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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mparative Study of Worl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175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4권 0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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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 『춘향전』이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e)』(1892)이란 제목으로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된 사건은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교류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다. 이는 프랑스 작가인 로니(J.-H. Rosny)와 “유럽에 온 최초의 한국인”인 홍종우가 프랑스 파리에서 공동으로 작업하여 한국 문학을 유럽 최초로 번역 출간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향기로운 봄』은 『춘향전』 줄거리의 기본 구도를 따르되, 원전을 매우 자유롭게 번역한 작품으로서, 이는 번역이라기보다는 번안 혹은 재창작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로니와 홍종우의 자유로운 번안 혹은 재창작이 지니는 문화사적 의의를 탐색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해 『향기로운 봄』의 공동 번역자들이 재창작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겨냥한 바가 상호문화 정신에 토대를 둔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교류의 추구이며, 프랑스와 한국사이의 문화적 가교를 놓는 일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한국이 미개한 나라, 한국인이 야만인이라는 이미지를 벗겨내고 한국이 문명을 지닌 나라이며 한국인이 훌륭한 문화 전통을 간직한 민족임을 보여주기 위해 『향기로운 봄』의 역자가 선택한 재창작적 요소의 핵심은 한국에서 구현된 공자(나아가 유교) 사상의 실천이다. 『향기로운 봄』의 역자는 이 작품에서 공자 혹은 유교 사상의 위대함을 드러냄으로써 프랑스가 제국주의적 교만 속에서 조선인을 야만인으로 보지 않게 만들고 또한 조선 문화를 수준 높은 문화로 인식시킴으로써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속에 빠지지 않기를 소망했다. 『향기로운 봄』의 역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한국과 동아시아는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또한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도 한국 혹은 동아시아 문화의 장점을 받아들임으로써 상호간에 ‘평화로운 화합’을 이룩하는 것이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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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인문학자인 키케로와 몽테뉴의 이론을 중심으로 노년의 의미와 노년의 욕망에 대한 탐구를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1961),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2004)에 나타난 노년의 성과 사랑의 양상을 비교하고 분석한다. 키케로는 『노년에 대하여』에서 노년을 육체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기로 규정하고 분별력이 증대되고, 경험 축적을 통한 통찰로 사회현안에 대한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시기로 규정한다. 반면 몽테뉴는『수상록』에서 노년일수록 현재적 삶의 가치를 긍정하고 충만한 삶을 욕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잠자는 미녀』에서 에구치 노인은 잠자는 여성들을 통해 초자연적 모성을 느끼고,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 칼럼니스트는 잠자는 14살의 소녀의 잠든 모습을 보며 90세가 되도록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두 작품에서 잠든 젊은 여성의 육체는 위안과 사랑의 감정을 노인에게 선사하면서 노년초월을 느끼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러한 체험을 통하여 에구치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충동을 동시에 느끼며 노년초월 이론에서 말하는 본원적 자아에 다가가는 내면적 일관성을 느끼게 되고, 칼럼니스트는 생애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겪게되며 여생의 동반자를 찾게 된다.

세르누다의 시에 끼친 엘리엇의 영향

장재원 ( Chang Jae 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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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스페인 시인 루이스 세르누다에 끼친 T. S. 엘리엇의 영향을 고찰하였다. 세르누다는 스페인의 시적 전통과 초현실주의나 순수시처럼 당시 유럽에 등장한 새로운 문예사조들을 자신의 작품에 잘 용해시켰다. 세르누다에 대한 엘리엇의 영향은 특히 1940년대에 본격화되었으며 그의 후기 시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엘리엇은 그의 시 작품으로 뿐만 아니라 시에 대한 평론과 새로운 문학적 주장들로 유명하다. 본 논문에서는 세르누다에 대한 엘리엇의 영향을 크게 두 가지 양상에서 조명하였다. 첫 번째는 세르누다의 시적 사상과 비평에 대한 관점과 태도에 미친 엘리엇의 영향이며 두 번째는 구체적인 시 작품의 제작에 끼친 엘리엇의 영향으로, 이 두 가지는 이론과 실천처럼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엘리엇의 시에 대한 주장 중 “예술에 있어서 몰개성론”과 “객관적 상관물”, 그리고 “극적 독백”이 세르누다의 시 사상에게 큰 영향을 준다. 세르누다가 엘리엇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엘리엇을 알기전과 후에 세르누다의 시 사상과 창작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그의 초기 시 세계와 후기 시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비교하고 설명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세르누다의 전기 시에서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은 이성이나 가치관에 종속되지 않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했지만 지나치게 주관적 감정에 빠지기도 했는데 엘리엇의 시 사상은 그에게 이러한 과도한 주관적 표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엘리엇이 주장한 시 사상은 시인이 작품을 보다 객관적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표현하는 길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세르누다는 엘리엇의 사상을 수용하고 자기방식으로 적용하면서 더욱 성찰적이 되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세르누다 후기 시「라사로」와 「왕좌」에서 엘리엇이 주장한 “극적 독백” 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해 보았다. 이러한 시도로 인해 세르누다는 프랑코 시기의 젊은 시인들에게 시에 대한 새로운 표현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기에 젊은 세대는 세르누다를 통해 극적 독백과 엘리엇을 수용하게 된다. 그러한 결과로 세르누다는 영국문학과 스페인 문학, 그리고 전후 세대와 이전 세대를 이어주는 문학적 교두보의 역할을 하였다.

