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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JI COLLECTION OF WORK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44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6권 0호 (2018)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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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4세기 전반기 고려의 대표적 문인 중 한 사람인 稼亭 李穀이 追求한 사회적 욕망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곡은 元干涉期라는 內憂外患의 시대에 원나라 制科를 통해 宦路 진출을 圖謀 했다. 그는 地方土着層이라는 身分的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異國 땅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민족적·언어적 장애를 극복하고 오직 실력만으로 자신의 사회적 욕망을 기본적으로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보다 진전된 욕망이었던 그가 가졌던 實用主義와 民本主義의 經世적 욕망이라는 보다 진전된 욕망은 현실의 두터운 벽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제한된 宦路와 정치적 실의는 그로 하여금 고려와 원나라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異邦人으로 떠돌게 했다. 이런 독특한 이력과 그 문학화 과정은 14세기 전반기 문인 중 이곡에게서 두드러지는 특수한 상 황이기도 했다.

이형부(李馨溥)의 「화양구곡도(華陽九曲圖)」에 대한 고찰

이상주 ( Lee Sangju )
온지학회|온지논총  56권 0호, 2018 pp. 41-76 ( 총 36 pages)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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尤庵 宋時烈(1607~1689)은 李德泗(1581~1636)의 딸과 혼인했다. 宋時烈(1607~1689)은 율곡 李珥(1536~1584)의 도통을 계승하고 기호사림의 도통계승의식을 助長하였다. 李奎象(1727~1799)은 이덕사의 5대손이다. 『幷世才彦錄』의 저자인 이규상은 근자 주목받고 있다. 전반적 정황으로 이덕사와 송시열가문은 여러 세대에 걸쳐 교유하면서서 도통을 계승했다. 이규상의 손자 李源順은 화양구곡에 대한 시를 지었으며, 華陽九曲圖를 그릴 생각을 했다. 이원순의 아들 李馨溥(1791~1851)가 1809년에 「華陽九曲圖」를 그리고 그림에 <題華陽九曲圖>를 썼다. 이 그림에 송시열의 10대손 宋洛憲(1891~1944)은 1924년 ‘華陽九曲圖’라 題目을 적고, 그 조부 宋達洙(1808~1858)가 지은 <華陽九曲次武夷棹歌韻> 10수를 써넣었다. 이 모두 道統을 계승 발현한 결과이다. 혼인으로 맺은 두 가문이 도통의식을 유지하고 후손들이 합작으로 구곡도를 완성한 사례는 처음으로 보인다. 이렇듯 이들은 「華陽九曲圖」를 그리고 거기에 <華陽九曲次武夷棹歌韻>을 追記하여 문학예술작품을 합작완성하였다. 이는 尊周大義와 朱子의 道統意識을 詩와 그림으로 창작계승한 것이다.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현존하는 화양구곡도는 2점이다. 權信應(1728~1787)이 그린 <화양구곡도>가 현존하는 최초의 화양구곡도이다. 그 다음이 이형부의 <화양구곡도>이다. 이형부가 그린 <화양구곡도>에는 이형부가 ‘箕山舊邦崇禎遺民’, 송낙헌이 ‘小巴山人大明軒宋洛憲’이라 인장에 새겨서 찍었다. 이를 통해 이들의 존주대의의식과 도통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 남는다. 이형부의 <화양구곡도>는 전체적으로 바위와 소나무로 구성했다. 바위는 불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砥柱石을 염두하고 시에 인용한다. 소나무도 흔히 『논어』 <子罕>편의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에 의거하여 절개와 지조를 대변한다. 이형부는 <화양구곡도>에서 바위와 소나무를 통해 우암이 존주대의의 의리와 존화양이의 지조를 중시했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이형부는 <題華陽九曲圖>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았다. 明나라 황제의 업적과 우암의 崇明意識에 대한 비유, 朱子의 학문자세 강조, 孝宗에 대한 不忘心의 비유적 표현, 우암의 尊周大義意識의 聖地化에 대한 찬양, 중국과 대등한 天藏地秘의 땅, 송시열의 朱子에 대한 흠모심, 제갈 량과 우암의 동격화, 武夷九曲에 없는 신성하고 청정한 仙境, 巴串의 승경에 대한 극대적 예찬 등이다. 이형부는 <題華陽九曲圖>에서 화양구곡 9개 곡과 관련해서 그 내용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비유적 표현을 써서 강조했다. 이런 점이 <화양구곡도>와 <題華陽九曲圖>의 특징이다. 따라서 그 九曲圖史的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이렇듯 이형부는 <화양구곡도>와 <題華陽九曲圖>를 통해 존주대의의식과 도통의식을 발현하였으니 그 구곡문학예술사적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허황옥 설화」의 의미 양상과 인물의 특질

