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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비교연구검색

The Comparative Study of Worl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175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8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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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국과 중국의 체면 문화를 고찰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문학텍스트에 구현된 `체면`의 양상을 비교하여 분석한 글이다. 이를 위해 한국과 중국에서 체면의 개념을 고찰하고 `체면`의 기능적 측면을 근간으로 `체면`을 언어적 체면과 규범적 체면, 과시적 체면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1920-30년대 한국과 중국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채만식과 라오서(老舍)의 소설을 대상으로 이들 작품에 나타난 `체면`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채만식의 작품에서 언어적 체면은 상대방의 체면을 고려하는 우회적인 의사소통 전략으로 나타나고 , 라오서의 작품은 개인의 체면을 중시하는 표현 방식이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규범적 체면 역시 도덕성을 위반하였을 때 수치심을 느끼는 대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과시적 체면은 채만식과 라오서의 작품에서 주요한 특징으로 나타나지만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채만식 소설에서 과시적 체면은 돈뿐만 아니라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서 라오서의 작품에서 과시적 체면은 자신의 직업세계에서의 명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의 문학 작품과 중국의 문학 작품을 비교하여 분석하는 작업은 한국과 중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체면` 문화의 일면을 고찰하는 기초 작업이라는 의의가 있다.

불상(佛像)의 내력 탐색담으로 본 「등신불」 연구

방민화 ( Bang Min-h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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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불」은 액자소설로서 외부 이야기는 식민지의 학도병이 탈출하여 목숨을 구하고 정원사에 안착한 내용이다. 화자인 `나`는 일본 유학 중에 학도병으로 투입되었다가 탈영하여 대학 동문인 중국인을 찾아가 구원을 요청한다. 화자는 식민지의 학도병이든 탈영병이든 목숨을 보호받을 수 없는 `호모 사케르`이다. 화자가 진기수에게 써 보인 불은귀의라는 혈서는 식민지 지배국가의 호명을 거부하며 생명에 대한 자비심과 보살심을 구현하고자 하는 발원의 표명이다. 그것은 생사의 기로에 선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 청년의 실존적 결단이다. 그런데 화자의 역사적 현실을 배제하고 불은귀의를 목숨을 보존하려는 방편으로 보고 그 귀의의 순수성을 의심하며 만적의 삶과 비교하여 자아탐색담으로 해석된다. 그런 평가는 역사적 맥락을 생략한 채 화자와 만적을 구명(救命)과 사신(捨身)으로 대조적으로 보려는 데에 기인한 것이다. 이 작품을 자아 탐색담이 아니라 등신불의 내력 탐색담으로 보고 작품을 재조명했다. 정원사로 가는 산행은 악의 세계를 떠나려는 의지이고 지상의 상황에 대한 거부이며 그것은 곧 등신불을 만나는 여정이다. 법당의 불상과 금불각을 관조하는 상세한 서술은 화자가 등신불을 친견하고 그에 대한 충격을 그리기 위한 밑그림이다. 화자에게 불상은 관세음보살의 미소로 이상화되어 있는데 고뇌와 슬픔이 아로새겨진 상호를 한 등신불을 보고 충격 받는다. 등신불이 심미적인 상호가 아니고 인간적인 상호인 것에 의문을 가지며 만적의 일생을 추적하며 불상의 내력을 탐색하는 것이 내부 이야기이다. 만적의 행적을 탐사한 화자는 생사불이(生死不異)의 이치를 깨치고 보살심을 구현한 등신불에 인간적인 오뇌와 슬픔이 새겨질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이해하고 비로소 부처로 받아들이게 된다. 만적의 소신공양의 내력을 알고 있는 원혜 대사는 화자가 쓴 혈서의 진정성을 믿고 있으므로 두 인물을 등가적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원혜 대사가 “불은(佛恩)이로다”고 한 말이 방증한다. 소신공양은 생사불이(生死不異)를 깨닫고 육신이 참된 나라는 유신견(有身見)에서 벗어났음을 말한다. 그래서 화자가 등신불을 부처로 받아들이게 되는 지점에서 원혜 대사의 화두가 제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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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모함마드 이크발의 세 번째 우르두어 시집, 『모세 지팡이의 일격』에 나타난 시의 주제별 연구이다. 