N. 구밀료프의 시에 나타난 동양 테마와 모티브

홍기순 ( Hong Kee-soon ) , 김성일 ( Kim Sung-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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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20세기 초 러시아 상징주의 시인들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동양의 테마는 구밀료프를 비롯한 아크메이즘과 미래주의 시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동양에 대한 관심은 유럽중심주의의 위기와 이에 대한 극복을 모색하는 가운데 점차 확산되었다. 구밀료프의 동양에 대한 관심은 이국적인 동경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동서양의 시학적 유사성뿐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구밀료프의 동양 테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테마는 창작 시기별로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다. 초기 시에서 시인은 중국을 비실제적 내용으로 기술하고 존재하지 않는 상징적 공간으로 묘사하며, 중기 시들에서는 이전과 반대로 독특한 ‘영혼의 중국’을 보여준다. 후기 시에선 당시 러시아의 무섭고 비극적인 현실과 어떤 목가적이고 이상적인 머나먼 세계를 대비시켜 보여준다. 이는 초기 미학적 기획으로부터 파국으로 가득 찬 유럽을 등지고자 하는 시인의 말년의 염원까지의 삶의 궤적을 잘 보여준다. 구밀료프 시의 인도차이나 모티브는 동양의 이국적 정취와 자신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시인의 특별한 세계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시인은 낯선 세계에 명료한 실제성을 부여하려는 자신의 아담주의(адамизм)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도 테마의 경우 인도의 정통교리와 유사성을 보여주는 윤회의 모티브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인도를 연상시키는 그 어떠한 특이한 유사성도 없는 독특한 정신의 발원지로서의 인도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선 내용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나타낸다. 끝으로 구밀료프의 일본 테마는 그것을 주된 테마로 간주했던 동시대 시인들과 달리 그에겐 단지 낯설고 먼 예술일 뿐인 부차적인 주제에 불과했다. 동양 테마에 관한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즉, 구밀료프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동양에 대한 심층적이고도 다양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으며 종종 그러한 주제들을 변형 및 재해석하여 제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계관은 결코 유럽 중심주의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대녕의 「탱자」에 나타난 정화의식(淨化儀式) 연구