하경숙 ( Ha Gyeong-suk )
온지학회|온지논총  56권 0호, 2018 pp. 77-99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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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옥은 허황후(許皇后)라고도 하며,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김해 허씨(金海許氏)의 시조모이다. 허왕후에 대한 기록은 『三國遺事』「駕洛國記」와 「金官城婆娑石塔」조에 수록되어 있다. 그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이며 16세의 나이로 하늘의 계시를 받아서 가락국 수로왕의 배필이 되었다. 허황옥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교역시대 이후 탑, 무덤, 붉은기, 신어(神魚)가 등장한다. 이들이 취급한 주요 물품에는 비단(능라), 금, 차, 소금, 쌀 등이 존재한다. 수로왕과 결혼하기 위해 멀리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온 허황옥의 이야기는 고대의 ‘국제(國際)결연담’이라는 의미와 이주여성, 문화의 혼재, 선진문물의 수용이라는 다양한 측면을 부각하고 있다. <허황옥 설화>에서는 고대사의 역사를 밝힐 수 있으며, 고대 해상교류를 통한 문물의 교류와 문화교류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증거가 나타난다. 허황옥이라는 새로운 문화 유입자를 통해 선진문물을 접하고 그 속에서 ‘쌍어’가 서사의 중요한 화두로 작용하고 있는데, 다양한 종교의 흔적으로 여겨진다. ‘쌍어’는 다양한 사람들의 기원과 소망으로 연결할 수 있고 이 안에는 다양한 문화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쌍어’를 통해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 등 고대인들의 삶의 모습을 상세히 알 수 있다. 허황옥이 지닌 주체성과 독립성은 여성이 지닌 근원적 생산성과 풍요성과 별개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스스로의 삶을 구현한 것이다. 고대 가야의 여성인 허황옥은 여성의 능력을 실천하고, 새로운 도전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는 현실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내며 주체적인 삶을 실현하고자 한 현대의 여성들과 다르지 않다. 아울러 <허황옥 설화>는 해상을 통한 이동과 정착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경로의 선명함과, 교류와 충돌을 바탕으로 한 융합을 보여주며 그 속에 주체성을 지닌 여성의 모습과 문화현상의 단면이 분명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소현성록> 연작에 나타난 감정의 출현 빈도와 의미 ― 컴퓨터를 활용한 통계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

강우규 ( Kang Woo-kyu ) , 김바로 ( Kim Ba-ro )
온지학회|온지논총  56권 0호, 2018 pp. 101-128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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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소현성록(蘇賢聖錄)> 연작을 전통적인 서사구조 분석을 바탕으로 분절하고, 감정 어휘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였다. 인물별 단위담의 감정 표출양상은 <소현성록> 연작이 유사한 갈등 전개 양상을 보여준다는 기존 연구와는 달리, 수용자의 입장에서 소현성, 소운성, 소운명의 단위담에 대한 감정적 동조는 각각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소현성의 단위담은 다른 단위담에 비해 감정의 출현빈도가 낮게 나타나고, 소운성의 단위담은 감정 변화의 등락이 명확하며, 소운명의 단위담은 지속적인 감정이 유지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소현성록> 연작 전체에서 감정의 출현빈도는 전편에 비해 후편에서 대체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그런데 슬픔의 감정 수치는 전후편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는 슬픔의 감정이 <소현성록> 연작의 전후편을 대비하는 하나의 특징으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져부인젼>에 나타난 저승의 특성(特性)과 문학사적 의미(意味) 연구

