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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JI COLLECTION OF WORK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44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6권 0호 (2016)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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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허난설헌 작품에 나타나는 색채 미학적 특성에 대해 좀 더 천착해 보고, 허난설헌 작품의 색채 미학적 특성이 중국과 조선조 다른 작가들의 유선시 작품에도 공분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유선시의 공통적 특성인지, 아니면 허난설헌만의 독자적인 특성인지를 밝혀보고자 했다. 헌난설헌의 색채적 특성을 살핀 결과 허난설헌은 의식적이건 무의식 적이건 색채에 깊이 경도되고 끌리고 있었다. 또한 색채로는 푸른색과 노랑색을 주로 많이 사용했는데 푸른색은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는 색상이며, 노랑색은 양가적인 의미를 지닌 색상으로서, 이 두 색상은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부정적인 측면을 반향한다. 따라서 선계의 화려하고 긍정적이고 상서스러운 내용이나 이미지를 반향하는 색채가 실은 부정적인 측면도 아우르는 양가적인 색채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색채를 주로 많이 사용했다는 점을 통해서 그녀는 화려함이라는 긍정적인 의식속에 실은 좌절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아우르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있었다. 이러한 특성은 시어 사용에서도 드러났다. 즉 텍스트에 등장하는 시어가 이상적, 긍정적, 아름다움, 상서스러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니는 어휘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실은 허무하다, 찰라적이라는 의미의 어휘가 말미에 함께 등장함으로써 결국은 부정적인 측면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작가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즉 한 텍스트에 상반된 의미의 시어 사용이나 상반된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는 색채를 주로 사용하는 것이 부합되고 있었고 이러한 점을 허난설헌 작품의 미학적 특성 중 하나로 볼 수 있었다. 중국 유선시 작가에는 曹操, 曺植, 院籍, 陸機, 張華, 郭璞, 혜康, 수閱 등이 있었는데, 이들 작품들은 색채가 찬란히 드러나거나 특별한 색상이 두드러진 작품들은 거의 없었다. 혹 색채어가 가끔 등장하지만 빈도수도 미미하고 작품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도 없었다. 따라서 색채미학적 측면으로 보았을 때 중국의 유선시는 허난설헌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라고 결론내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선시를 남긴인물에는 이수광, 허균, 조식, 김시습, 김정희, 이언진, 장경세, 김만중등인데, 집중적으로 16-17세기에 나타난다. 이들 역시 색채 미학적 측면으로 보았을 때 주목할 만한 성과가 없었다. 단지 장경세 작품은 허난 설헌 작품과 흡사했지만 장경세는 허난설헌의 유선시를 차용했기에 그역시 색채 미학적 측면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이런 모든 점에서 허난설헌은 유선시 작가 중에서 전무후무한 색채 미학의 대가라고 평할 수 있었다.

문학 : 홍계영의 가사 < 희설(喜雪) >의 도교적 상상력과 문학적 특질

김윤희 ( Yun Hee Kim )
온지학회|온지논총  46권 0호, 2016 pp. 41-61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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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관수재(觀水齋) 홍계영(洪啓英, 1687~1705)의 가사 작품인 <희설(喜雪)>의 문학적 특질을 작품에 나타난 도교적 상상력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 것이다. <희설>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세계관과 주관적 감성은 도교적 표상들과 교직(交織)을 이루며 작품의 미학적완성도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18세라는 나이에 오랜 질병이 악화되면서 죽음을 예감한 가운데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 <희설>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비극적이며 때로는 낭만적인 시선이 투사되어 있다. 특히 눈이라는 소재는 천상(天上)의 선계(仙界)와 현실을 매개하는 소재로 작용하면서 작가의 현실에 대한 인식과 초월적 세계에 대한 동경 의식 등을 선명하게 확인케 해준다. ‘백색(白色)’의 이미지로 강조된 ‘눈’은 현실에서의 고통을 초극하게 해 주는 화자의 심리적 매개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눈(雪)’은 화자가 예감한 죽음에 대한 외면의 수사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눈(雪)’이 환기하는 백색(白色)의 이미지가 작품 전반에 걸쳐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질병과 죽음이라는 흑색(黑色) 공포를 의식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로 보인다. 백색(白色)의 외부 세계와 어두운 내면이 대비적으로 교차되고 있어 병마(病魔)와 죽음이라는 생의 한계에 대처하는 화자의 처연한 내면이 발견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희설>에 보이는 도교적 표상들과 태평성대라는 송축의 수사는 지극히 사적인 질병이라는 고통에 저항하기 위한 작가의 강렬한 자의식(自意識)에서 출발하여 직조(織造)된 작품의 외피(外皮)로 보아야 할것이다.

