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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JI COLLECTION OF WORK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7권 0호 (2016)

문학 : 귤산리유원(橘山李裕元)의 회인시일고(懷人詩一考)

박종훈 ( Chong Hoon Park )
온지학회|온지논총  47권 0호, 2016 pp. 9-37 ( 총 29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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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제가를 필두로 전개된 연작 회인시의 흐름 속에서 李裕元의 회인시를 살펴보았다. 이유원은 자신의 선배 격에 해당하는 19人을 五言六句19首에 담아 소개했는데, 『嘉梧藁略』 책4에 있는 < 懷長老방古人體 >가 바로 그것이다. 오언육구라는 詩體는 청나라 장사전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대상인물은 당시 고관을 역임했고 명사로 추앙받았던 이들이다. 이유원 회인시의 대상인물은 전시기 연작 회인시를 창작했던 趙冕鎬, 南秉哲, 金奭準, 徐有英의 대상인물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이에 우선 이유원만의 특징적 일면을 살펴보기 위해, 전시기 창작된 회인시 중 동일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 작품과 비교 검토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여타의 회인시에서는 대상인물에 대한 정치 행적이나 재능을 칭송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관련 고사의 적극적인 활용이 돋보였다. 당대인들의 당대인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 묵과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반면 이유원은 일정부분 객관적인 평가를 보이고 있지만, 대상인물과 자신의 개인적인 교유 정황을 소개하는데 집중했다. 오언육구라는 형식 속에 묘사된 대상인물과의 개인적인 교유의 단편적인 언급만으로는 그 교유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기에, 『林下筆記』나 『嘉梧藁略』 및 대상인물의 문집을 함께 살펴보았다. 이유원은 대상인물을 칭송하면서도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자신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는데, 이러한 방식을 통해 객관적인 칭송에 개인적인 칭송까지 덧붙였다. 더불어 개인적인 교유 정황의 언급을 통해 당대 저명한 名士들과 교유했고 그들에게 知遇를 입었다는 자신의 자부심을 맘껏 발산했다. 이유원 연작 회인시를 소개하는데 주안점을 두다보니 논의가 자못 거칠어졌지만, 동시대 혹은 전후 시기 창작된 연작 회인시와 꾸준히 비교검토를 한다면 이유원만의 특징적 일면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문학 : 오윤겸의 사행일기 연구 -『동사일록』과 『조천일록』을 중심으로-

정영문 ( Young Moon Jeong )
온지학회|온지논총  47권 0호, 2016 pp. 39-67 ( 총 29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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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중국과 일본을 사행한 오윤겸은 『조천일록』과 『동사일록』을 기록하였다. 『동사일록』은 1617년(광해 9)의 사행일기이고, 『조천일록』은 1622년(광해 14)의 사행일기이다. 이 두 사행록을 중심으로 17세기 초 동북아 3국인 조선ㆍ명ㆍ일본의 정치ㆍ외교적 관계, 문화에 대한 오윤겸의 인식을 살펴보았다. 오윤겸을 정사로 하는 회답겸쇄환사는 ‘국서전달’과 ‘피로인의 쇄환’을 목적으로 1617년 7월 7일 부산을 출발하여 후시미성[伏見城]까지 사행하고 돌아왔다. 이 사행에서 드러나는 오윤겸의 대일인식을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노출시키기보다 대상을 객관화한 점, 일본을 ‘안정속의 혼란’의 모습으로 인식한 점, 일본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禮와 義’보다는 현실적 방안으로 쇄환을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일정부분(321명)이나마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 일본을 사행하면서 대마도 등에서 문학과 문화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오윤겸은 명나라를 사행하면서 사적지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것은 명의 중화적 위치와 의미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행을 계기로 명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혼란속의 번성’도 확인하였다. 그리고 대명외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역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당시의 안타까운 현실도 인식하게 되었다.