유권석 ( Yu Kwon Sek )
온지학회|온지논총  56권 0호, 2018 pp. 129-149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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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최근에 소개된 가사체 고소설 <져부인젼>에 나타난 저승의 특성과 문학사적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시도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저승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서사무가와 설화, 고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발견되는데, 최근에 발굴된 가사체 고소설 <져부인젼>에도 저승체험담이 실려 있어 주목된다. <져부인젼>에 실려 있는 저승체험담은 <져부인젼>이 「복선화음가」 계열의 계녀가사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복선화음가」나 「복션화음기」, 「김씨열행록」, 「여자탄식가」와 같은 가사체 고소설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져부인젼>은 져부인의 일대기를 출생→결연→시련→시련극복→행복에 이르는 과정으로 서사화 시키고 있는데, <져부인젼>에 실려 있는 저승체험담에는 크게 두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 첫째, 복선화음의 구현이다. 효행과 부덕을 고수한 주인공 져부인은 저승에서 시부모를 통해 보상이 주어질 것임을 확약 받고 악행을 행한 뽈똥어미는 갖은 문초 끝에 비참하게 죽는다. 둘째, 이승을 주관하는 가치 판단의 세계라는 점이다. 저승은 이승과 닮은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승을 주관하며 선악이라는 가치에 따라 모든 것을 판별하는 신성한 영역이다. 이러한 저승은 도교를 앞세운 불교, 무속의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지만 어디까지나 유교적인 교화가 중심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져부인젼>에 나타난 저승은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져부인젼>은 초기 고소설에 등장하는 저승담의 유형을 계승하면서 조선후기 민중들의 눈높이에 맞게 저승을 보편적인 세계로 탈바꿈 시켜 놓았다. 즉 저승은 준엄한 심판의 세계이지만 민중들의 염원이 실현되는 공간이자 유교적 이념의 실천 여부에 따라 누구나 쉽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의 근거로 활용된 것이다.

위만(衛滿)의 두발(頭髮)과 복장(服裝)을 실마리로 한 한국 고대문화의 정체성 탐색

이도학 ( Lee Do-hack )
온지학회|온지논총  56권 0호, 2018 pp. 151-179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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衛滿이 조선에 망명해 올 때 頭髮과 服裝을 『史記』에서는 ‘魋結蠻夷服’라고 하였다. 문맥을 놓고 볼 때 이는 조선의 복장과 두발을 따랐다는 게 된다. 복속 의례가 된다. 그런데 ‘魋結’는 南越王 趙陀 故事에서도 보인다. 조타의 ‘魋結’에 대해 『史記』 주석에서는 중국의 병사들 두발로 해석했다. 『史記』 조선전의 ‘魋結’를 『漢書』 조선전에서는 ‘椎結’로 적었다. 『삼국지』에서는 두발은 기록하지 않고 ‘蠻夷服’을 ‘胡服’으로만 적어 놓았다. 여러 문헌을 詳考한 결과 『漢書』의 ‘椎結’는 흉노로 투항한 漢將 李陵이 했던 辮髮로 밝혀졌다. 흉노의 두발인 ‘椎結’는 말할 나위없이 변발을 가리킨다. 따라서 조선의 두발은 剃頭를 한 辮髮로 드러났다. 이 사실은 중국과 구분되는 세계의 표지였다. ‘椎結’ 즉 辮髮이었던 한반도 서북 지역 주민들은 한사군 설치 이후 상투를 틀어 머리를 정수리로 올린 두발로 바뀐 것 같다. 급속히 밀려든 중국화에 따라 두발 역시 변모했던 것 같다. 이로 인해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는 상투 두발만 확인된다. 백제나 신라의 경우도 예외가 되지는 않았다.

