주 영화 줄리아 리 감독의 ‘Sleeping Beauty’(2011)의 대조연구를 통해 원작과 영화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찾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노년의 ‘성(性)’의 모색이 각 작품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고찰하였다. 가와바타 작품들은 대부분 남성의 시각에서 기술되어 있으며, 『잠자는 미녀』도 에구치(江口)노인이라는 남성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Sleeping Beauty’에서는 여주인공이 젊은 여대생으로 여성의 시각에서 작품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러한 상이점은 노년의 ‘성(性)’을 그리고 수용하는 작품 주제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소설에서는 ‘잠자는 미녀’의 육체의 탐닉을 통해 퇴폐적 욕망을 충족하며 그곳에서 부처를 발견함으로써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었다. 그에 대해 ‘Sleeping Beauty’에서는 노쇠에 대한 슬픔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향락적인 ‘성(性)’적 충족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었으며, 노인에게 있어서는 죽음 자체가 구제로 그려져 있었으나 그것을 수용하는 젊은 여대생에게 있어서는 죽음은 공포 그자체로 나타나고 있었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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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가 작가적으로 가장 활발히 활동한 1920년대와 1930년대는 그녀가 마르셀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심취해서 그것을 읽은 시기와도 겹친다. 이때 울프가 남긴 일기, 편지, 에세이 등에는 그녀가 프루스트로부터 받은 깊은 영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때 프루스트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양분된 형태로 나뉜다. 프루스트에 대한 감탄과 존경심은 같은 소설가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 회의감과 함께 공존한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울프는 자신도 그렇게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을 느끼지만동시에 그렇게 할 수 없음에 대한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울프가 1927년에 출간한 『등대로』에는 프루스트에 대한 그녀의 모순된 감정이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소설은 프루스트와 거리두기를 위한 그녀의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등대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시간의 경과’와 ‘예술을 통한 자아 완성’이라는 거대한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울프가 그것을 전개하고, 도달하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프루스트의 그것과는 대조된다. 시간의 경과는 울프의 등장인물들에게는 단지 추상적인 숫자에 불과하지만, 프루스트의 인물들에게 시간의 흐름에 따른 파괴력과 소모감은 절대적이다. 또한 『등대로』의 결말에서 램지 씨가 아이들과 함께 완성하는 등대행과 더불어 릴리브리스코가 램지 부인의 초상화를 십 년 만에 완성함으로써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이 다소 추상적, 즉흥적, 기적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자신의 삶을 담은 소설을 집필하겠다고 결심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소명을 되찾는 결론은 단계적이며 반복적인 비의도적 기억의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상호텍스트 연구를 통해 『등대로』에 나타난 프루스트의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울프의 의식적인 프루스트벗어나기의 흔적을 이해하고자 한다. 위대한 작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울프가 작가로서 성장하는데 큰 분기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등대로』는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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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스페인은 20세기 초중반 내전 성격의 전쟁을 겪은 공통적 경험이 있다. 이 연구는 내전을 겪은 지 60-70년이 지난 시점에서 현재의 세대가 선조대의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1990년대 말부터 출판된 각국의 소설을 통해 살펴본다. 이를 위해서 이전 시기의 소설에 대해서도 비교 검토해 보았는데, 종전 후 양국 모두 철저한 반공주의가 지배함으로써 작가들은 자신이 겪은 바, 느낀 바를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시기를 거쳐야 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작가들은 이데올로기적 제약에서 벗어나 각자의 주관대로 전쟁을 서술할 수 있었다. 전쟁을 온전하게 체험한 1세대의 작가들에 비해, 전쟁 시기에 유아나 소년에 불과했던 2세대의 작가들은 전쟁에 대해 간접적이고 불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작품 역시 이데올로기적으로 왜곡되는 측면이 있었다. 