그는 11권의 시집을 발간했는데, 우르두어로 된 3권과 8권의 페르시아어 시집이 있다. 이 작품은 1936년에 발간된 시집으로 정치, 사회, 시사적인 영역을 포함해 종교, 도덕, 철학 분야를 다루고 있는 유일한 시모음집이지만, 작품의 기저에는 그의 자아(Self, Khodi)론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크발의 자아는 `마음`과 동일시되는 용어로서, 인간의 행동체계는 경험체계에서 비롯되며, 경험은 마음에 축척, 저장되어 나타난다. 이에 따라 자아는 실재하며, 환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축척된 경험의 결과로 빚어지는 행동체계는 성현과 평인의 양태로 나타나듯, 자아의 등급에 따라 판이하게 구분되는 것이 실례라는 것이다. 동방(Orient)의 페르시아 철학에서 `마음`은 신체기관에서 심장에 해당되고, 심장은 경험체계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 3장에서는 자아의 개념, 자아에 대한 시 · 공간론, 실재성에 관해 언급되고 있다. 자아론은 3천년 아리안(Aryan) 철학, 수피즘의 중심 코드에 해당한다. 이크발은 20세기 이슬람 시대 수피 대시인으로 그 계보를 잇고 있다. 4장에서 이크발의 자아철학이외에도 이 시집에 담긴 사상과 내용을 이성과 사랑(직관)론, 인도 이슬람과 동서양의 정치 등의 4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적절한 시를 선정한 후, 이에 대한 번역과 분석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이성과 사랑론`에서 오리엔트의 페르시아권에서 이성론에 대해 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페르시아권에서 이성과 사랑론은 상호 보완관계에 있으면서 대척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런 사실만으로 인문학의 복잡성을 해결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으라고 본다. 파키스탄을 비롯해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의 남부 지역은 페르시아 이슬람 세계(Perso-Islamic World, 본문에 지도 삽입)를 형성했으며, 이 권역은 동서 학문의 근간이자 매개 역할을 수행했다. 20세기 중반에 건국된 파키스탄에서 이크발은 국가의 성립에 토대를 놓은 인물로서 시성으로 추앙되고 있다. 그는 20세기 세계의 도전적인 질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살았기에 아시아의 역사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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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이민자 이규석(Nick Farewell)의 소설 『GO』는 준(準)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쿠비코바』라는 소설을 써가면서 찾아간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작가 이규석과 주인공 `나`의 관계는 분리된 둘일 수 없다. 비록 소설적 대리인인 `나`를 통한 자기-쓰기로 완성한 『쿠비코바』이긴 하지만, `나`는 `이규석`과 한 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을 비평함에 있어 텍스트의 안(`나`)과 밖(이규석)을 심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기의 말>에서 이규석은 이 작품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영웅의 현대적 우화”이며, “나 역시 정체성을 찾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전기(傳記)는 기본적으로 한 작가의 고유한 `삶의 증험(證驗)`이라 했다. 이규석이 우리에게 선보인 『GO』 역시 자신의 삶의 증험이자, 삶을 문학적으로 완성한 결과물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여느 전기소설처럼 `나`의 쓰기를 단지 자신이 겪은 실존적 고통, 부재, 결핍을 치유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주위의 타자의 구원 문제를 그들과 함께-쓰기를 통해 시도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사르트르의 용어를 빌자면,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누구를 위해 쓰는가?”의 물음, 즉 사회·문화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자기구원을 이렇게 타자와 함께-쓰기를 통해 주어진 삶 속에서, 사회 속에서 찾는다는 것이 『GO』에서 제시된 이규석의 문학이자 철학이다. 따라서 작가를 배제하고 언어(기호)의 유희에서 비평의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바르트 류의 신비평은 최소한 『GO』의 분석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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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이 미학적 자의식에서 비롯한 창조적 예술혁명이었다면, 20세기 중반 이후 오늘에 이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중과 매스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수용적 대중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대중문화의 코드는 대중과 소비, 매스미디어, 이미지 등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이미지는 여타의 코드, 즉 (수용적) 대중과 (욕망의) 소비, (감각적) 매스미디어를 연계하는 메타코드라고 할 수 있다. 