방민화 ( Bang Min-h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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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은 여행소설로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형성했다. 그러한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환멸의 현실에서 벗어나 '존재의 시원'을 찾아 떠난다. 그러나 떠나는 이유는 설득력이 약하다. 작가의 현실인식이 치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윤대녕 소설의 문제점으로 제기되었고 보다 정치한 현실 탐색이 절실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탱자」는 여행소설구조를 보이면서 이전의 작품과는 다른 변화를 보인다. 여행의 주체인 1인칭 남성 화자는 여성으로 대체되고, 여성인물의 형상화에 추상성을 벗어나며, 남성작가의 한계로 보였던 여성의 타자화가 사라지면서 작가의 여성인식에 변화를 보인다. 존재의 시원을 찾아나서는 윤대녕의 여행소설은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데 「탱자」는 여행소설로서 현실의 구체성을 갖추고 있다. 이런 작품의 변화에 주목하면서「탱자」를 본고의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정화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늙은 중이 소주와 담배를 가리키는 선문답 형식으로 시작되는 서두는 정화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것을 바슐라르의 물질의 상상력으로 정화의 의미를 해석한다. 고모가 열여섯 살 때, 담임선생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하는데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 된다. 선생은 탱자를 따주며 다시 만나 정혼하기로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배반으로 돌아왔다. 늘그막에 폐암 진단을 받은 고모는 마지막 여행으로 제주도로 오면서 탱자를 가지고 온다. 무성히 가시 돋친 탱자는 곡절 많은 고모의 인생에 대한 환유이다. 고모의 속을 진정시키는 된장은 상흔을 ‘곰삭게’ 하는 발효균이다. 탱자와 된장이 그릇에 나란히 담긴 형태가 그것을 함의한다. 고모는 과거를 회고하며 회한의 응어리를 모두 불태운다. 그것은 불과 물의 물질적 상상력으로 정화의 의미를 구현한다. 곰팡이가 핀 탱자는 다 탄 재의 이미지이며 그것은 탱자에 얽힌 집착이 소멸된 것으로 불교의 공(空)을 의미한다. 고모가 탱자를 귤로 치환하는 것은 자기정화이며, 정화의식을 치르는 제주도는 제의(祭儀)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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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양극화 현상과 삶의 불안정성은 우리가 직면한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다. ‘금수저’논란과 함께 최근에 유행한 ‘헬조선’ ‘노답 사회’ ‘노오력’ ‘~충(蟲)’ 등의 신조어는 고용·소득·소비·분배·정의를 둘러싼 사회정치적 논의와 재고가 절실함을 말해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우리 모두는 ‘노동 세계의 난민’ 처지에 놓여 있다. 생존에 대한 공포는 삶을 압도한다. 특히 노동시장의 급속한 유연화는 새로운 계층인 ‘프레카리아트’를 양산하고 갈수록 그 층은 두터워질 전망이다. 이 논문은 손원평의 소설 『서른의 반격』(2017)을 중심으로 프레카리아트의 실존과 그들의 주체 구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불안정한 비계급적 존재인 프레카리아트의 실존양상을 가이 스탠딩의 프레카리아트 논의에 근거하여 살펴보았다. 아울러 이들의 주체화 과정을 푸코의 ‘파레시아’ 개념에 의거하여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프레카리아트에 관한 문학적 성찰이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분노의 서사이면서 동시에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모색하는 서사임을 밝히고 있다.

중국 고전시에 나타난 난초 묘사 분석

배다니엘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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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대 고전 시가에서 난을 소재로 한 작품은 매우 많으며 난에 관한 역대 시에 대한 연구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실행되어 왔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난 관련 시가에 대한 그간의 연구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난이 지닌 문화적 의미, 특정 시기나 특정 시인의 작품에 나타난 난의 형상, 제화시 속에 나타난 난의 이미지, 梅蘭菊竹의 틀에서 본 난의 특징 등의 분야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세부적인 특징에 관한 연구가 많은 편이라고 보이며 난에 대한 관심과 애호에 비해 작품에 관한 전반적 분석은 아직도 보완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중국 시가에서 난을 소재로 한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문학적 의미를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본고는 이 점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역대 중국시가에서 난을 언급한 작품을 내용에 따라 구분해보고 각 작품들이 지닌 상징성과 특성을 고찰해보았다. 난은 화려하지도 않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단아한 자태를 지닌 식물이다. 강인한 외형이나 화사한 외형을 갖추고 있지 않기에 가까이 하기 전에는 연약한 초본식물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문화적 속성을 알게 되면 난이 지닌 고아한 기품과 이미지에 어느덧 매료되게 된다. 孔子와 屈原이 난을 들어 속내를 표현한 것을 필두로 후대 문인들이 난에 담긴미적 감각을 계승해 온 결과 난은 어느 화목보다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성을 지닌 식물로 발전해 오게 되었다. 난의 우아하고 섬세한 곡선은 아름다운 감각을 제공하고, 드러내지 않고 본분을 지키는 고아한 인품은 정신적으로 좋은 본보기가 되며, 강인한 절개와 향기는 세인들의 처신에 경종을 울리는 상징성까지 함유하고 있다. 난에 관한 작품을 일차적으로 예거하고 각 작품에 담긴 상징성을 살펴본 본 논문은 난이 지닌 매력과 문학적 의미를 총괄적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중국의 문학 주체성론 고찰