문학 : 규훈소설의 성립 배경과 특성에 관한 연구

서경희 ( Kyung Hee Seo )
온지학회|온지논총  47권 0호, 2016 pp. 69-101 ( 총 33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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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여성에 대한 교육을 목적으로 이상적 인물을 설정하여 전통적으로 여성들에게 강조되었던 부덕(婦德)의 실천 덕목을 형상화한 소설들, 즉 규훈소설을 대상으로 그 성립배경과 특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규훈소설은 조선후기 여성교훈서가 사대부에 의해 활발하게 저작되고 필사본이 폭넓게 유통되며 규훈의 문학적 형상화가 다양하게 시도되는 분위기 속에서 등장하였다. 또한 소설 향유자들이 여성의 소설 독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의식하여 소설의 창작, 유통 과정에서 교훈성을 강조하고 여훈을 위한 자료와 함께 필사하여 ‘읽을 만한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노력이 규훈소설의 성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에 < 초당□신부문답 >, < 설씨내범 >, < 유한당사씨언행록 > 등의 규훈소설은 비교적 현실적 맥락 위에서 허구적 세계를 구축하여 규훈서의 체제와 내용을 수용하고, 인물간의 대화 속에 규훈과 교양의 소양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경전과 고사, 고훈을 인용하며, 규훈을 배우고 실천을 강조하는 이상적 여성인물을 형상화하였다. 통속적 소재를 중심으로 다루기보다는 소설 속에 교양과 규훈의 전개와 실천을 다루면서 새로운 경향의 소설화 방식을 기획할 수 있었다. 또 규훈소설의 성립과 전변 과정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특정 덕목과 윤리를 형상화한 작품들도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규훈소설의 자장을 확대하면서 규훈의 보수성과 현실적 요구가 소설화 과정에서 다양하게 작동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문학 : <□ □영 명긔 명션이라>의 욕망 구조 고찰 -그레마스 행위소 모형을 중심으로-

박수진 ( Su Jin Park )
온지학회|온지논총  47권 0호, 2016 pp. 103-129 ( 총 27 pages)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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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세기 기생 가사인 < □ □영 명긔 명션이라 >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레마스의 행위 모형소를 이용하여 인물들의 욕망 구조를 살펴보았다. < □ □영 명기 명션이라 >는 기생 명선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며, 작품의 구조는 ‘명선이 기생이 된 동기(起)- 기생이 된 이후, 김진사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부분(承)- 님의 기별을 듣고 서울로 올라가는 부분(轉)- 벗에게 남기는 말(結)’의 구조로 이루어졌다. 작품의 주된 인물은 ‘명선’과 ‘김진사’이다. ‘명선’은 운명에 순응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기생이며, 김진사를 만나 아이를 낳고,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 김진사는 외모, 문장, 풍채를 고루 갖춘 양반 남성이며, 약간은 냉정해도 따뜻한 정을 느낄수 있는 인물이다. 본고에서는 그레마스의 행위소 모형으로 주체와 대상, 발신자와 수신자, 협조자와 반대자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기생 명선이 주체일 때, 대상은 김진사가 되고, 발신자는 박동 사또 혹은 관아, 규방이나 김진사의 기별이다. 수신자는 명선 혹은 신분상승이고, 협조자는 아들과 절개이며, 반대자는 이별, 신관 사또의 수청이다. 그런 반면, 김진사가 주체일 때도명선의 욕망 구조와 같다. 하지만, 협조자는 아들 혹은 약속이고, 반대자는 이별이다. 작품에 드러난 두 인물의 욕망 양상은 다르다. 기생 명선은 내적 욕망과 외적 욕망으로 나눌 수 있다. 내적 욕망은 ‘신분상승’이고, 외적인 욕망은 ‘김진사와의 사랑’이다. 기생 가사에서 주체인 기생이 가장 원하는 욕망은 신분 상승이다. 이렇듯 기생 가사라 일컫는 < □ □영 명긔 명션이라 >를 기본으로 삼아 19세기 창작된 여러 기생 가사들의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기생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문학 : 결혼(부부) 서사로 읽어보는 < 숙영낭자전 >의 의미