김상악(金相岳)의 『산천역설(山天易說)』에 나타난 한역적(漢易的) 성격

임재규 ( Im Jaekyu )
온지학회|온지논총  56권 0호, 2018 pp. 181-205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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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金相岳의 『山天易說』에 대한 검토를 통해 『山天易說』의 漢易的 성격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필자는 『山天易說』에 나타난 한역적 성격을 크게 두 가지로 보았다. 하나는 『山天易說』이 한역의 학설 중 五行說, 納甲說, 互卦說, 爻變說, 旁通說, 消息說등의 상수학설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山天易說』이 取象 방법으로 伏體, 變體, 互體, 反體, 交體등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尹定鉉의 『山天易說』에 대한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山天易說』은 송역과 한역의 두 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金相岳은 『周易』을 해석함에 있어서 한역과 송역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다만 본 연구가 『山天易說』의 한역적 성격에 주목한 것은 조선후기 역학사의 흐름에서 있어서 송역에서 한역으로의 과도기적 성격을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역학서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송역에서 한역으로의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주는 金相岳의 『山天易說』은 조선후기 역학사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이런 점에서 『山天易說』에 대한 본 연구는 조선후기 역학사 연구의 토대적인 연구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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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대학(大學)』 전(傳) 10장에 등장하는 혈구지도(絜矩之道)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한 정조(正祖, 1752~1800)의 정치관, 곧 혈구정치관(絜矩政治觀)의 사상적 특징을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의 정치판단이론을 적용해 고찰하는 연구다. 휴머니즘적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볼 때, 정조의 혈구정치관은 일면 아렌트의 정치판단이론과 일맥상통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하다. 『대학』의 이론 요점을 명덕(明德)으로 『대학』이 제시하는 정치판단의 원리를 혈구로 간주하는 정조는, 혈구를 할 수 있는 근원을 명덕으로 이해하며, 또한 명덕은 곧 본심(本心)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그는 혈구정치를 잘 실천할 수 있도록 본심을 키우는 공부 비법으로 ‘활법活法)’을 제안한다. 그런데 그 내용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정조의 명덕 본심, 혈구지도, 활법의 개념과 체계는 아렌트의 정치판단이론의 핵심 개념과 체계를 이루는 ‘공통감(common sense)’, ‘상상력(imagination)’, ‘반성(reflection)’, ‘판단(judging)’, ‘판단 훈련’ 등의 전모와 상당히 유사하며, 양자가 공히 정치의 본질을 ‘소통’과 ‘동의(同意)’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대학』의 혈구정치관을 발전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자신의 독창적인 ‘명덕=본심’관 및 활법 공부론과 연계시키고 있는 정조의 휴머니즘적 정치사상은 상당한 혁신성과 철학적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해 볼 수 있다.

