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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mparative Study of Worl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175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2권 0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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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날로 확산되어 가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의 흐름 앞에서 광주에 대한 진실한 기억을 되살리는 증언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비교적 잘 알려진 추상화된 역사적 사실보다는 그 시공간 속에 있었던 사람들이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치욕, 그리고 이들의 행동을 추동한 원한의 감정에 주목한다. 무방비 상태에서 극단적인 폭력에 노출되었던 인간의 경험과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훼손을 증언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프리모 레비, 장 아메리 등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들이 남긴 홀로코스트 문학을 연상시킨다. 본고에서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레비와 아메리의 홀로코스트 문학과 함께 읽어보고자 한다. 우선 이 소설에서 제기되는 증언의 공백과 증언 불가능성의 문제를 아감벤과 레비의 논의와 연관 지어 살펴보고 등장인물들이 겪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치욕의 양상을 아메리의 에세이와 함께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아메리의 에세이 「원한」에서 “진정한 도덕적 감정의 원천”으로 정의되는 원한이 갖는 윤리적 성격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소년이 온다』의 인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동시에 생의 의지를 되살리거나 불행한 인생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기도 하는 원한의 감정에 대해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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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수염은 성인 남성의 인중에서 돋아나는 체모의 일종이다. 또 그것은 털의 일종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체의 일부이지만 제거하거나 다시 자라도록 놓아 둘 수 있다. 대체적으로 인간은 얼굴의 생김새에 따라 정체성이 정해지는데 콧수염은 얼굴의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정체성을 좌우하는데 영향을 끼친다. 본고는 콧수염을 다룬 각각 프랑스, 스페인, 한국 작가인 카레르, 미야스, 권리의 작품들을 분석해 보고 그 상징적 의미와 또 콧수염과 정체성과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들 작가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콧수염을 소재로 취하고 있고 또 작중인물들은 콧수염의 유무에 따라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다. 카레르의 경우 작중인물은 콧수염을 밀면서 현실의 위기를 맞게 되고, 미야스의 경우 가짜 콧수염을 부착하면서 현실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그리고 권리의 경우 어느 날 여성인물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콧수염을 발견한다. 세 명의 서로 다른 작가의 각각의 작품들은 콧수염이라는 이런 손가락만한 한 줌도 안되는 체모를 소재로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주고 또 공통적으로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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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족이 가진 삶의 방식과 그들의 이중적 특수성을 김조규와 하종오의 시 작품을 통해 확인해보고자 하였다. 이는 과거 조선인들이 중국 땅으로 이주·정착해가는 과정과 그들이 다시 한국사회로 귀환하는 과정이 시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살피기 위함이다. 본고는 특히 조선족 여성에 주목하였다. 이주·이민의 경험을 안고 있는 조선족 여성들은 자본의 흐름을 따라 주로 몸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에 따라 그들의 삶의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빈곤과 억압, 그 틈에서 살아가기 위한 이주 사이에 놓여 있는 여성들만의 특수한 영역, 즉 젠더와 민족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는 것과 같은 맥락에 놓인다. 여성의 이산은 민족과 계급이라는 모순 외에 젠더적 모순이 중첩되어 있어 더욱 복잡한 갈등양상을 보인다. 