현대는 곧 이미지의 시대다. 그러면 왜 이미지이며, 그리고 그 재현의 논리는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 것일까? 자아 상실의 시대, 시뮬라크르 시대의 현대인은 본질, 다시 말해 로고스가 아니라 욕망의 기호를 희구한다. 이미지는 욕망의 현존, 자아를 재현하는 기호다. 따라서 `이미지 시대, 재현의 논리`는 궁극적으로 자아와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의) 이미지 재현의 논리와 직결되는 문제로, 무엇보다 정신분석학적 차원의 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뮬라크르 시대 재현의 논리를 회화적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미셸 레리스의 자서전을 텍스트로 하여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상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미지는 자아의 부재를 은폐하는 욕망의 이미지, 곧 이미지-페티시라는 사실과, 결론적으로 이미지-페티시의 미학적 윤리, 다시 말해 자기동일성이 부재하는 시뮬라크르의 미학 혹은 윤리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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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쿠루마가 『야생동물의 투표를 기다리며』에서 아프리카의 전통 구전 양식을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소설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쿠루마가 구전 양식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동소마나라고 하는 말링케족의 전통 구전 문학을 기본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동소마나의 정의를 살펴보면, 이는 말(parole)로 이루어진 문학적 장르로서 그 목적은 영웅 사냥꾼과 모든 종류의 영웅들이 벌이는 무훈을 찬양하는 것이다. 동소마나는 연극이나 스펙터클과 같은 퍼포먼스 장르에 속한다. 구체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꾼이 여러 청중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장르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춤과 음악이 곁들여져 있어서 이를 구전 문학이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게다가 『야생동물의 투표를 기다리며』는 신화, 콩트, 영웅 서사시, 노래, 속담등과 같은 아프리카의 여러 구전 장르들을 혼합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여러 장르들의 개별적 특성을 함께 다룰 것이다. 그렇다면 쿠루마는 왜 과거의 장르를 현대화하는 것일까. 이는 쿠루마의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실험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구전 문학과 서구의 현대적인 문자 문학을 통합하고자 한다. 그는 토속적인 것(동소마나)과 서구에서 들여온 것(소설), 그리고 구전과 문자, 과거와 현재라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요소들을 하나로 묶는다. 쿠루마가 보기에 과거와 현재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과거에 기대고 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서로가 새로움을 얻는다. 쿠루마의 작업은 동소마나와 같은 말링케족의 구전 문학을 현대에 되살림과 동시에 소설이라는 서구의 장르를 새롭게 한다. 서구 문학 장르 중에서 소설은 형식적인 면에서 시나 연극과 같은 다른 장르에 비해 가장 자유로운 형식을 지닌다. 쿠루마는 이 자유로움을 마음껏 활용하여 소설의 범주를 더욱 확장시킨다. 그는 소설이 아프리카의 구전 문학을 통하여 새롭게 변신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이는 다시 말하면 소설의 경계를 허물어서 소설을 소설 아닌 것으로 만들기도 함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이는 소설의 개념이나 장르에 대한 이의 제기, 혹은 소설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야생동물의 투표를 기다리며』에는 콩트, 서사시, 신화, 속담, 노래 등 아프리카의 전통 구전 문학이 함께 섞여 있다. 장르의 혼성이 극대화되어 장르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쿠루마의 장르 혼성은 오히려 장르를 무력화한다. 결국 쿠루마의 글쓰기는 `장르 없는 장르`라는 새로운 글쓰기로 자리매김한다.