김미령 ( Mi Ryeoung Kim )
온지학회|온지논총  47권 0호, 2016 pp. 131-160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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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영낭자전 >은 대표적인 애정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은 < 숙영낭자전 >을 ‘애정서사’라기 보다 ‘결혼(부부) 서사’로 보기를 제안한다. < 숙영낭자전 >이 두 남녀 주인공의 ‘애정 실현담’이라기보다 불완전한 남녀가 만나 불완전한 가정을 이루다 시련을 거친 후 비로서 완전한 가정을 이루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서사는 ‘두 남녀의 만남 및 결연-불완전한 결혼 생활-완전한 부부관계 획득 및 승천’의 서사 구조를 가지며,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불완전성’을 벗고 ‘완전한 부부’로 성숙하는 통과 제의적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이에 본 논문은 < 숙영낭자전 >을 ‘결혼(부부) 서사’로 보고, 이렇게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결혼(부부) 서사로 보았을 때 이 작품이 주는 문학적, 사회적 의미는 어떻게 규명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우선 서사의 첫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만남과 결연’의 단계에서 주요한 특징은 두 주인공들의 미성숙함, 즉 ``불완전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 숙영낭자전 >의 주인공이 기존의 전형적인 애정소설 주인공과는 질적으로 다름을 명확히 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두 번째 단계는 선군의 과거 시험 거부, 간통 음모, 숙영의 자살 등 ‘사건’ 중심의 서사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일련의 사건은 그들의 불완전한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표상이자, 주인공들의 불완전성이 결혼 생활에서 얼마나 심각한 위기를 낳게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이유로 선군과 숙영은 ‘통과의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선군의 ‘과거 시험’과 숙영의 ‘간통 음모’가 바로 그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불완전성을 벗어 낸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두 주인공의 변화를 통해 그들이 행복한 결혼생활로 안착했음을 확인 시켜준다. 이는 두 주인공이 통과의례를 성공리에 끝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두 사람의 변화를 통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부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상적 결혼관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제시해 준다.

철학 : 유교에서 죽음의 의미: 「논어」와 그와 연관된 율곡(栗谷)의 해석을 중심으로

임헌규 ( Heon Gyu Lim )
온지학회|온지논총  47권 0호, 2016 pp. 161-187 ( 총 27 pages)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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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다양하게 정의되어 왔지만, 그 중의 하나는 인간이란 죽음을 염려하며 현재에 살고 있는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것이다. 동서의 종교와 철학은 인간의 生死문제에 대해서는 1)허무주의, 2)영원주의(이원론), 3)소극적 외면주의 등으로 다양하게 답해 왔다. 이 글은 『논어』에서 공자의 죽음에 대한 언명을 단초로 하여, 한국의 성리학자 율곡의 우주론적 관점에서 유교에서 죽음의 의미를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선 공자의 언행이 기록된 『논어』에서 죽음이란 용어가 지니는 이미지와 의미를 분석하였다. 『논어』에 나타난 ‘死’의 의미를 살피면서, 우리는 유교적 죽음의 이미지, 장례, 예법, 제사, 장수 등의 문제에 대한 유교적 태도를 살폈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 혹은 삶의 의미와 생사의 관계에서 유교는 무엇을 우선시하는 지를 살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유교적 죽음의 문제와 연관된 철학적-형이상학적입장을 栗谷李珥「策問」을 통해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이기론적 생사관, 귀신 섬김(事鬼)의 문제, 그리고 생사에 있어 命의 문제 등에 대한 율곡의 철학적 해명을 살펴보았다. 요컨대 유교는 죽음의 문제를 生死一如혹은 生死一理라고 하는 우주적 조화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이러한 생사일여 혹은 생사일리의 관점에서 볼 때 비로소 인간은 생사를 겪으면서도 생사를 벗어나 불멸로의 자기초극(長生不死)이 가능하다는 것이 유교의 입장이라고 하겠다.

철학 : 퇴계와 고봉 사단칠정론의 대비적 고찰

안유경 ( Yoo Kyoung An )
온지학회|온지논총  47권 0호, 2016 pp. 189-216 ( 총 28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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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퇴계와 고봉 사단칠정론에 대한 해석을 대비적으로 고찰 함으로써 이들 사단칠정론에 대한 이론적 차이를 분명히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퇴계의 경우 기존의 대부분의 논문에서는 퇴계가 사단을 理發로 해석하게 된 배경에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다시 말하면 사단의 순선함을 어떻게 논증할 것인가? 그것이 갖는 윤리적 도덕적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필자도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문에서는 사단의 理發뿐만 아니라 칠정을 왜 氣發로 해석하려고 했는지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었다. 퇴계는 사단을 理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칠정을 끝까지 氣發로 해석하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와 상대적으로 고봉은 끝까지 칠정을 氣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론에서 두 사람이 끝까지 양보할 수 없었던 이론적 차이가 바로 여기에 소재한다고 볼 수 있다.