이를 위해 본고는 조선인들의 중국으로의 본격적인 이주·정착과정을 형상화한 김조규의 시와 오늘날 한국으로 다시 귀환하는 이들을 형상화한 하종오의 시를 함께 엮어 읽었다. 김조규와 하종오는 각 시대에서 조선족 여성들의 소외와 배제, 그들이 가진 고유한 내러티브를 상황에 맞춰 소거하고 새로운 자신을 낯선 곳에서 세워내야 하는 부담감들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여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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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홍콩의 현대시를 중심으로 화문시(華文詩)에 나타난 도시, 민족 상상과 문화적 정체성을 연구하고 있는 논문이다. 홍콩시는 중국 현대시의 발전과 영향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중국에서 건너온 많은 시인들의 창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30년대 신월파(新月派)와 현대파(現代派)의 영향 속에서 홍콩 현대시에도 모더니즘시가 등장하였으며 도시 사색과 체험에 대한 시들이 나타났다. 또한 항일 기간 중에는 다이왕수(戴望舒) 시인에 의한 항일시가 발표되었다. 이와 함께 홍콩 현대시는 1950년대부터 중국에서 새롭게 건너온 남하 시인들에 의해 새로운 홍콩 시단이 형성되고 발전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에서 건너온 리쾅(力匡), 허다(何達), 마랑(馬朗) 등에 의해 새로운 도시와 민족 상상의 시가 창작되었다. 이들의 시가 속에 중국 대륙에 대한 고향과 민족에 대한 상상과 함께 향수의식이 깊이 반영되었다. 1960-70년대부터는 수샹청(舒巷城), 예쓰(也斯)와 시시(西西) 시인 등이 나타나며 홍콩의 도시화, 산업화, 공업화 특징을 반영하며 새로운 홍콩의 도시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점차 홍콩인들에 의한 홍콩의식이 싹트며 홍콩의 미래와 현실에 대한 사회의식을 표현하였다. 결론적으로 본고를 통하여 홍콩 화인들의 시를 직접적으로 분석하며 홍콩 현대시에 나타난 개념과 정의, 발전과 특징 등을 이해하며 홍콩시의 도시, 민족 상상과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만당(晩唐) 선시(禪詩)의 경향성 고찰

임원빈 ( Yim Won B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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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禪詩)의 창작은 불교가 전래된 이후 승려들이 자신의 불교적인 깨달음 및 불교교리와 불교경전에 대한 깨달음을 시가로써 표현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시가의 발전과 불교의 흥성으로 시(詩)와 선(禪)은 점차 융합되면서 선시 역시 발전하게 된다. 만당(晩唐)의 선시는 크게 불교색채가 농후하면서 선도(禪道)의 묘오(妙悟)를 체득한 선시와 불교적인 요소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면서 시도(詩道)의 묘오(妙悟)가 체현된 선시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만당 시인들은 불교색채가 농후한 선시를 창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불교를 종교로써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로 받아들였기에, 이들의 선시는 불교적인 깊이가 깊지 않았다. 둘째, 불교적인 요소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선시들은 바로 선리(禪理)를 중시하지만 선어(禪語)를 중시하지 않는 선시이다. 이러한 선시들은 청일(淸逸)하고 담박(澹泊)하며 한가하면서도 그윽한 경계를 만들어 내고 있기에, 시적인 오묘한 경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수준 높은 시가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이들이 비록 불교색채가 농후한 선시 및 그윽한 경계를 가진 선시를 창작했지만, 이들이 창작한 선시들의 내면에는 이들의 심리적 고통과 쓸쓸하고 우울한 심정이 담겨 있다. 즉, 이들이 불교에 가까이 가게 된 것은 사실상 순수한 관심과 귀의의 심리가 있었기 보다는 불교를 통해 자신들의 심리적 고통을 벗어나고자 했던 경향성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화응(和凝) 사(詞)의 농(濃)과 담(淡)

홍병혜 ( Hong Byung-h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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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凝의 詞는 『花間集』에 20수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和凝 詞는 『花間集』의 양대 시조인 溫庭筠과 韋莊 詞의 모습을 겸비하였다. 그러나 온정균의 ‘짙고 은은한 아름다움’과 위장의 ‘옅고 밝은 아름다움’을 그저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닌, 두 시조들이 형성한 花間詞의 총체풍격을 바탕으로 때로는 짙게, 때로는 옅게 그 艶情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구현하고 있다. 결국 온정균 詞는 ‘빈틈없는 짙은 화장(嚴?)을 통해 드러나는 濃麗한 특징’을 위장 詞는 ‘약하게 한 엷은 화장(淡?)을 통해 드러나는 淸麗한 개성’을 과시한다. 그리고 화응 詞에는 이 2가지의 특징이 공존할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정교한 아름다움과 거침없는 감정노출’이라는 독자적인 개성도 표출하였다. 