사로트와 프루스트: 사로트의 소설론을 중심으로

유예진 ( Yoo Yae-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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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보로망의 선두주자인 나탈리 사로트에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차지하는 자리는 특별하다. 사로트는 프루스트의 발견이 문학, 특히 소설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 그녀가 추구하게 될 글쓰기 양식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고 강조한다. 사로트는 사실주의 소설로 대표되는 기존 소설에서 내용 뿐 아니라 형식에 혁명을 일으켜야만 소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전통소설의 관습과 규범을 가장 잘 형상화하는 요소로 인물을 꼽았으며, 발자크 시대로 상징되는 인물 위주의 소설에 회의감을 느꼈다. 그녀는 얼마나 생생하게 묘사되었건 인물 중심적인 소설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고 보았고, 현대소설은 한 번도 표현된 적 없는 새로운 감각을 소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와 같은 주장 한 가운데에 프루스트가 위치한다. 이제 인물들은 각 개인이 내면에 모두 가지고 있지만 막연하게만 느끼던 감각적 본질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인물들은 내용이 아니라 도구가 되었다. 이러한 본질을 밝히기 위해서는 작가 고유의 새로운 시선이 요구된다. 프루스트가 작가의 임무는 번역가의 그것과 동일하다고 말하며, “유일한 진정한 책은 이미 우리 각자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발명할 필요가 없다”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작가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지만 습관과 편견으로 가득한 의식에 가려져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던 것을 들춰내고 밝히고 해독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데 사로트와 프루스트가 만난다. 또한 이 둘은 그렇게 발견한 내면의 본질과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글쓰는 방식, 즉 문체에 핵심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문체는 더 이상 소설 속 인물들과 줄거리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그치지 않고,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산문으로 된 소설에서도 그 자체로서 가치를 띠게 되었다. 작품에 고유한 인상을 남기고 끝가지 전개시키는 힘을 가진 것은 인물도, 줄거리도 아니라 문체가 되어야 한다는데 사로트와 프루스트는 동의한다. 이번 연구는 소설의 내용으로서의 감각과 이를 발견하는 작가의 시선,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서의 문체를 중심으로 사로트가 여러 학술대회와 강연을 통해 밝힌 누보로망의 이론과 원칙에 프루스트가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사로트가 모색한 소설의 새로운 길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갖는 특별한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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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17세기와 18세기를 대표하는 희극작가로 평가되는 띠르소와 모라띤은 바로크와 신고전주의라는 서로 동떨어진 문예사조적 경향에 속하는 극작가들이고 그들의 극적 경향 역시 상이하다 할 수 있지만, 당시의 사회가 요구하는 개혁을 자신들의 연극에서 주된 테마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띠르소는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면서 사회 전반에서 스페인이 겪어야 했던 총체적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요구되어졌던 개혁의 목소리를, 모라띤은 18세기 들어서면서 쇠퇴의 일로에 있었던 스페인을 계몽주의적 사상을 바탕으로 근대화시키고자했던 국왕 까를로스 3세의 개혁에 대한 의지를 자신들의 희극작품에 각각 반영시켰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개혁의 메시지가 가장 명확하게 반영된 연극으로 띠르소의 『궁전으로 간 수줍은 목동』과 모라띤의 『처녀들의 `예`라는 대답』을 들 수 있는데, 이 두 작품에서는 각 시대의 사회에 만연했던 구태의연하거나 부조리한 관습 외에도 여성과 결혼에 대한 불합리한 관습이 공통적으로 묘사되고 비판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희극 사이에는 개혁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에 차이점이 있었는데, 바로 그 개혁이 추구되어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띠르소의 경우는 개혁의 방향이 피폐한 삶으로 위기에 몰린 일반 대중들로부터의 개혁, 즉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개혁이었지만, 모라띤의 경우는 반대로 국가에서 계몽주의적 사상을 바탕으로 쇠락한 국가를 근대화시키고 후진적인 사고와 생활방식을 가진 민중들을 교화시키려는 개혁, 즉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개혁이었던 것이다. 