문학 : 계녀가류 규방가사의 시간성 연구

최연 ( Yean Choi )
온지학회|온지논총  46권 0호, 2016 pp. 63-92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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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녀가류 규방가사의 다수 작품들의 의식의 흐름을 보면, 현재의 시각에서 출발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현재로 되돌아오면서 미래를 지향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계녀가류 규방가사가 작자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 지속적인 시간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고 베르그송, 마르틴 하이데거의 시간적 이론과 연관 지어 그 표현구조의 근간을 찾아보는 데 목적이 있다. 동시에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성의 이행 속에서 교훈담론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 지, 이런 서술방식이 갖는 기능과 의미가 어떠한지, 여성의 인생담론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신행이라는 현재적 시각에서 자식을 떠나보내는 정신적 불안감을 보여주며 여성의 운명론과 함께 현재를 출발점으로 새롭게 시작 하기를 바라는 기대의식을 보여준다. 다음은 과거로 회귀하여 자신이 겪은 시집살이의 경험담을 서술하고, 역대 효부효녀들의 고사를 인용하면서 규범행실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과거로의 회귀는 현실거부를 위한 시도이기도 하지만, 또한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대면과 극복이라는 의식형태의 다른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작자는 결사부분에서 행실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며, 미래의 시간의식으로 ‘확장’을 하고 있는바 앞날에 대한 전망과 자아실현을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계녀가류 규방가사에서 보이는 시간의식은 지속적이고 混合적인 ‘과거-현재-미래’의 흐름으로 이루어지며 역동적인 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계녀가류 규방가사는 이러한 시간적 이행 속에서 교훈의 담론과 함께 작자를 비롯한 규방 여성의 ‘일생의 서사’와 ‘역사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 : < 사씨남정기 > 서술기법의 전변으로서의 < 유록전 >

서신혜 ( Shin Hye Seo )
온지학회|온지논총  46권 0호, 2016 pp. 93-119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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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 유록전 >의 작품 서술 방식, 구성 방식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유록전 >은 병자호란 때를 배경으로 정몽세와 유록의 사랑과 이별, 재회를 그린 작품이다. 그 과정에 청나라군에 의해 끌려가는 여성 피로인(被虜人)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기존의 연구는 대부분 이 작품을 주제론적으로 접근했지만, 서술기법면에서 살필 때, < 유록전 >은 < 사씨남정기 >의 그것을 상당부분 차용한 작품이다. < 사씨남정기 >에서 사씨가 교씨의 핍박을 받아 중국 남부 장사(長沙)땅에서 겪은 ‘부랑배의 핍박, 물에 투신자살하려는 시도, 이비(二妃)에 의한 구원, 남편과의 재회’라는 서술 방식이 < 유록전 >에서 그대로 사용된다. 동시에 < 유록전 >은 조선만의 특징을 담아 < 사씨남정기 >와 다른 것을 이루어낸다. 특히 이비 대신에 계월향을 등장시켜 같은 역할을 하게 하고, 병자호란 당시 끌려가던 포로의 이동 경로에 따라 작품의 지리적 배경을 설정하였으며, 여주인공이 기생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작품을 변용시키고 흥미를 배가시켰다. 이 논문에서는 이런 점을 제시하였다. 또한 끝에는 앞선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 유록전 >의 창작시기를 추정하는 논의를 덧붙였다.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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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조선조 한문제(漢文帝) 유항(劉恒, B.C 202∼157) 제재사론 산문을 살펴보고, 조선 지식인들이 생각한 이상적 군주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성리학적 기틀 위에 세워진 조선은 유교의 덕치주의와 민본 사상을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조선 창건의 주역인 사대부 계층은 군주의 도덕성 함양이 곧 통치능력과 연결된다는 논리를 폈고, 왕에게 부단한 자기 수양을 요구하였다. 17∼18세기, 양란(兩亂)을 잇달아 겪은 조선의 지식인들은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난세(亂世)의 실질적 주재자인 군주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에 국가 통치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고, 군주의 실책이나 공과(功過)를 담은 사론 산문이 등장한다. 왕권과 신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는 조선이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권력의 중심축은 신하들에게 있었다. 이전 시기와 달리 군주를 직접적 제재로 삼은 사론 산문들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데에는 이와 같은 배경이 있다. 이중 한문제는 당태종과 더불어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성군으로 인식되었고, 군주론의 제재로 자주 호출되었다. 한나라 문제는 중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삼대지치’와 ‘왕도정치’를 구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문제 제재 사론 산문은 내용에 따라 ‘첫째, 전반적으로 한문제의 인정과 덕치를 칭송하는 글, 둘째, 한문제가 사치하지 않고 검약을 존숭하였다는 글, 셋째, 한문제의 외척 관리에 대해 논한 글, 넷째, 인재 등용에 대해 평한 글, 다섯째, 오왕(吳王) ‘유비(劉비)’와 연관된 글’ 등이 있다. 이는 조선 지식인이 강조했던 군주통치 조목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각 의론들은 다시 ‘외척(外戚) 배척 : 제가(齊家)’, ‘인재 등용 : 용인(用人)’, ‘절검(節儉) : 안민(安民)’, ‘국가 안위 : 외치(外治)’와 묶을 수 있고, 한문제의 ‘겸양’한 태도에서 군주의 ‘수신’과도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각각의 의론들은 문제의 행실을 긍정할 때도, 부정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한문제의 선정(善政)에 초점을 두었다. 그의 부정적인 면모를 드러낸 글들도 후대 군주를 권계하기 위함이라는 원론적인 층위에서 다루어졌다. 또 여타 군주 제재 사론 산문들이 주로 군주의 내적 덕목을 강조하였다면, 한문제 제재 사론 산문은 군주의 내적 수신과 동시에 실질적 국가 통치 조목과도 연관 지어 포폄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한문제의 치세는 조선조 국가 경영의 전범 역할을 상당부분 담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학 : 기원(祈願)의 고전문학사적 전개 양상과 인문학적 의의 시론