즉 온정균의 詞作과 그 모습이 유사한 것 같지만 온정균 詞에는 철저하게 배제된 감정이 화응의 詞에는 거침없이 분출되고 있다. 따라서 화응 詞는 온정균의 ‘濃’과 위장의 ‘淡’을 포괄하며, 이러한 양면성에 감정까지 충분하게 토로하였다. 본고는 『花間集』에 수록된 18인의 花間詞를 두루 섭렵하는 과정의 일부이며, 온정균과 위장 외에 여타 화간사인들의 작품을 통찰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찰은 향후 宋代 詞壇의 총체풍격과 유형풍격 및 유파 형성의 토대가 되었던 『花間集』의 역할에 대해 가급적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화응 詞 속에 온정균과 위장의 면모인 濃과 淡를 기저로 개성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지금까지 별도로 언급이 시도되지 않았던 화응 詞의 전모를 고찰할 것이다. 이러한 본고의 목적은『花間集』의 花間詞 또는 晩唐·五代의 詞를 거론하면서 항시 온정균과 위장만을 거론하는 실정에서 환기하여, 당시 화간사인들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두 대가들로부터 계승한 공통점과 또 이를 통해 형성된 독자적인 차이점의 존재 여부에 집중하여, 詞文學의 전체를 광범위하게 조감하고 세밀하게 이해하는 데 있다.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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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러5세 작가인 박미하일은 “자신의 뿌리가 ‘한국’이고, 모국어가 한글”이라고 여러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는 곧 자신의 러시아에서의 유민(流民)으로서의 삶, 주변부인으로서의 정체성의 위상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자신의 주변부인으로서의 위상을 가감없이 수용한 채 한 사람의 고려인 소설가로서 겪어야만 했던 에스닉 정체성의 문제를 러시아 사회, 즉 중심세력과 문학적 형식으로나마 대결의 구도를 통해 해소해나간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 소설 『헬렌의 시간』에 이르면 이러한 그의 실존적 고뇌, 에스닉 정체성의 문제가 말끔히 해소된다. 부언컨대 그의 에스닉 정체성의 문제는 이제 더는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적 차이 또는 차별로 인해 생긴 정신·심리적 고통의 흔적들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이렇듯 박미하일은 ‘살아갈 미래’를 하나의 청사진으로 가지게 됨으로써 『헬렌의 시간』에 이르러 그가 ‘살아온 과거’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기를 치유하고, 에스닉 공동체에도 희망을 선사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를 작도(作圖)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윤리적·도덕적 존재로 스스로를 객관화시키는 자기 비약을 『헬렌의 시간』을 통해 보여준 셈이다.

전이과정에서 본 고대 문학의 원형 연구

신규섭 ( Shin Gyu Seo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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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학의 원형(기원)을 논하는 작업은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원형 연구에 매달리는 것은 비교문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대 문학의 원형연구를 논하다 보면, 아시아 문학의 원형과 서양(유럽)문학의 토대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를 분리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분법적인 사고체계에 익숙해서겠지만, 동서양을 매개하며 원형 지대인 페르시아 문학은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 있다. 고대 페르시아 문학은 한편으로 인도, 티베트와 동남아 문학에 차례로 전이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서역을 거쳐 중국, 한국, 일본문학으로 퍼져나갔다. 여기서 원형이란 단지 전이 과정에서 원형이 된다는 것이다. 고대 문학의 원형에는 이란·아리안 족의 최초 문학작품인 『아베스타(조로아스터교 경전)』가 있다. 브라만들의 성서, 『리그베다』가 세계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간주되어 온 측면이 있지만, 중앙아시아의 이란·아리안족이 당시 인도(지금의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에 내려와서 기술한 것이 『리그베다』인데, 『리그베다』가 『아베스타』보다 기원이 오래되었다는 것은 상식 밖의 논쟁이다. 조로아스터(고대 페르시아어로 짜라투스트라) 문학으로 대변되는 『아베스타』와 인도(파키스탄)의 『리그베다』와 『마하바라타』, 중국의 유교 경전 『논어』와 『역경(주역)』에 관해, 종교사상적 배경을 비교하며, 더 나아가 구체적 문헌을 통해 근거를 제시하면서 아시아 문학의 원형에 관해 고찰한다. 이와 더불어 서양문학의 근간으로 불리는 그리스 문학과 최초의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가 아리안(Aryan)들의 철학인 페르시아 애르펀(Mysticism, 신비주의/大수피즘-본문 각주)이나 그들의 문화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 지, 그 계보를 추적해 가면서 고대 문학의 개략적인 흐름을 살펴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와 인도에서 보듯, 고대 이란·아리안들의 이주와 정착지에서, 자신들의 역사적 상황에 맞춰 문학도 생성되고 변화되었다. 