박민호 ( Park Min-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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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85년 말과 1986년 초에 발표된 류짜이푸(劉再復)의 글, 「문학의 주체성을 논하다(論文學的主體性)」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이 글은 문학의 주체성 문제를 크게 ‘창조 주체’로서의 작가, ‘대상 주체’로서의 작중 인물, 그리고 ‘수용 주체’로서의 비평가와 독자로 구분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주체를 사회 현실과 세속으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로 상정한다. 이 글이 발표되기 전 중국에는 ‘인도주의’와 ‘소외’의 문제를 둘러싸고 일련의 사상 논쟁이 있었고, 비록 짧은 해프닝에 불과했지만 당 차원에서 ‘정신오염제거운동(1983)’이 일기도 했다. 그러한 시대 배경 속에서 발표된 류짜이푸의 이 글은, 이후 중국 문단에 중요한 문예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적지 않은 영향을 행사했다. 그리고 이 글은 내포하는 이론적 문제점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문단의 분위기를 크게 일신했다. 마르크스 엥겔스 문예이론에 입각하여 문학을 정치에 종속된 계급투쟁의 도구로 여기는 주의주장은 이 논쟁이 있었던 1980년대 중반 이후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본고는 류짜이푸의 글이 발표된 직후에 벌어진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들의 논쟁에서 두 가지 중요한 비판 내용을 분석하였고, 이를 통해 류짜이푸의 글이 순수한 학술적 성격의 글이라기보다 오히려 사상투쟁, 이념투쟁의 성격을 띤 글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특히 근래에 몇몇 소장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주장들 속에서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다. 1980년대 문화현상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문학 주체성 논쟁’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문학의 전개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지닌 논쟁으로 ‘역사화’되고 있다. 특히 ‘문학 주체성 논쟁’은 문학의 ‘탈정치화’ 현상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문학의 ‘재정치화’ 담론과 관련해서도 깊이 있게 다뤄져야 할 문예현상으로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동성애적 경향 그리고 영화 상호텍스트성

조이경 ( Cho Yikyung ) , 이건근 ( Lee Geonge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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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순수한 사랑과 양성적 매력을 주제로 지난 400여 년 동안 다른 예술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지만, 그것에 내포된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전체 시의 일부만 인용되었다. 또한 연구자들은 이 시의 헌정대상이 누구인지에 주된 관심을 가져왔었으나, 시인의 전기적 사실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극히 미미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심층적인 논의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 소네트의 텍스트에 기초하여 창작된 영화들이 학계에서 소홀하게 다루어졌던 부분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것은 영화 상호텍스트성의 존재를 설명해준다. 이 논문의 목적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 나타난 동성애적 경향과 관련하여 그의 전기적 사실을 재고하고, 영화들의 상호텍스트적인 내용을 통해서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서 Ⅰ은 이 시에 대한 새로운 논점을 예시하고, Ⅱ는 화자의 성적 경향에 대한 기존의 견해들을 소개하고, 시 장르의 속성과 전기적 배경을 감안하여 재분석한다. 다음으로 Ⅲ은 텍스트를 각색하거나 패러디한 영화들을 통해 영화 상호텍스트성으로 재현된 상황을 논한다. 그 결과 시인이 집을 떠난 이유, 런던으로 가족을 이주시키지 않았던 사연, 성행위가 없는 동성애의 성립여부, 양성애자의 이율배반성 여부, 출산을 강조했던 내막 등 새로운 논제에 대해 타당한 추측이 가능하게 된다. 나아가 Ⅳ는 이 시가 영화 상호텍스트성 원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진단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소네트의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인 영화의 생산을 모색하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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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인류가 언어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각 민족의 언어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고대 그리스 고전은 로마제국시대에 라틴어로 번역되었고, 시대가 바뀌면서 그것은 다시 유럽의 여러 언어(로망어 또는 통속어, 민중어)로 번역되었다. 프랑스의 고대와 중세에도 번역은 꾸준히 이루어졌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번역은 인문주의와 문예부흥이라는 시대정신에 힘입어 가장 활발하게 장려되고 행해졌으며, 그에 대한 이론도 수립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추동하는 커다란 힘이 바로 번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번역 양상에 대한 고찰은 지금 우리의 번역과 인문학을 논하는 데 필요한 일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쇄술의 발명으로 책의 대량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시기였다. 특히 프랑스어는 그런 고무적 상황에 힘입어 라틴어로 된 성경과 그리스 · 로마 고전을 번역했고, 라틴어에 필적할 수 있는 언어로 성장했다. ‘문예의 아버지’로 불리는 국왕 프랑수아 1세는 모든 사법 관련 서류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도록 왕령을 내렸고, 작가들에게 그리스 · 로마의 고전을 번역하도록 장려했으며, 왕립교수단을 설립하여 문예부흥을 꾀했다. 작가, 시인이면서 번역가였던 에티엔 돌레의 최초의 번역론과 조아섕 뒤 벨레의 번역불가론 등을 살펴보고,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 중흥과 번역의 가치에 대한 의미를 되새김하면서 지금 우리의 번역과 인문학 중흥의 문제를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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