이 연구가 살펴보는 1990년대 후반부터의 작품은 종전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태어난 3세대 작가들의 것으로서 탈냉전 시대 상황을 반영하듯 이전시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선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인데, 전쟁의 당사자들이 품었던 이데올로기적 열정에 지극히 냉소적이다. 한국의 3세대 작가들은 전쟁은 물론 분단의 상황을 넌센스로보고 있으며 스페인 젊은 작가들 역시 스페인 내전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작품에서 같은 국민 사이의 화해는 일반적인 경향이다. 다만 한국소설에서의 화해가 다소 추상적이고 이상화된 양상을 보인다면 스페인 소설에서의 화해는 더욱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모양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과 2000년대에 들어 역사기억법 제정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을 빚은 스페인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장차 남북한이 통일되면 6.25 동란에 대해 여러 면에서 사회적 논의가 벌어질 것이고 문학도 이를 반영하게 될 것인바, 이때 스페인의 문학은 한국에 중요한 참조가 될 것이다.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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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문학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의식의 흐름’은 주인공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상황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면서 소설의 서사가 진행되는 서술 기법이다. 소설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더라도 현재의 사건 역시 과거시제로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20세기 초 모더니즘 문학의 범주 안에 포함되는 리스(Jean Rhys)의 소설 『드넓은 사가소 바다』(Wide Sargasso Sea, 1966)는 여느 모더니즘 소설들과 달리 소설의 서사에서 현재시제와 과거시제를 교차시켜 서사를 진행한다. 소설의 독자는 인물들 사이의 대화와 내적독백의 경우를 제외하고 과거가 아닌 현재시제로 된 서술이 낯설기 때문에 일단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본 논문의 초점은 모더니스트 소설에서 흔히 나타나는 과거사건과 현재사건의 혼재가 아니라, 리스의 마지막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인 『드넓은 사가소 바다』에서 현재나 과거의 사건의 묘사에 있어서 과거시제와 현재시제가 뒤섞여 사용되는 것의 의미를 추적하는 것이다. 리스는 주요 장면에서 제한적으로 현재시제를 사용함으로써 독자와 인물 사이의 거리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점점 다가오는 파국의 느낌을 한층 강화시키기도 한다. 과거시제와 현재시제를 교차시키는 서사전략은 부주의하게 읽으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소설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소한 것이 아니다. 인물간의 대화나 인물의 내적독백인 경우에도 삽입구를 넣어서만 사용되는 현재시제를 소설 곳곳에 별다른 구분없이 사용함으로써 작가가 어떤 서사전략과 효과를 얻으려 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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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리치는 월트 휘트만과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로 이어지는 미국 민중시 전통에 속한 시인이다. 두 명의 선배시인처럼 리치는 지배 권력과 주류사회의 관심에서 밀려난 주변부 여성들의 삶과 노동자계층의 삶을 미국역사의 일부로 기록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중기시집부터 그녀는 초기의 급진적 여성주의 시선에서 벗어나 인간주의 시선을 견지하며, 비-백인 노동자계층, 이민자들, 불법 이주노동자들에게 자행되는 현대 미국자본주의 사회의 야만성을 비판하는 진보주의 지성인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이 논문은 그간 미국민중시 전통에서 좀처럼 연결고리가 규명되지 않았던 윌리엄즈와 리치의 영향 관계에 주목하며 리치와 윌리엄즈가 공유했던 진보주의 정치의식이 보여주는 미국적 특성을 살펴보고, 윌리엄즈의 ‘회화 같은 시학’이 리치의 시에서 어떤 식으로 변주되는지를 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리치가 보여준 융합적 시선이 윌리엄즈가 가난하고 무지한 노동자계층에 대해 보여주었던 브뢰헬풍 풍속화가의 시선과 시적 음화 기법에서 중요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분석할 것이다. 두 시인의 영향 관계를 조명하고 리치가 평생 헌신적으로 추구하였던 “공동 언어”를 향한 소망이 휘트만의 “대중들 전체”를 향한 소망이나 윌리엄즈의 “공동의 대화”를 향한 소망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이 논문은 휘트만에서 윌리엄즈로 그리고 리치로 이어지는 미국문학의 공동체적 전망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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