언급한대로, 본 논문에서는 페르시아와 인접한 세 문학권(고대 그리스, 중국, 인도)과의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 첫째로 고대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지역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 고대 페르시아와 그리스간의 문학을 비롯한 문명의 영향관계에 대해 적지 않은 오류가 생성되었으며, 두 번째는 고대 중국 서역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아리안들의 수피 문학(Sufi Literature)을 비롯해 조로아스터 문학이 고대 중국 문학사상에 끼친 영향이 사라져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고대 파키스탄 지역을 인도 문학권으로 잘못 편입시킴으로써 아시아 문학의 기원과 원형의 문제에 왜곡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엄중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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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아깟담껑의 작품들을 통해 태국 상위계층의 세계관에 대해 알아보는데 목적이 있다. 여기서 상위계층은 왕족, 귀족이거나 사회 지도자계층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연구 범위는 장편소설 『삶의 연극』, 『누런 피부 하얀 피부』, 단편소설집 『무너진 낙원』에 실린 4 작품으로 「세속의 길」, 「사춘기」, 「궁정 없는 왕족」, 「상류사회」를 대상으로 한다. 연구방법은 아깟담껑의 작품들을 기본적으로 활용하여 종합적으로 살펴보며, 부차적으로 실증적 분석을 위해 태국 역사학자들의 저서를 일부 활용한다. 결론적으로, 아깟담껑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터전을 태국에만 한정짓지 않고 세계적으로 확대하려는 공간 개념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는 상위계층의 왕족이나 사회 지도자의 경우는 태국을 위한 희생정신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태국을 중심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태국과 왕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 환경과 분위기에 기인한 것으로 사료된다. 아깟담껑은 재물이 우위인 자본주의 시대에도 사회 지도자의 자질로 인품을 으뜸으로 본다. 멈짜오 서열의 왕족인 그는 조국 태국에서 신분에 걸맞게 살지 못하고 홍콩에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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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H. 로렌스는 20세기 영국모더니즘 작가들 중에서도 매우 감각적인 문체를 구사했던 작가였다. 그동안 많은 비평가들이 로렌스의 중기 대표작인 『무지개』를 소설의 감각적인 문체와 ‘타자성’이나 ‘미지의 세계’라는 키워드를 연결하여 해석해왔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3세대에 걸친 브랭윈(Brangwen) 가족의 삶을 다루는 소설에 대한 비평의 초점은 대부분 세대에 따라 변해가는 남녀관계의 성격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었다. 본 논문은 남녀관계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우주-자연-인간의 연속체’라는 관점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소설의 인물이 하나의 생명체로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형상화되는지 살펴 볼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로렌스가 인간과 우주의 살아있는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왜 예술의 책무라고 주장했는지, 또한 “피의 친교”(blood intimacy)로 압축되는 특유의 감각적 세계가 어떻게 필연적으로 ‘무한’의 초월적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논문의 3부에서 본격적으로 『무지개』를 읽기 전에 로렌스의 작품 전반에서 ‘생명’과 ‘종교’의 의미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의 산문들을 통해 살피는 일은 그의 소설에서 ‘연속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사전작업이다. 『무지개』는 서구문명의 토대인 성경을 ‘다시쓰기’ 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종교적인 색체가 강한데, 로렌스적 의미의 ‘종교’란 기존의 기독교 교리와 매우 다르며, 오히려 모든 생명체들의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그의 소설이 오늘날 ‘심층 생태학’의 문제의식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도 드러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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