띠르소 연극에서의 개혁은 간접적이고 보다 혁명적이고 보다 희극적인데 반해, 모라띤 연극에서의 개혁은 직접적이고 덜 혁명적이고 덜 희극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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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치카나 작가로 손꼽히는 산드라 시스네로스는 자전적 문화에세이집인 『나만의 집 (A House of My Own)』을 통해 자신의 삶과 작품의 중심에 위치한 집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그녀의 주요 산문작품인 『망고스트리트 (The House on Mango Street)』를 시작으로, 『우먼 홀러링 크릭과 다른 이야기들 (Woman Hollering Creek and Other Stories)』, 『카라멜로, 혹은 지어낸 이야기 (Caramelo, or, Puro Cuento)』, 『메리를 보았니? (Have You Seen Marie?)』에 걸쳐, 집에 대한 탐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속되고 있는지 『나만의 집』에 담긴 작가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작가는 가정에서 야기된 수치심과 집안의 폭력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여성적 시각에서 집의 의미를 드러낸다. 작가 개인의 집은 멕시코계 미국인 공동체의 이민사로 확대되고, 죽음과 삶을 아우르는 영적인 관계의 망으로 변화한다. 시스네로스는 집을 탐구하는 끝없는 여정을 통해 집의 실제적, 역사적, 상징적 함의를 보여주는데, 이를 살펴봄으로써 작가의 문학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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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바르드는 스탈린 사후 `해빙`을 상징하는 대중문화로 자리 잡는다. 러시아 바르드는 공식문화라 할 수 있는 30-40년대 군중가요의 형식과 원칙에서 벗어나 1950년대 말에서 70년대 중반까지 다양한 주제로 활동한다. 바르드의 큰 특징은 노래와 시의 이중 매체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에트의 일상의 정서를 표현하는 강한 텍스트 지향성 때문에 쉽게 대중들에게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다른 특징은 노래의 내용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칙에서 벗어난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마그니티즈다트라는 `홈메이드 녹음`(사미즈다트, 자기출판)으로 노래가 유통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바르드 시인으로 오쿠자바, 율리 김, 갈리치, 비즈보르, 비소츠키 등이 있다. 본 연구는 바르드의 작품이 시문학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규정하여, 문학적인 특성으로 접근한다. 바르드의 주제적 분류는 크게 2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오쿠자바로 대표되는 서정-낭만적 유형이며, 다른 하나는 비소츠키로 대표되는 서사-서술적 유형이다. 이 같은 토대를 중심으로 오쿠자바의 서정시를 애가적인 희망의 시학으로, 비소츠키의 작품을 아날로그적 저항의 시학으로 연구의 주제를 발전시킨다. 이에 따라 오쿠자바의 서정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초기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초기작품에는 모스크바거리, 전쟁, 사랑의 주제가 시적자아의 삶의 고통과 우수의 정서로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우울감과 비애감의 이면에 역설적인 희망이 서정적 분위기를 고조 시킨다. 비소츠키는 허스키한 음색, 공연, 노래에서 가장 대중적인 바르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비소츠키는 보편적인 주제를 노래함으로 `우리`라는 집단적 정서에서 `너`와 `나`의 개인적인 인간관계로 그 정서를 바꾼다. 또한 범죄, 감옥, 욕설 등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정치적 자유를 저항의 목소리로 바꾸어 놓는다. 그의 이데올로기적 탈주는 생명과 실존을 위한 정신적 이동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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