조선후기 여성 유서 연구 ― 순절 열녀 신씨부(申氏婦)의 한글 유서를 중심으로 ―

홍인숙 ( Hong Insook )
온지학회|온지논총  56권 0호, 2018 pp. 247-281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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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후기 여성이 남긴 한 편의 한글 유서 자료를 소개하고 그 기본 정보와 내용을 파악하고 유서 작성의 상황과 맥락을 면밀하게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서의 작자는 자신이 남편의 죽음 이후 따라 죽음을 밝히고 있으므로 이 유서는 기본적으로 조선후기 열녀 관습 안 에 있는 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이 유서의 원 텍스트는 한 장으로 이어져 있는 1.5미터 정도의 종이 두루마리이며 유서 작자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한글 친필본이다. 유서는 총 네 명의 수신자를 대상으로 쓰여 있으며 수신자는 친척 동생, 딸 내외, 친정 오빠 내외, 시부모님이다. 전체 분량은 원고지 23매 분량으로, 동생과 딸과 친정 오빠에게 쓴 유서는 각각 원고지 3~5매, 시부모에게 쓴 유서는 원고지 약 11매 정도의 분량이다. 유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기본 정보는 이러하다. 첫째, 유서 속에 남편이 죽은 해로 언급된 ‘병인년(丙寅年)’이라는 연대는 조선후기 ‘1746년, 1806년, 1866년’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남편을 ‘신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유서 작자의 시댁은 신씨 가문이다. 셋째, 작자는 남편의 죽음 당시 임신 중이었던 외동딸 ‘은슌’을 키워내고 ‘지난 해’ 혼인시킨 후 자결함을 밝히고 있다. 넷째, 작자는 남편의 뒤를 이을 양자를 들이고 혼인까지 시켰으나 정식으로 입양을 하지 못해 시댁과 갈등을 겪었다. 다섯째, 이 여성의 자결 당시 나이는 조선후기 여성의 일반적인 초혼 연령과 딸의 혼인 사실을 고려할 때 대략 30대 후반이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유서 네 통 중 친척 동생, 딸 내외, 오빠 내외 등 친정 식구들에게 남긴 세 통의 유서에서는 애정과 그리움을 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세 통의 유서는 자신의 죽음이 ‘아무런 한도 미련도 없다’고 하면서 자기 죽음을 슬퍼할 식구들을 오히려 위로하는 다정한 어조를 담고 있다. 반면 시부모님에게 남긴 유서는 이와 전혀 다른 감정 표현과 문체를 보여주는데, 이 네 번째 유서는 친정 쪽 유서의 두 배가 넘는 장문의 글이며 시댁에 오랫동안 품어온 서러움과 원통함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특히 작자는 시부모에게 자신이 남편의 죽음 직후 따라 죽지 못한 이유를 매우 길게 해명하듯이 서술하고 있다. 이 시부모 대상 유서는 작자가 가부장인 시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딸의 출산, 양자 결정, 자결 지연’ 등의 일에 있어서 오랜 세월 모종의 깊은 갈등이 있어 왔음을 함 축적으로 보여준다고 분석하였다. 조선후기 남편을 따라 죽은 여성의 유서는 열녀 담론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했던 조선시대 여성의 내면이 단순하게 통제되고 조율되는 것만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조선후기 여성 유서는 이 시기 점차 강화되고 있었던 가부장적 질서와 열녀 이데올로기 속에서 여성 스스로 남긴 언어와 인식, 경험과 감정, 판단과 선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며, 자결이라는 참혹한 선택 앞에서 여성이 남긴 복잡한 자기 내면에 대한 최후의 진술이라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경북 종가 제례의 양상과 문화적 의미 ― 불천위 제례를 중심으로 ―

정우락 ( Jeong Woo-rak )
온지학회|온지논총  56권 0호, 2018 pp. 283-321 ( 총 39 pages)
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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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경상북도 불천위 제례가 어떻게 시행되고 있으며, 이것이 지닌 문화적 의미는 또한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다. 불천위 제례를 특별히 주목한 이유는, 제례가 가문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의례이며, 전통의 계승과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 연구를 위하여 먼저 경상북도 종가 46개를 선정하였으며, 이를 통해 주자학이 한국에 들어와서 토착화하는 과정과 한국화하는 과정을 제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주자학적 구심력과 한국적 원심력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경상북도의 불천위 제례는 기본적으로 『주자가례』의 절차를 따르지만, 행례(行禮) 현장에서는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변화는 제례의 날짜, 시간, 장소, 절차, 진설(陳設)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지역에서 시행하는 향사(享祀)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지니고 행례되기도 한다. 문화적 의미로는 성리학적 의례의 지역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 이외에도, 부부공제(夫婦共祭)의 실현과 열린 가족공동체 문화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가 다수 발견된다는 점 등 다양한 것을 들 수 있다. 심각한 저출산과 함께 가족의 해체를 우려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불천위 제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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