이복규 ( Bok Kyu Lee )
온지학회|온지논총  46권 0호, 2016 pp. 157-177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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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문학사에 전개된 기원의 양상과 인문학적 의의에 대하여 논술해 보았다. 주로 개인적인 기원을 대상으로 한정하여 탐색하여 얻은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원(祈願)’은 한국문학사의 전 시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난 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최초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단군신화> 또는 <광개토대왕릉비문>에서부터 삼국, 남북국, 고려, 조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달리 표현하자면 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기도 거르는 일 없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둘째, 기원 모티프를 통해 통관해 보건대, 天(천), 上帝(상제), 神(신)등으로 표상되는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기원은 고려시대까지 드러나게 존재하다가,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고인을 추모하는 제문(祭文) 일색으로 변화한다. 문집에 실린 허다한 제문들이 이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에 초월자에 대한 기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최부와 이문건, 박인로 등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시조, 민중의 주된 수용층이었던 고소설작품에서 보이는 기원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인 잠재화, 이면적인 지속 이라고나 할까? 사대부나 민중은 물론, 왕실에서 왕조 초기부터 말기까지 초월적인 존재에게 기원하는 의식을 계속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알려진 바이기도 하다. 기원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하겠다. 기원 대상 또는 목적도 개인이나 집단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기도만 나타나다가 나중에는 이타적인 기도도 등장 함으로써, 우리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보편성을 확보해 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하겠다. 셋째, 인간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지만, 우리 문학사상의 근거를 보면, “호모 오란스(homo orans)”, 기원(기도)하는 사람(존재)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밝혀졌다. 원시와 고대 시기부터 근대, 아니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원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그 기원 대상에 대한 명칭이나 기원 내용과 형식 등에서 변이가 보이며,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통시적으로 기원이 있어 왔으며 있다는 사실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기원이 중요한 키워드임을 확인하게 한다.