문화 : < 계모형 설화 >에 나타난 죽음의 형상화 방식과 특질

하경숙 ( Kung Sook Ha )
온지학회|온지논총  47권 0호, 2016 pp. 217-240 ( 총 24 pages)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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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부일처제 사회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계모(繼母)’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봉건시대 가족제도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신화적 혹은 설화적인 인물일 수 있다.‘계모형 설화’는 전실 자식 간의 갈등을 주된 내용으로 삼으면서 설화속 출현하는 계모들 역시 가족 관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고, 그에 부합하는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시도하였다. 다만 그것이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은 비정상적인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계모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함으로써 가족 구성원이 되지 못했는데,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분노함으로써 계모가 영입된 가정의 문제를 노출시켰던 것이다. ‘계모형 설화’에 나타난 계모의 시도는 결론적으로 본다면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독자들은 계모에 대한 고정 관념으로 인해 서사 속에 형상된 계모의 죽음을 끝내 가족 간의 살인이 아닌, ‘흉녀(凶女)’의 처단으로 수용함으로써 계모에 대한 고정 관념을 더욱 고착(固着)시킨다. ‘계모형 설화’는 단순히 계모와 전처 자식들의 갈등으로 계모는 물론 본처의 자식, 혹은 기출 모두가 목숨을 잃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비극의 결과는 가족 구성원의 죽음으로 인한 회복할 수 없는 가정의 붕괴였다. ‘계모형 설화’에 나타난 죽음은 결국 비극의 결말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계모와 자식들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조정해야 하며, 전처의 자식들은 계모를 친어머니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부정적인 관점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계모 역시 전처 자식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문화 : 회화(繪畵)를 통한 소통(疏通): 가노 탄유[수야탐유(狩野探幽)]가 기록한 조선그림

박은순 ( Eun Soon Park )
온지학회|온지논총  47권 0호, 2016 pp. 241-278 ( 총 38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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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일본 에도江戶시대의 대표적인 화파인 가노파狩野派화가 들이 조선과의 회화교류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의 문제를 고찰하여 보았다. 에도시대 御用畵師집단을 대표하던 에도 가노파 화가들은 17세기 이후 파견된 조선 통신사를 접대하거나 통신사가 일본에 당도하기 이전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또한 가노파 화가들은 막부의 고관이나 각지의 다이묘, 혹은 부호들이 소장하였던 많은 그림들을 감정, 기록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수많은 한중일의 그림을 보았고, 이를 縮圖라고 하는 자료에 간단한 스케치로 담아 전해지게 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가노 탄유(狩野探幽, 1602-1674)의 縮圖가 있다. 어용화사인 가노 탄유는 조선 통신사를 대접하기 위한 여러 준비를 하는데 동원되었고, 실제 통신사 수행화원들을 만났으며, 조선 國王에게 선사된 병풍그림도 그렸다. 후에는 조선 통신사의 행렬을 담은 그림도 그리는 등 조선과 관련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는 자신이 본 그림들을 기록한 수많은 축도를 제작하였다. 그러한 축도 스케치 중에는 조선 그림으로 확인된 여러 스케치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는 현존하는 그림과 연결되는 것도 있고, 기록과 스케치를 통해서 조선그림으로 추정해 볼수 있는 작품들도 있다. 가노 탄유와 가노 쓰네노부(狩野常信)를 비롯한 에도 가노파 화가 중奧繪師화가들은 가장 보수적인 화가집단이었다. 그들은 17세기 이전부터 조선문화와 그림을 직간접으로 경험하였음에도 작품에서 朝鮮風을 수용하는데에는 신중하였다. 조선과의 교류에서 가장 많은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였던 일본의 가노파 화가들이 조선회화에 대해서 어떠한 인식과 태도를 지녔는지, 또한 회화작품에 조선풍을 어떠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까지 활용하였는지의 문제 등은 한일회화 교류에 관한 연구를 심화하기 위하여 앞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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