철학 : 개인선과 공동선에 관한 공자와 묵자의 상호 연계성 고찰

황성규 ( Seong Kyu Hwang )
온지학회|온지논총  46권 0호, 2016 pp. 179-201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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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선진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사상가인 공자와 묵자가 제시한 개인과 공동체에 관련된 이론들을 통하여 개인선과 공동선의 관계에 대한 그들의 연계성을 분석해 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공자와 묵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존중하고 개개인의 행복 추구와 자아 실현을 중시하면서도, 공동체의 가치와 규범, 그리고 공공의 이익도 중시하였다. 즉 그들은 개인선과 공동선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였으며, 그들의 이론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공자와 묵자의 수신 이론이 지닌 본질적 특성과 목적을 비교해볼 때 양자 간의 구분이 쉽지 않을 정도로 유사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두 사상가 모두 개개인이 지닌 덕성은 사회의 질서 및 행복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므로 개인의 덕성 함양이 곧 공동체가 추구하는 공동선으로 연결된다고 보았다. 둘째, 공자와 묵자는 덕성과 재능을 겸비한 개인들이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며, 이들은 공동체를 주도하면서 공동체의 존망을 좌우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공동체가 덕성과 능력을 갖춘 개인의 성장과 실현을 보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개인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공동체는 개인의 가치를 존중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 간의 유기적 관계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습을 제시한 두 사상의 이론적 특징을 고찰해 볼 때 양자가 개인선과 공동선의 조화를 실현하는 과정과 방법에서 다소의 상이점을 보이지만 그 귀결점은 동일하다고 생각된다. 이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양자의 주장이 내재적으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상호 보완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철학 : 내단도교 형성기에 있어서 정기신의 의미변천과 삼교회통

김경수 ( Kyeong Soo Kim )
온지학회|온지논총  46권 0호, 2016 pp. 203-231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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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단도교는 정기신의 개념으로 단법을 완성하고, 삼교회통의 논리로 도교에서 부족했던 논리적 구조를 보완한 점이 큰 특징이다. 본고의 목적은 내단도교의 형성기에 나타나는 정기신 개념의 변천과정과 유교와 불교의 개념과 수도론을 수용한 양상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있다. 소원랑과 장과 그리고 사마승정 및 최희범에게서 나타나는 정기신의 개념은 각각 다른 내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개념들은 아직 북송 때의 내단가들이 말하는 정기신 개념과도 일정한 차이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론들이 후대의 내단가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삼교회통의 문제에 있어서도 성현영과 왕현람 그리고 사마승정 및 최희범에게서 각각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대체로 불교의 개념을 차용하여 내단도교의 이론을 보다 논리적으로 전개하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후대의 내단가들이 유교의 도덕적 수양론과 불교의 심성수행론을 내단이론에 차용하여 보다 완벽한 체계로 만들어 낸 원형을 제공한 셈이 되었던 것이다. 종리권과 여동빈의 ‘종려단법’은 『종려전도집』에 집약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통하여 ‘종려단법’은 다시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살펴보았다. 왕중양이 창시한 전진도의 단법에 종리권과 여동빈의 영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상세히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문화 : < 황화만년지곡 > 연구

이수정 ( Su Joung Lee )
온지학회|온지논총  46권 0호, 2016 pp. 233-264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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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창작국악 첫 작품으로 알려진 1939년 김기수작곡 이능화작사의 <황화만년지곡>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다는 문제점을 인식하여 창작배경, 작곡과 초연상황, 악보의 내용 등을 연구하였다. 일본 건국2600년 기념 헌정작품으로 작곡된 이 작품은 일제에 의해 수년간 준비된 행사 중에 하나로 파악하였다. 이 작품이 작곡되고 연주되었던 1940년 아악부의 외부 활동은 이왕직 왕실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제에 의해 상징적인 의도로 이용되었는데 <황화만년지곡>이 그중에 한 부분이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작곡배경이 되는 황기2600년 기념행사의 성격과 사회적인 분위기, 일본기원 2600년 봉축곡과 그 곡들이 작곡되었던 당시의 상황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이왕직에까지 철저하게 준비시켰던 결과물로서 이 곡이 작곡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황화만년지곡> 초연이 1940년 2월 13일 부민관 공연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황화만년지곡>과 <황화만년지무>가 상관관계가 없다는 새로운 해석을 하였다. 악보에 기보된 악상기호의 내용, 악기의 사용과 연주편성 등 상관관계 등을 살펴 실제 연주와 악보상의 내용이 조금 달랐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가사분석을 통해 내용은 친일의지가 분명하지만, 해당 가사부분의 악보가 없으므로 음악적인 부분에서 어떻게 해석하여 작곡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1940년의 기원 2600년 행사를 중심에 놓고 <황화만년지곡>을 살펴보니 이 곡이 한국최초의 창작국악 또는 김기수 개인의 처녀작으로만 한정되는 작품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현실을 담은 곡으로서 음악사적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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